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천자체는 나쁜 선택은 아니었으나 첫째 전란이전 광해가 세자로 임명되어서 후사를 이을수 있다는점 둘빼 선조가 의주에서 요동파천을 주장했다는 점을 봤을때 선조의 파천은 전략보다는 본인의 일신의 안위를 위한 파천이라고 해석됩니다. 군주였다면 세자인 광해군을 파천시키고 선조는 남아 전쟁을 독려하는것이 가장 좋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영상-v3z 매우 이상적이고 후대에도 존경을 살만한 군주상임에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현실에선 대신들도 그리하게 놔뒀을것 같지는 않네요. 선조가 욕을 먹은건 요동으로까지 도망가려한 점, 수군의 현실을 전혀 모른채 보고만 받고 무리한 판단을 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은 너무 평화체제 였기에 갑작스러운 전란은 선조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겁니다. 조정도 전혀 대비가 안되서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 결국 선조도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었을거라고 봅니다
@@이영상-v3z 네. 선조는 전시상황에 대한 공부나 대비가 전무한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대신들의 증언, 나가기만 하면 깨지는 관군, 왜군의 빠른 진군 속도 등 갑작스런 전란에 멘붕이 와버린것 같네요. 사실 그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자호란에서 또 당한 인조는 진짜 무능하다고 비판할만 하네요. 그당시 국제정세나 흐름을 파악하는건 광해군이 뛰어났다는 평가가 있으나 그당시 대신들은 그런 광해를 폐위시키고 인조반정을 일으켰으니 그당시 왕들은 신하들의 눈치도 봐야하는 어려운 위치가 아니였을까 추측합니다. 그 당시 시대상이나 역사의 흐름으로 보았을때 선조 또한 피해갈수 없는 전란의 소용돌이의 피해자라고 봐야겠지요
"전쟁시 왕이 잡히면 모든게 끝나는 것임을 정녕 그대들은 모르는가"...선조의 이 대사가 맞는말이라니까 짐은 곧 국가...전통 왕조시대에선 군주가 나라 국가인데 임금이 생포되거나 변을 당하면 어쩌라고 선조가 파천한걸 무능이니 어쩌니 헛소리들인지...역사는 당시 사고,시각으로 봐야지 결국 전열을 재정비 왜적 막아냈잖아
선조는 요동으로 갈 생각말고 강화도, 남한산성, 북한산성, 평양성 중에서 파천 을 물색하였으면 좋았다. 고려 때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항전하였고 삼별초는 진도, 제주도로 남하하여서 방어하였다. 고구려성이었던 안시성, 요동성, 백암성, 신성, 고려성, 졸본성, 국내성은 조선 때도 건물이 남아있었나?
결과적으로 파천은 좋은 결과를 찾아오게 합니다. 다만, 선조의 파천이 욕을 먹는 이유는 이들이 일본의 전투심리를 이해하고 파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투방식은 빠르게 성을 점령하여 그 성의 군주를 사로잡는 것으로 승패를 결정지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들 또한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하여 왕을 사로잡으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한양이 텅텅 비어있었지요. 그들에게 있어 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양만 점령하여 왕을 사로잡으면 전쟁이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에게 많은 고민에 빠지게 했던 것이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러한 왜 의 심리를 이해하고 한 파천이 아니라 자신들의 살 궁리를 도모하기 위해 백성을 버리고 합리화하며 도망친 것이기에 오늘날까지 욕을 먹는 것입니다.
정사 부사가 반반의 의견이었으니 본토 대비는 안하더라도 대마도에 첩자 정돈 심어둘 수 있지 않았을까 쳐들어 온다면 무조건 대마도 거칠걸 알고 있었을 탠데 선조는 런 친 걸로 욕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자초해서 기습을 당해 런 한거니 전쟁 그 자체의 책임에 욕을 먹는 게 맞음
드라마여서 파천에 관해서 부정적으로 나오는것. 부족한 군사를 농민으로 대처한다? 훈련도 안된농민들을? 군사 훈련하는데 최소 1달정도는 걸림. 게다가 궁병 훈련은 2달이상. 그냥 현실감각1도없이 말한것. 게다가 한반도에서 적의 강력한 군대가 쳐들어왔을때에 파천한 사례는 흔해빠짐. 전쟁관련된 글을 쓰는 작가진들이 전쟁에 관한 기본지식 1도 없이 전쟁관련된 작품들의 대본을 쓰니 이딴 허황된 헛소리나 말도안되는 전투씬이 나오는것.
