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9 마지막 남은 백제 도읍지 민선 7기 김상호시장 때 교산지구 시작했는 모양이네여 그래서 30년 구축 아파트 3~4억짜리가 10억이상 간다고 했군여 스타필드 한번 가보고는 안갔는뎅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군여 강남을 뛰어넘는 하남을 만든다고 백제역사를 지우네여 레고랜드도 상고사역사도 지우고 교산지구로 백제역사 지우고 경주같이 보존할 방법이 없나여?
패수는 사마천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요동군과 위만조선을 나누는 강이고, 대수(帶水)는 낙랑군과 대방군(帶方郡)을 나누는 강입니다 하북성 형태시 융요현(隆堯縣)의 요산(堯山)의 인공위성 지도를 보시면 말마리 모양의 산(馬首山, 마수산)이고요 요산 바로 위는 ♥아이를 업는 모양의 산(負兒嶽, 부아악)♥이 있습니다
정사 삼국지와 후한서 동이열전에서 졸본부여 시조인 동명왕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으니 동이열전에 나오는 부여가 ♥졸본부여의 의미♥로 동명왕의 후손인 비류백제 역사를 기록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구태가 비류의 후손은 아닐까요?(백제는 나중에 스스로 남부여라고 했습니다)
AD 111년 부여가 낙랑군 침공했고 AD 161년에는 현도군을 침략했다고 하는데 고구려 북쪽에 있는 부여가 남쪽으로 고구려 1천여리 황단하여 현도군과 낙랑군을 침공하는 것이 고대에 가능할까요? ( 고구려 북쪽에 있었다는 부여는 동명왕의 졸본부여에게 복속되어 고구려 영토가 된 해모수의 북부여로 보입니다)
따라서 낙랑군 북쪽(북서쪽)과 요동군의 북쪽(북동쪽)에 현도군이 붙어 있다고 보아야 하며 현도군 북쪽, 만리장성 북쪽에 부여가 1천여리 떨어져 있다고 했으니 요동과 낙랑 북쪽에 현도가 붙어 있고 현도군 북쪽에 고구려가 있으며 고구려 북쪽에 부여가 있다는 내용이니 고구려는 남북 천리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졸본이 의무려산이며 졸본부여(고구려)의 수도였으므로 고구려가 한나라의 낙랑군과 현토군을 회복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백제는 비류의 십제가 있었던 짠물이 나는 땅에서 처음에 제후국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망하고 그 백성들이 온조의 한남땅(아마도 요동남부)로 갔다가 경기도 하남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백제동성왕때에 북위와의 전쟁때 고구려에 제의하기를 만약 온조제후국때의 땅을 돌려준다면 북위를 쳐서 꺾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소서노, 두아들 비류와 온조/ 졸본부여를 고구려에 넘기고 남하해서 지금의 발해만 요동에 도읍하고 소서노-비류 재임, 둘째아들 온조는 발해만에서 배타고 남하 한반도 들어와 경기 하남시에 하남위례성을 도읍하는 십제건국. 발해만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또다른 부여왕실 후손 구태가 백제건국하고 이 세력이 다시 한반도 들어옴. 구태백제 온조의 십제와 융합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은 삼국사 백제본기에 중국사서(북사 등)에 온조와 구태 이야기 모두 나와서, 헷갈린다...라고 푸념 대륙백제는 발해만 요서지역의 옛 부여세력(백제)근거지를 지칭하는 것. 백제의 출발은 요서지방,발해만의 요동반도,대방고지
百濟ㅡ한자어의 비슷한 발음을 차음한것이다.온조의 또다른 표기로 볼수 있다 十濟?(터키어) 고조선의 후예는 같은 말을 썼을 것이다 溫祚(온조)도 한자어 차음이다 祚(Juo)나 濟(ji)자의 발음이 비슷했을것이다. 백제 건국은 제위(祚)가 백대(百代)를 건너가길 바라는 국호이다 일본어 飛鳥라고 쓰고 아스카를 읽는것은 터키고어이다 飛(sasu) 鳥(kaㅡ) 천군사상 새토템
