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수님의 분석과 견해에 동감한다, 조선오백년 사대주의와 일본의 식민사관에 쩔어서는 안된다, 물론 환제국 어쩌고저쩌고 등의 터무니없는 것도 배척해야겠지만, 비록 후대에 쓰여지지만 정사로 인정된 역사서와 오랜기간 연구된 역사논서들을 스스로 좁은 시각으로 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개인적인 생각에 필요의 문제가 아닐까요? 북쪽의 고구려에 막힌 백제는 세력확장을 위해 해상진출이 필수였고, 반대로 강남의 한족왕조는 북쪽의 5호가 새운 왕조와의 싸움에 집중하다 보니 강에서 싸울 수군과 육군은 육성해도 해군은 육성하긴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높은 파도때문에 튼튼하고 노가 긴 배가 우선인 해군과 달리 파고가 높지 않고 강의 유속에 상당히 의지해 싸우는 수군은 튼튼하긴 보다 빠른 배가 우선이죠.(상대적으로) 따라서 백제는 당시 최강의 해군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군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쓰거나, 혹은 한족들이 안그래도 북쪽과 싸우기 바쁜데 자신들과 계속 싸우던 골치아픈 월족의 땅을 백제에게 내주고 "너희가 처리해. 그럼 안건드릴께." 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구 100만짜리 포르투갈이 대국 이란, 인도에도 공세로 도시 하나씩 먹고 상업 거점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던 만큼 그런 개념 아닐지요? 당연하지만 이쪽도 주 목적은 상업이지만 경우에 따라 무력 충돌이 없었던것도 아니고... 만약 겨우 코리아 타운의 개념이였음 훗날 당나라 동부 신라방같은 실제 코리아 타운형 공동체들을 구분해서 표현했을까요? 다른 예시로 Dutch Formosa / 17세기 네덜란드령 대만도 사실 네덜란드가 그냥 서쪽 모퉁이에 요새 하나 세워서 관리한 정도로 섬 전체가 식민지였던것처럼 사람들한테 오해가 있는데 반대로 백제의 담로도 비슷한 오해가 생긴건 아닌지.
아무리봐도 백제 패망은 스타로 치면 멀티 2개먹고 확장하고 있는데 빈집털이(본진) 당한느낌이랄까....안타깝습니다. 병력을 본진에 집중했으면 허망하게 안당했을것 같아요. 나당연합군에 비해 터무니없는 방어병력, 그리고 패망후 일본에서의 응원군등...백제가 안망했으면 고구려도 괜찮았을거고 아뭏튼 신라 미워요.
조선상고사의 의자왕대 월주 진출설은 다루기가 참 애매합니다. 당서에서 굳이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른다'고 표현한 점, 진지하게 대하면 결코 가벼히 넘길 수 없지만, 또 무시하고 싶으면 무시해도 그만이니까요. 다시한번 출처의 미비, 그리고 단재가 즐겨 인용한 그 정체불명의 사서 '해상잡록'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만 봐도 뭔가 막 해상활동 냄새가 풍기는게 심상치가 않은데 말이죠. 대체 어떤 책이었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고 단재가 인용한 몇몇 부분만 전할 뿐이니... 단재는 그 책이 이렇게 가까운 후대에도 전해지지 못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역사는 팩트를 기록하는 자들의 사관으로 기술한거 라고 정의하죠 그래서 같은 사건이라도 기록 당시의 사회적 이념, 기록자의 사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흑치상지.. 고등 때 역사샘이 외국인으로 치아가 검어서 흑지상지다 하셨는데 샘도 그 많은 설 중에서 본인이 택하신 가설을 전하셨구요 댓글 통해서도 배울점이 많은데 역사에 전문가님들 무지 많습니다 ^^
무엇이든 극단적인 것이 안좋다고 봅니다. 환빠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우리 역사를 지나치게 부풀려서도 안되지만 엄연히 역사적 증거와 사료가 있는 것도 부정해서는 안되겟지요. 청화수님의 역사영상이 좋은 점은 주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으시고 자기주장만 옮다고 하시지 않는 중용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잘보았고 새해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예전에 봤다가 다시 보다보니 갑자기 든 생각인데 흑치=검은 곳(사람?)을 다스리다? 흑치로 봉한다라는 부분을 다시 듣다가 굳이 있는 땅 나눠주기도 하지만 항장이고 정벌선단을 내줄게 아닌데 구 백제땅을 봉분한다? 그만한 힘을 키우려면 매우 부유한 땅을 본붕해줘야하니 굳이 또 땅을 내릴 이유가 없죠 그 재물로 칼 거꾸로 쥘수도 있는데.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꾸니 월주 지역에 행세하게하고 중국 영토는 아니나 주인없는 공백지 취급하는 동남아쪽을 영지로 봉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지를 봉하면 현재 위치에서 힘을 기르되 그 지역에서 최대한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하죠. 왜에서 1년을 간다기에는 대만필리핀쪽은 짧죠. 동남아쪽의 털짧은 영장류 있는 곳 태국쪽이 떠오릅니다만. 백제 망했는데 상업항구도시 지역을 내줄 이유는 없을테고 북방 이민족과의 국경수비 맡기기에는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군벌이 될테고 풍토병 심하고 중국에서는 유지하기에는 지출이 많아보여 탐나지 않으나 서쪽에서 오는 무역선의 중간 기항지로 쓰일 지역에 보내 버리면 개척=침략하다 구백제인들 정착세력의 재부를 소모시켜 공백화시키면 임명장 하나로 불안요소가 해결되니 중국 호족들과 당나라 입장에서 굳이 이민족 출신을 중용하지 않고 겉으로는 대우하며 제거할 수 있으니 저같으면 이 수를 쓸 것 같습니다. 