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대생활 건봉산에서 했어요. 산봉우리 마다 군대가 머물려서 진지 만들어 놓고 머무는데 무엇으로 식량 장비 조달해요. 그래서 기마대가 있었어요. 자동차 길 닦기지 못한 지역은 말로 수송했어요. 1970년대 초반 군대 생활이에요. 1980년대 들어서야 전방에 자동차길 전부 닦긴 것으로 들었어요.
거의 90분의 긴 강의 인데도 재미있게 잘 봤어요. 특히 활 잘 쏘는 양규, 제2차 거란전 에서 세세한 활쏘기 요령과 상세한 현실적인 묘사는 훌륭했어요. 우리나라 국궁이 장력이 매우 쎄서 사정거리가 매우 길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서 유익했어요. 동이족(東夷族)이 그냥 붙은 별명이 아닌 듯합니다.
통주전투에서 고려군은 검차를 바로 돌격시킨것이 아니라 맨앞줄에 방패병들로 방진을 짜고 서있었더군요 방패로 가려져 있어서 그런지 뒷줄에 있는 검차들이 안보이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기병돌격으로 방패병들 치고 나갈수 있으니 그대로 돌격 한건데 방패병들이 뭉치더니만 그사이로 검차들이 나오고 일렬로 서서 전진을 하니 거란기병들이 방향을 틀지를 못하더군요
ㅎㅎ 저도 어렸을때 면내 지주 아들이 친구라 그집에 따라갔다가 국궁 처음 봤는데, 이걸 사람이 당긴다는게 이해가 안될정도로 엄청나 더라구요. 제 친구(지주집 아들)는 경험이 있어서인지 심호흠 한번하고 당기긴 당기더라구요. 대충 14살 때쯤인것 같은데, 국궁은 제 짧은 경험으로는 정말 한발 한발 혼신을 다해야 쏠수 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임 교수님 정말늘 재밌게 교수님 말씀을 듣고 있고 많은 부분을 군 출신으로공감하고있습니다 다만 지금 거란전쟁 사든지 기타 홍건적의 난등 ..제가생각해도 한족 농민반란군인 홍건적이 당시 불노지이고 약탈할게없던 만주룰지나 한반도에 침략 했다는것은 말이 안되고 당시 고려땅이 산동성을 중심으로 있었다고 봅니다..물론 교수님은 이를 부정하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관 무관 구별을 생각할 때 자꾸 갑사와 무관을 혯갈려 해요. 무관은 한문 구사력이 있어서 전장 보고서(장계)를 쓸 수 있어야 되요. 한문 구사를 할 능력이 있을 때까지는 문관 무관 구별이 없이 공부하고 한문 구사력이 생긴 이후 문관은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무관은 육도삼략을 시작으로 병서 공부를 먼저해요. 갑사들은 무술만 하는사람들이구요. 그래서 무관은 단순한 무술 전문가가 아니고 병법 전문가를 말하는 거에요. 당연히 문관도 병서 많이 공부하면 군대 지휘할 수 있지요.
제 아버님이 1916년생입니다 저를 1970년에 낳으셨지요. 임펄전투에 참전하셨어요 여명의 눈동자 보면서 저에게 저건 거짓말이다. 아버님은 강제 징집된 조선 사람은 있지도 않았고 총알받이로 쓰지도 않았다. 그이유는 앞에 서는 군대는 최정예를 쓰고 이유는--- 뜷리면 부대 전체가 전멸 당할수 있기 때문 총알받이로 쓸수있는 작전이 도대체 뭔지 이해도 안간다. 식량이 없어 굶었다 하는데 그것도 말이 안된다.한끼만 굶어도 동네 뒷산도 배고파서 못간다.군대는 총과 대포를 끌고 행군하고 진지구축,참호를 파야하고 심지어 목적지에 도착해서 적과 전투를 해야한다. 그런데 군대가 굶고 배고파서 뱀잡아 먹고 시체 뜯어 먹는다고??? 후퇴할땐 보급품 다 던지고 오느라 굶은건 맞다.그리고 아버님이 군대 갔을때 월급(쌀 3가마니 사고 남음. 교사 월급 3배정도)도 잘받았고 끌려온 사람 한명도 못봤다. 본인이 일본군 장교 되었다하니까 동네에서 돼지잡고 잔치 열어주면서 내자리도 부탁드릴게요. 하는 사람 뿌리치느라 너무힘들었다. 하셨어요. 그리고 조선인이라고 차별을 했다고 하는데 어느 지휘관이 100명이 힘을 합쳐서 싸우지 그중 따로 수십명 차별해서 죽게 내버려 둔다고??? 그럼 남은 사람들이 숫적 열세가 될텐데...그런 바보같은 지휘관이 있을까? 그런것 본적 한번도 못봤다.---1944년에 징용 가신분은 대우도 않좋고 끌려간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해방후 들었다 하셨어요.
