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부 링크 - ruclips.net/video/WQhWUEofUt0/видео.html 이로서 오래 붙들고 있던 나의 아저씨를 졸업하게 되었네요. 시원섭섭합니다. 기훈과 나라와 같은 다른 조연들에 대해서도 할 얘기들이 있지만 핵심만 다루느라 넘어가서 아쉽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작품의 리뷰로 찾아오겠습니다. 😊 *1:36초 '기투'가 아니라 '피투'입니다. 둘은 반대 의미인데 잘못 말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 펑펑 울면서 봤습니다. 직장에서는 지치고 가정에서는 힘을 잃고 정작 교회에 와서는 영적인 치유와 회복보다 교회 봉사 일에 내 몰려 내적으로 한 없이 바닥을 칠때 였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위로 받고 대체 왜 이 불교적인 드라마에서 상처입고 쓰러진이에게 치유가 되는 메시지가, 성경적 메시지가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나니 그때 내가 느낀 것들이 이해가 됩니다. 표면의 불교적 장치가 아니라 그 이면의 메시지는 지극히 복음적이었네요.
사실 처음에는 다메섹님이 원래 신학에 조예가 깊으신분이다보니 평범한 작품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시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리뷰를 듣다보니 작가가 의도적으로 기독교적 서사를 넣어논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만송이장미랑 영화관의 박하사탕 장면은 개인적으로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장면이었는데 그 두 부분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기독교서사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고 생각이 되니 소름이 돋네요ㄷㄷ... 영화관의 박하사탕 장면은 의아하긴 했습니다. 왜 굳이 20년전 영화의 한 장면을 넣은건가 싶었는데 그런 의미가 있었네요.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것. 누군가의 과거를 잊어주고 낙인찍지 않는 것. 개인적으로는 점점 더 삭막해져가고 병들어가는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캔슬컬쳐라고 하죠. 아무리 좋은 것이 많아도 뭐 하나를 잘못하면 몰매를 때리고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리는. 그리고 앞뒤 맥락을 다 짜르고 겉만보고 죄인으로 낙인찍어버리는 경우도 있죠. 근데 그런 사회가 진정 아주 끔찍한 지옥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에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 기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불쌍히여기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문득 박해영 작가님이 동시대 한국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분이라는 거창한 생각도 해 봅니다. 죄, 구원, 용서, 은혜, 복음 같은 단어들이 교리와 단어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인생의 처절한 실존에서 얼마나 실제적인 것들인지, 혹은 어떻게 실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해방일지에서도 미정이가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면서 어느 교회 현수막에 적혀있는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피상적이고 소극적인 기독교에 대한 문장이, 구씨와 미정이의 구원 서사에서 그야말로 실제가 되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걸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와 염미정의 관계가 서로의 구원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는 관계로, 조건없는 추앙의 관계로, 용서에 직면하도록 인도하는 목양의 관계로 그려지고 있어 박해영 작가의 세계관이 명확하게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부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구씨네 집에서 술을 먹던 두 사람이 별빛을 뚜렷이 보기 위해 가로등을 깨뜨린 후 무작정 앞산 갈대밭을 거쳐 봉우리까지 구두를 신고 걸어올라가는 장면에서 미정이의 독백이 흘러나올 때...다른 친구들이 교회에 가서 기도제목을 적을 때 시험 잘보게 해주세요, 용돈 생기게 해주세요라고 적어낼 때 미정이 자신은 그런 시시한 기도제목이라니? 신에게? 신인데? 라는 자문을 던지며 단한가지 신앞에서 떠올랐던 질문, 나, 뭐예요? 어디서 왔어요? 라며 감정을 터뜨리던 그 모먼트가 정말 강렬했습니다. 일생 불안감을 안고 살며, 행복한 듯 웃는 사람들의 가장된 감정들이 이해될 수 없다며, 어린 시절 사진 속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웃지 않았던 얌전하고 조숙한 미정이의 서사와 삶이, 길고 긴 지하철 출퇴근 길에서 항상 눈여겨 읽던 교회의 플래카드 내용이, 플래카드를 읽기 직전 처음으로 그녀에게 전해진 구씨의 카톡이..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비참한 듯 평범한 일상 안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랑으로의 구원을 아름답게 그려낸 드라마였어요. 나의 아저씨와 주제 면에서 궤를 완전히 같이 한다고 생각됩니다.
C.S. Lewis 가 한 말이 생각 나네요. "세상이 필요한 것은 크리스챤 작가가 아니라 작가 인데 크리스챤인 사람들 이라"고요. 그 말을 읽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하고 고민 한 적이 있어요. 나의 아저씨를 쓰신 작가님은 작가로서 기독교의 세계관을 그리고 왜 기독교 이어야만 하는지를 한 드라마를 통해서 너무 잘 표현 해 주셨네요. 조목조목 해석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무엇을 하면서 살든지 그 무엇을 왜 하는지가 중요 하겠죠?! 감사합니다.
"가장 큰 잘못을 용서받았음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비교적 사소한 죄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러한 죄들은 자신의 더 큰 잘못들을 눈감아준 이의 진심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더 나아가서 그의 크나큰 용서를 하나만한 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기도 해요." 눈감고 넘어갔던 나의 잘못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니... 관점을 바꾸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참 좋은 메세지 입니다.
