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081:422:172:34 족보,가계도가 잘못되었네요. 헨리 7세와 마가렛 튜터는 남매간이 아니라 부녀지간입니다. 마가렛의 아버지가 헨리 7세이지요. 마가렛 튜터의 친 남동생이 헨리 8세가 됩니다. 헨리 7세에게는 친부 에드먼드 튜터와 친모 마가릿 뷰포트 사이에서 낳은 형제자매가 없습니다. 헨리 7세의 부모님은 1455년에 혼인했고 어머니가 헨리 7세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는 장미전쟁중인 1456년에 사망합니다. 헨리 7세(헨리 튜터)는 일명 유복자이지요. 외동 아들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영원한 라이벌은 '메리 스튜어트' 입니다. 두 인물은 동시대를 살았고 라이벌이다 보니 상기 족보에서 보듯이 먼 친척 자매간이라고들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스튜어트의 5촌 고모뻘입니다. 항렬이 다르죠. 형제가 아니라 부모뻘입니다. 즉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1세의 5촌 조카입니다. 고모라 한것은 메리의 아버지의 형제, 즉 아버지 제임스 5세 기준으로 보아서 외삼촌의 딸이니 아버지 제임스 5세와 엘리자베스는 외사촌 남매지간이 됩니다. 아버지의 여자형제를 고모라고 호칭하므로 그냥 고모라고 한겁니다. 잘못된 족보를 놓고 제 설명을 보시면 혼돈만 옵니다. 위키백과 "메리 스튜어트'에 올바른 가계도를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많은 글들과 시중에 나와 있는 서적에도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를 사촌형제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추적해보니 번역상에 실수라고 보여지네요. 영어로 cousin에는 사촌 이외에도 친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서구유럽은 우리처럼 계촌법이 발달하진 못했기에 그냥 촌수가 복잡해지면 먼친척이란 의미에서 'cousin' 단어를 쓰는듯 합니다. 이게 그냥 사촌이라고 번역되다 보니 족보가 꼬이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검토 요청드립니다.
튜더왕조를 깔끔히 잘 정리해 주시는군요ㆍ감사합니다ㆍ 튜더왕조와 스튜어트왕조 사이의 가교 역할에 기여한 '햄릿' 작품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ㆍ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햄릿'은 '(교회가 없는, 보잘 것 없이) 작은 마을'이란 의미도 있으니까요ㆍ 즉, 엘리자베스1세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 하고 '우유부단'하다 자칫 장미전쟁 같은 내란에 또 휩싸이면 영국은 '햄릿(작은 마을)'로 몰락할 것이란 경고를 하는, 당시 지식층들의 우려를 담아낸 시대극이었거든요ㆍ '햄릿' 작품은 실은 당시 스코틀랜드왕이던 제임스6세(나중에 '영국왕 제임스1세')를 잉글랜드 엘리자베스1세 여왕의 후계자로 삼아, 잉글랜드ㆍ아일랜드ㆍ스코틀랜드 3관왕으로 만들어, 제2의 장미전쟁 같은 내전을 막기 위해, 프란시스 베이컨을 중심으로 '대권프로젝트'로 기획, 공연한 '언론 플레이' 내지 일종의 '여론몰이'였습니다ㆍ 오늘날의 영국 역사의 기틀이 잡히는 시기 및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시대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당시 처지를 파악하면 집필의도가 한 눈에 보이는 작품이 '햄릿'입니다ㆍ 간략히 정리하면, 먼저 프랑스 왕위 쟁탈전에 영국이 끼어들어 벌인 '100년전쟁'의 배경이 '잔다르크 이야기' 이고, 이 100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은 다시 영국 왕권을 두고 내전이 벌어지는데 그게 30년간 벌어진 '장미전쟁'이며, 장미전쟁은 두 가문이 결혼을 통해 끝나는데 헨리7세가 집권하게 됩니다(로미오와 쥬리엣)ㆍ 헨리7세의 아들, 헨리8세는 유럽이 종교개혁으로 혼란할 때 교황을 지지한 이래 교황과 밀월을 보냈으나 스페인 공주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 하자 교황에게 이혼신청을 하였다가 거절 당하자 교황과 결별을 선언하고 가톨릭을 금지하고 영국성공회라는 인류역사상 독특한 종교를 만들어 버렸습니다ㆍ 영국 왕이 영국교황을 겸하고, 로마교황을 따르는 가톨릭 교회의 재산을 몰수해 버린 거죠^^ 헨리8세가 죽고 장녀 메리(캐서린 딸)가 즉위하고서 가톨릭으로 복귀하고 성공회ㆍ개신교를 탄압하다가 일찍 죽자 둘째딸 엘리자베스1세 여왕(앤 블린 딸)이 즉위하면서 다시 가톨릭을 금지시키고 영국 성공회로 복귀하면서 영국 국민들은 피바람을 겪게 될 뿐아니라 스페인 무적함대의 공격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ㆍ 이런 배경에서 나온 영화가 '피의 메리 여왕(블러드 메리), 천일의 앤' 등이 있습니다. 