국가의 영토를 대통령이란 작자가 팔아먹는 세상이 되니까 이런 황당한 댓글도 올라오는구나.이거보쇼.전쟁사나 하다못해 태평양전생사는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댓글 씁시다.과달카날전투를 비롯해 티니안.오키나와등 얼마나 많은 조선인강제 징용자들이 전투중에 희생 됐는데 이런 개소리를 하는가.버마전선 이 궁금하면 무다구치 렌야라는 일본군 장군을 검색해 보쇼.하긴 논리적.역사적. 객관적.세계사적 증거자료에서 막히면 대부분 국가반역자들이 말하는 최종 논박은 오직 한가지더라:종북 좌파 빨갱이 몰이. 추신:3년전에 자기 할아버지가 친일행위자 였다고 회식자리에서 당당히 씨부리던 직장상사가 주절거리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땐 조선이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일본군 장교면 적극적으로 스스로 지원해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간 것인데 학대받을 이유가 있나? 개도 말 안 들으면 두들겨 맞기도 하고 주인에게 잘 따르면 기특해서 귀염받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임진왜란 때도 초기에는 왜군들이 굳이 조선 민간인들을 학살하지 않도록 규율이 있었다. 조선을 정복하면 지들에게 세금 바치고 먹여살릴 자원이니까. 하지만 정유재란 때엔 달랐지. 어차피 정복은 불가능해 보이니 약탈하고 악에 받쳐 복수하는 것밖엔 없었지. 일본이 잘 대해 준건 이완용, 송병준 같은 협조자였지 안중근, 윤봉길은 아니었잖아. 일본에 대우 잘 받았으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박정희도 일본군 장교가 되기로 한 건 큰 칼 차고 말 탄 일본헌병이 멋있어 보였었기 때문이라지. 그래서 술 취하면 추억에 빠져 일본군 군가도 불렀다는데? 아버지가 참 자랑스러운가 보네. 나는 할아버지가 아주 어릴 때 기억 밖에 없는데 흰 수염에 항상 도포를 입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계셨지. 아버지 말씀이 원래 할아버지는 대구 달성이 고향인데 전라도에 정착한 이유가 일제 때 무슨 거창한 독립운동가도 아니었고 단지 '단군'을 모시던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하급 직책을 가졌다는 이유로 해방 전까지 수배받아 쫓겨다녔기 때문이었다 했다. 돌아가신 큰 아버지가 한쪽 귀 고막이 찢겨 들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할아버지 체포하려 큰 아버지를 순사들이 잡아가 3,4일 동안 협박하고 폭행한 후유증 때문이란다. 당시 큰 아버지의 나이가 겨우 7살이었단다. 나는 내 할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은 없어도 당신 아버지보다 훨씬 자랑스럽다.
일 잘하시네요... 무편집 풀영상이 근본이죠~ 감사히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내가 군대생활 건봉산에서 했어요. 산봉우리 마다 군대가 머물려서 진지 만들어 놓고 머무는데 무엇으로 식량 장비 조달해요. 그래서 기마대가 있었어요. 자동차 길 닦기지 못한 지역은 말로 수송했어요. 1970년대 초반 군대 생활이에요. 1980년대 들어서야 전방에 자동차길 전부 닦긴 것으로 들었어요.
오 제가 아는 건봉산이 맞다면 저는 까치봉 있었는데 예전에는 말로 수송 했다니 어우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우린 이런 컨탠츠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특히 임용한 선생님의 전쟁사 이야기는 너무 너무 소중합니다 ㅜㅜ
앞으로 임 박사님 모시고 유익한 영상 많이 준비하겠습니다 ^^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동감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가르쳤으면 하는데 아쉽네요...
박사님 감사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니올라
답댓글 감사합니다.
