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주몽이 고구려의 시조라고 하는 건 그렇다면 고구려 중에서도 고씨 왕조를 개창했다고 보는 편이 더 좋겠군요.(발해의 경우도 스스로의 국호를 고려,즉 고구려라고 일본과의 외교문서에 밝힌 것으로 보아서 발해 말고 대씨 고구려로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qpqpkqwu 역사서가 없어졌다기 보다는 역사 기록의 시작 자체가 늦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해 후세에 전한다는건 상당히 문명이 발달한 뒤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족 연합체 수준의 문명에서 일어나기는 힘든 일이지요. 국가다운 몰골을 갖추고 나서야 비로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진행됩니다. 동아시아는 국가의 형성도, 문자의 사용도 유럽이나 아프리카, 서남아시아보다 많이 늦은 편이였고, 그만큼 기록 문화의 시작도 늦었고 역사 기록도 늦었습니다. 고대 역사 기록이 부족한건 유독 우리만 불운하게 역사서가 없어졌다기 보다는 고대 역사 기록물 자체가 매우 희소했던거죠. 그나마도 국가 체계를 갖춘 3-4세기 들어서야 문자를 이용한 역사 기록이 시도되었고 이미 그때는 주몽이나 온조, 혁거세 시대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온 것이 아니라 구전되어오는 설화 처럼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그 모양인거죠.
고구려 초기 정치를 그린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다 국가들을 처음부터 중앙집권화 적인 전제군주정으로 그려서 불만이었어요. 주몽의 부여 고구려가 그러했듯이 말이에요. 금와왕이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사츌도 제가들에게 병력을 내놓으라고 강압을 하질 않나, 세워진지 얼마 안된 고구려가 태왕폐하라고 왕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듯 하질 않나... 역사엔 저 두 국가는 초기 군장국가에서 아주 쪼금 더 나아갔을 연맹체 였을 뿐인데 말이죠. 부여의 금와왕은 권력을 휘두르기는 커녕 전쟁에서 지거나 자연재해가 일어나기만 하면 당장 자신의 목숨이 급급해야 할 처지였겠고, 건국 초기 주몽세력도 계루부의 도움을 얻고 다른 네개 졸본세력의 도움을 받아야지 겨우 지배체제를 구축할까 말까 한 상황이었을텐데 말이죠. 우리나라 사극은 왕실을 중앙집권 전제군주정으로밖에 그릴 수 없는 능력인가 봅니다 ㅉㅉㅉ 아 그나마 '바람의 나라'는 유리왕 해명태자 등의 미약한 왕권과 주변 상가들의 세력이 그나마 동등해 보였었습니다
부여에서 고구려에서 백제 그다음이 신라.가야 순으로 나라가 세워졌다고 보는게 맞을듯 삼국중에 신라가 잴먼저 건국이 되었다는 것은 후에 정치적인 이유로 수정되었을듯 보이며 고조선.부여가 있던 만주에서 세력들이 한반도 쪽으로 남하하던 시절에 고구려.백제가 세워지고 또다른세력이 더밑으로 내려와 신라와 가야를 세운듯 지형으로 봐도 이게 맞고 사국의 모체는 부여나 고조선으로 봐야함. 금관. 복식. 상투. 모자에 새깃을 꽂고 말타는게 거의 비슷함
고구려도 천 년 가까이 되었군요. 신라 천 년, 고구려 천 년 이후 한 나라가 되어 고려시대, 조선시대 내내 두 세력이 조정에서 권력 싸움을 하였으니, 이제는 진정한 통합이 되어야 할 때이고, 서로 경쟁만 하는 이들은 사라져야 할 때. 자기 권력 욕심, 자기 이익을 놓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그것만이 통합의 유일한 길이 되겠는.
내용중에 오류가 있는거 같은데요..부여는 고조선 멸망 후 건국된 나라가 아닙니다...부여는 위만조선시기쯤부터 이미 건국된 나라였고 고조선과는 전혀 다른 문화권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고조선 멸망 후에는 한사군(낙랑,현도,진번,임둔)이 설치되었고, 옥저,동예가 건국되었습니다.그렇다면 고리국 또한 실체가 불분명 하기는 하는 실제 했다 하더라도 고조선 멸망 후 생긴 것이 아니라 위만조선보다도 먼저 단군조선때 이미 존재했던 것이 됩니다.