[고구려] 국가의 창업은 신화가 아니라 실재입니다. 하늘에서 신이 강림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 세상에서 갈등과 고뇌의 연속성에서 운명적으로 세력이 규합되고 확장하는 과정속에서 펼쳐지는 스토리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창업지는 수량이 풍부하고 농수축산물의 생장이 원만한 평야지대와 함께 물자의 교 역(물물교환)이 용이한 지역을 배경으로 유동인구와 함께 거주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이것은 진리에 가깝습니다. (1) 북부여의 출자설에 기반하고 추모경의 내용을 요약하 면서 추모의 창업과 고구리의 성장기반은 아래와 같습 니다. (2) 먼저 부여 혹은 북부여는 태행산맥 너머 내몽골지역 입니다(현 강단사학이 비정하는 부여는 실상 동부여임). (3) 추모(주몽)는 북부여에서 출생되고 유년시절 동부여의 금와왕의 보호속에 생활하던 중 금와왕의 자녀(?)인 대 소 형제들에게 핍박과 갈등 그리고 살해 위협을 피하 여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졸본부여 지역인 남쪽으로 피 신함. (4) 추모는 무리들과 함게 대소형제들의 추격을 피하여 엄리대수(북경시 동쪽지역의 潘家口水庫(반가구수고. 북쪽은 승덕시, 승덕시 남서쪽의 북경시 승덕시 남동 쪽의 진황도시를 이은 삼각형 내에서 북경쪽으로 근 접하여 소재)를 도하하여 하북성 지역에 소재하는 부 족국인 순노국(7개 읍국 연합체, 상간하하류/조백하 중 하류/섭하 중하류 지경으로 추정)에 도착하는 바, ☆오늘날 하북성 당산시에서 바다(발해)를 연하고 있 는 천진시 일대로 비정됨.☆ (5) 추모가 순노국 도착 시점, 순노국은 말갈의 침입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이었으며, 순노국 장로들의 허락에 의해 거처를 마련하게 된 추모 무리는, 이후 계속되는 말갈의 침입에 수차례 응전하는 가운데서 추모 무리의 활약상에 힘입어 순노국은 말갈을 물리 치게 되며, 순노국 장노(7개국 읍국 수장)들의 신임을 얻게 되고 비로소 추모의 성장 기반이 마련됨. ☆순노국은 장래 고구리 5부족 중 하나인 ①순노부로 형성됨.☆ (6) 당시 졸본국(연타발)은 순노국과 접하면서 순노국의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졸본국 또한 말갈의 침 입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음. 이에 추모는 말갈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졸본국 (연타발)과 연합하여 공동 대응함. (7) 졸본국 연타발의 차녀 소서노와 정략결혼을 맺었으며, 연타발 사후 졸본국과 합병하고 고구리 창업을 선포. ☆졸본국 출신들은 장래 5부 중 ②소노부로 추정됨☆ (8) 추모는 졸본국 서남쪽과 경계하고 있으며 황하유역에 소재하던 부족국인 환나국의 여왕인 계루와 정략결혼 을 맺고 환나국을 합병함. ☆5부족 중 ③계루부를 추정되며, 삼국사기에서 5부족 의 명칭이 상이하게 계루부 대신 환나부로 표기되어 있는 바, 계루부와 환나부는 동일한 내용으로 사료됨☆ (9)현 북경지역을 관할하던 비류국(순노국의 서북쪽. 졸본 과는 북쪽면을 접한 지역)의 왕 송양을 수차례 설득하 압력을 가한 뒤 굴복시켜 비류국을 합병함. ☆5부족 중 비류부☆ (10) 태행산맥 방향의 부족국인 황룡국을 굴복시키고 접수함. (11) 산서성 지역의 행인 및 행남국 평정. (12) 하남성 지역의 구다국(여왕 섬니)을 정벌. (13) 구다국과 영합하였던 태행산맥 너머 태행산맥의 서쪽 변을 다스리던 개마국 침공 및 접수.. (14) 오니 등 장수들로 하여금 현 요녕성 지역의 말갈 12 부락을 평정하고 대하주(현 서요하 중하류 지역), 중하 주(현 대릉하 지역), 란하주(현 동요하 중하류)로 나눔. (15) 부위염 과 마려 등의 장수들로 하여금 군대를 3군으로 나누어 북갈(현 하얼빈 지역)을 토벌하여 평점함. (16) 태행산맥 서쪽변을 다스리던 개마국 정벌하여 평정. 