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ㅂㅅ 이씨왕조 건국자 얼굴에 먹칠하는 후대왕 거기다 억불정책하던 유생따리들이 더 민족얼굴에 먹칠함ㅋㅋ 고려는 요나라가 상승하던 시기에 정규군 개박살 금나라가 막 태동하면서 영역 넓힐때 선빵침. 사묘아리랑 안완 아골타라는 희대의 영웅들한테 개털렸지만 금이 다시는 고려랑 전쟁할 생각조차 못 하게 각인 제대로 시킴 몽골은 세계사 변태 괴물이라 논외로 치고 말엽엔 왜,홍건적한테 털렸어도 반격해서 조졌는데 조선은 말엽까지 추잡한 꼴만보이다 식민지행 고려는 적어도 몽골한테 식민지취급은 받았어도 부마국 지위얻고 원나라 정치판에서 황제 후계 옹립에 대해 큰소리칠 위치까지 얻어냄
고려는 상시 동원가능한 병력이 존재하던나라고 조선은 일부 왕실호위병력과 지방수령들 수하를 빼면 전시에만 동원되던 예비군체제로 운영되던 나라임 조선이 븅신같아서 빠르게 쳐발린게 아니라 청나라군대가 쳐내려오는거 알고 군을 동원했지만 그게 속도도 느렸고 청군이 성이고 뭐고 다 쌩까고 개빨리 내려오는 조선의 예상을 깨는 짓을 했기때문에 대응못하고 쳐발린거야 모질아 정묘, 병자호란의 전개과정을 조금만이라도 살펴보고 이딴소리해 고려가 상시 동원이 가능했던건 지방토호들이 사병조직을 거느리고있었기 때문이고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그게 금지되어서 당연히 조선과 고려가 외적을 상대하는게 다를수밖에 없는데 뭔 그런걸가지고 조선을 욕질하고자빠졌냐 굳이 만약을 말하려면 고려망하고 조선세워진후에 사병거느리는거 금지안했으면 왕건처럼 지방토호들 딸20명씩 데려다가 결혼해서 그들 억눌러야했을거고 그게 잘안되면 후삼국이 또 시작될수도 있는거임 더 재수없으면 고구려 백제 신라로 지금까지 갈라져서 존나 쳐싸우고있다가 경상남도와 전라도 경기일부는 일본영지로 북쪽지역은 중국땅으로 아예 복속되어서 이땅에 나라자체가 남아있지않을수도 있는부분인데 너같은 애들은 교과서에서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갈때 왕권이 강화되면서 토호들이나 영주들의 힘이 빠지고 중앙집권국가들이 등장하는것도 안배웠냐? 영국처럼 웨일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로 쪼개진 나라를 원하는거면 조선욕이나 실컷쳐해라 영국이 그렇게 쪼개져있는걸 좋게말해서 지방색이 강하다고 그러는거고 섬나라라서 대륙국가의 영지로 전락하지않은거 뿐이지 중국대륙이랑 붙어있는 이나라가 사실상 봉건제나 다름없던 고려의방식을 그대로 이어왓으면 충분히 일어날수있는일이다 무식한놈아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저는 정말 알수 없는게..... 청이 아무리 스타트업 국가라 성장이 빨랐다고 하나... 청이 성장할동안 조선은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인구나 물자로 따지면 춥고 식량부족한 척박한땅 만주의 여진족보단 그래도 조선이 나았는데...공자나 주자가 정말 조선을 잠들게 한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공자왈~ 의 힘인가 ㅋ 외교를 잘못한게 인조의 죄가 아니라 전쟁에 대비하여 군대를 안키우고 도망갈 장소로 남한산성을 택한게 그의 무능입니다. 의주로 튄 선조처럼 저기 부산으로 튀든가... 고려 현종처럼 전라도로 튀었다가 나중에 강감찬으로 복수를 하든가 해야지... 왜 남한산성이지... 이런 생각이죠 헐레벌떡 튀다보니 남한산성으로 간거 아니겠어요 남한산성 밖에 있던 군량미도 성안에 옳기지 못해 다 청군에게 뺏겻다고 하든데.... 인조의 전략적 무능... 이게 더 심각합니다. 외교보단 전쟁대비를 하지 않은게 인조와 조선의 죄라 생각합니다....그러니까... 외교를 잘못했네... 이거보단 피하지 못할 전쟁인데 왜 대비를 않하지??? 도주로라도 확보를 해놔야지...남한산성에서 굶다가 항복이라니... 사실..밖에서 쳐들어온 청나라 얘들이 식량부족을 겪어야 정상인데... 좀 특이한 전쟁이긴 해요 병자호란은.... 그리고 마지막 의견 미국에 줄설까... 중국에 줄설까 보단 울나라가 세져야지... 생각을 하는게 맞다 보구요~ 사실 외교만능주의로 고종역시 조선을 말아먹었던지라... 청나라나 일본이나 러시아나 결국 다 도적이였죠
@@davidjacobs8558 만주족은 누르하치 시절 팔기병을 만들고 유능한 중국인을 등용하고 교역에 힘쓰며 만주문자를 창제하는등 개혁을 해서 성장한 것입니다. 도적질로 성장은 좀 아닌거 같습니다. 즉 인조가 누르하치 홍타지 발가락 때만큼만 노력했어두 하는 아쉬움이 있죠 사견임으 전제로 조선신하나 백성보단 개혁 노력을 않하고 허풍만 떤 인조의 책임이 크다 생각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조선은 왕권이 강한 나라입니다. 왕이 사약을 내림 감사한마음으로 원샷을 해야하는 나라였던지라... 나중에 소현세자 죽이는거봐요 왕권이 생각보다 쎈나라라는 뜻이죠 걍 인조자체가 구제불능의 인간말종이 아니였나... 라는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밖에서 스트레스받고 가족에게 가정폭력을 일삼는 방구석 여포느낌...