메리 여왕이 죽고, 영국국교회(성공회)를 만든 헨리8세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즉위하여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대영제국을 세운 후, 후계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70세가 다 되고, 늙어 골골하면서도 영국왕 계승권 1번 후계자는 스코틀랜드왕 제임스6세이지만, 자신이 처형한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라서 우유부단하게 미루고 있을 때 당대 영국 최고 지식인이었던 경험론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중심의 지식층은 '우유부단형의 전형인 햄릿'을 셰익스피어란 필명으로 ㅡ 셰익스피어가 생존한 건지도 실은 의문이랍니다(서울대 이종숙 교수의 어느 강의에서? ㅡ 집필하여 '당시 최대 언론인 극장'에서 공연하여 "To be(스콧틀랜드왕 제임스6세) or not to be ~"란 대사로 장미전쟁 같은 내전을 막고 동시에 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아일랜드 3국을 통일시키자는 '그랜드 프로젝트'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귀족층ㆍ백성들을 설득시키려는 전략이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란 필명으로 쓴 작품이 '햄릿' 이었습니다^^ 1603년 엘리자베스1세는 임종 자리에서 결국 스코틀랜드 제임스 왕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숨을 거둡니다ㆍ 영국이 3개로 찢어지려는 찰나 극적으로 봉합되고 대영제국은 유지됩니다ㆍ '햄릿' 작품은 이런 역사적 사명을 띠고 집필된 것이지,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을 표현하기 위한 작품이 아닙니다ㆍ기존 평들은 본말을 전도시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유럽 역사상 천재 중 천재라 할 프란시스 베이컨은 1603년 제임스1세 즉위와 동시에 승승장구하고, 단역 배우 셰익스피어는 '글로브 극장'이란 전용극장을 왕실에서 얻어내 승승장구하였습니다ㆍ 제임스1세 즉위로 영국은 내전의 우려가 없이 대영제국의 길로 탄탄대로가 보장된 듯 보였으나 복병이 있었습니다^^ 왕이 호모끼가 있었답니다ㆍ호모 파트너를 버킹엄 공작이라고 평민에게 왕족에게만 주는 작위를 주고 비선실세로 국정을 농단케 하였다는 이야기가 '국방 티브이 토크멘타리 전쟁사'에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ㆍ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당시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비판한 극이었죠ㆍ '리어왕' 작품의 모티브는 서기1500년대 켈트족 신화에서 따왔다는 부연설명이 붙지만 리어왕을 영국왕으로 설정한 건 분명 집필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ㆍ 켈트족 신화를 빙자해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장치를 하고, '영국왕 리어왕'으로 표현해 버킹엄공작의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실리를 취한 설정입니다ㆍ 리어왕 작품이 1608년 출간되었다 하니, 제임스1세 초기거든요ㆍ 젊잖게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은 위험하단 충고를 한 거죠 ^^ 제임스1세는 낭비벽이 심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보다 7배 정도의 돈을 썼다는데 그것도 보석수집에 돈을 물 쓰듯했답니다ㆍ이런 제임스1세의 보물수집 병을 꼬집어, 그리스신화 '미다스왕'을 빗댄 작품이 '미다스왕'입니다ㆍ 제임스1세는 매관매직으로 돈을 모았다는데, 조선말 고종이 혹 여기서 벤치마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3국 간의 내전은 어느 정도 막는 효과가 있었던 제임스1세 즉위였지만 이런 낭비벽과 호모끼로 인해 의회와는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ㆍ 그래서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탄 102명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오늘날 미국의 기반이 됩니다^^ 이 사이에 황태자ㅡ찰스1세ㅡ의 결혼을 통해 재정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국민들에겐 인기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배경에서 '오셀로'란 또 다른 비극 작품이 쓰였졌습니다ㆍ 오늘날 세계의 입헌민주주의ㆍ자유민주주의가 태동하는 배경과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을 심도있게 감상하기 위해서 국방티브이 토전사 영상이 크게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ㆍ
2:02 수장령을 선포한해는 1534년입니다. 법령 제정은 1529년부터 수년간 진행되었으나 의회를 통과시킨후 최종적으로 헨리 8세가 선포한 해는 1534년입니다. 3:50 제인 그레이가 폐위된것은 즉위 9일만인 1553년 7월 19일 이지만 처형된것은 이듬해 1554년 2월 12일 입니다.
