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wo 저때당시에 동양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동양황금기였고 송나라건 고려건 금나라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마무시한 황슴기였음. 근데 몽골의 말발굽에 모든인프라가 짓밟혀나갔고 소실된기술이나 과거 삼국시대문화잔재들도 많이 없어졌을거임. 몽골의 침략이 만약없었다면 어떤색체의 도시가 만들어지고 문화가 발달됐을까 기대대기도함
@@kaelayondrasen 고려양 물어보는데 다른 소릴하세요 그리고 몽골왕비가 고려인에 다음왕이 고려인 피섞인 왕 명나라도 초대왕이 고려인유력에 둘째왕도 엄마가 고려인이였죠 ㅋㅋ 그리고 건축양식은 신라때 동양에서 가장 높은 황룡사가 있었습니다 남의나라 건축에 대해서 신경끄세요
고려는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동아시아 최강국이었으며 황제국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였는데 글을 읽어보니 이해가 되네요. 조선 때 그렇게 책을 태웠었는데 이유가 있군요. 명나라를 사대하게 된 조선이 조선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책을 불태웠던 일 일제감정기 때 후진국은 선진국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즉 점령받아도 마땅하다는 일본의 뜻에 맞게끔 실제 역사를 축소하였고 그렇게 바뀐 역사를 대한민국 국민들이 당연하듯 배우고 있군요. 역사를 공부하면서 의문증이 든 것이 한 둘이 아닌데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사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이야말로 조총 말고는 열병기 없어서 조선의 중화기에 대응책도 없어서 화포쇼크 먹고 1611년에 가서야 일본제 화포를 처음 만들었는데?😂 대놓고 신라신사 백제왕신사 고려신사에 한국인 신을 모시는 게 일본인데? 일본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 “조선식 산성”가 일본에 28개란다😂 핫토리 역에는 대놓고 푯말로 한국인이 조선식 성을 쌓고 (키노조) 주변에 기술을 전수해줬다고 하는데😂 왕인박사 묘도 있고 일제시대에조차 일본 각지 지명에 백제 신라 고구려 지명과 여러 한국계 문화를 탐구하는 서적을 그 총독부에서 냄 현재 일본 국회 전자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있음 (朝鮮総督府中樞院、「朝鮮の国名に因める名詞考」 1940) Imagined Communities 라는 책에는 일본 학자들이 왕릉 발굴 하고 싶었는데 궁내성에서 막고 있다고 밝힘. 이유는 예전에 한번 했더니 한국 유물이 너무 많이 츨토 되니까😂 “私は、ゲンの物語に、朴さんという一人の朝鮮人を登場させました。地理的に最も近い国、そして古くは文化をもらい、学ばせてもらった国・朝鮮なのに、戦争遂行のためにいかに日本が差別し、侵略してきたか、そのことを多くの読者に知ってほしかったからです。(中沢啓治) ” ”나는 겐의 이야기에 박씨라는 한 명의 조선인을 등장시켰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그리고 옛날에는 문화를 받고, 배워왔던 나라가 조선인데, 전쟁 수행을 위해 어떻게 일본이 차별해, 침략해 왔는지, 그것을 많은 독자에게 알고 싶었기 때문에 입니다. (나카자와 케이지)“ - 일본 전국 학교에 있는 맨발의 겐이라는 베스트 셀러의 작가😮
좌파판 역사왜곡은 왜 들먹이시지 않나? 햇볕정책/중립화 관련해서 무리하게 광해군 치켜올려세우던 거랑, 정조=노무현 개혁군주 이미지 작업 친거 말이야. 2000년대에 참 많이도 속았지. 그래서 4050은 전세대 못지않은 편향성을 자랑하는 묻지마 좌파세대가 된거고. 유물론적 사관 하나는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톱인 한국 사학을 식민사학으로 폄하하던게 그짝들인데. 한때 바이러스 처럼 유행하던 환빠도 재야 운동권 작품 아닌가.
