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한국사] 광개토대왕과 그의 군대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09

  • @Limyonghan-TV
    @Limyonghan-TV  2 года назад +25

    오늘(3/6) 21:00 우크라이나 전쟁 특집 라이브
    임용한 방종관 장군 태상호 기자 합동 스트리밍 사회 허준
    자세한 내용은 커뮤니티 공고 참조 바랍니다

    • @김재완-o7k
      @김재완-o7k 2 года назад

      와!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

    • @초슬람은퀀덤락킹
      @초슬람은퀀덤락킹 2 года назад

      최고의 강의 입니다ㅎ

    • @마스터토익-j8v
      @마스터토익-j8v 2 года назад +1

      영상이왜내려갔됴?

    • @limezan6276
      @limezan6276 2 года назад

      잘보겠습니다.

    • @jhy190
      @jhy190 2 года назад

      "광개토왕과 그의 군대" 처럼, 이순신 장군님도 "이순신 장군과 전라수군" 이라고 불러주세요.

  • @JKLEE-dc7lj
    @JKLEE-dc7lj 2 года назад +4

    이것이 진짜 역사다 임용한 교수님 최고십니다

  • @bbosaree
    @bbosaree 2 года назад +5

    박사님 저서 한국 고대전쟁사 재미있게 봤네요 👍

  • @ChunU201
    @ChunU201 2 года назад +2

    게임하면서 매번 켜놓고 라디오처럼 듣고 있는데 너무 좋습니다

  • @pianoman3810
    @pianoman3810 2 года назад +3

    교수님 존경스럽습니다

  • @유수윤-m4o
    @유수윤-m4o 2 года назад +18

    영상 잘 봤습니다 고구려는 기록이 부족해서 아쉽지만 저렇게 벽화가 잘 보존된 채 발견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고구려 고분들이 잘 발굴되서 고대사를 풍성하게 채워나가면 좋겠어요

  • @야옹허-x5f
    @야옹허-x5f 2 года назад +1

    오늘도 감동 받고 갑니다~^^

  • @FireBear_불곰
    @FireBear_불곰 2 года назад +13

    로마 제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도 공병대들이 만든 도로와 건축(요새나 수로,도시등등)을 통해 보급 운송과 병력 이동이 가능하고 공성무기까지 제작이 가능하면서 게다가, 도로에 연결된 지역의 마을이나 도시에 경제활동이나 여러 교류에도 영향을 주니 공병대 역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중요하군요.

  • @제머슨
    @제머슨 2 года назад

    영상 더 주세요 더

  • @Asgfff31
    @Asgfff31 2 года назад +1

    박사님 요즘역사공부 다시하고있는데 너무좋네요

  • @fourtytwo-anonymous
    @fourtytwo-anonymous 2 года назад +2

    11:18 아카조나에(?) 호플론(?)과 파비스(?), 15:30 전투공병 sapeur ... 문화권이 달라도 결국 비슷한 것들로 수렴하는 건 숙명일까요.

  • @박준석-b4k
    @박준석-b4k 2 года назад +1

    잘들었습니다

  • @g0nhae
    @g0nhae 2 года назад

    06:30 국가의 통제로 모두의 이익이 아닌 어느 한 쪽은 손해를 보지만 1득1실로 조정이 된다는 취지의 말씀은 이해했는데요, 제 착각일 수 있지만 소금값으로 손해를 보는 쪽의 좌우 방향이 바뀐 것 같은데 꿀까지 2연타를 맞으면서 한 쪽만 계속 손해 보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아서요ㅋㅋ 이런 사소한 재미도 의도하신 거라 믿고 잘 보고 있습니다~

  • @keithcho4535
    @keithcho4535 2 года назад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으로 알고있는데요...
    검색해보니 그게 맞는듯.
    중학교 때 역사쌤이 풀네임은 알아야 하는 위대한 대왕이라고 하셔서 반전체가 외우기 시작했음.
    79년도 일이였음~^^

  • @Dog-xl7ms
    @Dog-xl7ms 2 года назад +1

    너무 재밌어요

  • @Dylan-rn7ey
    @Dylan-rn7ey 2 года назад +4

    3년 전쯤 토전사로 교수님을 우연히 처음 알게 됐고, 이 후로 교수님께 많이 배우고 있어요! 너무 고맙습니다.

