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인생 속에서 지금까지 본 영화/드라마 중 가장 감동적이고 마음에 남아있었는데.. 이 리뷰를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성경 속 예수의 가치관으로 해석할만한 요소들이 매우 많네요. 동훈과 지안이라는 관계성 뿐 아니라, 동훈과 지안의 심리적 변화가 마치 성경 속 예수와 이스라엘 백성과 강하게 오버랩되네요. 물론,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이 추구하는 진리는 어쩌면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타종교적으로도 해석은 가능할 겁니다. 개인적인 믿음의 시작은 성경 속 예수에 대한 동경이었고,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아 괴로워하던 시절을 지나고, 내 안에 없을 것 같던 그 선함이, 그 동안의 삶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나를 통해 발현되었던 경험이 믿어지게 했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제 자신에 대한 좌절감에 교회와 다시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성경 속 예수님을 포기하기에는 그 가치가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그 선함이 발현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그 포기하지 않는 과정 속에 큰 도움 주시는 이 채널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다메섹님과 비슷한 세계관으로 이 드라마를 해석합니다. 가벼운 여담으로 아이유의 이름인 ‘지안’은 한자로 ‘연못 지, 눈 안’ 자를 써서 ‘실로암’ 을 상징하려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 라는 의미와 함께 구원을 상징하기 때문에요~
그러시군요. 저는 좀 다르게 보았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이를 지'에 '평안할 안' 해서 평안함에 이르렀다고 보았습니다. 극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박동훈의 구원을 통하여 이내 '샬롬'에 이른것으로요. 그렇게 본다면 이름 속에 이미 지안의 결말이 들어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내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동훈이에게 은혜받았다'(기독교인 안에서 쓰는 표현이니 오해들 없으시길...) 저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이 계셨다는 사실에 너무나 반갑고, 또 더 깊이 이해하도록 영상을 제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셨던 9화에서 오열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지안이의 삶이 너무 고되고 슬프고 동훈이의 현실 또한 답답해서.. 뭔가 출구없어 보이는 막혀 있는 드라마 속의 상황이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서 너무 힘들게 보기도 했지만, 해결과정 또한 그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포용하고 위로할 수 있는지, 진정한 사랑과 위로란 무엇인지 보여주어 더 깊은 울림이 있었던 드라마.. 기독교적 의미로 해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격적인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심에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어떠한 기독교적 서사를 느끼기는 했는데 다메섹님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박동훈이 이지안이 죄가 많음에도 불쌍히 여겼다기보다는 이지안이 처했던 불쌍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공감하고 긍휼히 여겼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죄가 많음에도 사랑한다."기 보다는 "죄가 많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불쌍한 인간이다."라고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게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13화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지안의 살인에 대해서 박동훈은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항변하죠. 그 부분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와 보면 이렇습니다. "누구라도 죽일법한 상황이었습니다. 상무님이라도 죽였고, 저라도 죽였습니다. 그래서 법이 그 아이에겐 죄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 건데, 왜 이 자리에서 이지안 씨가 또 판결을 받아야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 당하지 말라고, 전과조회도 잡히지 않게 어떻게든 법이 그 아이를 보호해주려 하는데 왜 그 보호망까지 뚫어가면서 한 인간의 과거를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십니까." 이건 이지안의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기보다는 이지안이 처한 억울하고 불쌍한 상황에 대해서 긍휼의 마음을 품고 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지안에게 긍휼의 마음을 품었던 것이 박동훈이고 후계동 사람들이죠. 물론 이지안은 죄가 없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박동훈이라는 무고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려 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지안은 불쌍한 사람이었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박동훈은 이지안의 죄를 용서하고 이지안에게 사랑을 주기로 결심하죠.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적이고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고 그 사람의 빚을 탕감하고 그 사람을 그러한 죄책감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근데 다만 저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무조건적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불쌍한 처지를 헤아리지 않고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이에게도 예수께서 긍휼을 베푸신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자가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 그에게 더 이상 긍휼히 내려지지 않았던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 또한 누군가의 처지를 충분히 헤아리고 긍휼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리와 창녀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요.