정묘호란이후 조선도 중앙군에 어영청신설 및 군제 개편등 나름 대비했다고 볼수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만~남이흥, 정충신, 장만등 군사지휘 경험이 많은 노련한 야전 지휘관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할 인재들이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ᆢ병자호란때 김자점이 도원수였다는것과 김경징이 강도검찰사로 강화도수비 총 책임자였다는것 자체가 말 다한거죠~ 김자점이 황해도에 있으면서 용골대 선봉기마대를 못막고 통과시킨 덕분에 인조정권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고 강추위한파라 강이 얼어붙어 그나마 수로로 강화도로 이동할 루트가 한정된곳이라 청에 의해 금방 장악되버려 요새화시킨 남한산성밖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남한산성 축성 및 수어사였던 이서가 산성내에 군수물자를 대비를 해놓았던 덕분에 얼마간 버티기라도 할 수 있었음~ㄷㄷ
그동안 한번씩 보다가 마지막 멘트에 구독 누르고갑니다. 현 시점 우크라이나의 어려움을 보며 소련 붕괴 시점의 군사력이 유지되었다면 저 나라가 저렇게 러시아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하네요. 대한민국도 경제의 활성화와 군사력의 자강으로 과거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정묘호란 때 청의 요구는 자신들이 명을 치러 갈태니까 조선은 명을 도울 생각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였죠 결국 조선이 명에 원군을 보낼 형편도 아니고 그럴 의지도 없으면서 분기탱천해서 너따위 오랑케들의 요구를 들어줄 조선이 아니다 라고 자존심민 앞세우다 결국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었죠
@@jsj942 정묘호란의 네가지 요인 첫째, 홍타이지의 부왕이었던 누르하치와 화친을 맺었던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 정권이 후금과 조선의 화친관계를 부정함. 둘째, 광해군은 후금을 자극할 수 있다며, 모문룡에게 군량미를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인조와 반정세력이 모문룡에게 퍼준 목록 (출처: 인조실록) 1. 모문룡의 덕을 칭송하는 비석을 안주(安州)에 세워줌. 1624년 2. 모문룡의 요구로 군량을 1만 2천 90석을 1623년에 보내준 인조 정권 3. 모문룡은 1624년 추가 군량 3만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독촉 4. 모문룡은 1626년 군량 1만석을 받고 추가 4만석을 요구하자, 인조정권은 모문룡이 계속해서 요구할 것 같으니, (요구하기 전에) 차라리 우리가 먼저 줍시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대표적인 군량미 요구 몇가지만 적은 것이고 이외에도 모문룡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준 인조와 서인 세력의 행태를 후금 측이 훤히 알고 벼르고 있다가 홍타이지가 왕이 되면서 정묘호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정묘호란의 결정적 요인 4가지 중 하나가 인조와 반정세력의 모문룡에 대한 군량미와 군수물자 지원. 셋째, 인조와 반정세력의 의심병으로 북방의 유능한 여러 군 지휘관들을 무고하여 이괄 뿐만 아니라 정문부, 한명련 같은 임진왜란의 전쟁영웅까지도 잃게 되고 이괄의 난 여파로 평안도의 정예병 2만명이 사라짐. 넷째, 이괄의 난 여파로 한명련의 아들 한윤이 조선에서 탈출, 후금으로 투항. 한윤이 후금 측에 조선의 북방 정예병 와해로 방어 시스템이 약화된 조선의 내부 사정 폭로.
@@jsj942맞습니다. 서구학자들의 분석은 청나라내부에서 병자호란의 원인을 찾은거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주화파와 주전파간에 소모적 논쟁만으로 조선이 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애초에 청이 입관전에는 전체 인구가 100만을 겨우 넘기고 조선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4~5만명을 넘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체를 점령하지 못하고 약탈만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선을 그렇게 완벽하게 침략해서 성공했나. 그건 그들의 기가 막히게 뛰어난 공격전술과 운이었다고 봅니다.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을때가 청군의 침입을 안지 겨우 이틀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전쟁준비를 갖춘 강화도 대신 준비가 안된 남한산성으로 대피한게 패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답니다. 즉 병자호란때도 정묘호란때와 같이 청나라는 항복을 못받고 철수할 수 밖에 없었을 수 있었던거라 봅니다.
음...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정치세력인데 본인들이 집권한 대의명분은 차치하고 너무나 무능하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있나요?? 당시의 국민(?) 정서가 그렇다 치부한다해도... 오히려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세대가 이런 평가를 하는것이... 역사를 너무 평면적으로 보게되는 것은 아닌지하는 우려를 하게됩니다 심지어 인조 정권의 능양군과 그 수하들의 그 치세를 두고보면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고... 물론 이건 온전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漢족은 성조가 있고 SVO어순의 동남아어를 함. 유전학에서도 동남아인종으로 분류함. 당연하게 시진핑, 왕이, 마오쩌둥, 덩샤오핑 얼굴을 보면 필리핀, 베트남 사람같이 생겼음. 반면 청나라 만주족(말갈족), 원나라 몽골은 우리와 같은 SOV어순의 말을 했으며 유전학에서도 동북아인종으로 분류함. 같은 혈족임.
@@davidjacobs8558 그런데 거란은 자신들도 고구려의 후예라 생각했고 고구려, 백제는 같은 족보이고 여하튼 선비, 거란, 동호는 고대 한국어를 했던 민족이고 일본의 직계조상은 한국인이라고 서구 학계가 주장하니. 이래 저래 한국은 동이족, 동북아인종의 본가 맞습니다.
님 틀렸습니다 광해군은 친명을 버린 것 아닙니다 명나라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 기울어진 군사력을 보고 국민 희생을 막을려고 타협 한 것입니다 중립외교 그런데 인조 친명만 고집하고 청나라 배척하는 행동 그 자체가 잘못된 것 결국 인조 잘못된 선택으로 엄청난 국민 ,아녀자 피해 봤다는 것 님 비유가 잘못된 것
선조 임진왜란도 고집불통 사대주의들 친명 때문에 일어난 것 여러번 대화 통로 있었다는 것 끝까지 대화를 배척하고 명나라외 다 배척 친명만 고집 성리학파 들 때문 일본은 유럽무기 교류해서 최신 무기로 무장하는데 우린 배척 편향된 친외교 정책은 반드시 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모든게 인과관계라는게 있는데 마지막 멘트는 과해보이는게 있지 않나 쉽네요 오히려 광해가 그런해안을 가지고 움직인거는 상식적인 판단이지 직금의 사태에서 미국이 국익을 주는입장이니 따르는것 뿐 아메리카가 우리에게 도움도 안되는 힘없는 국가인데 미국을 따르진 않겄죠 아무리 좋게해석하려해도그당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려하는 쓰레기일뿐인 그들의 기득권지키기를 어쩔수 없는듯 하는 해석 그이상 이하도 아닌듯 하네요
글쎄요 명나라에 아버지를 외치면서 성리학에 갖힌 조선이 더 정당한건지 청나라에 형~했으면 삼배구고두례도 안했을것이데 그마저 거부하고 아버지에 대한 배반,,배신이다 이러고 쳐 자빠졌으니..... 인조시대의 시대상을 못읽고 개지랄한것밖에 안되는거 같은데요 서인정권이 외교를 읽었으면 그지랄했을까요.......
