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저는 83학번인데요. 고등학교때 역사책 덮었습니다. 연결이 안되고, 선생님께 부여역사는 딱 몇줄안나오는데 선생님께 질문한 기억이 납니다. 저넓은 영토에 많은 사람이 살았을 건데 갑자기 어디로 갔어요. 선생님 답변은 얼버무리, 역사의 흐름이 연결이 안됩니다. 고려시대는 문무신 싸움질만 했다고 배웠고, 이성계 조선은 태종태세만 외웠습니다. 이제 나이 들고 유튜브 영상 보면서 우리역사의 연결고리가 보입니다.
맞습니다. 지형 즉 천연 국경인 높은 산맥, 깊은 강이나 바다, 큰 호수, 큰 벌판이나 사막 (모두 海로 불림)으로 구분되는 자연스런 국경과 역사적인 전투 지역명과 고성과 해자가 있는 왕성의 흔적은 고대와 중세 국가 강역 비정에서 가장 상식적인 증거가 되는 거겠죠. 기대가 됩니다. 늘 응원할게요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미국의 김태영(폴 김) 박사도 책보고님과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시안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 4천리, 도로를 따라 7천리길을 걸어서 가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하죠. 그런데 책보고님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고구리가 아예 태행산맥 서쪽에 있고, 황하를 경계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태영 박사는 호타하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부린 그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했으며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조선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seromekim7798 다 좋은데 일본이 한국 근대사를 열어줬다는 말 이순신이 이겨서 더 노예로 살았다는 저 쓸대없는 말 ㅡㅡ 그럼 일본이 한국사람 귀 짤라서 이비무덤 만들고 길가에 묻어서 일본인들이 밟고 다니는 건 어케 생각해? 이순신이 졌으면 님 귀베어 일본땅 사람믾이 지나다니는 길에 묻혀볼려? ㅋㅋㅋㅋ
시대별로 지역명을 보여주시며 삼국사기부터 고려까지 우리의 역사를 개괄 해주신 내용이네요 시간의 흐름대로 큰 사건들과 지역명을 보여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역사 인식수준이 참으로 슬프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찾게 될 우리의 역사입니다 마치 자연의 순리처럼 그렇게 될거라 확신합니다 책보고님 힘내시구요!!
지형으로 보니 너무도 이해가 잘 됩니다. 아직도 의심스럽고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지형으로 이렇게 설명해주시니 대부분의 퍼즐이 잘 풀려나가서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지나치게 위대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을 중국과 일본은 너무도 시기했고 깍아내리고 싶었던 야욕이 그대로 드러나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네요 ..
구독하고 알림설정 해두고 영상 잘보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를 아주좋아하고 관심이 많아서 책보고님 같은 유튜버가 있어서 넘좋고 대단하시다고 느낍니다 역사를 공부하다가 보면 인류는 전쟁의역사가 아닌가 할 정도로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서로 교류하고 싸우고 상식적으로 농경하던 화하족 들이 어릴때부터 말(장갑차)타고 원거리공격해서 사냥생활하는 유목민을 이기는건 말이 안되죠 중원대륙의 주인은 대부분 유목민들이였고 우리는 그중 아시아를 호령하던 삼국의 자랑스런 후예들로 그 역사를 계승하는거죠
책보고님 영상 보고 있으면 매스터(장인)라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복원의 장인, 일타강사 같은 느낌도 들구요. 역사를 통찰(꿰뜷음)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내용입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든든합니다. 10여년 전에 대륙고려에 대해 언급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명과 조선이 역사왜곡의 공동정범입니다. 일본은 불문가지.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어렸을때 부터 역사를 배우면서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과 고구려를 멸망시켰는데 저렇게 바다를 건너서 연락하면서 어떻게 긴밀한 협조가 가능했을까? 고려가 한반도에 찌그러져 있는데 요나라가 왜 송나라를 치는 길을 열어달라 했을까? 왜 중국의 지명들은 한국의 지명들과 비슷한 곳이 저렇게 많은가? 이야기 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결국 다 주작질이었다는 이야기네요. 말씀 잘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대륙에 그나마 있던 우리 유물 사적들도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사라지고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더 안타까운것은 한국 역사 학자들이 중국과 일본에 사대 하면서 스스로 한반도 안으로 역사를 만들고 그것이 100% 맞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에 100% 라는게 없습니다 사서 유물 지형 을 교차 검증해야되고 이 검증이 100% 맞다해도 의심해야되는게 역사 인데.. 