같은 얘기를 다르게 하시는 것처럼 들리네요 ㅎㅎ 2부에서 잠깐 이야기하겠지만, 제가 이 드라마를 죄용서에 대한 이야기로 본 이유는 이지안의 잘못했습니다 10번 씬 때문입니다. 가장 강렬한 회개의 장면이지요. 추가로, 제가 바라보는 기독교의 '불쌍한 죄인' 인간론에 따르면, 죄 많은 인간임에도 사랑하는 것과 불쌍해서 사랑하는 것은 정확히 똑같은 것입니다. 더복서나 기생충 혹은 조커에 대한 리뷰도 동일한 관점으로 해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DamascusLiveTV 생각해 보니 다메섹님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죄가 많은 인간임에도 불쌍하기에 사랑하는 것이니 두 말이 반드시 틀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교회의 어떠한 가르침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소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생각되는 것들, 인간은 타고난 악한 본성으로 지옥에 갈 운명이며 그래서 예수님의 죄사함에 감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잘 와닿지 않긴 합니다. 인간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과 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로 인해 지옥에 갈 운명이라는 것은 쉬이 납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인간의 악한본성만 강조하다 보니 한 인간의 불쌍한 면은 그저 무시하는 괴물들 또한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넌 악하디 악한 본성을 타고났으니 네가 그러한 불쌍한 처지에 있다 해도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 신이 너를 그런 고통 속에 둔다 해도 원망할 자격이 없다." 전 이게 너무나도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절대로 다메섹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기독교인들과 제가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의미는 같을 수 있겠으나 굉장히 다른 말일 수 있는 두 명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타고난 죄된 본성으로 인해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와 "인간은 반드시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는 같은 의미일 수 있겠으나 굉장히 다른 의미라고도 생각됩니다. 제가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서 이 정도의 표현이 한계네요...
@@bnb0828 무슨 말인지 백번 이해합니다. 그 불편함 때문에 인간이 죄인이라는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을 부인하려는 소위 진보적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지요. 다만 저나 엠마오님과 같은 분들은 '인간이 죄인이다'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가에 대해 재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성경을 구약만 보지 말고 전체적 드라마로 읽는다면, 인간은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이라기보단 어쩌다 허둥지둥 잘못들을 저지른 불쌍한 이들에 가깝습니다. 제가 이걸 교구질에서 크게 실수한 신입사원의 이미지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둘째로, 아마 이 영상처럼 나의 아저씨를 죄책감과 죄용서 테마로 보신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가 분석을 하기 전에 그런 감상을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기독교인도 brb님이 보셨듯 '불쌍한 이를 돕는 이야기'로 보았을테니 걱정마세요 ㅎㅎ
고생해주셨는데, 누가봐도 불교색깔이 짙은 드라마인데 굳이 이렇게 해석하는 건 또 다른 욕을 먹는 행위일까 조심스럽네요 지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평안에 이르다' 즉, 불교적 용어입니다. 이선균의 엘리트 절친이 세상 것을 떠나 스님이 되는 장면도 불교 색깔을 넣으려는 작가의 의도이구요. 두 종교가 지향하는 바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고는 보네요.
저는 이 작품을 사람들이 '굳이' 불교적으로 해석해왔다고 보는 편입니다. 2부에서는 각종 불교에 대한 장치들이 정말 불교를 말하고자 함인지를 다루려 합니다. 당연히 불교 드라마라 생각하시는 건 존중합니다. 다만 저는 생각이 다를 뿐. 불교가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를 제가 감상한대로 해석하는데 욕 먹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듯 하네요.
