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영상 강의는 시지푸스신화를 요약ㆍ정리해 주신 게 독특하시네요ㆍ감사드립니다 ~💏 그리스 신화는 지난 2,500년간 다양하게 응용되었는데 의외로 시지푸스 신화가 까뮈 외엔 주목한 사람이 없었군요^^ 얼마전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책은 초판이 8권인가 팔렸었는데도, 프로이트 자신은 '20세기를 바꾼 10대 인물'에 선정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영상은, 꿈의 해석 저서에서 다룬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이 20세기 심리학ㆍ정신의학은 물론 철학ㆍ사상ㆍ문학 미술 등 예술ㆍ사회학 등 거의 전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면서,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불후의 진리인양 해설하기에 실소를 금치 못 했던 적이 있었죠ㆍ 칼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였다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두고 논쟁을 벌이다가 결별했다는데, 라캉은 나름 새롭게 자기 이론체계로 개발해서 데카르트까지 깠다고 하더군요^^ 저는 여기서,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를 이용하여 천리마가 되었고, 라캉은 천리마 프로이트에 올라탄 '기미'로 '공생'하는 '진화론'의 현장을 보는 듯 합니다ㆍ 홍익학당 윤홍식 선생은 유튜브 강의에서, " 희랍의 제우스ㆍ북유럽의 토르ㆍ힌두교의 인드라ㆍ불교 화엄경의 십지보살과 제석천ㆍ증산도의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등이 다 '하느님'인데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이름이 다르고 일부 변형되었다"면서 특히 "불교가 석가를 신격화시키는 과정 및 타종교와의 우월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인드라ㆍ제석천ㆍ옥황상제 등 하느님을 석가의 아랫것들로 격하시켜 버리는 신화구조를 만들었다"고 하시데요 그러면서, "전세계 신화구조는 같다"고 단언하더라고요ㆍ실은 제가 오랫동안 나름 연구한 결과 오이디푸스왕 신화가 '조작'되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특히 고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기원전 1200년전 쯤의 트로이 전쟁 때의 트로이 영웅 '아이네아스'를 로마 시조 로물루스신화와 연결해 로마제국이 세계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젼으로서의 로마판 '용비어천가'를 창작(조작)했는데, 요즘 자료를 뒤지다보니, '트로이 멸망 때 잃어버린 아이네아스의 아들'이 페르시아 제국 건국자 키루스(구약의 고레스) 대왕과 연결된다는 사료를 제가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실은 저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이 있어 많은 영상을 접했는데, 어느 분이 "일리아드나 그리스ㆍ로마신화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기 전 당시엔 '중세 시대 기독교의 성경' 같은 위치"였단 해설을 처음 들었고, 그 말씀은 평소의 제 추론과도 일치해 깜짝 놀랐었습니다^^ 신화 학자들은, "신화란 고대 양치기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이야기를 지어낸 데서 유래한 후 차츰 음유시인들이 노래로 부르고 돌아다니다가 차차 글로 기록된 것"으로 본다지만, 고대 그리스 신화와 그 신화가 나온 시대 배경을 면밀히 고찰해 본 결과 저는 대부분의 신화가 당대에 '정치적 목적 내지 정치적 고려'에서 '창작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는 고대 '신관(제사장) 계급들의 내부 권력 투쟁 과정'이 화석처럼 남겨져 있기도 히구요ㆍ 우리는 '용비어천가' , "육룡이 나르샤~"를 조선건국의 당위성을 설파하기 위해 창작한 '신화?'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과연 조선시대 사대부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도 그리 '지어낸 이야기'로 알았을까요? 그 용비어천가를 지은 사람들도, 그 내용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은 있겠지만 왕조를 창건하는 집안엔 이런 신비하고 신묘한 기적들이 있었을 것이라"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 부활'을 믿는 것 만큼)믿지 않았을까요? ^^ 요즘 일부 신화 학자들은 예수의 '부활' 신화는 그리스 신화 중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인간으로서 죽임을 당한 후 제우스의 특별 배려로 "부활하여 신이 된" 신화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거든요ㆍ 수메르 신화, 고대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등에 "죽은 뒤 부활하여 승천하는" 신화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고서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오이디푸스 신화가 특이한단 느낌을 받아 오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ㆍ 