공교롭게도 고 이선균 배우가 젊을 적 출연했던 단편영화 에서도 감독이 '백만송이 장미'를 삽입하여 현대인의 가벼운 사랑에 대한 비판의식을 녹여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선 와는 반대로 한없이 가벼운 에로스를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졌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시에 이선균 배우 개인에 대해서도 꽤 복잡한 심경이 생기는 것 같네요.
다메섹님 덕분에 나의 아저씨를 보며 다양한 방면으로 복기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박동훈 부장의 상무 심사가 마치 심판을 받는 예수님 같더군요. 상무 심사 중 박동훈 부장을 공격할 내용이 없어지자 이지안의 과거를 폭로 합니다. 박동훈 부장의 심사를 위한 자리임에도 그곳은 어느덧 이지안을 심판하는 자리가 되어 버립니다. 더욱이 마치 '원죄'처럼 보이는 이지안 근본의 죄, 살인이 드러납니다. 박동훈을 심판하는 듯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지안을 재판하는 자리. 박동훈은 이지안을 대신하여 모진 비난을 직접 받아냅니다. 하지만 놀라운 대사로 박동훈은 이지안을 변호합니다. 그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 누구라도 죽였을 것이라고, 이미 그 죄는 법으로서 더이상 죄가 없다. 선언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서 말이죠. 서로간 더이상의 판결은 의미가 없다 못 박습니다. 시간은 흘러 장례식을 거쳐 할머니와의 회상과 더불어 두 사람의 식사 자리에서 두 사람은 모두 행복을 이야기 합니다. 앞으로는 더이상 물리적으로 서로 함께 있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있음을 알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라 여기며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과 같이 박동훈 부장이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 받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구원을 받은 이지안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대신 지어주신 십자가를 보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하지만 박동훈 부장이 따라준 거품 맥주는 참을 수가 없네요.
깊이 있는 해석을 들으며 깊이 감탄했고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벌써 몇 번 보았지만 곧 또 한 번 시청해야겠군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이지안이 박동훈 부장을 위해 한 일입니다. 이지안은 뒤에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그 결과 박 부장이 상무가 됨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박 부장을 구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지안은 박동훈 모르게 박동훈의 정적들을 꼼짝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무너진 그의 가정을 되돌리려는 노력도 했던 것 같습니다. 박동훈 부장이 회사나 가정에서 꼼짝 못하고 절망할 때 이지안은 처음에는 그를 파괴하려 했지만 상황을 더 알게 되면서 공격 방향을 완전히 돌렸습니다. 박동훈에게 가장 큰 아픔이 되는 부분을 도우려 한 이지안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탁월한 해석 고맙습니다.
그도 그렇지요. 다만 그 모든 좋은 목적이 도청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것이 이지안에게 계속해서 (심지어 동훈을 도우려는 마음이 진심이었음에도) 죄책감을 심어줬다는 부분을 좀 더 하이라이트하다보니 말씀하신 부문이 간과된 듯 합니다. 좋은 첨언 감사합니다!
다메섹님 영상과 관련없지만 최근 조던피터슨 교수님의 팟캐스트? 같은걸 번역해주는 채널에서 성경관련한 내용을 들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궁극의 뱀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혹시 답변 가능하시면 부탁드립니다.. ㅠ ruclips.net/video/FL_sl5P1wRw/видео.htmlsi=UakmAg7ae5CV56Jx 링크 남겨둡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이전에 제가 사바하 영화 해석에서도 주장한 바 있는데, 성경에서 뱀은 꼭 나쁜 뜻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저에게도 좋은 추억을 남겨준 나의 아저씨 리뷰, 잘 보았습니다. 부족한 시간 쪼개셔서 각본집까지 읽으시고 꼼꼼히 검토하시면서 리뷰 영상을 만드신 그 열정과 노력이 멋있으십니다. 시간 관계 상 영상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감흥들에 대해서도 함께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저는 이 작품을 보는 동안 이지안과 박동훈의 눈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혼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근 몇 년간의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 모습이 너무 저를 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눈물이 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나의 아저씨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가 싫었다고 하십니다. 특히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보다 더 무겁고 진중한 경향이 있긴 합니다. 드라마에서조차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보기 힘든 드라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드라마 속 시종일관 흐르는 어둡고도 차가운 느낌이 좋았습니다. 입시에 떨어지고 보았던 서울 시내의 모습과 닮아있었기 때문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편안함에 이르고 싶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지안처럼 구원자를 만나야 하는 것인지, 동훈처럼 누군가의 아저씨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다 해 볼 생각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다메섹님, 늘 좋은 영상을 통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드라마를 추억하며 한 번 더 인생을 되돌아 보게 되었네요.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과 위로를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용서 수용 관용도 불교의 대표되는 개념인데...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말씀하시는 부분들 전부 불교적으로도 해석될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박동훈은 인간적 면모가 있는 예수보다 평생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부처랑 더 가까워 보입니다. 백만송이 꽃을 피울 사랑을 베풀수 있는 존재로 이지안이 거듭났다는것도 재밌는 해석인데 삶의 깨달음을 얻고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기위한 여정을 떠나는 사람으로 지켜봐도 좋은 해석 같습니다. 또한 무언갈 가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 되겠다는 스님의 뜻도 이 드라마의 큰 주제의식 중 하나라 기독교적 색채가 '더' 강하다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혹 기회가 되시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대해서도 성경적 리뷰 가능하실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곱씹으며, 형벌만 피하려고 하고,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죄인들,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회초리를 드시며 씨름하시는 하나님, 끝내는 독생자를 주셔서 회개로 인도해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ㅠㅠ