흑치상지가 결국 반란에 연루되어 죽지 않습니까, 죽음을 피해 망국을 배신한 인물이 굳이 목숨 거는 반란에 연루될 이유가 없겠죠. 아예 비문까지 세워 기정사실화 된 죽음의 길을 가야하는 미래가 예정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우선 '백제'라는 나라이름이 이상합니다. 흰, 밝은 '백'자도 아니고 일 십 백 많다는 뜻(예; 백성-수많은 성씨족들)의 숫자 백 '百'자 인데다가 물건널 '濟'자인데, 오늘날 '사회경제'라고 할 때도 이 '濟'자를 씁니다. 이렇게 수많은 해상무역국이라는 뜻이 아예 나라이름에 있습니다. 어찌 나라이름을 이렇게 이상하게 지을 이유가 있을까요? '높고 아름답다'라거나 '새롭다'는 등의 관념적 수식과는 방향이 다른 국가명이죠. 그리고 어떤 분의 말씀을 들으니 이 물건널 '제'자가 한편으로는 '제후'의 뜻을 겸 할 수도 있답니다. 그렇다면 많은 지역의 왕들을 통합하는 합중국 개념의 황제국이었다는 설이 신빙성을 가질수 있답니다. 해상왕 장보고의 경우는 신라가 백제를 통합한 후 백제의 지역왕제도 하나에 그 힘을 섬지역으로 고립 축소시켜 유지한 것일 수 있다 합니다. 육로가 아닌 해상로, 대륙해안지역 다수, 왜국, 저 동남아에 이르며 심지어는 인도, 중동에 이르는 해상로 거점요지들(중국의 저 남쪽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이름을 쓰는 지역이 남아 있음. 또 장강 뱃길을 따라 올라가면 있는 유비가 생을 마친 '白帝城'도 한문자를 다르게 쓰고 있지만 百濟와의 연관성에 대한 근거를 몇몇 기록을 토대로 추론하는 학자도 있다 함)을 통합하는 무역국가 '백제'... 신라도 한때 산둥반도에 분국을 두고 있었는데, 심지어 나라이름 자체가 해상무역 합중국인 백제는 어땠을까요? 백제가 힘이 강성해졌을 때는 대륙의 해안지역 뿐 아니라 지금의 북경지역 같은 내륙까지 차지 했었다는 기록도 있다합니다. 해상무역의 관점으로 보면 한반도의 위치는 동방의 지중해 중심에 있는 허브 역할의 매우 중요지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중심의 위치도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니고 전략적으로 선택 된 것이라 볼 수 있죠. 백제의 어머니 소서노가 속했던 세력이 부여국에서 고구려와 함께 분리되던 때, 드라마 '주몽'에서 묘사했듯 소서노의 세력은 국제무역을 하던 집단이었습니다. 그 세력이 나라를 건국 할 때 국제해상무역의 관점에서 최적선택된 허브 지역이 바로 한반도 서남지역 한강변과 금강변이었다 보아야죠. 합리적으로 추론을 해 봐야 합니다. 나라이름에서 전해주는 이 강력한 단서를 왜 애써 모른 척 할까요? 강력한 고대국가의 힘은 대륙의 넓은 땅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합니다. 유럽의 고대국가들도 지중해의 해상권에서 그 힘이 고양되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태사공기가 권위를 가지고 역사학적으로 존중받는것은 사마천이 사실을 그대로 썻기 때문이 아니며 오류가 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고대를 흩으며 역사의 의미를 찾아내고 신념에 따라 기술하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란게 역사학계에서 중요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것입니다 100% 사실이거나 과학적인 근거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을 하면서도 신념으로 역사를 보고 기술했기 때문입니다 승자들의 기록으로 누적된 역사를 해체하고 우리의 시각으로 재정립하는 과정 때문이죠 그리고 그 과정이란게 승자들의 조작과 같은 길이 아니라 진실을 보려는 노력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학계에서 단재의 조선상고사와 역사관을 존중하는 이유가 이러한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채호 선생은 자신의 이성과 신념에 따라 19세기 환단고기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강단학회란게 조선사편찬회를 뿌리에 둔게 사실이고 이러한 토대에서 생성된것도 사실인데 문제는 광복 이후 이러한 원죄로 인해 강단학회는 엄청난 발버둥을 칩니다 근대기에 있었던 사학흐름중 하나를 실증사관으로 정의하고 또한 단재를 대표로 되는 흐름을 민족사관이라 정의하며 이들을 계승 발전했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이를 계승했다는 의식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 당시 사학회가 얼마나 치열했냐면 조선사편찬회를 부정하고 자신의 스승조차 까내리며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재조직을 이루었습니다 이런점은 국어학회에서도 비슷하죠 서정주를 중심으로한 친일문학계의 토대에서 나온 국어 국문학회는 철저하게 스승들을 부정하고 까내리죠 고은의 일화가 대표적인데 제자들이 아무도 안찾아오는 와중에 우연히 만나자 서정주가 얼굴 좀 보자고 하니까 면전에다가 말했죠 죽으시면 찾아는 가겠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비극인 이유이고 그 상처가 얼마나 엄중한지 보여주죠.... 19세기 위서 한단고기가 횡횡하는 것도 그것을 비판한다며 자학적인 실증을 주장하는것도 결국 일제 강점기의 결과물인거죠.....