이외에도 추모는 갈사. 황룡. 락낭. 량맥. 말갈. 북옥저. 백웅. 숙신. 비리. 자몽. 섭라 등 다수의 읍국과 부족국들을 정복하고 평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들 피정복국가들의 위치를 고려하면 하북성 전부. 산서성 일부. 하남성 일부. 산동성 일부. 요령성 전부. 북 만주 및 서만주 일대로 비정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내용에 기반할 시 고구리의 중심활동지역은 하북성임을 고찰할 수 있으며 수도인 평양은 유리묘 및 유리하진이 소재하는 현 북경시 동북부와 남서 지근임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백제 창업] 백제는 소서노가 왕위 다툼에서 패배한 이후 비류와 온조 를 위한 국가건설을 기획하고 유리왕의 윤허와 함께 졸본 부(졸본국) 중 소서노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요서군 진평현에 이르러 십제를 창업하고 비류 를 왕으로 세운후 고구려 유리왕으로부터 한남왕을 제수 받게 됩니다. ** 여기에서 주류학계의 주장대로 졸본지역이 요동반도 상에 위차하였다면, 그들이 향한 남쪽은 현재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을 건너게 되는 등 고초가 클 것이 고, 더하여 어쩌면 최리의 낙랑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거 나 말갈족들의 습격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는 큰 변고 를 겪게됩니다. 따라서 국가건설은 커녕 목숨의 부지조차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됨에도 , 주류사학계는 버젓이 요동반도에서 한강 지역으로 남하한 양 공상과학소설을 써대니, 후대인들 로 하여금 백제의 출원과 함께 이동을 왈가왈부케 하는 혼란을 야기시키게 된 것이라 봅니다.** 비류와 온조는 계속하여 강역확장에 나서게 되며 한반도 까지 이르게 된 것 입니다. 이로써 중원의 요서지역 일부는 장래 백제인의 조상의 뼈 와 혼이 묻힌 고향이 됩니다.
말로만 식민반도사관 욕하면서 본인은 진작 벗어나지못했네요...역사왜곡...?? 기냥 식민 강단사학자들이 가짜로 속여서 만든거라... 2천년전 유물이지만 십제.백제는 아니죠?.. 이젠 오교수님도 다시공부해야... 현제 하남. 풍납.몽촌 지명이 언제생겼나요? 적어도 조선시대?? 아마 향토역사를보면 일제 강점기때 총독부섹끼들이 부치거나 그때 생겨난 이름 교수님... 반도사관.식민역사관에서 협조하지말고... 벗어나야..
오교수는 방향이 잘 못 설정되어 있는 거 같아요.인하대 고대사연구소팀들이 다 그렇죠.패수는 하남성 제원시위로 흐르는 강이고, 대수는 하남성에서 산동성까지 흐르는 황하를 이야기 합니다. 경기도 하남지명은 세종때 우리 역사서에 나오는 지명을 카피해 온 것입니다 .ruclips.net/video/K6uLSbmveSg/видео.html
교수님 아시는 분이 왜 이제서야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학계, 언론을 통해 이런 내용이 관철되었으면 사실관계에 더 접근했을텐데요. 교수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성산성에 있는 팔각, 구각정자터를 보면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지낸거로 보이는데 이런시설을 유지하던 정부는 백제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강의를 듣고, 충격을 받았읍니다.
