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는 것중의 하나가 기록인데 기록이 한군데 나와있는것은 서로의 해석이 다르거나 할수 있지만 그기록이 여러군데에서 교차 검증이 된다면 그것은 사실로 보는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이 대전제를 무시하는 역사학자는 역사를 전공할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자신의 소설을 쓸려면 작가를 하면 됩니다... 역사를 해석할때 특히 조심할것은 일본사학자들의 관점입니다..이것은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저들은 한민족의 역사를 아주 왜곡을 많이 한 작자들인데 저들의 의견을 참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우리의 눈과 귀로 듣고 본바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문헌의 기록과 현장에서 문화재나 발굴된 유적을 보면 모든것을 알수가 있습니다...중국사학자들이나 중국역사서도 결코 한민족의 역사를 후하게 평가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오랑캐라고 여긴 집단이 중화민족인데 뭐하러 그들의 역사서에 우리민족이 중국땅을 차지한것을 적어놓겠습니까...오히려 줄여서 쓰면 썼지 제대로 평가해서 써놓지 않습니다..즉 10개군현의 중국땅을 차지해도 2-3군현의 땅을 차지했다는 식으로 기록했을 것이란 말입니다... 역사교육은 반드시 새로이 연구되어야 합니다...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소멸되게 되어 있습니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드시 새롭게 연구되어 잃어버린 강토를 되찾아야 합니다...조선이 중국에 사대로 대하면서 대륙을 활보하던 한민족의 기상이 반도로 쪼그라 들고 말았습니다...조선의 유학자라는 것들이 고구려의 민족정기와 기상을 잃어버리는 쪽으로 행동하고 말았습니다,....그러니 이땅에 아직도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지 않습니까....정말 제대로 된 역사공부와 역사학계에서 친일파 청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MrBolja2 일본이나 중국 사학계는 없는 것도 있게끔 조작하고 우겨대고 하는데, 한국의 사대주의자들은 있는 기록도 무시하고 내 나라가 그럴리 없어, 우린 약소국이야 그렇게 장대한 역사는 사실이 아닐거야, 누군가 잘못 기록했겠지라고 생각하죠. 그런 분들은 중국과 일본의 사학계로부터 고마운 외국인 표창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할겁니다.
4세기 요서경략은 기존의 역사관에서도 정황상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학계에서도 요서지역 부여계 세력과 관련짓는 상당히 재미있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동성왕대 북위와의 전쟁은 정말 미스테리죠. 고구려설이나 싹다뻥설은 사실 역사를 대하는 진지함이 완전히 결여된 억지인데, 그게 학계 주류에서 널리 공인되는 '통설'인게 현실입니다. 이유는 그렇게 봐야 자기들이 편해서인듯 합니다. 1500년 전의 세계란, 현대인의 관념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듯 합니다.
齊 제나라는 언제나 산동에 있는 나라에 붙는 나라이름이죠. 백제의 제(濟)라는 글자는 齊에 앞에 물수변이 붙습니다. 해상으로 뻗어나간 齊나라라는 뜻입니다. 백제는 원래부터 산동반도에 기원합니다. 애초에 한반도에 있던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런걸로 가르치고 비정해서 그렇게 인식되어있을뿐이지만.
꽤 오래전이지만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에는 "백제가 중국 요서지방에 "진출"했었다"라고 단 한구절만 쓰여있었습니다. 당시 국사선생님에게 이 진출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죠. 점령이냐 식민화냐 급 당황하신 국사선생님 그냥 대충 넘겨버리시더군요 왜 "진출"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교과서에 등장했던 것인지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중세 천동설을 믿는 카톨릭세상과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만 단군조선부터 중세조선까지 영토를 한정하려고 하네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이 필요합니다. 박창범교수의 삼국의 일식기록 검증과 sumin Park님의 검증, 김정민박사의 언어학적 접근, 어느 서양여교수의 복식연구, 홍산문화 등 여러 가지 유튜브자료를 합쳐보면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서울사람-x1q 환단고기 안 읽어본 사람들만 이런 말 함 ㅋㅋㅋㅋㅋ 애초에 러시아에서도 부분적으로 인정을 함 ㅋㅋㅋㅋ 바이칼 호 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 국가가 있었고 다민족 연방체였다고... 환단고기의 내용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젤 오래됐고 우리나라가 전세계를 지배했다는 내용이 아님 ㅋㅋㅋㅋㅋ 12개 부족국가 연방체에서 12개 부족 중 하나가 한민족이었다는건데 어떻개 그게 그렇게 되는지 ㅋㅋㅋㅋㅋ
바이칼 호수에서 유래한 민족이 모두 한민족(나람이름 한 한자를 쓰는) 이라는데서 오류가 생기는거지 한민족도 그 갈래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유목민적의 지류로서 언어학적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공통된 것이 많습니다. 당장 홍산문화만 해도 최초라고 그동안 알려진 수메르 문명보다 더 오래 되지 않았나요.
NL 주사파 계열 좌파 학자들은 동이족이 중국 최초의 민족이라고 하더군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4.3 사태 5.18은 아픈역사가 맞지만 재대로된 풀이없이 한없이 감정적으로만 풀어대서 불편합니다 이분처럼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주고 판단은 독자가 할수 있게 하는것이 바른역사를 보게 해주는데 말이죠
고구려가 도읍하던 지역이 한 사군 낙랑지역과 겹치고 낙랑지역 호족들이 추모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 백제파와 일부 동행했다. 남아있던 낙랑세력들이 독자적으로 살아남아 요서쪽으로 이동했고 후에 중국과 무역하던 백제와 만나 강해진 백제의 지배를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요? 백제도 자기 세력의 근거가 요서에 있었다면 요서땅을 차지할 이유가 생길 수 있구요. 그냥 이렇게 상상해봅니다.
3번설과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됨. 백제는 중국과 왜를 잇는 해상국가로서 백제와 우호적이던 나라들은 왜의 자원을 백제를 통해 공급받기 위해 위험성이 따르는 바닷길보다 대륙에 거래처가 있기를 원했고 자연스럽게 요서지방에 백제군이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상단이 있으면 호위무사가 필요하듯 군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고 키우는 군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임). 이런 중계무역의 이권을 노리고 북위가 백제를 굴복시키기 위해 공격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연스럽지 않을까? 멀쩡히 정사기록에 있는 역사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납득이 잘안됨. 또, 북위전쟁 약 10년전에 수도를 고구려에 빼앗겨 북위와 전쟁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요서지방 백제군에 자체적으로 군사가 주둔해 있었다면 이 군사력이 피해를 본 것이 아니기에 반론으로도 가능할 듯.
역사 정립은 일본식민지배하에서 우리나라 역사가 정립되었습니다.이마니쉬류 , 쓰다 소키치, 이병도 이런 살마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정립했죠...팔다리 다 짤랐죠.. 우리나라 역사를 새롭게 정립할 시기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서울대 교수 박창범씨가 백제의 일식 관측 기록 장소가 모두 대륙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을 했죠... 아직은 이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이 없습니다.
증거가 당연히 되죠. 과학적 증거란 그런 위력을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판에서 지문이나 유전자 같은 과학적 증거가 나오면 그 이전의 어떤 주장도 완전히 뒤집히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그런 경우인 것입니다.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아무리 우리가 오래 믿어왔어도, 과학적으로 백제가 산동성에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면 기존의 역사는 뒤집혀야 맞는 것입니다.