상징은 불교적이지만 네러티브는 기독교적인 스토리죠. 아버지상의 아저씨의 부성애로부터 구원 받는 상처와 죄로 가득찬 딸 지안이 출가하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 속세에서 '평안에 이르는 것'은 세계-포기적 사유로 대표되고 모든 것이 maya라는 힌두이즘으로부터 파생된 중관의 이론 '공'이론과는 맞지 않는 네러티브입니다. 불교적 네러티브가 되려면 지안은 아저씨를 만나 삶이 회복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 아니라 일체개고가 내 무명에서 비롯되는 스토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많은 기독교 용어들은 불교적 용어를 차용하면서 발달하였습니다. +많은 양자물리학과 불교 공 철학을 엮어보려는 형이상학적 시도는 자연과학의 계보학적 전제를 무시한 오히려 잘못된 이해입니다.
불교적 모티브를 전면에 내세워서 저도 언뜻 '불교적 사상이 깃든 드라마인가,,' 했는데요. (여기에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불교적인 것은 좀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었어요.. (평안(or 해탈?) 에 이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느낌. 오히려 동훈의 스님친구보다 정희가 더 깊고 넓어진 느낌이었죠..)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기독교적 이야기가 너무나 진하고 분명하고 묵직하게 깔려있어서 볼 때마다 매번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요..
'평안'이라는 용어는 기독교안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기독교인으로써 저는 평안이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딱히 불교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작가가 기독교인이라면 불교적 세계관을 위해 일부러 '평안'이라는 주제를 가져왔다고 볼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무엇이 진정한 평안인가? 어떻게 평안은 찾아오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동훈의 친구(상원)도 그 평안이라는 것을 절에서 찾지 못하죠.
리뷰 (2부) 링크: ruclips.net/video/8cUvES-4IBA/видео.html
정말 역대급으로 오래 걸린 리뷰입니다. 그만큼 많이 신경쓰고, 여러 리뷰를 보고, 나의 아저씨 대사집까지 사서 공부하듯 분석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마음을 찌르네요
@@DamascusLiveTV 오열장면에서 저도 오열했습니다...ㅠㅠㅠㅠ
드디어 나오네요^^ 저도 드라마를 보면서 이건 기독교드라마이다 생각했거든요
인생드라마 리뷰 넘 좋네요!!
2부까지 보고나서 다시 한번 정주행하려고합니다. 막연하게 예수믿는 사람은 동훈같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이제 정확하게 뭔지 알았으니 다시 보면서 제 생각도 정리할수있을거 같아요. 2부 기대하고있을게요~
"복음을 한번도 듣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가는가" 라는 질문에
비록 그 사랑을 듣지 못하였더라도, 박동훈 같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을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은 소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0년 인생 속에서 지금까지 본 영화/드라마 중 가장 감동적이고 마음에 남아있었는데..
이 리뷰를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성경 속 예수의 가치관으로 해석할만한 요소들이 매우 많네요.
동훈과 지안이라는 관계성 뿐 아니라, 동훈과 지안의 심리적 변화가 마치 성경 속 예수와 이스라엘 백성과 강하게 오버랩되네요.
물론,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이 추구하는 진리는 어쩌면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타종교적으로도 해석은 가능할 겁니다.
개인적인 믿음의 시작은 성경 속 예수에 대한 동경이었고,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아 괴로워하던 시절을 지나고,
내 안에 없을 것 같던 그 선함이, 그 동안의 삶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나를 통해 발현되었던 경험이 믿어지게 했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제 자신에 대한 좌절감에 교회와 다시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성경 속 예수님을 포기하기에는 그 가치가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그 선함이 발현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그 포기하지 않는 과정 속에 큰 도움 주시는 이 채널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어느영상이건 보고은혜받았다는 댓글보면 좀 주책바가지라 여겼는데 이상하게 오늘 영상이 너무 은혜가 되네요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너무 좋네요... ㅠㅠ 이런 콘텐츠를 계속 해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네요 ㄷㄷ
리뷰를 듣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날까요,,,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좋은 리뷰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다메섹님과 비슷한 세계관으로 이 드라마를 해석합니다. 가벼운 여담으로 아이유의 이름인 ‘지안’은 한자로 ‘연못 지, 눈 안’ 자를 써서 ‘실로암’ 을 상징하려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 라는 의미와 함께 구원을 상징하기 때문에요~
그러시군요. 저는 좀 다르게 보았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이를 지'에 '평안할 안' 해서 평안함에 이르렀다고 보았습니다. 극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박동훈의 구원을 통하여 이내 '샬롬'에 이른것으로요. 그렇게 본다면 이름 속에 이미 지안의 결말이 들어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snowball8713 다르게 본게 아니라 동일하게 본 것 같네요^^
저도 엄청 기독교적으로 보여서 신기하게 봤던 작품인데,, 작가가 기독교인이었군요...
