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제 교수의 발해사 강좌 3강 | 안시성 전투에 관한 새로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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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 @오정자-e9s
    @오정자-e9s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오박사님 화이팅 !❤❤❤❤❤

  • @Seursoo777
    @Seursoo777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좋은글 유익한 정보 좋아요로 응원합니다 굿

  • @정희오-p7j
    @정희오-p7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무더운 폭염도 잊게 만드는 역사강의가 흥미진진합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 @쭌-e4w
    @쭌-e4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말도안되는 비정

  • @bklee6304
    @bklee6304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고구려때 요동은 저곳이 아닌 것 같은데 ~ 고구려가 저곳에 있으면 당태종이 저리 무리하며 올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
    고구려땅을 효율적으로 견제할 북경근처를 이미 차지하고 있는데 황제가 친정까지 해가며 저리 한다 ???
    이해하기 매우 힘드네요 ~ 고구려가 당의 숨통을 쥐고 있어야 쳐들어 가는데 저 지도로만 보면 그냥 북경성과 장성만 잘 쌓고
    굳이 타초경사할 필요도 전쟁할 필요없는 그냥 변방이네요 ~
    요충지도 아니고 산맥과 강에 가려져 별볼일 없는 변방에 황제까지 나서서 친정을 간다 ??? 남만정벌에 유비가 따라 가는 꼴이네요

  • @스스로-밝은
    @스스로-밝은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연호는 다물이죠. 옛 조상의 땅을 되찾는 다는 것인데, 추모왕이 건국 한 곳이 난하 근처입니다. 고조선 건국도 애초에 그곳이었구요.
    저 지도대로라면 조상 땅 다 버린 것인데 어떻게 다물이 되겠습니까? 요동성은 지금 북경 근처에 있었습니다.

    • @byungyoon8550
      @byungyoon855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다물은 를 음사한것 아닐까요 ?

    • @gn.l3762
      @gn.l3762 17 дней назад

      고주몽의 연호가 다물이고 백제는 다물 즉 담로로 郡을 칭했죠.

  • @김성철-h4k
    @김성철-h4k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6

    요동성-당태종이 점령 후 요주로 개칭한 곳이 만주 요녕성이 아닌 황하의 옆 산서성 태행산맥 자락에 있으니 그 곳의 옆에 당연히 안시성이 있어야 맞겠죠. 이제는 고지도를 보면서 일제에 의해 엉터리로 비정된 위치를 수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 @gn.l3762
      @gn.l3762 17 дней назад

      같은곳이 아님.ㅡ 요동성은 하북성 조백하 상류고 산서성 진중시의 요주는 3세기 초에 遼陽 수.당시기 遼州 명.청시기 까지.ㅡ

  • @doodaebal
    @doodaebal 4 месяца назад

    영화는 영화죠;;;

  • @borishenkel9703
    @borishenkel970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명림답부 이래의 우리나라 청야입보 전술이 그대로 고정의에까지 이어지는 군요. 연남생 형제의 불화만 아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 @베드로-b2z
    @베드로-b2z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안시는 고사에 지금의 난하에 있었고 변한의 수도인 왕험성 옆에 있었다 하는데 지금의 요하에 안시가 있었다고 하는건 이상 하네요?

  • @잼는얘기
    @잼는얘기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고구려 평양이 지금의 북한 평양이라니... 2~3,000천년 전 지명이 지금 지명과 같다고요?...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ㅉㅉㅉ

  • @seoungkulee6876
    @seoungkulee6876 5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몰룡탑 생각해보면 안시성은 북경 근처라고 갈석산 쪽 이라고 생각되네요 당태종이 도망가서 숨었다는 염성시 몽룡탑도 북경에서 차로 3-4시간 걸리는 곳이죠 안시성 앞에 쌓은 토성을 만들수 있는 곳도 북경 근처밖에 없죠 토성이 무너졌다는 기록도 나오니 자갈 산은 무너 질 수가 없고 높이 쌓는 것도 단기간에는불가능하죠 아무리 웃기는 전쟁이라도 적진속을 수천 키로를 추격하는 일은 없죠 적의 매복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달릴수 있는 말도 없네요 그러면 답이 나오죠 지명을 찾아 위치를 파악하는 것 도 맞지만 세월에 따라 지명이 수시로 바뀐다고 봐야죠 그 당시 고지도가 있으면 명확해지는데 비슷한 연대를 추정하는 지도를 참고 해야 되겠죠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지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 고증이 있었으면 하네요

  • @antibody_algorithm
    @antibody_algorithm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 @gn.l3762
    @gn.l3762 17 дней назад

    안시성은 태고 安村忽. 安丁忽로 위치는 하북성 북동쪽 조백하와 난하의 남쪽 사이에 있던성

  • @TV-qj2gv
    @TV-qj2gv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오순제교수...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안시성의 위치부터 엉터리다^^

  • @meesunlim5704
    @meesunlim5704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안시성 앞에 쌓은 토성이 무너졌다는 기록이 삼국사에 나오니, 전쟁 끝 난 후에 무너진 토성의 흙들을 원위치로 다시 옮겼다는 역사기록 또는 사실 (Fact)이 발견되지 안으면, 무너진 토성의 흙들이 안시성 앞에 쌓여 있어야 한시성이고, 쌓여 있지 않면 안시성이 아니다.