  • @아..대한미인국추모성
    @아..대한미인국추모성 2 года назад

    난 가끔 꿈을 꾸면 황량한 벌판인 고구려가 떠오른다 그리고 조선시대 달빛에 대가집 집 구튕이가떠오르기도 하고 꿈에도 나올때도있고 그냥 떠오를때가 있고 고구려 벌판을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고 조선의 대가집 달빛의 귀퉁이는 편안함이 이루 말할수가 없고. 그 치만 두시대 중 한곳으로 다시 돌아 간다면 황량한 벌판의 고구려로 돌아가고 싶다.. 진짜 전생은 있는것인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전생이 진짜 있던건지 궁금하긴 해요

  • @독로달드
    @독로달드 2 года назад +1

    이번엔 별 내용이 없네~|

  • @최석호-n4g
    @최석호-n4g 2 года назад +3

    와 신난다

  • @verona-ne3qw
    @verona-ne3qw 2 года назад

    제일 궁금했던 왕입니다..

  • @김성진-w8s
    @김성진-w8s 2 года назад +1

    그럼 도요토미는 나쁜사람인가요?
    광개토대왕은정복왕이고 위인인데 기준이 다른가요?

    • @베르깅게
      @베르깅게 2 года назад

      역사에서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있을까요? 일본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표현하는건 우리가 고쳐야할 폐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네디지단-v5m
      @지네디지단-v5m 2 года назад

      아직 이 영상을 다 보지는 않았어요 근데 님 말씀 항상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정복은 착한정복이고 다른 나라가 하는건 나쁜침략인가 항상 생각했었는데 솔직히 우리가 못쳤으니 아쉬운소리지 약소국 징징이라고바께 생각이 안돼서요ㅠ

    • @앙마와춤을
      @앙마와춤을 2 года назад

      풍신수길이가 일본통일로만 끝냈다면 광개토대왕과 동급.
      광개토대왕은 요동지역에서 늘상 분쟁이 있어왔던 상황을 통합한 것이고, 이건 일본 전국시대의 통일과 의미가 같음.
      하지만 풍신수길이가 바다 건너까지 군대를 보내서 대륙진출(대륙정복)을 꿈꾼 건 징기스칸의 몽골군이나 유럽 정복을 시도했던 나폴레옹,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나 일본 군국주의 집단과 의미가 같음.
      또 일본과는 군사적으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고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도 없었던 조선을 침략한 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음.

    • @올리비아-l5i
      @올리비아-l5i 2 года назад +2

      도요토미도 일본에선 위인입니다. 역사는 상대적인거죠. 광개토대왕도 중국 숙신이라는 나라 토욕혼 입장에선 침략자죠.

  • @예의가없어
    @예의가없어 2 года назад

    방패병은 방진이죠 한국사극에서 전쟁신에서 진형을 갖추고 싸우는 것좀 구현했으면 좋겠어요ㅠㅠ

  • @s.o.j4656
    @s.o.j4656 2 года назад

    프랑스의 일 드 프랑스 영지에서 프랑스를 가져온 것과 같은 방식이었군요!

  • @gleamkimart
    @gleamkimart 2 года назад +8

    정말 미스테리한 왕.. 사방에 적국과 전쟁을 할려면 전혀 다른 지형들에서 전투를 했을텐데
    군사 징발이라든가 군량미 운반, 전투 방식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정말 아쉬운 왕이기도 한 거 같아요

    • @Tradesoul2025
      @Tradesoul2025 2 года назад +6

      전쟁에서의 승리 기록을 봤을 땐 그냥 타고난 천재 지휘관 타입이었을 겁니다. 전사의 기질도 가진....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걸 봐서는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는 수준을 넘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귀족들과 주변의 이민족들도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로 평가 받았을 겁니다. 만주 지역의 말갈족의 복속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던 것 같은데 유목민족, 반농반목 민족의 특성을 봤을 때 광개토대왕을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하고 전리품을 나눠줄 강력한 지도자로 봤을 가능성이 크죠. 그들의 이합집산은 그런 식으로 빠르게 진행되니까요.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고구려군은 부여식 병농일치 호민개병제로 징집한 보병,
      맥족(말갈)식 부족연합체로 구성한 경기병,
      그리고 중세유럽의 기사와 유사한 '좌식자'들로 이루어진 최정예 상비군인 중장기병.
      3대 편제로 이뤄졌다고 봐야지.
      보급은 대부분을 현지조달 즉 약탈에 의존했을거다.
      광개토왕의 추정 진군로나, 일본서기에 기록된 엄청난 난민 발생 등으로 추정가능하지.
      아마 아주 잔혹무도한 군대였을거야. 몽골군처럼.