왜 의심을 안하고 일제가 해준 데로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몽골의 원나라 때부터 지금의 북경이 수도가 됐다는 것만 생각했지 그곳이 가지는 지리적, 군사적 잇점을 그 이전의 세력들도 알고 그 땅을 터 삼아 발전했을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간과하고 있었네요. 명나라때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건 고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다른 분들이 이미 한 말처럼 너무 이해가 쏙쏙됨🎉🎉 고대, 중세사가 수업시간에 유독 어려웠던 이유가 실제 지형과 맞지도 않았던 한반도에 끼워맞추기가 힘들어서 맥락적 이해가 안됐기 때문이란 걸 깨닫기까지 수 십 년이 걸렸네요. 아무리 오래전이라도 왜 대체 백제, 고구려, 고려 유물 유적은 적을까? 라는 의구심에 들었던 게 당연한 거였음😮😮
조선 또한 최소 후기까진 연해주 남부에 최소 영토가 있었을 거라 생각되네요. 아마 후기 조선은 사실상 나라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식물국가나 다름없었으니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제국이 서로 영토를 분할했고 연해주를 러시아가 만주쪽은 청나라가 한반도는 일본이 이런식으로 점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영상보면서 지난 몇십년 아니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가상역사에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고 정신이 바짝 드는 내용입니다. 이거야 말로 조작된 “매트릭스라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네요. 지금이라도 진실을 찾아야겠네요. 잃어버린 역사적 정체성을 되찾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공감합니다.
현 중국대륙은 한자문화권에서만 중국이지, 국제사회에서는 중세시대부터는 황하를 중심으로 한 이북지역은 고리(corea, korea)였고, 장강(대강)을 중심으로 한 이남지역은 신라(china, sina)이다. 즉, 현 중국대륙은 한자문화권에서는 중국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신라로 불리워지고 있는 셈이다.
명강의 잘 들었습니다 옆에 아들.딸도 같이듣고 이런증거가 있는데도 왜 한국사를 거짓으로 가르치냐고 중.고생아이 들이 되 묻고있네요 오늘 시험치고 일찍와서 일부러 같이 저녁먹으면 서 듣게했습니다 마지막 말씀처럼 자리보 전과 자기들의 거짓으로 잃게될게 두려움때문인지 쉬운일은 아니지만 태산 이 높지만 우리회원님들 선한영향력으로 주변을 변화시켜나가면 이제는 그놈들도 오래 버티지를 못 할 것입니다 늦은시간 귀한강의해주신 책보고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강소성 江苏 Jiangsu를 경상도의 지형에 비교한거 보면 정말 탁월합니다. 실제로 강소성, 남경사람들의 성향이 경상도와 너무 흡사합니다. 보수적이고 진중한 학습태도로 일찌기 명나라, 청나라때도 전국 과거시험을 강소성 출신들이 휩쓸었지요. 중국내 수많은 대학의 교수, 학자들이 강소성 출신입니다.
@@booksbogo 파면 팔수록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강소성 남경의 지명이 청나라때 까지 강녕江宁, 江寧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唐城이라고도 하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경기도 화성가 고려의 당성, 강녕이라고 합니다. 왜 굳이 당성 당나라성 (차이나타운)이라는 명칭을 붙였는지 당연히 남의땅이니 당성이라고 붙였겠죠.. 지금도 남의나라땅에 차이나타운이 있지, 자기 나라에 굳이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죠.. 이런 상식적인 지명들이 무시되는 상황이니,,...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역사는 교수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과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야할 것이기도 하죠^^
선구자적 역할 존경합니다
역사는 강단사학자들과 친일파 학자들의 것이 아닌가요????
우리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공부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보고님을 응원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무너뜨렸다고 한게 너무 이해가 안갔었죠. 당나라 그많은 병력을 배로 싣고 와서 어디서 합류해서 싸웠다는 건지..
영상 전파 천명 달성하겠습니다
신당 연합군 이라 해야됩니다
라당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깍아내리려는 친일 족속들의 흉계
그래요 화이팅 합시다
저는 83학번인데요. 고등학교때 역사책 덮었습니다. 연결이 안되고, 선생님께 부여역사는 딱 몇줄안나오는데 선생님께 질문한 기억이 납니다. 저넓은 영토에 많은 사람이 살았을 건데 갑자기 어디로 갔어요. 선생님 답변은 얼버무리, 역사의 흐름이 연결이 안됩니다. 고려시대는 문무신 싸움질만 했다고 배웠고, 이성계 조선은 태종태세만 외웠습니다. 이제 나이 들고 유튜브 영상 보면서 우리역사의 연결고리가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당군이 황해바다를 건넜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당시 중국의 전함들은 강과 하천에서 싸우는 용도였고 돛도 없었는데 어떻게 해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황해 바다까지 갔을까요? 진짜로 황해바다를 건넜으면 싹 다 고기밥이 되었거나 표류했겠죠.