우선, 나의 아저씨에 대한 댓글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다메섹님이 기독교에 대해 깊히있는 변증을 하고 계시어 궁금한 주제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휴거"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신교에서는 거의 교리 처럼 되어 있는데요. 참.. 저는 어릴때 개신교회에 다니다가, 고교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했고 대학교 때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와 오늘도 해석에 감탄을...!! 그런데 자꾸 해석을 보면서 걸리는 게 있어요 정말 너무너무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는데 ruclips.net/video/lnlHSK0BFBk/видео.htmlsi=ZRGUd01mp8xQCS60 이걸 보시면 촬영전에 고사를 하거든요? 그래서 작가분이 그런 의미로 지었어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 고사를 해도 되는건가? 제가 잘 몰라가지구요 ㅠㅠ
제가 잘은 모르지만, 작가의 의도와 방송계 관행은 큰 관계가 없을 겁니다. 촬영하는 배우나 스태프들이 기독교적 의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임한 것도 아닐테고요. 어디까지나 의미를 담았을 뿐, 작가는 이 작품에 공식적으로 '기독교적 작품'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도 않았겠지요. 작가가 방송계 관행에 대해 하지 말라고 제지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일테고, (위와 같은 이유에서) 그럴만한 명분도 없겠죠. 저는 제사를 드려본 적이 없어 익숙치 않지만, '기독교인이 집안의 관행에 따라 제사에 참여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흔하게 듣습니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문제라 생각합니다.
업계 종사자입니다. 보통 고사를 많이 드리긴 하지만 권력자 (유명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 작가님 등) 의 강력한 요청이 있다면 예배로 대체 가능하기도 합니다. 나저씨의 경우 박해영 작가님이나 김원석 감독님이나 두 분 다 당시에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으셨기 때문에 크리스천으로서 진행하려 했다면 못하진 않았으리라 생각은 듭니다. 흔치 않지만 감독님께서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해서 촬영 스케줄을 그에 맞게 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아직 일을 우선해야 하는 크리스천은 장소 사정 상 주일에 촬영을 해야할 때가 많아 주일 성수도 쉽지 않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 분들도 (때론, 유명한 분들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를 드리는 거라고 말씀해주신 제 첫 작품에서 만난 크리스천 촬영감독님 덕분에 저는 촬영장을 교회라고 생각하며 주일과 상관없이 예수님 사람다워 보려고 노력하는 게 최선입니다. 사실 업계에는 기독교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분도 많고 유난 떤다고 여기는 분도 많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시선들이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천이면서 어떻게 저런 작품에 참여했느냐는 업계를 모르시는 분들의 비판, 비난도 있어서 어려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행위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품고 있다면 개개인에 대해 너무 정죄하지는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주제를 벗어난 것 같지만 평소 하던 생각을 이 자리에서 용기 내서 풀어보았네요. 좋은 영상 항상 감사 드립니다. 덧: 답글 달고 나서 링크 영상 보았는데 오나라 선배님은 절을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크리스천은 저렇게 참여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주요한 역할일수록 그렇게 행동하는 게 어려울 때도 있어서 단정할 순 없습니다.
답글 다 감사합니다☺️ 누굴 판단하려던 건 절대 아니에용! 그냥 제가 봐도, 이게 기독교 서사를 담든 안담든 너무 좋은 작품이고 이 작품을 통해서 또 해석을 통해서 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고사 자체가 ㅋㅋ 너무 반대되는 이미지이다보니!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기도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뿐입니당!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ㅎㅎ 뭐든 은혜가 되고 오나라님이 절을 안하셨다는 것도 놀랍네욥!! 감사합니다😁
@@lisagia2244 전 불교와 기독교의 답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타인의 구원/성불을 이룰 수 없다라는 입장이기 때문이지요. 기독교/성경은 그래서 예수라는 구원자를 의지합니다. 불교/석가는 그런 존재를 설정하려고 하지 않을 뿐입니다. 결국, 석가는 자기 자신에게 최대한 집중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나도 남도 예수를 통해야 구원을 받으니, 내가 예수님께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이루려고 합니다. 다만, 성경을 기반으로 한 종교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따라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나아갑니다. 내가 남을 구원할 수는 없을지언정, 함께 부딪히고 갈등해야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고, 온전히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이런 방식은 결국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고, 서로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며, 나의 마음 또한 용서로 나아가기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수양을 우선하는 불교는 어쩌면 먼저 나의 부족함에 최대한 집중하는 입장이라면, 기독교는 관계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는 입장일 뿐이지요 (물론 관계 속에서 남탓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성불조차 스스로 이루기엔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해서 성경적 모습이 어렵지만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뷰 1부 링크 - ruclips.net/video/WQhWUEofUt0/видео.html
이로서 오래 붙들고 있던 나의 아저씨를 졸업하게 되었네요. 시원섭섭합니다. 기훈과 나라와 같은 다른 조연들에 대해서도 할 얘기들이 있지만 핵심만 다루느라 넘어가서 아쉽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작품의 리뷰로 찾아오겠습니다. 😊
*1:36초 '기투'가 아니라 '피투'입니다. 둘은 반대 의미인데 잘못 말했습니다.