언제나 실질적이고 인간의 대한 이해가 같이 있는 설명을 해주시는 임용한 소장님!! 자주 불러주세요
소장님 자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
임용환 교수님의 태클에 대한 장혁진기자 대응
19:43 미소으로 무마해보려 시도
24:39 계속되는 태클에 살짝 삐졋으나 무표정으로 대응후 화제를 돌리려 애씀
50:23 더이상 참지못하고 드디어 토를 달음
웃자고 써봄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제 반응을 재밌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머니올라 참으로 애사심이 대단하심니다.
감사감사
고맙습니다!
노량편도 기대할게요. 잘봤습니다!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거의 90분의 긴 강의 인데도 재미있게 잘 봤어요.
특히 활 잘 쏘는 양규, 제2차 거란전 에서 세세한 활쏘기 요령과 상세한 현실적인 묘사는 훌륭했어요.
우리나라 국궁이 장력이 매우 쎄서 사정거리가 매우 길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서 유익했어요.
동이족(東夷族)이 그냥 붙은 별명이 아닌 듯합니다.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긴 시간의 영상을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요즘같은 짧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많은 시대에서 이렇게 긴 분량을 이렇게 재미있게 설명하시는 분 귀합니다
편집하신분들 서운하실수도 있지만 무편집의 맛이 굉장하네요 ㅎㅎ
박채빈 편집자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아주 길게 강의해 주셔서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임용한 박사님 전공에 따라 "노량"편도 가즈아ㅏㅏㅏㅏ
잘 준비해보겠습니다 ^^
별생각없이 봤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밤 아주 늦게까지 되었네요 ㅎㅎ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용한 아재는 무적권 좋아요 박고 시청이지 ㅎㅎ
감사합니다^^
임박사님이 최고존엄이심!
더 자주 불러주세요!!!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혁진이형, 임용한 박사님 잘봤습니다. 후속편 기대합니다.❤
노량 기대하고있습니다!!
잘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많은 배웠습니다 넘 좋아요
고맙습니다 ^^
임용한 교수님 모셔서 여요전쟁얘기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재밌네요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담당자분 보너스 많이 주세요 너무 좋습니다ㅋㅋㅋㅋㅋ
편집자님께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
이런 귀한걸... 잘 먹겠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
임박사님의 유쾌한 강연 풀영상이라니!!! 감사합니다 😊
진행자분도 위트있고 깔끔한 티키타카 좋네요 ㅎ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질문도 좋고 답변도 좋고 잘보고 가요
임용한 교수님 나이 62세 / 1961년 12월 09일
최수종 배우님 나이 61세 / 1962년 12월 18일
토전사 때부터 임용한 박사님 팬입니다 ㅋㅋㅋㅋㅋ 계속 나오시니 좋아요./
임박사님.? 토전사 시절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샤를. 허준. 윤아나
저도 토전사 재밌게 봤습니다 ^^
@@머니올라 토전사 폐지한 놈 문재인을 성토합시다..
미공개분이 중요하고 훨씬 더 알찬 내용이 많네요. 공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재미있게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끔 박사님을 까는사람들이 있는데 당연 최고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와! 미공개분 포함 풀버전 영상에 임박사님과 노량 분석 예정까지! 기대되네욤!ㅎㅎ
잘 준비해보겠습니다 ^^
노량 분석영상도 너무 기대됩니다 😊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쟁광 박사님의 전쟁 드라마 해석이라니 이건 귀하군요..
전쟁광이 아닙니다 ^^;; 전쟁사 연구자이십니다 ㅎ
전쟁광? 뭡니까
왔다 내 장거리 여행 라디오!!
안전 운전 하셔야 합니다 ^^
기자님도 공부를 많이 하시고 이야기를 한 티가 많이 나서 보는 입장에서 정말 감사했어요 나중에 또 좋은 방송 부탁드려요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고맙습니다 ^^
물들어올때 노젓는 머니올라 칭찬합니다 ㅋㅋㅋ 🔥
칭찬 고맙습니다 ^^
역시 박사님 최고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
진짜 잼있게 보고 듣고 있습니다.!!
옛날 갑옷위에 망토 걸치죠 ^^
혹시 그거 왜 그런지 아세요?
망토의 제질은 비단입니다
말을 달리는데 뒤에서 활을 쏘면
튕긴답니다 절대 못뚫습니다
그래서 망토를 둘렀습니다
햇빛 가릴려고 한거 아닌가요?