  • @mooi582480
    @mooi582480 2 года назад +1

    박사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영상 부탁드릴게요 왜 러시아군이 고전하는지 궁금해요 ㅠ

  • @남박점식-r8z
    @남박점식-r8z 2 года назад +1

    가야군사도 참으로 궁금합니다
    가야의역사도 강의 한번 해주세요

    • @미제드론
      @미제드론 2 года назад

      가야군사의 모습은 일본 고분시대 갑주무기와 거의 같습니다. 특히 건담머리처럼 생긴 충각부주나 미비부주(챙투구) 등은 가야 왜가 완전 동일합니다. 고분시대 유물 검색하시면 다양한 무장들을 보실수 있습니다.

  • @jwahnmike
    @jwahnmike 2 года назад +1

    그렇다면 광개토대왕이 별다른 업적이 없었다면 그 시호가 국강상왕이 되었겠네요.

    • @예의가없어
      @예의가없어 2 года назад +1

      네 다들 무덤위치로 후대에 부르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삼성왕(삼상동에 묻혔다고 가정)
      백제면 석촌왕(석촌동에 무덤들)

    • @Hyuchan1002
      @Hyuchan1002 2 года назад

      호태왕이라는 칭호는 본적이 없네요

  • @삼칠이십일
    @삼칠이십일 2 года назад +1

    중국도 영지이름으로 왕을주죠 진류왕 한중왕 한왕 진왕 촉왕 등등..

    • @Hyuchan1002
      @Hyuchan1002 2 года назад +1

      중국도라고 하기에는 무덤 위치로 임금 칭호를 정한 사례가 없어서 ㅋ

  • @lovebaskets8784
    @lovebaskets8784 Год назад

    썸넬 다시 만들어야..

  • @schakal1721
    @schakal1721 2 года назад +7

    고담덕
    광개토태왕처럼 우리민족 역사에서 이런 정복군주가 또 있을까요?
    실로 위대한 민족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1

      니들 기준에 의하면 같은 민족인 잔국을 ㅈㄴ게 두들겨패서 없애버린게 최고업적인 왕이 민족의 자존심? ㅋㅋ
      참 특이한 뇌구조야.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j3459 ㅋㅋㅋㅋ
      어설프게 주워듣고 막 갖다붙이니 이딴 개솔이가 되지.
      좀 제대로 공부를 하든가
      ㅇㅏ닥을 하든가 ㅋ
      박씨신라는 오환계 유목민으로 추정된다.
      혁거세 남해 유리 시대 기록은 대부분 신라가 금성에 도읍하기 전 거수=거수칸들의 행적을 일본서기식 견강부회로 조합한 이야기들로, 역사적 실체가 희미하게 투영되어 있으나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탈해는 신라왕이 아니었고, 별개 국가의 기록이 신라본기에 합쳐진 것이다. 탈해의 후손들이 훗날 신라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주일대, 금성에 처음 도읍한 실제 시조는 5대 파사이사금이다. 파사는 페르시아, 서역을 뜻하며, 경주일대의 토착 진한인들이 보기에 왕의 외모가 낯선 서양인 같아서 그리 이름한것이다. 당대에 처음 이주해온, 북방 이종족인 것이다. 김씨왕조의 시조 내물이사금도 본래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웠음을 일본서기를 통해 알수있다.
      8대 아달라=아틸라 이사금은 박씨신라의 최대 판도와 최대 군사력을 떨쳤던 전성기 왕인 동시에, 박씨왕조의 마지막 왕, 망국왕이다.
      그는 한때 엄청난 무위를 떨치며 삼한을 공포에 빠뜨렸으나, 결국 패망했다.
      로마를 짓밟았으나 1대만에 망한 훈족의 짧은 전성기, 아틸라의 행적과 유사하다. 아달라이사금의 왕호는 후대에 붙여진 것으로, 훈족 아틸라와 비교하여 그 대략적 의미를 유추할수 있다. 행적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박씨신라 김씨신라의 건국세력과 로마를 짓밟은 훈족은 모두 유라시아 스텝유목민으로 언어 인종 풍속이 유사하다.
      아달라=아틸라는 거기서 유래한것이지, 둘이 동일인물은 아니다.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j3459 신라 왕위는 처음부터 세습제였다.
      족장들이 돌아가며 왕을 해먹었다는 소설은 삼국사기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서 나온 망상일 뿐이다.

