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이순신장군 휘하의 조선수군의 훈련량을 짐작케하는 부분입니다. 왜선의 주력함선인 세키부네, 아타케부네는 함선 하부가 뾰족한 첨저선이고 반면 조선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은 함선 하부가 평평한 평저선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차이를 극대화해 훈련한 결과물이 해상 학익진입니다. 단순히 함선 하부의 차이만을 믿고 훈련량은 부족했다면 해상에서의 학익진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인 전술입니다.
@@oltamelona 학익진이 크게보면 망치와 모루의 바리에이션인데 이미 학익진비슷한 전술은 동서양 막론하고 많이 쓰였어요 독창적인 전술이 아니고 포위섬멸이라는 전술의 기본중 하나라서요 당연히 중앙을 보완하는 발상도 이미 있었고요 반대로 포위하는 측면을 더 강하게 하기도했어요 이순신장군이 학익진을 완성시켰다고 보기는 힘들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술을 사용한 것과 육상의 전술을 해전에 적용한게 대단한거죠
이게 아무리 들어도 어릴때부터 당연하게? 들리던거라 진짜 짐작이 안가도 너무 안간다ㅠㅠ 막 다른 나라 제독들도 이순신 존경한다 그러고 그리고 전지구적으로도 손에 꼽는 레전드 해전이라는데 막 영상같인걸로 한번 보구싶네요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진짜 입이 딱벌어지데 보구싶은 그런 마음..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동받았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곧 가야백제의 역사고 한민족의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또한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했으며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그래서 여진족을 상대하던 신립이 탄금대에서 왜군에게 패배한 게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이 크게 밀리게 된 원인이었죠. 신립이 왜군과 여진족의 차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대패했고... 그 신립 부대가 상대하던 여진족이 왜군이 만주로 슬쩍 넘어 왔을 때 털어버린 걸 생각하면 신립이 전략만 잘 짰어도 탄금대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듯요...😢
@@redfire-y4v 조선은 당시 주력의 최정예군은 북방지역에 있었습니다. 남부는 향토예비군, 동원예비군^^ 이순신장군도 북방에서 근무했기에 그점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주력을 최대한 묶어둔다면은 북방의 정예군으로 승산이 있다는걸 그러나 너무너무 잘싸웠죠~🤣🤣🤣
@@m2cheki1 북방 정예군만으로는 왜군의 침략을 절대 막아낼수 없었을겁니다. 그 어마무시한 규모의 명나라군사도 왜군에게 썰려나갔는걸요 위에 말씀하신것처럼 당시 왜군의 전력은 동아시아를 호령할정도로 엄청났습니다 언급하신 남부의 병력이 너무나 형편없는것도 맞습니다..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아 군사들이 하도 오합지졸이라 1600명의 왜군을 상대로 5만여명의 조선군이 패배하여 흩어진 용인전투는 유명하지요 북부 정예군이었다면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을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황을 역전시킨 이순신장군은 전무후무한 기인인것은 틀림없는것같습니다
@@hotewang 앞서 말했듯이 이토히로부미를 배우자면 우리나라에서 가만히 있겠니? 일본에 큰 피해를 준 이순신이지만 그 이순신을 배우고 그 전술을 익혀서 다른 전쟁에 써 먹는다는 게 무서운거지. 일본하면 거품물고 배척하는 자들이 우리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일 수도 있는거구. 또 일본 역사 왜곡을 말하는 것도 좋은데 뉴라이트 교과서처럼 일본 역사 왜곡 교과서 보다 더 심한 한국 교과서가 있다는 것도 알아둬
실록에는 여러 수군장수들도 학익진을 썼다고 나옵니다. 영상에서 처럼 돌파당할 우려가 잇기에 적군보다 많은 함선으로 전투에 치뤄야했죠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적보다 훨씬 많은 함선으로 전투를 햇습니다 흔히들 판옥선 숫자만 말하시는데, 옥포해전 에서도 판옥선은 28척이었지만 기타 함선이 70척 참가했었고, 명량때도 판옥선은 13척이었지만 기타 함선도 100척 이상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명량땐, 적 선봉의 30척만 격침시키고 목포로 후퇴한 겁니다
@@hotewang 너는 책이란 걸 모르냐? 병법서 라는걸 모름? 한산도 대첩 당시의 왜장은 전국시대에서 굴러먹던 숙장이고 병법에 능한 인물인데 명나라 시대에서 사장된 병법이더라도 엄연히 병서에 기록된 병법인데 그걸 못 알아보겠니? 그리고 변방의 왜장이라고 하는데, 진짜 역사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 인거 같다. 우리쪽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상대해서 그렇지 한산도 대첩 당시 왜장도 조선 육군 쓸어담은 숙장인데 ㅋㅋㅋㅋ 혹시 일뽕임? 모르면 비꼬지 말고 그냥 물어라 멍청아.