ㅇㅈ. 아무리 농민들을 징발해 군대를 편성한다해도 상대가 누구든 3일갖곤 턱도 없음. 아무리 현대의 한국군이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해도 최소한 기본기는 익힐만한 신병훈련 수료까지 기본 5주는 잡아야하는데 냉병기는 그렇다쳐도 숙달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한 활쏘기같은 것까지 감안하면 3일안에 전투를 치를만한 '군사'를 양성하는 건 때려죽여도 불가하죠.
@@김승규-j5g 조선왕조 실록보면 그 군역이라는게 초 가라라는것 나옵니다. 오늘날 예비군 따위랑 비교도 안되는 가라 훈련이라서 전혀 국가 전력에 도움이 안됩니다. 게다가 조선시대 군사훈련이라는게 태공망식 병농일체 훈련 주장하는거라 제대로된 병사로 훈련시키는것도 아니었죠.
선조의 제일 잘하고 현명한 선택 도망이라도 잘치는것도 전략임 이걸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대 선조가 말한것처럼 전쟁에서 왕이 잡히면 모든게 끝나는게 맞지요 이때는 세자도 없었고 왕실들이 도망가기 직전이니 이와 비슷한일이 한국전쟁에도 발생하는대 이승만이 다리부수고 도망갔다고 두고두고 까이는대 이승만이 도망가지 못하고 잡혔거나 다리를 부수지 않았으면 북한군이 서울에서 3일을 지체안하고 파죽지새로 부산까지 밀고와서 적화통일을 했을 시간임 북한군이나 고니시나 서울이나 평양에서 지체를 하는 바람에 승기를 놓치죠
선조를 보면 이승만이 보이지만 이승만이 서울을 버리고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갔다고 하는대 맹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이 선택으로 북한군은 서울에서 3일동안 발이 묶였고 이승만이 도망갈 시간을 벌었음 이승만의 파천을 비난하는 자들은 북한측이 통일 했어야 한다는 단체와 뜻을 같이한다는거
국내 파천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잡혀죽을지언정 요동파천은 입 밖으로 절대 꺼낼 말은 아니지...
낚시의 신 동감입니다. 진짜 내부를 하는건 옳은 판단은 아님.
튀다보니 너무 나가버렷죠
딱 의주까지만하고 기회를보다가 진짜 정안되면 튀던지하면되는데... 결국 두고두고욕먹음
판단이랄것도 없이 그냥 본능이 이끄는대로 한것 같은데 ㅋㅋ
결과적으론 전쟁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의도나 과정 자체는 군주의 자격자체가 없는거
아이고 됐다 그거나 그거나
@@hjkim5822 전혀다름
진짜 ㅋㅋㅋㅋㅋ 리얼 선조 1000% 재현 ㅋㅋㅋ
파천은 성공한 탈주인데
요동으로 간단건 ㄹㅇ 선넘은 것...
요동파천은 두고두고 욕먹어야함
현명하고 슬기로우시며 지혜로운분들이 한사람, 한분이라도 더 계셔 있으면 축복이거늘 가슴아픈지고..
파천은 현명했다고 본다. 실제로 버텼으면 선조 잡히고 바로 끝날 전쟁이었다. 파천을 했기에 시간을 벌수 있었다. 결과론적이지만 파천이 전세를 뒤집는데 공을 세웠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파천자체는 나쁜 선택은 아니었으나 첫째 전란이전 광해가 세자로 임명되어서 후사를 이을수 있다는점 둘빼 선조가 의주에서 요동파천을 주장했다는 점을 봤을때 선조의 파천은 전략보다는 본인의 일신의 안위를 위한 파천이라고 해석됩니다.