@@freedom-lz7cg 나는 12학번인데 한반도에서 잘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하는 편이네여
고대사 지도 빨리 확정해서 널리 퍼트려야 합니다..
트럼프 바이든 미의회 먼저요
강단사학자들 먼저 처단해야 합니다
삼족을 멸해야 합니다.
@@dlpul7870 매우 공감요~!
말같은소리를해야 들어주지
요즘 책보고님을 비롯해서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유튜브들이 늘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하루 빨리 우리 후손들이 참된 역사를 배우는 그날까지 노력합시다.
@@sinsekai25 국짐의 뿌리는 친일매국노 종자들입니다. 그들의 정체를 모른 체 나라팔아도 국민의 힘을 무지성 지지하는 개돼지들 많습니다. 여조 35%가 이를 증명하죠. 월 수입 200미만의 저소득층 62%가 2찍한 거면 답 나오죠.
맞습니다.
지형 즉 천연 국경인 높은 산맥, 깊은 강이나 바다, 큰 호수, 큰 벌판이나 사막 (모두 海로 불림)으로 구분되는 자연스런 국경과 역사적인 전투 지역명과 고성과 해자가 있는 왕성의 흔적은 고대와 중세 국가 강역 비정에서 가장 상식적인 증거가 되는 거겠죠.
기대가 됩니다. 늘 응원할게요
그쵸. 자연스런 국경.
책보고 님~~ 참으로 고생많으십니다.지상파 방송에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온 국민이 새롭게 우리역사를 읽히고 키워서 진취적인 기상을 품고 고토를 회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토를 왜 회복해야 하는지요??? 지금은 땅으로 생산하는 그런시대가 아니에요.. 대한민국은 작지만??? 세계의 강국 문화국의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입니다.
책보고님의 설명과 언어에서 갑갑함과 분통의 목소리가 느껴집니다.
역사 꼭 바로 세웁시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천멸중공
역사는 우리 대중의 것이다.
100% 공감합니다..
지도로 쉽게 설명하시니
이걸 타 역사학자들이 본다면
자괴감이 들어야 하고,
역사학자로서 소임을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스스로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저들이 비웃고 있다고 생각하면 울화가 솟아오릅니다.
행동이 답인데 방법은 무엇일까요? 해설이 명쾌합니다.
천멸중공
미국의 김태영(폴 김) 박사도 책보고님과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시안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 4천리, 도로를 따라 7천리길을 걸어서 가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하죠.
그런데 책보고님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고구리가 아예 태행산맥 서쪽에 있고, 황하를 경계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태영 박사는 호타하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끊임없이 인류평화를위해 위해 바른 역사관으로
입증하시려는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늘 항상 건강이 함께하는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전쟁은 굉장히 많은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이를 만회할 막대한 이득이 없다면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면을 감안하고 지형을 연구해 보면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습니다.
책보고님 덕분에 저는 우리나라 력사의 퍼즐을 꿰맞출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보고님 해석이 우리 역사 퍼즐맞추기에 훨씬 타당성이 있네요.
신라가 당나라와 교섭하는 등의 일에서 지도를 통해서 보니...
👍
기대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책보고님의 이 방송이 장기적으로 우리 젋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겁니다. 왜냐면 객관적인 사실이니까요. 독립운동가가 어렵지 않습니다. 책보고님 처럼 사명감을 갖고 활동하시는 분이 진정 독립 역사 독립운동가이십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은 동족을 노예로 부린 그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했으며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조선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seromekim7798 다 좋은데
일본이 한국 근대사를 열어줬다는 말 이순신이 이겨서 더 노예로 살았다는 저 쓸대없는 말 ㅡㅡ
그럼 일본이 한국사람 귀 짤라서 이비무덤 만들고 길가에 묻어서 일본인들이 밟고 다니는 건 어케 생각해?
이순신이 졌으면 님 귀베어 일본땅 사람믾이 지나다니는 길에
묻혀볼려? ㅋㅋㅋㅋ
천멸중공
책보고님, 그동안의 영상 반드시 우리 다음세대에 전해야합니다.
