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해석을 뒤집은 유물 발견, 백제는 왜 익산이어야 했을까? | 한국사 탐 [반복재생]/YTN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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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1400년 전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서 최후의 선택을 하며 익산 왕궁리에서 새로운 왕도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백제의 비밀이 점차 밝혀지기 시작했고, 대발견으로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사 탐] 백제사의 수수께끼,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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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고구려 #신라 #왕궁리유적 #익산 #백제역사 #대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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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284

  • @H2CO3_h2co3
    @H2CO3_h2co3 2 месяца назад +8

    일제 식민사학으로 도대체 언제까지 거짓된 자료 검증없이 남이 써준 역사만 달달 외울껍니까 역사적 지명들 검증 한번만 하면 다 나오는 사실인데

  • @꾸이-r1i
    @꾸이-r1i 2 месяца назад +33

    어린적 뛰어 놀던 곳이네요.😊 역사적인 가치가 많이 나왔으면 하고 잘 관리했으면 좋겠네요

    • @l9금뉴스-f7g
      @l9금뉴스-f7g Месяц назад

      조선의 정통성을 잊기위한 백제의 성역은 아닐런지~~그래서 기준성 아래

  • @바보2-r4e
    @바보2-r4e 2 месяца назад +11

    9시간짜리 ㄷㄷㄷ 나중에 몰아봐야겠다

    • @goodman49
      @goodman49 Месяц назад

      낙임주의--

    • @룬도리와접대부쥴리
      @룬도리와접대부쥴리 Месяц назад +1

      뇌물처받은 접대부년 아직도 구속안됫냐 이게나라냐 ㅋ줄리야 도리야 뚜껑아 학교갈준비하자:😅😅

  • @김나은-p9i8i
    @김나은-p9i8i 2 месяца назад +17

    우리나라 고대사는 은근 대단한 것 같아요. 조용하게 강한 백제인줄 알았는데, 크게 대단한 백제같아요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2 месяца назад +3

      4국중 가장 약했던게 백제 입니다
      왕권이 워낙 약했던 백제는 사실상 토착세력인 대성팔족에 존속 내내 유린당한 역사 밖에 없죠
      백제왕은 대부분 시해당해 죽었고 매번 수도를 옮겨가며 쫒겼던게 백제 입니다
      한국인들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않고 현대의 지역적,정치적 견해를 고대사에 투영하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 @제임스-w2n
      @제임스-w2n 2 месяца назад +3

      @@deutschland7188 가장 약했던 나라가 고구려왕을 죽였나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제임스-w2n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가 가야,왜 3국 연합으로 신라 쳤는데
      신라가 백제왕 죽였으니 신라는 초초초강대국입니까?
      이런식의 지엽적인 꼬투리 잡는거 부끄럽게 생각하세요

    • @sejinJ
      @sejinJ 2 месяца назад +2

      @@deutschland7188 각 나라가 전성기가 있던게 삼국시대입니다
      백제가 초반엔 재일 강했음
      백제가 고구려 평양까지 먹은건 아세요?
      누가 재일 쎘고 어쩌고 하는건 좀 유치한 발상인듯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2 месяца назад +3

      @@sejinJ 백제가 초반에 어떻게 강했죠?
      초반엔 마한 54국중 소국이 백제였는데요?
      백제가 고구려 평양을 먹어요?
      가상의 역사가 님 머릿속에 있나보죠?
      그리고 강하고 약한건 역사의 본질입니다.
      미국이 강하고 일본이 약했기 때문에 일본이 패망한거고
      일본이 강하고 조선이 약했기 때문에 조선이 식민지배 당한거죠
      이게 유치 합니까? ㅋㅋ 우습네요

  • @jehyunyun1512
    @jehyunyun1512 2 месяца назад +14

    알고보면 역사깊은 익산... 왕궁면도 있지요. 고로 왕궁이 있었다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까움... 이제라도 익산 미륵사지로 이리 오시오~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익산은 왕궁이 아닙니다 고구려 망명정부인 보덕국이죠
      백제왕이 동네 이장도 아니고 왕궁이라기엔 너무 초라해서
      요즘엔 무왕의 별궁이였다고 절충했던데 이거 자체가 웃긴 일입니다

    • @jehyunyun1512
      @jehyunyun1512 2 месяца назад +3

      @@deutschland7188 익산이 왕궁이라는게 아니고 익산에 왕궁면도 있다고... 풍자 형식으로 고로 왕궁이 있었다는 이라고 남긴건데 너무 진지하시네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웃긴건지 설명을 들어보고 싶네요.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2 месяца назад +1

      @@jehyunyun1512 "고로 왕궁이 있었다는.."
      이거 니가 쓴 내용 아닌가요?
      하여간 이상하다니까 ㅉㅉ

    • @jehyunyun1512
      @jehyunyun151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deutschland7188 풍자 형식으로 고로 왕궁이 있었다는 이라고 설명을 했는데 뭐라는거냐. 난독증 있냐? 본인이 이상하니 다른 사람도 이상한줄아네. 글 내용이나 똑바로 처보고 시비털어라 진심 병자도 아니고. 애잔하다~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2 месяца назад

      @@jehyunyun1512 풍자형식 같은 소리하네 어휴 ㅋㅋㅋ 풍자가 뭔지 모름?
      니가 쓴 전체 문장의 맥락과 "왕궁이 있었다는" 내용이 일치하는데 그게 어떻게 풍자가 됨?
      아니면 니가 쓴 내용 자체가 전부 익산을 비꼬는 풍자라는건가?
      야야 됐고 그냥 가라 어휴 ㅋㅋㅋ

  • @정창운-k8y
    @정창운-k8y 2 месяца назад +9

    산적 없지만 조상터 익산군

  • @배이섭
    @배이섭 2 месяца назад +5

    탑신 밑에 전생 언어 풍화되 허공을 날아 금생에 아름다운 🎵노랫가락 이라는 텍스트로 표현을 하였다 라는 것을 ㅡ

  • @김화경-v1o
    @김화경-v1o Месяц назад

    미륵사지탑 옆인가 앞에 있는 두개의 비석인지 솟대인지 무엇인지 아시는 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어려서 살던 곳 집앞에 저런 기둥 두개가 있어서 숨박꼭질하며 놀았는데 뭐였을까 내내 궁궁해요 지금은 집주인이 집을 짓기위해 콘크리트로 봉해버렸지만요 큰 절터였다는 말도 있었구요 등불을 키는 곳이었다 어려서 지명이 장명리였어요

  • @joy__-zb9ud
    @joy__-zb9ud 5 дней назад

    1:18:01

  • @goindol-eu1yo
    @goindol-eu1yo 2 месяца назад +22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이 보시는 위키백과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습니다. 꼭 걸러서 보시길 바랍니다.
    진짜역사는 사서를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 @이불데드
      @이불데드 2 месяца назад