군주였다면 세자인 광해군을 파천시키고 선조는 남아 전쟁을 독려하는것이 가장 좋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영상-v3z 매우 이상적이고 후대에도 존경을 살만한 군주상임에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현실에선 대신들도 그리하게 놔뒀을것 같지는 않네요. 선조가 욕을 먹은건 요동으로까지 도망가려한 점, 수군의 현실을 전혀 모른채 보고만 받고 무리한 판단을 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은 너무 평화체제 였기에 갑작스러운 전란은 선조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겁니다. 조정도 전혀 대비가 안되서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 결국 선조도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었을거라고 봅니다
@@오제대로 저도 선조가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무능한왕 까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정치력이야 매우 뛰어났고 크게 결점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님 말씀대로 격변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감당하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영상-v3z 네. 선조는 전시상황에 대한 공부나 대비가 전무한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대신들의 증언, 나가기만 하면 깨지는 관군, 왜군의 빠른 진군 속도 등 갑작스런 전란에 멘붕이 와버린것 같네요. 사실 그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자호란에서 또 당한 인조는 진짜 무능하다고 비판할만 하네요. 그당시 국제정세나 흐름을 파악하는건 광해군이 뛰어났다는 평가가 있으나 그당시 대신들은 그런 광해를 폐위시키고 인조반정을 일으켰으니 그당시 왕들은 신하들의 눈치도 봐야하는 어려운 위치가 아니였을까 추측합니다. 그 당시 시대상이나 역사의 흐름으로 보았을때 선조 또한 피해갈수 없는 전란의 소용돌이의 피해자라고 봐야겠지요
병자호란생각하면 평양까지는 맞는데 평양서 절대안갈꺼라하구 의주가고.. 의주서 요동가겠다한건 진짜 해서도 시도조차해서도 안될일이었단게 아쉬움
마지막 선조 말에 틀린게 하나도 없자나..
뚠뚠쓰 맞아요 맞아.
문제는 나라버리고 요동으로 갈려고했다는거임 파천자체는 좋은 판단이였으나 의주까지 가서 요동까지 튈려고했음 이건 나라버리는거임
파천까지는 오케이임 근데 허구한날 요동간다고 징징거리고 선위파동 엄청해서 광해에게 정신적으로 엄청 스트레스 줌
근데 뭐 왕이잡히면 끝나는건맞는데 선조는 요동까지갈라한게문제고 그리고 사실상백성들 안심은시켜놓고가야됐는데 그걸안한게문제죠
선위쇼를해서 아군의 사기를 더더욱 저하 시킴
충주올때까지 한양에 있었던거면 오래있었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파천은 잘한 선택이긴 하지.
파천을 했는데도 중간에 붙잡히거나 끝내 패해서 망했다면 비난받을 일이겠으나 파천을 해서 나라는 지켰으니까.
고작 5천도 안되는 병력으로 도성을 사수한다는 자체가 무리임...
근데 의외로 신의한수였어..ㅋㅋ
경복궁도 일반백성들 보다는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노비들이 불태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노비문서가 보관되어있는 형조와 장예원이 불에탄 이유를 보면!!!
선조 짼것도 잘하긴 했음 그래서 일본애들 얼탓쓰니깐 ㅋㅋ
저것들 중에 전쟁 끝나고
반성한사람은 류성룡 뿐!!
그러니 병자호란 터지고 그런거지!!
유성룡도 일본이 오지않는다는 뜻에 찬성한것도 사실입니다.
자신의 저서인 징비록에는 일본이 온다는 뜻에 찬성했다고 서술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죠
@@GoodBoy-wd9iy 왜란전에는 전란은 없다고 해놓고 나중에 책쓸때는 말바꾸었을지도 모르죠. 후대에 까이기 싫어서..
@@GoodBoy-wd9iy징비록은 전란후에 쓴거임
나중에 보면 파천이 진짜 신의 한수였을지도...
