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기 기억나네.... 그 당시 학교(국민학교)에서 올림픽 일정게임 보라고 독려운동 비슷하게 해서 울반은 야구장으로 갔더니 마침 한일전 중이었지... 그 당시엔 야구 한일전이었어도 과열되거나 만원관중이거나 그러지 않고 우리들도 이기건지건 잠실야구장 해맑게 뛰어다녔던 기억밖에 안나는데 이게 이제 박물관으로....ㅋㅋ
올드삼빠 *백인천 감독의 의해 현대 트레이드 이후~ 나는 푸른유니폼 외에는 생각 해본적이 없다면서 은퇴해버림 . 삼성에 대한 사랑은 양준혁과 쌍벽 *아마시절 5연타석 홈런(2경기 연속 3홈런 다음날 2홈런 까지) *삼성 올스타기념 야구 형식의 야구였지만 어째든 라팍 개장 후 첫 홈런 당사자
@@seoul-countryman ㅎㅎ 내가 당시에도 야구팬이라 왠만한 야구인은 아는데요~ 몰라서 찾아 보니까 당시 감독이 김병우라는 분이고 제일은행 감독이었네요. 처음듣는 이름인데 현재 백구회 회장이네요~ 당시 김경기는 고려대 4번이었고 김동수는 대학리그 NO. 1 포수였습니다. 죄송한 얘기지만 코칭스텝이 조금더 능력 있는 분들로 구성됐으면 더 좋은 성적이 가능할 정도로 괜찮은 멤버이긴 했는데 아쉬움이 있네요.
후루타 아츠야는 8회에 올라온 박동희와는 서울 올림픽 이후 1991년 슈퍼 게임 때 다시 만났는데, 이때 후루타가 "뭐? 너처럼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가 여태껏 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라고 의아해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박동희도 자극을 받았는지 1992 시즌 전반기에는 그동안의 태업과 장티푸스로 인해 강병철 감독이 2군에서 시작하라고 했고, 후반기에 1군 무대에 올라와 1992년 한국 시리즈에서 롯데의 한국 시리즈 우승의 일등 공신 및 MVP에 올랐다고 하죠.
저때는 국제대회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했는데 투수보다 타자가 유리했음. 실예로 고 최동원 투수가 대학시절 일본 프로야구팀하고 친선경기 하고 나서 나무배트라서 오히려 국제대회보다 더 편했다고 했음. 저 때 강기웅 노찬엽 김기범 이외에 선수들은 그닥 활약을 못했음. 그래서 일본에게 졌음. 프로선수 출전 이전에 최고의 대표팀은 82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한 국대임. 선동열, 한대화 등이 소속된.
전부 다들 강기웅이 체력이 딸려서 경기 못 나오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데 프로야구 원년팬으로서 한 마디 하자면...어떤 분야에서든지 탑클래스에 있는 사람들, 특히나 천재.수재소리 듣는 사람들을 보면 성깔없는 사람들이 드물지...강기웅또한 보통 성격이 아니라서 지 맘에 안 들면 때려 치우는 스타일이고...그러한 성격 때문에 당시 감독들과 트러블이 일상다반사였었다...야구자체는 진짜 잘 하지만 GR맞은 성격 땜에 열받은 감독이 경기 안 내보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성격만 어떻게 보통의 다른 선수들 같았으면 역대 대한민국 아마, 프로 통틀어 최고의 2루수인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당시 동시대에 활약하던 OB베어스의 김광수 따위를 강기웅과 비교질해서 자존심상한다고 강기웅이 드립쳤던 건 야구에 관심많은 원년 삼성팬이라면 알겠지~이 건 나중에 삼성라이온스 감독이었던 류중일의 입을 통해서도 나왔던 사실이었고...