      개소리는 한글로 적지마라
      어디서 감히 세종대왕께 부끄럽게.. 한글로 개소리를 지껄이느냐

    • @피린이
      @피린이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선생님, 누구십니까!!??
      댓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를 하게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dusqhfk-h5m
      @dusqhfk-h5m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여진족,만주족 역사도 한국역사 맞다고 “중국은 하나” 기획란 마오쩌둥 마져 인정했다지요.
      그리고 독일에서는 로마등 유럽을 정벌했던 훈족이 한반도에서 왔다고 한반도인들은 왜 유럽까지 왔는지 독일에서 훈족에 대해 연구하고 있대요.
      헝가리 발음이 [훈]이잖아요.훈족.헝가리에는 순수훈족 혈통마을이 있었는데 이거 교수랑 한국 공영방송이 훈족이랑 한국인 DNA 검사해서 100%했었어요.헝가리사람들은 본인들이 조상 훈족 후예라는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더라고요.
      여진족,만주족 한국계 맞다고 마오쩌둥이 본인이 인정했다는데 한국 친일 사학계에서 한국역사 아니라고 위대한 중국 역사꺼 맞으니까 다 가지라고 거부함ㅋㅋㅋㅋ 미친

    • @나로호발사-y9p
      @나로호발사-y9p Месяц назад +1

      애초에 황건적이 만주를 넘어 한반도까지가서 약탈을 했다??
      우산국은 산새가 험하고 토지가 비옥한땅이라 이사부가 배를 타고가서 정벌하고 중국 대륙에 있는 여진족이 우산국을 정벌하기위해 그 먼곳까지 배를타고간다?
      모든것을 한반도에 끼워맞추면 말이안되는게 너무많죠 ㅋㅋㅋㅋ

    • @팅eL
      @팅eL Месяц назад

      사료만 명확히 분석해야지, 검증도 할수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합치면 맞는것도 있는 틀린것도 있어 엉망이 될터인데, 일반화의 오류를 제대로 보여주는 역사학. 역사는 통계와 합쳐져야 할듯하네요.

  • @thankyou3801
    @thankyou3801 Месяц назад

    백제는 부여 고구려와 고주몽 온조 등 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로 알고있다. 당연히 역사책에서 알듯이 고조선 부여 고구려 우리나라 역사이며. 백제는 전성기를 가장처음 맞이하였고 아름다운 유물도 많다.

    • @itmasspeaker684
      @itmasspeaker684 Месяц назад

      만주 원류고 보면, 마한이 엄청나게 컸다던데..최치원 왈 마한이 고구려였다네요..
      온조가 고주몽 아들이니 맞는말이라 할 수도..

  • @문성철-r4g
    @문성철-r4g Месяц назад +3

    백제가 아니라 마한 이겠지.

  • @스타시퀀스
    @스타시퀀스 2 месяца назад +20

    과연 백제일까? 백제의 흔적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흔한 백제란 이름도 없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백제시장이라든가 백제성이란 구전된 이름이있다

    • @노학래-w6o
      @노학래-w6o 2 месяца назад +6

      맞는 말씀입니다

    • @푸른바다-g1d
      @푸른바다-g1d 2 месяца назад +13

      그건 우리나라에.고려란.지명이.없지만, 러시아.지역에ㅡ고려족이 살고 있는거와 같이 패망한.국가의 유민이 타국에서 자리잡고 살아.이름이.되는 경우가 있는거죠.. 인천에ㅡ차이나타운이.있다고, 인천이 진나라 땅이.됩니까???

    • @레오의꿈
      @레오의꿈 2 месяца назад

      ​@@푸른바다-g1d지랄옆차기하는 개소리하네

    • @이은병-j8j
      @이은병-j8j 2 месяца назад

      @@스타시퀀스 일본에는 일본만 있답니다.

    • @정창운-k8y
      @정창운-k8y 2 месяца назад

      산둥에 백제와 일본족이. 살았다는데 기윈전후

  • @lkmb4483
    @lkmb4483 2 месяца назад +5

    도성 익산과 부여? 너무 가깝다

  • @galsolc
    @galsolc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사택씨 가 주거지라고 이미 발견 됐는데 .또뭐있는것초럼.사택씨는 부여씨 분가 사비 귀족으로 부여왕가와 다시 결혼으로 위세를 떨치다.. 의자왕에게 꾸중듣고 겸손해진 백제 최고 귀족입니다.

  • @초원이네-s8l
    @초원이네-s8l 2 месяца назад +10

    전북 익산 듣는것만으로도 울고싶은단어이다

    • @이은병-j8j
      @이은병-j8j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초원이네-s8l 울면 울산 .

    • @royun1962
      @royun196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울지말고 이리 오시오!

    • @jehyunyun1512
      @jehyunyun1512 2 месяца назад

      ​@@royun1962뭘 아시는분! 👍

    • @koreanum1913
      @koreanum1913 Месяц назад

      김제평야에서 소작농으로 작취당하던 조부님 생각이 많이 나시는 모양이군요. 지주들 갈아엎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원하는 미륵사상이 발달한 이유이지요.

    • @이은병-j8j
      @이은병-j8j Месяц назад

      @@koreanum1913 미륵사상 감언이설 혹세무민 패가망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요. 미륵사상 후천개벽을해서 사람이 죽지않고 영원히 산다나요.

  • @계영배-s1h
    @계영배-s1h Месяц назад

    식민사학 때문에 반도사관이 팽배하다. 대륙 요서백제가 본국이고 나머지는 모두 22개 담로들 이다. 황산도 대륙에, 백마강도, 신라도 대륙 동쪽에 있었다. 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릉은 없다. 오직 무녕왕릉만 발굴되었는데 왜 그 땅을 사서(빌려서) 매장했다고 석판에 썼을까? 그것도 기존 무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이상한 위치에.

  • @itmasspeaker684
    @itmasspeaker684 Месяц назад

    고조선 준왕이 바다건너 익산으로 왔담서...고조선귀족들이 백제중앙으로 진출했고...익산 근처 전주이씨 이성계가 조선 개창한거만 봐도....
    전북은 뭔가 고조선 계승의식이 있는 듯해보임..
    (근데, 조선 유생들 스스로는 소중화로 살았다는게 아이러니)

  • @미제드론
    @미제드론 2 месяца назад +11

    전북 익산 !!!!

  • @user-lh7uc3gz
    @user-lh7uc3gz 2 месяца назад +5

    백제가 중국에 있었다면 신라가 당나라군을 백제땅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요
    당나라는 중국에 있는 백제 본국을 치고 신라는 한반도에 있는 백제 지국을 동시에 공격하면 손쉽게 백제를 나눠먹을 수 있는게 아니었겠냐고
    소정방이 등뒤에 백제 본국을 두고 백제 지국을 치러 왔다는 게 말이냐 막걸리냐

    • @singsket2778
      @singsket2778 2 месяца назад +4

      하고싶은말 정리부터하고올리셈

  • @dreaddeo5978
    @dreaddeo5978 13 дней назад

    왕궁이요? 구청 정도의 규모인데 왕궁? 백제를 무시하네요. 이거 왕궁 아니에요. 사찰에 딸린 건물이에요.

  • @장용하-d6g
    @장용하-d6g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조선의 정통성을 잊기위한 백제의 성역은 아닐런지~~그래서 기준성 아래

  • @yerialishah4724
    @yerialishah4724 2 месяца назад +8

    중국과 교류가아니라 요동은 백제의 땅이었고 해수면상승전엔 서해는 육지였어

    • @이은병-j8j
      @이은병-j8j 2 месяца назад

      @@yerialishah4724 꿈속에서요 ?

    • @패밀리-j3g
      @패밀리-j3g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심하네

    • @KingOfKorea-theGreat
      @KingOfKorea-theGreat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호모사피엔스 시대꺼를 A.D.시대랑 섞으면 어쩌자는건지...