가슴 아픈 내용이네요. 조상의 유적도 못 지키는 민족.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내요~ 지금의 졸본에서 시작하면 되네요^^ 졸본 촐본 홀본 홀본성
29:29 마지막 남은 백제 도읍지 민선 7기 김상호시장 때 교산지구 시작했는 모양이네여
그래서 30년 구축 아파트 3~4억짜리가 10억이상 간다고 했군여 스타필드 한번 가보고는 안갔는뎅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군여 강남을 뛰어넘는 하남을 만든다고 백제역사를 지우네여
레고랜드도 상고사역사도 지우고 교산지구로 백제역사 지우고 경주같이 보존할 방법이 없나여?
고대 한나라시대 경주는 감숙성에 있고 이후 낙랑신라 경주는 안후이에 상청현입니다
패수는 사마천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요동군과 위만조선을 나누는 강이고, 대수(帶水)는 낙랑군과 대방군(帶方郡)을 나누는 강입니다
하북성 형태시 융요현(隆堯縣)의 요산(堯山)의 인공위성 지도를 보시면 말마리 모양의 산(馬首山, 마수산)이고요 요산 바로 위는 ♥아이를 업는 모양의 산(負兒嶽, 부아악)♥이 있습니다
석가장시 부근이 한나라 요서군으로 보이고 요동성을 공격하기 전에 전에 당태종이 군영을 설치한 곳이 마수산이고요 백제 시조 온조가 올랐던 한나라 산(한산, 일반명사)이 부아악이며, 한수(한나라 강, 일반명사) 북쪽에 쌓은성이 마수성입니다
말갈을 오환으로 보아야 합니다 (중국 고대사서인 사마천 사기,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에는 말갈이 나오지 않고 오환만 나옵니다 삼국사기에는 말갈만 나오고 오환은 나오지 않습니다)
13:32
소서노 이야기는 어느 사서에서 참고신건가요?
제일 아쉬운건 확인도 제대로 못하고서 하남시가 개발 돠는거에요 ㅠㅠ
좀 더 사료와 유물을 검토해야 하겠으나 좋은 내용입니다.
식민사관 이병도를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무슨 유적을 찾았는데 보고를 안한다고 했을때 빵 터졌네요 그렇게 중요한 유적이면 문화재청에 신고해서 보존할 생각을 해야지ㅋㅋㅋ
흉물스러운 아파트, 이기주의 도심 간판 강력히 규제해서 사라져야합니다. 인구는 감소하는데 끝없이 짓는 아파트 공화국.
하남교산신도시 말씀하시면서 목소리가 부르르 떨리시는 것이 가슴 찡하네요. 정말 땅을 칠 노릇입니다. 하남위례성을 찾아놓고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이 정말 후손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ㅠㅠ
이 놈의 아파트 검찰 정부 때문에 우리역사가 다 날라간다!! 한심하다!! 춘천레고랜드도 그렇고!!
나라가 진짜 망국을 향해 가고 있음!!
아차산과 남한산성은 백제에 중요한 요점
천제단이 햐남 그쪽에 있다 ㅎㅎ
서하남에서 교산동을 지나 하남시청에 이르기까지 일반도로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지세가 천혜의 요새라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죠.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쳐진 마을과 들판...
현재의 한강을 백제시대, 고려시대에도 한수라 하였는지요? 또 왜 궁궐터는 없는 것인지요 갑자기 예성강이 어찌하여 패수가 되는 지요?
정사 삼국지와 후한서 동이열전에서 졸본부여 시조인 동명왕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으니 동이열전에 나오는 부여가 ♥졸본부여의 의미♥로 동명왕의 후손인 비류백제 역사를 기록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구태가 비류의 후손은 아닐까요?(백제는 나중에 스스로 남부여라고 했습니다)
AD 111년 부여가 낙랑군 침공했고 AD 161년에는 현도군을 침략했다고 하는데 고구려 북쪽에 있는 부여가 남쪽으로 고구려 1천여리 황단하여 현도군과 낙랑군을 침공하는 것이 고대에 가능할까요?