@@kisear455 그럼 그 요서는 어딘지 아시나요? 설마 지금의 요서가 사서에 나오는 요서라는 개소리를 믿는 건 아니시겠지요? (인용)단군조선과 高句麗의 초기 강역인 유주를 한서지리지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上谷郡 상곡군) 秦置。莽曰朔调。属幽州。户三万六千八,口十一万七千七百六十二。县十五:沮阳,莽曰沮阴。泉上,莽曰塞泉。潘,莽曰树武。军都,温馀水东至路,南入沽。居庸,有关。雊瞀,夷舆,莽曰朔调亭。宁,西部都尉治。莽曰博康。昌平,莽曰长昌。广宁,莽曰广康。涿鹿(탁록),莽曰抪陆。且居,阳乐水出东,南入沽。莽曰久居。茹,莽曰穀武。女祁,东部都尉治。莽曰祁。下落。莽曰下忠。 (渔阳郡 어양군) 秦置。莽曰通路。属幽州。户六万八千八百二,口二十六万四千一百一十六。县十二:渔阳,沽水出塞外。东南至泉州入海,行七百五十里。有铁官。莽曰得渔。狐奴,莽曰举符。路,莽曰通路亭。雍奴,泉州,有盐官。莽曰泉调。平谷,安乐,ba3c奚,莽曰敦德。犷平,莽曰平犷。要阳,都尉治。莽曰要术。白檀,洫水出北蛮夷。滑盐。莽曰匡德。 (右北平郡 우북평군) 秦置。莽曰北顺。属幽州。户六万六千六百八十九,口三十二万七百八十。县十六:平刚,无终,故无终子国。浭水西至雍奴入海,过郡二,行六百五十里。石成,延陵,莽曰铺武。俊靡,氵垒水南至无终东入庚。莽曰俊麻。薋,都尉治。莽曰裒睦。徐无,莽曰北顺亭。字,榆水出东。土根,白狼,莽曰伏狄。夕阳,有铁官。莽曰夕阴。昌城,莽曰淑武。骊成,大揭石山(대게석산)在县西南。莽曰揭石。广成,莽曰平虏。聚阳,莽曰笃睦。平明。莽曰平阳。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현)。莽曰令氏亭。肥如(비여),玄水东入濡水。濡水(유수)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cb63。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辽东郡 요동군) 秦置。属幽州。户五万五千九百七十二,口二十七万二千五百三十九。县十八:襄平。有牧师官。莽曰昌平。新昌,无虑,西部都尉治。望平,大辽水出塞外,南至安市入海。行千二百五十里。莽曰长说。房,候城,中部都尉治。辽队,莽曰顺睦。辽阳(요양),大梁水西南至辽阳入辽。莽曰辽阴。险渎,居就,室伪山,室伪水所出,北至襄平入梁也。高显,安市(안시),武次,东部都尉治。莽曰桓次。平郭,有铁官、盐官。西安平(서안평),莽曰北安平。文,莽曰文亭。番汗,沛,水出塞外,西南入海。沓氏。 (玄菟郡 현토군) 武帝元封四年开。高句骊,莽曰下句骊。属幽州。户四万五千六。口二十二万一千八百四十五。县三:高句骊,辽山,辽水所出,西南至辽队入大辽水。又有南苏水,西北经塞外。上殷台,莽曰下殷。西盖马。马訾水西北入盐难水,西南至西安平入海,过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玄菟亭。 (乐浪郡 낙랑군) 武帝元封三年开。莽曰乐鲜。属幽州。户六万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万六千七百四十八。有云鄣。县二十五:朝鲜(조선),讑邯,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莽曰乐鲜亭。含资,带水西至带方入海。黏蝉,遂成(수성),增地,莽曰增土。带方(대방),驷望,海冥,莽曰海桓,列口,长岑,屯有,昭明,高部都尉治。镂方,提奚,浑弥,吞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蝉入海,行八百二十里。东暆,不而,东部都尉治。蚕台,华丽,邪头昧,前莫,夫租。 위 한서지리지를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인터넷 자료로 하나하나 검색해 들어가면 고죽성이 있던 요서군 등 모든 지명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 즉 유주(幽州)는 산서성 남부와 북부 하남성 일대에 걸쳐있었다."
그 결정적인 유적의 증거가 바로 요서군에 속한 영지현에 고죽성이 있다는 기록인데, 그 고죽국의 두 왕자 백이.숙제의 묘가 황하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다 꺾여 동쪽으로 흐르는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주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명인 (상곡군) 거용, 창평, 탁록 (북평군) 갈석산 (요서군) 고죽성, 유성, 비여 (요동군) 안시, 요양, 서안평 (낙랑군) 패수, 수성, 대방 등의 지명도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일대에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인용 끝) 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1 그러므로 백제가 건국되었다는 대방의 옛 땅이란 황하 이북에서 찾아야 하고, 나중에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한다는 것은 황하의 남쪽으로 천도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백제의 건국터 자체가 옛 제나라의 땅이었으므로 이름을 백제, 혹은 밝제라고 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이 지역 전체가 요서입니다. 그러므로 백제는 요서에서 건국된 것이 맞고, 후일 장수대제때 하남과 한성 땅을 모두 잃고 신라의 하슬라 땅 지금의 산동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는 데, 이곳이 웅진과 사비입니다.
@@kisear455 개소리를 하도 들어서 이제 진짜를 말해 줘도 개소리로 들리게 됐다면 이미 중증이어서 내가 고쳐주긴 힘들겠네요 ㅎㅎㅎ 아뭏든 한서지리지를 잘 연구해 보면 그게 황하 이북이었다는게 나타나요. 증거 원해서 증거 대주니까 아직도 개소리 중얼대요 ㅎㅎㅎㅎ 아마 한서지리지가 무슨 책인 지도 모를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의 어디가 왜 틀렸는지 지적을 해야지 무조건 상대의 말은 개소리다 그러는 녀석하고는 얘기가 안되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계속 똑같은 소리만 하면 차라리 개랑 얘길 하지 그게 사람이냐 ㅋㅋㅋ 우리집 개도 내가 말하면 무슨 말인지 너보다는 잘 아는 것 같다 ㅋㅋㅋㅋㅋ
최근에 KBS 일요스페셜을 보고 백제의 요서지배설 및 일본 지배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광서 지역에 있는 장족 자치구에 백제허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외에도 백제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ruclips.net/video/lgPeTovH1fI/видео.html
져도 백제가 요서를 점령했다에 일리가있다고생각합니다 이유는 백제를최정성기를 이룩하고 당시 고구려를일시적으로 누르고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게한 근초고왕때 해상길이 융성하고 군사력도강국이였고 문화적융성함과 파급력이 높았습니다 제 추측인대만 백제가 요서를 점령했다면 이유가있을것인대 아마 요서는 중원쪽하고도 멀지않고 자원도 보유하고있으며 또한 당시 북쪽으로 뻐더있는 고구려의 영토를견재하고 중원에 백제가 동북아의 강대국으로 세로이 등장하였음을 과시하는 명분으로도 백제가 구지 요서를점령하였다는 요서경략설에 증거이자 이유가될수있을지 안을까라는 견해적인 의견을 제시해봅니다 그러니 요서점령설이 안니다라고 그리섭블리 단정지을수없습니다 또한 당시 그것은 근초고왕의 마음이 였을수도있게죠 전제군제 체제 형태였으니까요
청화수님의 강의 잘 들어 보았습니다. 요즘 보니 고대사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래는 도장깨기tv 라는 유튜버가 이덕일 선생님의 고대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근거가 없는 잘못된 논리다. 라고 합니다 아래 링크는 이덕일 선생님의 요동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한번 보셔서 좀 더 자세하게 고대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될 수 없다는 영상을 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덕일 선생님의 고대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하는 도장깨기 TV 의 2022년 3월20일자로 업로드 된 영상입니다. @
이 모든논란을 잠재우기위해서는 말 그대로 타임머신을 발명하는 방법밖엔.. 근데 만약 타임머신을 발견한다면 그만큼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의 재정립과정이 지나갈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연구가의 허무함도 공존할거라 생각이 드는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ㅎㅎ 지금까지 위인으로 알고있었던분이 알고보니 흑막이였다거나 지금까지 부정적으로 알고있던 인물이 알고보니 선한사람이었고 위인이었다거나 이런면에서 오는 허무함또한 생길것 같네요 역사라는게 몰라서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르기때문에 더 재밌는학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소서노가 고구려를 탈출해 하얼빈에서 처음으로 백제를 세우고 (처음엔 백제가 아니고 십제였음.즉 열명의 세력이 만든 나라임. 나중에 백제로 이름이 바뀜) 또다시 요서로 이동해서 근거지로 삼았다. 나중에 바다를 건너 미추홀지역으로 와서 한강유역에 또 근거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근초고왕대에 서해바다릃 내해로 삼을 정도로 대륙과 반도간에 육상이동이 가능했으며 이시기 북위나 고구려는 바다가 없었던 나라였다. 백제는 만주에서 세워진 나라이지 한반도에서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다. 나중에 한반도로 옮겨온 것으로 알고 있음.