    • @Plant4yourself
      @Plant4yourself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육지까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래전 꽤 오래된 방송이었는데... 지금의 중국 산둥반도에 취재진이 방문하니 중국의 사학자가 취재진을 반기면서 한다는 말이 "당신들이 언젠가는 찾아올 줄 알았다. 산둥반도는 동이족의 나라며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다. 동이족은 당신들의 조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역사학자 이전에도 중국에는 그와 똑같은 말은 한 역사학자들이 있어요.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에도 존재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묻습니까? 다른 나라는 없는 역사마저 왜곡하거나 만들어내는데 너희는 왜 사실마저 거부하고 부정하냐! 고조선을 말하지 않고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하기란 어렵다고 말이죠. 일본은 한국의 민족정기 뿐만 아니라 역사마저 왜곡하고 삭제하고 말살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꾸준히 계획하고 있죠, 독도! 그 끈기와 집념이 무섭습니다. 계획적 범행...
      어쨌든, 언젠가는 모든것이 만천하에 밝혀지겠죠!

    • @이불데드
      @이불데드 2 месяца назад

      @@Plant4yourself
      증거 없으면 모두 개소리일뿐
      증거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황증거라도 되어야하는데
      내가 보기엔 거의 어거지 쓰는 수준이더라
      중국역사 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게 사실이 되는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별별 학자가 다 있는데.. 그놈들 말이 모두 사실이냐??

  • @배이섭
    @배이섭 2 месяца назад +3

    그래서 나는 역사학자 들이 역사를 외곡 말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 세워 사업 말라 하였습니다 ㅡ

  • @길벗-k6b
    @길벗-k6b Месяц назад +1

    불과 1500년전 한반도의 삼국역사는
    가물가물,띄엄띄엄 기억하고
    1800여년전 중국의 삼국역사는
    달달 외우다시피 한 상당수의
    한국남성들~
    게다가 위,촉,오의 역사는 건국 50년도
    안되는 잡국에 불과한데,
    우리의 고구려,백제.신라는 900~1000년 역사를 지닌 위대한
    왕국이지만 우리는 그 역사를 지금도
    너무나 모르고 살고있지 않나?

    • @박종민-e7z
      @박종민-e7z Месяц назад

      위촉오는 소설이니까 달달 외우는거고 ㅎㅎㅎ 한국의 삼국시대 안에 중국삼국시대 겹침.. 1500년 1800년으로 나누면 말이 안되죠

    • @princ2024
      @princ2024 Месяц назад

      高句丽与南朝鲜无关,高句丽国土在中国,最早的国王来自于中国,亡国时国王贵族平民被发配到中国内地。

    • @Sandbox3600
      @Sandbox3600 Месяц назад

      ​@@박종민-e7z 그럼 992년이나 존재한 신라 신라의 후예가 세운 금나라 금나라의 후예가 만든 청나라 이건뭐임?? 그냥 중국대륙을 신라가 계속 지배했다고 봐야하는거아님?? 그래서중국 대륙을 서양권이 부르는 이름이 china 차이나??? 쉬나?? 시나?? 신라??ㅋㅋ그냥shina 아님???

    • @princ2024
      @princ2024 22 дня назад

      @@Sandbox3600 无知,全世界就没几个人知道有韩国这个国家,全世界都知道中国是东方文明的中心

    • @princ2024
      @princ2024 22 дня назад

      中国的历史像满汉全席,朝鲜的历史像泡菜

  • @인천에서운전하는사람
    @인천에서운전하는사람 2 месяца назад +9

    그게.백제유물이란증거는.없잔아...

  • @MESSI_win
    @MESSI_win 2 месяца назад +12

    노 백제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다 백제의 본거지는 지금의 중국 산둥반도 근처

    • @비알리-g8m
      @비알리-g8m Месяц назад

      신라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지 신라 본거지는 흉노! 즉 지금의 중국이지
      기록에도 나오잖아 짱깨야 ㅋㅋ

  • @k천사-i4n
    @k천사-i4n 2 месяца назад +17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나?
    중국에 있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한반도 백제는
    이해불가하다

  • @미응사랑
    @미응사랑 Месяц назад +4

    익산에서 발견된건 백제 호족의 사택씨 유물이 나온거지
    날조하네
    백제 왕가 유물은 익산에서 나온적 없단다 ^^

  • @날라리-l9o
    @날라리-l9o Месяц назад

    저게 현장에 가보면 알겠지만 터만 덩그라니, 돈이 없어 뭐 하나 복원할 수없다는
    지방도시의 한계

  • @truth_in_the_dark-q5i
    @truth_in_the_dark-q5i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래서 이세상엔 백퍼센트라는말은 없다는거임.
    모든것이 맞다고 가르켜도
    그냥 아몰랑하고 다르게 해버릴수도있으니깐.

  • @자유인-h2w
    @자유인-h2w 2 месяца назад

    익산 백제무왕 별궁지가 정확한 용어 아닐까?

  • @itmasspeaker684
    @itmasspeaker684 Месяц назад

    때가 되면 계속 유물 나오겠지....

  • @정원석-f1o
    @정원석-f1o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익산이 다섯 수도중의 하나였겠지...

  • @레고레고-d8y
    @레고레고-d8y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뭐야 9시간??? 보다 잠들어서 자고 나도 안끝나있겠네

  • @218jennypenny
    @218jennypenny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십 몇 년 전에 삼국은 한반도에 없었다라는 책 흥미롭게 읽었는데 뭐가 맞는건지 모르겠음;;

    • @princ2024
      @princ2024 22 дня назад

      南朝鲜的历史就想南朝鲜女人的脸一样假

  • @이충영-d6p
    @이충영-d6p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일본 놈들이 익산을 이리로 만든 뒷배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 @최정홍-t7i
    @최정홍-t7i 2 месяца назад

    대륙백제

  • @user-gs7dw7tq1r
    @user-gs7dw7tq1r 2 месяца назад +7

    한국의 3대산중 하나죠.
    백두산 한라산 익산.

    • @이은병-j8j
      @이은병-j8j 2 месяца назад +1

      @@user-gs7dw7tq1r 안산은 뭐요 ?

    • @user-gs7dw7tq1r
      @user-gs7dw7tq1r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은병-j8j 안산은 안쪽에 있다니까요. ㅋ

    • @화담-o7u
      @화담-o7u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부산은요?

    • @martin.k.conank7172
      @martin.k.conank717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마산도 있는데...

    • @sarang1
      @sarang1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수학 연산도 있음

  • @정재욱-u4s
    @정재욱-u4s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중국의 영향을받아서 그럴것이다?

  • @Hyuchan1002
    @Hyuchan1002 Месяц назад

    원래 촌놈이었던 무왕의 고향 ㅋ

  • @인중용
    @인중용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소설을써라..

