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 막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0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격언으로 보인다.
    누가복음의 평행구(눅 8:18) 외에도 여러 곳에서 이런 구절이 발견된다(마 13:12, 25:29, 눅 19:26). 이것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로 할 수 있다.
    첫째는 천국의 비밀과 관련시켜 해석할 수 있다.
    즉 천국의 비밀을 알려고 노력하며 애쓰는 자는 더 많은 비밀을 알게 될 것이고, 관심을 갖지 않고 듣지도 않는 사람은 알고 있는 것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둘째는 남에게 베푸는 사람은 베풀수록 더 많이 보상받고 덤까지 받지만,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잃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나누는 것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라는 역설적 교훈이다.
    셋째는 많은 열매를 맺게하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지만, 나쁜 땅의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겸손하고 말씀에 성실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풍성한 말씀의 열매를 맺어 기쁨을 누리지만, 반대로 편견과 비뚤어진 마음과 생각을 소유한 자는 오히려 현재 지니고 있는 작은 행복까지 빼앗긴다는 심판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사 3:10, 렘 32:19).
    본문에서는 천국 복음과 진리에 대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의미하는 첫 번째 견해가 적절하다.

    (막 4:25)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리스도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그 뿌린 결과가 토지의 여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모든 경우에 씨뿌리는 자와 씨는 다 동일하다.
    그렇게 하심으로 주님께서는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생활 속에서 기대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이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마가복음 4장 12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사야 6장 9~10절 말씀을 재구성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만약 예수께서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경고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사야 6장에서 인용하신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막으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과 마음의 완악함이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다.
      이 진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어떤 종류의 밭이 될지는 각자가 선택한다. 예수님께 자신을 드릴지 아닐지도 모두 스스로 결정한다. 결국, 선택은 각 사람에게 달려있다.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마가복음 4:1~12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마가복음 3:35에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5, 개역개정)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막 3:35).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
      그러나 이미 그분이 마귀에 사로잡혔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그분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똑바로 들어 비밀을 깨달으라 촉구하십니다. (막 4:24~25)
    이는 우리가 복음을 수용하는 마음 자세(그릇)에 대한 교훈으로써 즉 복음을 들을 때 깊고 넓은 영적 통찰력으로 선입견 없이 고집 부리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라 하십니다.
    그러면 그 마음 그릇에 풍족히 채워질 정도로 이해될 것이고 계속해서 더 크게 이해될 것이라 교훈합니다.
    사람이 영적 지각력을 갖고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밝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지닌 각각의 그릇(이해력, 지각력 등)에 따라 예수의 생명력 넘치는 말씀을 매우 풍성히 많이 받기도 하고 매우 적게 받기도 할 것입니다(고후 9:6).
    마자막 시대에 더더욱 영적 세계에서의 '영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링크 :
    ruclips.net/video/YCdUzWlUzrE/видео.htmlsi=MO_2LIWR1chnTXjm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누가복음의 평행구는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눅 8:18)로 표현하였다.
    새번역에서는 ‘너희는 조심하여 들어라’로 번역되어 있고, 공동번역에는 ‘내 말을 명심하여 들어라’로 번역되어 있다.
    이 말은 23절의 격언구와 비슷하게 반복하여 사용한 경고적 문구로 보면 된다.
    즉 똑바로 들어 비밀을 깨달으라는 촉구이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이와 비슷한 문구가 마 7:2과 눅 6:38 등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구절들에서는 주로 타인을 비방하는 일을 삼가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본 구절에서는 21절부터 이어지는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복음을 수용하는 마음 자세(그릇)에 대한 교훈으로 이해된다.
    즉 복음을 들을 때 깊고 넓은 영적 통찰력으로써 받아들인다면 그 마음 그릇에 풍족히 채워질 정도로 이해될 것이고 계속해서 더 크게 이해될 것이라는 교훈이다.
    본 구절을 단지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너희가 남을 재는 그 그릇의 크기로 너희의 크기가 측정될 것이다’이다.
    공동번역에서는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달아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다.
    전체적인 의미는 남에게 행한 것에 따라 보상되는 응보의 개념, 즉 심는 대로 거둔다는 의미가 짙게 깔려 있다(갈 6:7, 고후 9:6).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본문은 사람이 영적 지각력을 갖고서 예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예수에 관한 진리를 밝히 알게 된다는 사실에 역점을 두고 있다.
    각자가 지닌 각각의 그릇(이해력, 지각력 등)에 따라 예수의 생명력 넘치는 말씀을 많이 받기도 하고 적게 받기도 할 것이다(고후 9:6).
    또한 여기서 말하는 복음을 수용하는 데 따른 보상은 대등한 보상이 아니라 ‘더 받으리’라는 표현을 덧붙여 보상의 풍부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영적 세계에서의 영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마 13:12).”
    (막 4:24)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1. 그는 비유로써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의 외식(外飾)과 악행을 견책하셨고
    비유의 말씀으로써 골수를 쪼개는 듯한 진리를 싸셨다.
    2. 만약 그가 노골적으로 질책하셨더라면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즉시 그의 전도사업을 제지 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밀정들이 손을 쓰지 못하게 하시는 한편
    3. 오류가 밝히 드러나도록 진리를 천명(闡明)하셨으므로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그의 교훈으로 유익을 받았다”
    (실물 교훈, 22).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렇게 비유하신 예수님의 진짜 속 마음은?
      계시록 3장 17~19절에 나와 았다고 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17~20, 개역개정)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교훈]
      1. 씨 뿌리는 자의 비유 :
      수확을 위한 시간은 더 길어지고 성공한 경우는 옥토밭 하나만 이라는 사실은 두드러지는 실패의 위험과 함께 이를 넘어서 성공할 때 픙성한 보상이 있음
      2. 예수님의 해설 :
      비유는 현실을 말해 주지만 세부 사항 모두가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풍유이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더러운 것과 악을 버리고 생명의 말씀을 받으라 하신다.
      3.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
      말씀이 숨겨진 것은 그분이 비유로 가르치신 것 때문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밭이 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며 사람 마음의 완악함이 진리를 받지 않게 한다.
      4. 등불과 계량 그릇의 비유 : 높은 곳에 둔 등불이 널리 비추는 것처럼 그분의 진리는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진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자는 더욱 풍성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등불을 켜지 않을 때 이 말로 등잔을 덮어 두거나, 침상 아래 그 등잔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이 ‘말’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왜곡, 단절시키는 세상적인 부와 이익을 암시한다.
      저는 등불을 말 아래에 두고 등경 아래 둔다는 것은 말씀의 빛보다 자아를 높여 빛을 아래에 두어 감추어 버린가는 뜻이라 봅니다)

    • @KMB_SDA_
      @KMB_SDA_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허락되었으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개역개정)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사 6:9~10)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 10~15, 개역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