주인공은 귀신보는 여자... ㅠ 세상의 끝에서 귀신과 친구하는 사람....... 그래서 더 구원일까요. 사탄과 함께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이라...?
@user-lg2xb3qq2z 다른 드라마를 얘기하시는게 아닌지요?
@@DamascusLiveTV도깨비 얘기인듯합니다 ㅋㅋ
호텔댈루나인듯요 아이유주인공 아니면 도깨비거나
@@Superfranky88같은 아이유가 출연하는 호텔 델루나가 맞는 듯 합니다. 😅
2부에 댓글을 달고 1부에는 달지 아니할 수 없어서 왔습니다.
최고에요.
탁월한 해석! 많은 분들이 보시길 바랍니다!
기가 막힙니다. 2부도 너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간증? 말씀보다 더 깊이 와닿는 내용이었어요
이거진짜 완정 공감힘다. 이드라마 방영직후 너무 은혜받아서 예배인도중에 박동훈에 대해 나눈적이 있었는데 오지게 욕먹었죠.. 불륜 불교드라마에서 무슨 예수를 찾느냐는거죠.. 이 리뷰는 제겐 위로 입니다. 감사합니다.
꺄오~~~ 흥미롭고 은혜롭고... 무엇보다도 주인장의 고백이 들어있어 감사한 리뷰 2편까지 잘 보았습니다~~~
Wow
나는 5번은 더 봤는데 작가가 크리스찬인건 처음 알앗음 좋은정보 감사!!!
이선균만 자살안했음 완벽한 드라마인데...
우와~ 웬만한 설교보다 더 깊은 리뷰이다
나의 아저씨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깊이 다루는 시간이 있길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드디어 그 소망이 이루어졌네요. 다메섹님의 해석으로 그 소망이 이루어져서 더 기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내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동훈이에게 은혜받았다'(기독교인 안에서 쓰는 표현이니 오해들 없으시길...)
저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이 계셨다는 사실에 너무나 반갑고, 또 더 깊이 이해하도록 영상을 제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아... 최고의 리뷰입니다!!
곱씹으며 다시 들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오~ 재미있게 보고도 그렇게 생각을 못 해봤네요. 설명을 듣고 보니, 딱 맞네요.
백퍼 공감가는 리뷰
감사합니다~~♡
같은 작가의 '나의 해방 일지' 도 기독교적 코드가 많이 숨겨져 있는 것 같더라구요. 자극적이고 영적으로 보기 고통스러운 내용과 장면의 드라마가 판치는 요즘에...
음모론이지만 영혼을 팔지 않으면 그쪽 바닥?에서 뜨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의외였어요..
좋은리뷰 감사합니다
진짜 최고입니다 ,,,,, 같은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 «나의 해방일지»도 굉장히 기독교적으로 해석이 되어 은혜 받았는데 🥹 나중에 꼭 이 작품도 리뷰해주세요 ..!!!
거의 스무번째 요청을 받고 있어서 우선 슬슬 보기 시작했습니다. 보고 고려해보겠습니다 ㅎㅎ
제가 이 드라마를 가슴깊이 사랑하는 이유가 이거였군요..
깊은 리뷰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아 이 리뷰 ..
이지안이 아까 박동훈이
야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꼭봐 꼭봐 이 장면에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많은 사람이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였군요.❤
다음 편도 너무 기대가 됩니다^^
감동적인 리뷰 감사합니다~ 새삼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 깊이 다가오며 눈물이 나네요~ 제가 지안이네요ㅠ 감사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은혜로운 복음을 들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리뷰 듣고 주님의 은혜에 감동해서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비신자 친구들에게 전해줄래요....