역사학의 다른 이름이 지리학이라는 말이있죠~지도를 보며 동아시아의 역사흐름을 설명해 주셔서 너무 재밌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대됩니다 늘 고맙습니다.
지형으로 설명해주시니 더욱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우리 역사의 중세사를 개괄적으로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드뎌 강좌가 열리는군요.
기대 만빵.
시대별로 지역명을 보여주시며 삼국사기부터 고려까지 우리의 역사를 개괄 해주신 내용이네요
시간의 흐름대로 큰 사건들과 지역명을 보여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역사 인식수준이 참으로 슬프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찾게 될 우리의 역사입니다
마치 자연의 순리처럼 그렇게 될거라 확신합니다 책보고님 힘내시구요!!
오늘도 많은 공부 하네요 !
항상 응원 합니다 .👍👍👍
항상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늦어서 재방보는데 이번에도 역시 새롭게 배워갑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약소하나마 식사비를 보내 드리려고 했는데 11시50분을 넘기니 안되네요. 아침에 날이 밝으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오늘 영상 제작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내 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hyugi-papa 감사합니다 응원과 지원에 힘입어 지쳤을때 힘을 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노심초사...왜곡 축소된 우리 한국사 복원을 위해 뛰고 있는 책보고님을 전폭지지 합니다
국회로 가서 나라를 똑바로 세워야 합니다.
교육부 뜯어 고치고요!!!
@@하루7분마음의소리 너무 순수하신데요..... 국회로 순순히 들어 가면 바뀔까요?? 역사 왜곡의 주유층들이 엘리트 기득권 층인데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보고님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
대단합니다!! 지명으로 봐도 순리에 딱딱 들어맞네요!! 감사합니다
맞아요.역사는 우리의 것 입니다
제발 우리나라사람들이 책보고님 통해서 한국사를 제대로 알길!!!! 그래야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말할 수 있잖아요
지형으로 보니 너무도 이해가 잘 됩니다.
아직도 의심스럽고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지형으로 이렇게 설명해주시니 대부분의 퍼즐이 잘 풀려나가서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지나치게 위대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을
중국과 일본은 너무도 시기했고 깍아내리고 싶었던 야욕이 그대로 드러나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네요 ..
지도와 설명 훌륭하십니다.
지도를 보며 여러 내용들을 되새김하니까 확실히 이해가 쉽습니다. 오늘 한국에서 일식 기록에 대한 책이 도착하여 독서를 다시 시작하려 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고려시대에는 인쇄술과 화약, 고려청자등 과학이 발전한 나라였는데 국토가 작은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책보고님 강의 들으니 이해가 됩니다.
한반도 사관에 빠져서 배워서 그런가
대륙의 삼국을 보면서도
아직까지 믿기지 않네요
책보고님 같은 젊은이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환갑을 앞두고 있지만
또 새롭게 배웁니다
저도 곧 환갑입니다 나이는 숫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책보고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책보고님 역사에 관심 가질수있도록 자세히 알려쥐서 감사합니다 노력과 수고에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항상 좋은자료 구해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책보고님 올려주신 영상도
보고 독서도 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중입니다 ㅎ 수고하셨습니다 책보고님
여진 만주족 이면 .. 발해 유민들이라고 하죠 !! 거란족 에게 세금으로 " 여진 = > 길들인 매 = > 여진 ." 이라고 하더군요.. 신라 진골 여진을 귀합 하여 .. 국가를 세워 .. 금 (김) ..만들었다죠.
책보고님 고생이 많으세요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잘보고,둗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구독하고 알림설정 해두고 영상 잘보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를 아주좋아하고 관심이 많아서
책보고님 같은 유튜버가 있어서 넘좋고
대단하시다고 느낍니다
역사를 공부하다가 보면 인류는 전쟁의역사가
아닌가 할 정도로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서로 교류하고 싸우고 상식적으로 농경하던 화하족
들이 어릴때부터 말(장갑차)타고 원거리공격해서
사냥생활하는 유목민을 이기는건 말이 안되죠
중원대륙의 주인은 대부분 유목민들이였고 우리는 그중 아시아를 호령하던 삼국의 자랑스런 후예들로 그 역사를 계승하는거죠
오늘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역시 지도를 보고 설명을 해야 확실히 이해가 갑니다
정말 가치가 높은 영상이라 생각합니다 😊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와 오늘 설명 너무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주셔서 좋네요!!👍
책보고님 영상 보고 있으면 매스터(장인)라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복원의 장인, 일타강사 같은 느낌도 들구요.
역사를 통찰(꿰뜷음)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내용입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든든합니다.