백제가 장수태왕한테 털렸다곤하지만 그건 한반도 본진이 털린거고 요서의 근거지는 털리지않고 온전했기에 10년뒤 북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게 아닐까싶네요...실제 장수태왕은 북진정책이 아닌 남진정책을 펼치기위해 평양으로 천도했습니다 요서백제와 선비족과의 싸움에 얽혀 전황이 개판되자 한반도 백제 본진을 쳐 요서에서 까불지마라라는 경고도 준 셈이죠
고구리사 초 략이라는 책을 보시면, 장수대제가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 아들이 대행을 하고 있는 중에 백제의 왕이 "한성 땅을 돌려주시면 영원히 오른 팔이 되어 위나라 잡것들을 저 중원 너머까지 쫒아버리겠다"고 맹세하는 편지가 들어 있습니다. 아주 긴 편지인데, 대단히 흥미로운 편지죠. 아뭏든 이 이후로백제는 위나라와 전투를 벌이게 되고, 그 전장이 된 곳은 등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등주는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할 때 도하 침공했던 곳으로 대청광여도 상에 등성이라고 표시된 일대가 유력합니다. 제가 추정하는 요서의 위치에서 강만 건너면 되는 곳이죠. 그러니 요서는 백제의 건국지이지만, 장수대제 때 뺏겼다가 슬그머니 되찾은 것이 맞습니다. 다만 곧 수나라의 팽창으로 다시 잃고, 그걸 고구리-수나라 전쟁 때 신라가 차지하게 되죠. 백제는 영영 그 땅을 되찾지 못하고, 웅진-사비와 일본 열도에 집중하게 됩니다.
저기 싸운 때는 400년대인 거를 밝히고 있어요... 당연히 의자왕일 때가 아니겠죠... 5호16국 시대를 사람들이 잘 모르고 삼국지를 아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많으니 북위에 대한 설명을 삼국지 시대 위나라 위치 이야기를 한거겠죠... 오해 가능하게 말하시긴 했는데 역사에 조금이라도 상식 있는 사람이면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응?? 영상자체에 의문점이 있는데요... 제가 공시 공부할 때 근초고왕 때 요서를 점령했다고 배웠는데 그럼 요서 지배설은 다들 인정하는 거 아닌가용? 특히 공시의 한국사는 국정교과서 위주로 문제를 내는 것으로 아는데 백제 요서 지배는 인정된 것이고, 산둥반도 지배가 학자간 다툼이 있는 거 아닌가요? 몰라서 물어본 것이니 친절히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현재 중국 위성지도를 보면,,, 만주, 요동, 요서, 중국 동해안 지역이 초록색으로 나타나고, 중국 내륙은 황토색입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초록색 지역을 따라 단군신화가 조상신화로 전해지고 있답니다. 즉.... 그 지역은 애초부터 고조선의 강역이었던거 같습니다. 백제가 일본도 식민지 형태로 일부 경영했는데, 요서지역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 보다 더 용이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가 22담로라고 하는데... 나머지 88개, 100개 채워야 합니다. (저는 역사 전공도 아니고, 잘 몰라요, 그냥 느낌에 그렇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왜 이런말을 막던지느냐? 누군가에게 어떤 새로운 영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각이 열릴수도 있으니까요. 나 자신이 바보스러워 보이더라도... 즉 알면서도 희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대사, 상고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언어학적, 문화인류학적, 유전학적 특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워낙 오래 전 역사이기 때문이죠. 실증사학은 구시대 유물입니다. 쉰내 팍팍 풍기는 고리타분한 유학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친자확인, 혈연확인을 어떻게 합니까? 유전자 검사로 하잖습니까? 이처럼 과학과 학문이 발전함에 따라, 마땅히 혁신적 방안들을 적극적 수단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사실과, 증거를 밝혀내야 합니다. 한국의 역사학계가 변화와 혁신을 등안시하고, 배격한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며, 이런 관행적 적폐는 결국 자멸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올바른 역사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정보가 있어야 올바른 미래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과거의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도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현재 한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들도 현재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른 영상에서 말하신 것처럼, 말도 안되는 주장까지 타당하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일본은 한국을 지배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고 비하했습니다. 그 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국가를 이용한 자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 언어까지 왜곡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은 반공이나 지역 감정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들의 권력과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반한 감정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부폐한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층들은 반일을 내세우기는 어려웠습니다. 자신들이 친일 매국을 한 자들이자, 그 후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폐한 지도층들은 반공 사상을 내세웠고, 자신들에게 거슬리는 이들은 빨갱이 취급하며 제거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내부의 문제를 재일교포들의 탓으로 돌렸던 것처럼, 한국의 부폐한 지도층들은 전라도를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사실 부폐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는 전국적으로 있어 왔지만, 전라도 지역을 차별하면서 다른 지역의 시위는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백제의 역사를 비하하는 주장의 상당수는 지역감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교수나 단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부폐 정치인들이 처벌받지 않고 큰소리 치는 것처럼, 그들의 억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정말 황당한 주장들도 많습니다. 신라가 단군의 정통을 잇는 진짜 한민족이며, 현재 경상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 외에는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지역의 신라와 가야 후손의 반박을 막기 위해서 다른 지역의 후손들은 조선 말에 족보를 산 가짜 혈족이다는 주장과, 왕족의 후손이 이렇게 많을 수 없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말도 안되지만, 한때 방송에서 사실을 확인한 적까지 있었습니다. (범죄 수사에서 유전자 검사를 한 경우 성씨까지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조사해 보니 왕족 등이 더 많은 후손을 남기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의 말까지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조상까지 바꾸는 사람과 논리적인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중에도 서로 혈족 관계에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좁은 한반도에서 혈통을 따지며 서로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겁니다. 족보로는 조상을 나눌 수 있어도, 많은 이들이 멀고 가까운 혈족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모두 한국인이며, 서로 다른 민족이라도 미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를 악용하는 자들이 문제인 거죠.
모든 학문은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게 기본이죠. 사실을 분석해서 이론을 만들고, 이론과 사실이 다르다면 사실을 통해 문제를 찾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나라는 국민이 아닌 특정인이나 단체를 비호하는 이상한 보수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수뇌부가 위험해지자, 그 수족들이 드러나는 활동을 시작한 겁니다. 우리 역사가 잘 나가서 공격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라와 경쟁 관계에 있던 백제의 역사이기에 공격당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사실 지역감정에 휩싸일 이유가 없습니다. 사는 지역이 멀든 가깝든 친척 관계가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Let's Open Our World 라는 채널을 보면 The DNA Journey 라는 게 있습니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DNA 검사를 통해 그 조상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순수 혈통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은 다양한 인종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백인과 흑인이라 해도 혈연 관계에 있곤 했습니다. 한국인은 그 보다 더 긴밀한 관계로 얽혀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 외에는 부정하거나 깍아내리는 사람들의 주장을 직접 찾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들이 근거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실제로 찾아보면 전혀 다른 내용일 때도 많았습니다. 그들 스스로 창작한 내용이라 해도 관련 내용들을 알아보면 왜곡된 경우가 많았구요. 그 사실이 들키면 잠시 잠적했다가, 다시 같은 주장을 하곤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이 들키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학술적인 의견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정인, 특정 단체의 기반 지역을 포섭하기 위해, 그 지역 출신 사람들조차 가짜라고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가야나 신라 왕족의 후손이라도 근대화 과정에서 족보를 사거나 일본과 섞인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자신들의 기반 지역에 현재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순수 혈통이며, 고조선의 후예라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범죄 수사팀에서 DNA 검사를 하면 성씨도 대략적으로 맞출 수 있다고 확인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억지는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영상에 이어서 이야기하신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주장은 특정인과 특정 단체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직접 찾아보고, 상대해 보면 허무하고 황당한 주장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끊임없는 억지와 거짓, 반복에 지쳐서 포기 상태...ㅠㅠ) 중요한 건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역시 피해자라고 봐야할 겁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좋지 않은 과거가 있고, 지금도 문제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이 다툴 이유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부당한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그 나라나 그 나라의 국민이 아닌 소수 지배층이기 때문입니다. 친일파가 아직까지 남아서 이 나라를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일본 역시 전범의 후손들이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싸움을 붙여서 이익을 얻는 이들은 따로 있습니다. 사실을 토대로 다른 추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자체를 왜곡해서 전달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이 아닌 거짓입니다. 그런 주장들은 조금만 알아보면 쉽게 드러나곤 합니다. 거짓임이 분명한 주장들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명백한 거짓말들을 확인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할 때가 많습니다. 근거 자료를 직접 찾아보거나,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시간을 좀 두고 관찰을 하면, 거짓이라 드러난 주장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료를 찾아서 제시하면 입을 다물었다가, 이를 반복하는 것은 사기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백제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이렇게 비판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주장들을 너무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늘 감사합니다. 편안한 하루되세요.