( 고구려 북쪽에 있었다는 부여는 동명왕의 졸본부여에게 복속되어 고구려 영토가 된 해모수의 북부여로 보입니다)
요서군과 진평군(진나라 평주, 우북평군)을 ♥비류백제인 부여♥가 차지하고 있었다면
비류백제인 부여가 낙랑군과 현도군을 침공한 사실을 거리 관점에서 이해하기 매우 쉬울 것 같습니다
정사 삼국지에는 부여가 만리장성 북쪽에 있는데 현도군에서 천리정도 떨어져 있다고 했으며 고구려 북쪽에 부여가 있다고 했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요동군 요대현 동북쪽에 현도군 고구려현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낙랑군 북쪽(북서쪽)과 요동군의 북쪽(북동쪽)에 현도군이 붙어 있다고 보아야 하며
현도군 북쪽, 만리장성 북쪽에 부여가 1천여리 떨어져 있다고 했으니 요동과 낙랑 북쪽에 현도가 붙어 있고 현도군 북쪽에 고구려가 있으며 고구려 북쪽에 부여가 있다는 내용이니 고구려는 남북 천리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졸본이 의무려산이며 졸본부여(고구려)의 수도였으므로 고구려가 한나라의 낙랑군과 현토군을 회복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백제는 비류의 십제가 있었던 짠물이 나는 땅에서 처음에 제후국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망하고 그 백성들이 온조의 한남땅(아마도 요동남부)로 갔다가 경기도 하남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백제동성왕때에 북위와의 전쟁때 고구려에 제의하기를 만약 온조제후국때의 땅을 돌려준다면 북위를 쳐서 꺾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중원에 수도가 있는 백제를 이아저씨때메 더더더 통곡하겠네 !!!!
일제신민사관을 또 이야기하네 인촨이라고 있음 감숙성 쪽에 아리산옆임 그곳이 인천이고 아리산옆 분지가 벽란도임
@@jksmm1 당신도 못배워먹은 식민사학자네 잉글랜드에 워리어라고 있음. 워리어 워레 위례. 즉 해상국가 백제는 바로 영국까지 진출했었다는 증거임
13:31에서 동쪽에 낙랑이 있다고 하였는데요.
낙랑국이 평양근방이면 북쪽이고, 낙랑군이라고 해도 북쪽일텐데요.
낙랑국이 강원도쯤있고, 북한지역은 말갈족이 자리잡았다는게 납득이 안가네요.
북한지역에 고구려를 뚫고 말갈이 자리잡은것이 가능한건지. 평양부근의 낙랑국을 뚫고 말갈이 자리잡은것도 그렇고요.
말갈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비정위치가 잘못되니 말갈이야기는 계속되는데 계속 이상한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고대 사서라서 이민족에 대한 기록이 컴퓨터처럼 정확할수가 없음. 오히려 사서의 오류를 가지고 말장난 치는게 사이비 유사역사학의 폐혜임
왜 초기백제의 영토를 한반도에서만 찾으려 할까 ?
소서노, 두아들 비류와 온조/ 졸본부여를 고구려에 넘기고 남하해서 지금의 발해만 요동에 도읍하고 소서노-비류 재임, 둘째아들 온조는 발해만에서 배타고 남하 한반도 들어와 경기 하남시에 하남위례성을 도읍하는 십제건국.
발해만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또다른 부여왕실 후손 구태가 백제건국하고 이 세력이 다시 한반도 들어옴. 구태백제 온조의 십제와 융합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은 삼국사 백제본기에 중국사서(북사 등)에 온조와 구태 이야기 모두 나와서, 헷갈린다...라고 푸념
대륙백제는 발해만 요서지역의 옛 부여세력(백제)근거지를 지칭하는 것. 백제의 출발은 요서지방,발해만의 요동반도,대방고지
백제사를 다시 연구해야 한다.
아 미치겠다. 저 주위를 등산했었는데
11
북경 우측 옆에. 대수가 지금도. 있다
강단사학계가 역사 고증을 잘못하는 바람에 교산지구가 탄생했네.