선조 임금의 파천으로 인해서,
왕만 사로잡으면 전쟁 끝난다는 히데요시의 계산이 완전 어긋나버리고,
조일전쟁이 꼬여버림 ㅋㅋㅋㅋㅋ
"전쟁시 왕이 잡히면 모든게 끝나는 것임을 정녕 그대들은 모르는가"...선조의 이 대사가 맞는말이라니까 짐은 곧 국가...전통 왕조시대에선 군주가 나라 국가인데 임금이 생포되거나 변을 당하면 어쩌라고 선조가 파천한걸 무능이니 어쩌니 헛소리들인지...역사는 당시 사고,시각으로 봐야지 결국 전열을 재정비 왜적 막아냈잖아
4:11 멘탈 붕괴 ㅋㅋㅋㅋㅋ
전쟁에서 피신은 나쁘지 않은 선택임 그후의 일을 잘해야 하는것이 현명함
아니 쓰레기 조정과 왕실이 백성들에게 해준게 없는데 뭘 자꾸 백성들의 희생만 강요일까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징비록은 살아남은 류성룡의 변명이자 교훈. 류성룡은 이순신도 보호안해주고 . .
그 때 까지 진급할 수 있게 도와주고 쉴드쳐준게 류성룡임; 백의종군땐 한마디라도 더 하면 다 죽여버리겠다는 선조마인드라 류성룡도 가만히 있던거임
사실 돌이켜보면 소름돋게 냉정한 판단이였음. 적군의 대전략을 정면으로 카운터 쳐버림. 역대급 진군속도에는 역대급 판단력으로 받아쳐버림 ㅋㅋㅋ
역대 임금중 파천한 왕3명
선조는 요동으로 갈 생각말고 강화도, 남한산성, 북한산성, 평양성 중에서 파천 을 물색하였으면 좋았다. 고려 때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항전하였고 삼별초는 진도, 제주도로 남하하여서 방어하였다. 고구려성이었던 안시성, 요동성, 백암성, 신성, 고려성, 졸본성, 국내성은 조선 때도 건물이 남아있었나?
선조 논리력 최고점이던 시절, 역시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빠지면 비상해진다더니 과연 사실이다..
4:25 명에 주청사? 무슨말이에요?
결과적으로 파천은 좋은 결과를 찾아오게 합니다. 다만, 선조의 파천이 욕을 먹는 이유는 이들이 일본의 전투심리를 이해하고 파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투방식은 빠르게 성을 점령하여 그 성의 군주를 사로잡는 것으로 승패를 결정지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들 또한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하여 왕을 사로잡으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한양이 텅텅 비어있었지요. 그들에게 있어 성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양만 점령하여 왕을 사로잡으면 전쟁이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에게 많은 고민에 빠지게 했던 것이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러한 왜 의 심리를 이해하고 한 파천이 아니라 자신들의 살 궁리를 도모하기 위해 백성을 버리고 합리화하며 도망친 것이기에 오늘날까지 욕을 먹는 것입니다.
이때 빤쓰런 안했으면...한양 함락되고 사로잡혔겠네요 ....
류성룡의 에 도성의 성가퀴조차 전부 지킬 수 없었다고 나오던데..
율곡의 십만양병설이
받아들여졌다면.
임진왜란때 어땠을까?
충분히 이겼을듯요
사실 조선도 임진왜란때 중앙정부 집권 행정력의 힘으로 17만 대군이 있었음
그중 거의 대부분이 훈련이 안되어서 그렇지
그리고 이이 십만양병설도 나중에 지어진 거라는 주장이 크고
임진왜란안터져도 쿠데타로 망했을듯
저때는 십만이 아니라 뭔짓을 해도 일본 못 이겼음 전국시대 끝나고 살아남은 괴수들만 모인 시대였는데
@@nakanomiku9281이겻자나요 조선수군
탤런트 실명좀 제목에 언급하지 마라. 깬다 깨
선조가 한양에 남고 광해를 세자로 세워 의주로 가게 했어야했다
조선은 1만의 부대도 막기 힘든 군제 시스템임.. 근데 일본은 무려 20만을 이끌고 왔음..
어차피 평양까지 점령한 군대는 고니시가 이끄는 18000명 정도였음.
런친거는 잘함
선조가 짼거는 잘한거 아닌가 어짜피 잡히면 좋을게 뭐있다고 ㅋㅋ 실제로 일본군이 얼타기도했고 백성입장서는 왕이 수도버리니 어이가없겠지만 수도가 뚫리는게 명백한 상황서 짼거는 잘했다본다 뭐 속내는 죽기싫어서 튄거겠지만
여기서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빠른시일안에 한양까지 올라올수잇엇던것의 대한 팩트는 영의정이 말한 02:10 초 부분에서 말을 해주는군 ㅋ 물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신 병사나 장군들에겐 미안하나 ...