저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작품만은 천하 없어도 전승신화가 아니라 소포클레스가 정치적 고려 내지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플레이' 또는 '여론몰이'를 위해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창작'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우연히 서울대 김헌 교수가 2011년 11월 25일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컬럼기사 '백성과 약속 지키려 파멸의 길 걸은 오이디푸스' 를 읽고서, 제 생각은 거의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90세까지 장수했다고 전해지는 소포클레스는, '영화 300'에도 나오는 그리스ㆍ페르시아전쟁에서 '티베군'은 페르시아에 항복한 일 등 '고대 이집트시대 수도 테베 출신들이 힉소스 족의 수탈과 전쟁을 피해 그리스로 이주하여 세운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를 소재로 하여 마치 우리 나라 영화계에서 흥행보증수표 '한ㆍ일전'의 단골메뉴처럼 써 먹듯이,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ㆍ'오이디푸스왕'으로 당시 아테네에서 흥행 재미를 본 이후, 자신의 조국 아테네나 이미 정치인으로 성공한 소포크레스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편의상 수시로 오이디푸스왕가 비극 이야기를 조작하여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란 근거가, 김헌 교수의 신문 기고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에 매우 흥미로웠습니다ㆍ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란 작품은, 소포클레스가 비교적 노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작품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 배경인지는 모르겠으나ㅡ추측컨대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후 그리스 패권을 놓고서 코린토스전쟁ㆍ스파르타와 테베전쟁 등 그리스 전체 패권 내지 존망을 건 운명의 향배가 걸린 시기에 테베를 견제키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ㅡ 중년 시절에 발표한 '오이디푸스왕' 작품에는 전혀 없었던 모습의 자연인 오이디푸스로 그리고 있다는 점, 즉 기원전 480년 발표했던 '오이디푸스왕' 작품에선 "신탁이 이루어진 걸 알고 눈을 찌르고 방랑을 떠나지만",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작품에선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도 계속 테베에 머물고, 두 아들이 권력투쟁을 벌이다 둘다 죽을 때까지 테베에서 구차하게 연명하다가 처남이자 외삼촌인 클레온에게 쫒겨난다"고 신화의 줄거리 자체가 전혀 다르게 바뀌어 버렸다고, 김헌 교수는 기고문에 썼더라고요^^ 로마 당대 최고시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베르길리우스도 '아이네아스'를 쓸 때 사실상 로마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의 명을 받고, 모든 로마왕실사료를 섭렵한 후 지은 것이었다고 전합니다ㆍ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작품이 "당시의 정치적 배경 속에서 조작(창작)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을 테지만", 프로이트가 그 작품 속에서 '오이디푸스왕의 비극'을 꺼내들어 자신의 학문체계를 정립한 데 써먹은 건,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국민을 뉴프론티어 정신으로 '유혹'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사람들이 주목하게 만들려는 프로파간다 전략'에 이용해서 대성공을 거둔 게 아닐까요? 라캉은 천리마가 된 프로이트에 올라 탄 쉬파리 즉 '기미'가 아닐까요? 선생님께서, 부조리ㆍ반항 등으로 시지푸스신화를 정리해 주셨는데, 저는 시지푸스 신화 상의 고향 코린토스에도 주목해봅니다ㆍ 코린토스는 희랍 아테네에 버금가는 제2의 해양ㆍ무역 세력 도시국가였기에, 무역선을 타고 한번 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죽을지 살지도 모른 채 운명에 맡기고 또 떠나야만 했던 고대 희랍 무역 도시국가 코린토스인들의 '일상의 운명'을 신화 상의 코린토스의 왕(시조) 시지푸스의 운명과 동일시하고 가호를 빌면서, 시지푸스 바위산을 바라보면서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삶의 지혜'였을 거란 추정을 해보았습니다ㆍ 감사합니다 ~ ^😃^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그리스 신화에서 찬밥 취급을 받아오는 게 시지프 신화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어느 유튜브인지는 몰라도.. 1900년 초판으로 600권을 찍었는데 8년이 지나도록 그 600권이 모두 팔리지 않았다는 게 팩트일 겁니다.. ^^
선생님 오랜만에 또 글 남깁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카뮈 참 좋아하는데 잘보았습니다 :)
선생님의 영상 강의는 시지푸스신화를 요약ㆍ정리해 주신 게 독특하시네요ㆍ감사드립니다 ~💏
그리스 신화는 지난 2,500년간 다양하게 응용되었는데 의외로 시지푸스 신화가 까뮈 외엔 주목한 사람이 없었군요^^