  • @user-hk8px4bt8r
    @user-hk8px4bt8r 2 месяца назад

    세종이 지시해 신라,백제 위치 조사 해보라고 했는데 모른다고 보고 했는데 신라,백제 위치를 지금 니들이 어떻게 알아 ? 실제 위치가 산동반도 근처 있었으니 조선 세종때 우리 영토 아니니 모르는게 당연했지

    • @비알리-g8m
      @비알리-g8m Месяц назад

      발굴된 터 유물을 토대로 한거잖아
      단순한 추리가 아니고 빡대가리 새끼야 조선시대 이후에 발견된것들도 많이 있는거 모르냐?ㅋㅋ

  • @백제Korea-w1w
    @백제Korea-w1w Месяц назад

    사택왕후의@[1.618 황금비율]🌏🇰🇷~♧~

    • @백제Korea-w1w
      @백제Korea-w1w Месяц назад

      아름다운 백제의왕궁리

    • @백제Korea-w1w
      @백제Korea-w1w Месяц назад

      李珪和~**~;姜敏求의~🇰🇷~

    • @백제Korea-w1w
      @백제Korea-w1w Месяц назад

      꿈을 유라시안네트워크로
      이루어보리라 고조선의 댠군신화 호피인디언들의 훈민정흠;인류의언어,~

  • @구두회-f4j
    @구두회-f4j 2 месяца назад +10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개소리 좀 그만 해라 백제가 망하고 잔존 세력이 잠시 머문건 몰라도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판타지는 그만 해라

    • @은돌이-f6x
      @은돌이-f6x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럼 무령왕릉도 판타지임?

    • @singsket2778
      @singsket2778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yi7jj9le9t
      그게 무령왕릉이란 증거잇음?

    • @은돌이-f6x
      @은돌이-f6x 2 месяца назад +2

      @@singsket2778 증거 있지. 무령왕의 무덤이라고 친절하게 적혀져 있는 무덤인데 ㅋㅋㅋㅋㅋ

    • @은돌이-f6x
      @은돌이-f6x 2 месяца назад +6

      @@singsket2778 진짜 역사 하나도 모르고 안배우는 사람들의 질문수준이네 ㅋㅋㅋ 무령왕릉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어떻게 발굴했고 이런 일련의 과정 하나도 모르지? ㅋㅋㅋ 그러면서 딴지거는거 봐라 ㅋㅋㅋㅋㅋ

    • @박인성-h5l
      @박인성-h5l 2 месяца назад +2

      백제가 한반도가 아니면 신라도 흉노가 세웠는데 그럼 한반도의 정통성은 고구려가 되고 지금 북한땅인데 니도 한반도 정통성은 아니네

  • @송윤호-p6f
    @송윤호-p6f Месяц назад

    아니다,
    백제는역사속에서만존재한나라다,
    1400년전에사라져버린왕국이다,오늘의사람들과인연이있는듯하게연결해서는않됀다,

  • @seseh7068
    @seseh7068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려시대 건축물인가?

  • @토란-t1g
    @토란-t1g 2 месяца назад

    삼국시대의 유일한 왕궁이라고 하시네요,,,맞습니다,,, 삼국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김로이-k2c
    @김로이-k2c Месяц назад

    엉터리 역사를 ~ 왕궁 , 놀고있네~

  • @플레야데스
    @플레야데스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백제 같은 소리 ㅍ

  • @sl8hf_may
    @sl8hf_may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반도의 백제 흔적은 22담로중 하나 일지는 몰라도 백제 왕이 있던 한성 위례 사비 부여는 아니라 본다. 위치비정도 틀렸다.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중국사인 22담로는 구라야 ㅋ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직도 그 구라를 믿노 ㅋ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리고 중국사인 백제는 중국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일본의 신하 나라였음 ㅋ

  • @배이섭
    @배이섭 2 месяца назад

    사악한 사익을 추구 말라 하였습니다

  • @지니알라딘-w2k
    @지니알라딘-w2k 2 месяца назад +4

    9시간12분
    개구라치네

  • @ongochian
    @ongochian 2 месяца назад +2

    거짓말

  • @김범기-h2u
    @김범기-h2u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직도 조선, 일제 반도 사관이냐....ㅉㅉ
    정신차려라..반도사관 학자들아
    대륙삼국시대의 역사진실을 일반인들도 이젠 다 알아가고 있다...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익산은 임나 지역임 ㅋ

    • @singsket2778
      @singsket2778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여기 정병있노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singsket2778
      전라도 전방후원분 후손 부들부들 ㅋ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singsket2778
      어이 전라왜국 임나들아 정병이 근데 뭐냐? ㅋ 그짝은 희한한 말 잘 쓰더라 ㅋㅋㅋ

    • @YoungAa-cf3on
      @YoungAa-cf3on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흉노족 후손 친일후손놈이
      부들부들 여기와서 지랄싸고 있는지 썩 꺼져라~

  • @그냥김-m5h
    @그냥김-m5h 2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 @비알리-g8m
      @비알리-g8m Месяц назад

      너 경상도가?
      흉노족의 후예야? 지금의 짱개나라
      아니면 선조때 붕가붕가해서 니뽕 dna가 있는건가??ㅋㅋ

    • @doodaebal
      @doodaebal Месяц назад

      백잔이 있었나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2

    백제는 중국사임 ㅋ

    • @singsket2778
      @singsket2778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응 지나족화교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singsket2778
      땅만 팟다하면 다 중국 유물에 다 중국풍 무덤 양식에 심지어 장례 풍습까지 다 중국 도교 사상으로 함 ㅋ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singsket2778
      공주 송산리 고분군만 해도 백프로 다 중국풍 ㅋ 이게 한민족 역사? ㅋ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singsket2778
      응 영가의 난을 피해 중국 한족들이 한반도로 쳐기어들어 와서 세운 중국 한족 괴뢰국 왕조인 백제 ㅋ

    • @Silla_Gates5
      @Silla_Gates5 2 месяца назад

      @@singsket2778
      중국 문헌인 에도 “백가가 바다를 건너왔다” 라고 해서 백제 라는 국호를 지었다라고 나옴 ㅋ 그 바다를 건넌 곳이 바로 중국임 ㅋ

  • @이은병-j8j
    @이은병-j8j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절나두가 잘될 턱이있나.

    • @불씨16
      @불씨16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흉노새끼들은 티가나