정사 부사가 반반의 의견이었으니 본토 대비는 안하더라도 대마도에 첩자 정돈 심어둘 수 있지 않았을까
쳐들어 온다면 무조건 대마도 거칠걸 알고 있었을 탠데
선조는 런 친 걸로 욕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자초해서 기습을 당해 런 한거니 전쟁 그 자체의 책임에 욕을 먹는 게 맞음
전란 당시 윤두수, 정철보단 이산해가 조정영수 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류성룡도 당리와 명분을 더 많이 따르던 인물이었던것 같은데...
저시대에 아닌사람 북인제외 거의 없었을듯 ㅋㅋㅋ
드라마여서 파천에 관해서 부정적으로 나오는것. 부족한 군사를 농민으로 대처한다? 훈련도 안된농민들을? 군사 훈련하는데 최소 1달정도는 걸림. 게다가 궁병 훈련은 2달이상. 그냥 현실감각1도없이 말한것. 게다가 한반도에서 적의 강력한 군대가 쳐들어왔을때에 파천한 사례는 흔해빠짐. 전쟁관련된 글을 쓰는 작가진들이 전쟁에 관한 기본지식 1도 없이 전쟁관련된 작품들의 대본을 쓰니 이딴 허황된 헛소리나 말도안되는 전투씬이 나오는것.
ㅇㅈ. 아무리 농민들을 징발해 군대를 편성한다해도 상대가 누구든 3일갖곤 턱도 없음.
아무리 현대의 한국군이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해도 최소한 기본기는 익힐만한 신병훈련 수료까지 기본 5주는 잡아야하는데
냉병기는 그렇다쳐도 숙달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한 활쏘기같은 것까지 감안하면 3일안에 전투를 치를만한 '군사'를 양성하는 건
때려죽여도 불가하죠.
60살까지 군역 지는 나라에서 농민을 군사로 활용하는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나요?
@@김승규-j5g 조선왕조 실록보면 그 군역이라는게 초 가라라는것 나옵니다. 오늘날 예비군 따위랑 비교도 안되는 가라 훈련이라서 전혀 국가 전력에 도움이 안됩니다. 게다가 조선시대 군사훈련이라는게 태공망식 병농일체 훈련 주장하는거라 제대로된 병사로 훈련시키는것도 아니었죠.
@@김승규-j5g 늦은 나이까지
군사훈련을 받는게 아니고
면포를 주로 내요
업으면 몸으로 떼우는거고
요식적 군역
선조의 제일 잘하고 현명한 선택 도망이라도 잘치는것도 전략임
이걸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대 선조가 말한것처럼 전쟁에서 왕이 잡히면 모든게 끝나는게 맞지요 이때는 세자도 없었고
왕실들이 도망가기 직전이니 이와 비슷한일이 한국전쟁에도 발생하는대 이승만이 다리부수고 도망갔다고 두고두고 까이는대
이승만이 도망가지 못하고 잡혔거나 다리를 부수지 않았으면 북한군이 서울에서 3일을 지체안하고 파죽지새로 부산까지
밀고와서 적화통일을 했을 시간임 북한군이나 고니시나 서울이나 평양에서 지체를 하는 바람에 승기를 놓치죠
선조의 파천이 왜라 승리의 핵심
근데 피난은어쩔수없다하지만 준비라도 하고가든가...백성들이 바보도아니고 왕이 싸운다는데 백성들은모이겟지
진짜 유성룡 없었으면 어쩔번했냐. 이순신 권율 수많은 의병장이 나라를 지킨것도 사실이지만 조정에 저런 인물이 없었다면...
@O.O O.O 서해가 아니고 서애예요. 그리고 것이면이 아니라 것이며예요.
유성룡이 없었으면 식민지시대가 일찍왔을테고 지금까지 한반도는 일본 땅이겠죠
레알 이순신 꽂아넣은거 하나만봐도 1등 선무공신임
파천 하는건 어쩔 수 없지만 요동으로 망명하려고 한건 좀 그런듯..