끄아아아아앗 !! 드디어 숨을 쉴 수가 있드아 !!
리뷰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이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와.. 진짜 대박입니다...
오늘부터 봐보려고 합니다
아 리뷰 보면서 또 울었다 😢
우와~~~~~ 너무 감사드려요~~~ㅠㅠ
와 정말 깊이 있는 리뷰 감사합니다.
말씀하셨던 9화에서 오열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지안이의 삶이 너무 고되고 슬프고 동훈이의 현실 또한 답답해서.. 뭔가 출구없어 보이는 막혀 있는 드라마 속의 상황이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서 너무 힘들게 보기도 했지만, 해결과정 또한 그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포용하고 위로할 수 있는지, 진정한 사랑과 위로란 무엇인지 보여주어 더 깊은 울림이 있었던 드라마.. 기독교적 의미로 해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격적인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이심에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입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 나의 해방일지도 리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의 아저씨 리뷰가 전부 끝나면 시청하려고 아직 남겨두었습니다 ㅎㅎ
@@DamascusLiveTV 미리 감사드립니다 ㅎ
저의 최애 드라마를 또 이렇게 심도있게 해석할수 있군요. 감사드립니다
훌륭한 리뷰 너무 잘 들었습니다
남편은 명품드라마라고 했지만 불교적이고 우울한 분의기라 안봤는데 너무 은혜롭네요 ㅠㅠ 정주행해야겠어요
나저씨 담슥님이 진짜 100번 넘게 칭찬하신 거 같음요. 역대급 영상이 나왔군여 ㅋㅋㅋㅋㅋ
ㄷㄷ.... 미친해석
나의 아저씨…그래서 또보게 되었던거구나..
신선한 리뷰네요.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역시 명불허전
아 그리고 내일이라는 웹툰이 있고 드라마도 만들어 졌다지만 전 얼마전 알게되고 보게된 웹툰이 있는데 좀 길지만 리뷰부탁드려도 될까요?! 거기 나오는 옥황의 대사에서 은혜 받았거든요.. ㅎㅎㅎ
다음에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ㅎㅎ
인생 드라마 ‘나의 드라마’
해석을 들으며 은혜를 받네요.
사랑보다 동정 연민 그리고 공감
혹시 나저씨같은 드라마나 소설 영화가 있다면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같은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를 많이 추천하시더군요.
애쓰셨습니다
주제설교를 듣는 느낌이네요
귀에 듣기좋은 내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듯 합니다
오늘따라 더 보고싶고 더 그립다… 😢
다섯번이나 정주행한 제 인생드라마
여러번 볼수록 구원 서사임을 명확히 볼 수 있었는데 지안의 근원적인 문제가 죄책감이었음은 첨 깨달았네요ㄷㄷ
설마 아직도 안보신 분이 계시다면 다들 꼭 보십쇼...!
어서 2부를 주십시요
2부는 언제 ?!?!기다려집니다
곧 나옵니다!
2부가 빨리 기다려지네요
옛날에 어느 목사님께서 이걸 바탕으로 설교하시는 건 들었는데, 구체적인 리뷰는 처음이네요. 감사합니다.
더복서
당신의 과녁 (욥기 모티브)
같은 기독교적 메세지나 모티브에서 나온 웹툰도 리뷰해주시면 좋아보여요ㅎ
두 작품 다 채널에 리뷰 남겨뒀습니다. 더복서는 더 여러편 만드려다 중단되긴 했지만요.
@@DamascusLiveTV 오오 이미 있었군요 찾아서 보겠습니다!
오열하는 이지안,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ㅠㅠㅠㅠ
미쳤다..
나의 아저씨 안봤지만 개추 누릅니다
꼭 한번 보시길 바래요!
심지어 박동훈 삼형제야…🫢
아니근데뭔가 5년전과 지금이랑 엄청 다르시네요 진짜 더 늠름해지시고 목소리도 멋져지시고
감사합니다 😊
@@DamascusLiveTV 혹시 그때와 달리 운동 하셨나요?