이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수류탄보다 약간 높은 폭발력이라 배를 무너뜨리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보통 전선에 투입될 배일 경우 삼국지처럼 바르고 해서 방호력이 높은 상태. 부위가 터진다 해도 영화에서 비산생기는 정도? 그래서 선발대에 초고속함선 거북선이 마력 아니죠. 인력 50(대충 노젓는 숫자)을 무장하고 안을 휘젓고 다닌것도 학익진에 큰 역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침몰수가 지금처럼 직빵으로 두조각(한4대면 충분하려나?) 낼 수 없듯이 과거에는 더 많은 화력이 필요했을꺼고 그 결과가 침몰수에서 나오니까, 물론 원균처럼 돌진하면 바다 떠있는 성냥개비로 전락하지만, 이것이 지휘만 해도 소모율은 극심히 떨어지죠.
@@lsuggtkd 마린대 마린이고 동수라고 생각했을 때 공격쪽이 한 쪽 구석으로 가서 점사로 돌파하면서 정리해나가면 수비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겠죠? 학익진의 치명적인 단점은 점으로 돌파가 가능하다는거에요. 하지만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돌파당하는동안 진을 재정비하거나 역으로 둘러 싸버릴 수 있죠.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전체 내용 원본 영상입니다.
ruclips.net/video/YtuRrArTi0U/видео.html
나라를 구했다는 면에선 영웅급이지만 결과적으로 끔찍한 화령조선시대의 연장을 초래하고 말았지 이순신 본인도 원래 조선양반고위층에서 받던 취급은 한글급으로 최악이었다
참외를 달랬다가 안주니 말을끌고와서 참외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시각장애인 친구를 지붕위에 올려 놓고 안내려주고
참 대단한 인물
똑똑한건 알겠으나 인성이 좋은건 아니였음.
조선에 선조나 고종이 왕이 아니라 이순신같은 분이 왕이였다면 우리나라는 달라졌을것이다
@@peterrabbit9615 어릴때 다 병신같은 짓은 많이 하죠 ㅋㅋ 님 논리대로면 인성 좋은 사람은 없음
@@peterrabbit9615 어릴때 아닌가요?
커서는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요.
또 그 당시 해류가 한 몫했죠, 이순신 장군님은 그걸 캐치하셨고
맞습니다. 해류까지 이용하셔서 완벽한 승리를 이뤄냈죠
지형지물조사는 전쟁승리의 기본이죠
@@18학번-j4v 맞습니다. 기본이죠~
해류는 명량이고....
@@hotewang 명량에서만 해류를 이용한 건 아니다.
지도자는 중요하다
잘 지도하는 단체 국가는 잘할수 있다
대통령이 누가 되어도 똑같다라는 생각을 가진사람은 이제 없겠지
적어도 정치 경력이 없는 검증 안된 인간 로또식으로 뽑아보는 일은 이제 없겠지... 국민이 금붕어 대가리가 아니라면...
그니까 민주당이 지금 국회의원 의석 다 채웠는데 나라가 이꼴이니...
@@뀽-i6l 아가리로 똥을 싸는 놈이네. 삼권분립이 먼지, 정부와 국회의 차이는 아냐?
@@뀽-i6l 나라를 끌어가는건 행정부
국민의 생업과 안위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자신의 영욕에 눈먼 집단인 이죄명 집단은 절대
버리자 !!!
천재 성스러운 영웅 이순신장군님..
세종대왕님하고 너무 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순신장군 휘하의 조선수군의 훈련량을 짐작케하는 부분입니다. 왜선의 주력함선인 세키부네, 아타케부네는 함선 하부가 뾰족한 첨저선이고 반면 조선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은 함선 하부가 평평한 평저선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차이를 극대화해 훈련한 결과물이 해상 학익진입니다. 단순히 함선 하부의 차이만을 믿고 훈련량은 부족했다면 해상에서의 학익진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인 전술입니다.
@좁불 여윽시 화력덕후 조선...
@@fester91113 고려 말기 최무선 때부터 화약 사랑이 남달랐음
@좁불 판옥선이 당시 세계 1위는 씹 ㅋㅋㅋ미개동양에서나 가성비 쓰레기같은 깡패선이지 대양함대 만들던 스페인은 고사하고 이탈리아 소국이 만들던 허접 갤리온만 만나도 한대맞고 침몰할듯 ㅋㅋ
@좁불 그런 배를 가지고 배12척 남겨놓고 대패한 원균은?
@@호잇-q7d 원균이 윤석열로 환생한듯 나라말아먹고잇다
우리는 ㄹㅇ 이순신 장군님께 감사해야함 진짜 이순신 장군님 감사합니다
조선 노예제사회 감사합니다???? 미쳐
그 당시 왜군 수장들조차도 존경받아 마땅할 장군님이라고하셨다.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러워요 이순신장군님
위대하지만 백원짜리 동전일뿐이죠
다른 나라는 독립운동가들이 지폐에 새겨진다는데 우린 세종대왕님보다
신사임당이 오만원이고 오천 .일천에는
그아들과 친구분이 새겨진 나라임
이러니 누가 독립운동을 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걸겠습니까
@@mansunjun
넌 생각하는게 너무 단순한거 아니냐?