속된 말로 '인문사기학'이라 하죠. 정답이 없다는건 바꿔 말하면 자기 마음대로 답을 내도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답에 자기 밥그릇이 걸려 있다면? ㅎㅎ 굳이 스승과 선배들과 싸우며 자기주장을 펼 용자가 얼마나 될까요? '인문사기학' 분야는 그걸로 밥먹고 사는 프로들에겐 기대할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헬조선에선 더더욱. 역사학 뿐만이 아니죠.
신당서/구당서가 한 작은 구역이 아닌 저정도 지역을 백제의 구역으로 인정했을 정도 인데.. 지금 독도를 놓고 봐도 그게 쉬운건 아니지요. 따지자면 다른 나라니까 게다가 중국에서 인정하는 저서 잖아요 근데 약탈형 침공? 흐음 무엇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믿기 쉬운내용은 아니네요. 게다가 저쪽 지방에는 백제 유물들이 꽤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자세히는 모릅니다.) 저는 환단고기가 뭔지 몰라요 그렇지만, 유목부족이 있었고 정착부족이 연이어나왔고(기후변화에 따른) 두 가지 다른 성향 때문에 당연한 세력싸움이 있었다?라고 보는것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어보이더라구요. 청화수님이 이 댓글을 보신다면, 그에 따른 역사내용을 한번 다루어 주셨으면 감사하겠네요. 저는 ㅠㅠ 관심만 있지.. 이거 쉽지 않더라구요 워낙에 아는게 없다보니 뭐가 진짜인줄도 모르겠고 환단고기 내용의 유튜브를 보면, 종교에 치우쳐져 있는거 같아 믿기가 어렵고 ..보신다면 부탁드립니다 ^^ 역사는 지든 이기든 재밌으니까요 ^^ 자주 찾아보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본국인 환국이 있잖습니까? 그 환국이 내 생각에 오늘날 아시아로 지칭되는 전 영역을 직, 간접적으로 관할했다고 봅니다. 고조선은 환국의 적통이니 한겨레, 한민족이 그처럼 방대한 영역을 갖은 나라였다고 하는 말이 틀린말은 아닌 것이죠. 북방 유목민 계통의 나라였기 때문에 이토록 방대한 영역의 나라 개념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교통수단이 말이었고, 말은 기동성이 좋고, 우리의 상상이상으로 물리적 거리개념을 뛰어넘죠. 간단하게 말씀을 드릴게요. 난해하더라도 좀 생각해 보시길 바래요. 환,, 환하다,,, 즉 환한 나라, 대명천지,, 태양의 나라,, 해 뜨는 나라,,, 태양신 상징.... 조선,,, 아침의 태양 朝 자체가 천상과 지상에 태양이 나타나는.. 그리고 달이 동시에 존재하는... 즉 여명입니다... 鮮은 물고기와 양 즉 목축과 어로를 했던 나라이며(태양, sun의 음차로 볼수도 있음) 이런 조건을 갖춘 지역은 바이칼 일대로 추정됩니다. 한겨레가 남북 수만리 영역에 걸쳐 있었다는 말도..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 ASI + A,, 아시는 새벽의 여명을 뜻하고,, 아는 그 빛이 비치는 강역을 뜻합니다. 보시다시피 아시아, 환국, 조선의 근원적 의미가 같습니다. 아사달도 같은 의미고요. 동이족도,,, 東 글자 자체가 해가 나무에 걸쳐있는 모양으로 이또한 여명을 상징하죠. 어떻게 보시나요? 이정도면 확실한 증거 아닙니까?
청화수님이 진정 훌륭한 역사학자가 되시라고 내 생각을 아낌없이 풀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참조하고, 저 나름대로 상당히 고민해서 깨달은 것들입니다. 한겨레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어떤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영감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짝짝짝! 반했습니다.
너무 멋집니다.
멋지고 좋은 영상 많이많이 올려주십시오^^
정말 수준높고 훌륭한 자료입니다
청화수님 감사합니다
폐쇄적인 조선500년의 폐해가 너무 깊은것 같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우리민족은 상업국가의 성격이 분명히 강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 전통이 현대 한국에서 살아난것 같습니다~
잘봤습니다. 감사감사.👏👏👍
KBS일요스페셜도 함 보세욤 ㅋㅋ 도움 많이 되요
청화수님 영상 보면 감탄 하고 갑니다.