  • @jujijtoh
    @jujijtoh 2 года назад +3

    저는 안악3호분 대형이 퍼레이드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고, 동수의 경호대형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치위치를 따져보면 공방의 밸런스와 기동전력의 좌우배치, 근접경호 등이 충분히 고려되었다고 봅니다. 공병도 전투공병 즉 실전에서도 접전이 가능한 병력이겠죠. 또한 복장과 투구를 포함한 무장도 보여주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실제 완전 무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설명 잘 들었습니다.

  • @gb947
    @gb947 2 года назад +3

    삼국사에 광개토대왕이 백제와 같이 유연제노오월 을 점령해서 가졌다고 하는데
    어덯게 생각하십니까?

  • @kkuda2303
    @kkuda2303 2 года назад +1

    박사님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토전사 초기랑 비슷 한거 같은데 어디 아프시거나 그런게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 @chickkidnapper
      @chickkidnapper 2 года назад

      직접 빼셨다고 하셨습니다

    • @kkuda2303
      @kkuda2303 2 года назад

      @@chickkidnapper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올리비아-l5i
      @올리비아-l5i 2 года назад

      다이어트하셔야죠. 그래야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우리곁에 있어주심.

  • @전으뜸-p1n
    @전으뜸-p1n 2 года назад +4

    우리 교수님 유투버 공식을 약간만 따르면 구독자 수 확 늘어날텐데 왜 안 하시는거죠?ㅠㅠ
    항상 잘 보고 있고, 응원하고 있습니다만, 구독자 수가 안 늘어서 아쉽습니다ㅠㅠㅠㅠㅠ

    • @최원준-k4b
      @최원준-k4b 2 года назад +2

      안됑... 나만 알고시퍼잉

    • @전으뜸-p1n
      @전으뜸-p1n 2 года назад +2

      @@최원준-k4b 구독자 수 많이 늘면 퀄리티가 더 좋아질건데도요?ㅋㅋ

    • @쁍삡
      @쁍삡 2 года назад +1

      @@최원준-k4b 나만의 작은 박사님 ㄷㄷㄷㄷㄷㄷ

  • @TV-vl2qp
    @TV-vl2qp 2 года назад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게 명확한 명칭아닙니까? ㅎㅎㅎ....

  • @limezan6276
    @limezan6276 2 года назад

    토전사 ㅠㅠㅠㅠ 보고싶습니다 솔직히 나폴레옹도 안끝났는대 ㅠㅠ 토전사가 끝나다뇨 ㅠㅠ

  • @iiiiliililiii
    @iiiiliililiii 2 года назад

    통일신라와 조선은 광개토대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하네요.

    • @위장염
      @위장염 2 года назад +1

      적어도 조선대 후반기까지는 광개토대왕에 대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삼국사기 기록에 묘사된 광개토는 그냥 평범한 왕 1인 느낌이었거든요.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건 근현대에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고 연구된 이후입니다. 그 비석에 그분에 대한 치적이 제대로 묘사되어 있었죠.

    • @2asd423
      @2asd423 2 года назад +1

      둠조선은 비문보고도 금황제 비석인줄 알정도로 무지했음
      고굴땅이 평안도까진줄알고 조선이 그때영토의 두배인데 왤케약하냐 이러고앉았었고

    • @gleamkimart
      @gleamkimart 2 года назад +1

      우리나라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에 작성된 것이고, 그 앞전 시대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곤 하나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대한 인물평을 재대로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두번째로 조선시대엔 명을 숭배하는 숙명에 대한 시각이 강했기 때문에 중화사상과 유교적 영향을 받아 기록을 한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광개토대왕 문만 아니라 삼국시대 인물들에 대한 평이 대체적으로 높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 @2asd423
      @2asd423 2 года назад

      임용한 잘가르치는데 조선뽕이 너무심함 자기전공이라 팔이 어지간히 안으로굽음
      고굴쪽도 지식이짧고
      예전에 무슨 고굴전성때 남쪽인구뽑아서 북쪽에심었어야된다는 조선스러운 발상 전개하던데
      한국사 최악의 버러지국가가 조선인데
      조선은 진짜 어떤측면 어떤면모로봐도 좋게봐줄수가없는 모든방면으로 버러지국가임

  • @ChoiZe-t9m
    @ChoiZe-t9m 2 года назад

    공병출신들은 뿌듯하겠구먼
    하긴 현대전도 공병없으면 아무것도못함

  • @SG-wf8sn
    @SG-wf8sn 2 года назад +1

    현대군도 공병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우리군대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죠.