    • @yunnasong
      @yunnasong 2 месяца назад

      (정렬 기준을 최신순으로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倭國은 전국시대 초기 100년의 패권 국가인 魏國이 중국 밖에 건설한 분국(分國)이고 倭國은 한국, 일본열도, 산동반도, 남중국, 인도차이나 반도 등 동남아 여러 곳에 건국
      1. 한국의 왜국 : 호남['ᄇᆞᆰᄯᆞᆯ(日本)']+경남[낙동강 이남, 가야(加耶, " 'ᄇᆞᆰᄯᆞᆯ'에 덧붙여 있는 땅'이라는 뜻]
      한국 왜국의 세력범위는 황해도 이남지역이다. 그리고 한국 왜국의 본령은 "호남+경남"이다.
      .[광개토대왕 비문]
      百殘新羅舊時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征討)新羅以爲臣民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
      '백잔(百殘: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백제가 망하여 공주 지역으로 남천해 온 것을 말 함)' 신라는 예로부터 (倭)의 속민이어서 조공하였는데 '왜(倭)'가 신묘년(申卯年)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百殘)을 공파하고 신라를 정벌하여 신하의 백성으로 삼은 까닭에 6년 '병신(丙申)'에 왕이 손수 수군(水軍)을 이끌고 '이잔국(利殘國:'구마나리'의 백제-차현-소백-금강을 잇는 지역으로 이른바 훈요십조의 차현이남 공주강 밖 지역)을 토벌하였다.
      (注 ①백잔(百殘) ; 백제가 망하여 충청지역에 들어 온 것
      ②이잔국(利殘國)='백잔', 이른바 훈요십조의 '차현이남 공주강 밖' 지역을 말하는 구마나리(久麻那利, 차현-소백-금강을 잇는 지역)로 옮겨 온 백제.
      백제의 본령은 황해도(帶方)
      광개토대왕의 남정(南征)은 기원후 396년이다.
      본래 해가 돋는 모양의 금강에서 비롯된 국호 일본(日本(ᄇᆞᆰᄯᆞᆯ))이 한반도의 왜국의 식민지였던 일본을 말하는 왜노국(倭奴國, 倭奴=아이누)을 정복하여 나중에는 일본열도가 왜국이 되었음을 사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구당서]
      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為名
      '日本國'은 倭國의 하나인데 민족이 다르다. 그 나라가 해 모양의 경계 안에 있었으므로 日本이라고 이름을 하였다.
      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改為日本
      또한, 倭國이 스스로 그 나라의 이름이 고상하지 않다 하여 일본으로 고쳤다고 한다.
      或云:日本舊小國,併倭國之地. 倭國者, 古倭奴國也.
      또한, 일본은 옛적에 작은 나라였는데 왜국의 땅을 병탄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왜국(倭國)'이라 함은 옛적 '왜노국(倭奴國)'을 말한다.
      去京師一萬四千裏, 在新羅東南大海中. 依山島而居, 東西五月行, 南北三月行. 世與中國通.'
      경사(京師, 서안)로부터 1만 4천리 거리로 신라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섬들에 의지하여 나라를 이루고 있는데 동서로 5월행 남북은 3월행이다. 세세연연 중국과 통하였다.
      고대에는 "人"과 "奴"를 구별하는데 倭의 건국세력은 중원대륙에서 온 "왜인(倭人)"이고,
      "왜노(倭奴)"는 일본의 원주민인 "아이누(倭奴의 일본식 발음)"족이다. '왜노'는 현재 홋카이도에 소수민족으로 남아 있다.
      반면에 일본의 귀족을 "화족(華族)"이라고 하는 이는 중원대륙에 있는 "화산(華山)" 근처에서 옮겨 왔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
      현재 일본의 주류세력은 [중원대륙]⇒[전남(나주)]⇒[큐슈]로 이동하였음을 특히 유전공학적으로 규명하여 이를 정설로 공인하였다.
      기원후 2세기에 한반도의 남부가 왜국임을 알 수 있는 국내 사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 남대방(南帶方)]
      曹魏時, 始置南帶方郡[今南原府], 故云. 帶方之南, 海水千里, 曰瀚海.
      조조의 위나라 때 비로소 남대방군(南帶方郡; 지금의 남원부(南原府))을 두었기 때문에 남대방(南帶方)이라 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대방의 남쪽은 바닷물이 천 리(千里)나 되는데 한해(澣海)라고 했다 한다.
      [後漢建安中, 以馬韓南荒地, 爲帶方郡, 倭韓遂屬, 是也]
      후한(後漢) 건안(建安) 연간에 마한 남쪽의 먼 땅을 대방군으로 하니, 왜(倭)와 한(韓)이 드디어 여기에 속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부연하면 조조가 세운 위나라(曹魏) 때 왜국의 본령인 호남 지역인 남원(南原)에 치소를 둔 남대방군을 설치하였는데 [ 왜(倭)⊃한(韓:마한, 진한, 변한 ] 인 관계에 있으므로 왜와 한이 함께 '조위(曹魏)'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광한루에는 일정 때까지는 '대방고부(帶方古府)'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사진으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남원이 고대에 한 때는 남한 전체를 관할하는 도성이 된 적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의 전개는 마한(馬韓)의 소국에서 발전한 백제와 진한(秦韓)의 소국에서 발전한 신라, 변한(弁韓)의 소국에서 발전한 가야가 역시 왜국의 속국으로 역사를 전개해 나갔다.
      신라가 왜국의 속국임을 여러 사료로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사료를 옮겨보겠다.
      [양직공도(梁職貢圖) 신라 제기]
      斯羅國本東夷辰韓之小國也. 魏時曰新羅宋時王斯羅其實一也.或屬韓或屬倭國
      '사라국(斯羅國)'은 본래 동이 '진한(辰韓=秦韓)의 소국이었다.
      魏時曰新羅宋時王斯羅其實一也.或屬韓或屬倭國'
      (북)위((北)魏)' 때 신라라 하였고 송나라 때 '사라(斯羅)'라 하였는데 실제는 같은 나라이다. '한국(韓國=마한)' 혹은 왜국(倭國)에 속했다.
      부연하면, '양직공도'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의 남조에 해당하는 양나라(梁) 원제(元帝) 재위 연간 '소역'이 526∼536년 무렵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림으로 그려 해설한 것이다. 그곳에 신라에 대한 기록을 보면 신라가 마한과 왜국에 속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면 백제에 대한 양직공도의 기록을 보겠다.
      [양직공도 백제 제기]
      百濟舊萊夷 馬韓之屬
      백제는 옛날의 래이(萊夷)로, 마한(馬韓)에 속한 나라였다.
      晋末 駒麗略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晋平縣'
      진(西晋 265~316)나라 말기에 '구려(駒麗=고구려)가 요동과 낙랑을 차지하자 백제 또한 요서( 遼西)진평현(晋平縣)을 차지하였다.
      부연하면 백제는 중국 춘추시대 초기까지 존재했던 산동반도 동쪽 끝에 있었던 '래국(萊國)'과 '이국(夷國'의 유민인데 주나라(周國)의 봉국인 제나라에 의해서 점령되자 북쪽으로 가서 부여를 건국하게 되는데 다시 부여의 유민들이 고구려와 백제를 만든다.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요동 동쪽 1천리 밖에 있다고 함은 이를 말하는데 고구려와 백제는 처음에 요동 동쪽의 성읍국(城邑國)으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에 밀려서 유민이 되어 다시 산동반도로 오게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동한(東漢) 말 동탁(董卓)이 권력을 전횡할 때 요동 출신으로 요동태수(遼東太守)에 임명된 공손도(公孫度)의 사위가 된 위구태(爲仇台)가 백제의 유민을 이끌고 황해도(帶方)로 가서 백제를 건국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곳이 본래 마한의 땅이었으므로 마한의 속국으로 한반도의 백제는 역사를 시작한 것이며 이런 관계로 [마한⊃백제]이고, 다시 [왜국⊃마한]이므로 자연히 [왜국⊃백제]의 역사로 전개된 것이다. 즉 [왜국⊃마한⊃백제]의 세력 관계인 것이다.
      '래이(萊荑)'는 기록에 의하면 하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호남에서 나간 배달겨레에 의해서 건국된 대동강 이북의 단군조선이 다시 중원대륙으로 진출하여 상나라(=은나라)가 되었는데 본래 고조선은 78국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대국인 나라로 그 고조선(九麗,九黎)의 소국 중의 한 나라가 래국, 이국이다.
      "백제(百濟)"의 "제(濟)"는 산동반도를 흐르는 황하(黃河)인 "제수(濟水)"에서 기원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즉, 백제는 역사적으로 보면 제나라의 유민인 것이고 백제인의 본래 고향은 산동반도이다. 현재도 고량주로 유명한 산동성 연태시 인근에 '래이'의 옛 유적인 "래이성 유지(萊荑城 遺址)"가 있다.
      백제, 신라가 왜국을 상국(上國)으로 섬겼음을 다수의 사서에서 기록하고 있다.
      [수서(隨書) 왜국전(倭國傳)] - 621년 편찬 -
      新羅 百濟 皆以倭爲大國 多珍物 並仰之 恒通使往來
      신라, 백제 모두 왜를 대국으로 섬겼는데 귀한 물건이 많아 또한 숭앙하였고, 항시 사신을 통하게 해 왕래했다 .

