내가 진짜 삼팬으로 저 당시 또렷이 기억난다. 87년 진짜 삼성 호화멤버였고 투타 발란스도 좋았고 정말 극강모드였고 어느 팀이라도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 당시 팀 타율이 3할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타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들 뭐하나!!!! 이상하게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만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추풍낙엽처럼 다들 맥을 못추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플레이오프인가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서 삼성이 전후기 모두 우승을 했는데도 플레이오프로 올라온 팀과 다시 게임을 해야되는 쪽으로 바뀌었고 고작 7전 4선승이라는 단기전으로 그 해의 왕좌를 결정했는데 난 지금 생각해도 비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되며 패넌트 레이스에서 우승한 팀이 그 해의 우승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해태는 진짜 플레이오프라는 제도의 최대의 수혜자이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단기전의 깡패였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추억의 선수는 물론, 앵커와 기자까지도
다 생각나네요.
20세기의 해태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입니다.
제 기억에는 코시 때 제 2의 홈이나 다름이 없던
잠실에서 더욱 강했습니다.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 제일많이 우승한팀
그리고 한국시리즈 무패행진 향후 이기록은
못깨질듯합니다
당시야구도 추억여행...여자아나운서들 신은경 , 백지연, 이규원, 황현정.... 그리운 얼굴들~~~
89년 2차전 장종훈 실책
93년 1차전 이종두 실책
시즌초반 꼴찌하다가 우승했던
96년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운 해태 ㅠ
80~90년대 🇰🇷 프로야구를 호령하며 왕조의 시작이 됬던 해태 타이거즈...어느덧 20년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뚝심&근성있는 야구를 보여줬던 선수들의 모습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저 시절에는 플레이오프 홈구장을 전주로 사용했나보네...
해태가 얼마나 얼마나 강한지 일본인이나 미국팀이랑붙었으면 더욱흥미있고재미가있었을듯
실제로 한일 슈퍼게임에서 일본올스타팀 : 해태 단일팀 의 경기가 있었죠. 결과는 졌던거 같고요.
@@jkluchiano4490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스코어가 궁금하네요
@@jkluchiano4490 일본 올스타와 동급이였나요? 그럼, 일본챔피언은 이겼을거 같네요.
@@jamesleecasa7487
당시 1대4로 패했습니다.
공중파뉴스에서 천재 이종범이라고하던 시절이네
이거 올려주신분 감사합니다.
빙그레 김영덕 감독이 안쓰럽네.
삼성도 전력이 막강했는데 2000년도 까지 우승한번 못한것도 특이하고.
두 팀 다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랑 겨뤘지만
준우승에 만족했죠.
삼성은 85년 우승했지만, 한국시리즈로
거둔게 아니어서 이게 오히려
20세기 때는 족쇄 아닌 족쇄가 됐죠.
그리고 해태 부도 ㅜㅜ왕조에 끝
그당시에 무등경기장 입구에 한달게임 일정을 현수막으로 걸어둬서 그거보고 야구보러갔던 기억이 ㅎ 비오면 우천취소여부도 무조건 무등경기장 전화해서 오늘 야구하나요?하면 합니다 대답해줌 그 전화받는분도 극한직업이었을듯 ㅎ해태아줌마 임갑교 단장님 그립네요
해태 아줌마 광주에서도 응원하셨나요?
티비중계로 서울경기할때만 본기억이 있어서요. 무등경기장에서 몇번 야구직접
보러가기도 했었는데, 해태아줌마 못봤던거 같아요
@@물지-q7o 광주에서도 항상 응원하셨어요
@@minholee4154
티비중계할때 서울경기에선 해태아줌마 봤는데,광주경기에선 본적이 없어서요
광주도 항상 계셨군요
해태아줌마 추억의 이름이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HAITAI TIGERS 위력이 대단했지요 V11 KIA TIGERS 포함
담으로 三星 SK 斗山!! 엄청 나지요 (전 친 LG 골수팬임)
오 80년대에는 해태가 전주구장을 홈으로쓰기도했군요
이 영상을보고서야 알게된 사실
87년 당시 OB와의 플레이오프를
전주에서 치뤘죠.