이순신장군을 100원에 넣을 당시에는 100원짜리는 고액권이었다. 천원권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라고.
그리고 니 말대로면 1달러 지폐에 있는 조지 워싱턴이 미국에서 홀대받니?
@@mansunjun돈이 비쌀수록 더 높은 분이란 생각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ㅋㅋㅋㅋ
오히려 너무 낮아 안쓰는 10원 50원도 아닌
많은사람들이 두루쓰는100원이라는 것에서 부터 많은사람들이 사용하는 익숙한 동전에
초상화 세긴게 맞지 ㅋㅋㅋㅋ
옛날엔 백원짜리가 고액화폐였단걸 생각하셈ㅋㅋ뭐만하면 나라까는게 깨어있단건 아님@@mansunjun
일제가 이순신을 연구해서 러시아를 이겼지
전략과 전술 그리고 엄청난 훈련. 용기
이.순.신.장군님!대단하십니다
드!라!군!
이런 젠장 또 대순신이야 나는 숭배를 시작해야만해
완벽한 전술을 만들어 낸게 이순신 장군님입니다
전투전에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전술의 중요함이지요^^
학익진 전술 자체는 이순신이 만든게 아님
바다에서 사용한 전술로 최초라는거지
@@FBI-bq7ns 저분말은 이순신 장군님이 학인진을 최초로 만들어낸게 아니고 단점이 있는 학익진 작전을 단점을 없에 완벽하도록 만들었다는 말 같은데
@@oltamelona 학익진이 크게보면 망치와 모루의 바리에이션인데 이미 학익진비슷한 전술은
동서양 막론하고 많이 쓰였어요
독창적인 전술이 아니고 포위섬멸이라는
전술의 기본중 하나라서요
당연히 중앙을 보완하는 발상도 이미 있었고요
반대로 포위하는 측면을 더 강하게 하기도했어요
이순신장군이 학익진을 완성시켰다고 보기는 힘들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술을 사용한 것과
육상의 전술을 해전에 적용한게 대단한거죠
@@oltamelona 사람마다 해석은 다름
기본이 뛰어나면 거기서 파생된 전략은 상식을 뛰어 넘는다
이순신의 학익진은 선두에 미끼배가 학익진 중심으로 적을 끌어들였기 때문임.
애초에 적이 다가오지 않으면 평행 일자배치임.
학익진의 핵심은 미끼배가 죽을 각오로 선두가운데서 적을 얼마나 끌고오느냐 안오느냐 차이임.
명언인척 개역겹네
@@shawty988 급발진하는게 더 역겹죠ㅎㅎㅎ
욕하지마 임마
학인진은 이순신이 만든게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전해저온 전술임.
이게 아무리 들어도 어릴때부터 당연하게? 들리던거라 진짜 짐작이 안가도 너무 안간다ㅠㅠ 막 다른 나라 제독들도 이순신 존경한다 그러고 그리고 전지구적으로도 손에 꼽는 레전드 해전이라는데 막 영상같인걸로 한번 보구싶네요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진짜 입이 딱벌어지데 보구싶은 그런 마음..
실제 역사에 비해 정확하진 않겠지만 영화 명량이나 한산 보고 오시면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요?
@@박세훈-t7x 그건 이미 여러번 봤지만 그냥 너무 익숙해서 그런거같아요ㅜㅜ
유튜브에 있던데
@@human-c6x 뭐가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동받았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곧 가야백제의 역사고 한민족의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또한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했으며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그래서 거북선이 필요했어요.
거북선이 양 옆에서 적선을 쳐서 돌파하지 못하도록 중앙을 부수고 들이갔지요
이순신 장군님은 원래 함경도에서
여진족 때려잡던 분이신데
수군에서 더 활약하신거 보면
타고난 지략가 이신듯...
그래서 여진족을 상대하던 신립이 탄금대에서 왜군에게 패배한 게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이 크게 밀리게 된 원인이었죠.
신립이 왜군과 여진족의 차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대패했고... 그 신립 부대가 상대하던 여진족이 왜군이 만주로 슬쩍 넘어 왔을 때 털어버린 걸 생각하면
신립이 전략만 잘 짰어도 탄금대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듯요...😢
누가 가위바위보에 빗대어 말하기로는 육지에서는 주먹에 특화된 조선군이 보자기에 특화된 일본군을 만나 고전했는데 바다에는 가위에 특화된 이순신이 있었다고....
이순신 장군님 그 양반은 천재가 맞습니다... 뉘기가 안가르쳐줘도 S자 기동, 수평사를 꿰뚫고 있었으니... 반대로 원균도 나름 천재입니다...(아군을 정치적으로 묻어버리는) 왜군도 못한 걸 해냈어요...
이순신 정도면 세계역사에 남을 명장 아닌가?