이래저래 들어 보면 백제도 싸움 겁나 잘 한 것 같음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이 당에 끌려가서도 그 부여씨 후손 중에 고위관직 무사도 있었고 태비?도 나왔고 하는 거 보면 백제가 싸움은 잘 한 것 같음
언젠가부터 듣고 또 듣고. 잠들기 전에 듣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청화수님의 분석과 견해에 동감한다, 조선오백년 사대주의와 일본의 식민사관에 쩔어서는 안된다, 물론 환제국 어쩌고저쩌고 등의 터무니없는 것도 배척해야겠지만, 비록 후대에 쓰여지지만 정사로 인정된 역사서와 오랜기간 연구된 역사논서들을 스스로 좁은 시각으로 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백제는 해상왕국이라 카르타고처럼 한것이 맞아요 제관점은 그래요
이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요?
신라후기 장보고의 남해를 중심으로 한 신라, 왜, 당? 송? 등과의 해상무역을 보면 백제 당시 국가적이든 지방호족이든 해상활동이 있었을것이다, 신라방도 마찬가지다~
ㅋ지금의사학 강단은 있는것도받아들이질않죠ㅋㅋ정사 25사인데 책이잘못됐다하구여ㅋㅋ 참 아이러니 하네여 역시 청화수님이 그런사람들보다 나은듯
군량도 풍부하고 각지에 해상진출기지도 있으니 고구려 신라도 공격하고했겠죠
그들의 통신과 그들의 결집력이 좋았을땐 강국 그들의 내분이 있다면 힘든형국이 백제의 지리적위치
청화수님이 하신 말씀 이해가 가고 동의가 돼네요..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수고 하세요
정말 궁금했던 주제인데 분석적으로 다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고대국가 중 백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좀 더 많은것의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일제식민사관에 찌들은 한국역사 완전수정해야합니다. 백제 요서공략설도 역사에 확실히써넣고 역사는 진취적인 국민의식을 다음세대에 불어넣는 힘의 원동력이 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한자발음를 보면 중국의 옛 남방발음에 가깝다고 하는데, 백제의 활발한 활동과 관련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어., 보던댓글 중 최고 😍😍
광동어나 대만발음과 정말 훨씬더 비슷합니다. 진짜 백제 생각을 못했네요
일본 오사카 앞바다에 아와지시마라고 있어 요. 아와지가 한자로 담로에요. 거기도 백제 무역 요지중 하나였살지도 모르겠네요.
백제 해외 담로 중의 하나 였지요
그걸 감추기 위해 한자를 바뀬 것으로...
@@크리티크-z2p 왜 바꿈 일본이랑 백제랑 개 친했는데
@@성이름-z9j8d 일본에 백제, 즉 한반도의 영향력이 컸다는걸 숨기기 위해 후대에 바꿨겠죠...
다시 생각해도 정말 일제 강점기때 독립운동가 분들은 진짜 대단하신분들이 많은것같아여
뿌리깊은 사대주의 잔재
500년 사대 , 교리주의로 변질된 주자학 유학으로 조선피지배층을 지배한 사대부들의 조선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해야합니다. 가장 부끄러운 왕조라고 평합니다 개인의견
개인적인 생각에 필요의 문제가 아닐까요? 북쪽의 고구려에 막힌 백제는 세력확장을 위해 해상진출이 필수였고, 반대로 강남의 한족왕조는 북쪽의 5호가 새운 왕조와의 싸움에 집중하다 보니 강에서 싸울 수군과 육군은 육성해도 해군은 육성하긴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높은 파도때문에 튼튼하고 노가 긴 배가 우선인 해군과 달리 파고가 높지 않고 강의 유속에 상당히 의지해 싸우는 수군은 튼튼하긴 보다 빠른 배가 우선이죠.(상대적으로) 따라서 백제는 당시 최강의 해군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군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쓰거나, 혹은 한족들이 안그래도 북쪽과 싸우기 바쁜데 자신들과 계속 싸우던 골치아픈 월족의 땅을 백제에게 내주고 "너희가 처리해. 그럼 안건드릴께." 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도같은 의견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너무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더군요.
일제의 사주를 받아 쓴 정치적 역사가 부동의 진리로 맹신하는 아둔한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학자들이 자신의 혼신을 담아 쓴 역사
또는 현대 발달된 교통 통신 디지털 데이터검색 컴퓨터 시대에 현대학자가 쓰는 역사가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인구 100만짜리 포르투갈이 대국 이란, 인도에도 공세로 도시 하나씩 먹고 상업 거점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던 만큼 그런 개념 아닐지요? 당연하지만 이쪽도 주 목적은 상업이지만 경우에 따라 무력 충돌이 없었던것도 아니고... 만약 겨우 코리아 타운의 개념이였음 훗날 당나라 동부 신라방같은 실제 코리아 타운형 공동체들을 구분해서 표현했을까요? 다른 예시로 Dutch Formosa / 17세기 네덜란드령 대만도 사실 네덜란드가 그냥 서쪽 모퉁이에 요새 하나 세워서 관리한 정도로 섬 전체가 식민지였던것처럼 사람들한테 오해가 있는데 반대로 백제의 담로도 비슷한 오해가 생긴건 아닌지.