@@박종혁-l2o 과학적으로 밝혀진겁니다
@@박종혁-l2o 네지오 실험 영상도 있습니다
넷지오에 실험영상이있습니다
장혁진 기자님 사랑해...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저도 구독자님들 사랑합니다
박사님 설명 너무 쉽고 재미남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재밌게 잘 봤어요 ㅎㅎㄹ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량편 존버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셔요 ^^
국방티비 토전사 멤버 이세환 기자 임용한 교수님 자주 불러주세요 밀덕계 역덕계 아이돌이신 분들이라
자주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박사님 진짜팩트폭격😊😊 항상감사드립니다❤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
통주전투에서 고려군은 검차를 바로 돌격시킨것이 아니라
맨앞줄에 방패병들로 방진을 짜고 서있었더군요
방패로 가려져 있어서 그런지 뒷줄에 있는 검차들이 안보이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기병돌격으로 방패병들 치고 나갈수 있으니
그대로 돌격 한건데 방패병들이
뭉치더니만 그사이로 검차들이
나오고 일렬로 서서 전진을
하니 거란기병들이 방향을 틀지를
못하더군요
유튜브의 순기능!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고려거란 전쟁 스포를 막기위해 국사 점수는 포기한다
ㅎㅎㅎ 포기는 하지 마셔요
1:06:30 스펙이라니까 이해가 되네요
토익도 점수 높고
군필전역도 하고 그래야 고위직 하고 그러겠네여
거란 기병은 당시에 말 열필씩 가지고 다녔다라는 얘기가 있었음
임박사님 고려에 살다오신분 같네요
전쟁씬없는 고거전보다 소장님 해설영상이 훨씬 재미있네 ㅋㄱㅋ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역사의 기준을 임용한 선생님만 따라가는 편입니다
ㅎㅎ 저도 어렸을때 면내 지주 아들이 친구라 그집에 따라갔다가 국궁 처음 봤는데, 이걸 사람이 당긴다는게 이해가 안될정도로 엄청나 더라구요. 제 친구(지주집 아들)는 경험이 있어서인지 심호흠 한번하고 당기긴 당기더라구요. 대충 14살 때쯤인것 같은데, 국궁은 제 짧은 경험으로는 정말 한발 한발 혼신을 다해야 쏠수 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그렇군요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런 컨텐츠 완전 소듕해....ㅠ....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미공개분 감사합니다
구독 부탁드립니다 ^^
전쟁은 싫다ㅡ 전쟁 없는 곳에서 살고싶다
임교수는 역사안에 경제를 풀이해줌 그래서 무조건 초빙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가 70살 입니다.
저희7대조부모 시대에만 햇어도 남,녀 상속권의 지분이 다르다고 안 봤습니다.
그때 그 할머님계서는 농지를2000평을 시집 오실때 가지고 오ㅕㅆ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집안 사정에 따라서 남,녀의 상속 재산이 달랏다고 봅니다.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
편집버전이랑 비교해서 말의 뉘앙스나 내용이 달라져버리는 부분이 좀 보이네요. 아무래도 편집하면서 말 앞뒤 잘라내버려서 그런거같은데. 역시 풀버전으로 봐야하네
풀버전을 즐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용한박사님 반갑습니다.^^
KBS는 진행자 님에게 상줘야 해요! 임박사님도 모시고, 진행도 매끄러우시고, 아는 것도 많으시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영상은 풀버젼
고맙습니다 ㅎ
mc 분 배경지식 겁나 많으시네 ㅎㄷㄷㄷ
진행자 장혁진 기자입니다 과찬이십니다 ^^
우리의 선비들은 몸과정신 수련을 했기에 군수라면 활도 잘 쐇을 것이며,병서도 읽고 아마도 무예도 어느 정도는 수련을 했다고 봅니다.
임진란 때에도 각 군수들이 전쟁에 참여를 했기에.
방패는 맨앞줄만 들고있으니 가능하지않늘까요?ㅎ
12세기는 전쟁의시대 였습니다
선조들 에게 감사드림니다
이 집 맛집일세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엥.. 한시간반? 풀버전인데 왜케 짧아요?
금과옥조같은 영상
훌륭한 비유 고맙습니다 ^^
30:20
선생님은 토전사때 이미 와룡이였음
투석기 고증이 잘못됐다고는 생각안하는게
저 당시 시대엔 인력식+무게추식을 병용하는 투석기가 존재했습니다
삼국지 할아버지 + 역사컨텐츠 = 치트키
할이버지라고 흐지마... ㅠㅠ
할아버지ㅜ 안 돼요..