동명성왕이 승하 후 안장되었다는 용산과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의 배경이 된 유리왕이 7일동안 사냥을 갔다는 기산이라는 지명이 중국 고지도상에 지금의 북경 서쪽에 있는걸 볼 때 고구려 초기 강역이 북경일대아 아닐까 합니다 태조왕이 공격한 태원 상곡 북평 어양도 이 지역에 있구요 물론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이 삼국사시 초기 기록을 부정하지만요
영상 좌상단에 '출처 나무위키'에서 당황하고 갑니다. 나무위키가 무슨 공신력이 있어서 마치 이 내용들이 팩트인 것처럼 영상을 제작하셨는지 모르겠네요. 불행 중 다행히도 실제 동명왕 설화가 기록된 역사서들이 있고, KBS 역사스페셜에서도 다룬 내용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는 보입니다. 앞으로 영상을 제작하실 때는 명확한 사료를 근거로 제작해주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본가 어떠한 나라도 원래 부족이나 나라가 당연히 있을거고 고구려 왕의 계보가 주몽부터 시작하니깐 주몽이 시조지 광개토대왕릉비에 시조라고 떡하니 적혀있는데 광개토대왕릉비를 무시하냐? 아니 후대 고구려왕이 주몽이 시조라는데 너가 뭔데 ㅋㅋ 중국 일본도 아니고 한국에서 광개토대왕릉비 무시하는건 첨보네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른이 되어 학교밖에서 역사를 배우면서...너무 놀란 것이 많답니다. 국사학의 시작이 사실 상 동경제국대 출신들이 서울대사학과, 역사교육학과 기틀을 잡으며...식민사관이 국가교육의 기본이 되니 통탄할 일입니다. 그리고 작금의 정치지도자들 조차 "일본은 조선왕실을 공겨한 적이 없이 조선 내부의 붕괴다. 역사공부 좀 하세요"라고 하니... 아직 친일식민 역사교육을 바로잡을 길이 멀기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런 영상이 덕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ㅋㅋㅋ 아직도 그렇게 알고 계시네요. 역사학계는 연구를 통해 계속 바뀌어가는데 교과서는 만드는데 10년 정도로 매우 오래걸리다보니 현재 역사학계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거죠. 그러다보니 교과서와 상관없이 교수님이 직접 쓰셔서 하시는 대학이 훨씬 현재의 역사학계의 입장과 같다고 합니다. 물론 고려대를 제외하고는요.
@@Ycmjg37143 그런 것도 있는 것 동의합니다. 다만 어린학생들의 교과서가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사학계는 경성제국대 출신들의 2세대, 3세대 분들사단이 아직 건제하니 답답한듯 합니다. 그래도 우리국민들이 깨어서 목소리를 내니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자식이 아버지 실록편찬에 관여하지 못 했는 데... 따님이 아버지 사랑을 역사책에 넣다보니...세종대왕 9페이지, 이순신 5페이지, 유관순 등 열사들 3페이진데...자신의 아버지 11페이지인 교과서라니.. ㅜㅡㅜ 그나마 깨어있는 국민들이 많아 미래는 점차 밝아 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디테일이 숨겨져있었군여.. 덕분에 역사를 바라보는 식견이 늘어나는것 같습니자😊
역사에 환상을 갖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게시물이네요
엄청난 디테일이네녀
뭐.....주몽이 고구려의 시조라고 하는 건 그렇다면 고구려 중에서도 고씨 왕조를 개창했다고 보는 편이 더 좋겠군요.(발해의 경우도 스스로의 국호를 고려,즉 고구려라고 일본과의 외교문서에 밝힌 것으로 보아서 발해 말고 대씨 고구려로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mississippi7948 연개소문을 너무 악인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져.연개소문 대단하고 훌륭한 인물 이라 생각함.
@@niceguy1027 ㄷ
해씨입니다 고씨는 고수성 등 4대왕부터입니다
문왕때 고려라고 칭한 거 외에 더 있는지? 대부분은 문왕 대 포함해서 발해라고했고 멸망 이후에도 주변 국가들도 발해라 칭함
왜 계속 없는 얘길 만들어가는지..