@@어오-t2j계속 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카메라 각도가 좀 이상해서, 말라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만나면 다들 화면보다 크다고 하더라고요 😅
~(L🎉ke :>❤
혹시 드라마 도깨비도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여지가 있을까...
보질 못해서 잘 모르겠어요 ㅎㅎ
개인적으로 저도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어떠한 기독교적 서사를 느끼기는 했는데 다메섹님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박동훈이 이지안이 죄가 많음에도 불쌍히 여겼다기보다는 이지안이 처했던 불쌍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공감하고 긍휼히 여겼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죄가 많음에도 사랑한다."기 보다는 "죄가 많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불쌍한 인간이다."라고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게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13화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지안의 살인에 대해서 박동훈은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항변하죠. 그 부분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와 보면 이렇습니다. "누구라도 죽일법한 상황이었습니다. 상무님이라도 죽였고, 저라도 죽였습니다. 그래서 법이 그 아이에겐 죄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 건데, 왜 이 자리에서 이지안 씨가 또 판결을 받아야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 당하지 말라고, 전과조회도 잡히지 않게 어떻게든 법이 그 아이를 보호해주려 하는데 왜 그 보호망까지 뚫어가면서 한 인간의 과거를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십니까." 이건 이지안의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기보다는 이지안이 처한 억울하고 불쌍한 상황에 대해서 긍휼의 마음을 품고 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지안에게 긍휼의 마음을 품었던 것이 박동훈이고 후계동 사람들이죠. 물론 이지안은 죄가 없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박동훈이라는 무고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려 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지안은 불쌍한 사람이었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박동훈은 이지안의 죄를 용서하고 이지안에게 사랑을 주기로 결심하죠.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적이고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고 그 사람의 빚을 탕감하고 그 사람을 그러한 죄책감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근데 다만 저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무조건적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불쌍한 처지를 헤아리지 않고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이에게도 예수께서 긍휼을 베푸신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자가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 그에게 더 이상 긍휼히 내려지지 않았던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 또한 누군가의 처지를 충분히 헤아리고 긍휼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리와 창녀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요.
같은 얘기를 다르게 하시는 것처럼 들리네요 ㅎㅎ 2부에서 잠깐 이야기하겠지만, 제가 이 드라마를 죄용서에 대한 이야기로 본 이유는 이지안의 잘못했습니다 10번 씬 때문입니다. 가장 강렬한 회개의 장면이지요. 추가로, 제가 바라보는 기독교의 '불쌍한 죄인' 인간론에 따르면, 죄 많은 인간임에도 사랑하는 것과 불쌍해서 사랑하는 것은 정확히 똑같은 것입니다. 더복서나 기생충 혹은 조커에 대한 리뷰도 동일한 관점으로 해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DamascusLiveTV 생각해 보니 다메섹님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죄가 많은 인간임에도 불쌍하기에 사랑하는 것이니 두 말이 반드시 틀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교회의 어떠한 가르침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소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생각되는 것들, 인간은 타고난 악한 본성으로 지옥에 갈 운명이며 그래서 예수님의 죄사함에 감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잘 와닿지 않긴 합니다. 인간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과 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로 인해 지옥에 갈 운명이라는 것은 쉬이 납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인간의 악한본성만 강조하다 보니 한 인간의 불쌍한 면은 그저 무시하는 괴물들 또한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넌 악하디 악한 본성을 타고났으니 네가 그러한 불쌍한 처지에 있다 해도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 신이 너를 그런 고통 속에 둔다 해도 원망할 자격이 없다." 전 이게 너무나도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절대로 다메섹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기독교인들과 제가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의미는 같을 수 있겠으나 굉장히 다른 말일 수 있는 두 명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타고난 죄된 본성으로 인해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와 "인간은 반드시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는 같은 의미일 수 있겠으나 굉장히 다른 의미라고도 생각됩니다. 제가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서 이 정도의 표현이 한계네요...