활동한 기간, 통산 타격지표 같은 걸 봤을 때 역대 최고의 2루수는 정근우가 맞지만 강기웅의 타격센스라든지 수비능력을 놓고 보면 정근우보다 강기웅에게 표를 주고싶다...한...반수정도 위랄까...타격의 정확도, 장타력, 주루센스, 수비능력, 어깨수준을 다 따져보면 이 당시 아주 드문 5툴플레이어였었지~예전 여기 먼저 들어 온 댓글러들 중 강기웅을 "뛰어난 교타자"라고 표현한 댓글러가 있던데 삼성라이온스 야구를 제대로 봤더라면 "교타자" 드립은 못 칠텐데...강기웅이 나온 경기를 얼마나 봤는 지 궁금하네...아마츄어 때 4연타석 홈런을 친 타자를 "교타자"?프로에서 예전 박경완이 타이를 이룬 이 기록은 아직 아마츄어 경기에선 깨어지지 않는 기록이고 마지막 5번째 타석 때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는 타구가 나왔었는데 스윙을 5cm만 더 돌렸더라면 야구역사 상 전무후무한 5연타석 홈런이 나올 뻔 했었다고 강기웅이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아쉬워했었고...(MLB기록에 5연타석 홈런이 있는 줄은 모르겠음)체격에 비해서 대단한 펀치력을 가졌던 선수라서 안타갯수 대비 홈런이 많았던 선수였었고...또, 류중일이 밝힌 강기웅의 천재성을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가 강기웅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치료받으러 입원해 있었다는 데 대체2루수가 갑자기 경기에 나올 상황이 안 되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경기 바로 전 병원에서 강기웅을 불러 출전을 시켰는데 워낙 급하게 델꼬 온 지라 연습타격 한 번 해 볼 시간없이 바로 타석에 들어서서 부상 후 첫 스윙에 바로 안타를 쳐 버려서 같은 팀 동료들에게 "역시 강기웅이다"란 찬사가 나왔다더군~여기 들어 온 댓글러들 중 강기웅의 플레이를 제대로 본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런지 궁금한데 강기웅, 정근우의 플레이를 다 본 야구팬으로서 정근우가 강기웅보다 나은 건 발빠르기와 주루센스 밖에 없다...최고의 2루수는 정근우가 맞지만 2루수 출신 최고의 재능은 강기웅이라 말하고 싶다!
푸른 피의 의리의 강기웅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한다기에 더러워서 야구 안해 삼성 아니면 야구 안한다고 스스로 은퇴한 선수죠..당시 일본의 국대 라인업이 노모 히데오, 후루타, 마에다, 다쓰나미,니시이 이 선수들은 몇년후 부터 npb 를 씹어 먹었던 굉장한 라인업 입니다
강기웅 역대 2루수중 타격,수비,주루 3박자 모두 잘한선수
얼굴도 잘생김
이경기 실시간으로 보면서 노모선수 정말 잘 던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메이저리그로 이적하여 찬란한 기록을 남겨 현재 일본에서도 추앙받는 최고의 레전드 투수이자 메이저리그에서도 레전드로 남아있지요. 박찬호의 절친이자 선배.. 대단한 선수인것은 확실하네요..
노모가 메이저를 개척해서 수많은 아시아인 메이저리거들이 생긴거죠. 노모의 임팩트는 너무나 굉장했어요. 거의 직구아님 포크인데, 약쟁이시대의 메이저에서 말이죠.