얼마전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책은 초판이 8권인가 팔렸었는데도, 프로이트 자신은 '20세기를 바꾼 10대 인물'에 선정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영상은, 꿈의 해석 저서에서 다룬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이 20세기 심리학ㆍ정신의학은 물론 철학ㆍ사상ㆍ문학 미술 등 예술ㆍ사회학 등 거의 전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면서,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불후의 진리인양 해설하기에 실소를 금치 못 했던 적이 있었죠ㆍ
칼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였다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두고 논쟁을 벌이다가 결별했다는데, 라캉은 나름 새롭게 자기 이론체계로 개발해서 데카르트까지 깠다고 하더군요^^
저는 여기서,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를 이용하여 천리마가 되었고, 라캉은 천리마 프로이트에 올라탄 '기미'로 '공생'하는 '진화론'의 현장을 보는 듯 합니다ㆍ
홍익학당 윤홍식 선생은 유튜브 강의에서, " 희랍의 제우스ㆍ북유럽의 토르ㆍ힌두교의 인드라ㆍ불교 화엄경의 십지보살과 제석천ㆍ증산도의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등이 다 '하느님'인데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이름이 다르고 일부 변형되었다"면서 특히 "불교가 석가를 신격화시키는 과정 및 타종교와의 우월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인드라ㆍ제석천ㆍ옥황상제 등 하느님을 석가의 아랫것들로 격하시켜 버리는 신화구조를 만들었다"고 하시데요
그러면서, "전세계 신화구조는 같다"고 단언하더라고요ㆍ실은 제가 오랫동안 나름 연구한 결과 오이디푸스왕 신화가 '조작'되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특히 고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기원전 1200년전 쯤의 트로이 전쟁 때의 트로이 영웅 '아이네아스'를 로마 시조 로물루스신화와 연결해 로마제국이 세계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젼으로서의 로마판 '용비어천가'를 창작(조작)했는데, 요즘 자료를 뒤지다보니, '트로이 멸망 때 잃어버린 아이네아스의 아들'이 페르시아 제국 건국자 키루스(구약의 고레스) 대왕과 연결된다는 사료를 제가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실은 저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이 있어 많은 영상을 접했는데, 어느 분이 "일리아드나 그리스ㆍ로마신화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기 전 당시엔 '중세 시대 기독교의 성경' 같은 위치"였단 해설을 처음 들었고, 그 말씀은 평소의 제 추론과도 일치해 깜짝 놀랐었습니다^^
신화 학자들은, "신화란 고대 양치기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이야기를 지어낸 데서 유래한 후 차츰 음유시인들이 노래로 부르고 돌아다니다가 차차 글로 기록된 것"으로 본다지만, 고대 그리스 신화와 그 신화가 나온 시대 배경을 면밀히 고찰해 본 결과 저는 대부분의 신화가 당대에 '정치적 목적 내지 정치적 고려'에서 '창작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는 고대 '신관(제사장) 계급들의 내부 권력 투쟁 과정'이 화석처럼 남겨져 있기도 히구요ㆍ
우리는 '용비어천가' , "육룡이 나르샤~"를 조선건국의 당위성을 설파하기 위해 창작한 '신화?'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과연 조선시대 사대부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도 그리 '지어낸 이야기'로 알았을까요? 그 용비어천가를 지은 사람들도, 그 내용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은 있겠지만 왕조를 창건하는 집안엔 이런 신비하고 신묘한 기적들이 있었을 것이라"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 부활'을 믿는 것 만큼)믿지 않았을까요? ^^
요즘 일부 신화 학자들은 예수의 '부활' 신화는 그리스 신화 중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인간으로서 죽임을 당한 후 제우스의 특별 배려로 "부활하여 신이 된" 신화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거든요ㆍ 수메르 신화, 고대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등에 "죽은 뒤 부활하여 승천하는" 신화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고서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오이디푸스 신화가 특이한단 느낌을 받아 오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ㆍ
