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과 세종은 서로 윈윈 관계였던것 같네요. 세종에게 양녕대군뿐 아닌 효령대군도 있었기에 정신적 의지가 되었을 것이고 효령대군 역시 세종이 없었다면 싫든 좋든 형대신 본인이 왕이 되었어야는데 그랬다면 성격상 스트레스 많이 받아 90살은 커녕 환갑도 못넘겼을듯합니다 ㅎㅎㅎ
효령대군파 자손이신 시어머님께서는 후덕하시고 건강하시고 총명하셔서 93세까지 자손의 자애로운 어른으로 장수하셨음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혈통 때문이었네요. 대군님은 혈육상잔의 아픔을 부처님 전에 빌고 왕자의 난으로 희생된 이들의 왕생 극락을 빌며 생을 마감하신 대단한 분이네요!
울 남편은 효령대군 후손인데 욕도 잘하지 누가잇든없든 지 하고 싶은데로 다한다 그럼서 왕손이라는둥 나보곤 무수리라고 그래서 제가 왕손은 무슨 대대손손 하녀 무수리 첩실에 후손 아니냐고? 어찌나 왕손 왕손 해서 저는 이가 갈려요 내 자식도 이씨지만ㅋ 성을 갈아버리고 싶어요 ㅋ
그렇죠 정의와 상관없이 나의 안위에 관심이 많으니 장수할 수 있는겁니다 조카가 조카를 죽이는데도 어른으로서 한마디 거들지 않고 오히려 세조의 편에 섰으니 조선시대 꿈꾸기도 힘든 90세 장수를 누렸지요 우리같은 사회정의에 더듬이가 발달한 사람은 이런 권력 투쟁에 편할 수 없지요
양녕대군이 세자자리를 내놓게된 사연은 아버지 태종이 외척이득세하면 나라가 망한다고하여 외척들을 모두 죽이는걸보고 처가를 지키기위함도 있었고 동생 세종이 왕제임을 알기에 일부러 망나니짖을하여 페세자가되었다고 합니다 동생 효령대군이 정치에 관심을 갖자 크게 꾸짖으며 충령대군세종이 왕재임을 깨우쳐주니 효령대군은 양녕대군의 뜻을 이해하고 승려가 되었다고 해요
그건 그냥 동화입니다. 양녕대군은 태종이 자신의 어머니의 외가 시람들을 죽일 때 자기 세자 자리를 위해 동의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런 저런 문란한 사건들을 일으켜 태종으로 인해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겁니다. 후에는 세조가 세종의 손자인 단종을 죽이는 걸 적극 찬성하기도 하죠. 심지어 권력욕 없고 불교와 가깝기로 알려진 효령대군도 왕실의 안정을 위해 단종 사사에 동의했다고 하니, 왕실 일에 우리가 아는 동화 같은 사람은 없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른이라 불교적인 발전은 공로를 인정할 수 있겠지만 세조에게 단종의 죽음을 간한 양녕 그의 조카가 피비릿내나는 쿠데타로 어른단종을 죽인 모습을 보았을덴데 말한디못하는 비겁이 어른인가요 차라디 후궁의 아들 비녕?군이 운주대에 들어가서 서럽게 울었다는 것이 더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참 양녕은단종을 죽어야 된다고 간했다던데..양녕도 어른인가요
본인 왕위 서열이 더 높고 자기도 능력이 충분이 있는데도 동생을 질투하지 않고 묵묵히 물러나 조용히 처신한 효령대군이야말로 찐어른 👍
그 시대에 90세까지 장수를 하다니..... 대단하네요~
왕 안하고 편하게 놀고먹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었나
기도하며수련하고,야심을내려놓는 정신세계의 경지에서 불경 번역과 많은학문적,공적이있으며 정신적 지주 노릇을하며 조선정치계에 묵묵히 발을담그지않고,불교번역,정신적지주같은 어른입장에서 왕실균형과 가족화합에 일조합니다. @@min5932
마음을 잘 다스리며 수양을 했기에 장수한것같네요
요즘으로 치면 120살~~와우
장수을 한이유
욕심내려놓고
온하한 성격
불경의 마음을 다스림
결론
스트레스없음
효령대군이 진짜 승리자 아니냐 ㄷㄷ
효령대군이 태조이성계 손자맞죠?
@@김민철-b5y 그렇죠 손자 맞음 ㅎ
효령대군은 살아생전 아들 7명과 손자 33명, 증손자 109명을 두었을정도로 전주이씨 여러파중에서 가장 후손이 번성했습니다
효령대군파입니다
저도 효령대군파^^
난 경녕군파 18대손입니다
이복 성늼들
많은 사람들이~ 노비의 후손이고 갑오개혁후 주인성씨를 따랐습니다...