@@mariwo 잘못썼댄다 ㅋㅋㅋ 저걸 착각할 정도면 얼마나 music한거냐 ㅋㅋㅋ 당시 동양의 목탑은 니가 생각하던 주택양식과 완전 달랐어. 가운데 수십미터 나무기둥 박고 쓰러지지 말라고 흙도 때려박은 다음에 외곽 부분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아예 주택으로 사용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뭐 한나라 식민지였던 낙랑지역에 중국식 고층 주택이 있었긴 했었다. 그 뒤로 전무했던거지
온돌문화와 장작 때문에 나무를 이미 너무 많이 소비하기도 했고 굳이 자원 낭비해가며 고층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으니까 안 지었겠지 다른 나라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지은거고 그게 누가 우월했고 미개했는지와 아무 상관없단 것을, 네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고 과거 사람들은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역사 공부 조금만 해도 알텐데 참 마인드부터 공부와 거리가 멀어보이네
더 놀라운건 저게 24년전 방송이라는 거... 진짜 세월 순식간이네.
내부도 보여주지
@@KHJ23414 근거는?
저때당시 송나라건축양식이 인기였고 고려건 일본이건 송나라에가서 건축법도 배워오고했었음. 송나라는 군사력은 약했지만 문화적으로나 교육적 과학적으로는 당대 최고였으니까
@@kaelayondrasen무슨 중국같은소리를 세계최초 금속활자를 만든게 고려 입니다 원나라 명나라에 고려양이 너무유행한건 어떻게 생각하나요?😂
@@mariwo 저때당시에 동양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동양황금기였고 송나라건 고려건 금나라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마무시한 황슴기였음. 근데 몽골의 말발굽에 모든인프라가 짓밟혀나갔고 소실된기술이나 과거 삼국시대문화잔재들도 많이 없어졌을거임. 몽골의 침략이 만약없었다면 어떤색체의 도시가 만들어지고 문화가 발달됐을까 기대대기도함
@@kaelayondrasen 고려양 물어보는데 다른 소릴하세요 그리고 몽골왕비가 고려인에 다음왕이 고려인 피섞인 왕 명나라도 초대왕이 고려인유력에 둘째왕도 엄마가 고려인이였죠 ㅋㅋ 그리고 건축양식은 신라때 동양에서 가장 높은 황룡사가 있었습니다 남의나라 건축에 대해서 신경끄세요
고려 왕건 인정합니다 ❤
문경 영화 촬영지!
고려시대인이,욕하겠지,조선건국한이성계장국을미워마세요 삼국시대나는백제
문경어디인가요??
@@다솜-n7g문경새재 안일 겁니다.
@@이경희-p2j 건국이 아닌 개국. 한반도 역사 중 건국은 단 한번, 고조선 건국 뿐이다.
고려는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동아시아 최강국이었으며 황제국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중공의 희망사항을 말씀하시네요.
@@jerome-e9k먼 개소리고 중국 일본이 왜곡한 우리 역사 되찾자는 소린데 ㅋㅋ
제발 이상한 사이비에 빠지지 마시고 집앞 분리수거장 가셔서 분리수거좀 도와주세요
역사를 공부하면서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였는데 글을 읽어보니 이해가 되네요.
조선 때 그렇게 책을 태웠었는데 이유가 있군요.
명나라를 사대하게 된 조선이 조선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책을 불태웠던 일
일제감정기 때 후진국은 선진국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즉 점령받아도 마땅하다는 일본의 뜻에 맞게끔 실제 역사를 축소하였고 그렇게 바뀐 역사를 대한민국 국민들이 당연하듯 배우고 있군요.
역사를 공부하면서 의문증이 든 것이 한 둘이 아닌데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사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중수교후 한국이 ㄷㅅ처럼 일본이 만들어준 반도역사만
한국사로 가르친다는거 알고
이게 왠 떡 이라며 동북공정
나선거임 그래서 중일이
우리를 ㄷㅅ이라 얕잡아 보는거임
👍 고맙습니다.
거대한 문을 열면 웅장한 건물 하나가 콸콸콸~!!!
왕건메토 옥탈코사노
아이고오오오오 기둥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건물양식이 고구려고분에서 보이는 고구려건축물과 같네요.