9:30 아무리예시라도 비교가 안되는 예시입니다. 무슨 마법이 일어난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뿅하고 예시같은일이 일어날수없습니다. 힘의 균형이 바뀌려고하는 조짐은 당연히 파악하고있어야지요. 특히나 중국-일본 같은 침략자 사이있는 국가에서 떠오르는 신흥국을 파악못하고있다면 잘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키보드 워리어라고 욕하시는데 내 나라 정치에 의견을 가지고 표현할수있는게 민주주의입니다. 비판만하고 해결책은 없다고 욕할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비판의 의견을 가질 자유가 있고 해결책을 낼 의무가 없거든요. 과거에나 지금이나 해결책은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쳐서 선출되서 세금으로 봉금받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고 의무죠.
마지막 말...항상 내가 생각했던 딜레마였는데 이리 딱 꼬집다니. 역시! 현대에 있어서도 우리가 중국과 친해져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때 미국을 버리냐는 반중여론이 심각해질거 같습니다. 어느것이 실리이고, 대세인지, 후대에 뭐라 평가할것인지 등등 어려운 문제죠. 저부터도 친중은 거부감이 드니까요.
마지막 개소리는 왜 다셨나요? 미국의 기술과 미국의 지적 소유권과 미 동맹국의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한 후 미국의 결제 시스템 속에서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파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른다 굽쇼? 중국이 한국의 사드 보복을 해도 대한민국의 대중 수출이 오히려 증가느는지 아시나요? 중국이 한국의 소비재를 수입하는게 아니라 첨단 반도체와 중간재를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팔기 때문이죠. 마지막은 비유는 정말 사족입니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왜 부자가 되기전에 늙어버린 중국이 미국을 이긴다는 환타지 비유를 썼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좌파들이 툭하면 하는 소리가, 중국은 떠오르는 태양이고, 미국은 지는 태양이니,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알아서 기자는 소리. 그런 논리라면, 2차대전때 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구 최고의 강대국이며 태양이었고, 그러니 그걸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미국에 줄선 이승만은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미래를 내다본 성군이란 논리도 성립이 되는 거죠. 이승만 덕분에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잘사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니.
억지주장이네요........청나라는 전쟁 안하려고 조선한테 애걸복걸했어요.....조선이 유교사상으로 청나라를 도발한겁니다...............내가 요동을 점령하게 되자 너희는 다시 우리 백성을 불러들여 명나라에 바쳤으므로 짐이 노하여 정묘년에 군사를 일으켜 너희를 정벌했던 것이다. 이것을 강대하다고 약자를 없신여겨 이유없이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무엇 때문에 그 뒤에 너희 변방 장수들을 거듭 타이르되, '정묘년에는 부득이하여 잠시 저들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 화약을 맺었지만, 이제는 正義로 결단을 내릴 때이니 경들을 여러 고을을 타일러 충의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지략을 다하게 하고, 용감한 자로 하여금 적을 정벌하는 대열에 따르게 하라'는 등등의 말을 했느냐. 이제 짐히 친히 너희를 치러왔다. 너는 어찌하여 지모 있는 자가 지략을 다하고 용감한 자가 종군하게 하지 않고서 몸소 一戰을 담당하려 하느냐. 짐은 결코 힘의 강대함을 믿고 남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도리어 약소한 국력으로 우리의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고, 우리의 영토 안에서 산삼을 캐고 사냥을 했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리고 짐의 백성으로서 도망자가 있으면 너희가 이를 받아들여 명나라에 바치고, 또 명나라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 두 사람이 짐에게 귀순코자 하여 짐의 군대가 그들을 맞이하러 그곳으로 갔을 때에도, 너희 군대가 총을 쏘며 이를 가로막아 싸운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짐의 아우와 조카 등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으나 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정묘년에 네가 섬으로 도망쳐 들어가 화친을 애걸했을 때, 글이 오고간 상대는 그들이 아니고 누구였더냐. 짐의 아우나 조카가 너만 못하단 말인가. 또 몽고의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는데도 너는 여전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었지, 그들은 당당한 원나라 황제의 후예들인데 어찌 너만 못하랴! 원나라 때에는 너희 조선이 끊이지 않고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어찌 하여 하루아침에 이처럼 도도해졌느냐. 그들이 보낸 글을 받지 않은 것은 너의 昏暗과 교만이 극도에 이른 것이다. 너희 조선은 遼, 金, 元 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臣이라 일컬었지, 언제 北面하여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낸 적이 있었느냐. 짐이 이미 너희를 아우로 대했는데도 너는 갈수록 배역하여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도성을 포기하고 대궐을 버려 처자와 헤어져서는 홀로 산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설사 목숨을 연장해서 천년을 산들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정묘년의 치욕을 씻으려 했다면 어찌 하여 몸을 도사려 부녀자의 처소에 들어앉아 있느냐. 네가 비록 이 성 안에 몸을 숨기고 구차스레 살기를 원하지만 짐이 어찌 그대로 버려두겠는가. 짐의 나라 안팎의 여러 왕들과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네가 이런 말을 우리나라 군신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저 황제를 칭함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면 필부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방자하고 망령된 것이다. 이제 짐이 大軍을 이끌고 와서 너희 팔도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아버지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너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두고볼 것이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네가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분명하게 고하라
인조와 서인이 명분은 인정한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나라이고 영원대전도 있고 교통이나 정보수집이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되니 겉으로 보기에는 명나라가 더 국력이 커보였겠지 더구나 그렇게 무시하는 오랑캐 나라인데. 근데 명분도 능력이나 힘이 있을 때 그 명분이 유지되는것이지 왜란, 호란 겪으면서 국력도 약해진 때 싸움을 걸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진것은 무능이다. 전쟁에 전자도 모르는 것들이 전쟁을 벌였으니 강화도도 못 가고 남한산성에서 헛짓거리만 한거 보면 힘, 능력없는 명분은 그냥 무능이다
이완용은 고종의 뜻에 따라서 협상 했을 뿐이죠. 을사보호조약 내용의 대부분은, 고종과 이씨 왕족들의 처우에 대한 조항 입니다. 그 조항들은 일본이 패망할때 까지 철저히 지켰고, 그래서 이왕족은 잘먹고 잘살았죠. 오히려 해방이후, 일본정부에서 나오던 돈이 끊어지니, 이씨왕족 삶의 질이 개떡이 되었죠.
명나라 ~~~시다바리~~~~^^
"전쟁은 당신이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되지만, 당신이 빌어야만 끝난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MalangMolang 저를 따라다니는 님의 모습을 보니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생각나네요^^
마키아벨리... 군주론 쓰신 그 분 맞나요?
@@지나가는누군가-p3u 네 맞습니다.
평화는 이상이고 역사는 폭력이다
잘 보고갑니다🙇♂️🙇♂️
고려: 최전성기의 요나라 40만 대군을 상대하고도 국가의 위상을 격상시킴.
조선: 이제 막 생겨난 청나라 4만 군세를 상대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치욕을 남김.