문자가 음이 바뀌게 되니까 그에 맞는 글로 대체했다고 보는게 맞을 듯
그리고 한문의 시작은
갑골문이고 그거는 동이가 만들었다고 하니
한문은 함께 썼다고 보는게 맞을 듯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로마의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어떻게 전쟁하고 진지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하게 알지만 우리 역사는 신화밖에 안 남아 있네요. 기록의 중요성이란...
사실 삼국시대에 대해 기술한 역사서들이 대부분 없어진 것이 큽니다. 기록으로만 존재하고 이미 유실된 역사서들이 많아요
@@qpqpkqwu 역사서가 없어졌다기 보다는 역사 기록의 시작 자체가 늦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해 후세에 전한다는건 상당히 문명이 발달한 뒤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족 연합체 수준의 문명에서 일어나기는 힘든 일이지요. 국가다운 몰골을 갖추고 나서야 비로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진행됩니다.
동아시아는 국가의 형성도, 문자의 사용도 유럽이나 아프리카, 서남아시아보다 많이 늦은 편이였고, 그만큼 기록 문화의 시작도 늦었고 역사 기록도 늦었습니다. 고대 역사 기록이 부족한건 유독 우리만 불운하게 역사서가 없어졌다기 보다는 고대 역사 기록물 자체가 매우 희소했던거죠. 그나마도 국가 체계를 갖춘 3-4세기 들어서야 문자를 이용한 역사 기록이 시도되었고 이미 그때는 주몽이나 온조, 혁거세 시대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온 것이 아니라 구전되어오는 설화 처럼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그 모양인거죠.
단순히 기록하고안하고의 문제가 아님요. 우리나라는 비교적 한 나라나라가 너무나 오래 이어져왔고 지중해처럼 다양한 민족이 치고받는 역사가 아니어서 그래요 게다가 대부분 산악지형이고
처음 알았어요 너무 재밌교 유익해요 👍
목소리가 톡톡 귀에 잘들어와요
너무 유익합니다!
이게 제대로된 역사지 고맙습니다
오 막연했던 고구려 초기 역사가 이렇게 정리되네요 유익한 영상 잘봤습니다!
유익한 영상 시청 이었습니다.
주몽이 고구려시조라고 하는 것은 고씨왕실에서 지어낸 말입니다. 고구려의 역사 역시 주몽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고 고씨왕실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주몽이 고구려현에서 나라를 세워서 나라 이름이 고구려가 되었죠
@@Hyuchan1002틀렸음 삼국사기 기록에는 고구려옆에 고구려현을 마주보고 있다했음 그렇다면 고구려현은 조선시대 부산의 왜관처럼 고구려와 교역지였을 가능성이큼 신라때는 중국에있던 신라방같은거고
활과 쇠뇌를 사용하고,
발사체가 특징인 마법사의 나라 고려!
고구려 초기 정치를 그린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다 국가들을 처음부터 중앙집권화 적인 전제군주정으로 그려서 불만이었어요. 주몽의 부여 고구려가 그러했듯이 말이에요. 금와왕이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사츌도 제가들에게 병력을 내놓으라고 강압을 하질 않나, 세워진지 얼마 안된 고구려가 태왕폐하라고 왕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듯 하질 않나... 역사엔 저 두 국가는 초기 군장국가에서 아주 쪼금 더 나아갔을 연맹체 였을 뿐인데 말이죠. 부여의 금와왕은 권력을 휘두르기는 커녕 전쟁에서 지거나 자연재해가 일어나기만 하면 당장 자신의 목숨이 급급해야 할 처지였겠고, 건국 초기 주몽세력도 계루부의 도움을 얻고 다른 네개 졸본세력의 도움을 받아야지 겨우 지배체제를 구축할까 말까 한 상황이었을텐데 말이죠. 우리나라 사극은 왕실을 중앙집권 전제군주정으로밖에 그릴 수 없는 능력인가 봅니다 ㅉㅉㅉ 아 그나마 '바람의 나라'는 유리왕 해명태자 등의 미약한 왕권과 주변 상가들의 세력이 그나마 동등해 보였었습니다
졸본이 맞는지 홀본이 맞는지는 모르는데 흔히 우리가 아는 주몽은 주몽이 아니라 추모가 맞음!!!