그 당시까지는 고구려양식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단청도 들어가고 많이 바뀌었군요.
고구려때도 다는 아니지만 부푼 단청이 있었어요
해외에서 세계사 전공하면서 배운것 중 가장 놀라웠던건.. 조선이라는 나라의 엄청난 퇴보임... 진짜 세계사에서 평가하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진짜 아무것도 없는 우물안 개구리 그런 나라 그자체임..
퇴보 이야기하는거 보면 공부를 서유럽 중심으로만 했네 당시 국제정세나 지리적 여건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행태였는데
이씨 조선의 성리학 국가는 권문세가,사대부 왕가,귀족 놈들의 명나라 똥꼬빠는 주자성리학의 텔레반 거지 국가이자 부끄러운 한반도의 역사임!!!
@@유수윤-m4o조선중,후기때는 그랬죠.지금의 북한과도 비슷.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우물안개구리.
일본이야말로 조총 말고는 열병기 없어서 조선의 중화기에 대응책도 없어서 화포쇼크 먹고 1611년에 가서야 일본제 화포를 처음 만들었는데?😂
대놓고 신라신사 백제왕신사 고려신사에 한국인 신을 모시는 게 일본인데? 일본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 “조선식 산성”가 일본에 28개란다😂
핫토리 역에는 대놓고 푯말로 한국인이 조선식 성을 쌓고 (키노조) 주변에 기술을 전수해줬다고 하는데😂 왕인박사 묘도 있고
일제시대에조차 일본 각지 지명에 백제 신라 고구려 지명과 여러 한국계 문화를 탐구하는 서적을 그 총독부에서 냄 현재 일본 국회 전자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있음 (朝鮮総督府中樞院、「朝鮮の国名に因める名詞考」 1940)
Imagined Communities 라는 책에는 일본 학자들이 왕릉 발굴 하고 싶었는데 궁내성에서 막고 있다고 밝힘. 이유는 예전에 한번 했더니 한국 유물이 너무 많이 츨토 되니까😂
“私は、ゲンの物語に、朴さんという一人の朝鮮人を登場させました。地理的に最も近い国、そして古くは文化をもらい、学ばせてもらった国・朝鮮なのに、戦争遂行のためにいかに日本が差別し、侵略してきたか、そのことを多くの読者に知ってほしかったからです。(中沢啓治) ”
”나는 겐의 이야기에 박씨라는 한 명의 조선인을 등장시켰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그리고 옛날에는 문화를 받고, 배워왔던 나라가 조선인데, 전쟁 수행을 위해 어떻게 일본이 차별해, 침략해 왔는지, 그것을 많은 독자에게 알고 싶었기 때문에 입니다. (나카자와 케이지)“ - 일본 전국 학교에 있는 맨발의 겐이라는 베스트 셀러의 작가😮
@@백민-j4kㅂㅅ이네 규슈가 한반도보다 더 남단에 있어서 먼저 접촉한 거지
그리고 다시는 몽골인들 성장 못하게 하려고 명나라가 실크로드 무역로를 닫아버려서 조선시대에 육상 국제 무역은 폐쇄될 수 밖에 없었음
대제국 답게 엄청 화려하고 아름답다
조선은 어째 저보다 더 못하네 역사가 후퇴되네 그것도 500년이나
@먹는것이행복한뭐가 없냐 모든면에서 예술포함 전체적으로 개막장이 좃선인데 차라리 고려가 나앗지
@@jennypark1376 모르면 가만히 있지; 온돌보급으로 2층집이 없어진거고 평안도 지역은 많이 남아있음. 그 외에 어떻게 조선이 더 못하다고 증명할건데?
@@jennypark1376 농업, 건축, 상업, 문화, 과학 등 많은 분야에서 조선이 더 나음. 물론 세월이 지났으니 그런거긴 하지만
@@jennypark1376네가 쓰는 한글도 조선에서 나온거다 병시나
에이 뭐예요 안에도 보여주는 줄 알았잖아~
대제국 고려 역사를 반드시 찾아야합니다
@@장권동-q7e 대제국?
@@한국-c2u 환빠임
그냥 무시하셈.