강기웅 선수는 얼굴도 잘생겼네요~^^삼성코치나 감독으로 꼭 다시 오시길 바랍니다~~
0:25 ⛱
운명의 한일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강기웅 정말 적극성까지도 좋은 선수지요 그런 선수를 지도자로 성장되어야지 한국야구도 한가지라도 달라지지요
진짜 야구 천재는 강기웅이다ㅎ 혹자들은 그가 게으른 천재라곤 하지만 정말 아마추어때 야구 잘했음
고화질로 이때 영상을 보니 내 어릴때가 생각난다. 삼성 지면 이불 뒤집어 쓰고 울고 그랬지..강기웅, 장태수, 김용국, 류중일.. 내가 인생에서 야구를 젤 좋아했던 한 때..😢
내가 생각하는 43년 크보 역사상 최고의 2루수 👍
이름도 강기웅 역대 야구선수중에 가장 강렬한 기억
82년 원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팬입니다 😊
이 대회 때문에 협회의 요구로 프로입단도 2년 늦어졌죠(당시 프로선수 올림픽 참가불가) 현대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당시 삼성 아니면 야구안한다며 은퇴~입단과 은퇴가 드라마틱 하죠
,84년쯤 영남대 시절 75번 버스 옆자리에 강기웅후배가 앉았는데 등치에 비해 손등이 아주큰 기억이 있네요 ㅡ 야구천재였지 ~~~~
강기웅.야구천재,비운의 스타...대한민국 역대최고 2루수입니다
동의 못하겠네요. 현대로 트레이드된 후에 계속 뛰었으면 모를까, 박정태와 정근우가 넘어버렸네요.
ㅇㅇ 대한민국 역대 최고 2루수는 정근우임 걍
체력적인 요소만 강했으면 정말 최고의 교타자 2루수가 될 수 있는 선수였는데..
늘 시즌 후반에 체력적으로 고생했던 선수였죠..
그래도 타고난 천재성은 최고였던 선수...
비운의 천재 맞죠. 꽃피우지 못한 역대급 재능. 삼성 아닌 다른 유니폼은 의미없다며 이적 후 바로 은퇴해서 더욱 아쉽고요. 강기웅, 이정호..삼팬들에겐 참 아쉬운 천재들입니다.
비운의 스타는 맞지만 역대 최고라는건 좀;; 정근우라 봅니다
88년의 이 햇살..그립네요..
삼성에 3강시대가 온다던 89년도, 올라운더 강기웅, 괴력의 강영수, 애매했던 강종필... 하일성위원은 최고 천재이자 야구센스로 이종범 보다 강기웅을 꼽았죠.
올림픽 때문에 프로도 못가고 1~2년 실업팀에 묶여있던 선수들 심정은 어땟을지... 83학번 선수들은 2년씩이나 강제로 아마 잔류. 그것도 정식 종목도 아닌데.
당시시대상이죠 . 보상도 제대로 안해주고.너무 했죠
국가가 깡패여~~~
이 경기 기억나네....
그 당시 학교(국민학교)에서
올림픽 일정게임 보라고 독려운동
비슷하게 해서 울반은 야구장으로
갔더니 마침 한일전 중이었지...
그 당시엔 야구 한일전이었어도
과열되거나 만원관중이거나 그러지
않고 우리들도 이기건지건 잠실야구장
해맑게 뛰어다녔던 기억밖에
안나는데 이게 이제 박물관으로....ㅋㅋ
이제 박물관 가실 나이 ㅋ
실은 저는 그때중3 ㅋ
국민학교가 먼 뜻인지도 모르고...
황국식민의 약자다...
일본 천황폐하의 백성 학교 라는 뜻이다.
기분 좋냐?
그때 그렇게 불렸더라도 나쁜뜻으로
쓰인 말이니....
초등학교라고 해야지.
무식하게
올드삼빠
*백인천 감독의 의해 현대 트레이드 이후~ 나는 푸른유니폼 외에는 생각 해본적이 없다면서 은퇴해버림 .
삼성에 대한 사랑은 양준혁과 쌍벽
*아마시절 5연타석 홈런(2경기 연속 3홈런 다음날 2홈런 까지)
*삼성 올스타기념 야구 형식의 야구였지만 어째든 라팍 개장 후 첫 홈런 당사자
귀한영상이네요 저 시기에 노모선수 나오면 우리는 안타하나 치기 힘들정도로 막강했고
김기범선수 같은분은 아마들만 출전이 가능했던 올림픽이기에 프로입단도 강제로 미루고 올림픽출전할정도로 국가권력이 막강할때였죠 ㅎ
일본은 전통적으로 좌완에 약했기에 김기범선수가 선발로 나온거 같네요
강기웅선수는 20년전만해도 올타임 최고2루수로 손꼽히던 선수였죠 천재 2루수였음
대구고 선배이십니다.가끔 김상엽선배랑 같이 모교에 오셨죠.우린 얼굴보러모였고.