    • @yunnasong
      @yunnasong 2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 신라, 가야, 왜노국(일본열도)는 전라도 왜국(倭國)의 속국
      1. 나주를 도성으로했던 호남의 왜국이 일본열도를 800 여 년 간 간접 통치, 큐슈로 옮겨간 왜국이 한반도 남부를 200 여년 간 간접 통치
      인류최초의 문명발상지, 한국역사, 나아가 인류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 전라도이다.
      인류문명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으로 전하는 곳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이다. 비파형동검의 90%가 출토된 곳이 여수국가산단 지역인데 공단 개발 전에 실시한 매장문화재 조사로 발굴된 것이다. 또한 전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국에 있는데, 전세계 고인돌의 1/3이 전남에 있다. 이러한 청동기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거석문명의 유적이 전남이 인류 최초의 문명발상지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2. 전라도는 단군조선이 아닌 인류최초의 나라 "진국(辰國)"이며 단군조선(=은나라)은 한반도 남부의 진국(辰國)의 번국(藩國)이다.
      한반도 남부지역이 왜국임을 기록한 사서를 보겠다.
      [후한서(後漢書) ]
      '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
      '한(韓)'은 셋인데,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이다.
      '馬韓在西, 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 ⇐ (이 부분을 잘 보기 바람)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으며 54국이며, 그 북쪽은 낙랑(樂浪)과 접하고 남쪽은 왜(倭)와 접한다.
      '辰韓'在東,十有二國,其北與'濊貊'接.
      진한(辰韓=秦韓)은 동쪽에 있으며 12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濊貊)과 접한다.
      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 (이 부분을 잘 보기 바람)
      변진(弁辰=弁韓)은 진한(辰韓=秦韓)의 남쪽에 있으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 또한 왜(倭)와 접하니 모두 78국이다.
      伯濟是其一國焉.
      백제(伯濟)는 그 중 한 나라였다.
      大者萬餘戶,小者數千家,各在山海閒,地合方四千餘里, 東西而海爲限,皆古之'辰國'也. ⇐ (이 부분을 잘 보기 바람)
      큰 나라는 만 여 가, 작은 나라는 수천가였으며 각각 산과 바다를 경계로 하고 있는데, -네모진 모양으로 - 땅의 둘레 길이가 사천 여 리이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경계를 하였으니, 모두 옛날의 진국(辰國)이었다.
      '馬韓'最大,共立其種爲'辰王',都'目支國',盡王'三韓'之地.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마한이 최대이며, 마한인으로 진왕(辰王)을 함께 세웠으며, 도읍은 목지국이니 삼한(마한, 진한 변한) 땅의 총왕이다. 그 모든 나라의 왕은 먼저 모두 마한인이었다.
      初,'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準'後滅絶,'馬韓'人復立爲'辰王'.
      (한나라,BC206~3세기 초) 초기에 (기자)조선 왕 준(準)이 (위)만(滿)에 공파된 바 되어, 그 남은 무리 수 천 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들어가 마한을 공파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 이후에 멸절되어 마한인이 다시 진왕(辰王)이 되었다.
      한국 왜국의 위치를 적은 최초의 사서인 산해경의 기록을 보겠다.
      [산해경(山海經)]
      蓋國在鉅燕南 倭北 倭屬燕'
      '개국(蓋國(=辰國)'이 강한 연나라의 남쪽에 있고 왜(倭)의 북쪽에 있으며, 왜(倭)는 연나라에 속한다.
      (참고 : 중국에서는 고대에 한국을 '개마국(蓋馬國)' '개마한국(蓋馬韓國)' '개국(蓋國)'으로 불렀다 함. 이러한 명칭은 나라에 '개마대산(蓋馬大山)'이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개마대산(蓋馬大山)'을 해석하면 '말 모양의 나라를 덮고 있는 큰 산'이라는 뜻으로 백두산과 백두산을 기점으로 하는 백두대간, 그리고 백두대간에 연결된 한반도의 산맥들이 거꾸로 보면 '말 모양'을 하고 있는 한반도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임. 기자조선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마한(馬韓)'의 국호도 여기에서 유래.)
      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기자)조선이 '열양'(列陽-동서로 흐르는 청천강의 하류지역의 북쪽 땅으로 동쪽 경계는 북남으로 흐르는 청천강의 지류)의 동쪽, 해북(海北- 대동강 이북), (백두)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列陽'은 연나라에 속한다.) - 기원전 300년 경 기록 -
      위의 기록이 기원전 300년 경 기록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요서지역에 있던 기자조선이 이 지역을 을 잃고 후퇴하여 영토가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축소되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년 경의 연나라에 대한 기록을 보겠다.
      [한서(漢書)]
      秦開,爲質於胡,胡甚信之,歸而襲破東胡,東胡卻千餘里,燕也築長城,自造陽至襄平,置上穀、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진개(秦開-전국시대 연나라 장수)는 胡(북방 유목민족)의 인질로 갔었는데 호의 신뢰를 받은 뒤 돌아오자 곧 '동호(東胡-기자조선)'를 습격하여 공파하고 동호를 천 여 리 물리치고 '연(燕)'의 성을 쌓았는데, '조양(造陽- 현재의 辽宁 辽阳市)에서 시작하여 '양평(襄平-현재의 辽宁省 辽阳市)'에 이르렀으며 '상곡(上穀-北京市 延庆县), '어양(漁陽-현재의 北京市 密云县 西南 三十里), '우북평(右北平-현재의 内蒙古 宁城县 西南)' '요서(遼西- 현재의 辽宁 义县西)', '요동군(遼東郡)을 두어 '호(胡)'를 막았다.
      단군조선=은나라=기자조선이다.
      즉, 북한지역에서 시작한 남한의 진국(辰國)의 번국인 단군조선이 중원으로 가서 '은나라'가 되었고 나중에 주나라에 패하여 요서지역까지 밀리는데 이 때 주무왕(周武王)은 축소된 은나라의 국군(國君)으로 기자(箕子)를 봉함으로써 기자조선이 성립되었다.
      기자는 은나라의 29대 군주 문정(文丁)의 아들이고, 30대 군주인 제을(帝乙)과, 비간의 형제이고 은나라 마지막 임금인 '紂王'의 숙부이다.
      기자(箕子)의 뜻은 "기국(箕國)에 봉해진 자작(子爵)인 분"이라는 뜻이다.
      [바이두]
      公元前11世纪周武王建立周朝后,大臣箕子不愿在周朝为官,东逃至箕国。武王就把箕国和孤竹国“周代以之封于箕子”
      기원전 11세기 주무왕이 주나라를 건국후, 대신 기자가 주나라의 관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동쪽으로 도망하여 기국에 이르렀다. 주무왕은 그를 찾아 기국과 고죽국을 기자에게 봉했다.