@@청풍명월ㅋㅋㅋㅋ피응신
이런 역사다큐 프로들 앞으로도 만들어줬음 좋겠다~ 하지만 큰일이네요 역사편찬위원장 낙성대연구소 등등 다 뉴라이트 사람들로 채워졌으니 역사왜곡이나 할 텐데..
좌파판 역사왜곡은 왜 들먹이시지 않나? 햇볕정책/중립화 관련해서 무리하게 광해군 치켜올려세우던 거랑, 정조=노무현 개혁군주 이미지 작업 친거 말이야. 2000년대에 참 많이도 속았지. 그래서 4050은 전세대 못지않은 편향성을 자랑하는 묻지마 좌파세대가 된거고.
유물론적 사관 하나는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톱인 한국 사학을 식민사학으로 폄하하던게 그짝들인데. 한때 바이러스 처럼 유행하던 환빠도 재야 운동권 작품 아닌가.
먼 소리야 ...
대한민국 역사 부정하고 북조선에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주사파놈들이 문제지 ..
중국몽당 쎄쎄당이 대한민국 역사를 중국의 속국으로 만드는게 문제다.
90년대에 없어진걸 아직도 핑계대며 찾고있으니 역시 그짝은 가난하고 저능하구나
2층은 난방을 어떻게 하나요?..
여기는 어디 ??? 어디에 있는거지요?
드라마세트에요..고려궁궐은 북경지역에 잔뜩있지요..
@@kim-nh7iu 그만
고려사에 짧게 어필합니다
고려 서경이 대륙북경입니다,구글지도로 검색이 가능한데 북경근처에 왕건마을 고려영 연개소문 비도훈련장 등등 많은 지명들이 그대로살아숨쉬고 있습니다,우리역사에 소소한 관심이라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운치가 넘치네.
고려 영토는 아마도 중국 동부 해안과 만주까지가 아니었을까요. 북경 부근에는 아직 고려라는 지명이 많던데. 저런 드라마 세트로 그 시대를 어찌 알까요
가짜 역사 유튜브들에게 속으셨네요.
제일 위험한 분이네 ㅋㅋㅋ
@@jerome-e9k식민사학 동북공정에 가스라이팅 오지게
당하셧네요
북경인근 고려라는 지명이 있다면
그 고려는 왕건의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를 뜻할겁니다. 고구려의 국호는 고구려 구려 고려등이 혼재하다가 장수왕 이후 고려로 확정되었거든요
왕건의 고려는 이 고구려의 국호를 그대로 가져다 쓴것입니다.
왕씨 고려가 조선보다 작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
고로 우리가 보고 배운 교과서에 실린 고려 영토는 99% 구라다.
서민집도 인상적이네요
밖에서만 2층집이지 사실은 지붕이 높은 1층집 이에요.
영화세트장이랑 실제 2층 집이랑 구분 못하는 지능이에요?
진짜2층입니다
@@user-tg56fg87dfgh 제가 문화재쪽 공부를 했던 사람입니다 가만있으면 2등합니다
10년전 경북 문경새재 오미자.사과축제할때 보았습니다.❤😊
고려시대가 조선시대보다 더 잘 살았는 게 레전드네 ㅋㅋㅋ 정체된 1000년의 역사 ㅋㅋㅋㅋ
중국과 일본을 호령했던 아름답고 용감했던 대제국 고려
저 단청 진짜..
고려시대 가옥이 남아있을리가...ㅎ
사료 기반으로 복원한 겁니다.
@@ksmb2333 사료 기반이라는게 고작 그림밖에 없다는게 한계입니다.
제주도 2층 떵대지 원조😢
이러다간 고려도 중국꺼라고 하겠네
저시대에 이층을 지었으면 대단한기술 아닌가요?
신라때 황룡사 9층석탑
로마 시대, 2층에 상수도…
힘 없는 사람도 자르는게 석회석 대리석. 화강암이랑 비교가 안됨. 상수도는 지하수를 그대로 마실 수 없으니까 개발한거고. 우리나라는 물이 맑고 곳곳에 우물이랑 샘이 있는데 뭐하러 상수도를 함. 도시인구가 100만도 안될 때인데
문경시가 쏘아 올린 세트장ㅎㅎㅎㅎ
사극 드라마를 촬영지로는 상당히 높네요.