부여계통 후손들의 도움으로 요서지역을 경락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입니다 우선 백제가 남조와 교류를 했는데 갑자기 교류를 했을리는 없을 것이고 그 전부터 네트워킹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 해양기술로 직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서 중국을 갔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중국을 건너가기 위해선 해인선을 타는데 위에 고구려가 있어 불편힌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부여계통 후손들과 손을 잡고 요서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중국과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하나의 가설이라 더 연구를 해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네요
궁금한점이 있는데 누가 답해주실수 있는분이 있으신가요 ㅎㅎ 1. 월주백제설 요서백제설 등이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같이 해석과 관점의 차이를 이용한 국수주의적 관점은 아닐런지? 2. 요서에 백제가 진출한것이 사실이라면(정사에 나오니) 그 시기는 언제까지 일까요? 수당전쟁때 요서백제와 싸웠다는 기록은 본적이 없습니다 3. 백제가 그토록 강성한 나라였다면 무왕 의자왕 대 신라와의 전쟁에서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을까요? 4.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요서백제는 부여의 잔존세력이 고구려에 밀려 요서까지 밀려 터를 잡고 백제와의 끈끈한 동맹을 유지했던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역사는 상상으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선 이 글을 보시고, 이 분의 저널들을 주욱 읽어보세요. 고구리와 백제, 신라가 어디에 있었던 나라들인지 정확하게 아시게 될 겁니다. 그 이후에 님의 질문들에 스스로 답변을 해 보세요. 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1
요즘 국립도서관에서. 이중재선생께서 20여년전에 집필 하신. 상고사의재발견 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유투브에 많은 내용들이 만 습니다. 상고사를 공부 하신분들중에 읽어 보신분들도 많으리라 보는데처음접하고 엄청 혼란 스러워 중간에 그만 보다가 다시 보고 있습니다. ㅋㅋ 처음 공부 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드립니다.
백제가 배타고 일본을 지배했드니 배타고 요서 지배했다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게 거짓이라고해도 남의나라 기록에도 있으니 현재로썬 정설이라고 봅니다. 기록이 거짓이라해도 지배안했다는 반박할만게 없고 그냥 추측일뿐이자나요 하지만 지배했다는 기록은 남아잇으니 ...........
요서경락설은 말도 많고 자타칭 전문가를 자처하는 분들도 많은거 같습니다 사적으로는 이렇게 많은 분쟁 자체가 허구는 아닐거라는 생각입니다 누가봐도 ~뻥이면 아예 대꾸를 안하는 법이라 봅니다 그나저나 역시 청화수님,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중에도 슬쩍 님의 생각이 엿보이는게 하는 기술이 노련하십니다
대륙백제는 백퍼존재했다. 솔직히 22담로를 전라도 지역에만 왕족들을 파견한다는게 말이냐똥이냐 ㅋㅋㅋ 22담로는 한반도가 아닌 해외경락지역에 왕족을 파견한거임. 고려 조선 통일신라 등 어떤 통일왕조도 한반도에 22개씩이나 왕족을 파견한적이 없음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참신한 시선에 항상 감탄하고 듣고 있습니다.
이 채널 너무 잼있엉~~~
역사를 공부하는 것중의 하나가 기록인데 기록이 한군데 나와있는것은 서로의 해석이 다르거나 할수 있지만 그기록이 여러군데에서 교차 검증이 된다면 그것은 사실로 보는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이 대전제를 무시하는 역사학자는 역사를 전공할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자신의 소설을 쓸려면 작가를 하면 됩니다...
역사를 해석할때 특히 조심할것은 일본사학자들의 관점입니다..이것은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저들은 한민족의 역사를 아주 왜곡을 많이 한 작자들인데 저들의 의견을 참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우리의 눈과 귀로 듣고 본바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문헌의 기록과 현장에서 문화재나 발굴된 유적을 보면 모든것을 알수가 있습니다...중국사학자들이나 중국역사서도 결코 한민족의 역사를 후하게 평가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오랑캐라고 여긴 집단이 중화민족인데 뭐하러 그들의 역사서에 우리민족이 중국땅을 차지한것을 적어놓겠습니까...오히려 줄여서 쓰면 썼지 제대로 평가해서 써놓지 않습니다..즉 10개군현의 중국땅을 차지해도 2-3군현의 땅을 차지했다는 식으로 기록했을 것이란 말입니다...
역사교육은 반드시 새로이 연구되어야 합니다...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소멸되게 되어 있습니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드시 새롭게 연구되어 잃어버린 강토를 되찾아야 합니다...조선이 중국에 사대로 대하면서 대륙을 활보하던 한민족의 기상이 반도로 쪼그라 들고 말았습니다...조선의 유학자라는 것들이 고구려의 민족정기와 기상을 잃어버리는 쪽으로 행동하고 말았습니다,....그러니 이땅에 아직도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지 않습니까....정말 제대로 된 역사공부와 역사학계에서 친일파 청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른 시간부터 감사합니다. 덕분에 늘 많이 배워갑니다
너무 잘 보았습니다
차운전하며 리딩북 듣다가
요즘은 청화수님 영상 듣는 것이 즐거움
북위가 바다를 건너 백제와 전투를 벌였다? 그시대 선박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데 북위가 한반도 백제를 치려면 고구려 연안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고로 대륙벡제가 타당성이 더 있어 보인다. 여러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굳이 대륙백제 산라를 부정하는 이유가 무언가?
백제가 신라와 당의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망했기 때문에 그 역사와 실록 등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축소되어 전해지는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구려도 물론이구요.
오
내가 어떤 신념을 갖는 다는 것은 중요하다. 의심하고 또 검증해서 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의심만 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라. 어짜피 역사는 역사가의 해석이다.
한국도 아닌 중국의 정사 여러 곳에 백제 기록이 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MrBolja2 일본이나 중국 사학계는 없는 것도 있게끔 조작하고 우겨대고 하는데, 한국의 사대주의자들은 있는 기록도 무시하고 내 나라가 그럴리 없어, 우린 약소국이야 그렇게 장대한 역사는 사실이 아닐거야, 누군가 잘못 기록했겠지라고 생각하죠. 그런 분들은 중국과 일본의 사학계로부터 고마운 외국인 표창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할겁니다.
@@MrBolja2 한두개도 아니고 여러사서에서 오기를 한다고요? 일식기록으로보면 고구려 신라 백제는 대륙으로 나온답니다.당연한거겠지만 우리는 대륙에서 사작해서 한반도로온거라생각합니다.
@@심심-p3k9y저희집안도 그렇고 청주한씨 시조도 지금 중국땅인 번조선 단군이 시조구 여럿 넘어왔죠
병신ㅋ
지랄들을 한다 진짜;
잘듣고 잘보구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4세기 요서경략은 기존의 역사관에서도 정황상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학계에서도 요서지역 부여계 세력과 관련짓는 상당히 재미있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동성왕대 북위와의 전쟁은 정말 미스테리죠. 고구려설이나 싹다뻥설은 사실 역사를 대하는 진지함이 완전히 결여된 억지인데, 그게 학계 주류에서 널리 공인되는 '통설'인게 현실입니다. 이유는 그렇게 봐야 자기들이 편해서인듯 합니다. 1500년 전의 세계란, 현대인의 관념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듯 합니다.
齊 제나라는 언제나 산동에 있는 나라에 붙는 나라이름이죠. 백제의 제(濟)라는 글자는 齊에 앞에 물수변이 붙습니다. 해상으로 뻗어나간 齊나라라는 뜻입니다. 백제는 원래부터 산동반도에 기원합니다. 애초에 한반도에 있던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런걸로 가르치고 비정해서 그렇게 인식되어있을뿐이지만.
백제 100개의 제국을 거느린나라라는 뜻도있죠 ㅎㅎ 제후국 ㅎㅎ
꽤 오래전이지만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에는 "백제가 중국 요서지방에 "진출"했었다"라고 단 한구절만 쓰여있었습니다.
당시 국사선생님에게 이 진출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죠. 점령이냐 식민화냐 급 당황하신 국사선생님 그냥 대충 넘겨버리시더군요
왜 "진출"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교과서에 등장했던 것인지
아마 대륙백제는 배운적도 없는 개념이라서 모르는걸 물어보니 당황스럽죠 진출을 외우기만 했을 뿐 정확히 무슨뜻인지 알아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듯
@@gungyeah 대륙백제 같은 사이비 역사를 가르칠 순 없자나요
선생이 식민사학을 못벗어나는군요. 있는 기록인데 말이죠.
@@김원휘-t5m사이비라기엔 기록이 너무 많죠.
@@김원휘-t5m 사이비 이러고 자빠졋네 ㅋㅋ
이번에 올라온 낙랑편 보면서 백제 요서 지배설이 궁금했는데 영상이 있네요ㅎㅎ 오늘도 잘보고 가겠습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중세 천동설을 믿는 카톨릭세상과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만 단군조선부터 중세조선까지 영토를 한정하려고 하네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이 필요합니다.