추천 받는다
ㅂㅅ 이씨왕조
건국자 얼굴에 먹칠하는 후대왕
거기다 억불정책하던 유생따리들이 더 민족얼굴에 먹칠함ㅋㅋ
고려는 요나라가 상승하던 시기에 정규군 개박살
금나라가 막 태동하면서 영역 넓힐때 선빵침. 사묘아리랑 안완 아골타라는 희대의 영웅들한테 개털렸지만 금이 다시는 고려랑 전쟁할 생각조차 못 하게 각인 제대로 시킴
몽골은 세계사 변태 괴물이라 논외로 치고 말엽엔 왜,홍건적한테 털렸어도 반격해서 조졌는데 조선은 말엽까지 추잡한 꼴만보이다 식민지행
고려는 적어도 몽골한테 식민지취급은 받았어도 부마국 지위얻고 원나라 정치판에서 황제 후계 옹립에 대해 큰소리칠 위치까지 얻어냄
@@v이너프미네랄스 그 고려 후반기에 몽골, 홍건적, 왜구 쫓아내는데 기여한 게 이성계 집안임. 그리고 원 간섭기에 몽골 황실 서열 7위까진 간건 맞지만 그래봤자 원 황제 신하여서 언제든 고려왕 따위 폐위시킬 수 있었고 무엇보다 백성들이 지옥이었음.
@@v이너프미네랄스 그 몽골한테 저항한답시고 왕실은 들고 강화도로 토낀덕에 본토안에선 몽골군한테 백성들이 얼마나 학살당했는지는 모르나보네 그게 뭐 대단해서 버틴거임? 그냥 무신정권이 백성들 뒤지든말든 권력유지하려고 왕실들고 그냥 토낀건데 진짜 얨병하는소리하고있네 ㅋㅋㅋ
고려는 상시 동원가능한 병력이 존재하던나라고 조선은 일부 왕실호위병력과 지방수령들 수하를 빼면 전시에만 동원되던 예비군체제로 운영되던 나라임
조선이 븅신같아서 빠르게 쳐발린게 아니라 청나라군대가 쳐내려오는거 알고 군을 동원했지만 그게 속도도 느렸고 청군이 성이고 뭐고
다 쌩까고 개빨리 내려오는 조선의 예상을 깨는 짓을 했기때문에 대응못하고 쳐발린거야 모질아 정묘, 병자호란의 전개과정을 조금만이라도 살펴보고 이딴소리해
고려가 상시 동원이 가능했던건 지방토호들이 사병조직을 거느리고있었기 때문이고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그게 금지되어서 당연히
조선과 고려가 외적을 상대하는게 다를수밖에 없는데 뭔 그런걸가지고 조선을 욕질하고자빠졌냐 굳이 만약을 말하려면 고려망하고 조선세워진후에
사병거느리는거 금지안했으면 왕건처럼 지방토호들 딸20명씩 데려다가 결혼해서 그들 억눌러야했을거고 그게 잘안되면 후삼국이 또 시작될수도 있는거임
더 재수없으면 고구려 백제 신라로 지금까지 갈라져서 존나 쳐싸우고있다가 경상남도와 전라도 경기일부는 일본영지로 북쪽지역은 중국땅으로 아예 복속되어서
이땅에 나라자체가 남아있지않을수도 있는부분인데 너같은 애들은 교과서에서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갈때 왕권이 강화되면서 토호들이나 영주들의 힘이 빠지고
중앙집권국가들이 등장하는것도 안배웠냐? 영국처럼 웨일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로 쪼개진 나라를 원하는거면 조선욕이나 실컷쳐해라
영국이 그렇게 쪼개져있는걸 좋게말해서 지방색이 강하다고 그러는거고 섬나라라서 대륙국가의 영지로 전락하지않은거 뿐이지 중국대륙이랑 붙어있는
이나라가 사실상 봉건제나 다름없던 고려의방식을 그대로 이어왓으면 충분히 일어날수있는일이다 무식한놈아
지금 전세계 최강은 다행이도 우리와 동맹국가인 미국입니다
과거와 다르게 경제는 중국과 안보는 미국과 와 같은 스탠스는 더이상 안됩니다
이제는 중국보다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현재는 누가봐도 미국과 함께 가야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역사는 한반도 최고치욕의 역사 역사다 그래서 조선의 역사를 배워야한다
가장 뼈아픈 말씀입니다
저걸 고려 였으면 어땟을까 생각합니다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에 살짝 빠른
진행에 몰입하기 정말 쉽네요 .
최고에요 .
마지막의 예시는 굉장히 부적절한 예시죠 그 시대의 상황도 고려해야 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입니다 지금은 어느 한명의 지도자와 하나의 세력이 국정과 외교를 주도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마지막 가정은 중국이 그렇게 할 가능성이 1%도 안되니까 공감이 안된다
우리 조상들이라고 하지만 참 무능한듯.
마지막 말에 교훈 얻고 가요^^
에이, 중국이 착해지면 같이 가겠지. 미국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쉽네
그러니까 실리외교가 중요한거지
멍청한거 맞습니다
현실과 대입하여 역사적 사건을 해석해주시니 확실히 더 공감이가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저는 정말 알수 없는게..... 청이 아무리 스타트업 국가라 성장이 빨랐다고 하나... 청이 성장할동안 조선은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인구나 물자로 따지면 춥고 식량부족한 척박한땅 만주의 여진족보단 그래도 조선이 나았는데...공자나 주자가 정말 조선을 잠들게 한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공자왈~ 의 힘인가 ㅋ 외교를 잘못한게 인조의 죄가 아니라 전쟁에 대비하여 군대를 안키우고 도망갈 장소로 남한산성을 택한게 그의 무능입니다. 의주로 튄 선조처럼 저기 부산으로 튀든가... 고려 현종처럼 전라도로 튀었다가 나중에 강감찬으로 복수를 하든가 해야지... 왜 남한산성이지... 이런 생각이죠 헐레벌떡 튀다보니 남한산성으로 간거 아니겠어요 남한산성 밖에 있던 군량미도 성안에 옳기지 못해 다 청군에게 뺏겻다고 하든데.... 인조의 전략적 무능... 이게 더 심각합니다. 외교보단 전쟁대비를 하지 않은게 인조와 조선의 죄라 생각합니다....그러니까... 외교를 잘못했네... 이거보단 피하지 못할 전쟁인데 왜 대비를 않하지??? 도주로라도 확보를 해놔야지...남한산성에서 굶다가 항복이라니... 사실..밖에서 쳐들어온 청나라 얘들이 식량부족을 겪어야 정상인데... 좀 특이한 전쟁이긴 해요 병자호란은.... 그리고 마지막 의견 미국에 줄설까... 중국에 줄설까 보단 울나라가 세져야지... 생각을 하는게 맞다 보구요~ 사실 외교만능주의로 고종역시 조선을 말아먹었던지라... 청나라나 일본이나 러시아나 결국 다 도적이였죠
조선 정치인놈들이 망각한게 여진 쟤네가 기병이 주력인걸 잊음
식량떨어지면 다른 도 쳐들어가서 식량털이하면 그만인데
임진왜란 겪고도 데이타베이스 추출을 못 한 조선 지식인이라 불린 정치인들의 무능함
만주족은 남의것을 빼았아서 도둑질로 성장한것이고,
조선은 자국영토 자국백성을 쥐어짜서 먹고살았으니 발전이 없었던거죠.