제가 국사에서 배운 고구려 건국 시기인 B.C 37년이 아닐수도 있다는 얘기군요......신라도 B.C 54년에 세워졌다고 국사책에 나와있고 백제도 B.C 18년에 세워졌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부여에서 고구려에서 백제 그다음이 신라.가야 순으로 나라가 세워졌다고 보는게 맞을듯 삼국중에 신라가 잴먼저 건국이 되었다는 것은 후에 정치적인 이유로 수정되었을듯 보이며 고조선.부여가 있던 만주에서 세력들이 한반도 쪽으로 남하하던 시절에 고구려.백제가 세워지고 또다른세력이 더밑으로 내려와 신라와 가야를 세운듯 지형으로 봐도 이게 맞고 사국의 모체는 부여나 고조선으로 봐야함. 금관. 복식. 상투. 모자에 새깃을 꽂고 말타는게 거의 비슷함
김부식의 삼국사기 기준으로 그렇죠
신라 기원전54년이 아니고 57년입니다.
예전에 주몽볼때. 수천명의 군사가 달려온다, 했는데. TV속에는 50명조금넘는 군사가 달려오더라구요. ㅎㅎ
제대로된 역사같네요
세상이 날오라하네~하루를 살아도~
드디어 제대로 된 영상이 올라오는구나.
부여 건국한 .. " 동명성왕 (해모스) " .. 자손 " 서자 .. 추모 ".. 고구려 건국 했겠죠 !! 추모의 정식 부인은 .. 백제를 건국 했을꺼라 생각하죠 ..!!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산 묘지엔 주몽이 나오던데 이부분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 묘지명에도 동명과 주몽을 다른사람으로 묘사했죠
그래서 고구려 마지막 태왕 보장이 우리 역사가 900여년 ..이라고 말했던 것
고구려도 천 년 가까이 되었군요.
신라 천 년, 고구려 천 년 이후 한 나라가 되어 고려시대, 조선시대 내내 두 세력이 조정에서 권력 싸움을 하였으니,
이제는 진정한 통합이 되어야 할 때이고, 서로 경쟁만 하는 이들은 사라져야 할 때.
자기 권력 욕심, 자기 이익을 놓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그것만이 통합의 유일한 길이 되겠는.
이 부분은KBS라디오 다큐멘토리 김연갑의 역사를 찾아서 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kbs 콩 어플이케이션 깔면 옛 방송들이 순서대로 아카이빙 돼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통사, 분류사를 사료를 토대로 아주 자세하게 다룹니다.
내용중에 오류가 있는거 같은데요..부여는 고조선 멸망 후 건국된 나라가 아닙니다...부여는 위만조선시기쯤부터 이미 건국된 나라였고 고조선과는 전혀 다른 문화권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고조선 멸망 후에는 한사군(낙랑,현도,진번,임둔)이 설치되었고,
옥저,동예가 건국되었습니다.그렇다면 고리국 또한 실체가 불분명 하기는 하는 실제 했다 하더라도 고조선 멸망 후 생긴 것이 아니라 위만조선보다도 먼저 단군조선때 이미 존재했던 것이 됩니다.
결국 부여영역 내 고리국의 일부지역에서 주몽과 소서노 일족의 결합으로 계루부를 이루었고 후에 고구려로 되었단 말인가요?
말대로 라면 추모로 불러야 맞을듯 합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도 추모라고 나옵니다
고구려 역사가 이렇게 되여 있네요 주몽이 초반부터 연노부를 정복 해버리고 관원 임명제를 하였더라면 삼국 통일을 이뤘을지도
오호.. .. 새로안 사실들이네오
2:20 소서노와 주몽이 세운 것은 고구려가 아니고 계루부
3:24 당시 한나라 혹은 한사군 관할지역 보다 부여 세력이 더 선진적이었나요?
고구려 -> 고구리
고려-> 고리
九夷 = 九黎 = 槁離 = 高離 = 藁離 = 句麗 = 高句麗 = 高麗
그냥 부족 연맹체에서 초기 국가로 가는 과정이라고 배웠던거 같네요..그러니까 고구려라는 부족 연맹체가 있었는데, 주몽의 세력이 이주 해오고 그를 중심으로 왕국으로 전환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네요
송일국이지...