박창범교수의 삼국의 일식기록 검증과 sumin
Park님의 검증, 김정민박사의 언어학적 접근, 어느 서양여교수의 복식연구, 홍산문화 등 여러 가지 유튜브자료를 합쳐보면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Russell의 명언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말씀이 제일 솔깃하네요... 돌맹이와 갈대...
몽골이 세계를 경영했다는 사실이 믿어 지지 않치만 사실아니냐.
그렇게 치면 세상 모든 나라가 세계 경영했다고 할 듯. 몽골은 세계가 인정하지만 환단고기는 한국에서 몇천명만 물고 빠는 것이 현실
@@서울사람-x1q 환단고기 안 읽어본 사람들만 이런 말 함 ㅋㅋㅋㅋㅋ 애초에 러시아에서도 부분적으로 인정을 함 ㅋㅋㅋㅋ 바이칼 호 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 국가가 있었고 다민족 연방체였다고... 환단고기의 내용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젤 오래됐고 우리나라가 전세계를 지배했다는 내용이 아님 ㅋㅋㅋㅋㅋ 12개 부족국가 연방체에서 12개 부족 중 하나가 한민족이었다는건데 어떻개 그게 그렇게 되는지 ㅋㅋㅋㅋㅋ
바이칼 호수에서 유래한 민족이 모두 한민족(나람이름 한 한자를 쓰는) 이라는데서 오류가 생기는거지 한민족도 그 갈래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유목민적의 지류로서 언어학적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공통된 것이 많습니다. 당장 홍산문화만 해도 최초라고 그동안 알려진 수메르 문명보다 더 오래 되지 않았나요.
항상 영상으로 배우고있습니다!!
만일 말이죠, 여러가지 상상을 해볼수도 있으니....그 당시 북위와 고구려/백제 사이에 존재하던 황해가 아주 작았거나 없었다면 말이 될 지도 모릅니다.
식민사학 또는 기존의사학은 일차사료 즉 저시기의 사료를 많이부정하더라구여ㅋㅋ 좀만 영토가크고 좀 잘나갔다고하면 환빠니 뭐니 이상한사람으로 몰아가구여ㅋㅋ 참 안타깝네여 분명 저런 사료들이 있음에도 위서니 뭐니하며 연구조차 안하니 쩝
좋은 말씀, 좋은 관점 감사드립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니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네요.
지금 6시간 째 여러 영상 시청중...ㅎㅎ
아주 잘 들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목소리좋으심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기재된 천문일식기록을 근거로 최적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발해만 유역으로 나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명확해 지죠~
재밋게 봤습니다. 다은편도 기대할께요.
식민사관, 반도사관이 주입식 학자들이 무섭죠....맞습니다..적어도 환타지가 아닌 역사서를 중심으로 나온 사실에 대해서 견해가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학지들은 절대로 뛰어들지 않죠. 자신들의 지식으로 현재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그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을까요?
NL 주사파 계열 좌파 학자들은 동이족이 중국 최초의 민족이라고 하더군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4.3 사태 5.18은 아픈역사가 맞지만 재대로된 풀이없이 한없이 감정적으로만 풀어대서 불편합니다 이분처럼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주고 판단은 독자가 할수 있게 하는것이 바른역사를 보게 해주는데 말이죠
@@심슨-n2f 중국인들이 은나라(상나라)를 자신들의 시조로 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동이족이라고 보는 설도 있고요.
지금 우리가 배웠던 삼국시대 역사와 지도등등 누구에 의해 그렇게 기록이 되었는지부터 알아보았으면 하네요.
굳.좋아요.
북경지역 산동성 부근에 백제가 없었다면 ,
저런기록이 나올수가 있나?
이건 사실이라봐야겠네요
성지순례하고 갑니다.
써 있는거는 좀 진지하게 살펴봐야지요. 써있는거 츨토해서 나오는거 로 일관은.정말 문제죠.
그리고 국뽕들 얘기 많이 하는데.
이.나라가 언제 국뽕한적 있었는지!
비하하기 바빴지
고구려가 도읍하던 지역이 한 사군 낙랑지역과 겹치고 낙랑지역 호족들이 추모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 백제파와 일부 동행했다. 남아있던 낙랑세력들이 독자적으로 살아남아 요서쪽으로 이동했고 후에 중국과 무역하던 백제와 만나 강해진 백제의 지배를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요?
백제도 자기 세력의 근거가 요서에 있었다면 요서땅을 차지할 이유가 생길 수 있구요.
그냥 이렇게 상상해봅니다.
하 백제 잘나갈때 중국쪽을 더 경영했어야 했는데 땅도 좀 더 확장하고 아쉬워 아쉬워
3번설과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됨. 백제는 중국과 왜를 잇는 해상국가로서 백제와 우호적이던 나라들은 왜의 자원을 백제를 통해 공급받기 위해 위험성이 따르는 바닷길보다 대륙에 거래처가 있기를 원했고 자연스럽게 요서지방에 백제군이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상단이 있으면 호위무사가 필요하듯 군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고 키우는 군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임). 이런 중계무역의 이권을 노리고 북위가 백제를 굴복시키기 위해 공격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연스럽지 않을까? 멀쩡히 정사기록에 있는 역사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납득이 잘안됨. 또, 북위전쟁 약 10년전에 수도를 고구려에 빼앗겨 북위와 전쟁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요서지방 백제군에 자체적으로 군사가 주둔해 있었다면 이 군사력이 피해를 본 것이 아니기에 반론으로도 가능할 듯.
역사 정립은 일본식민지배하에서 우리나라 역사가 정립되었습니다.이마니쉬류 , 쓰다 소키치, 이병도 이런 살마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정립했죠...팔다리 다 짤랐죠.. 우리나라 역사를 새롭게 정립할 시기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서울대 교수 박창범씨가 백제의 일식 관측 기록 장소가 모두 대륙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을 했죠... 아직은 이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이 없습니다.
증거가 당연히 되죠. 과학적 증거란 그런 위력을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판에서 지문이나 유전자 같은 과학적 증거가 나오면 그 이전의 어떤 주장도 완전히 뒤집히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그런 경우인 것입니다.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아무리 우리가 오래 믿어왔어도, 과학적으로 백제가 산동성에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면 기존의 역사는 뒤집혀야 맞는 것입니다.
@@kisear455 그럼 그 요서는 어딘지 아시나요? 설마 지금의 요서가 사서에 나오는 요서라는 개소리를 믿는 건 아니시겠지요?
(인용)단군조선과 高句麗의 초기 강역인 유주를 한서지리지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上谷郡 상곡군) 秦置。莽曰朔调。属幽州。户三万六千八,口十一万七千七百六十二。县十五:沮阳,莽曰沮阴。泉上,莽曰塞泉。潘,莽曰树武。军都,温馀水东至路,南入沽。居庸,有关。雊瞀,夷舆,莽曰朔调亭。宁,西部都尉治。莽曰博康。昌平,莽曰长昌。广宁,莽曰广康。涿鹿(탁록),莽曰抪陆。且居,阳乐水出东,南入沽。莽曰久居。茹,莽曰穀武。女祁,东部都尉治。莽曰祁。下落。莽曰下忠。
(渔阳郡 어양군) 秦置。莽曰通路。属幽州。户六万八千八百二,口二十六万四千一百一十六。县十二:渔阳,沽水出塞外。东南至泉州入海,行七百五十里。有铁官。莽曰得渔。狐奴,莽曰举符。路,莽曰通路亭。雍奴,泉州,有盐官。莽曰泉调。平谷,安乐,ba3c奚,莽曰敦德。犷平,莽曰平犷。要阳,都尉治。莽曰要术。白檀,洫水出北蛮夷。滑盐。莽曰匡德。
(右北平郡 우북평군) 秦置。莽曰北顺。属幽州。户六万六千六百八十九,口三十二万七百八十。县十六:平刚,无终,故无终子国。浭水西至雍奴入海,过郡二,行六百五十里。石成,延陵,莽曰铺武。俊靡,氵垒水南至无终东入庚。莽曰俊麻。薋,都尉治。莽曰裒睦。徐无,莽曰北顺亭。字,榆水出东。土根,白狼,莽曰伏狄。夕阳,有铁官。莽曰夕阴。昌城,莽曰淑武。骊成,大揭石山(대게석산)在县西南。莽曰揭石。广成,莽曰平虏。聚阳,莽曰笃睦。平明。莽曰平阳。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현)。莽曰令氏亭。肥如(비여),玄水东入濡水。濡水(유수)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cb63。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辽东郡 요동군) 秦置。属幽州。户五万五千九百七十二,口二十七万二千五百三十九。县十八:襄平。有牧师官。莽曰昌平。新昌,无虑,西部都尉治。望平,大辽水出塞外,南至安市入海。行千二百五十里。莽曰长说。房,候城,中部都尉治。辽队,莽曰顺睦。辽阳(요양),大梁水西南至辽阳入辽。莽曰辽阴。险渎,居就,室伪山,室伪水所出,北至襄平入梁也。高显,安市(안시),武次,东部都尉治。莽曰桓次。平郭,有铁官、盐官。西安平(서안평),莽曰北安平。文,莽曰文亭。番汗,沛,水出塞外,西南入海。沓氏。
(玄菟郡 현토군) 武帝元封四年开。高句骊,莽曰下句骊。属幽州。户四万五千六。口二十二万一千八百四十五。县三:高句骊,辽山,辽水所出,西南至辽队入大辽水。又有南苏水,西北经塞外。上殷台,莽曰下殷。西盖马。马訾水西北入盐难水,西南至西安平入海,过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玄菟亭。
(乐浪郡 낙랑군) 武帝元封三年开。莽曰乐鲜。属幽州。户六万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万六千七百四十八。有云鄣。县二十五:朝鲜(조선),讑邯,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莽曰乐鲜亭。含资,带水西至带方入海。黏蝉,遂成(수성),增地,莽曰增土。带方(대방),驷望,海冥,莽曰海桓,列口,长岑,屯有,昭明,高部都尉治。镂方,提奚,浑弥,吞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蝉入海,行八百二十里。东暆,不而,东部都尉治。蚕台,华丽,邪头昧,前莫,夫租。
위 한서지리지를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인터넷 자료로 하나하나 검색해 들어가면 고죽성이 있던 요서군 등 모든 지명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 즉 유주(幽州)는 산서성 남부와 북부 하남성 일대에 걸쳐있었다."