역사를 이렇게 보니 정말 재미있는거 같습니다 한국사를 좀더 많이 다루어주셨으면 좋겠네요 ㅎㅎ
I realize it's pretty randomly asking but do anybody know a good website to stream newly released movies online ?
@Jase Jesse flixportal xD
@Remy Harvey thank you, I went there and it seems like they got a lot of movies there =) Appreciate it !!
@Jase Jesse Glad I could help :D
아무리봐도 백제 패망은 스타로 치면 멀티 2개먹고 확장하고 있는데 빈집털이(본진) 당한느낌이랄까....안타깝습니다. 병력을 본진에 집중했으면 허망하게 안당했을것 같아요. 나당연합군에 비해 터무니없는 방어병력, 그리고 패망후 일본에서의 응원군등...백제가 안망했으면 고구려도 괜찮았을거고 아뭏튼 신라 미워요.
신라 입장에서는 백제에게 정복 당해 백제의 전리품이 되기보다는 외국을 이용해서라도 백제를 제거, 안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을듯요.
청화수님 마지막 교육제도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도 암만 바꿔도 일류대학 나오지 않으면 대접 제대로 못받는 이 사회구조가 근본적 문제죠.
조선상고사의 의자왕대 월주 진출설은 다루기가 참 애매합니다. 당서에서 굳이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른다'고 표현한 점, 진지하게 대하면 결코 가벼히 넘길 수 없지만, 또 무시하고 싶으면 무시해도 그만이니까요. 다시한번 출처의 미비, 그리고 단재가 즐겨 인용한 그 정체불명의 사서 '해상잡록'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만 봐도 뭔가 막 해상활동 냄새가 풍기는게 심상치가 않은데 말이죠. 대체 어떤 책이었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고 단재가 인용한 몇몇 부분만 전할 뿐이니... 단재는 그 책이 이렇게 가까운 후대에도 전해지지 못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백제의 해상영역은 설치 되었던 '담로'를 분석하면 알 수 있지요 !
진짜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
역사는 팩트를 기록하는 자들의 사관으로 기술한거 라고 정의하죠
그래서 같은 사건이라도 기록 당시의 사회적 이념, 기록자의 사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흑치상지..
고등 때 역사샘이 외국인으로 치아가 검어서 흑지상지다 하셨는데
샘도 그 많은 설 중에서 본인이 택하신 가설을 전하셨구요
댓글 통해서도 배울점이 많은데
역사에 전문가님들 무지 많습니다 ^^
화이팅~~~~~~
22담로가 답이 될거 같네요
신라가 통일후에야 9주 5소경 체제를 만들었는데 백제가 상대적으로 작은 땅에 22담로를 설치한다?? 담로들의 위치가 어디였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백제가 갑자기 망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의 해상대국으로 군림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해상세력이 전세계를 재패한 것이 고작 300년이 안되었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초기백제는 대륙에 있었고 중후기에는 반도와 왜 월남등에 진출했으며 22개담로를 통해 대 제국 이었습니다
백제 남쪽은 왜인데 경계 모두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그곳은 일본열도 아니면 대마도 쿠슈를 말하는거죠?
정답을 찾는 공부가 아니라,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공부가 맞지요. 당연히 교육제도에 대한 말씀도 너무나 공감합니다.
최치원이가 말했잖아요.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한 군사가 백만 명이나 되었다. 100만 군대를 보유했다.
와 마지막에 교육문제 정답.
감사합니다
천년전에 저렇게 상업이 중요하단걸 알고있던 민족이.. 조선때는 뭐가 중헌지 모르고 상업을 찍어눌렀지...
아마 지금 처럼 생각이 비슷했겠죠..
돈이란게 가진자와 못가진자를 나누게 만드는 부정적인거라고 생각했던듯.. 그래서 '악'으로 규정해버린...
고려말의 상황을 살펴보면 조선의 유교적인 사회체계가 상당히 괜찮은 대안적인 체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 또한 몰락이 비참했고 그 비참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쓰레기 같아 보일 수 밖에 없는 거죠.
👏👏👏👍👍👍
무엇이든 극단적인 것이 안좋다고 봅니다. 환빠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우리 역사를 지나치게 부풀려서도 안되지만 엄연히 역사적 증거와 사료가 있는 것도 부정해서는 안되겟지요.
청화수님의 역사영상이 좋은 점은 주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으시고 자기주장만 옮다고 하시지 않는 중용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잘보았고 새해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환빠느니 하는 더러운 용어 역시 사용 자제 바랍니다
환빠란 말부터 삼가하세요. 분이야 말로 극단적 사고에 빠진 단어들만 쓰시네요
대댓에 환빠들 많네
안녕하세요
베트남 친구가 그러는데요.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이 코리아 땅이었다고 역사 교육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그때가 백제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역사 유물 그림중에 백제 사신도가 있다고 합니다.