10여년 전에 대륙고려에 대해 언급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명과 조선이 역사왜곡의 공동정범입니다.
일본은 불문가지.
신나는 강의였습니다
좋은 역사 정보 적극 공감합니다.
책보고님..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책보고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현 학교교육에서 지도를 안 가르치는 것이
한국의 미래에 도움이 되죠. 묘청의 '서경천도'또한 고려의 '개경'위치를 알면
이해하기 쉽죠.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진실은 밝혀지고 널리 알려져야합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것은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힘이 없으면 역사는 없습니다!
책보고님 응원합니다!
책보고님 ...넘 넘 똑똑하세요 ! 수고많으시구요 넘 감사해요 수고많이 하세요
어쩌다 타고왔는데 우리역사가 대단하다는걸 이제야 알았네요.. 영상 만들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소리를 항상 켤순 없어서 자막이 있으면 더 좋을것 같아요^^
책보고님! 영상 고맙습니다!
감탄사만 나올뿐이네요 잃어버린역사 잘봤습니다요 😭👍
어렸을때 부터 역사를 배우면서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과 고구려를 멸망시켰는데 저렇게 바다를 건너서 연락하면서 어떻게 긴밀한 협조가 가능했을까?
고려가 한반도에 찌그러져 있는데 요나라가 왜 송나라를 치는 길을 열어달라 했을까?
왜 중국의 지명들은 한국의 지명들과 비슷한 곳이 저렇게 많은가?
이야기 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결국 다 주작질이었다는 이야기네요. 말씀 잘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대륙에 그나마 있던 우리 유물 사적들도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사라지고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더 안타까운것은 한국 역사 학자들이
중국과 일본에 사대 하면서 스스로 한반도
안으로 역사를 만들고 그것이 100% 맞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에 100% 라는게 없습니다
사서 유물 지형 을 교차 검증해야되고
이 검증이 100% 맞다해도 의심해야되는게
역사 인데..
왜 의심을 안하고 일제가 해준 데로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책보고님 영상 잘 봤습니다 이렇게 지형으로 설명해주니 이해가 됩니다. 담에 영상 올려주실때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영토 영역을 정리해서 보여주었으면 하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ㅎㅎ
우리의 역사 시대별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신라, 남북조(대진, 신라), 고려, 조선의 실제 영토를 현재와 비교(현재는 좌측, 실제는 우측)하여 작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슈퍼챗 감사합니다.추후 비교 책 출간 및 영상 더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원 감사드립니다
늦었지만 역사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비판적인 사고와 시야를 넓히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논리적이고 사료에 근거한 설명 너무 감사합니다!!!
몽골의 원나라 때부터 지금의 북경이 수도가 됐다는 것만 생각했지 그곳이 가지는 지리적, 군사적 잇점을 그 이전의 세력들도 알고 그 땅을 터 삼아 발전했을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간과하고 있었네요. 명나라때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건 고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와 영상보면서 이해가 쏙쏙 됩니다.
위치를 딱 집으면서 이야기 해주시는데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머하고 있는지 궁금해질정도 입니다.
책보고님, 감사합니다.
다시보니 더 쏙쏙 들어와요~!!!
지형도로 지역 비정 개념을 잡으니 아주 명쾌하게 와 닿네요.^^
다른 분들이 이미 한 말처럼 너무 이해가 쏙쏙됨🎉🎉 고대, 중세사가 수업시간에 유독 어려웠던 이유가 실제 지형과 맞지도 않았던 한반도에 끼워맞추기가 힘들어서 맥락적 이해가 안됐기 때문이란 걸 깨닫기까지 수 십 년이 걸렸네요. 아무리 오래전이라도 왜 대체 백제, 고구려, 고려 유물 유적은 적을까? 라는 의구심에 들었던 게 당연한 거였음😮😮
조선 또한 최소 후기까진 연해주 남부에 최소 영토가 있었을 거라 생각되네요. 아마 후기 조선은 사실상 나라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식물국가나 다름없었으니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제국이 서로 영토를 분할했고 연해주를 러시아가 만주쪽은 청나라가 한반도는 일본이 이런식으로 점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네요.
감기조심 하세요
대단하십니다. 영상보면서 지난 몇십년 아니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가상역사에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고 정신이 바짝 드는 내용입니다. 이거야 말로 조작된 “매트릭스라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네요. 지금이라도 진실을 찾아야겠네요. 잃어버린 역사적 정체성을 되찾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공감합니다.