이제는 교수님들 옛날에 공부하고 연구햇던것 강의 않했으면해요. 말로만 식민반도사관 욕하면서 본인은 진작 벗어나지못했네요...역사왜곡 무지기로하네요? 어데? 십제.백제가 서울근교가 있는가요? 예전에는 속았는데... 요즘은 않속아요. 힘들겠지만, 다시 공부하시고 연구하셔야...미안합니다.ㅎ
百濟ㅡ한자어의 비슷한 발음을 차음한것이다.온조의 또다른 표기로 볼수 있다 十濟?(터키어)
고조선의 후예는 같은 말을 썼을 것이다
溫祚(온조)도 한자어 차음이다
祚(Juo)나 濟(ji)자의 발음이 비슷했을것이다.
백제 건국은 제위(祚)가 백대(百代)를 건너가길 바라는 국호이다
일본어 飛鳥라고 쓰고
아스카를 읽는것은 터키고어이다 飛(sasu) 鳥(kaㅡ) 천군사상 새토템
천박한 도시 개발 이제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부동산으로 때돈 버는 시대는 사라져야 합니다
어차피 ㄴㅣ네나라 이제 망해서 그런거 하고싶어도 못하게 될테니까 걱정마
@@단기4357-l8f 응 ㄴㅣ네 반도 출산율 0.7 유사국가 말이야
조상에 대한 존경과 예의가 없는 망할 등산객들...
대륙내 고구려 백제의 유물, 관련서적들의 증거들은 어떻게 설명도 없고 한반도내에 국한시키는, 시민사관범위내의 강의인가ㅡ
절대공감 합니다! 바로 이것이 제대로 된 두 백제💦 비류백제와 온조백제사 임을 공감하며, 현재 기술된 백제사는 틀린 짜집기 통합 백제사로 필부는 판단합니다!
한반도로 이야기하는 이상한 이야기구만 인촨 중국에 있어 그옆이 벽란도임 헛이야기네 볼필요없다 일제시민사관이다
교수님을 존경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동쪽에 낙랑국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었다면서요 ㅠ
당시의 하남이라는 명칭은 한강 이남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다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십제와 백제는 헛소리 입니다.ㅡ 이미 요서지방에 百濟城과 韓城(漢城)이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요서의 松壤에 도읍한 가칭 비류국의 비류가 왕이되자(이때 고주몽이 죽고 유리가 고구려왕이 됨) 이를 반대한 온조가 百濟에서 바다건너 송파구인 漢山에 풍납토성 즉 위례성을 쌓고 百濟國을 세운 것입니다.
[고구려]
국가의 창업은 신화가 아니라 실재입니다.
하늘에서 신이 강림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 세상에서
갈등과 고뇌의 연속성에서 운명적으로 세력이 규합되고
확장하는 과정속에서 펼쳐지는 스토리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창업지는 수량이 풍부하고
농수축산물의 생장이 원만한 평야지대와 함께 물자의 교
역(물물교환)이 용이한 지역을 배경으로 유동인구와 함께
거주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이것은 진리에 가깝습니다.
(1) 북부여의 출자설에 기반하고 추모경의 내용을 요약하
면서 추모의 창업과 고구리의 성장기반은 아래와 같습
니다.
(2) 먼저 부여 혹은 북부여는 태행산맥 너머 내몽골지역
입니다(현 강단사학이 비정하는 부여는 실상 동부여임).
(3) 추모(주몽)는 북부여에서 출생되고 유년시절 동부여의
금와왕의 보호속에 생활하던 중 금와왕의 자녀(?)인 대
소 형제들에게 핍박과 갈등 그리고 살해 위협을 피하
여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졸본부여 지역인 남쪽으로 피
신함.
(4) 추모는 무리들과 함게 대소형제들의 추격을 피하여
엄리대수(북경시 동쪽지역의 潘家口水庫(반가구수고.