그 결정적인 유적의 증거가 바로 요서군에 속한 영지현에 고죽성이 있다는 기록인데, 그 고죽국의 두 왕자 백이.숙제의 묘가 황하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다 꺾여 동쪽으로 흐르는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주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명인
(상곡군) 거용, 창평, 탁록
(북평군) 갈석산
(요서군) 고죽성, 유성, 비여
(요동군) 안시, 요양, 서안평
(낙랑군) 패수, 수성, 대방 등의 지명도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일대에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인용 끝)
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1
그러므로 백제가 건국되었다는 대방의 옛 땅이란 황하 이북에서 찾아야 하고, 나중에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한다는 것은 황하의 남쪽으로 천도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백제의 건국터 자체가 옛 제나라의 땅이었으므로 이름을 백제, 혹은 밝제라고 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이 지역 전체가 요서입니다. 그러므로 백제는 요서에서 건국된 것이 맞고, 후일 장수대제때 하남과 한성 땅을 모두 잃고 신라의 하슬라 땅 지금의 산동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는 데, 이곳이 웅진과 사비입니다.
@@kisear455 개소리를 하도 들어서 이제 진짜를 말해 줘도 개소리로 들리게 됐다면 이미 중증이어서 내가 고쳐주긴 힘들겠네요 ㅎㅎㅎ 아뭏든 한서지리지를 잘 연구해 보면 그게 황하 이북이었다는게 나타나요. 증거 원해서 증거 대주니까 아직도 개소리 중얼대요 ㅎㅎㅎㅎ 아마 한서지리지가 무슨 책인 지도 모를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
@@kisear455 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1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의 어디가 왜 틀렸는지 지적을 해야지 무조건 상대의 말은 개소리다 그러는 녀석하고는 얘기가 안되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계속 똑같은 소리만 하면 차라리 개랑 얘길 하지 그게 사람이냐 ㅋㅋㅋ 우리집 개도 내가 말하면 무슨 말인지 너보다는 잘 아는 것 같다 ㅋㅋㅋㅋㅋ
등기부등본에 백제 땅이라고 나옵니다
최근에 KBS 일요스페셜을 보고 백제의 요서지배설 및 일본 지배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광서 지역에 있는 장족 자치구에 백제허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외에도 백제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ruclips.net/video/lgPeTovH1fI/видео.html
임나일본부설은 억지해석에 기반한 개소리지만, 백제요서경락설은 상당히 근거가있군요.
남조가 지어낸거라면 굳이 백제라고 왜함 ㅋㅋ 고구려가 북위 쳤다고 하면 되지
낙양, 장안이 중국의 어디 쯤에 위치해 있는지 보면 중국의 중심 세력이 그리 크지 읺았고 동, 남쪽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너무 재밌네요 지식이 상당하십니다!!
백제가 고구려 건국의 하나의 파벌있었는데 고구려의 빈자리를 차지하는데 뭐가 이상한지... 낙랑도 고구려에 멸망했는데 그러면 백제와 한무리를 이루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이름으로이성우기도드립니다아멘나는구세주,재림예수,미륵불,정도령,진인,하늘의표식입니다아멘
어떻게든 사실을 부정하려들면 .....수십가지도 넘는 억측.추측들이 생산 되는 법입니다.
동진과 백제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건가? 누가 본진인가? 이게 결론이나면 풀리는 문제일듯.
져도 백제가 요서를 점령했다에 일리가있다고생각합니다 이유는 백제를최정성기를 이룩하고 당시 고구려를일시적으로 누르고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게한 근초고왕때 해상길이 융성하고 군사력도강국이였고 문화적융성함과 파급력이 높았습니다 제 추측인대만 백제가 요서를 점령했다면 이유가있을것인대 아마 요서는 중원쪽하고도 멀지않고 자원도 보유하고있으며 또한 당시 북쪽으로 뻐더있는 고구려의 영토를견재하고 중원에 백제가 동북아의 강대국으로 세로이 등장하였음을 과시하는 명분으로도 백제가 구지 요서를점령하였다는 요서경략설에 증거이자 이유가될수있을지 안을까라는 견해적인 의견을 제시해봅니다 그러니 요서점령설이 안니다라고 그리섭블리 단정지을수없습니다 또한 당시 그것은 근초고왕의 마음이 였을수도있게죠 전제군제 체제 형태였으니까요
일본이 돌아갈때 웃었지요
한국은 앞으로 100년은 일어날 수 없다고. 친일교육의 결과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고 웃으며 갔어요
나중에 돌아온다고.
아니라는
증거도
없잖아요
그러하므로
저는 ᆢ 그랫을거라
생각 합니다
전혀 근거 없는거를
기술 했을리는 없을
테니까요!
동이열전 여기에도 백제가 요서지역에 백제군 설치했다 나오네요
소서노가 남부로 떠나자 할때 두개의 루트로 남방했는데
소서노 남부는 한강쪽으로 들어서고 다른 루트는 중국의
위서 남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나 싶다.
멋진영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채널이 이곳 포함해서 딱 두곳 있는데 다른데는 너무 편향적이고 감정적이고 근거없이 주입시키려고 하는 느낌이라 잘안봅니다
백제는 22담로제 실시가 진실이니까. 지금 중국땅에 백제란 마을도 있고 성도 존재 한다
저도 도움을 좀 드리고 싶은데
방법도 모르겠고
마음만 가득 합니다
그래도 광고하나 만은 꼭 봅니다 ㅎㅎ
딸애가 광고보면 좋은거라
하더군요♡♡
청화수님의 강의 잘 들어 보았습니다.
요즘 보니 고대사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래는
도장깨기tv 라는 유튜버가 이덕일 선생님의 고대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근거가 없는 잘못된 논리다. 라고 합니다
아래 링크는 이덕일 선생님의 요동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한번 보셔서 좀 더 자세하게 고대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될 수 없다는 영상을 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덕일 선생님의 고대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하는
도장깨기 TV 의 2022년 3월20일자로 업로드 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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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가 왜 무조건 약했다고 말하나.약했는지 가봤나.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이 모든논란을 잠재우기위해서는
말 그대로 타임머신을 발명하는 방법밖엔..
근데 만약 타임머신을 발견한다면
그만큼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의 재정립과정이
지나갈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연구가의 허무함도 공존할거라
생각이 드는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ㅎㅎ
지금까지 위인으로 알고있었던분이
알고보니 흑막이였다거나
지금까지 부정적으로 알고있던 인물이
알고보니 선한사람이었고 위인이었다거나
이런면에서 오는 허무함또한 생길것 같네요
역사라는게 몰라서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르기때문에 더 재밌는학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소서노가 고구려를 탈출해 하얼빈에서 처음으로 백제를 세우고 (처음엔 백제가 아니고 십제였음.즉 열명의 세력이 만든 나라임. 나중에 백제로 이름이 바뀜) 또다시 요서로 이동해서 근거지로 삼았다. 나중에 바다를 건너 미추홀지역으로 와서 한강유역에 또 근거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근초고왕대에 서해바다릃 내해로 삼을 정도로 대륙과 반도간에 육상이동이 가능했으며 이시기 북위나 고구려는 바다가 없었던 나라였다. 백제는 만주에서 세워진 나라이지 한반도에서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다. 나중에 한반도로 옮겨온 것으로 알고 있음.