    • @hp0635
      @hp0635 2 года назад

      글쎄 미군 빼면 그나마 한국이 공병 좀 높게 치는 나라 아닌가

    • @빈티지시계사랑
      @빈티지시계사랑 2 года назад +1

      군미필자거나 개공익출신이구만!

    • @앤드류존슨
      @앤드류존슨 2 года назад

      우리나라가 소홀히 하는 병과는 해병대지.

    • @로갓-i8w
      @로갓-i8w 2 года назад

      @@앤드류존슨 그건 ㅇㅈ

    • @성이름-m3u
      @성이름-m3u 2 года назад +2

      국군이 소홀히 하는건 장병대우지

  • @JungSungMock
    @JungSungMock 2 года назад +2

    우리나라에 정복왕 칭호가 있는 군주라니 신기하긴 하다 ㅋㅋ

  • @삼칠이십일
    @삼칠이십일 2 года назад +2

    광개토대왕이 아쉬운점은 젊은나이에 죽은거죠 향년 39세

    • @dydghl0078
      @dydghl0078 2 года назад +1

      그만큼 주몽처럼 전투를 많이해서 병난거임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추모는 유리의 쿠데타로 죽었을 가능성이 큼.
      광개토왕도 암살되었을 가능성이 없지않음. 왕실의 불미스러운 일을 감추는건 동이족놈들의 종특임.
      군사작전을 많이 하며 피를 몰고다닌 왕에게 원한품은 적들이 많은건 당연한 이치.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2 года назад

    나중에 동천왕 대의 위나라 전쟁도 다뤘으면 좋겠습니다.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정복전쟁과 수나라, 당나라 전쟁에 대해서는 많이 다룬 것 같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쟁이 위나라 관구검과의 전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고구려 최대 위기 중의 하나여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깊었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2asd423
      @2asd423 2 года назад +1

      거품기록이라 적당히 걸러서 보면됨 위군1만이라했는데 동천왕은 위의대군이 우리소군만 못하다고했고 1만8천 죽이고 기병1천 도망갔다고 했는데 정작 13년뒤에 5천기병 동원했고
      전쟁직후에 신라 공격해서 석우로 패주시켰고
      그리고 모르지않음 오히려 대부분이알고 중천왕이나 신대왕북경공격을 모르지

    • @winshc
      @winshc 2 года назад +1

      동천왕보다 더 위기였던 최대 중의 최대 위기는 고국원왕의 평양성 전투 아닐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이 직접 전투에 나서 화살을 맞고 전사까지 했으니 말이죠. 강대국 고구려 역사에 왕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역사가 전무후무한데 그걸 잽싸게 수습한 고구려의 역량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고 할 수 밖에요.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2 года назад

      @@winshc 하긴 그때는 수도도 선비족한테 다 털리고, 왕태후와 미천왕의 유해까지 인질로 잡혀버린 최악의 상황이었죠.

    • @2asd423
      @2asd423 2 года назад +1

      @@user-yc2hg4pq4s 반면에 고무 주력군 5만 그대로살아있어서 동천왕때보다나은상황
      평양도 먹어놔서 복구빠름

  • @jkim949
    @jkim949 2 года назад +1

    우리역사의 뿌리 가야사를 찾고 가야 영토를 찾아야 됩니다. 삼한의 위대한 역사^^

  • @김고기-y7p
    @김고기-y7p 2 года назад

    다욕함 폭력ㅇ지

  • @kkuda2303
    @kkuda2303 2 года назад

    와우! 2빠!!!

  • @버덩도사
    @버덩도사 2 года назад +3

    그래서?
    그정도는나도알어
    뭔 개소리야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2

    일본학계의 소위 임나일본부설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학계의 괴상한 통설에 비하면,
    오히려 일본학계의 학설이 더 진실과 가깝다.
    국뽕과 반일감정을 버리고
    오직 진실을 추구하는 맑은 눈으로, 얼마없는 기록에 남은 삼한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 @일루바타르-e5d
      @일루바타르-e5d 2 года назад

      친일사학자들은 중국에서 공정하는 고구려 역사보다 더 축소 시켜놨는데 배워처먹은 일본스승들의 지식과 다르다고 이 사료가 잘못된다며 역사 사서를 부정하는 메커니즘이 역사학자라고 불릴 자격이나 있는지 모를 사기꾼새키들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2 года назад