저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작품만은 천하 없어도 전승신화가 아니라 소포클레스가 정치적 고려 내지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플레이' 또는 '여론몰이'를 위해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창작'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우연히 서울대 김헌 교수가 2011년 11월 25일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컬럼기사 '백성과 약속 지키려 파멸의 길 걸은 오이디푸스' 를 읽고서, 제 생각은 거의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90세까지 장수했다고 전해지는 소포클레스는, '영화 300'에도 나오는 그리스ㆍ페르시아전쟁에서 '티베군'은 페르시아에 항복한 일 등 '고대 이집트시대 수도 테베 출신들이 힉소스 족의 수탈과 전쟁을 피해 그리스로 이주하여 세운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를 소재로 하여 마치 우리 나라 영화계에서 흥행보증수표 '한ㆍ일전'의 단골메뉴처럼 써 먹듯이,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ㆍ'오이디푸스왕'으로 당시 아테네에서 흥행 재미를 본 이후, 자신의 조국 아테네나 이미 정치인으로 성공한 소포크레스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편의상 수시로 오이디푸스왕가 비극 이야기를 조작하여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란 근거가, 김헌 교수의 신문 기고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에 매우 흥미로웠습니다ㆍ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란 작품은, 소포클레스가 비교적 노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작품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 배경인지는 모르겠으나ㅡ추측컨대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후 그리스 패권을 놓고서 코린토스전쟁ㆍ스파르타와 테베전쟁 등 그리스 전체 패권 내지 존망을 건 운명의 향배가 걸린 시기에 테베를 견제키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ㅡ 중년 시절에 발표한 '오이디푸스왕' 작품에는 전혀 없었던 모습의 자연인 오이디푸스로 그리고 있다는 점, 즉 기원전 480년 발표했던 '오이디푸스왕' 작품에선 "신탁이 이루어진 걸 알고 눈을 찌르고 방랑을 떠나지만",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작품에선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도 계속 테베에 머물고, 두 아들이 권력투쟁을 벌이다 둘다 죽을 때까지 테베에서 구차하게 연명하다가 처남이자 외삼촌인 클레온에게 쫒겨난다"고 신화의 줄거리 자체가 전혀 다르게 바뀌어 버렸다고, 김헌 교수는 기고문에 썼더라고요^^
로마 당대 최고시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베르길리우스도 '아이네아스'를 쓸 때 사실상 로마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의 명을 받고, 모든 로마왕실사료를 섭렵한 후 지은 것이었다고 전합니다ㆍ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작품이 "당시의 정치적 배경 속에서 조작(창작)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을 테지만",
프로이트가 그 작품 속에서 '오이디푸스왕의 비극'을 꺼내들어 자신의 학문체계를 정립한 데 써먹은 건,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국민을 뉴프론티어 정신으로 '유혹'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사람들이 주목하게 만들려는 프로파간다 전략'에 이용해서 대성공을 거둔 게 아닐까요? 라캉은 천리마가 된 프로이트에 올라 탄 쉬파리 즉 '기미'가 아닐까요?
선생님께서, 부조리ㆍ반항 등으로 시지푸스신화를 정리해 주셨는데, 저는 시지푸스 신화 상의 고향 코린토스에도 주목해봅니다ㆍ
코린토스는 희랍 아테네에 버금가는 제2의 해양ㆍ무역 세력 도시국가였기에, 무역선을 타고 한번 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죽을지 살지도 모른 채 운명에 맡기고 또 떠나야만 했던 고대 희랍 무역 도시국가 코린토스인들의 '일상의 운명'을 신화 상의 코린토스의 왕(시조) 시지푸스의 운명과 동일시하고 가호를 빌면서, 시지푸스 바위산을 바라보면서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삶의 지혜'였을 거란 추정을 해보았습니다ㆍ
감사합니다 ~ ^😃^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그리스 신화에서 찬밥 취급을 받아오는 게 시지프 신화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어느 유튜브인지는 몰라도.. 1900년 초판으로 600권을 찍었는데 8년이 지나도록 그 600권이 모두 팔리지 않았다는 게 팩트일 겁니다.. ^^
@@onestar1813 8년이 8권으로 와전된 모양입니다 ^^
탁월하신 통찰과 연구심입니다 사상과 신화에 몰두에 자신의 고유한 것을 만들어낸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죠 ㅎ
@@손종현-i9s 😍💓
시간없다는 핑계로 요즘 뜸했는데 최소 한영상을 10번정도 듣고있습니다.
그러면 본책을 소화하기 수월해집니다.
바쁜데 읽어보고 싶은책은 점점 많아지고 ....ㅎ 독서의 큰 길잡이입니다.
제 노력에.. 더 큰 노력으로 보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굿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