도성을 방비하려면 최소 5만은있어야됨
류성룡 선생이 차라리 선조였으면 어땠을까?
이상에 빠져 현실인식능력부족으로 국가 망했을 듯.
근데 결국은 파천의 선택이 옳았다 그건 인정
여기 파트는 진짜 선조가 하는 말이 옳았다 전쟁나자마자 다 도망가고 몇몇 충신들만 싸우다 죽었지
파천은 결과적으로잘한일😂
만약 선조가 광해군한테 양위한 다음 개성으로 올려보내고 자기는 한양에서 결사항전하다 전사했으면 어떻게됐을까
명나라한테 주권따이고 레알 휘둘렸을거같은데 .... 광해가 아무리 잘해도 국왕따인상태에선 정국혼란이 ㅈ 됬을듯 .
그래봐야 광해는 폐위 고종 조선멸망~ 선조는 역대급왕으로 남음 끝
선조 : 육지는 신립! 바다는 이순신! ㅋㅋㅋㅋㅋ
요동파천이 욕먹는거임 지 아들은 뒤지던 말건 화살받이로 내세우고 지는 명나라로 쨀라고 햇지 ㅋ
1척
삼봉 정도전이 옳았고, 이방원이 틀렸다.
런한것 자체는 잘한건데 요동으로 런할려고 한게 문제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시대에는 국왕이 잡히면 패배라고 인식되서 일본군이 선조를 생포해 항복시키려 빠른속도로 한양으로 진격했지.. 파천안하고 사로잡혔으면 왕조가 문닫고 히데요시의 지방영주로 전락했을것
그전에 다른 왕들도 파천을 많이했어서 단순히 파천을 가지고 비난할것은 아니고.. 다들 입으로는 말려도, 파천이 어쩔수 없는건 알고 있었지.. ㅋ
문제는 선조의 파천이 끝까지 맞서 싸우려 파천하는게 아니고 자기 살려고 파천하는거였으니 욕 얻어먹는거 ㅋ
파천 안하고 선조가 일본한테 잡혔다면 일본은 명나라 협박하기 더더욱 쉬웠을거임. 게다가 명나라 황제가 조선을 소중히 여기는 만력제였으니
이씨 후손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사과해야지
세금9천받아가며 호의호식
파천이 맞긴했음 신립이 너무 쳐발렸음 8000으로 200명도 못죽이고 전멸ㅋㅋㅋㅋㅋ
말이 좋아 파천이지.. 전쟁 통에 수도 버리고 다른 데로 왕이 도망가서 좋은 선례가 있었던가?
고려현종, 공민왕 파천은 신의 한수였음..
파천안해서 나라 자체를 조진 사례가 더 많음.
똥꼬집으로 남아있는게 더 트롤임
파천 안하고 왕이 잡혀서 망한 사례는 엄청많음. 침공시 수도까지 내달리는 전략을 괜히 쓰는게 아님. 발해도 거란의 수도런 전략에 반격못하고 망한거임;
멀리갈것도없이 선조 손자가 오랑캐들한테 잡혀서 후세에 두고두고 욕먹고잇죠
솔직히임진왜란일어나면 세종도 요동으로 도망감 선조가무능한게아니라 조선인나는 나라의 시스템자체가 엉망이어서 진거임
2:53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보면서 느낀건데
선조야.. ㅈㄹ하지마 ㅈㄴ 쌉가능이야...
당시는 왕이 국가의 중심인 왕조국가였다.
파천안했음 대일본제국의 일원이되서 전세계에 아시아인의 저력을 보여주는데 기여했을텐데 아쉽
선조를 보면 이승만이 보이지만 이승만이 서울을 버리고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갔다고 하는대 맹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이 선택으로 북한군은 서울에서 3일동안 발이 묶였고
이승만이 도망갈 시간을 벌었음 이승만의 파천을 비난하는 자들은 북한측이 통일 했어야 한다는 단체와 뜻을 같이한다는거
저당시 일본은 왕만잡으면 모든게 끝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선조를 잡으려했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왕이 도망가버리는바람에 전쟁이 지연됩니다. 덕분에 이순신장군께서 정비할 시간을 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