@@bnb0828 무슨 말인지 백번 이해합니다. 그 불편함 때문에 인간이 죄인이라는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을 부인하려는 소위 진보적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지요. 다만 저나 엠마오님과 같은 분들은 '인간이 죄인이다'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가에 대해 재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성경을 구약만 보지 말고 전체적 드라마로 읽는다면, 인간은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이라기보단 어쩌다 허둥지둥 잘못들을 저지른 불쌍한 이들에 가깝습니다. 제가 이걸 교구질에서 크게 실수한 신입사원의 이미지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둘째로, 아마 이 영상처럼 나의 아저씨를 죄책감과 죄용서 테마로 보신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가 분석을 하기 전에 그런 감상을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기독교인도 brb님이 보셨듯 '불쌍한 이를 돕는 이야기'로 보았을테니 걱정마세요 ㅎㅎ
드라마 중에 윤회 얘기가 나오던데…
2부를 봐주세요.
믿지 않는 외국인 남편이 우울증이 있는데 남편 최애 k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에요 ㅎㅎ 이거 영어자막 부탁드려도 될까요
영자막 작업이 품이 너무 많이 들어서요 ㅎㅎ 고려해보겠습니다.
고생해주셨는데, 누가봐도 불교색깔이 짙은 드라마인데 굳이 이렇게 해석하는 건 또 다른 욕을 먹는 행위일까 조심스럽네요
지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평안에 이르다' 즉, 불교적 용어입니다.
이선균의 엘리트 절친이 세상 것을 떠나 스님이 되는 장면도 불교 색깔을 넣으려는 작가의 의도이구요.
두 종교가 지향하는 바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고는 보네요.
저는 이 작품을 사람들이 '굳이' 불교적으로 해석해왔다고 보는 편입니다. 2부에서는 각종 불교에 대한 장치들이 정말 불교를 말하고자 함인지를 다루려 합니다. 당연히 불교 드라마라 생각하시는 건 존중합니다. 다만 저는 생각이 다를 뿐. 불교가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를 제가 감상한대로 해석하는데 욕 먹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듯 하네요.
상징은 불교적이지만 네러티브는 기독교적인 스토리죠.
아버지상의 아저씨의 부성애로부터 구원 받는 상처와 죄로 가득찬 딸 지안이 출가하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 속세에서 '평안에 이르는 것'은
세계-포기적 사유로 대표되고 모든 것이 maya라는 힌두이즘으로부터 파생된 중관의 이론 '공'이론과는 맞지 않는 네러티브입니다. 불교적 네러티브가 되려면 지안은 아저씨를 만나 삶이 회복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 아니라 일체개고가 내 무명에서 비롯되는 스토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많은 기독교 용어들은 불교적 용어를 차용하면서 발달하였습니다.
+많은 양자물리학과 불교 공 철학을 엮어보려는 형이상학적 시도는 자연과학의 계보학적 전제를 무시한 오히려 잘못된 이해입니다.
불교적 모티브를 전면에 내세워서 저도 언뜻 '불교적 사상이 깃든 드라마인가,,' 했는데요. (여기에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불교적인 것은 좀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었어요.. (평안(or 해탈?) 에 이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느낌. 오히려 동훈의 스님친구보다 정희가 더 깊고 넓어진 느낌이었죠..)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기독교적 이야기가 너무나 진하고 분명하고 묵직하게 깔려있어서 볼 때마다 매번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요..
'평안'이라는 용어는 기독교안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기독교인으로써 저는 평안이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딱히 불교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작가가 기독교인이라면 불교적 세계관을 위해 일부러 '평안'이라는 주제를 가져왔다고 볼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무엇이 진정한 평안인가? 어떻게 평안은 찾아오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동훈의 친구(상원)도 그 평안이라는 것을 절에서 찾지 못하죠.
@@DamascusLiveTV 답변 감사합니다. 2부 기대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간들이 있겠지만, 구원자 예수님은 단 한 분이십니다. 주의하세요.
나의 아저씨…그래서 또보게 되었던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