강기웅 류중일 라인 멋졌는데
역쉬 강기웅~~!!!♡♡♡
한국의 만루 기회가 2번이나 있었는데,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그런데 노모 히데오의 투구폼이 참 독특하긴 하다.
하일성 의원 참 좋은 사람..
재능도 엄청나고 센스있는 플레이 잘 하셨죠.. 근데 이놈의 부상이 발목을 잡은 케이스 ㅜ.ㅜ
추억의 80년대 고교 슈퍼스타들이 즐비.
가장 특급이 강기웅, 박동희.
노모 후루타
강기웅 정말 좋아했는데..
요즘은 뭐하시는지.
근황이 궁금하네요
지금은 깨진지 모르겠으나 kbo리그 더블헤더 최다안타 9안타기록의 보유자
하루에 10타수 9안타 쳤죠..
노모등판 11:06
강기웅등장 13:57
와일드하다 폼 하나하나가 알방 소리 경쾌하네요 ㅋㅋ
일본 역대급 투수 노모 히데오, 역대급 포수 후루타 아쓰야, 이 둘의 존재만으로도 한국팀이 비벼봤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경기임.
감독의 선수 기용이 이해안감~ 강타자들 놔두고 후보들을 스타팅으로 기용했네~ 강기웅이 최해명보다 공격 수비에서 월등한데 dh로 넣고 김경기 김동수를 경기 막판에 대타로 사용^^ 감독이 누굴까요?
저때는 다 아마츄어 시절이라 지금 시각에서 선수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투수교체도 그렇고 타순과 선수기용이 좀 이해가 안되긴하네요ㅎㅎ
@@seoul-countryman ㅎㅎ 내가 당시에도 야구팬이라 왠만한 야구인은 아는데요~ 몰라서 찾아 보니까 당시 감독이 김병우라는 분이고 제일은행 감독이었네요. 처음듣는 이름인데 현재 백구회 회장이네요~ 당시 김경기는 고려대 4번이었고 김동수는 대학리그 NO. 1 포수였습니다. 죄송한 얘기지만 코칭스텝이 조금더 능력 있는 분들로 구성됐으면 더 좋은 성적이 가능할 정도로 괜찮은 멤버이긴 했는데 아쉬움이 있네요.
88서울올림픽때까지야구는 시범경기였고 저때4강이 한국 일본 미국 푸에르토리코였음 ㅎㅎ 내가 고2때로 저현장에 있었음
강기웅ㆍ류중일ㆍ노찬엽ㆍ김종석 83학번 최고선수들
강기웅.류중일.두 분 제 동생 친구.
ㅋ 근데 두분 모두 한해씩 꿀린거?
하긴 만수.효조형..죄 한해씩 꿀렸지.ㅎ
오대석이는..ㅋ
16:00 튼동님도 88올림픽 국대출신이었군요.
1988 올림픽 ♾️ 20살 🕺시절 귀한영상
강기웅은 아마때 타울6할은 기본이였지
LG 이상훈이 프로에서 첫 만루홈런을 맞은 선수가 강기웅...
그것도 초구에..
최고의 2루수
野茂から何度もチャンスメイクしてる時点でかなりの健闘 日韓戦が昔みたいに盛り上がれば嬉しい
ㅋㅂㅅ박물관❤️
삼성 양준혁 김성래 강기웅 트리오는 최고의 핵타선이였지..
이중두 도 있지않나요 ㅋㅋ
그 전에 장효조 이만수 김성래ㅎㅎ
강기웅천재였죠
93 번트없는 삼성야구.