태조왕건 세트장인가보네 ㅡㅡㅋ
어데서 허접한 세트를 감히 고려의 왕궁이라고 헛소리를 하는가.
고려의 왕궁이 저딴 세트의 동네 기와집이라는 말이 우습다.
편협한 역사관에서 견소리 하는거다.
한반도는 이씨왕조 조선의 건국으로 500년 퇴보했다.
마루집..저게 필로티구조의 원조인건가...
온돌은 어디간겨??
ㅋㄷㅋㄷ
이 목소린?
중국 일본 실크로드 지배자 고려 답다 !!!! 저런 건물은 중국에 많이 남아 있죠 ~~
높은데 올라가서 파뤼파뤼~!!!
??? - 고려시대나 그랬죠~~
조선 이전 때만해도.한옥은 거의 2층집 귀족들 한에서 조선이 들어서고 좌식 문화되고서 한옥 2층 없어짐.섬국 시대 고려..
중국 건물과 같았음
온돌
중국 건물이랑 다른대요
셋트장 느낌 팍팍 나는데 ㅡ.ㅡ
노비들은 어디.자는겨?
"그대한" ㅋㅋ"근물" ㅋㅋㅋㅋㅋㅋㅋㅋ
달구경 다락, 삼때 뚝 신선이랍데 ㅎㅎㅎ
조선시대 이씨왕조 모든면에서 뭐했노?
@@밑바닥-m5q 명나라 뒤에서 형님빽만 믿겠다
지금 쓰고 있는 문자는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dinos119 정치를 말하는 거.
@@dinos119 정치를 말하는거임.
@먹는것이행복한 그래서 쇄국정책 했나?
명나라속국 주제에 일본에게 유린 당했나?
목소리는 vj특공대 아저씨군요
뭣이라~
2층은 연애장???
예나 지금이나
귀주대첩
조선은 확실히 퇴화한게 맞다...
무려 천년전에 이미 2층 기와집이 있었는데,
조선은 궁궐마저 겨우 1층 기와집ㅋㅋ
조선은 명의 신하국이 되는 바람에 2층집을 못짓게된것같네.
그건 아니구요 온돌 보급과 집을 지을 때 쓰이는 질 좋은 나무가 후대로 갈수록 부족해 져서 집 규모가 작아 졌습니다
중국에 사대한거랑 집 크기가 무슨 상관...애초에 고려랑 조선이랑 상황이 완전히 다른데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게 말이 안돼는 억지에 불과함
석기시대같은데
고려시대 2층건물 조선시대 없으뮼ㅋㅋㅋ
@@영식의슨마일 조선시대에도 2충건물있음..
@@송밀리터리 ㅇㅇ ㅇㅈ ㅋ 내가 잘 못 앎
이조때 퇴보한 한국 문화
고려때 귀화 중국인 이성계가 한국이 더 못 설고 퇴보해야 자기네들 기득권을 오래 쟁취할 수 있다 보고 모든 역사 문화 양식을 고통스럽게 퇴보 시켜 버렸다
뭔 이성계가 중국인이야ㅋㅋㅋㅋ
중국의 지방관리를한 집안인건 맞지. 김정은처럼 철저히 권력만 지킴.
퉁두란(이지란)도 여진족. 동이족은 크게 다같은 족속이다. 언어가 달라서 그렇지. 고려를 완전 부정한 이성계이후 고려민족성은 백성들이 지켜낸것.