    • @yunnasong
      @yunnasong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의 전신인 한국 왜국은 맨 처음 호남에 건국
      사학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은 "왜국"이 여기 저기에서 볼 수 있어서 혼란을 겪는다. 그래서 초습자에게는 고대사에 대한 약간의 '팁'이 필요하게 된다.
      [구당서(舊唐書)]
      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
      일본국(日本國)은 왜국(倭國)의 하나인데 종족이 다르다.
      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為名
      그 나라가 해 모양의 경계 안에 있었으므로 日本이라고 이름을 하였다.
      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改為日本
      또한, 왜국(倭國)이 스스로 그 나라의 이름이 고상하지 않다 하여 일본으로 고쳤다고 한다.
      或云:日本舊小國,併倭國之地. 倭國者, 古倭奴國也.
      또한, 일본은 옛적에 작은 나라였는데 왜국의 땅을 병탄하였다고 한다. 왜국이라 함은 옛적 왜노국(倭奴國)을 말한다.
      去京師一萬四千裏, 在新羅東南大海中. 依山島而居, 東西五月行, 南北三月行. 世與中國通. 倭國古倭奴國也.
      京師로부터 1만 4천리 거리로 신라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섬들에 의지하여 나라를 이루고 있는데 동서로 5월행 남북은 3월행이다. 세세연연 중국과 통하였는데, 왜국이라 함은 옛적 왜노국이다.
      부연하면, 해모양의 금강 이남에 있었던 나주를 800년 도성으로 했던 왜국이 본래 아이누(倭奴)의 나라였던 일본열도인 왜노국(倭奴國)을 점령하여 왜국의 영토로 하였는데 나중에 국호를 일본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당회요(唐會要)] 王溥 (922년 ~ 982년) 저술
      倭國古倭奴國也. 在新羅東南. 居大海之中.
      왜국은 옛 왜노국이다. 신라 동남쪽의 대해 가운데 있다.
      北限大海. 西北接百濟. 正北低新羅. 南與越州相接
      북쪽은 대해와 경계하고, 서북쪽은 백제와 접하고 정북은 신라에 다다른다. 남쪽은 월주(越州)와 접한다.
      두번째 문장을 부연하면, 일본열도는 북쪽으로 큰 바다와 경계하고 있고, (큐슈를 기준점으로 보면) 서북쪽 방향의 한반도 영토는 백제와 접하고, 정북쪽 방향으로 가면 신라에 닿아 있다는 말이다.
      즉 도성을 일본열도로 옮겨간 왜국의 한반도 영토는 백제의 남쪽과 신라의 남쪽에 있다는 것이다.월주(越州)는 상하이 인근에 있는 소흥시(紹興市)인데 남중국의 또 다른 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왜국은 대체로 남월(南越)로 보면되는데 현재의 광동성, 광서성, 북베트남을 영토로 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해남도(海南島)와 해남도 인근의 대륙영역이다.
      [한서(漢書)] 반고(班固 32년 ~ 92년) 저술
      “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
      ”낙랑(樂浪)의 해중(海中)에 왜인(倭人)이 있는데 나뉘어서 백 여 국이 되었는데 때때로 와서 헌상하고 (황제를) 알현하였다.
      - 참고 : 박달(朴達, 한자표기가 日本)"= "배달(培達)" =조선(朝鮮)"="낙랑(樂浪)" 등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의 금강 이남의 땅, 즉 호남을 말하는 것임 -부연하면 한국을 '낙랑(樂浪)'으로 보고서 기록한 것인데 '해중(海中)'이라고 부른 곳은 크게는 한반도 남부지역, 좁게로는 호남을 말한다. '해중(海中)'의 뜻은 중국에서 한국을 보면 바다 속의 나라인데 즉, '바다 속에 있는 중국(천자국)'이라는 뜻이다.
      『삼국지(三國志)』 진수(陳壽 233~297) 편찬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왜인(倭人)'이 '대방(帶方)' 동남쪽 '대해지중(大海之中)'에 있다.부연하면 '대해지중(大海之中)'은 역시 한국을 가르킨다.
      『위략(魏略)』
      倭在帶方東南大海中, 依山島爲國, 度海千里, 復有國, 皆倭種.
      '왜국(倭國)'이 대방(帶方,황해도) 동남쪽 대해중(大海中)에 있는데 산도(山島:다도해)에 의지하여 나라를 이루었는데, 바다를 건너 천리를 가면 다시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국 갈래의 나라다.
      [후한서(後漢書)] 범엽(范曄: 398~446) 편찬
      建武中元二年 倭奴國奉貢朝賀 使人自稱大夫 倭國之極南界也 光武賜以印綬.
      건무중원 2년(57)에 - 후한 광무제 - 왜노국이 공물을 바치고 알현했다. 사절은 스스로 대부(大夫)라고 하였는데 왜국의 가장 남쪽 경계이다. 광무제는 인수를 내렸다.
      부연하면, 일본열도인 왜노국의 사신이 조공을 하였는데 이곳은 왜국의 가장 남쪽 경계라는 뜻으로 지금의 큐슈의 북쪽의 일부가 전라도 왜국의 영토였고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열도 즉 왜노국을 간접통치했음을 알 수 있다.
      [양서(梁書)] 636년 완간
      倭者 自云太伯之後 俗皆文身
      왜(倭)는 스스로 태백(太伯 - 오태백) 후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모두 몸에 문신을 새긴다.
      去帶方萬二千餘里 大抵在會稽之東 相去絕遠
      대방(帶方)으로 가면 만 이천 여 리 떨어져 있는데, 크게 봐서 회계(會稽) 동쪽에 있는데. 회계와 왜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부연하면, 주나라의 창업군주인 주문왕(周文王)의 백부인 태백(太伯)을 왜인들은 시조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큐슈)는 대방(황해도)으로 가면 12,000리인데 크게 보면 오늘날 상하이 지역인 '회계(會稽)'의 동쪽에 있는데 이곳은 일본열도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양서 계속...)
      從帶方至倭 循海水行 歷韓國 乍東乍南七千餘里 始度一海 海闊千餘里 名瀚海 至一支國 又度一海千餘里 名未盧國
      대방(帶方)에서 왜(倭)로 가려면 배를 타고 바다를 따라 가야 한다. 한국(韓國)을 지나 때로는 동쪽으로 때로는 남쪽으로 칠천여 리를 가다가 처음으로 바다를 하나 건넌다. 그 바다는 너비가 천여 리인데 이름을 한해(瀚海:남해바다)라고 한다. (바다를 건너면) 일지국(一支國)이 나온다. 또 천 여 리 되는 바다를 하나 건넌다. 미로국(未盧國)이 나온다.
      부연하면, 황해도에서 해안선을 따라 8천리를 가서 천리 바다를 건너면 큐슈의 미로국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미로국에서 다시 3천리를 가면 왜왕의 나라가 있는 곳으로 알려주는데 지금의 간사이지역으로 도쿄를 상정해볼 수 있겠다. 왜국은 처음에 큐슈에 있다가 영토를 확장하여 간사이쪽으로 간 것으로 북상해 간 것을 알 수 있다. - 시대에 따라 '里'의 길이가 다른데 해안을 따라서 황해도에서 부산 정도가 8천리라고 하여 어림잡아 짐작을 하면 됨 -