잘 봤습니다. 의문점이 하나 생기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바가 맞는지 판단을 좀 내려주세요. 백년전쟁의 발발 원인 중 하나가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영유권 주장때문이었다고 알고있습니다. 이 때도 양모 산업이 사실상 잉글랜드의 기간산업이었기에 플랑드르는 잉글랜드 입장에서 생명줄과도 같았기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양모 수출로 벌어들인 세수가 전체 세수의 절반에 달했다고... 그것도 14, 15세기 이야기더라고요. 영상 속 3:09 '헨리 8세 시기에 양모 산업이 잉글랜드의 기간산업으로 발전했다' 라는 멘트보다는 좀 더 차별화된 멘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보입니다. 예를 들면 '젠트리 계층의 성장,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이전에도 기간산업이었던 잉글랜드 양모 산업이 좀 더 고도화되었다' 라든가 말이죠. 잉글랜드의 밥줄과도 같았던 양모산업은 비단 16세기때부터가 아닌, 이전 수 세기 전부터 계속 유명했으니까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헨리 8세에게 태종이 오버랩되네요. 그 자신도 뛰어난 군주이며 여러 업적을 남겼음에도 자식(조선의 전성기를 이끈 세종대왕과 대영제국의 기틀을 닦은 엘리자베스 1세)이 너무 뛰어나 헨리 8세(혹은 태종)의 최고의 업적은 자식을 낳은 것이다가 되어버린 영웅들 ㅎ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를 보면 항상 얼굴이 너무 하애서 특이하다 생각했었는데, 어릴 땐 천연두에 걸려서 얼굴에 곰보가 있다보니, 그걸 숨기기 위해 화장을 진하게 했다는 썰이 있더군요. 마그나카르타의 본고장 영국답게, 절대왕정도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빠르고, 시민 혁명도 빠르고, 산업혁명도 빠르고, 영국은 뭔가 빠른 게 있는 거 같아요.
0:05 1:08 1:42 2:17 2:34 족보,가계도가 잘못되었네요. 헨리 7세와 마가렛 튜터는 남매간이 아니라 부녀지간입니다. 마가렛의 아버지가 헨리 7세이지요. 마가렛 튜터의 친 남동생이 헨리 8세가 됩니다. 헨리 7세에게는 친부 에드먼드 튜터와 친모 마가릿 뷰포트 사이에서 낳은 형제자매가 없습니다. 헨리 7세의 부모님은 1455년에 혼인했고 어머니가 헨리 7세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는 장미전쟁중인 1456년에 사망합니다. 헨리 7세(헨리 튜터)는 일명 유복자이지요. 외동 아들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영원한 라이벌은 '메리 스튜어트' 입니다. 두 인물은 동시대를 살았고 라이벌이다 보니 상기 족보에서 보듯이 먼 친척 자매간이라고들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스튜어트의 5촌 고모뻘입니다. 항렬이 다르죠. 형제가 아니라 부모뻘입니다. 즉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1세의 5촌 조카입니다.
고모라 한것은 메리의 아버지의 형제, 즉 아버지 제임스 5세 기준으로 보아서 외삼촌의 딸이니 아버지 제임스 5세와 엘리자베스는 외사촌 남매지간이 됩니다. 아버지의 여자형제를 고모라고 호칭하므로 그냥 고모라고 한겁니다. 잘못된 족보를 놓고 제 설명을 보시면 혼돈만 옵니다.
위키백과 "메리 스튜어트'에 올바른 가계도를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많은 글들과 시중에 나와 있는 서적에도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를 사촌형제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추적해보니 번역상에 실수라고 보여지네요.
영어로 cousin에는 사촌 이외에도 친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서구유럽은 우리처럼 계촌법이 발달하진 못했기에 그냥 촌수가 복잡해지면 먼친척이란 의미에서 'cousin' 단어를 쓰는듯 합니다. 이게 그냥 사촌이라고 번역되다 보니 족보가 꼬이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검토 요청드립니다.