어디 뭐 평행세계에서 왔나보네
댓글 다는 사람들 지능이 도데체 어느 정도일까? 실제 이층집을 만들려면 한두채도 아니고 돈이 얼마나 들건데 그걸 빼고 겉모습만 지은걸 진짜인줄 알고 말을 하네
서민들은 초가집도 아닌 움막 움집에 살았음
가짜집을가지고 고려시대 집이란다
베이징이 고려다
저거 논문에서 저런건축은 불가능하다고 이미나와서 우진각지붕으로 수정되었죠
대체 조선시대는 저때보다 발전도가 낮아지던데 뭔일이 있던거냐
북경 자금성이 본래 고려의 서경입니다
옛날 건물들은. 건축하기
힘들었갰다. ----
지금 조선후기 건축을 머릿속에 생각하면
절대로 고려 조선전기 건축물 안그려짐 ㅋㅋㅋㅋ
조선후기 온돌이 전국에 퍼지기전이고 임진란으로 리셋되고 성리학관념으로 건축을 재단했음
청자도 못 만드는 조선
무식이 티내네.
조선시대 청화 백자도 있었는데
청화가 들어가지 않은 담백한 청화가
더 아름다워서 계속 관요에서 만든거다
무식하면 댓글을 달지마
@@나일권-h4r 그냥 백자가 유행한거
건축도 공자 성리학식으로 지음
@@제이에스홀드-e1r 청자는 잘팔렸는데 백자는 잘안팔렸죠
댓글에 중국인(조선조옥)들이 많네요
댓글에 중국인(조선조옥)들이 많네요! 한국 어떻게든 깍아내릴려고ㅋㅋ
삼국~조선시대 통틀어 2층집이 저게 전부인듯.. 유럽은 2천년전부터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서고 가까운 중국, 일본만 해도 고층건물들이 즐비했는데.. 왤케 우리 조상들은 미개하셨을까
😂그당시 동양최대 신라 황룡사 9층석탑이 있는데 무슨 소리세요
@ 목탑이다 ㅋㅋㅋ 석탑은 ㅋㅋㅋ 주택이랑 탑이랑 같냐?
@@압-d2b 잘못쓴거지 목탑으로 쓴거임 더 좋죠 그당시 건축기술이 9층까지 올릴수 있는거면대단한 거니까
@@mariwo 잘못썼댄다 ㅋㅋㅋ 저걸 착각할 정도면 얼마나 music한거냐 ㅋㅋㅋ 당시 동양의 목탑은 니가 생각하던 주택양식과 완전 달랐어. 가운데 수십미터 나무기둥 박고 쓰러지지 말라고 흙도 때려박은 다음에 외곽 부분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아예 주택으로 사용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뭐 한나라 식민지였던 낙랑지역에 중국식 고층 주택이 있었긴 했었다. 그 뒤로 전무했던거지
온돌문화와 장작 때문에 나무를 이미 너무 많이 소비하기도 했고 굳이 자원 낭비해가며 고층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으니까 안 지었겠지 다른 나라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지은거고 그게 누가 우월했고 미개했는지와 아무 상관없단 것을, 네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모르는게 더 많고 과거 사람들은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역사 공부 조금만 해도 알텐데 참 마인드부터 공부와 거리가 멀어보이네
지금젊은애들 한국피가 없다
부모조상 사상도 사라진지 오래다 왜적보다 더한 국적
불명의 자손을기르고있다
조까 그래서 어쩌라고
패배주의
그럼 고려 이전시대는 온돌문화가 아니네요. 새로운 발견입니다. 온돌은 이조선때 실학의 발달로 도입됐다는거네요.. 와우~ 🤣🤣🤣👍
조선중기 이후에 병자호란 이후 소빙하기때 보편화됌 그이전은 양반은 카페트 깔고 의자 침대 같은거 에서 생활함
아니죠 우리는 韓족인데 온돌은 옥저쪽이나 북방 추운 곳에서 많이 이용했었어요 남부쪽은 2층집이나 그런거 많았고요
고구려 때에도 있었는데 이 뭔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실학보다는 소빙하기 때문에 전국에 퍼짐
한족이 아니라 한민족
2층집 왜저리 멋없노
한옥느낌 베렸다
설계를 좀 잘해야지
웅장한 건물이래서 잔뜩기대햇더니 중국 자금성 성벽만도못한 건물이 똻 😂
세트장이야 진짜 건축물이야?
세트장. 실제 전각은 소실됨. 현재 북한 개성에 터만 남아있음..
회경전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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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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