  • @gaebingdo18nomparkU
    @gaebingdo18nomparkU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성이 많다보니 개병도가 비정하기도 쉬웠겠네요
    안시는 안평의 오기이다 ..... 동북여지석략

  • @FlipFlapFish
    @FlipFlapFish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연수정 ..세계최초의 해군 제독 에대한 것도...밝혀야..

  • @gaebingdo18nomparkU
    @gaebingdo18nomparkU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당군이 그곳까지 물어물어 왔다고 ? 중간에 전멸했겠네요

  • @킴C-k4j
    @킴C-k4j 4 месяца назад

    아자씨 식민사학에서 비정한 안시성압니다

  • @바다무-x3i
    @바다무-x3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선생님..안시성 위치가 틀렸어요..
    고구려 평양이 지금 북경입니다..
    일본이 만든 사학공부하시지 마시고...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중국사서...옛지도,구글맵등등 비교하여 공부좀 더하시고 방송하세요~

  • @gn.l3762
    @gn.l3762 17 дней назад

    대대로 고정의는 책략가고 안시성주는 양만춘 아닌가요.

  • @FlipFlapFish
    @FlipFlapFish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안시성의 위치나 정확히. 알련지...

  • @TV-qj2gv
    @TV-qj2gv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엉터리 사학자인것같애^^ 식민 사학자 보다 더 위험한 인물..

  • @holicsoo4431
    @holicsoo4431 4 месяца назад

    수,당은 고구려,백제,신라와 다르지않다.
    당태종 이세민 ,그아들 당고종 이치는
    고구려 영류왕,백제무왕, 신라 진덕, 선덕, 무열왕, 초상을 치르고 거애(대성통곡)했다.
    -->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 @jim5-k6l
    @jim5-k6l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요택과 요수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냥 요하를 가리키면서 당태종이 요택을 지나가서 바로 앞의 요동성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요하 가운데에 요택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요하를 압록수라고 설명하셨는데 그런 내용과도 안 맞는 설명입니다.
    요하가 압록수라고 하면서 거기를 찍으면서 요택이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요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씀 하신 거 같지는 않고요. 그냥 두리뭉실 넘어 가신거 같습니다.
    ( 제가 잘못 시청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
    그것까지 확실하게 결정해서 말씀해 주시면 금상첨화입니다.
    다음을 인정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1. 요하는 압록수다
    2. 한사군은 지금의 난하에 있었다.
    3. 임유관은 난하에 있었고 여기에서 강이식장군이 수나라를 격파했다.
    이제 마지막 키.. 요수와 요택의 위치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면 말씀대로 역사에 선생님의 말뚝을 콱 박으실 거 같습니다.

  • @육천마왕-v9r
    @육천마왕-v9r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안시는 안평이랍니다.
    중국 하북에 안평이 있고
    동황성진이 있습니다.
    동황성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만 나옵니다.
    환단고기 인용하실 정도면
    남당유고의 고구리사초도 분명히 읽어 보셨을껀데
    진실을 숨기지 마십시요!!!

  • @한산-v8s
    @한산-v8s 23 дня назад

    요동과 요서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지금 만주벌펀의 랴오허강은 고구리 당시의 요동 요서 기준이 아닙니다. 대요(大遼, 916년 ~ 1125년)는 거란족 이 중국 화북지역을 정복하고 세운 왕조이다. 생활은 주로 정주 농경과 목축을 하였다. 야율아보기 가 거란족과 기타 이민족들을 모아 화북을 점령하고 칭제하였다. 916년 건국 당시에는 국호가 거란(契丹)이었는데, 947년 에 대요로 바꾸고, 1125년 에 금나라 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보통 약칭 요(遼)라고 한다.
    947년 이후에나 요동 요서의 기준이 지금의 요하 랴오허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645년에 요동 요서 기준이 지금의 만주라 불리는 랴오허강이라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역사적으로 요동 요서의 기준은 산서성 진중시 요와 평요고성이 있는 핑야오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고려가 개창하기 이전에 궁예가 901년 요좌삼분지계로 태봉국을 세울때 요좌도 지금 만주벌판의 랴오허강이 아니라 산서성 진중시 요와 평요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은 전부 맞으나 위치비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전쟁터를 산서성 진중시로 끌고가서 안시성을 설명하고 요동성을 설명해야 역사내용과 부합하는 것입니다.
    역사내용과 지도상의 위치비정이 잘못된 내용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으시기 바랍니다.