동명성왕이 승하 후 안장되었다는 용산과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의 배경이 된 유리왕이 7일동안 사냥을 갔다는 기산이라는 지명이 중국 고지도상에 지금의 북경 서쪽에 있는걸 볼 때 고구려 초기 강역이 북경일대아 아닐까 합니다
태조왕이 공격한 태원 상곡 북평 어양도 이 지역에 있구요
물론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이 삼국사시 초기 기록을 부정하지만요
환빠
@@adherentdogma8412 인간아 생각 좀 하고 공부 좀 하고 살아라
환빠는
내나라역시서를
부정하는 중빠
일빠들아
그래서 동명성왕 VS 추모성왕 같은사람인지 다른사람인지 창업군주는 누구입니까
다른걸떠나서 그럴일거의드물겠지만 저시절에 소서노미모가 만일 한혜진급이면 인기폭발했을까? 시대적추구하는 여성상이 다를듯해서 모르겠지만
고구려세윤 동명왕 백제 온조왕 알애서나온 혁거세
결국 답은 사람이네요 다 모아서 새로운 뜻을 따르라!!! ㅋㅋ
고구려 건국자는 동명이다 동명은 한무제를 격퇴한 고두막한이며 연타발은 북부여 고무서 황제이며 광개토왕비문에 고구려 역사가 900년 삼국사기에는 720년. 한자도 우리글자인데.
이정도면 타발이형과 소서노가 최고아니냐 한나라도 아니고 두나라를 세운꼴인데 고구려 백제
당시에 건국한다는게 뭐 거창한게 아니고 자기 세력들 가지고 어디 깽판쳐서 이제부터 내가 여기 다스린다 하는 수준임..
주몽.추모.동명은 금성(샛별) 을 의미 하고 40살에 중국 왕망 부하에게 죽어 시체없이 유품으로 장례를 치륐다고 해요
추모면 왕망이 참수한 고구려 왕이 확실
주몽의 계루부집단이 기존의 여러 구려집단을 접수해서 통합화한게 팩트
주몽이 아니라 추모가 맞고, 졸본이 아니라 홀본이죠.
졸본도 맞고 홀본도 맞고 주몽도 맞고 추모도 찾죠!
@@masterpolarbear4264 중국에서 비하의 목적으로 주몽/졸본이라고 칭한겁니다
@@masterpolarbear4264 중국식 한자 표기가 졸본입니다. 본래는 홀본이 맞습니다
드라마가 다버려지 고증없이 드라마쓰니 ㅋㅋㅋ
그래서 역사학자?
해주몽.
해부루가 주몽의 아버지. 해씨~
해추모
추모도 이름이 아님 당시 활 잘쏘는 이를 가리키는 단어라...
1
고구리 왕조 900년 썰의 증거입니다.
주몽은 국가의 왕 보단 대족장 같은거 였음, 고구려를 중앙집권체제의 진짜 국가 같이 만든 사람은 태조왕임
역사를 이렇게 가르쳐야죠
영웅 하나가 갑툭튀 소설로 가르치니 역사를 오르고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겁니다
초기 주도권 확보한 게 태조왕이고, 그 뒤로 중앙집권을 완성한 게 광개토왕-장수왕 대이죠.
그런데 태조왕은 그 실존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9백년 이군
주몽이 아니라 '추모'라 불러야 하죠. 추모는 '해모수'의 아들이라 '해'씨입니다. '고'씨가 아닙니다.
그렇긴 한데 어쨋든 사서에는 고구려 세우면서 고씨로 했다고 하니..
중국사 한나라 이후 안하시나요?ㅜ
소서노임
철의 여인
***노… 이게 천년 뒤에 원나라에서도 나옵니다.
물론 한자가 길로자로 바뀌지만 발음이 같죠.
몽골으 부족이나 지역을 “길”(로)로 구분했으니까요.
예전에 주몽 드라마 진짜 열심히 봤는데 나중되면서 갈수록 유치해지기 시작하더군.... 배우분들이 고생한건 사실이지만 대본을 쓴 분들에게 말하고 싶더라 제대로 쫌 고증을 받고 작품을 쳐 만들어라고 ㅡㅡㅋ
판타지 사극인데?ㅋ
제대로된 기록이 있어야 고증을해서 만들지?