튜더왕조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튜더왕조..이야기 영국사..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튜더왕조를 깔끔히 잘 정리해 주시는군요ㆍ감사합니다ㆍ
튜더왕조와 스튜어트왕조 사이의 가교 역할에 기여한 '햄릿' 작품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ㆍ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햄릿'은 '(교회가 없는, 보잘 것 없이) 작은 마을'이란 의미도 있으니까요ㆍ 즉, 엘리자베스1세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 하고 '우유부단'하다 자칫 장미전쟁 같은 내란에 또 휩싸이면 영국은 '햄릿(작은 마을)'로 몰락할 것이란 경고를 하는, 당시 지식층들의 우려를 담아낸 시대극이었거든요ㆍ
'햄릿' 작품은 실은 당시 스코틀랜드왕이던 제임스6세(나중에 '영국왕 제임스1세')를 잉글랜드 엘리자베스1세 여왕의 후계자로 삼아, 잉글랜드ㆍ아일랜드ㆍ스코틀랜드 3관왕으로 만들어, 제2의 장미전쟁 같은 내전을 막기 위해, 프란시스 베이컨을 중심으로 '대권프로젝트'로 기획, 공연한 '언론 플레이' 내지 일종의 '여론몰이'였습니다ㆍ
오늘날의 영국 역사의 기틀이 잡히는 시기 및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시대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당시 처지를 파악하면 집필의도가 한 눈에 보이는 작품이 '햄릿'입니다ㆍ
간략히 정리하면,
먼저 프랑스 왕위 쟁탈전에 영국이 끼어들어 벌인 '100년전쟁'의 배경이 '잔다르크 이야기' 이고,
이 100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영국은 다시 영국 왕권을 두고 내전이 벌어지는데 그게 30년간 벌어진 '장미전쟁'이며, 장미전쟁은 두 가문이 결혼을 통해 끝나는데 헨리7세가 집권하게 됩니다(로미오와 쥬리엣)ㆍ
헨리7세의 아들, 헨리8세는 유럽이 종교개혁으로 혼란할 때 교황을 지지한 이래 교황과 밀월을 보냈으나 스페인 공주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 하자 교황에게 이혼신청을 하였다가 거절 당하자 교황과 결별을 선언하고 가톨릭을 금지하고 영국성공회라는 인류역사상 독특한 종교를 만들어 버렸습니다ㆍ 영국 왕이 영국교황을 겸하고, 로마교황을 따르는 가톨릭 교회의 재산을 몰수해 버린 거죠^^
헨리8세가 죽고 장녀 메리(캐서린 딸)가 즉위하고서 가톨릭으로 복귀하고 성공회ㆍ개신교를 탄압하다가 일찍 죽자 둘째딸 엘리자베스1세 여왕(앤 블린 딸)이 즉위하면서 다시 가톨릭을 금지시키고 영국 성공회로 복귀하면서 영국 국민들은 피바람을 겪게 될 뿐아니라 스페인 무적함대의 공격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ㆍ 이런 배경에서 나온 영화가 '피의 메리 여왕(블러드 메리), 천일의 앤' 등이 있습니다.