2루수 강기웅, 중견수 동봉철, 지명타자 양준혁,1루수 김성래, 우익수 이종두, 3루수 김용국, 포수 이만수, 유격수 유중일 좌익수 정영규.
혹은 (좌익수 양준혁 1루수 양준혁) (지명타자 이만수,김성래,김성현) 포수 김성현
역사적인 88 서울 올림픽
야구 ⚾️
방망이 거꾸로 잡아도 3할 가능하다는 분
올림픽이 잘됐고 한일전이 아무런 잘못없이 진행됐다 화이팅 대한민국!!!
체력 관리에 약점을 보여서 그렇지 타격 재능은 역대급 중에 한 명이였지...
더블헤더 경기에서 10타수 9안타를 치는 것도 봤으니...
저때 야구장 어디였어요?
잠실야구장요
@@승모홍-z2r 정보 감사합니다~
강기웅이 대구고 시절부터 날렸지
경상중부터 강기웅은 잘했지 .거포 박종철과 더불어 ..
@@나훈아형-p8x 수창국민학교 부터 잘 했죠.
일본 배터리도 무시무시했네요 노모에 후루타라니
후루타 아츠야는 8회에 올라온 박동희와는 서울 올림픽 이후 1991년 슈퍼 게임 때 다시 만났는데, 이때 후루타가 "뭐? 너처럼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가 여태껏 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라고 의아해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박동희도 자극을 받았는지 1992 시즌 전반기에는 그동안의 태업과 장티푸스로 인해 강병철 감독이 2군에서 시작하라고 했고, 후반기에 1군 무대에 올라와 1992년 한국 시리즈에서 롯데의 한국 시리즈 우승의 일등 공신 및 MVP에 올랐다고 하죠.
당시 후루타는 그저그런 선수 였음 강견인데 공격이 안됀다고
@@강규영-y7q 솔직히 한국시리즈에서도 박동희 활약보다는 염종석 윤형배 선수가 더 돋보였다고 봅니다.
김기범 노찬엽 최훈재 엘지가 확실히 멤바가 좋았네
솔직히 이게임은 일본이 우리한테 말려서
마지막까지 박빙인거지
94년 9월 27일 포항(당시 포철) VS 가시마 친선경기 1차전(포철 3-2 승) 동영상이 있으면 올려 주십시오.
류중일 강기웅 고교때 부터 유명했었죠 당시 학교 레벨이 경북고가 야구 명문이라 류중일이 더 인기있었는데.. 타격은 강기웅이 훨씬 나았죠
하지만 이들보다 네임 벨류가 떨어진 대구상고의 이정훈이 프로에서는 앞서 갔었죠 빙그레 이글스에서..
[ㅋ ㅂ ㅅ 박물관] WBA 미니멈급 타이틀전 최희용 vs 오하시 히데요키 요청합니다.
이와중에 김태형감독 국대포수였다니 ㅎ
박동희는 제구력과 변화구가 약점이어서 그렇지 직구 자체는 역대급인것 같음! 저때의 노모는 오히려 메이져시절보다 직구가 더 좋은것 같은데..?!
노모히데오가 확실히 잘던지네..
강기웅" 삼성라이온즈 레전드! 지금 어디있나요? 삼성라이온즈에 코치로 있나요? 근항이 궁금합니다?
故하일성씨 그립네요
비운의 스타가 아니라 나무배트는 강기웅에겐 너무벅찬 야구 강기웅 프로에서는 딱 자기성적낸 선수
프로에서도 5연타수 홈런 때렸다.