다른 인물들도 다뤄주세요
잘봤습니다 선교사님 작가님과 컨넥이 되어서 직접 인터뷰하시는 장면을 기대하게 됩니다~ ㅎㅎ
기훈 나라 이야기 해석도 해주세요 제발요 ㅠㅠㅠ
영화리뷰가 아니고 은혜로운 설교 한편 보는거 같네요^^ 은혜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 펑펑 울면서 봤습니다. 직장에서는 지치고 가정에서는 힘을 잃고 정작 교회에 와서는 영적인 치유와 회복보다 교회 봉사 일에 내 몰려 내적으로 한 없이 바닥을 칠때 였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위로 받고 대체 왜 이 불교적인 드라마에서 상처입고 쓰러진이에게 치유가 되는 메시지가, 성경적 메시지가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나니 그때 내가 느낀 것들이 이해가 됩니다. 표면의 불교적 장치가 아니라 그 이면의 메시지는 지극히 복음적이었네요.
사실 처음에는 다메섹님이 원래 신학에 조예가 깊으신분이다보니 평범한 작품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시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리뷰를 듣다보니 작가가 의도적으로 기독교적 서사를 넣어논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만송이장미랑 영화관의 박하사탕 장면은 개인적으로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장면이었는데 그 두 부분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기독교서사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고 생각이 되니 소름이 돋네요ㄷㄷ... 영화관의 박하사탕 장면은 의아하긴 했습니다. 왜 굳이 20년전 영화의 한 장면을 넣은건가 싶었는데 그런 의미가 있었네요.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것. 누군가의 과거를 잊어주고 낙인찍지 않는 것. 개인적으로는 점점 더 삭막해져가고 병들어가는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캔슬컬쳐라고 하죠. 아무리 좋은 것이 많아도 뭐 하나를 잘못하면 몰매를 때리고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리는. 그리고 앞뒤 맥락을 다 짜르고 겉만보고 죄인으로 낙인찍어버리는 경우도 있죠. 근데 그런 사회가 진정 아주 끔찍한 지옥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에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 기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불쌍히여기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
감사합니다 😊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문득 박해영 작가님이 동시대 한국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분이라는 거창한 생각도 해 봅니다. 죄, 구원, 용서, 은혜, 복음 같은 단어들이 교리와 단어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인생의 처절한 실존에서 얼마나 실제적인 것들인지, 혹은 어떻게 실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해방일지에서도 미정이가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면서 어느 교회 현수막에 적혀있는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피상적이고 소극적인 기독교에 대한 문장이, 구씨와 미정이의 구원 서사에서 그야말로 실제가 되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걸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윽 스포금지 😢
댓글 내용에는 공감합니다 ㅎㅎ 도스토예프스키와 결이 같은 사람이 맞네요. 오히려 신앙 용어의 절제력에서만큼은 현대인인 박해영 작가님이 앞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와 염미정의 관계가 서로의 구원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는 관계로, 조건없는 추앙의 관계로, 용서에 직면하도록 인도하는 목양의 관계로 그려지고 있어 박해영 작가의 세계관이 명확하게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부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구씨네 집에서 술을 먹던 두 사람이 별빛을 뚜렷이 보기 위해 가로등을 깨뜨린 후 무작정 앞산 갈대밭을 거쳐 봉우리까지 구두를 신고 걸어올라가는 장면에서 미정이의 독백이 흘러나올 때...다른 친구들이 교회에 가서 기도제목을 적을 때 시험 잘보게 해주세요, 용돈 생기게 해주세요라고 적어낼 때 미정이 자신은 그런 시시한 기도제목이라니? 신에게? 신인데? 라는 자문을 던지며 단한가지 신앞에서 떠올랐던 질문, 나, 뭐예요? 어디서 왔어요? 라며 감정을 터뜨리던 그 모먼트가 정말 강렬했습니다. 일생 불안감을 안고 살며, 행복한 듯 웃는 사람들의 가장된 감정들이 이해될 수 없다며, 어린 시절 사진 속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웃지 않았던 얌전하고 조숙한 미정이의 서사와 삶이, 길고 긴 지하철 출퇴근 길에서 항상 눈여겨 읽던 교회의 플래카드 내용이, 플래카드를 읽기 직전 처음으로 그녀에게 전해진 구씨의 카톡이..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비참한 듯 평범한 일상 안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랑으로의 구원을 아름답게 그려낸 드라마였어요. 나의 아저씨와 주제 면에서 궤를 완전히 같이 한다고 생각됩니다.
정말 매력적인 리뷰 감사합니다.