주몽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지껄여봐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라서 고구려가 통일됬었으면 한국은 중국처럼 다민족국가가 됬을거임
고구려를 세운사람은 주몽, 추모도 아니고 송일국임
고구려면 북한이 잖아 양궁 잘할려면 북한이 최고여야지 백제도 활 잘 쐈냐?
07:05 노?? 님 신고!!
신화랑 역사랑 구별은 하시나?
지도를 거꾸러 보면 마한에서부터 위로 나라가 커졌을텐데.... 역사의 시작은 실제로 다를듯 추측은 그럴사 하나...
뭔 시작부터 웅산이야..;
깨구리 권투 대왕-- 신화의 금와, 인형극에서 손목밑의 줄 어찌보면 권투하는것 같음, 대왕님 대왕님 대사 많이 나옴.
국민학교 다닐때 그거도 저학년때 인형극 보고 한친구가 저말을 해서 다같이 웃었음.
영상 좌상단에 '출처 나무위키'에서 당황하고 갑니다. 나무위키가 무슨 공신력이 있어서 마치 이 내용들이 팩트인 것처럼 영상을 제작하셨는지 모르겠네요. 불행 중 다행히도 실제 동명왕 설화가 기록된 역사서들이 있고, KBS 역사스페셜에서도 다룬 내용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는 보입니다.
앞으로 영상을 제작하실 때는 명확한 사료를 근거로 제작해주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이제 우리나라를 단일민족이라는 개같은소리는 하지말자
전설전인 양궁 국대선수들 많은데
왜 하필이면 논란이 많은 선수 사진을 썼나요??
3관왕 한 선수는 유일하자나유. 이번 올림픽때 유일 타이틀은 따이긴 했지만
바본가 어떠한 나라도 원래 부족이나 나라가 당연히 있을거고 고구려 왕의 계보가 주몽부터 시작하니깐 주몽이 시조지 광개토대왕릉비에 시조라고 떡하니 적혀있는데 광개토대왕릉비를 무시하냐? 아니 후대 고구려왕이 주몽이 시조라는데 너가 뭔데 ㅋㅋ 중국 일본도 아니고 한국에서 광개토대왕릉비 무시하는건 첨보네
어느 하나의 기록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보면 안됨. 교차검증을 해야지 고구려에서 만들었으니 당연히 고구려의 위상이나 정통성을 높이 세우기 위해 날조나 과장이 들어갈 수도 있는거임. 고구려 건국 이전에 고구려 지역이 있던건 팩트
주몽이 실제로 있던 사람인가요?
고구려1대왕 동명성왕이요 조선으로치면 태조이성계
광개토태왕비에 새겨져 있는데 실존 인물 아니면 신 이었니?
@@jung-n5d동명과 추모는 다른 인물로 광개토왕릉비와 천남산 묘지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g2q추모가 동명성왕으로 불린 것도 맞음. 동명과 추모가 다른 인물인 것도 맞음. 그냥 고구려 후세들이 당시 선진국인 부여의 정통성을 가져가려고 한게 우릴 헷갈리게 만드는 이유
그럼! 고 주몽이 아니라 고추 몽 인거야?
한자는 중국어를 위해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라
아시아 공용의 문자입니다
엥?우리 역사는 환국>배달.겨레>고조선>삼한과 소국들>부여및 소국들>.고구려.신라.백제.가야>신라.발해>고려>조선 입니다.
역사를 왜곡하지 말길~~
환상이 아닌 작은 소견으로 주관적으로 소설 쓰지 말고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른이 되어 학교밖에서 역사를 배우면서...너무 놀란 것이 많답니다.
국사학의 시작이 사실 상 동경제국대 출신들이 서울대사학과, 역사교육학과 기틀을 잡으며...식민사관이 국가교육의 기본이 되니 통탄할 일입니다.
그리고 작금의 정치지도자들 조차 "일본은 조선왕실을 공겨한 적이 없이 조선 내부의 붕괴다. 역사공부 좀 하세요"라고 하니...