한국에서 살 당시 80년대는 해태가 그렇게 밉고 싫었는데 지금은 참 그 시절의 한국 프로야구가 그립네요 ㅎㅎ 80년대의 해태 타이거스같은 팀은 영원히 나올 수 없죠!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저랑 같은 마음입니다^^
24:36 마구
해태타자들의밥 김시진(삼성)7전7패
김응용 감독의밥
김영덕 감독
김성근감독
김시진도 우승기록이 있음
통합우승
정규시즌 20승은 우습게 했는데
한국시리즈 전패한 삼성에이스투수
내귀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생각나네
스무살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죽은줄로 알았던 뉴스 뭔지 궁금하네 ㅋ
41:35 42:44
뭐야 쌍방울 창단전 해태 연고지가 전주야?
쌍방울 창단전 해태의 연고지는 광주와 (전주와 군산이 번갈아 함)을 포함한 전라남북도입니다.
한대화 지금 뭐하냐??
7:41 舊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2:19 손사장 리즈시절 ㅎ
87年 플레이 오프
해태 타이거즈 상대팀 어디
인가요 ?
두산의 전신 OB베어스입니다
87플옵 3차전이 전주에서 열렸다구?
구장 사정상 그랬던듯..무등경기장이 워낙에 후졌었자나요.
한화가 ㅊ처음부터 꼴닭은 아니었네..다시 이름 빙그레로 바꿔라....
24:56 앙팡맨 귀찮아하는 표정
이종범의얼굴에 이정후모습이 남아있네요^^
그립고 또 그립다
6:51 어깨주ㅡ물러주네 ㄱㄱㄱ ㄱㄱㄱㄱ
59:50 차명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종범한테 3점호무란
내가 진짜 삼팬으로 저 당시 또렷이 기억난다. 87년 진짜 삼성 호화멤버였고 투타 발란스도 좋았고 정말 극강모드였고 어느 팀이라도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 당시 팀 타율이 3할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타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들 뭐하나!!!! 이상하게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만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추풍낙엽처럼 다들 맥을 못추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플레이오프인가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서 삼성이 전후기 모두 우승을 했는데도 플레이오프로 올라온 팀과 다시 게임을 해야되는 쪽으로 바뀌었고 고작 7전 4선승이라는 단기전으로 그 해의 왕좌를 결정했는데 난 지금 생각해도 비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되며 패넌트 레이스에서 우승한 팀이 그 해의 우승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해태는 진짜 플레이오프라는 제도의 최대의 수혜자이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단기전의 깡패였다.
선동열이라는 초극강 깡패
그때는 삼성뿐 아니라 모든 팀이 해태를 이겨보는 게 꿈이던 시절입니다. 일단 선동열이 선발이거나 불펜이서 몸풀면 그 날 경기는 접는 걸로 생각하던 시절이니.
김성근감독 젊을때 모습이 구대성 선수와 비슷해보이는건 제 기분때문입니까?
니 눈깔 때문이지 뭔 기분?
42:25 이야ㅋㅋㅋㅋㅋㄱㅋ
세이콘은 저때나 지금이나 말이 늘지를 않았냐..
일본사람 이자나
빙그레는 준우승 제조기네완전
해태는 그렇다쳐도 92년 롯데에게 진건 충격이 컸죠 그이후로 암흑기였다 99년 우승이 유일한 우승
왜 전주에서 하지
87년도에 광주에서 지금은 없어진 무등 경기장이 전국체전 메인 경기장이었습니다
전주에서 하게 되었지요
그러게요 왜 전라도에서 하는건지....
@@최지훈-p6d6s 박지성 고향이 고흥이라서 그런듯
@@아이언드래곤-q8h 박지성 고향이 절라도였어요?이런….실망이네
@@최지훈-p6d6s 절라도가 아니고 전라도죠
경상도가 개쌍도가 아니듯이
29:03 캐스터의 예언 ㄷㄷ
엄기영으ㄴ정치권 헛발질
백지연은 ~~안타깝네...
50:28 이호성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53:09 57:38 오오미 사번타자 ^^
20분경 나오신 kbs mbc 아나운서 누구실까요 그리고또 25분경 나오신분 요
kbs는 이규원 mbc는 저도몰라요 검색해보세요 25분경은 신은경 아나운서일거에요
20분 경에 mbc 아나운서는 백지연 앵커인 것 같네요.
@@Tigers8797 신은경 앵커 맞습니다.
선동렬은 포스트시즌에 존재감이 전혀 없네. 삼성의 김시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