@@davidjacobs8558 만주족은 누르하치 시절 팔기병을 만들고 유능한 중국인을 등용하고 교역에 힘쓰며 만주문자를 창제하는등 개혁을 해서 성장한 것입니다. 도적질로 성장은 좀 아닌거 같습니다. 즉 인조가 누르하치 홍타지 발가락 때만큼만 노력했어두 하는 아쉬움이 있죠 사견임으 전제로 조선신하나 백성보단 개혁 노력을 않하고 허풍만 떤 인조의 책임이 크다 생각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조선은 왕권이 강한 나라입니다. 왕이 사약을 내림 감사한마음으로 원샷을 해야하는 나라였던지라... 나중에 소현세자 죽이는거봐요 왕권이 생각보다 쎈나라라는 뜻이죠 걍 인조자체가 구제불능의 인간말종이 아니였나... 라는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밖에서 스트레스받고 가족에게 가정폭력을 일삼는 방구석 여포느낌...
정묘호란이후 조선도 중앙군에 어영청신설 및 군제 개편등 나름 대비했다고 볼수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만~남이흥, 정충신, 장만등
군사지휘 경험이 많은 노련한 야전 지휘관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할 인재들이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ᆢ병자호란때 김자점이 도원수였다는것과 김경징이
강도검찰사로 강화도수비 총 책임자였다는것 자체가 말 다한거죠~
김자점이 황해도에 있으면서
용골대 선봉기마대를 못막고 통과시킨 덕분에 인조정권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고 강추위한파라 강이 얼어붙어 그나마 수로로 강화도로 이동할 루트가 한정된곳이라 청에 의해 금방 장악되버려
요새화시킨 남한산성밖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남한산성 축성 및 수어사였던 이서가 산성내에 군수물자를 대비를 해놓았던 덕분에 얼마간 버티기라도 할 수 있었음~ㄷㄷ
명나라가 구해줄 생각을 하지말고 병력을 모아 청나라 뒤를 첫어야 명나라를 구했지...
청이 명나라를 치기전에 병력 식량 충원을 위해 조선을 먼저 친거지.
그정도도 파악을 못할정도면 정세에 무식한 나라인것...
미국망한다고 같이 망하자하네
딱 잘라서 이제 중국편 미국 꺼져
이거는 아니지만 눈치보면서 외교를
잘해야지
미국이 한국망한다고 도와줄거 같음??
그 당시 명이 조선이 이뻐서 도와줘겟냐
다 지들 속셈이 잇으니 도와주지 ㅋ
와 마무리까지 완벽하네요
그래서 광해의 실리외교가 얼마나 비판 비난을 받앗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점은 당대에 얼마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려 햇을까 ? 실로 대단하다 본다..
시대를 읽지 못하고..
원래 지자리가 아니었음.
왕자리가 날라갈수 있었음.
죽은 명나라한테 울고 불고 했음..
한마디로 멍청함.
8:13 저녁에 돌아 왔는데 잿더미 였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비교가 오지네요~ 👍
오늘 마지막 말 감명 깊네요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조선은 원래 북방군이 강한 나라였고 200년간 평화를 지켜왔음 다만 임진왜란은 후방을 침략당해서 7년동안 그 꼴이 났지만 이 2번의 큰 전쟁 빼고는 사실상 너무 평화로와서 집안싸움이나 해댄것이고 그게 조선말기까지 집안 싸움이나 해대니까 일제침략 당한거고
왜?조아렸냐니?
살고싶으니까 그런거아니누~
사실 저때 조선이란 나라가 망햇어야지 훗날 고생을 덜 하는건데
그동안 한번씩 보다가 마지막 멘트에 구독 누르고갑니다.
현 시점 우크라이나의 어려움을 보며 소련 붕괴 시점의 군사력이 유지되었다면 저 나라가 저렇게 러시아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하네요.
대한민국도 경제의 활성화와 군사력의 자강으로 과거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부끄러워 젠장...
중국 미국 줄타기 잘해야지. 그게 상대적 약소국의 처세술이다. 체재가 같은 미국측에 붙는게 더 이득이다. 국가관계든 인간관계든 이해관계다 뜯어먹을게 있을때 그쪽으로 모이게 된다. 내가 역사돋보기를 즐겨보는 이유는 이걸보면 인간특성이 보인다
미국과중국
명과청
실리적으로도 중국은
미국과 비교자체가
안된다
중국이 청나라 처럼
미국을 제끼고 패권
국가가 우리 살아 생전에는
없다
실리외교
청나라는 한족이 아니고
동이족이여~~
우리 민족과 더 가깝지
김상헌이 지조잇는선비? ㅎㅎ 국제정세를 하나도 모르고 그냥 개고집만 부리는게 지조냐?
그당시 분위기와 여론을 생각한다면 지금 현실도 바뀔게 아무것도없습니다. 팬덤정치의 극을 달리고있는 지금 시점 반일외치고 북에 머리조아리며 항복하라는겁니까? 말같은소릴 해야 들어주지 ㅉㅉㅉ
국치를 떠나서 인조가 망신당한건 전 갠적으로 통쾌합니다~
동감
실용주의는 항시 옳다..특히 외교는
판단력부족맞음 ㅋㅋㅋ
버로우 업그레이드 끝난줄알고 들어갈랬는데 가스 모지라서 안눌러졌던거임
정묘호란 때 청의 요구는 자신들이 명을 치러 갈태니까 조선은 명을 도울 생각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였죠
결국 조선이 명에 원군을 보낼 형편도 아니고 그럴 의지도 없으면서 분기탱천해서 너따위 오랑케들의 요구를 들어줄 조선이 아니다 라고 자존심민 앞세우다 결국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었죠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흥타이지는 애초에 대조선강경파였고~명과의 교역단절로 인해 경제난에 시달리자
그 돌파구로 정묘호란을 일으킨 것이
주된 요인입니다~정묘화약 이후 조선의
세폐로 경제난을 극복 할 수 있었습니다~
@@jsj942 정묘호란의 네가지 요인
첫째, 홍타이지의 부왕이었던 누르하치와 화친을 맺었던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 정권이 후금과 조선의 화친관계를 부정함.