ㄴㄴ 족보 산거임 물어보셈ㅋㅋ
동생 세종이 워낙 똑똑하기에 왕위를 탐하지 않았으며 왕위를 탐하는 순간 목숨이 위태로울수 있어 승려가 되었다고도 하지요~
사실 양녕이 개차반이어서 폐위된거면, 그 다음차례는 효령이긴 하죠.,
권력에 욕심이 없었던거죠~
현명한 선택 ~
본인보다 더 능력이좋은 세종을 일치감치 알아봤을수도
머리깎고 승려가 되진 못 했어요 걍 공부만 했습니다…
양녕대군
왕위를 뺐겨 심술을
부리고 단종을 쫓아나고
세조를 왕위를 옹립함
효령대군 천수를 누림
세종대왕이 최고 👍
정말 대단한 성품이다
전 지나가던 효령대군파 21대손입니다.
훌륭한 조상님을 두셨습니다.
저도 21세손..
규 자 항렬
성격이 차분했다고 하죠 욕심도 없고 그런데 똑똑했다고 하죠
제가 효령대군17대손인데 (할아버지 환갑때 아빠낳으시고 울엄마가 저 38살에 낳으심 막둥이에 막둥이라 저랑 같은 대손분들중에 제가 가장 젊을것임 ) 확실히 장수유전자 있는듯해요 아빠쪽 윗 혈연들은 다들 90세 가까이 사시다 돌아가심 ㄷㄷ
엇... 그러고보니 저희 외가도 그런데 저희 외할아버지도 거의 95세쯤 돌아가셨네요. 엄마도 70 다되어가시는데 짱짱하시고bb
17세 손이면 항렬자가 기 자 이겠네요.
기○, 강○, ○재, 정○ 또는 수○, ○규, ○학
저희도딸까지도헤아릴규자를쓰셨지요.규희.규옥.규수.오빠는규근ㆍ규식.규백
전 19대손입니다...할아버지...
세종이 태평성대를 이룬건
이방원의 외척제거때문이 아니라
효령의 마음씀씀이 덕이었네
효령대군 22대손 입니다❤❤❤
효령대군 자손입니다
대군께서도 왜 왕에 대한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다만 이를 탐하지 않고 사셨으니 오랫동안 장수 하셨겠죠
2호선 방배역 근처의 묘소를 청권사라 부르며 저도 몇 번 참석하려 예를 올린 적이 있네요 ^^
훌륭한 조상을 두셨군여.....
이야. 요즘시대도 90세가 살기 힘든데 그시대에 90세면 지금으로 따지면 130세 정도 느낌이네
지나가던 효령대군파 18대손입니다
같은 부모지만 양녕 효령 세종보면 참 각양각색인듯
사주가 다르니까
이방원은 사주가
불이많아
성종 때까지 살았다고? 대단하네~욕심 없는 고요한 삶이 장수 비결 이네
현명하시네~~~
효령대군과 세종은 서로 윈윈 관계였던것 같네요. 세종에게 양녕대군뿐 아닌 효령대군도 있었기에 정신적 의지가 되었을 것이고 효령대군 역시 세종이 없었다면 싫든 좋든 형대신 본인이 왕이 되었어야는데 그랬다면 성격상 스트레스 많이 받아 90살은 커녕 환갑도 못넘겼을듯합니다 ㅎㅎㅎ
90세 장수하시고 9대왕까지 본 산 증인😮😮😮😮
10대 연산군의 탄생과 세자책봉도 봤지요.
전휘안대군파18대손 우리지역도효령대군파후손들이많이요
멋지다!
처음 애기사진 너무 귀엽다❤
효령대군파 자손이신 시어머님께서는 후덕하시고 건강하시고 총명하셔서 93세까지 자손의 자애로운 어른으로 장수하셨음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혈통 때문이었네요. 대군님은 혈육상잔의 아픔을 부처님 전에 빌고 왕자의 난으로 희생된 이들의 왕생 극락을 빌며 생을 마감하신 대단한 분이네요!
스트레스를 많이 안받아서 장수
울 남편은 효령대군 후손인데
욕도 잘하지 누가잇든없든 지 하고 싶은데로 다한다
그럼서 왕손이라는둥 나보곤 무수리라고 그래서 제가
왕손은 무슨 대대손손 하녀 무수리 첩실에 후손 아니냐고?
어찌나 왕손 왕손 해서
저는 이가 갈려요
내 자식도 이씨지만ㅋ 성을 갈아버리고 싶어요 ㅋ
효령대군파 자체가 벼슬도 아니고, 그냥 태어난 것 뿐인데... 스스로가 인간이 되어야죠.