저도 드라마를 보았지만 그저 아련하고 품어내는 사랑보다는 마음으로 삼키는 사랑정도만 생각했는데요. 풍성한 시야에 감사합니다~❤
나의아저씨는 저의 최애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박해영작가님의 작품을 눈여겨 보다가 작가님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늘 작품을 그리고 있구나라는걸 느끼게 되었지요!
제가 나의 아저씨를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을 이렇게 잘 풀어주시니 너무 감사하네요!!!♡
C.S. Lewis 가 한 말이 생각 나네요. "세상이 필요한 것은 크리스챤 작가가 아니라 작가 인데 크리스챤인 사람들 이라"고요. 그 말을 읽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하고 고민 한 적이 있어요. 나의 아저씨를 쓰신 작가님은 작가로서 기독교의 세계관을 그리고 왜 기독교 이어야만 하는지를 한 드라마를 통해서 너무 잘 표현 해 주셨네요. 조목조목 해석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무엇을 하면서 살든지 그 무엇을 왜 하는지가 중요 하겠죠?! 감사합니다.
설교한편 들은거같은 충만함이 있네요ㅋㅋㅋㅋ 너무 좋다 리뷰시리즈 계속해서 나오면 좋겠어요ㅋㅋㅋ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다립니다!!!! 넘 좋아요!!
오늘도 흥미로운 해석 감사합니다. 저는 기독교 & 불교 기본 사상 둘다 좋아합니다
”무조건 욕심을 버려라“ 라는 불교 가르침을…앞으로 자원이 부족해지는 시대에 어젠다 식으로 밀어붙일듯 싶지만, 서로의 죄를 용서하는 기독교의 가르침 또한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장 큰 잘못을 용서받았음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비교적 사소한 죄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러한 죄들은 자신의 더 큰 잘못들을 눈감아준 이의 진심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더 나아가서 그의 크나큰 용서를 하나만한 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기도 해요." 눈감고 넘어갔던 나의 잘못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니... 관점을 바꾸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참 좋은 메세지 입니다.
최고입니다! 리뷰와 은혜가 함께하는 해설이라니요~!^^
정말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펼쳐나가실 수 있는 다메섹님의 깊이에 감탄요~♡ 많은 인사이트 얻고갑니다. 최고의 선교네요 👏👏🙏
심리북튜버의 인정이라니 감사합니다!
크 ❤ 다메섹님 감사해요 너무 ㅠㅠㅠ
언제 해방일지도 보게 되시면 기대하겠습니다 🫶🏻
다메섹님의 많은 영상을 보았지만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봅니다. 그동안 영상들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 대한 해석은 너무 감사하네요. 많은 공감이 되고 모두 동의가 됩니다. 맞다맞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네요.
응원합니다. 화이팅
감사합니다!
정말 탁월한 해석입니다. 나의아저씨를 다루어주셔서 감사해요 :)
리뷰 1-2편 들으며 몇 부분에서 울컥했습니다. 리뷰 감사합다
은혜받았습니다감사해요 구독하고 갑니다..!
역대급 리뷰네요.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틀어놓고 라디오처럼 들으면서 위로가 됐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제 마음을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리뷰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영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시 깊이 있는 통찰력에 감탄하였습니다. 좋은 리뷰 정말 감사합니다. 😊
어찌보면, 작가는 교회를 다니는 수많은 성도들에게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이것이 교회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우리가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리뷰 감사합니다.
오와앙~~~ 어제 전철에서 듣고, 여기 저기 선물처럼 퍼 나르고, 오늘 또 두 손 모으고 경건하게 또 들었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복음의 메시지를 꾹꾹 눌러담으셨네요. 다시금 기립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두리뭉실할게 느꼈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시니 더 큰 감동이 오네요.
정말 해석을 잘하신거 같아요 작품을 다시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깊이 있는 해석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나저씨 더 좋아졌습니다
불교의 탈을 쓴 기독교 작품이었구나... 지려따. 이 정도 통찰력이 있어야 기독교 대표 변증 유튜버 하는구나. 백만 송이 장미 의미는 진짜 생각도 못했다...
좋네요. 목사님들이 이걸 보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ㅡ너무 재밌게 잘 봤숩니다… 제 인생 드라마. 작위적이지 않은 통찰력 있는 최고의 해석이네요. 다메섹님은 정말 최고인 것 같습니다.
궁금한점이! 혹시 지올팍님과 찍은 콘텐츠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ㅎㅎ
저도 아는 바가 없네요 ㅎㅎ
아름다운 산문을 한편 읽은 감상입니다.감사합니다.그때의 박동훈이 그립네요..
나의 해방일지도 요청드려요~
2222
저도 그생각했네요😊😊
22222
최애 인생 드라마를 이렇게 바라보니 또 새롭네요.
이번 리뷰는 그냥 어나더 레벨
와… 해설 너무 좋습니다.
떳다 내 저녁!!😊
공교롭게도 고 이선균 배우가 젊을 적 출연했던 단편영화 에서도 감독이 '백만송이 장미'를 삽입하여 현대인의 가벼운 사랑에 대한 비판의식을 녹여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선 와는 반대로 한없이 가벼운 에로스를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졌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시에 이선균 배우 개인에 대해서도 꽤 복잡한 심경이 생기는 것 같네요.