이런 명장을 감옥에 집어쳐넣었던 조선ㄷ
아군과 적군의 무기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하고 지형의 특징을 이용하며 적의 의도를 꿰뚫고 싸운 킹갓제네럴엠페러 이순신
이순신장군님은 바보가 아니다. 걱정은 사치.
방어하기엔 적합한 목선과 완벽한 전술이네 노젓기도 수월하고
정말 대단하신 위인이시네요
난 일본군이 멍청했다고 생각하지 않음
이순신이 일본군에 비하여 너무 똑똑했던거지
상대들도 전국시대때 날고 기던 애들인데
그리고 이순신만 이겼지 육군 특히 왕쪽 부대는... 걍 씹새들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쟁질 쪽으로는 이미 머리가 돌아갈만큼 돌아간 상태였음
오랜 전쟁에서 쌓인 실전 경험과 전술이 어마어마했으니 임진왜란당시에 그렇게 쭉쭉 치고 올라갔겠지
조선이 대비를 안한것도 아니었고 장수들이 모자란것고 아니었는데
@@윤현종-d7o 맞습니다. 워낙 전투능력이 막강한 일본군이었기 때문에 초반에 일방적으로 밀린 이유도 있죠.
@@redfire-y4v 조선은 당시 주력의
최정예군은 북방지역에 있었습니다.
남부는 향토예비군, 동원예비군^^
이순신장군도 북방에서 근무했기에
그점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주력을 최대한 묶어둔다면은
북방의 정예군으로 승산이 있다는걸
그러나 너무너무 잘싸웠죠~🤣🤣🤣
@@m2cheki1 북방 정예군만으로는 왜군의 침략을 절대 막아낼수 없었을겁니다. 그 어마무시한 규모의 명나라군사도 왜군에게 썰려나갔는걸요 위에 말씀하신것처럼 당시 왜군의 전력은 동아시아를 호령할정도로 엄청났습니다
언급하신 남부의 병력이 너무나 형편없는것도 맞습니다..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아 군사들이 하도 오합지졸이라 1600명의 왜군을 상대로 5만여명의 조선군이 패배하여 흩어진 용인전투는 유명하지요 북부 정예군이었다면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을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황을 역전시킨 이순신장군은 전무후무한 기인인것은 틀림없는것같습니다
이순신이 최후의 순간을 맞은거도 학익진 단점 때문에 돌파당해서지 ㅜ 돌파당하면서 이순신 뿐만 아니라 병사들, 장군들 다수가 전사함
사실 적은수로 큰수를 포위한다는건
대단히 무모한 작전인데 화력우위를
이용한 대담한 작전이죠~^^
본디 포위작전은 숫적우위를 이용한
전술이라서...
학익진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그저 대단하다 이순신!!!!
학익진을 사용해서 레전드가 아니라 학익진을 잘 운용하신 게 레전드...
정확한 내용입니다.
사실 배로 학익진 펼친건 레전드긴 함
저 진 앞에 작은 어선들에 돛달고 파주력 올려서 바리케이드 치는 식으로 깔면 엄청 좋지 않을까?화포 무한딜 가능
학익진의 핵심
ㅡ압도적인 화력
지금 생각해보면 질수가 없는 전략을 짠거네요
나라면 겁부터내서 상황판단이 안됐을 건데
판옥선은 속력은 왜선에 비해 떨어지지만 대신 안정적이고 제자리 선회가 됩니다. 그래서 화포를 사방에 달고 배를 선회 시키면서 화포로 공격했죠
맞습니다.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한게 이순신 장군이고, 이 점을 놓쳐버린게 원균이지요.
@@redfire-y4v 사실 놓쳤다기보단 이악물고 안할려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음.
이순신을 부정해서 오른 관직인데 이순신이랑 똑같은 전술을쓴다? 조정이 ㅈㄴ 안좋아했을듯
회전~~회오리!!
어떻게 보면 원균도 선조한테 이용당한 인물이긴 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한 짓거리를 보면 욕먹어 마땅함
한쪽의 화포를 발사하고 재장전 하는 동안 배를 180도 돌려 반대쪽 화포를 쏘고.. 또 배를 돌려 재장전된 화포를 쏘는 방법으로 연속사격을 한 것입니다.
배를 빨리 돌리는 순간에 재장전을 하는 훈련을 그리고 명중율을 높이는 훈련을 엄청나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왜군도 알고 있었다 학익진의 단점 그걸 보강한 이순신 대단하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대단한건 맞지만
전사자,부상자수가 압도적으로 적은것은
휘하의 병사들이 타이트한 훈련으로 인해 괴물에 가까웠던것도 있다.
아무리 뛰어난 전략과 지휘관이 있어도, 병사들이 소화하지 못한다면 실패했을것입니다. 그 뒤에서 묵묵히 훈련하고 목숨 바쳐 싸워주신 이름모를 수군분들도 대단하십니다~
백만의 대군이 있다 한들..원균 같은 장수가 지휘하면..1000명정도 능력도 안된다는 사실..