둘째, 광해군은 후금을 자극할 수 있다며, 모문룡에게 군량미를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인조와 반정세력이 모문룡에게 퍼준 목록 (출처: 인조실록)
1. 모문룡의 덕을 칭송하는 비석을 안주(安州)에 세워줌. 1624년
2. 모문룡의 요구로 군량을 1만 2천 90석을 1623년에 보내준 인조 정권
3. 모문룡은 1624년 추가 군량 3만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독촉
4. 모문룡은 1626년 군량 1만석을 받고 추가 4만석을 요구하자, 인조정권은 모문룡이 계속해서 요구할 것 같으니, (요구하기 전에) 차라리 우리가 먼저 줍시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대표적인 군량미 요구 몇가지만 적은 것이고 이외에도 모문룡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준 인조와 서인 세력의 행태를 후금 측이 훤히 알고 벼르고 있다가 홍타이지가 왕이 되면서 정묘호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정묘호란의 결정적 요인 4가지 중 하나가 인조와 반정세력의 모문룡에 대한 군량미와 군수물자 지원.
셋째, 인조와 반정세력의 의심병으로 북방의 유능한 여러 군 지휘관들을 무고하여 이괄 뿐만 아니라 정문부, 한명련 같은 임진왜란의 전쟁영웅까지도 잃게 되고 이괄의 난 여파로 평안도의 정예병 2만명이 사라짐.
넷째, 이괄의 난 여파로 한명련의 아들 한윤이 조선에서 탈출, 후금으로 투항. 한윤이 후금 측에 조선의 북방 정예병 와해로 방어 시스템이 약화된 조선의 내부 사정 폭로.
@@jsj942맞습니다. 서구학자들의 분석은 청나라내부에서 병자호란의 원인을 찾은거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주화파와 주전파간에 소모적 논쟁만으로 조선이 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애초에 청이 입관전에는 전체 인구가 100만을 겨우 넘기고 조선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4~5만명을 넘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체를 점령하지 못하고 약탈만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선을 그렇게 완벽하게 침략해서 성공했나. 그건 그들의 기가 막히게 뛰어난 공격전술과 운이었다고 봅니다.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을때가 청군의 침입을 안지 겨우 이틀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전쟁준비를 갖춘 강화도 대신 준비가 안된 남한산성으로 대피한게 패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답니다. 즉 병자호란때도 정묘호란때와 같이 청나라는 항복을 못받고 철수할 수 밖에 없었을 수 있었던거라 봅니다.
음...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정치세력인데 본인들이 집권한 대의명분은 차치하고 너무나 무능하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있나요?? 당시의 국민(?) 정서가 그렇다 치부한다해도... 오히려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세대가 이런 평가를 하는것이... 역사를 너무 평면적으로 보게되는 것은 아닌지하는 우려를 하게됩니다
심지어 인조 정권의 능양군과 그 수하들의 그 치세를 두고보면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고... 물론 이건 온전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이씨왕조가 저때 망해야했는데
예나지금이나 사람잘못드리면바로 망하네요
준비만 잘 되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쟁이지만, 준비는 안되었고 말로 전쟁을 하는 사람들 뿐이었죠.
성계 성니메가 삼베구고두례를 봤다면..😤ㅋ
청의 식민지가 안된게 천만다행이지. 사실상 배달민족 소멸 위기였소이다
마지막 멘트 오졌습니다.
역사를 바라볼 때 가져야 할 시각인거같음
뭘보고;;?
漢족은 성조가 있고 SVO어순의 동남아어를 함. 유전학에서도 동남아인종으로 분류함. 당연하게 시진핑, 왕이, 마오쩌둥, 덩샤오핑 얼굴을 보면 필리핀, 베트남 사람같이 생겼음. 반면 청나라 만주족(말갈족), 원나라 몽골은 우리와 같은 SOV어순의 말을 했으며 유전학에서도 동북아인종으로 분류함. 같은 혈족임.
청나라 황제 명으로 쓰여진 만주족의 역사서, 만주원류고 에 보면,
자기들 조상들 종족을 나열했는데,
삼한, 부여, 백제, 신라, 발해, 옥저, 숙신, 말갈, 여진 이라고 했죠.
고조선과 고구려는 뺐고, 몽골, 선비, 거란, 돌궐 도 없죠.
@@davidjacobs8558 그런데 거란은 자신들도 고구려의 후예라 생각했고 고구려, 백제는 같은 족보이고 여하튼 선비, 거란, 동호는 고대 한국어를 했던 민족이고 일본의 직계조상은 한국인이라고 서구 학계가 주장하니. 이래 저래 한국은 동이족, 동북아인종의 본가 맞습니다.
님 틀렸습니다 광해군은 친명을 버린 것 아닙니다 명나라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 기울어진 군사력을 보고 국민 희생을 막을려고 타협 한 것입니다 중립외교 그런데 인조 친명만 고집하고 청나라 배척하는 행동 그 자체가 잘못된 것 결국 인조 잘못된 선택으로 엄청난 국민 ,아녀자 피해 봤다는 것 님 비유가 잘못된 것
삼전동이 왜 삼전동인지 알겄네잉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위정자로 나서서 생기는 문제지. 제대로된 리더는 국민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쓰레기 위정자들은 지들만 살겠다고 국민을 내팽개친다.
선조 임진왜란도 고집불통 사대주의들 친명 때문에 일어난 것 여러번 대화 통로 있었다는 것 끝까지 대화를 배척하고 명나라외 다 배척 친명만 고집 성리학파 들 때문 일본은 유럽무기 교류해서 최신 무기로 무장하는데 우린 배척 편향된 친외교 정책은 반드시 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살려고~
치욕을 준 상대만 욕하지 그 일의 당사자나 내부비판, 성찰 이딴거 없는거 보면 그냥 우리민족 종특인듯.
지금 정부랑 똑같자너
교과서에도 아예 삼전도의 굴욕 파트나눠져서 가르칠정도인데 어째서 내부비판 성찰 이딴게 없다고 하시는건지 좀 이해가 안가네요 게다가 뭔 조금이라도 우리역사나 현재정부든 국민들이든 뭔가 잘한거있다고 칭찬하면 국뽕이라고 개g랄들을 하면서 ㅋ 그리고 역사에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있는사람치고 인조는 불쌍하고 청나라놈들은 캐샛끼들이라고 욕하는사람이 있음? 도리어 완전 반대인게 보통일텐데 인조는 캐샛끼고 청나라놈들이 ㅈㄴ 잘싸운거라고들 할텐데 뭔 종특타령임 ㅉㅉ
윤석열이 ㅋ
@@kiinnam8887 윤석열 얘기하는게 아닌데 ㅋㅋ
그 반대라 봅니다.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을 국내적 관점에서만 보고 침략을 일으킨 청의 호전성에 대한 분석이 없는거죠. 우리의 무능에만 집중한 결과 당시 청정권이 처한 상황을 보며 대책을 세우는데 너무 등한시 했다고 봅니다.