요서는 근초고왕때 경략해서
부여모대 동성왕때까지는 확실히 백제 영토였다
백제의 제는 건널제를 쓴다 ..건너왔다는 것이다.
구할제있데요
그런데 저 기록들에 나오는 진나라 시기라는 것이 서진인가요? 동진인가요?
당연히 동진시기입니다. 진나라가 망하고 5호16국과 동진으로 나뉩니다. 5호16국은 북방 유목민족들의 국가입니다. 모용선비, 탁발선비(이 탁발선비족이 북위를 세웁니다), 티벳계통 전진 포함해서요. 동진은 나중에 송->제->양->진으로 바뀝니다. 참조하세요
백제요서경락설은 중국정사에
많이 나오는데 양직공도을
보면 맞는거 같기도하고 아닌거
같기도하교 북위가 고구려가
있는데 어떡해서 공격할수있는지 요서에서 모용선비가있지않나?!
기마족이 어떡해 한반도남부을
공격했나 배 아닌거같고 미치도록 궁금합니다 돌아버리겠습니다
고구려하고 백제는 뿌리도 부여로 같은데, 왜 매 번 치고박고 싸웠나요?
요서경략설에 따르면, 백제가 오죽 고구려를 싫었으면 요서까지 공략해서 차지했나 싶기도 하고요...
뿌리가 같아도 그게 나라가 망하고 새롭게 나라를 세운게 아니라 왕위다툼에 실패하고 나와서 세운 나라라서 그렇죠.
기껏 고대인들이 역사를 잘 남겨줘도 ㅈ같은 자칭 현대 역사학자라는 것들이 억지쓰는게 빡친다.
백제가 장수태왕한테 털렸다곤하지만 그건 한반도 본진이 털린거고
요서의 근거지는 털리지않고 온전했기에 10년뒤 북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게 아닐까싶네요...실제 장수태왕은 북진정책이 아닌 남진정책을 펼치기위해 평양으로 천도했습니다 요서백제와 선비족과의 싸움에 얽혀 전황이 개판되자 한반도 백제 본진을 쳐 요서에서 까불지마라라는 경고도 준 셈이죠
고구리사 초 략이라는 책을 보시면, 장수대제가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 아들이 대행을 하고 있는 중에 백제의 왕이 "한성 땅을 돌려주시면 영원히 오른 팔이 되어 위나라 잡것들을 저 중원 너머까지 쫒아버리겠다"고 맹세하는 편지가 들어 있습니다. 아주 긴 편지인데, 대단히 흥미로운 편지죠.
아뭏든 이 이후로백제는 위나라와 전투를 벌이게 되고, 그 전장이 된 곳은 등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등주는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할 때 도하 침공했던 곳으로 대청광여도 상에 등성이라고 표시된 일대가 유력합니다. 제가 추정하는 요서의 위치에서 강만 건너면 되는 곳이죠.
그러니 요서는 백제의 건국지이지만, 장수대제 때 뺏겼다가 슬그머니 되찾은 것이 맞습니다. 다만 곧 수나라의 팽창으로 다시 잃고, 그걸 고구리-수나라 전쟁 때 신라가 차지하게 되죠. 백제는 영영 그 땅을 되찾지 못하고, 웅진-사비와 일본 열도에 집중하게 됩니다.
수고많으십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북위시대의 백제와 한국땅에있는 의자왕의
백제시대는 많은 시간차가
있다고 봅니다.
더 많은 연구진들의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늘 강건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저기 싸운 때는 400년대인 거를 밝히고 있어요... 당연히 의자왕일 때가 아니겠죠... 5호16국 시대를 사람들이 잘 모르고 삼국지를 아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많으니 북위에 대한 설명을 삼국지 시대 위나라 위치 이야기를 한거겠죠... 오해 가능하게 말하시긴 했는데 역사에 조금이라도 상식 있는 사람이면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한반도에 삼국이 있었고 이것이 대륙으로 진출 한양 생각하지 말고 반대로 대륙에 3국이 먼저있다가 과도기때는
짧은 순간 공존까지 하다가 완전히 한반도로 왔다고 추정하면 이 모든 의문이 다 풀립니다
백제의 22담로중의 하나입니다 확인하세요
응?? 영상자체에 의문점이 있는데요...
제가 공시 공부할 때 근초고왕 때 요서를 점령했다고 배웠는데
그럼 요서 지배설은 다들 인정하는 거 아닌가용? 특히 공시의 한국사는 국정교과서 위주로 문제를 내는 것으로 아는데
백제 요서 지배는 인정된 것이고, 산둥반도 지배가 학자간 다툼이 있는 거 아닌가요?
몰라서 물어본 것이니 친절히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 확인해보니 근초고왕 때 요서 '점령'이 아니라 활발한 '교역'이라고 나오네용 ㅎㅎ
원래 신라 백제가 지금에 중국
남경부근에 존제 하다가 운이 다하여 한반도에 이동했다고
합니다
개소리하노..
현재 중국 위성지도를 보면,,, 만주, 요동, 요서, 중국 동해안 지역이 초록색으로 나타나고, 중국 내륙은 황토색입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초록색 지역을 따라 단군신화가 조상신화로 전해지고 있답니다. 즉.... 그 지역은 애초부터 고조선의 강역이었던거 같습니다. 백제가 일본도 식민지 형태로 일부 경영했는데, 요서지역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 보다 더 용이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가 22담로라고 하는데... 나머지 88개, 100개 채워야 합니다.
(저는 역사 전공도 아니고, 잘 몰라요, 그냥 느낌에 그렇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왜 이런말을 막던지느냐? 누군가에게 어떤 새로운 영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각이 열릴수도 있으니까요. 나 자신이 바보스러워 보이더라도... 즉 알면서도 희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대사, 상고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언어학적, 문화인류학적, 유전학적 특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워낙 오래 전 역사이기 때문이죠. 실증사학은 구시대 유물입니다. 쉰내 팍팍 풍기는 고리타분한 유학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친자확인, 혈연확인을 어떻게 합니까? 유전자 검사로 하잖습니까? 이처럼 과학과 학문이 발전함에 따라, 마땅히 혁신적 방안들을 적극적 수단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사실과, 증거를 밝혀내야 합니다. 한국의 역사학계가 변화와 혁신을 등안시하고, 배격한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며, 이런 관행적 적폐는 결국 자멸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가 국사를 배우면서 주변국의 역사를 못배웠는지알겠다ㅜ
당시 요서지역에 臺船을 띄울만한 강이 있었는가도 관건이겠군요. 글자 한자 한자, 단어 하나하나마다 광개토대왕비문처럼 철저히 고찰해봐야겠어요. 사료가 얼만안되니깐요.
진실은 영원히 숨길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힘이 조금만 더커지면 진실은 밝혀질겁니다
밝힌 진실만 보이니 진실이 숨길수 없다는 거지. 숨겨지고 억울한 진실들이 세상에 1억트럭은 넘을듯. 힘세고 사악한놈들이 속일려면 절대 못밝혀요
@@mk-wr8xj 다드러나고잇자나요 희망을갖자구요 ㅎ
동감입니다
초기신라도 양자강쪽에 있어고 대략 10년전 역사스페셜후 양자강쪽에 있는 후손과 경주에 있는 후손이 교류를 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용선비=백제 ???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올바른 역사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정보가 있어야 올바른 미래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과거의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도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현재 한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들도 현재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른 영상에서 말하신 것처럼,
말도 안되는 주장까지 타당하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일본은 한국을 지배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고 비하했습니다.
그 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국가를 이용한 자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 언어까지 왜곡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은
반공이나 지역 감정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들의 권력과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반한 감정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부폐한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층들은 반일을 내세우기는 어려웠습니다.
자신들이 친일 매국을 한 자들이자, 그 후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폐한 지도층들은 반공 사상을 내세웠고,
자신들에게 거슬리는 이들은 빨갱이 취급하며 제거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내부의 문제를 재일교포들의 탓으로 돌렸던 것처럼,
한국의 부폐한 지도층들은 전라도를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사실 부폐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는 전국적으로 있어 왔지만,
전라도 지역을 차별하면서 다른 지역의 시위는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백제의 역사를 비하하는 주장의 상당수는 지역감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교수나 단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부폐 정치인들이 처벌받지 않고 큰소리 치는 것처럼, 그들의 억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정말 황당한 주장들도 많습니다.