원균이 지휘했던 군사들은 이순신이 지휘했던 군사들이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여 이순신 장군님의 훌륭함을 퇴색시키는 것이오. 군사들이 고생한 것은 맞지만 말이오.
왜란 종결자!!! 이순신장군님을 표현하는 것들중 가장좋아하는 표현입니다
장군님의 진짜 존경할점은 엄청난 기적의 결과를이룬것이지만 진짜 이걸 해서 이루어야 한다는 그 집념과 근성이시지요... 우리나라 인명피해가 어마무시하게 적었다는게 그게 업적이지요
애초에 이순신이 명량 말고는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기고 들어가서 뭐
이 당시 이순신 장군님은 임진왜란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정세가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부임하고 바로 장비를 정비하고 1년간 훈련을 거의 완벽하게 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이죠 충무공 당신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영웅이시여
부산에 있는 역사 박물관 갔을때 일본인 친구가 일본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학교 역사 시간에 엄청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가르칠 정도라고 했던게 생각나네요
일본에서는 그렇군요. 새로운 사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일본의 무서운 점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좋은 건 적이라도 배우려고 하는 건 좀 무서울때가 있죠.
@@redfire-y4v 그게 뭐가 무셔..웃기네.
뭔가를 잘못 알고있네.....아니 그런것들이 역사왜곡을 하고 거짓말을 그렇게 잘하나? 진짜 무서운 건 잘못한 건 잘못했다 인정하고 용서를 빌며 참히를 하는 게 무서운 겨.....
@@hotewang 앞서 말했듯이 이토히로부미를 배우자면 우리나라에서 가만히 있겠니? 일본에 큰 피해를 준 이순신이지만 그 이순신을 배우고 그 전술을 익혀서 다른 전쟁에 써 먹는다는 게 무서운거지. 일본하면 거품물고 배척하는 자들이 우리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일 수도 있는거구. 또 일본 역사 왜곡을 말하는 것도 좋은데 뉴라이트 교과서처럼 일본 역사 왜곡 교과서 보다 더 심한 한국 교과서가 있다는 것도 알아둬
@@hotewang 뭔 소리야.. 쟤네는 독일처럼 사과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걸 무서워할게 아니라 오히려 반겨야지.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말이라도 안하지
@@디오-u4d 조금이라도 사과라니 사과 했어요
정확하게 말해서 진형 자체는 완벽하지 못한 진형이였지만 지형의 특성, 즉 해류의 흐름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진형을 배치하였으며, 상대의 성향과 전투 방식등을 이해하였으며, 전력의 차이라는 미끼를 이용하여 완벽하게 걸려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완벽에 가까운 전술이였음.
모든 전술에는 결국 단점이 있지만 지휘관의 재량으로 그걸 보완
그게 지도자의 능력이지요^^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 모든걸 걸 수 있는 개씹지리는 깡을 가지고 계셨던 장군님...
어제 통영 가서 한산도 하고 견내량 보고 오늘 영화관에서 한산 봤는데 크~
진짜 멋지지않던가요
저 통영 여행갔을때 진짜 감명받았었는데
통영 좋아요 나중에 또 가려구요
@@앙까라강인 전 통영살아요 헤헤
@@니어배반 우와 그러시구나!!
통영에 다찌 반다찌? 식당도 너무 좋았어요!!
@@앙까라강인 이순신장군 얘기하면 다찌 반다찌 참 ...
@@이동근-w4u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는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최고의 장수였습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저 빛이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이리도 자랑스러울 줄이야
성웅이랑 칭호도 모자라다고 난 생각해~!
저런 수군을 날려먹은 그분은 정말.... 어케했누
원래 무능한 지휘관이 적보다 무서운거임 ㅋㅋ
원균장군이 다 말아드셨대요
6.25때도 그렇고 폐급이 지위가 높으니까 역캐리하는 스케일이 다름
심지어 거북선은 전투 중에 부서진게 아니라 지가 튀면서 불에 질렀다는...
아이러니 한것은 현재 전세계 해군들이 이순신장군의 전술훈련술을 안본나라가 없고 현재 전세계 해군들이 사용하고있음..
세상에 완벽한 전략은 없다
훈련 전략 지형을 고려해야 한다
저 전술에 반대로 돌파한 제독이 넬슨임.
2열로 나눠서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의 학익진에 포 쳐맞으면서 끝내 돌파하고 레킹샷으로 게임 끝내버림.
진짜 개지린다.. 명량 관련 썰만 들으면 존내 웅장해짐
한산인디..
@@장재완-g5j 아 맞누? 그럼 그냥 이순신 관련 썰로 하자
@@널킹받게만들거야 ㅇㅇ ㅋㅋㅋ
ㄹㅇㅋㅋ
해류와 지형을 이용한거죠 좁은곳에서 유리한 전술을 활용한 이순신 장군님의 선견지명덕이죠 상대를 얕보지 않는것도 한목햇죠 선조님들 감사드립니다
이때 노젓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과거 영화 벤허에 노젓는 노예들 잘 볼 수 있죠. 배가 침몰하면 발이 쇠고랑에 묶인 상태라 배와 함께 수장 당하고..