북쪽은 승덕시, 승덕시 남서쪽의 북경시 승덕시 남동
쪽의 진황도시를 이은 삼각형 내에서 북경쪽으로 근
접하여 소재)를 도하하여 하북성 지역에 소재하는 부
족국인 순노국(7개 읍국 연합체, 상간하하류/조백하
중 하류/섭하 중하류 지경으로 추정)에 도착하는 바,
☆오늘날 하북성 당산시에서 바다(발해)를 연하고 있
는 천진시 일대로 비정됨.☆
(5) 추모가 순노국 도착 시점, 순노국은 말갈의 침입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이었으며, 순노국 장로들의
허락에 의해 거처를 마련하게 된 추모 무리는, 이후
계속되는 말갈의 침입에 수차례 응전하는 가운데서
추모 무리의 활약상에 힘입어 순노국은 말갈을 물리
치게 되며, 순노국 장노(7개국 읍국 수장)들의 신임을
얻게 되고 비로소 추모의 성장 기반이 마련됨.
☆순노국은 장래 고구리 5부족 중 하나인 ①순노부로
형성됨.☆
(6) 당시 졸본국(연타발)은 순노국과 접하면서 순노국의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졸본국 또한 말갈의 침
입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음.
이에 추모는 말갈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졸본국
(연타발)과 연합하여 공동 대응함.
(7) 졸본국 연타발의 차녀 소서노와 정략결혼을 맺었으며,
연타발 사후 졸본국과 합병하고 고구리 창업을 선포.
☆졸본국 출신들은 장래 5부 중 ②소노부로 추정됨☆
(8) 추모는 졸본국 서남쪽과 경계하고 있으며 황하유역에
소재하던 부족국인 환나국의 여왕인 계루와 정략결혼
을 맺고 환나국을 합병함.
☆5부족 중 ③계루부를 추정되며, 삼국사기에서 5부족
의 명칭이 상이하게 계루부 대신 환나부로 표기되어
있는 바, 계루부와 환나부는 동일한 내용으로 사료됨☆
(9)현 북경지역을 관할하던 비류국(순노국의 서북쪽. 졸본
과는 북쪽면을 접한 지역)의 왕 송양을 수차례 설득하
압력을 가한 뒤 굴복시켜 비류국을 합병함.
☆5부족 중 비류부☆
(10) 태행산맥 방향의 부족국인 황룡국을 굴복시키고 접수함.
(11) 산서성 지역의 행인 및 행남국 평정.
(12) 하남성 지역의 구다국(여왕 섬니)을 정벌.
(13) 구다국과 영합하였던 태행산맥 너머 태행산맥의 서쪽
변을 다스리던 개마국 침공 및 접수..
(14) 오니 등 장수들로 하여금 현 요녕성 지역의 말갈 12
부락을 평정하고 대하주(현 서요하 중하류 지역), 중하
주(현 대릉하 지역), 란하주(현 동요하 중하류)로 나눔.
(15) 부위염 과 마려 등의 장수들로 하여금 군대를 3군으로
나누어 북갈(현 하얼빈 지역)을 토벌하여 평점함.
(16) 태행산맥 서쪽변을 다스리던 개마국 정벌하여 평정.
이외에도 추모는 갈사. 황룡. 락낭. 량맥. 말갈. 북옥저.
백웅. 숙신. 비리. 자몽. 섭라 등 다수의 읍국과 부족국들을
정복하고 평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들 피정복국가들의 위치를 고려하면 하북성 전부.
산서성 일부. 하남성 일부. 산동성 일부. 요령성 전부. 북
만주 및 서만주 일대로 비정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내용에 기반할 시 고구리의 중심활동지역은
하북성임을 고찰할 수 있으며 수도인 평양은 유리묘 및
유리하진이 소재하는 현 북경시 동북부와 남서 지근임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백제 창업]
백제는 소서노가 왕위 다툼에서 패배한 이후 비류와 온조
를 위한 국가건설을 기획하고 유리왕의 윤허와 함께 졸본
부(졸본국) 중 소서노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요서군 진평현에 이르러 십제를 창업하고 비류
를 왕으로 세운후 고구려 유리왕으로부터 한남왕을 제수
받게 됩니다.