메리 여왕이 죽고, 영국국교회(성공회)를 만든 헨리8세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즉위하여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대영제국을 세운 후, 후계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70세가 다 되고,
늙어 골골하면서도 영국왕 계승권 1번 후계자는 스코틀랜드왕 제임스6세이지만, 자신이 처형한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라서 우유부단하게 미루고 있을 때 당대 영국 최고 지식인이었던 경험론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중심의 지식층은 '우유부단형의 전형인 햄릿'을 셰익스피어란 필명으로 ㅡ 셰익스피어가 생존한 건지도 실은 의문이랍니다(서울대 이종숙 교수의 어느 강의에서? ㅡ 집필하여 '당시 최대 언론인 극장'에서 공연하여 "To be(스콧틀랜드왕 제임스6세) or not to be ~"란 대사로 장미전쟁 같은 내전을 막고 동시에 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아일랜드 3국을 통일시키자는 '그랜드 프로젝트'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귀족층ㆍ백성들을 설득시키려는 전략이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란 필명으로 쓴 작품이 '햄릿' 이었습니다^^
1603년 엘리자베스1세는 임종 자리에서 결국 스코틀랜드 제임스 왕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숨을 거둡니다ㆍ 영국이 3개로 찢어지려는 찰나 극적으로 봉합되고 대영제국은 유지됩니다ㆍ
'햄릿' 작품은 이런 역사적 사명을 띠고 집필된 것이지,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을 표현하기 위한 작품이 아닙니다ㆍ기존 평들은 본말을 전도시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유럽 역사상 천재 중 천재라 할 프란시스 베이컨은 1603년 제임스1세 즉위와 동시에 승승장구하고, 단역 배우 셰익스피어는 '글로브 극장'이란 전용극장을 왕실에서 얻어내 승승장구하였습니다ㆍ
제임스1세 즉위로 영국은 내전의 우려가 없이 대영제국의 길로 탄탄대로가 보장된 듯 보였으나 복병이 있었습니다^^
왕이 호모끼가 있었답니다ㆍ호모 파트너를 버킹엄 공작이라고 평민에게 왕족에게만 주는 작위를 주고 비선실세로 국정을 농단케 하였다는 이야기가 '국방 티브이 토크멘타리 전쟁사'에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ㆍ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당시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비판한 극이었죠ㆍ
'리어왕' 작품의 모티브는 서기1500년대 켈트족 신화에서 따왔다는 부연설명이 붙지만 리어왕을 영국왕으로 설정한 건 분명 집필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ㆍ
켈트족 신화를 빙자해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장치를 하고, '영국왕 리어왕'으로 표현해 버킹엄공작의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실리를 취한 설정입니다ㆍ 리어왕 작품이 1608년 출간되었다 하니, 제임스1세 초기거든요ㆍ 젊잖게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은 위험하단 충고를 한 거죠 ^^
제임스1세는 낭비벽이 심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보다 7배 정도의 돈을 썼다는데 그것도 보석수집에 돈을 물 쓰듯했답니다ㆍ이런 제임스1세의 보물수집 병을 꼬집어, 그리스신화 '미다스왕'을 빗댄 작품이 '미다스왕'입니다ㆍ
제임스1세는 매관매직으로 돈을 모았다는데, 조선말 고종이 혹 여기서 벤치마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3국 간의 내전은 어느 정도 막는 효과가 있었던 제임스1세 즉위였지만 이런 낭비벽과 호모끼로 인해 의회와는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ㆍ
그래서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탄 102명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오늘날 미국의 기반이 됩니다^^
이 사이에 황태자ㅡ찰스1세ㅡ의 결혼을 통해 재정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국민들에겐 인기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배경에서 '오셀로'란 또 다른 비극 작품이 쓰였졌습니다ㆍ
오늘날 세계의 입헌민주주의ㆍ자유민주주의가 태동하는 배경과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을 심도있게 감상하기 위해서 국방티브이 토전사 영상이 크게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ㆍ
그렇군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대단합니다 ~~
유럽왕가의 족보는 워낙 난맥상이라 이해하기 어려운데
잘 정리된 영상인거 같습니다. 잘봤어요~
간단명료하게 잘정리되어 이해가 쉽습니다^^
잘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
유~~명한 영국왕과 여왕 이름이 나오니 반갑네요~
항상 푹 빠져서 보게되는~하하하
다음은 어떤 이야기려나 기다려집니다~
다음 이야기는 성적표를 좀 봐야할거 같습니다.~^^
@@justice20000 음~ 그 어떠한 역사라도 이곳에선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기분이랄까요?
기억되는 시간이 살아있는 역사인거처럼~
우와 가계도 사진 보니까 넘 복잡한데 재밌네요 ㅎㅎ
영국 왕조에 관심이 많은데 정말 재밌어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스티스틀어놓고 잡니다.. 얘기를 듣다 잠드는게 요즘 취미 ㅎㅎㅎ
2:02 수장령을 선포한해는 1534년입니다. 법령 제정은 1529년부터 수년간 진행되었으나 의회를 통과시킨후 최종적으로 헨리 8세가 선포한 해는 1534년입니다.
3:50 제인 그레이가 폐위된것은 즉위 9일만인 1553년 7월 19일 이지만 처형된것은 이듬해 1554년 2월 12일 입니다.
헨리 8세 관련된 영화나 이야기들이 참 많죠. 어떤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그냥 나쁜놈 같기도 하고, 여하튼 참 재밌는 왕이었던건 확실한거 같네요. 추진력 하나는 참 끝내줬던 왕ㅎㅎ
네. 여러감정이 드는 인물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절대왕정보다 중앙집권시작이 어울리듯
메리스튜어트랑 메리 1세랑은 다른 사람이고 스코틀랜드 제임스6세는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이고 마가렛 튜더는 헨리 8세의 누이인데 가계도부터 고쳐주세용.