@@WhoAmIWhereAmIe36cty26h8 대부분 풀어준다 하지 않나요?
살아남으면 평민이 되고 죽으면 고인이 되고
ㄹㅇ ㅠㅠ
일본군이 조선 백성들 잡아다가 노젖는데 사용했음.
일본군인들은 전투해야 하니까 노는 조산 백성들이 져어줌.
이순신 과 싸울때도
@@WhoAmIWhereAmIe36cty26h8 조선식노는 서양식과는 매우 달랐기에 조선노 젓는 방식이 더 힘들었을겁니다
하긴 일본역사에서도 이순신 장군님을 영웅급으로 쓰여있을정도니 ㅋㅋㅋ..
이순신 장군님은 1592년부터 1597년까지 판옥선 한 척도 잃지 않으셨다네요.
원균은 그걸 칠천량해전에서 한 번도 못싸우고 대부분을 잃었고..
네 원균이 그 많은 전투함들을 다 잃었지요
많고 많은 위인중에 이순신 장군(일본에 억압). 세종대왕(중국에 억압). 서울에 중심지에 동상을 세운게 다 이유가 있는거지
학익진은 이순신 장군님이 병과,왕의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최대한 생각한, 최고의 방어,공격을 모두 할수있는 전술이다
엄청난 훈련
해류에대한 지식
전략의 완벽성
판옥선의 장점
모든 병사부터 장군에 이르기까지
죽기로 각오한 용맹성
모든것이 일본에 압도적으로 강했기에 이긴전투라 생각됨
단순해보이지만 이 단순한걸 거대한 목선을 정확히 움직여서 수천명이상의 장병들을 통솔하여 흐르는 바다위에서 실현시키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진짜 아이큐 몇이였을까..
세상에 완벽한 전술은 없다 라는 말이있죠
엄청난 훈련과 여러가지 노력으로 극복하는거라 생각합니다 이순신장군이 대단하신분인거같슺니다
미해군사관학교에서 조차도 이순신 장군에 대해 교육하는것만봐도 그가 현대전에서도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습니다.
진짜유?
@@임선생-f3d 네 미해군사관학교에서도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내용이 교보제로 쓰입니다.
@@Kim_go_ni 세계여러 해전의 역사나 과거 전술 이런거 배우는거지 이순신장군 뿐만 아니리 여러 해전이 나오는 그냥 역사책정도라 생각하면 됩니다.
이기는 모든법을 알고 계셨고 그걸 믿고 용감하게 싸워준 병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
뭐가 어떻게 되든 그냥 이순신 장군님이 레전드인거임
바다위에 성...!
이순신이 더 위대함 세종대왕이 더 위대함?
이순신이 없었으면 우린 히라가나썼을수도있고 세종대왕이 없었으면 한문쓰고잇었겟넹
@@sophia-tn1er 뭔 ㅂㅅ같은 소리야 ㅋㅋ 세종대왕님도 레던드이고 두분다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우신 분들인데 ㅋㅋㅋㅋㅋㅋ
@@sophia-tn1er 누가 더 위대한지 따질수없습니다 둘다 위대하기 때문이지요
@@Difoso_wploo01p1pq 위대함의 기준은 뭔가요?
완벽한건 이순신이었지요
노저어 봤나... 격군들 생각하면 눈물이나...
맞습니다
극한직업 판옥선 격군
진짜 전쟁 천재였네
저 시대 시뮬레이션 하기도 힘들고 수학적 계산도 어려운데 저걸 실행시킨거면 군인이라면 안다 존나 조뺑이 깐거지
실제로 훈련을 뒤지게 많이했다네요
정보: 학익진은 당시 육군에서 쓰이던 전술이었다
정보: 이순신 제독은 원래 육군 출신이었다.
@@meaning6974 육군에 시험 쳤으나 낙마하여 다리 부상때문에 수군에 임관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 감사합니다.
완벽한 전술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이상의 힘을 이끌 장군의 실력임
뭐래 이순신 장군 진짜 실력은 부하들 믿어기 때문이야 이순신혼자 저런 전술할려면 부하들에 실례가 있어기때문이야
@@iiiiiiiiiiii850 문맥을 살펴보면 실례가 아니고 신뢰가 맞겠죠?
@@iiiiiiiiiiii850 실례도 실례지만 글 전체적으로 뭔가 이상한데...
@@iiiiiiiiiiii850 잼민인가? 그는 도덕책, 그 잡채 이런 표현들 쓰다보니까 비슷한 발음 아무거나 싸지르면 재밌을 줄 알았나봄? 그거 아니야.. 덜떨어져 보여
친구들이나 또래 잼민이들끼리 웃고 떠들 때나 그런 거 하고 건강하게 자라지 말아다오
@@qwerty4979 도덕책은 뭔지 아는데 잡채는 뭐임?