    • @yunnasong
      @yunnasong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대에 황해도 이남은 왜국(倭國)의 세력범위이며 왜국(倭國)의 본령은 금강이남 즉, 호남
      한반도 왜국의 본령을 알아보겠다.
      [삼국사기 온조왕]
      二十四年秋七月. 王作熊川柵. 馬韓王遣使責讓曰.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其待王不爲不厚. 宣思有以報之. 今以國完民聚. 謂莫與我敵. 大設城池. 侵犯我封疆. 其與義何. 王慙. 遂壤其柵
      24년 7월에 왕은 웅천책(熊川柵)을 축조하니 마한왕(馬韓王)은 사신을 백제로 파견하여 책망하기를, 왕이 처음 강을 넘어 왔을 때는 발들일 곳이 없으므로 내가 (웅천강의) 동북방 100여리의 땅을 갈라주지 아니하였는가. 왕에 대한 대우도 후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이의 보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지금 국가를 이루고 백성이 모이자 우리를 적으로 대하여 성과 해자(垓字)를 크게 설비하여 우리 강토를 침범하니 그 도리인가 하였다. 왕이 부끄러워하며 곧 (웅천)책을 헐었다.) - 이 기록에는 전라도 왜국이 마한으로 기록되어 있음 -
      [일본서기 웅략천황]
      二十年冬, 高麗王大發軍兵, 伐盡百濟.
      이십년 겨울 고려왕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여 진멸하였다.
      二十一年 春三月,天皇聞百濟爲高麗所破以久麻那利賜汶洲王,救汶洲王,救興其國
      21년 봄 삼월, 천황은 백제가 고려에 공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마나리(久麻那利)를 문주왕에게 주어 문주왕을 구하고 그 나라를 구하였다.
      久麻那利者,任那國下 치呼里縣之別邑也. 久麻那利
      (구마나리=공주)는 곳은 임나국(任那國)에 속하는 치호리현의 한 邑이다.)황해도(帶方)를 본령으로 하는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로 망하면 왜국의 천황이 충청지역의 땅을 내어주어 부흥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기록이다.그러면 일본이 건국된 곳의 기록을 보겠다.
      [日本書紀 神代紀 下]
      1.皇孫乃離天磐座...且排分天八重雲 稜威之道別道別而 天降於日向襲之高千穗峯矣.
      황손은 '천반좌(天磐座)'를 떠나서... 천팔중운을 물리치고 그 위엄으로 길을 헤치고 개척하여 일향의 습(日向襲)의 고천수봉(高千穗峯)에 이르렀다.
      旣而皇孫遊行之狀世者 則自 槵日二上天浮橋 入於浮渚在平處(...) 而膂肉之空國 自頓丘覓國行去(...)到 於吾田長屋笠狹之碕矣.
      황손은 환일(槵日)의 두 산 위에 떠있는 다리를 걸어 내려와 평평한 물가에 내려.."여육의 공국(膂肉之空國"의 언덕을 지나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걸어서 오전장옥입협(吾田長屋笠狹)의 굽은 물가에 도착하였다.
      2. 故天津彦火瓊瓊杵尊 降到於日向槵日高千穗之峯... 而膂肉之胸副國 自頓矩覓國行去 立於浮渚在平. 乃召國主事勝國勝長狹而訪之 對曰 是有國也
      그러므로 천진어화경경저존(天津彦火瓊瓊杵尊)은 일향(日向) 환일(槵日)의 고천수(高千穗)의 봉우리에 하강하여..."여육의 흉부국(膂肉之胸副國)의 언덕을 지나 나라를 찾으면서 물가에 있는 평지에 내려섰다. 그래서 그 나라의 수장 사승국승장협(事勝國勝長狹)을 불러서 “나라가 있느냐” 하고 물었다.)
      3. 而立天孫之前 遊行降來 到於日向襲之高千穗 槵日二上峯天浮橋 而立於浮杵在平地 膂肉空國 自頓丘覓國行去~
      천손의 앞에 유행하여 내려와서 일향(日向)에 도착하여 고천수혜(高千穗)와 환일(槵日)의 두 상봉(上峯)의 천부교(天浮橋)를 걸어서 물가 평지에 내려서, "여육의 공국(膂肉空國)" 언덕을 지나 나라를 찾아 나섰다.
      위 기록은 일본의 최초의 천황이 나라를 세우는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이 곳을 보면 '등골뼈의 바깥 쪽에 붙은 살'이란 뜻의 '여육(膂肉)'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보인다.
      첫째 기록 : 膂肉之空國(여육의 공국)
      둘째 기록 : 膂肉之胸副國(여육의 흉부국)
      셋째 기록 : 膂肉空國(여육공국)
      '空國'을 고어로 읽으면 [구무누리]인데 이것이 모음이 교체되어 [구마나리]로 바뀐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공주(구마나리) 일대를 말하는 것이다.
      '구마나리'는 차현-소백-금강이 이루는 구마검처럼 생긴 땅을 말한다.
      훈요십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훈요십조]
      八曰,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여덟째는 차현 남쪽으로부터 공주강 외곽(금강이 북쪽으로 원을 그리면서 흐르므로 외(外)란 외곽 즉 금강의 이북 지역을 말함)은 산의 모양과 땅의 형세가 나란하게 뻗어 내려 등을 거꾸로 하고 있는 모양이라 인심 또한 그러하니, 이곳에 포함된 주군 사람들은...
      ( '下'는 포함된다라는 뜻의 한문의 일반적 서술이다)
      차령-소백산-금강을 이어보면 척추뼈의 아래 부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금강을 척추의 단면으로 보면 금강 이북이 척추의 바깥쪽이다. 그러니 여육의 공국(膂肉之空國)은 "등골뼈 바깥부분에 붙은 살 모양의 공지(空地, 두 나라간 완충지)인 나라"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을 '배달겨레' 'ᄇᆞᆰᄯᆞᆯ족'이라고 하는 여기서 '배달(培는 'ᄇᆞᆰ(日)'의 고어)' 'ᄇᆞᆰᄯᆞᆯ'은 해가 돋는 모양을 하고 있는 금강 이남 즉 호남을 말한다.
      고어로 "ᄯᆞᆯ"은 '계집(女)'과 '뿌리(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배달' 'ᄇᆞᆰᄯᆞᆯ'의 한자표기가 곧 "日本"이다. 금강이남과 낙동강 하류 이남 지역을 핵심지역으로 하는 한국의 왜국(倭國)은 고구려의 남진으로 도성을 나주에서 큐슈로 옮긴 후에 다시 한반도의 남부지역을 회복하여 호남은 '일본(日本)'이 되고 경남의 낙동강 이남 지역은 '가라(加羅)'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국호가 한국에서 나간 것이라고 기록하고 그렇게 가르친다.
      (注: "임나(任羅)"는 행정관인 "사(司"를 파견하고 자치를 허용하는 지역)

  • @sang4414
    @sang4414 Месяц назад

    중국에 있는 백제 신라 역사나 복원 하는 날이 오기를 ....

    • @princ2024
      @princ2024 Месяц назад

      当中国收复朝鲜半岛时你的愿望就会实现

    • @princ2024
      @princ2024 22 дня назад

      可怜的南朝鲜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