나의 아저씨가 기독교적 사랑과 용서를 주 테마로 다루었다면 최근에 제가 재밌게 본 머시니스트 라는 영화는 그 반대편에 있는 기독교적 정의를 다룬것 같습니다. 2004년도 작품이긴 한데 '머시니스트'도 추천합니다.
작품 추천 감사합니다!
리뷰 보다가 울었네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좋은 어른이 되도록 해야 겠네요.
깊은 성찰과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아저씨에서 이성적인 사랑이라고 전혀 느껴지지않았지만 사랑이 느껴졌다는게 이런 의미였네요 예수님의 사랑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 리뷰 잘보았습니다^^
뛰어왔습니다 헥헥
나의해방일지도 부탁드립니다
안본 드라마라 2부 올라온거 보고 정주행 하고 왔습니다
백만송이 장미가 드라마가 하고싶은 얘기라고 생각해보긴 했어요 결국 사랑.. 기독교적으로 깊이있게 접근해보지는 못했지만요.. 아리지만 따뜻한 참 좋아하는 드라마입니다 ❤🎉
크... 덕분에 나저씨보러갑니다
마지막 한 줄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평안하느냐?'
공동체 관련 - 박동훈이 승진했을 때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일처럼 기뻐하죠...이게 참 어려운건데말이죠
저도 이게 교회다 라고 생각한 1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겉으론 술많이 마시고 불교가 보이는 듯하나 이건 교회다 라며 보라고 추천했는데 크리스찬이라 통하는것이 있네요.반갑습니다.
나의아저씨 리뷰 잘봤습니다^^
혹시 불후의 명작 리뷰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너무 길어요 ㅋㅋㅋㅋ
다메섹님 덕분에 나의 아저씨를 보며 다양한 방면으로 복기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박동훈 부장의 상무 심사가 마치 심판을 받는 예수님 같더군요. 상무 심사 중 박동훈 부장을 공격할 내용이 없어지자 이지안의 과거를 폭로 합니다. 박동훈 부장의 심사를 위한 자리임에도 그곳은 어느덧 이지안을 심판하는 자리가 되어 버립니다. 더욱이 마치 '원죄'처럼 보이는 이지안 근본의 죄, 살인이 드러납니다. 박동훈을 심판하는 듯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지안을 재판하는 자리. 박동훈은 이지안을 대신하여 모진 비난을 직접 받아냅니다. 하지만 놀라운 대사로 박동훈은 이지안을 변호합니다. 그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 누구라도 죽였을 것이라고, 이미 그 죄는 법으로서 더이상 죄가 없다. 선언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서 말이죠. 서로간 더이상의 판결은 의미가 없다 못 박습니다.
시간은 흘러 장례식을 거쳐 할머니와의 회상과 더불어 두 사람의 식사 자리에서 두 사람은 모두 행복을 이야기 합니다. 앞으로는 더이상 물리적으로 서로 함께 있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있음을 알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라 여기며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과 같이 박동훈 부장이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 받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구원을 받은 이지안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대신 지어주신 십자가를 보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하지만 박동훈 부장이 따라준 거품 맥주는 참을 수가 없네요.
좋은 부가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동일하게 보았는데, 칭의 파트가 너무 길어질까봐 생략하고 잠깐의 클립영상으로만 표현했네요. 말씀하신대로 동훈의 변호장면은 칭의의 테마에서 정말 중요한 장면이라 봅니다.
유투브로 다마쿠스 켜놓고 반야심경 읽고 있습니다 ㅋ
박동훈의 면접장면중 이지안을 변호하는 대사는... 성령님의 역할이군요!!
깊이 있는 해석을 들으며 깊이 감탄했고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벌써 몇 번 보았지만 곧 또 한 번 시청해야겠군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이지안이 박동훈 부장을 위해 한 일입니다. 이지안은 뒤에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그 결과 박 부장이 상무가 됨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박 부장을 구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지안은 박동훈 모르게 박동훈의 정적들을 꼼짝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무너진 그의 가정을 되돌리려는 노력도 했던 것 같습니다. 박동훈 부장이 회사나 가정에서 꼼짝 못하고 절망할 때 이지안은 처음에는 그를 파괴하려 했지만 상황을 더 알게 되면서 공격 방향을 완전히 돌렸습니다. 박동훈에게 가장 큰 아픔이 되는 부분을 도우려 한 이지안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탁월한 해석 고맙습니다.
그도 그렇지요. 다만 그 모든 좋은 목적이 도청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것이 이지안에게 계속해서 (심지어 동훈을 도우려는 마음이 진심이었음에도) 죄책감을 심어줬다는 부분을 좀 더 하이라이트하다보니 말씀하신 부문이 간과된 듯 합니다. 좋은 첨언 감사합니다!
기독교적 배경이 없어도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진짜 착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감동이 일어납니다.
다메섹님 혹시 애니 장송의 프리렌 보셨나요? 기독교적인 서사가 분명히 있다고 느껴지는 작품인데 그리스도인들 중 혹시 안보신 분 계시면 너무 추천드리고 싶어서 댓글 남겨봅니다.