자주포에서 웃었네요 😂
임 교수님 정말늘 재밌게 교수님 말씀을 듣고 있고 많은 부분을 군 출신으로공감하고있습니다 다만 지금 거란전쟁 사든지 기타 홍건적의 난등 ..제가생각해도 한족 농민반란군인 홍건적이 당시 불노지이고 약탈할게없던 만주룰지나 한반도에 침략 했다는것은 말이 안되고 당시 고려땅이 산동성을 중심으로 있었다고 봅니다..물론 교수님은 이를 부정하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미숫가루가 아닐까요?
재밌는 해석이네요 ㅎ
일본은 말은 산에서 키우고 말이없으면 산을 못간다 라는 말이 있던데 게다가 다게다나 신겐이나 다 산악지형 군주이고
왕족인 공주를 구타한 남편은 대체 무슨 깡이었을까ㄷㄷ
기억난다. 대각국사 의천 주전론
고중세사도 중요하고, 특히 근현대사가 더 중요하다.
말씀 감사합니다 ^^
"부부싸움도 전쟁이다 " 메모
그러고 보면 조선의 사료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여러 군데에 서고를 분산 배치를 한 결과군.
지금으로 따지면 클라우드
대상 탔네 ㅋㅋㅋ
최수종 형님 축하드립니다
상원수면 한 집단군사령관급 아닌가?
비슷한 거 같긴 해요 ^^ 다만 한 전쟁을 책임지는 총사령관급이라는 게 다른 듯 합니다.
통상시에는 각진과 성에는 담당무관이 있고 ᆢ이를 순찰하며 감독하는 도순검사 ᆢ여기서 도는 으뜸 도 ᆢ도읍 도통사 그런 우두머리 ᆢ전쟁시에 상원수즉 도원수위에 또 임명하곤했습니다 ᆢ현대 미국에서도 4성장군위에 2차대전시 원수계급을 만들었듯이 ᆢ맥아더원수ᆢ
맛있다 맛있어
특식이야
자막이 없으니 보기 불편하네요..
역사니 설명이 좀 필요할듯 합니자
자막까지 달긴 버겁네요 죄송합니다ㅜ
궁금한것은 단 한가지 치우다.
치우는 우리의 조상일까? 중공의 조상일까?
우리는 치우가 항상 등장하는데 중공엔 없는데..... 뭘까?
우리도 없어요 ㅎ
동이족의 조상이니 우리 선조긴한데 중국도 동이족포함 다민족 국가니 그들의 조상이기도하죠
8
문관 무관 구별을 생각할 때 자꾸 갑사와 무관을 혯갈려 해요. 무관은 한문 구사력이 있어서 전장 보고서(장계)를 쓸 수 있어야 되요. 한문 구사를 할 능력이 있을 때까지는 문관 무관 구별이 없이 공부하고 한문 구사력이 생긴 이후 문관은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무관은 육도삼략을 시작으로 병서 공부를 먼저해요. 갑사들은 무술만 하는사람들이구요. 그래서 무관은 단순한 무술 전문가가 아니고 병법 전문가를 말하는 거에요. 당연히 문관도 병서 많이 공부하면 군대 지휘할 수 있지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생각하는 병서 수준에서 생각할 때 ㅡ 박정희 대통령이 장교가 아닌 하사관 처럼 느껴졌었음. 왜냐구요. 박정희씨는 장수로서의 정신적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음. 누가 내게 설명해 달라고 하면 지금도 설명할 수 있음.
ㅣ
고려중기에 중국가마기술 수입했다는건 오류입니다
k9 자주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반 빼고 국뽕+발암 5대5로 잘 석은 전형적인 사극
고려거란전쟁 많이 봐 주세요 ^^
진행자 임마가 써에이스채널이네
그럼 본업 하세요
양ㅇㆍ치
MC가 박사님을 못 쫓아 가는데?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역사가 너무 소설적이 되니 역사를 아예 보기 싫더라고요
애가 약간 사오정기가 있구만.