      후쿠시마 물엔 방사능이 없으니 거기가서 살아라

  • @달콤한부드러움
    @달콤한부드러움 2 года назад +1

    정복군대의 필수요소인 종합군, 표주화, 국가적 통합군... 반대로 생각해보면 병사 하나하나를 소모품으로 얼마나 잘 쓸 수 있는 유능한 장교들을 얼마나 잘 길러낼 수 있고 또 얼마나 많으냐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게 리더쉽의 정도이기도 하겠지만요 ㅠㅠ 남의 나라 전쟁에서 쓰러져가는 안타까운 생명들에 분노할 줄 알면서 우리가 역사에서의 '정복'엔 왜 그리 열광가 좌절을 하는지... ㅠㅠ

  • @jkim949
    @jkim949 2 года назад +1

    가야가 진짜 정복나라 일수도...
    금관가야의 지배력이 사로국 수도를 점령하고 전라도 남부,일본열도까지 정벌했을수도 있다고 보여짐...
    삼국에 가야는 언급조차하지 않는 가야의 진짜역사를 한국 사학자들은 서로 다투기만해서 가야사를 일본사로 편입시키고 있는 황당한...
    한국에서 조차 외면 받는 가야사...
    불교를 최초로 인도로 부터 받아들인것도 가야이고 가야사를 밝히면 역사책이 바뀌니까 쉬쉬하는것 같음...
    6세기에 지증왕때 비로소 왕을 새운거랑 1세기때 왕을 세운 가야는 비교불가...
    고려때 지은 삼국사기가 가야사를 엉망으로 만듬...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가야는 인도/월남계 유이민이 세운 해양국가다.
      그 전성기인 수로왕/거등왕대, 서기1세기 말-2세기 초의 영역은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유역과 일본열도 구주 전역에 걸쳤다. 신라도 그 복속국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다. 오래가지도 못했다. 동이족 역사는 그만큼 치열한 피의 역사였다.
      3세기 초 5대 이시품왕대에 한(백제) 진왕이 주도한 대대적인 침공(포상팔국의 난)을 받아 멸망했다. 본국이 망하자 구주지역의 왜인들도 여왕을 세우고 독립했다.
      5세기초 광개토왕의 남정으로 한(백제)이 망하자 다시 가야란 이름으로 부활했으나, 힘없는 동네국가였다.
      지금 한국에서 '가야 유물'이랍시고 홍보하는 4세기대의 화려한 무구 유물은 가야의 것이 아니다.

  • @시골의원
    @시골의원 2 года назад +2

    중국내에 릉 무덤이 있는데 고구려 백제 땅을 축소하는 역사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 @jkim949
    @jkim949 2 года назад

    사로국과 그외 주변국이 다스리던 시절은 그냥 신라라고 표기해서 촌장들이 돌아가면서? 다스리던 시절을 신라라고 표기하는것도 문제인듯...
    왕를 세우고 왕권를 강화한 시기가 주변국에 비해 훨씬 늦어서 김부식은 그냥 신라로 편입시키고
    가야사를 축소하고 삼국에는 끼지도 못하게 만든것.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촌장들이 돌아가며 다스리던 시절 따위는 없다. 망상 즐.
      삼국사기의 신라는 박씨 서라벌 석씨 사로국 김씨 신라 3개 왕조를 한 국가로 합쳐놓은 것이다.
      한국인들이 신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나라는 김씨 신라다. 박씨 석씨의 나라는 한국의 고대사학계가 존재를 부정한다.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j3459 게세르칸=거수칸= 거수한=거서간은 거수들의 칸, 대족장이란 뜻이다.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다.
      혁거세=혁거수는 밝은 즉 현명한 거수라는 뜻이다.
      거수는 삼한에서 단군을 섬기는 부족장, 제후의 호칭이다.
      특정인의 시호일수도 있으나, 어차피 기록된 행적은 거의 없다. 역사적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 @anonymous-wh8sf
    @anonymous-wh8sf 2 года назад

    그래봐야 중국에 조공하던 소국.. 기록에 다 나옴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뭐 영국왕이자 노르망디공인 에드워드도 프랑스왕에게 조공하는 신하였지.
      그리고 그 종주국을 쳐들어가 개발살 내버렸지.

    • @고담덕-r9g
      @고담덕-r9g 2 года назад +1

      중공에 조공하던 나라가 어떻게 705년를 이어갔나요? 그기간에 중공35개 왕조가 쓰러져갔는데 무슨 소국이냐? 역사를 똑바로 배워라

    • @Werner4voss
      @Werner4voss 2 года назад +1

      조공의 개념도 모르는 놈ㅋㅋ 공부좀더 하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