** 여기에서 주류학계의 주장대로 졸본지역이 요동반도
상에 위차하였다면, 그들이 향한 남쪽은 현재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을 건너게 되는 등 고초가 클 것이
고, 더하여 어쩌면 최리의 낙랑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거
나 말갈족들의 습격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는 큰 변고
를 겪게됩니다.
따라서 국가건설은 커녕 목숨의 부지조차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됨에도 , 주류사학계는 버젓이 요동반도에서 한강
지역으로 남하한 양 공상과학소설을 써대니, 후대인들
로 하여금 백제의 출원과 함께 이동을 왈가왈부케 하는
혼란을 야기시키게 된 것이라 봅니다.**
비류와 온조는 계속하여 강역확장에 나서게 되며 한반도
까지 이르게 된 것 입니다.
이로써 중원의 요서지역 일부는 장래 백제인의 조상의 뼈
와 혼이 묻힌 고향이 됩니다.
선생님 ! 하수(河水)는 황하의 다른 이름입니다.
요동반도가 아니라 산동반도에서 있었던 기록입니다. 모든 지명이 그곳에 있고 낙랑, 말갈 등도 전부 그 곳의 기록입니다.
공부 다시 합시다. 소정방의 무덤을 문경에서 찿겠네요?
소정방 무덤 있던곳이라며 역사스페셜엔가 나온걸로 아는데, 그럼 어디인가요? 궁금합니다
한자 표기음 은 어느지역에도 다사용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선 다사용했기에 그걸가지고 역사적 고증 이라고 보기엔 무리 라고 생각합니다 반증으로 유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온조가 다시 도읍한 하남위례성은 하남시가 정확히 맞다고 봅니다. 백제황족이 열도로 이주하여 천황들이 되었던 일본왕들이 모방했던 300미터의 거대한 온조대왕릉과 제사터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남 덕풍동에 살면서 역사,지리를 알려고 공부도 하고 많이 둘러보았습니다.
왜 이 지역사람들은 이곳을 돌아보지 않는가? 애향심이 없는가? 경상도 사람인 저로서는 의아스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무래도 역사를 다시 써야 할것 같습니다.
말로만 식민반도사관 욕하면서 본인은 진작 벗어나지못했네요...역사왜곡...??
기냥 식민 강단사학자들이 가짜로 속여서 만든거라... 2천년전 유물이지만 십제.백제는 아니죠?.. 이젠 오교수님도 다시공부해야... 현제 하남. 풍납.몽촌 지명이 언제생겼나요? 적어도 조선시대?? 아마 향토역사를보면 일제 강점기때 총독부섹끼들이 부치거나 그때 생겨난 이름 교수님... 반도사관.식민역사관에서 협조하지말고... 벗어나야..
오교수는 방향이 잘 못 설정되어 있는 거 같아요.인하대 고대사연구소팀들이 다 그렇죠.패수는 하남성 제원시위로 흐르는 강이고, 대수는 하남성에서 산동성까지 흐르는 황하를 이야기 합니다. 경기도 하남지명은 세종때 우리 역사서에 나오는 지명을 카피해 온 것입니다
.ruclips.net/video/K6uLSbmveSg/видео.html
문헌과 고고학적 사료들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우리역사를 증명해 주시는 오순제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싶습니다. 정말 동북공정과 식민사관논리로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우리 고대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3국이 강역은 중국동북입니다
교수님 아시는 분이 왜 이제서야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학계, 언론을 통해 이런 내용이 관철되었으면 사실관계에 더 접근했을텐데요. 교수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성산성에 있는 팔각, 구각정자터를 보면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지낸거로 보이는데 이런시설을 유지하던 정부는 백제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인들의 조상의 나라 '백제' 둘다 재수없음..
역사 고증이 잘 못된 듯
오순제 교수님도 식민사학을 가지고 역사를 논하는 건가요? ㅎㅎㅎㅎㅎ;;
이 쇅히는 반도사관 식민지사관 쩐다
강의때려치우고 디비자라
대수가 어딘지도 모르는쇅히가
대수가 어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