백제는 대제국 이었습니다. 해양 제국.
요즘 일부러 영상 늦게보고있는데 1주일정도 늦게보면 되나요???
예전에 봤다가 다시 보다보니 갑자기 든 생각인데 흑치=검은 곳(사람?)을 다스리다?
흑치로 봉한다라는 부분을 다시 듣다가 굳이 있는 땅 나눠주기도 하지만 항장이고 정벌선단을 내줄게 아닌데 구 백제땅을 봉분한다? 그만한 힘을 키우려면 매우 부유한 땅을 본붕해줘야하니 굳이 또 땅을 내릴 이유가 없죠 그 재물로 칼 거꾸로 쥘수도 있는데.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꾸니 월주 지역에 행세하게하고 중국 영토는 아니나 주인없는 공백지 취급하는 동남아쪽을 영지로 봉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지를 봉하면 현재 위치에서 힘을 기르되 그 지역에서 최대한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하죠.
왜에서 1년을 간다기에는 대만필리핀쪽은 짧죠.
동남아쪽의 털짧은 영장류 있는 곳 태국쪽이 떠오릅니다만.
백제 망했는데 상업항구도시 지역을 내줄 이유는 없을테고 북방 이민족과의 국경수비 맡기기에는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군벌이 될테고 풍토병 심하고 중국에서는 유지하기에는 지출이 많아보여 탐나지 않으나 서쪽에서 오는 무역선의 중간 기항지로 쓰일 지역에 보내 버리면 개척=침략하다 구백제인들 정착세력의 재부를 소모시켜 공백화시키면 임명장 하나로 불안요소가 해결되니 중국 호족들과 당나라 입장에서 굳이 이민족 출신을 중용하지 않고 겉으로는 대우하며 제거할 수 있으니 저같으면 이 수를 쓸 것 같습니다.
흑치상지가 결국 반란에 연루되어 죽지 않습니까, 죽음을 피해 망국을 배신한 인물이 굳이 목숨 거는 반란에 연루될 이유가 없겠죠.
아예 비문까지 세워 기정사실화 된 죽음의 길을 가야하는 미래가 예정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우선 '백제'라는 나라이름이 이상합니다.
흰, 밝은 '백'자도 아니고 일 십 백 많다는 뜻(예; 백성-수많은 성씨족들)의 숫자 백 '百'자 인데다가 물건널 '濟'자인데, 오늘날 '사회경제'라고 할 때도 이 '濟'자를 씁니다. 이렇게 수많은 해상무역국이라는 뜻이 아예 나라이름에 있습니다.
어찌 나라이름을 이렇게 이상하게 지을 이유가 있을까요?
'높고 아름답다'라거나 '새롭다'는 등의 관념적 수식과는 방향이 다른 국가명이죠.
그리고 어떤 분의 말씀을 들으니 이 물건널 '제'자가 한편으로는 '제후'의 뜻을 겸 할 수도 있답니다.
그렇다면 많은 지역의 왕들을 통합하는 합중국 개념의 황제국이었다는 설이 신빙성을 가질수 있답니다.
해상왕 장보고의 경우는 신라가 백제를 통합한 후 백제의 지역왕제도 하나에 그 힘을 섬지역으로 고립 축소시켜 유지한 것일 수 있다 합니다.
육로가 아닌 해상로, 대륙해안지역 다수, 왜국, 저 동남아에 이르며 심지어는 인도, 중동에 이르는 해상로 거점요지들(중국의 저 남쪽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이름을 쓰는 지역이 남아 있음. 또 장강 뱃길을 따라 올라가면 있는 유비가 생을 마친 '白帝城'도 한문자를 다르게 쓰고 있지만 百濟와의 연관성에 대한 근거를 몇몇 기록을 토대로 추론하는 학자도 있다 함)을 통합하는 무역국가 '백제'... 신라도 한때 산둥반도에 분국을 두고 있었는데, 심지어 나라이름 자체가 해상무역 합중국인 백제는 어땠을까요?
백제가 힘이 강성해졌을 때는 대륙의 해안지역 뿐 아니라 지금의 북경지역 같은 내륙까지 차지 했었다는 기록도 있다합니다.
해상무역의 관점으로 보면 한반도의 위치는 동방의 지중해 중심에 있는 허브 역할의 매우 중요지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중심의 위치도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니고 전략적으로 선택 된 것이라 볼 수 있죠.
백제의 어머니 소서노가 속했던 세력이 부여국에서 고구려와 함께 분리되던 때, 드라마 '주몽'에서 묘사했듯 소서노의 세력은 국제무역을 하던 집단이었습니다. 그 세력이 나라를 건국 할 때 국제해상무역의 관점에서 최적선택된 허브 지역이 바로 한반도 서남지역 한강변과 금강변이었다 보아야죠.
합리적으로 추론을 해 봐야 합니다.
나라이름에서 전해주는 이 강력한 단서를 왜 애써 모른 척 할까요?
강력한 고대국가의 힘은 대륙의 넓은 땅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합니다.