  • @badapic
    @badapic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은 입니다.

    • @김종윤-p1k
      @김종윤-p1k 5 месяцев назад

      ?????. ㅋㅋㅋㅋㅋ

    • @badapic
      @badapic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종윤-p1k ☘ CE 1177년 남송시기 제작된 를 통하여 황하 하류에 있는 갈석산(현 낭아산)의 위치와 고대의 해안선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의 요서10성 위치를 고대의 해안선에 맞춰 대입해 본 결과는 놀랍습니다.
      ☘ 태백일사의 요서10성 중 안시성이 있습니다. 이 안시성의 현재의 위치는 놀랍게도 이었습니다. 이로써 번조선의 수도 위만의 왕검성, 신지비사의 안덕향, 삼국유사의 안촌홀, 태백일사의 안시성이 현재의 북경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 이로 인해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검토해 보면 서쪽으로는 2000미터의 고산 준령인 이 방어하고, 남쪽으로는 200리 이 방어하고, 북쪽은 수나라의 2,3,4차 침공을 막아낸 난공불락의 이 막고있는 남북 1000리 동서 450리의 천혜의 요지였습니다.
      ☘ 또한, 이 지역에 수십만 대군을 주둔시키면 보급로가 끊길 것을 우려해서 너머 에 있는 을 공격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수/당의 주력군들이 이 지역 에서 싸우다가 패배한 것입니다.
      ☘ 엔 중 이 들어있습니다. 안시성은 태조왕 때 쌓았고 당태종 침공 때에도 등장하므로 수나라 땐 당연히 고구리 영토였습니다. 즉, 모본왕이 회복하고 태조왕이 요서10성을 쌓은 이래로 고구리가 멸망할 때까지 을 고구리가 빼앗긴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 따라서 나 에 모본왕이 공격했으나 은혜와 신의로 대하자 화친했다는 등의 기사는 입니다. 의 정확성이 여기서도 증명됩니다. 저러한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고 차이나 민족과 한민족이 명운을 걸고 전쟁을 벌여 뺏고 빼앗긴 겁니다. 은혜와 신의든 뭐든 돌려줄 땅이 아닙니다.
      ☘ 또한 이 땅은 도 엄청납니다. 남으로 드넓은 화북평원과 마주하고 있고, 북으로 유목 국가들과 연결되는 의 종점입니다. 동으로 발해의 내해를 이용하여 산동반도와 한반도 및 요하 유역과 수운이 가능합니다. 그 연결점에 있기에 만으로도 부강해 질 정도입니다.
      ☘ 한민족 고대사는 이제 이 요서10성의 실제 위치(고대 해안선 변화의 과학적 지식을 보태어서)를 기반으로 하나하나씩 풀어나갈 때 답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재야사학계도 너무 중구난방입니다. 이제 팩트에 기반해 정설을 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 @badapic
      @badapic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종윤-p1k CE 1177년 남송시기 제작된 를 통하여 황하 하류에 있는 갈석산(현 낭아산)의 위치와 고대의 해안선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의 요서10성 위치를 고대의 해안선에 맞춰 대입해 본 결과는 놀랍습니다.
      태백일사의 요서10성 중 안시성이 있습니다. 이 안시성의 현재의 위치는 놀랍게도 이었습니다. 이로써 번조선의 수도 위만의 왕검성, 신지비사의 안덕향, 삼국유사의 안촌홀, 태백일사의 안시성이 현재의 북경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 @내꿈은너-s7j
    @내꿈은너-s7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안시성-안휘성?

  • @조태준-p2r
    @조태준-p2r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휴휴

  • @batuu2601
    @batuu260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구려와 당나라의 사이즈를 생각해봐야
    덩치큰 친구가 던진 돌을 잘맞고 계속 버티고 작은친구가 같이 돌 던져서 상쳐도 입힘
    그러나 한번 처들어오면 수십만명이 죽어나감
    고구려 인구 300만 정도
    인구는 잘안늘어나고
    내상이 커져서 결국 멸망함

  • @최재능-e2h
    @최재능-e2h 2 дня назад

    오교수. 평양이 북한의평양? 엉터리. 삼국시대에평양은뭐라 불렀소? 평양성벽에 한성 이라쓴 흔적은?

  • @FlipFlapFish
    @FlipFlapFish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살수가. 청천강이라는. 한심한.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