학익진 이순신이 만든게 아니고 있던전술 아니냐 하는데 애초에 육군전술임 그걸 해군에 과감하게 쓴것도 대단
다해놓은걸 원균이 다해처먹고 그똥을 또 치운게 ㄹㅇ 레전드
근데 선조가 자존심챙길려고 공신1위에다 올림ㅋㅋㅋ진짜 존나 무능함ㅋㅋㅋ
망치와 모루 작전 과 완전 원리가 같습니다. 적의 주공을 소수의 강력한 방어로 묶어놓은 다음에 쌈싸먹는 거죠.
학익진이 대단한게 아니라 중앙돌파를 당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적의 단점과 장점 적장수의 능력 그리고 조선의 지리와 장점과 단점 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않다면 절대 불가능한전술
그래서 킹갓제네럴충무공
맞습니다~~
실록에는 여러 수군장수들도 학익진을 썼다고 나옵니다.
영상에서 처럼 돌파당할 우려가 잇기에 적군보다 많은 함선으로 전투에 치뤄야했죠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적보다 훨씬 많은 함선으로 전투를 햇습니다
흔히들 판옥선 숫자만 말하시는데, 옥포해전 에서도 판옥선은 28척이었지만 기타 함선이 70척 참가했었고,
명량때도 판옥선은 13척이었지만 기타 함선도 100척 이상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명량땐, 적 선봉의 30척만 격침시키고 목포로 후퇴한 겁니다
학익진, 판옥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었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나봅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킹갓제너럴 순신성님...
해군에서는 제너럴이라 하지 않고 애드미랄 Admiral 이라고 합니다.
제독이라고 번역하죠.
@@erickyee4198 밈이자나요 밈
삼국지 적벽대전에 보면 이런말이 있죠 전술이 약점이 많아도 어떡해 쓰이냐에 따라 승패를 결정한다라고 하죠
이래놓고는 항상 싸울때 마다 운이 좋았다고 하신 이순신장군님 진짜 존경또 존경
오늘날까지 어느나라 장군들보다 더 뛰어난 전략.전술이 가능하신 분임....심지어 전장이 유리한적은 없고 맨날 불리했는데도 부하들이 기 죽지 않고 함께 목숨걸고 싸워준것부터가 이순신 장군의 그릇을 보여주는거지
한산을 보는데 거북선을 위한 전술로 비춰짐...ㅜㅜ
픽션에 속지말고 역사의
진실을 보시길
같은 함대를 가지고도 다 말아먹은 원균을 생각할 때 이순신장군님의 위대함을 알수있음
역시 킹갓엠페러제너럴충무공 리...
이수신 장군님 평소에 훈련 하고 쉬는 날에는 여기저기 둘러 보며 순찰? 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부하들이 힘들어했다고^^
혹독하게 훈련 해야만 승리한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일단 확실한 건 한산 재밌었음. 노량 생각하니 벌써 슬프네...
최민식 배우님 다시나와서 연기해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학익진이 진으로서 엄청난 평가를 받는것은 최초로 화포를 이용한 해상진을 짯다는 것에 있습니다 결과도 좋았고요 왜 학익진인지를 설명이 없어서 알수가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가장 빠르게 배 좌우의 화포를 쏠수 있는 진이였다는겁니다
은하영웅전설….
전장에 완벽이 어디있습니까, 뜻대로 되는게 이상하죠.
내가 왜군 이였으면 절대 안싸워줌 속도로 우회해서 보급했을듯
무력차이가 ㅈㄴ나니깐 당연히 이길줄 알았을듯
쪽수차이로 밀어 붙인다는게 공동적이 생각아닌가 나라도 밀고 왔을 듯
요즘 한산에서 왜장 급발진으로 말이 좀 있는데 학익진은 명나라 시대에는 많이 보이거나 주력으로 쓰이지는 않는 옛 전술이었습니다.
영상에서 말한 것처럼 난이도도 높았고 공략법도 쉬웠기 때문이었지요. 역사에서도 왜장이 학익진을 보자마자 돌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네 그렇군요. 좋은 내용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이 이상하네....명시대엔 많이 보이지도 잘 쓰이지도 않는 옛날 전술인데 일개 변방의 왜놈이 이걸 알아보고 ( 공략법이 쉬워서...) 돌격하였다고?
진짜 무슨 말이 이래....ㅋㅋㅋㅋ
@@hotewang 너는 책이란 걸 모르냐? 병법서 라는걸 모름? 한산도 대첩 당시의 왜장은 전국시대에서 굴러먹던 숙장이고 병법에 능한 인물인데 명나라 시대에서 사장된 병법이더라도 엄연히 병서에 기록된 병법인데 그걸 못 알아보겠니?
그리고 변방의 왜장이라고 하는데, 진짜 역사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 인거 같다. 우리쪽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상대해서 그렇지 한산도 대첩 당시 왜장도 조선 육군 쓸어담은 숙장인데 ㅋㅋㅋㅋ 혹시 일뽕임?