뒤지기 싫어서..::.:
그니까 미래를 생각해서 정치외교를 했어야지
그리 못했으니 욕 먹어야하고
고구려는 마지막에 70여 년간 수.당의 500만
대군을 막아냇엇다.
절마 저거는 청의 10만에도 빌빌 싸다가
대굴박 원산폭격 9쇼를 햇엇지.....
모든게 인과관계라는게 있는데
마지막 멘트는 과해보이는게 있지 않나 쉽네요
오히려 광해가 그런해안을 가지고 움직인거는 상식적인 판단이지
직금의 사태에서 미국이 국익을 주는입장이니
따르는것 뿐 아메리카가 우리에게 도움도 안되는 힘없는 국가인데 미국을 따르진 않겄죠
아무리 좋게해석하려해도그당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려하는 쓰레기일뿐인
그들의 기득권지키기를 어쩔수 없는듯 하는 해석 그이상 이하도 아닌듯 하네요
글쎄요
명나라에 아버지를 외치면서 성리학에 갖힌 조선이 더 정당한건지
청나라에 형~했으면 삼배구고두례도 안했을것이데 그마저 거부하고 아버지에 대한 배반,,배신이다 이러고
쳐 자빠졌으니.....
인조시대의 시대상을 못읽고 개지랄한것밖에 안되는거 같은데요
서인정권이 외교를 읽었으면 그지랄했을까요.......
9:30 아무리예시라도 비교가 안되는 예시입니다. 무슨 마법이 일어난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뿅하고 예시같은일이 일어날수없습니다. 힘의 균형이 바뀌려고하는 조짐은 당연히 파악하고있어야지요. 특히나 중국-일본 같은 침략자 사이있는 국가에서 떠오르는 신흥국을 파악못하고있다면 잘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키보드 워리어라고 욕하시는데 내 나라 정치에 의견을 가지고 표현할수있는게 민주주의입니다. 비판만하고 해결책은 없다고 욕할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비판의 의견을 가질 자유가 있고 해결책을 낼 의무가 없거든요. 과거에나 지금이나 해결책은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쳐서 선출되서 세금으로 봉금받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고 의무죠.
조선 입장에서도 명이 멸망까지 할줄은 몰랐겠지.. 명 내부에서 일이 터질 줄은...
인조:이런 한심한놈들 가서 내 활을 가지고 와라
내가 다 정리한다
마지막 멘트가 이 방송을 망쳤네요, 말도 안되는 예는 앞으로 들지 마세요. 대단히 실망스럽습니다.
마지막 멘트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무작정 인조 정권을 비판한거에 깊게 반성합니다.
사람들은 당시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방구석정치질을 시작했겠지만.. 그 방구석정치 때문에 조선은 점점 더 어려워졌던게 아닐까..싶네요
마지막 말...항상 내가 생각했던 딜레마였는데 이리 딱 꼬집다니. 역시! 현대에 있어서도 우리가 중국과 친해져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때 미국을 버리냐는 반중여론이 심각해질거 같습니다. 어느것이 실리이고, 대세인지, 후대에 뭐라 평가할것인지 등등 어려운 문제죠. 저부터도 친중은 거부감이 드니까요.
저런게 왕이라고.... 무능한 왕의 대명사
영상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멘트 참 좋았습니다. 많은걸 생각하게 되네요.
멍청한왕 신하
인조가 무능했다는 얘기는 하나도 없네요.그무능함에 수많은 백성이 죽은걸 마치 외교적인 상황이 그러니 보는사람 맘대로 판단하라는 얘기로들립니다.치욕스럽던 자랑스럽던 부정할수없는게 우리역사입니다.인조같은 인물이 무슨짓을하고 무능하다는걸 이방송을보는 구독자들에게 사실대로 알리는게 진실아닐까요.그리고 역사를 논하는 사람들중에 가장바보가 만약에 라는말입니다.이런 조선최대의 치욕사건을 역사적 고증없이 듣는게 우습네요.
저번화에 이미 그 이야기 다했음
그런 가정은 초딩두 히긋다..ㅉ
마지막 개소리는 왜 다셨나요?
미국의 기술과 미국의 지적 소유권과 미 동맹국의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한 후 미국의 결제 시스템 속에서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파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른다 굽쇼?
중국이 한국의 사드 보복을 해도 대한민국의 대중 수출이 오히려 증가느는지 아시나요? 중국이 한국의 소비재를 수입하는게 아니라 첨단 반도체와 중간재를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팔기 때문이죠.
마지막은 비유는 정말 사족입니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왜 부자가 되기전에 늙어버린 중국이 미국을 이긴다는 환타지 비유를 썼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좌파들이 툭하면 하는 소리가, 중국은 떠오르는 태양이고, 미국은 지는 태양이니,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알아서 기자는 소리.
그런 논리라면, 2차대전때 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구 최고의 강대국이며 태양이었고,
그러니 그걸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미국에 줄선 이승만은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미래를 내다본 성군이란 논리도 성립이 되는 거죠. 이승만 덕분에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잘사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니.
몽골이 중국을 정복한 원이 중국역사가 아니고, 일제가 죄선을 정복하고 지배한 일제강점기가 우리역사가 아니듯
몽골놈이 족보 조작하고 우리민족을 지배한 죄선이 어째서 우리역사냐?
사실 정답은 없지 않나 싶어요.
지금 우리나라가 중국을 욕하고 있지만
현실은 우리가 중국과 완전 단절하기는 힘들죠 그건 어느 나라나 비슷하고
그저 중국이라는 나라가 정권이 바뀔때
조금은 나아지길 바랄뿐.
마지막 의견은 그저 당신 생각일뿐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정치권에서는 여전하다...
다만 국민들이 달라졌지...
우와! 과거와 현재의 정치사항을 정확히 보고있읍니다. 요즘 보기힘든 좋은 영상인데 잘봤읍니다. 구독 콕...
몇천년간 중국의 속국
그다음 일본지배
그다음 미국의 52번째주.
조선인의 특징.
끝까지 싸워볼생각안하고
비비기 잘하지.