제 아버님이 1916년생입니다 저를 1970년에 낳으셨지요. 임펄전투에 참전하셨어요 여명의 눈동자 보면서 저에게 저건 거짓말이다. 아버님은 강제 징집된 조선 사람은 있지도 않았고 총알받이로 쓰지도 않았다. 그이유는 앞에 서는 군대는 최정예를 쓰고 이유는--- 뜷리면 부대 전체가 전멸 당할수 있기 때문 총알받이로 쓸수있는 작전이 도대체 뭔지 이해도 안간다. 식량이 없어 굶었다 하는데 그것도 말이 안된다.한끼만 굶어도 동네 뒷산도 배고파서 못간다.군대는 총과 대포를 끌고 행군하고 진지구축,참호를 파야하고 심지어 목적지에 도착해서 적과 전투를 해야한다. 그런데 군대가 굶고 배고파서 뱀잡아 먹고 시체 뜯어 먹는다고??? 후퇴할땐 보급품 다 던지고 오느라 굶은건 맞다.그리고 아버님이 군대 갔을때 월급(쌀 3가마니 사고 남음. 교사 월급 3배정도)도 잘받았고 끌려온 사람 한명도 못봤다. 본인이 일본군 장교 되었다하니까 동네에서 돼지잡고 잔치 열어주면서 내자리도 부탁드릴게요. 하는 사람 뿌리치느라 너무힘들었다. 하셨어요. 그리고 조선인이라고 차별을 했다고 하는데 어느 지휘관이 100명이 힘을 합쳐서 싸우지 그중 따로 수십명 차별해서 죽게 내버려 둔다고??? 그럼 남은 사람들이 숫적 열세가 될텐데...그런 바보같은 지휘관이 있을까? 그런것 본적 한번도 못봤다.---1944년에 징용 가신분은 대우도 않좋고 끌려간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해방후 들었다 하셨어요.
아버지가 일제 장교였던 게 뭐 자랑이라고 댓글까지 답니까?
국가의 영토를 대통령이란 작자가
팔아먹는 세상이 되니까 이런 황당한
댓글도 올라오는구나.이거보쇼.전쟁사나
하다못해 태평양전생사는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댓글 씁시다.과달카날전투를
비롯해 티니안.오키나와등 얼마나 많은
조선인강제 징용자들이 전투중에 희생
됐는데 이런 개소리를 하는가.버마전선
이 궁금하면 무다구치 렌야라는 일본군
장군을 검색해 보쇼.하긴 논리적.역사적.
객관적.세계사적 증거자료에서 막히면
대부분 국가반역자들이 말하는 최종
논박은 오직 한가지더라:종북 좌파
빨갱이 몰이.
추신:3년전에 자기 할아버지가 친일행위자 였다고 회식자리에서 당당히
씨부리던 직장상사가 주절거리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땐 조선이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일본군 장교면 적극적으로 스스로 지원해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간 것인데 학대받을 이유가 있나?
개도 말 안 들으면 두들겨 맞기도 하고
주인에게 잘 따르면 기특해서 귀염받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임진왜란 때도 초기에는 왜군들이 굳이 조선 민간인들을 학살하지 않도록 규율이 있었다.
조선을 정복하면 지들에게 세금 바치고 먹여살릴 자원이니까.
하지만 정유재란 때엔 달랐지.
어차피 정복은 불가능해 보이니 약탈하고 악에 받쳐 복수하는 것밖엔 없었지.
일본이 잘 대해 준건 이완용, 송병준 같은 협조자였지
안중근, 윤봉길은 아니었잖아.
일본에 대우 잘 받았으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박정희도 일본군 장교가 되기로 한 건 큰 칼 차고 말 탄 일본헌병이 멋있어 보였었기 때문이라지.
그래서 술 취하면 추억에 빠져 일본군 군가도 불렀다는데?
아버지가 참 자랑스러운가 보네.
나는 할아버지가 아주 어릴 때 기억 밖에 없는데 흰 수염에 항상 도포를
입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계셨지.
아버지 말씀이 원래 할아버지는 대구
달성이 고향인데 전라도에 정착한 이유가 일제 때 무슨 거창한 독립운동가도 아니었고 단지 '단군'을 모시던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하급 직책을 가졌다는 이유로 해방 전까지 수배받아 쫓겨다녔기 때문이었다 했다.
돌아가신 큰 아버지가 한쪽 귀 고막이 찢겨 들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할아버지 체포하려 큰 아버지를 순사들이 잡아가 3,4일 동안 협박하고 폭행한 후유증 때문이란다.
당시 큰 아버지의 나이가 겨우 7살이었단다.
나는 내 할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은 없어도 당신 아버지보다 훨씬 자랑스럽다.
임팔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