모르면 비꼬지 말고 그냥 물어라 멍청아.
@@hotewang 왜장이 보자마자 약점을 파악하고 돌격했다는 말인거 같음
학익진 자체가 유명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빠르게 공략법을 찾을수 있는 전술이라는것
저게 아무말이나 퍼붓다가 약점을 찌르니까 깨갱하고 뎀비질 못하네.....ㅋㅋㅋ
담부턴 하나하나 생각하고 말하거라.
그림에 오류가 있습니다. 학익진은 배의 진형이 학날개처럼 펼쳐지며 함선 측면의 포대가 적 함대를 향하게 돼는데, 그림에선 판옥선 전면부의 포 2문만 쓰는 모양새잔아요. 큰 오류임. 화력 집중도 안돼고 학익진에 대한 오해도 불러일으킬만 하고.
완벽한전술이란게 어딨음 상황에맞는 최선의 전술을 짜는거지
삼국지에나오는 제갈량전술도 본인은 파훼법다알고있었음 대담함으로 밀고나간거지
이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수류탄보다 약간 높은 폭발력이라 배를 무너뜨리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보통 전선에 투입될 배일 경우 삼국지처럼 바르고 해서 방호력이 높은 상태. 부위가 터진다 해도 영화에서 비산생기는 정도? 그래서 선발대에 초고속함선 거북선이 마력 아니죠. 인력 50(대충 노젓는 숫자)을 무장하고 안을 휘젓고 다닌것도 학익진에 큰 역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침몰수가 지금처럼 직빵으로 두조각(한4대면 충분하려나?) 낼 수 없듯이 과거에는 더 많은 화력이 필요했을꺼고 그 결과가 침몰수에서 나오니까, 물론 원균처럼 돌진하면 바다 떠있는 성냥개비로 전락하지만, 이것이 지휘만 해도 소모율은 극심히 떨어지죠.
전문성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화포가 화력이 크지는 않아서 마지막은 불화살로 적선을 태워 없엤다고 하네요.
은영전 1권에서 라인하르트가 감행한 각개격파가 저거구나
은영전 오래전에 봐서 잘 기억은 안나네요^^ 학익진은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어설피 사용하다 큰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다네요.
학익진같은 진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의 공세 및 돌파를 저지 및 불발시키거나 아니면 적이 돌파를 하기전에 섬멸할 압도적인 화력이 필요합니다.
@@이은철-l9u 동맹은 화력도 부족했고 고작 진을 완성시키지고 저지도 못했으니
뛰어난 전략과 지성,굴하지않는 용기와 자신감,리더쉽과 지혜,애국심까지..최고의 장군이지 않을 수가 없네
이순신장군님이 진짜 대단함 진짜 전세계적으로 몇안되는 유능한 지휘관
스타 빨무할때 입구에서 학익진으로 이득 많이 봄
원래 학익진은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으로 펼치는 전술임.
이거 사실 맞나요
스타할때는 병력이 비슷할때도
펼치는게 좋던데
@@lsuggtkd 넓은 지형에서 맨땅에 엄폐 없이 마린을 한 줄로 죽 세워놨다고 생각해보세요.(스팀업 x, 매딕x)
상대 발업저글링이 한 쪽으로 뚫고 들어와서 싸먹으면 빼지도 못하고 답없잖아요?
그런 원리에요.
@@I_cannot_handle_me 마린 대 마린으로 치면
같은 수 라고 봤을 때
펼친 쪽이 이기지 않을까요
진짜 몰라서 그러는겁니다
@@lsuggtkd 마린대 마린이고 동수라고 생각했을 때 공격쪽이 한 쪽 구석으로 가서 점사로 돌파하면서 정리해나가면 수비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겠죠?
학익진의 치명적인 단점은 점으로 돌파가 가능하다는거에요.
하지만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돌파당하는동안 진을 재정비하거나 역으로 둘러 싸버릴 수 있죠.
@@I_cannot_handle_me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완벽한게 있음 대시오. 상황에 맞게 최고의 전술과 전략을 택해도 안먹히는게 일반적인거 아님?
진짜 소름돋을 정도로 엄청난 위인이다
이겼다는게 중요한거죠 무패로 이순신 장군님 최곱니다
배를 빠르게 돌릴수 있던이유는 팔이 빠지게 노를 젛었던 분들입나다
니 좌파지?
@@btc_usd7851 에휴 ㅉㅉ 여기서도 정치하니?
@@beanill0521 좌파들이 주장하는 박정희때 잘살수있었던것은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서이다 이거랑 비슷하지않냐?ㅋㅋ
합리적의심이지
전쟁을 혼자하냐 이것들아
독재자가 저리 좋나봐
진짜 타임머신 있으면 가보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이기신건지
일본 배 마요네즈 통아닌가요 ㅋㅋㅋㅋ
@그린스톤GreenStone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