신라가 단군의 정통을 잇는 진짜 한민족이며, 현재 경상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 외에는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지역의 신라와 가야 후손의 반박을 막기 위해서 다른 지역의 후손들은 조선 말에 족보를 산 가짜 혈족이다는 주장과,
왕족의 후손이 이렇게 많을 수 없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말도 안되지만, 한때 방송에서 사실을 확인한 적까지 있었습니다.
(범죄 수사에서 유전자 검사를 한 경우 성씨까지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조사해 보니 왕족 등이 더 많은 후손을 남기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의 말까지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조상까지 바꾸는 사람과
논리적인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중에도 서로 혈족 관계에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좁은 한반도에서 혈통을 따지며 서로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겁니다.
족보로는 조상을 나눌 수 있어도, 많은 이들이 멀고 가까운 혈족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모두 한국인이며, 서로 다른 민족이라도 미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를 악용하는 자들이 문제인 거죠.
일본학자들은 한산도대첩이나 명량해전도 부정하지 않을까요?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전쟁결과 였으니까요.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죠. 청화수님 혹시 나중에 일본사 강의 시간되시면 임나일본부설에 관해서도 강의 부탁드릴께요.
부정안함
현재 행정구역명에도 백제로 표기되어 있으니 옛 사서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지명과 사람들의 증언을 무시하는 한국사람은 논리가 없고 일본이 가르쳐 준 것이 맞다고 우기는 거죠. 그래야 편하니까. 인지부조화의 예라고 할까요.
그분들이 불편해하기땜에 언급하면 안됨
모든 학문은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게 기본이죠.
사실을 분석해서 이론을 만들고,
이론과 사실이 다르다면 사실을 통해 문제를 찾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나라는 국민이 아닌 특정인이나 단체를 비호하는 이상한 보수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수뇌부가 위험해지자, 그 수족들이 드러나는 활동을 시작한 겁니다.
우리 역사가 잘 나가서 공격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라와 경쟁 관계에 있던 백제의 역사이기에 공격당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사실 지역감정에 휩싸일 이유가 없습니다.
사는 지역이 멀든 가깝든 친척 관계가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Let's Open Our World 라는 채널을 보면 The DNA Journey 라는 게 있습니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DNA 검사를 통해 그 조상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순수 혈통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은 다양한 인종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백인과 흑인이라 해도 혈연 관계에 있곤 했습니다.
한국인은 그 보다 더 긴밀한 관계로 얽혀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 외에는 부정하거나 깍아내리는 사람들의 주장을 직접 찾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들이 근거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실제로 찾아보면 전혀 다른 내용일 때도 많았습니다.
그들 스스로 창작한 내용이라 해도 관련 내용들을 알아보면 왜곡된 경우가 많았구요.
그 사실이 들키면 잠시 잠적했다가, 다시 같은 주장을 하곤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이 들키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학술적인 의견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정인, 특정 단체의 기반 지역을 포섭하기 위해, 그 지역 출신 사람들조차 가짜라고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가야나 신라 왕족의 후손이라도 근대화 과정에서 족보를 사거나 일본과 섞인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자신들의 기반 지역에 현재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순수 혈통이며, 고조선의 후예라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범죄 수사팀에서 DNA 검사를 하면 성씨도 대략적으로 맞출 수 있다고 확인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억지는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영상에 이어서 이야기하신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주장은 특정인과 특정 단체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직접 찾아보고, 상대해 보면 허무하고 황당한 주장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끊임없는 억지와 거짓, 반복에 지쳐서 포기 상태...ㅠㅠ)
중요한 건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역시 피해자라고 봐야할 겁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좋지 않은 과거가 있고, 지금도 문제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이 다툴 이유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부당한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그 나라나 그 나라의 국민이 아닌 소수 지배층이기 때문입니다.
친일파가 아직까지 남아서 이 나라를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일본 역시 전범의 후손들이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싸움을 붙여서 이익을 얻는 이들은 따로 있습니다.
사실을 토대로 다른 추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자체를 왜곡해서 전달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이 아닌 거짓입니다.
그런 주장들은 조금만 알아보면 쉽게 드러나곤 합니다.
거짓임이 분명한 주장들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명백한 거짓말들을 확인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할 때가 많습니다.
근거 자료를 직접 찾아보거나,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시간을 좀 두고 관찰을 하면, 거짓이라 드러난 주장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료를 찾아서 제시하면 입을 다물었다가, 이를 반복하는 것은 사기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백제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이렇게 비판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주장들을 너무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영상 늘 감사합니다.
편안한 하루되세요.
부여계통 후손들의 도움으로 요서지역을 경락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입니다 우선 백제가 남조와 교류를 했는데 갑자기 교류를 했을리는 없을 것이고 그 전부터 네트워킹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 해양기술로 직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서 중국을 갔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중국을 건너가기 위해선 해인선을 타는데 위에 고구려가 있어 불편힌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부여계통 후손들과 손을 잡고 요서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중국과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하나의 가설이라 더 연구를 해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네요
단순히 상대국을 비하하기 위한 오기라면
후대에 백제가 북위의 정벌에
대패했다는 기록도 나올 수 없는거 아닌가
백지가 고구려에.비해 약한거지 북위보다 약하다는 법은 없음 배로 진출해서 거점잡고 전쟁해서 영토 얻을수도 잇는거임..
백제가 큰 기상의 나라였을지도.. 패배해없어진 나라지만 기록이 너무 없어 아쉽
힘내세요 화팅 화팅
지중해를 중심으로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배한 지역을 생각해 보면 타당성이 있는 내용임
잘 보았습니다
역시 양극화를 제일 경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Gleam Kim 뭔가 국내 역사학계는 아직까지 파벌싸움 이나 조화가 잘이뤄지지않는거 같습니다 참 속상하고 답답한일이죠
궁금한점이 있는데 누가 답해주실수 있는분이 있으신가요 ㅎㅎ
1. 월주백제설 요서백제설 등이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같이 해석과 관점의 차이를 이용한 국수주의적 관점은 아닐런지?
2. 요서에 백제가 진출한것이 사실이라면(정사에 나오니) 그 시기는 언제까지 일까요? 수당전쟁때 요서백제와 싸웠다는 기록은 본적이 없습니다
3. 백제가 그토록 강성한 나라였다면 무왕 의자왕 대 신라와의 전쟁에서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을까요?
4.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요서백제는 부여의 잔존세력이 고구려에 밀려 요서까지 밀려 터를 잡고 백제와의 끈끈한 동맹을 유지했던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국수주의적관점은 영상에 나와있고 수당은 북위다음국가들이니 그당시엔 이미 요서백제가 고구려나 수나라에병합되었을것이고 그러니 반도백제만 남아 마지막에 나당연합에 지게된것이지요
역사는 상상으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선 이 글을 보시고, 이 분의 저널들을 주욱 읽어보세요. 고구리와 백제, 신라가 어디에 있었던 나라들인지 정확하게 아시게 될 겁니다. 그 이후에 님의 질문들에 스스로 답변을 해 보세요.
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1
수도를 중심으로 말 하지요.
지금 러사아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유럽?아시아?
백제가 두개일 가능성은 없나욘
요즘 국립도서관에서. 이중재선생께서 20여년전에 집필 하신. 상고사의재발견 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유투브에 많은 내용들이 만 습니다. 상고사를 공부 하신분들중에 읽어 보신분들도 많으리라 보는데처음접하고 엄청 혼란 스러워 중간에 그만 보다가 다시 보고 있습니다. ㅋㅋ 처음 공부 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드립니다.
백제가 배타고 일본을 지배했드니 배타고 요서 지배했다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게 거짓이라고해도 남의나라 기록에도 있으니 현재로썬 정설이라고 봅니다.
기록이 거짓이라해도 지배안했다는 반박할만게 없고 그냥 추측일뿐이자나요 하지만 지배했다는 기록은 남아잇으니 ...........
요서경락설은 말도 많고 자타칭 전문가를 자처하는 분들도 많은거 같습니다
사적으로는
이렇게 많은 분쟁 자체가
허구는 아닐거라는 생각입니다
누가봐도 ~뻥이면 아예 대꾸를 안하는 법이라 봅니다
그나저나
역시 청화수님,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중에도 슬쩍 님의 생각이 엿보이는게 하는 기술이 노련하십니다
진평이 진양 평원 두지역명 이름아니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