유럽의 고대국가들도 지중해의 해상권에서 그 힘이 고양되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합리적인 견해로 역사를 찾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태사공기가 권위를 가지고 역사학적으로 존중받는것은 사마천이 사실을 그대로 썻기 때문이 아니며 오류가 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고대를 흩으며 역사의 의미를 찾아내고 신념에 따라 기술하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란게 역사학계에서 중요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것입니다
100% 사실이거나 과학적인 근거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을 하면서도 신념으로 역사를 보고 기술했기 때문입니다
승자들의 기록으로 누적된 역사를 해체하고 우리의 시각으로 재정립하는 과정 때문이죠
그리고 그 과정이란게 승자들의 조작과 같은 길이 아니라 진실을 보려는 노력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학계에서 단재의 조선상고사와 역사관을 존중하는 이유가 이러한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채호 선생은 자신의 이성과 신념에 따라 19세기 환단고기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강단학회란게 조선사편찬회를 뿌리에 둔게 사실이고 이러한 토대에서 생성된것도 사실인데 문제는 광복 이후 이러한 원죄로 인해
강단학회는 엄청난 발버둥을 칩니다 근대기에 있었던 사학흐름중 하나를 실증사관으로 정의하고 또한 단재를 대표로 되는 흐름을 민족사관이라
정의하며 이들을 계승 발전했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이를 계승했다는 의식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
당시 사학회가 얼마나 치열했냐면 조선사편찬회를 부정하고 자신의 스승조차 까내리며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재조직을 이루었습니다
이런점은 국어학회에서도 비슷하죠 서정주를 중심으로한 친일문학계의 토대에서 나온 국어 국문학회는 철저하게 스승들을 부정하고 까내리죠
고은의 일화가 대표적인데 제자들이 아무도 안찾아오는 와중에 우연히 만나자 서정주가 얼굴 좀 보자고 하니까 면전에다가 말했죠
죽으시면 찾아는 가겠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비극인 이유이고 그 상처가 얼마나 엄중한지 보여주죠....
19세기 위서 한단고기가 횡횡하는 것도 그것을 비판한다며
자학적인 실증을 주장하는것도 결국 일제 강점기의 결과물인거죠.....
확실히 조선이 들어서고 민족정신이 완전 망가졌어요. 고려때까지만 해도 근근히 이어져왔는데...
소중화 ㅠㅠ
대륙에 백제가 있었다는게 이상하나요?
. 호랑이 한두마리가 늑대소굴을 들락날락 했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쩝쩝 지금은 종이 호랑이라서 문제이지요
종교의 유일신 믿는 것 처럼 역사의 관점 한개를 정답으로 해놓고 이 것 이외의 답을 말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 같이 호들갑이죠.
우리나라는 학계에 역사학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기존에꺼 외우고 맞추는 역사교육학이 있을뿐....
통신사역사님 죄송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들리셨나봐요. 너무 연구가 없는 건 사실 아닌가요? 다른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 역사인데도 일본이나 중국 학계 논문이나 연구 가져다 인용 하는 분만 많죠.
통신사역사 저는 저 위 동영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네요. 전체적인 연구성과와 우리나라 교수님들의 풍토를 이야기 하는거죠.
통신사역사 알겠습니다. 좀 더 노력 해 주길 바라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속된 말로 '인문사기학'이라 하죠. 정답이 없다는건 바꿔 말하면 자기 마음대로 답을 내도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답에 자기 밥그릇이 걸려 있다면? ㅎㅎ 굳이 스승과 선배들과 싸우며 자기주장을 펼 용자가 얼마나 될까요? '인문사기학' 분야는 그걸로 밥먹고 사는 프로들에겐 기대할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헬조선에선 더더욱. 역사학 뿐만이 아니죠.
자치권을 주었을수도 이주세력? 파워가 커지면 직접관리하기가 불편.....
엄연히 중원의 사서와 자국의 기록조차 외면하는 종자들 은 이미 오래전 부터 존재했죠
신라 사로 밥먹고 사는
애들 한풀 이 억지해석일
뿐입니다
우리집까지 했음
ㅇㅈ
신당서/구당서가 한 작은 구역이 아닌 저정도 지역을 백제의 구역으로 인정했을 정도 인데.. 지금 독도를 놓고 봐도 그게 쉬운건 아니지요. 따지자면 다른 나라니까 게다가 중국에서 인정하는 저서 잖아요 근데 약탈형 침공? 흐음 무엇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믿기 쉬운내용은 아니네요. 게다가 저쪽 지방에는 백제 유물들이 꽤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자세히는 모릅니다.) 저는 환단고기가 뭔지 몰라요 그렇지만, 유목부족이 있었고 정착부족이 연이어나왔고(기후변화에 따른) 두 가지 다른 성향 때문에 당연한 세력싸움이 있었다?라고 보는것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어보이더라구요. 청화수님이 이 댓글을 보신다면, 그에 따른 역사내용을 한번 다루어 주셨으면 감사하겠네요. 저는 ㅠㅠ 관심만 있지.. 이거 쉽지 않더라구요 워낙에 아는게 없다보니 뭐가 진짜인줄도 모르겠고 환단고기 내용의 유튜브를 보면, 종교에 치우쳐져 있는거 같아 믿기가 어렵고 ..보신다면 부탁드립니다 ^^ 역사는 지든 이기든 재밌으니까요 ^^ 자주 찾아보고 있습니다~
댓글 좀 봐 읽어주세요.