그럼 다저스에서 3연속홈런친 한국선수가 스타되었냐 그냥 평범한 메이져리그 선수임 참 무식한댓글
한국화장품 아마시절이에요
5연타석 홈런 치고 다음 볼넨
그리고 또 홈런 쳤습니다.@@소은처사
1루 비었으니 더블플레이 유도하기 좋고 3번이니
그리고 초구 폭투성 볼이 아니었다면 정면 승부했을 가능성이 높죠
여하튼 강기웅 대한 선수였죠 연타석 만루홈런에다
삼성이 트레이드 하려하자 그냥 그대로 은퇴해버린국내 최고의2루수 강기웅 같은 사람이감독직을 맡아야하는데.색깔도 분명하고
일본하고 붙으면 실력차가 나더라도 호각세 였는데 이제는 인정 안하려고 하는데 너무 차이가나게 져버리니 실력일까요? 정신력 일까요.....
저때는 국제대회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했는데 투수보다 타자가 유리했음. 실예로 고 최동원 투수가 대학시절 일본 프로야구팀하고 친선경기 하고 나서 나무배트라서 오히려 국제대회보다 더 편했다고 했음.
저 때 강기웅 노찬엽 김기범 이외에 선수들은 그닥 활약을 못했음. 그래서 일본에게 졌음.
프로선수 출전 이전에 최고의 대표팀은 82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한 국대임. 선동열, 한대화 등이 소속된.
노모가 88때 왔었군 ㅎㅎ
지능적인 포수 후루타도 왔음
오 곰사냥꾼 김기범 ㄷㄷㄷ
옛날 선수들이 수비는 지금 보다 더 잘 하는거 같음....
노모히데오가나왔구나 ㄷㄷ
일본 선발투수 프린스호텔에 근무 ㅠㅠ
저기는 사회인야구도 또 하나의 빅리그이니 ...
16:00 포수 김태형 (전 두산/ 현 LOTTE감독)ㅎㄷㄷ
최해명 왜 5번?? 알차게 말아먹었네요
삼성에서도 존재감이 전혀 없이 사라짐..
저 시기에도 우리는 좌완으로 한일전을 대비했네 ㅋㅋㅋㅋ
삼성의 강기웅 류중일 콤비~
노모한테는 힘들지. 강기범 호투햇는데 8회까지 올린 건 감독미스다.
강기웅 현대가서야구했어야지 아까운선수
김태형 감독님이 왜 여기서 나와
전부 다들 강기웅이 체력이 딸려서 경기 못 나오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데 프로야구 원년팬으로서 한 마디 하자면...어떤 분야에서든지 탑클래스에 있는 사람들, 특히나 천재.수재소리 듣는 사람들을 보면 성깔없는 사람들이 드물지...강기웅또한 보통 성격이 아니라서 지 맘에 안 들면 때려 치우는 스타일이고...그러한 성격 때문에 당시 감독들과 트러블이 일상다반사였었다...야구자체는 진짜 잘 하지만 GR맞은 성격 땜에 열받은 감독이 경기 안 내보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성격만 어떻게 보통의 다른 선수들 같았으면 역대 대한민국 아마, 프로 통틀어 최고의 2루수인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당시 동시대에 활약하던 OB베어스의 김광수 따위를 강기웅과 비교질해서 자존심상한다고 강기웅이 드립쳤던 건 야구에 관심많은 원년 삼성팬이라면 알겠지~이 건 나중에 삼성라이온스 감독이었던 류중일의 입을 통해서도 나왔던 사실이었고...활동한 기간, 통산 타격지표 같은 걸 봤을 때 역대 최고의 2루수는 정근우가 맞지만 강기웅의 타격센스라든지 수비능력을 놓고 보면 정근우보다 강기웅에게 표를 주고싶다...한...반수정도 위랄까...타격의 정확도, 장타력, 주루센스, 수비능력, 어깨수준을 다 따져보면 이 당시 아주 드문 5툴플레이어였었지~예전 여기 먼저 들어 온 댓글러들 중 강기웅을 "뛰어난 교타자"라고 표현한 댓글러가 있던데 삼성라이온스 야구를 제대로 봤더라면 "교타자" 드립은 못 칠텐데...강기웅이 나온 경기를 얼마나 봤는 지 궁금하네...아마츄어 때 4연타석 홈런을 친 타자를 "교타자"?