아직 친일식민 역사교육을 바로잡을 길이 멀기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런 영상이 덕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ㅋㅋㅋ 아직도 그렇게 알고 계시네요. 역사학계는 연구를 통해 계속 바뀌어가는데 교과서는 만드는데 10년 정도로 매우 오래걸리다보니 현재 역사학계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거죠. 그러다보니 교과서와 상관없이 교수님이 직접 쓰셔서 하시는 대학이 훨씬 현재의 역사학계의 입장과 같다고 합니다. 물론 고려대를 제외하고는요.
@@Ycmjg37143
그런 것도 있는 것 동의합니다.
다만 어린학생들의 교과서가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사학계는 경성제국대 출신들의 2세대, 3세대 분들사단이 아직 건제하니 답답한듯 합니다.
그래도 우리국민들이 깨어서 목소리를 내니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자식이 아버지 실록편찬에 관여하지 못 했는 데...
따님이 아버지 사랑을 역사책에 넣다보니...세종대왕 9페이지, 이순신 5페이지, 유관순 등 열사들 3페이진데...자신의 아버지 11페이지인 교과서라니..
ㅜㅡㅜ
그나마 깨어있는 국민들이 많아 미래는 점차 밝아 지리라 생각합니다.
지도가 엉망이구나...
주몽 사기꾼 이었네
당신 공부좀 더 하시고 애기 하시요 당신은 너무 주관적이내
어설프네요
예전엔다봉건제였어요
이걸고구려만이라고하는건?
우리나라 역사에서 봉건제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근대화 이전까지 오직 봉건제만 경험해본 일본이 그렇게 배우죠.
중국도 주나라 때만 봉건제를 하고 진나라 이후 중앙집권화를 하죠.
그보다..식민학자에게 얼마 받고 만들엇나요? 마치 2천년전에 고구려 초기에 다녀 온것 처럼 너무 자세히 말하는군..그리고...지도도 저런걸 갇다 올리나? 그냥..고구려는 우리 민족하고 별개라는 연구를 해라..
사기치지말고 고구려사초사략이나 봐라....반도가 아니라 대륙임.
작은 나라가 큰 나라가 되는건데 고구려 이전에도 상당한 규모의 나라였는데 아더왕처럼 짠 하고 나타났겠냐.
그러니 일본에서 비웃지.
그건 일본이 제일 심한데 ㅋㅋㅋㅋㅋㅋㅋ 처음부터 지들이 가야 지배했다고 주장하는게 더 비웃음 당할거 아니겠니? 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은 백제가 만든 나라구...
역사 돋보기 너는 좌파냐?
그러는 너는 쪽파냐?
가세연,강용석,뻑가 채널 구독하는 수준보소 ㅋㅋㅋ ㅇㅁ 읎네
나우버드 대신 텐버드라고 닉수정 요청
음.... 대한민국은 조선반도의 남쪽 절반을 점유하고 있으니 우리의 역사는 임라일본부로부터 시작된것이라 생각합니다.
음... 느금마는 너같은 종자를 낳고도 미역국을 드셨으니 느그 외갓집은 방사능 피폭 치료를 위해 미역이나 주워먹던 히로시마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우...
할많하않
어휴... 나경원 아들내미야
별사람이 다 있네요...
고대한국인이 일본에건너가서 일본을 건국한것이죠! 고대한국식민지 일본 왜! 가야 백제인 신라인 고구려인이 일본에건너가서 일본건국! 그러나 수천년간 아버지나라 대한민국에 수천년간 약탈 도적 성폭행 고문 학살한점은 안타깝습니다 ~~
여러부족을 하나로 통일한게 추모가 맞고 그럼 추모가 고구려 세운게 맞다.. 뿔뿔이 흝어진 부족중 연노부가 고구려 명칭 첨 사용햇다고 걔네가 고구려를 세워?? 추모 아니엇음 역사속에 기록되지도 않을 변방에 원시부족따위 밖에 안되엇고 몇십년후 고구려는 흔적도 없어졋을거다
이게 맞쥬
머리가 뒤숭숭
한 고구려건국
설이네...😅😅
그무렵 중원땅
에는 진나라가
망하고~~
유방이 한나라
를세운 한참후
라요...
그걸 알아야 역
사 이바구를 할
수 있으무니다
....😅😅😅
발성이랑 발음 듣기 개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