인간과 생령의 구별됨을 자세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포함된 영상하나 소개 부탁드립니다
다메섹님 영상과 관련없지만 최근 조던피터슨 교수님의 팟캐스트? 같은걸 번역해주는 채널에서 성경관련한 내용을 들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궁극의 뱀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혹시 답변 가능하시면 부탁드립니다.. ㅠ
ruclips.net/video/FL_sl5P1wRw/видео.htmlsi=UakmAg7ae5CV56Jx
링크 남겨둡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이전에 제가 사바하 영화 해석에서도 주장한 바 있는데, 성경에서 뱀은 꼭 나쁜 뜻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DamascusLiveTV 네 영상 다시보며 공부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뱀은 죄된 육체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죄된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셔서 결국 그 육체를 스스로 죽이신 예수님을 뜻하는 거죠.
저에게도 좋은 추억을 남겨준 나의 아저씨 리뷰, 잘 보았습니다. 부족한 시간 쪼개셔서 각본집까지 읽으시고 꼼꼼히 검토하시면서 리뷰 영상을 만드신 그 열정과 노력이 멋있으십니다. 시간 관계 상 영상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감흥들에 대해서도 함께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저는 이 작품을 보는 동안 이지안과 박동훈의 눈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혼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근 몇 년간의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 모습이 너무 저를 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눈물이 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나의 아저씨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가 싫었다고 하십니다. 특히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보다 더 무겁고 진중한 경향이 있긴 합니다. 드라마에서조차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보기 힘든 드라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드라마 속 시종일관 흐르는 어둡고도 차가운 느낌이 좋았습니다. 입시에 떨어지고 보았던 서울 시내의 모습과 닮아있었기 때문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편안함에 이르고 싶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지안처럼 구원자를 만나야 하는 것인지, 동훈처럼 누군가의 아저씨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다 해 볼 생각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다메섹님, 늘 좋은 영상을 통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드라마를 추억하며 한 번 더 인생을 되돌아 보게 되었네요.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과 위로를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힘이 되는 댓글 감사합니다. 꼭 편안함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용서 수용 관용도 불교의 대표되는 개념인데...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말씀하시는 부분들 전부 불교적으로도 해석될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박동훈은 인간적 면모가 있는 예수보다 평생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부처랑 더 가까워 보입니다. 백만송이 꽃을 피울 사랑을 베풀수 있는 존재로 이지안이 거듭났다는것도 재밌는 해석인데 삶의 깨달음을 얻고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기위한 여정을 떠나는 사람으로 지켜봐도 좋은 해석 같습니다. 또한 무언갈 가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 되겠다는 스님의 뜻도 이 드라마의 큰 주제의식 중 하나라 기독교적 색채가 '더' 강하다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그리고 4번이상 잘해줬다의 4도 불교에서 의미있는 숫자입니다. 사성제 사무량심같이요. 특히 사무량심은 자비 연민 기쁨 평정심이라 나의아저씨가 가치있게 생각하는 개념들과도 일맥상통하죠
문 열어!!!
오늘도 저의 모자람을 알려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알려주셔서감사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전도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소한거에라도 무너지지않게 힘이되어주세요 주님
혹 기회가 되시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대해서도 성경적 리뷰 가능하실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곱씹으며, 형벌만 피하려고 하고,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죄인들,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회초리를 드시며 씨름하시는 하나님, 끝내는 독생자를 주셔서 회개로 인도해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ㅠㅠ
평안에 이르렀니? 😢
박동훈의 공동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배우자와 그녀와의 관계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도 궁금했는데 빠져서 아숩네요
적다가 전체 내용과 좀 동떨어질 것 같아서 지웠습니다. 사실 나의 아저씨는 곁가지로 다룰 내용도 꽤 많은데 전부 하기엔 좀 벅찼네요.
@@DamascusLiveTV 그렇군요!! 리뷰가 정말 너무 너무 좋아서 그외 얘기들도 듣고싶은 욕심이 납니다 번외로 더 해주실 수 있담 너무 좋겠지만.. 안해주셔도 그저 언제나 다 감사 🙏 화이팅 🫶
@@dodosol 나의 해방일지 요청이 너무 많아서 왠지 보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우선, 나의 아저씨에 대한 댓글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다메섹님이 기독교에 대해 깊히있는 변증을 하고 계시어 궁금한 주제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휴거"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신교에서는 거의 교리 처럼 되어 있는데요.
참.. 저는 어릴때 개신교회에 다니다가, 고교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했고 대학교 때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개신교의 일부 종파에서만 교리처럼 되어 있습니다. 저는 휴거가 특정 구절들에 대한 오해로 파생된 교리라 봅니다. damascus archive 채널에 휴거 관련 번역 영상 두개 정도 올려두었습니다.
@@DamascusLiveTV 답변 감사합니다. 깊이있는 변증에 놀라기도 했는데, 다메섹님이 올린 영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어쩌면 나중에 함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파묘 후기도 궁금해요!!!
볼 작품이 많네요. 미국에서 아주 짧게 개봉하긴 했습니다만, 제가 생긴 것과는 달리 공포 영화를 부담스러워해서 아직까지 미뤄두고 있습니다. ㅠ.ㅠ
예수가 진부하다고?