걍 정치 못 했슴. 청나라에겐 뒤통수 안 친다고만 했어도 그리 당하진 않았을 텐데
이렇케 훌륭한분이계셧네요 지금 대통령선거 조선시대나지금이나 똑같아요
억지주장이네요........청나라는 전쟁 안하려고 조선한테 애걸복걸했어요.....조선이 유교사상으로 청나라를 도발한겁니다...............내가 요동을 점령하게 되자 너희는 다시 우리 백성을 불러들여 명나라에 바쳤으므로 짐이 노하여 정묘년에 군사를 일으켜 너희를 정벌했던 것이다. 이것을 강대하다고 약자를 없신여겨 이유없이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무엇 때문에 그 뒤에 너희 변방 장수들을 거듭 타이르되, '정묘년에는 부득이하여 잠시 저들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 화약을 맺었지만, 이제는 正義로 결단을 내릴 때이니 경들을 여러 고을을 타일러 충의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지략을 다하게 하고, 용감한 자로 하여금 적을 정벌하는 대열에 따르게 하라'는 등등의 말을 했느냐. 이제 짐히 친히 너희를 치러왔다.
너는 어찌하여 지모 있는 자가 지략을 다하고 용감한 자가 종군하게 하지 않고서 몸소 一戰을 담당하려 하느냐. 짐은 결코 힘의 강대함을 믿고 남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도리어 약소한 국력으로 우리의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고, 우리의 영토 안에서 산삼을 캐고 사냥을 했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리고 짐의 백성으로서 도망자가 있으면 너희가 이를 받아들여 명나라에 바치고, 또 명나라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 두 사람이 짐에게 귀순코자 하여 짐의 군대가 그들을 맞이하러 그곳으로 갔을 때에도, 너희 군대가 총을 쏘며 이를 가로막아 싸운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짐의 아우와 조카 등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으나 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정묘년에 네가 섬으로 도망쳐 들어가 화친을 애걸했을 때, 글이 오고간 상대는 그들이 아니고 누구였더냐. 짐의 아우나 조카가 너만 못하단 말인가. 또 몽고의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는데도 너는 여전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었지, 그들은 당당한 원나라 황제의 후예들인데 어찌 너만 못하랴!
원나라 때에는 너희 조선이 끊이지 않고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어찌 하여 하루아침에 이처럼 도도해졌느냐. 그들이 보낸 글을 받지 않은 것은 너의 昏暗과 교만이 극도에 이른 것이다. 너희 조선은 遼, 金, 元 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臣이라 일컬었지, 언제 北面하여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낸 적이 있었느냐.
짐이 이미 너희를 아우로 대했는데도 너는 갈수록 배역하여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도성을 포기하고 대궐을 버려 처자와 헤어져서는 홀로 산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설사 목숨을 연장해서 천년을 산들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정묘년의 치욕을 씻으려 했다면 어찌 하여 몸을 도사려 부녀자의 처소에 들어앉아 있느냐. 네가 비록 이 성 안에 몸을 숨기고 구차스레 살기를 원하지만 짐이 어찌 그대로 버려두겠는가.
짐의 나라 안팎의 여러 왕들과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네가 이런 말을 우리나라 군신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저 황제를 칭함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면 필부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방자하고 망령된 것이다.
이제 짐이 大軍을 이끌고 와서 너희 팔도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아버지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너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두고볼 것이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네가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분명하게 고하라
그 의지한다는것 그 말자체가 역사적 모순
이 채널 좋아 하고 그런데 마지막 에 미국 중국 예기 하는 것은 아닌가 봐요. 저도 개인 적으로 미국 이 싫지만 현제 현실 을 봐야 데요. 그나마 미국이 있으니까 중국 일본 북한 이 함부로 한국 을 못 처들어 오는 거예요.
친명 자체는 도리상 맞다고 봅니다 임진년때
명나라가 도와주었으니 도와주는것은 당연한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조선 위정자들은 방구석 여포마냥
외치기만 하고 아무 노력도 안했지요
정말 조선을 위한다면 재산과 자기 자식이라도
군대에 보내야 했으나..
인조와 서인이 명분은 인정한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나라이고 영원대전도 있고 교통이나 정보수집이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되니 겉으로 보기에는 명나라가 더 국력이 커보였겠지 더구나 그렇게 무시하는 오랑캐 나라인데. 근데 명분도 능력이나 힘이 있을 때 그 명분이 유지되는것이지 왜란, 호란 겪으면서 국력도 약해진 때 싸움을 걸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진것은 무능이다. 전쟁에 전자도 모르는 것들이 전쟁을 벌였으니 강화도도 못 가고 남한산성에서 헛짓거리만 한거 보면 힘, 능력없는 명분은 그냥 무능이다
중국하고 미국은 그럴일이 없을것 같으데요?
양 울음소리 내던 중국 황제보단 덜 굴욕적임 ㅋㅋ
결과론적이지만, 중국과는 다르게, 당시 청나라는 나름 역사적으로도 형제를 자처할 수 있을법한 민족이었죠. 동생으로 예를 다 한다거나 하는 그런 외교는 그럼에도 어려웠을 거지만은..
남보다 못한 사이도 많지만은..
그저 남만 섬기는 것도..
역사적 교훈은 어렵네요.
시펄
온갖 부귀영화는 지들이 누리고
나라가 어렵고 힘들면 우리들이 희생하고 막고 세우고...
언제까지 이래야 한단 말인가?
저 무능하고 민심과도 융화되지 못 하는 것들의 비열함을...
우리나라 최고의 등신같은 임금
정말 쓰레기인듯.. 나라를 저리 만들었으니...
참고로 청도 병사6000명 장교300명들이 피해을 있었다고 합니다
비유가 참 적절하네요 ㅎㅎ
서인의 영수 이완용도 그 당시 분위기에 본인 최선의 판단을 한것이지요. 쯧쯧
이완용은 고종의 뜻에 따라서 협상 했을 뿐이죠.
을사보호조약 내용의 대부분은, 고종과 이씨 왕족들의 처우에 대한 조항 입니다.
그 조항들은 일본이 패망할때 까지 철저히 지켰고, 그래서 이왕족은 잘먹고 잘살았죠.
오히려 해방이후, 일본정부에서 나오던 돈이 끊어지니, 이씨왕족 삶의 질이 개떡이 되었죠.
인조 최고의 명언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외교라는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애휴..
소중화 조선
전멸은 아니고 궤멸입니다 .....뿔뿔이 흩어짐
대충 강간 잔치가 열렸나보군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울 비판하고 반대의 길을 간다는 설정이 꼭 반복된다는 프레임을 짜고 이야기하는거 아닌가요?
이게다 김씨 3인방 때문에 ㅋㅋ 이길 수 있는 전쟁 엑스맨 3인방으로 진전쟁
마지막멘트.훌륭합니다.
지인들에게 공유했습니다
지금도 중국에 대가리 쪼아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