잘 봤습니다.
의문점이 하나 생기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바가 맞는지 판단을 좀 내려주세요.
백년전쟁의 발발 원인 중 하나가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영유권 주장때문이었다고 알고있습니다. 이 때도 양모 산업이 사실상 잉글랜드의 기간산업이었기에 플랑드르는 잉글랜드 입장에서 생명줄과도 같았기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양모 수출로 벌어들인 세수가 전체 세수의 절반에 달했다고... 그것도 14, 15세기 이야기더라고요. 영상 속 3:09 '헨리 8세 시기에 양모 산업이 잉글랜드의 기간산업으로 발전했다' 라는 멘트보다는 좀 더 차별화된 멘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보입니다. 예를 들면 '젠트리 계층의 성장,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이전에도 기간산업이었던 잉글랜드 양모 산업이 좀 더 고도화되었다' 라든가 말이죠. 잉글랜드의 밥줄과도 같았던 양모산업은 비단 16세기때부터가 아닌, 이전 수 세기 전부터 계속 유명했으니까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백년전쟁 편에서 말씀드린 것과 비슷하네요. 의견 잘들었습니다. 그렇게 보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튜더스 드라마 재미있게 봤어요^^ 헨리7세 부터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헨리8세 만큼은 확실하게 나옵니다
이거 보고나서 쿠플에서 튜더 봐야지~
헨리 8세에게 태종이 오버랩되네요.
그 자신도 뛰어난 군주이며 여러 업적을 남겼음에도 자식(조선의 전성기를 이끈 세종대왕과 대영제국의 기틀을 닦은 엘리자베스 1세)이 너무 뛰어나 헨리 8세(혹은 태종)의 최고의 업적은 자식을 낳은 것이다가 되어버린 영웅들 ㅎ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를 보면 항상 얼굴이 너무 하애서 특이하다 생각했었는데,
어릴 땐 천연두에 걸려서 얼굴에 곰보가 있다보니, 그걸 숨기기 위해 화장을 진하게 했다는 썰이 있더군요.
마그나카르타의 본고장 영국답게, 절대왕정도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빠르고, 시민 혁명도 빠르고, 산업혁명도 빠르고, 영국은 뭔가 빠른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생각 못해봤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저스티스님 중동역사에서 갑자기 왜 영국역사를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냐요? (역시 짧고 이해하기 쉬운건 좋지만) 이왕이면 중동은 1-2-3 중국역사도 1-2-3 시리즈별로해야 감칠맛이 나는것같습니다,
예시로) 송나라 역사를 주제로 삼은면 거란-금나라 설명이후''전세계를 때려잡던 구국의 제국''이 남송 찾아 오는데 [2부를 기대해주세요 ] 등으로 역사순으로 설명하면 더 궁금증 생겨 감칠맛이 날것같습니다
그런가요..요즘 서부유럽 역사를 너무 안했다는 생각이 좀 들었었습니다.
조만간 중동역사도 또 할 예정이지만, 영국과 프랑스를 왕조별로 쭉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많이 안봐주시면 못하겠지만요...관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inyoke choi님~
블러드 메리 드라이진 더하기 오렌지 쥬스 ㅎ
블러디 메리 아냐고 해서 영국역사 얘기했더니 술 얘기한 거 였음. 그게 그거구나.
헨리 7세의 증손녀를 왕위에 오른지 9일만에 폐위도 아니고 처형이라니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일이네요.
여성에 대한 양성평등이 전무하다고 해도 엄연히 왕손인데.
다시한번 죄송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폐위입니다. 제인그레이 처형부분 설 명시 화면 왼쪽위에 적어놓았습니다.
@@justice20000 네 답변도 잘해주시고 정정 감사합니다.
아서왕 금방 또..결혼..이상하네요
유튜버계의 설민석으로 인정합니다~~
아들 못낳음 다 주거요? ㅜㅜ
현기증님 팬으로 왔다가
마음 무거운 역사를 ㅜㅜ
이단처벌법..ㅠ
대체 생명보다 귀한게 무엇이있습니까
김정은 후계자가 궁금해지네요
엘리자비스 여왕 멋지네요
시민혁명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