박동훈 부장만큼만 하자고!!
와 오늘도 해석에 감탄을...!! 그런데 자꾸 해석을 보면서 걸리는 게 있어요
정말 너무너무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는데
ruclips.net/video/lnlHSK0BFBk/видео.htmlsi=ZRGUd01mp8xQCS60
이걸 보시면 촬영전에 고사를 하거든요?
그래서 작가분이 그런 의미로 지었어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 고사를 해도 되는건가?
제가 잘 몰라가지구요 ㅠㅠ
제가 잘은 모르지만, 작가의 의도와 방송계 관행은 큰 관계가 없을 겁니다. 촬영하는 배우나 스태프들이 기독교적 의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임한 것도 아닐테고요. 어디까지나 의미를 담았을 뿐, 작가는 이 작품에 공식적으로 '기독교적 작품'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도 않았겠지요. 작가가 방송계 관행에 대해 하지 말라고 제지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일테고, (위와 같은 이유에서) 그럴만한 명분도 없겠죠.
저는 제사를 드려본 적이 없어 익숙치 않지만, '기독교인이 집안의 관행에 따라 제사에 참여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흔하게 듣습니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문제라 생각합니다.
업계 종사자입니다. 보통 고사를 많이 드리긴 하지만 권력자 (유명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 작가님 등) 의 강력한 요청이 있다면 예배로 대체 가능하기도 합니다. 나저씨의 경우 박해영 작가님이나 김원석 감독님이나 두 분 다 당시에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으셨기 때문에 크리스천으로서 진행하려 했다면 못하진 않았으리라 생각은 듭니다.
흔치 않지만 감독님께서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해서 촬영 스케줄을 그에 맞게 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아직 일을 우선해야 하는 크리스천은 장소 사정 상 주일에 촬영을 해야할 때가 많아 주일 성수도 쉽지 않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 분들도 (때론, 유명한 분들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를 드리는 거라고 말씀해주신 제 첫 작품에서 만난 크리스천 촬영감독님 덕분에 저는 촬영장을 교회라고 생각하며 주일과 상관없이 예수님 사람다워 보려고 노력하는 게 최선입니다.
사실 업계에는 기독교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분도 많고 유난 떤다고 여기는 분도 많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시선들이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천이면서 어떻게 저런 작품에 참여했느냐는 업계를 모르시는 분들의 비판, 비난도 있어서 어려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행위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품고 있다면 개개인에 대해 너무 정죄하지는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주제를 벗어난 것 같지만 평소 하던 생각을 이 자리에서 용기 내서 풀어보았네요.
좋은 영상 항상 감사 드립니다.
덧: 답글 달고 나서 링크 영상 보았는데 오나라 선배님은 절을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크리스천은 저렇게 참여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주요한 역할일수록 그렇게 행동하는 게 어려울 때도 있어서 단정할 순 없습니다.
답글 다 감사합니다☺️
누굴 판단하려던 건 절대 아니에용!
그냥 제가 봐도, 이게 기독교 서사를 담든 안담든 너무 좋은 작품이고 이 작품을 통해서 또 해석을 통해서 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고사 자체가 ㅋㅋ 너무 반대되는 이미지이다보니!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기도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뿐입니당!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ㅎㅎ 뭐든 은혜가 되고 오나라님이 절을 안하셨다는 것도 놀랍네욥!! 감사합니다😁
기투가 아니라 피투임다.
잘못 말한 걸 이제야 확인했네요 감사합니다 😢
하 이선균 왜 자살했을까 너무 아쉽다....인간이란 ㅜ
저는 이 드라마 보고 불교는 답이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답이 없어요. 종교에서 답을 찾지마세요
@@dkdkjeong불교의 답과 그리스도교의 답이 다를 뿐입니다.
@@lisagia2244 전 불교와 기독교의 답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타인의 구원/성불을 이룰 수 없다라는 입장이기 때문이지요.
기독교/성경은 그래서 예수라는 구원자를 의지합니다. 불교/석가는 그런 존재를 설정하려고 하지 않을 뿐입니다. 결국, 석가는 자기 자신에게 최대한 집중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나도 남도 예수를 통해야 구원을 받으니, 내가 예수님께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이루려고 합니다.
다만, 성경을 기반으로 한 종교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따라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나아갑니다. 내가 남을 구원할 수는 없을지언정, 함께 부딪히고 갈등해야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고, 온전히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이런 방식은 결국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고, 서로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며, 나의 마음 또한 용서로 나아가기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수양을 우선하는 불교는 어쩌면 먼저 나의 부족함에 최대한 집중하는 입장이라면, 기독교는 관계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는 입장일 뿐이지요 (물론 관계 속에서 남탓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성불조차 스스로 이루기엔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해서 성경적 모습이 어렵지만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lisagia2244 종교는 서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적 깨달음에 이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용서하고 동정이나 받는 사랑이 궁극의 구원이라면 굳이 신을 믿고 신의 사랑을 요청할 팔요가 있겠습니까 인간끼리만 사랑하고 인간끼리만 부대끼면 될 것을
그렇다면 무엇이 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