와~~~~
원경황후 아들 효령이 침착
하게 잘큿네요
저시대 태종때 오래살은 후궁들도 다성품좋은분들만 오래살았다는
전 지나가다 들른 효령대군 18대손입니다
그렇죠 정의와 상관없이 나의 안위에 관심이 많으니 장수할 수 있는겁니다 조카가 조카를 죽이는데도 어른으로서 한마디 거들지 않고 오히려 세조의 편에 섰으니 조선시대 꿈꾸기도 힘든 90세 장수를 누렸지요 우리같은 사회정의에 더듬이가 발달한 사람은 이런 권력 투쟁에 편할 수 없지요
인생태평했지. 역모로 누명쓸 위협도없었고.왕족으로 이렇게 태평하게 산 왕족이 또 있었을까.
저 시대상으로는 *90살* 은 장수한 거 맞음
*영조* 도 장수 했지
4형제가 개성이 다 뚜렷한점이 아이러니함
효령대군 23대손입니다(무산부정파)
왕실 어른이 조카를 내치고 왕에 오른 동생(수양)을 그냥 두고 보다니
처세술의 달인이겠죠
수양대군이 조카인데
@@미소지나-m4j수양의 조카는 단종
수양은 효령대군 조카이기도함
연산군을 안보고 간게 신의한수다.
닮고 싶은 분이네요
양녕대군이 세자자리를 내놓게된 사연은 아버지 태종이 외척이득세하면 나라가 망한다고하여 외척들을 모두 죽이는걸보고 처가를 지키기위함도 있었고 동생 세종이 왕제임을 알기에 일부러 망나니짖을하여 페세자가되었다고 합니다
동생 효령대군이 정치에 관심을 갖자 크게 꾸짖으며 충령대군세종이 왕재임을 깨우쳐주니 효령대군은 양녕대군의 뜻을 이해하고 승려가 되었다고 해요
그건 그냥 동화입니다. 양녕대군은 태종이 자신의 어머니의 외가 시람들을 죽일 때 자기 세자 자리를 위해 동의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런 저런 문란한 사건들을 일으켜 태종으로 인해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겁니다. 후에는 세조가 세종의 손자인 단종을 죽이는 걸 적극 찬성하기도 하죠. 심지어 권력욕 없고 불교와 가깝기로 알려진 효령대군도 왕실의 안정을 위해 단종 사사에 동의했다고 하니, 왕실 일에 우리가 아는 동화 같은 사람은 없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효령대군파 18대손입니다
지나가는 성녕대군파(세종의 4째아들) 22대손입니다
태종 4째아들 아닌가요?
광평대군파 16대손입니다 세종대왕 몇째인지 잘 모릅니다
일찍 돌아가셧다고 들엇는데 어찌 후손이 잇는지 다른이에게서 얻은 후손인지 모르겟음
광평대군 21대손 입니다😂
성녕대군 12세에 요절함
근데 성녕대군 후손이라???
이걸보면 성품좋고 근심없는사람이 오래살았다는점 한뷘더 깨디ㅡㅎ습니다
효령대군의 불심으로 태종 이방원의 죄많은 업보가 좀 구원 받았는가? 원경 왕후의 피가 많이 받았는가요 태종은 백정 사람 죽이는 백정
영조대왕 보다 더 장수를 했군😃
성종까지 보셨구나 ㄷㄷ 증손자 뻘이 왕이 되는걸 보셨네
왜 오래 살았는지 알겠네요
멋진 인생
효령이 승자
세조를 막았어야지 그럼 인정
효령대군파다 ㅋ
우상숭배
Infp...?
가족의 화합을 어떻게 도모했다는 건지요? 그냥 야망없이 권력욕심안내고 본인할거하면서 잘살면서 장수한거같은데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세조.예종 성종 9대.
생불
성종까지 봤다니
나는 효령대군 18세손 입니다.
저는 17대손. 울 아들이 강자 돌림인데 강자 돌림이시겠네유
오 그래요 저는 잘 모르지만 저희 엄마가 효령대군 자손인데 몇대손인지는 모르겠어요
성은이씨네요
삥치네
근거 있누??
지랄
정치를 하지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지않으니 장수한듯.
어른이라 불교적인 발전은 공로를 인정할 수 있겠지만 세조에게 단종의 죽음을 간한 양녕 그의 조카가 피비릿내나는 쿠데타로 어른단종을 죽인 모습을 보았을덴데 말한디못하는 비겁이 어른인가요 차라디 후궁의 아들 비녕?군이 운주대에 들어가서 서럽게 울었다는 것이 더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참 양녕은단종을 죽어야 된다고 간했다던데..양녕도 어른인가요
효령대군이 왕이됬어야했음
그럼 단종이 위험한상황이었을때 모하셨습니까 어른이연 어른다운행동을하셨어야죠 몹니까 말도안대는 칭찬하지마세요
원래 왕족은 왕의 명령없이 정치에 일체 관여하면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