깨달음의 댓글에 보람됩니다 애청으로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게 잘못배워도 한참 잘못배웠다는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영상이네요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전국의 청소년들이 제대로 배울수 있는 기회가 하루라도 빨리 제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찐~~~입니다^^!!!!얼른 많은사람들이 올바른역사를 깨닫고 인식했음좋겠네요 교과서부터ㅜㅜ 바꿨음
감사합니다 책보고님 😊
바로잡는 한국사 아주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이해가 쏙쏙 되네요^^ 언제쯤 학교에서도 이런내용을 배우게 될까요ㅜㅜ
전 무안박씨인데 영상보고 비로소 무안의 진정한 위치를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방송, 감사합니다. 올바른 역사가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 5소경 다뤄주세요
잘 보았습니다.
현 중국대륙은 한자문화권에서만 중국이지, 국제사회에서는 중세시대부터는 황하를 중심으로 한 이북지역은 고리(corea, korea)였고, 장강(대강)을 중심으로 한 이남지역은 신라(china, sina)이다. 즉, 현 중국대륙은 한자문화권에서는 중국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신라로 불리워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땅이 차이나 china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9세기 까진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니 시나 지나로 불리면서 청이 망하고 중공이 들어섰는데 그땅을 그대로 불리운거 아닌가 싶습니다
신라 = 지나 = china
쩌네요
지도 잘보고 갑니다.
책보고님! 저도 지도 1장 신청할께요 존경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응원합니다 ^^
당태종이 도망갔다는 택지..가 과연 어디인지 등 진짜 역사가 궁금합니다. 지도를 보면 추론이 가능하겠지요. 기대됩니다
함곡관, 산서성/감숙성. . .이 주요한 역사의 현장. 해지..라고 부르는 소금이 나는 염호..문고리 이진우 박사님 추천하신 재미 의학박사님 이돈성 님 쓰신 "고조선 찾기"를 보니,
책보고님 강의와 딱 떨어집니다.
명강의 잘 들었습니다
옆에 아들.딸도 같이듣고
이런증거가 있는데도
왜 한국사를 거짓으로
가르치냐고 중.고생아이
들이 되 묻고있네요
오늘 시험치고 일찍와서
일부러 같이 저녁먹으면
서 듣게했습니다
마지막 말씀처럼 자리보
전과 자기들의 거짓으로
잃게될게 두려움때문인지
쉬운일은 아니지만 태산
이 높지만 우리회원님들
선한영향력으로 주변을
변화시켜나가면 이제는
그놈들도 오래 버티지를
못 할 것입니다 늦은시간
귀한강의해주신 책보고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ㅋㅋㅋ아들 딸을 보게 하시는 것도 쉽지 않은데~대단하심
@@낭만치킨 중2아들이
시험기간인데 요즘 역사시험이 한국사와 세계사
같이 배우더군요
딸아이도 한국사시험기간이라 겸사겸사 북습겸해서 저녁먹으면서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책보고 잘한다!!!
감명깊게 잘 보았습니다...영상 감사합니다 ^^
많은 의문점이 이곳에 와서 풀리네요
이 영상이 많이 퍼지게 구독, 댓글, 좋아요 꾸욱~~!!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익한 내용입니다. 고대 지도책은 언제 나올까요? 감사드립니다.
책보고님의 대단한 영상이 우리나라 역사책에 반영되길 바랍니다
책보고님 훌륭하십니다. 응원합니다!
응원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 합니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닌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경의를 표합니다
명과 조선이 고려를 나누어 가지고 지웠다 소름기칠정도의 탁견입니다
강소성 江苏 Jiangsu를 경상도의 지형에 비교한거 보면 정말 탁월합니다. 실제로 강소성, 남경사람들의 성향이 경상도와 너무 흡사합니다. 보수적이고 진중한 학습태도로 일찌기 명나라, 청나라때도 전국 과거시험을 강소성 출신들이 휩쓸었지요. 중국내 수많은 대학의 교수, 학자들이 강소성 출신입니다.
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booksbogo 파면 팔수록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강소성 남경의 지명이 청나라때 까지 강녕江宁, 江寧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唐城이라고도 하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경기도 화성가 고려의 당성, 강녕이라고 합니다. 왜 굳이 당성 당나라성 (차이나타운)이라는 명칭을 붙였는지 당연히 남의땅이니 당성이라고 붙였겠죠.. 지금도 남의나라땅에 차이나타운이 있지, 자기 나라에 굳이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죠.. 이런 상식적인 지명들이 무시되는 상황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