프로에서 예전 박경완이 타이를 이룬 이 기록은 아직 아마츄어 경기에선 깨어지지 않는 기록이고 마지막 5번째 타석 때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는 타구가 나왔었는데 스윙을 5cm만 더 돌렸더라면 야구역사 상 전무후무한 5연타석 홈런이 나올 뻔 했었다고 강기웅이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아쉬워했었고...(MLB기록에 5연타석 홈런이 있는 줄은 모르겠음)체격에 비해서 대단한 펀치력을 가졌던 선수라서 안타갯수 대비 홈런이 많았던 선수였었고...또, 류중일이 밝힌 강기웅의 천재성을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가 강기웅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치료받으러 입원해 있었다는 데 대체2루수가 갑자기 경기에 나올 상황이 안 되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경기 바로 전 병원에서 강기웅을 불러 출전을 시켰는데 워낙 급하게 델꼬 온 지라 연습타격 한 번 해 볼 시간없이 바로 타석에 들어서서 부상 후 첫 스윙에 바로 안타를 쳐 버려서 같은 팀 동료들에게 "역시 강기웅이다"란 찬사가 나왔다더군~여기 들어 온 댓글러들 중 강기웅의 플레이를 제대로 본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런지 궁금한데 강기웅, 정근우의 플레이를 다 본 야구팬으로서 정근우가 강기웅보다 나은 건 발빠르기와 주루센스 밖에 없다...최고의 2루수는 정근우가 맞지만 2루수 출신 최고의 재능은 강기웅이라 말하고 싶다!
롯데의 V2 주역! 박동희 감독님 ㅠㅠ🩵❤️
어릴때 강기웅 그라운드 패싸움하고 얼굴에 피가났던 기억이 생생하네
푸른 피의 의리의 강기웅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한다기에 더러워서 야구 안해 삼성 아니면 야구 안한다고 스스로 은퇴한 선수죠..당시 일본의 국대 라인업이 노모 히데오, 후루타, 마에다, 다쓰나미,니시이 이 선수들은 몇년후 부터 npb 를 씹어 먹었던 굉장한 라인업 입니다
정도영 아나운서 고 하일성 해설위원의 중계네요
2:30 ??? : 대타, 저요 (代打,オレ)
그저께 WBC 한일 전 13대 4 대참사 에휴..ㅜㅜ
MBC 청룡...김기범 ... 요즘 뭐하나 몰라...ㅋㅋㅋ
노모 공을 제대로 때리질 못했네.... ㅡ.ㅡ
한국 최고 키스톤 콤비 류중일 강기웅…당시 3루는 김성래.. 1루는 왜 신경식이 생각나지
올림픽에다 한일전인데 생각보다 관중이 적네
하일성 최고
캐스터는 누구시죠?
정도영 아나운서입니다
저때도 노모 투구폼이 저랬구나
노모 히데오의 앳된(?) 모습과 토네이도 피칭 야쿠르트 스왈로즈 주전 포수이자 감독이었던 후루타 선수를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롭네여🧐
왜 알뱃인지 아시는분 계신가요?
아마추어 야구 때라서 알뱃으로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올림픽은 아마추어선수만 참가가능했고 아마추어대회니까 당근 알뺏이죠
노모 이때는 포크볼 안던지네? 그나저나 한국은 김기범이 젤 대단 ㄷㄷㄷ
강기웅만 빼고 공격력 너무 약하다 김기범 선발투수 잘던졌는데
저당시 국대가 지금보다 잘한듯 ㅋㅋ
직관한경기네요
과거 일본야구는 한국과 대결하면 늘 좌완에 약하기로 유명.
만루에서 스퀴즈라니...
일본답지않게 결정적 실책을!
캐스터 정도영 해설 하일성
노모공 13:31 쫀빠르다 저런데도 부상때문에
88년도에 저 정도 했으면 잘 했네. 가장 잘한 건 김기범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