양직공도는 양나라에서 그려던걸 다시 그렸다고한다.
내용은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自晋已來常修蕃貢 義熙中 其王餘腆 宋元嘉中其王餘毗
齊永明中其王餘太 皆受中國官爵 梁初以太 爲征東將軍
尋爲高句驪所破 普通二年 其王餘隆遣使奉表云 累破高麗
所治城曰固麻 謂邑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斯羅 止迷
麻連 上巳文 下枕羅 等附之 言語衣服略同高麗 行不張拱拜不申足
以帽爲冠 襦曰複袗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
여기에서 나의 눈에 걸리는것이..
麻連 上巳文 下枕羅 等附之(원문) -->
旁小國有叛波·卓·多羅·前羅·斯羅·止迷·麻連·上己文·下枕羅等附之. (국사편찬위원회)
上巳文 上己文 을 오기로 해놓고 있다.
우리 간지중에 기사년이 있다.. 기사(己巳)는 육십간지 중 6번째이다
그들 말대로 한다면 기사년을 기기(己己)년으로 표기 해야 되지 않까?
ㅂrㅂrㅌIㅂI 홍보좀 그만해라 ㅡㅡ 그래서 어디다 검색한다고?
ㅂrㅂrㅌIㅂI 만든사람은 진짜 상을 줘야함 일본 av배우 저리가라하는 한국여자들 다벗네
갱상도는 임진왜란때 일본국이나 마찬가지로 완전한 지배를 당했고 인구의 절반은 일본피가 섞였다고 봐야 합니다
일본어는 발음이나 받침이 약한대 한예로 경상도도 남쪽으로 갈수록 발음이나 받침이 약해서 쌀을 살로 발음하는등 일본의 억양과 비슷한점이 아주 많습니다
아직도 "혈"로 역사를 따지는 사람이 있네ㅋㅋ..
경상도 말이 일본말과 비슷한건. 일본말의 시초가 "신라어" 이기 때문입니다 ^^
고조선의 본국인 환국이 있잖습니까? 그 환국이 내 생각에 오늘날 아시아로 지칭되는 전 영역을 직, 간접적으로 관할했다고 봅니다. 고조선은 환국의 적통이니 한겨레, 한민족이 그처럼 방대한 영역을 갖은 나라였다고 하는 말이 틀린말은 아닌 것이죠.
북방 유목민 계통의 나라였기 때문에 이토록 방대한 영역의 나라 개념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교통수단이 말이었고, 말은 기동성이 좋고, 우리의 상상이상으로 물리적 거리개념을 뛰어넘죠.
간단하게 말씀을 드릴게요. 난해하더라도 좀 생각해 보시길 바래요.
환,, 환하다,,, 즉 환한 나라, 대명천지,, 태양의 나라,, 해 뜨는 나라,,, 태양신 상징....
조선,,, 아침의 태양 朝 자체가 천상과 지상에 태양이 나타나는.. 그리고 달이 동시에 존재하는... 즉 여명입니다... 鮮은 물고기와 양 즉 목축과 어로를 했던 나라이며(태양, sun의 음차로 볼수도 있음) 이런 조건을 갖춘 지역은 바이칼 일대로 추정됩니다.
한겨레가 남북 수만리 영역에 걸쳐 있었다는 말도..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
ASI + A,, 아시는 새벽의 여명을 뜻하고,, 아는 그 빛이 비치는 강역을 뜻합니다.
보시다시피 아시아, 환국, 조선의 근원적 의미가 같습니다. 아사달도 같은 의미고요.
동이족도,,, 東 글자 자체가 해가 나무에 걸쳐있는 모양으로 이또한 여명을 상징하죠.
어떻게 보시나요? 이정도면 확실한 증거 아닙니까?
아 그리고 한겨레의 韓도 마찬가지네요. 한자를 풀어보면 여명 + 강역 입니다. 즉 여명이 비추이는 강역, 이것이 '나라'라는 개념이 되죠. 고조선의 왕조가 한씨고요...
환~~~~~~국~~~~~~
청화수님이 진정 훌륭한 역사학자가 되시라고 내 생각을 아낌없이 풀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참조하고, 저 나름대로 상당히 고민해서 깨달은 것들입니다. 한겨레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어떤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영감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SH C 환국사람은 화성에서 기원전 564157년에 우주선타고 왔습니다. 제가 깨달은 내용이에요 :)
베어의 베 '배'와 같은 어원으로 보이며.. 이것이 곰을 의미하는 것이군요...
배달의 배, 바이칼(배칼)의 배.... 그쪽에 곰이 엄청 많이 서식했나 봅니다...
곰을 토템으로 숭배했던 지역의 겨레.... 이처럼 언어학적 증거는 빼박증거입니다... 숨길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