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혹했던 전쟁 - 스탈린그라드 전투 2차대전의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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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7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49

  • @월드오브워십블리츠
    @월드오브워십블리츠 2 месяца назад +2

    볼 때마다 너무 재밌습니다 라이브도 기대할게요

  • @지은이-l2d
    @지은이-l2d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영상보고 전쟁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항상 재미있게 보고이써요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지은이-l2d 저도 항상 감사합니다 :) 좋은밤되세요

  • @김현수-s6k
    @김현수-s6k 2 месяца назад +14

    시가전은 지옥이다....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2

      @@김현수-s6k 건물 층 올라가는것도 힘들었다고 하네요.. 1~2층은 독일군 점령 3~4층은 소련군 방어

    • @김현수-s6k
      @김현수-s6k 2 месяца назад +5

      @@미직딩 오죽하면 스탈린그라드의 한 거리= 프랑스 전체 전투라는 말이 있죠..

    • @user-sh5sb3kb9t
      @user-sh5sb3kb9t 2 месяца назад +2

      ​@@김현수-s6k프랑스보다 오래 버틴 아파트

  • @user-dv4pq7ed8w
    @user-dv4pq7ed8w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영상을 계속 만드셉시오 너무나 꿀잼적

  • @이름-e1h
    @이름-e1h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사실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에 집착했던 이유는 스탈린그라드가 불가강을 건너서 소련군의 주요 반격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모스크바로 향하는 보급품 운송 주요 루트였다는 점 때문에 집착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 @primehunter627
    @primehunter627 2 месяца назад +6

    원래 파울루스는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고 도시를 구원하러 오는 소련의 지원군을 격파해 소련군이 백기를 들게 만든다는 작전을 제시했지만 히틀러가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도시를 직접 점령하라면서 해당 작전안을 기각, 독일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뭐... 파울루스가 원래 제안했던 방식은 이후 주코프가 천왕성 작전으로 구현해버렸죠
    1942년부터 히틀러는 독일군을 파멸로 몰아넣을 판단만 내린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2

      @@primehunter627 유능한 참모랑 장군들이 진짜 많았는데, 콧수염의 고집때문에 크게 진거같습니다

    • @tassader3317
      @tassader3317 2 месяца назад +4

      프랑스 점령 성공 이후로 자기말이 무조던 옳다고 굳게 믿어버린거 같음 .. 그리고 무능한 괴링이 공중 보급으로 가능 하다고 떠들어 대니

  • @수오미의WG
    @수오미의WG 2 месяца назад +6

    앞으로는 불타는볼고그라드와
    수송선으로가득찬 볼가강
    뒤로는 권총들고 서있는 독전대와
    정치장교...
    그리고 저기 공장노동자들은
    직접만든 티삼사를 그대로타고가서
    싸웠다고..

  • @ahri34
    @ahri34 2 месяца назад +3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ahri34 바로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 @Alexander_2024-K
    @Alexander_2024-K 2 месяца назад +4

    TMI로 독일군이 초반에 올 때 방공부대가 독일군을 막았는데, 고등학생 또래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진정한 군필여고생...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와 민간인 여성 자원봉사자로 알고있었는데, 학생이엿다니 ㄷㄷ

  • @Anjgkwl5656
    @Anjgkwl5656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오늘도 왔습니다! 곧 명절이네요! 명절 잘보내시고 주말 잘보내세요!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Anjgkwl5656 감사합니다 :) 좋은밤되세요

  • @TV-ib2lk
    @TV-ib2lk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저때 독일군의 큰 패착이 루마니아군을 옆에 세우면서 까지 무리하게 진격한거 였죠
    조금 천천히 재정비하면서 진격했어도 좋았을텐데 전략이라곤 1도 모르는 콧수염 땜에...
    오늘도 좋은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1

      @@TV-ib2lk 바보 콧수염 ㅠ

    • @History-piano
      @History-piano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어쩔수없는 역사의 흐름이고..
      한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저런 전쟁에서는 수십만명의 죽음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경우가많죠.
      우리는 사상자 수를 그저 숫자로만 볼수있지만 희생된 사람들이
      우리만큼 가치있는 개개인이었다는것을 기억해야합니다

    • @虛虛-c2i
      @虛虛-c2i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근데 상병 따리인 콧수염이 노망나서 헛소리로 지휘하는 거 그냥 씹고 지휘관 맘대로 전술 짜서 승리한 사례는 없음?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1

      @@虛虛-c2i 음 한번 찾아보고 있으면 영상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 @user-xd6wo3sv8x
    @user-xd6wo3sv8x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스탈린그라드는 이란을 통해 서방의 랜드리스 물자가 들어오는 주요루트였음. 소련이 딸리는 공업력으로 공업단지를 대규모로 이전하는 와중에도 전쟁내내 무기를 찍어댈 수 있었고, 무기만 찍어내도 입을 옷과 먹을 음식이 있을 수 있었던게 서방의 랜드리스 덕분임. 반대로 서방도 소련이 없었더라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불가능했고, 설령 성공했더라도 도로 유럽에서 쫒겨났을것임. 히틀러가 바보라서 모스크바보다 우선시한게 아니고, 스탈린이 바보라서 자기이름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소련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게 아님. 소련이 스탈린그라드를 상실했다면, 핵때문에 연합군이 이기긴 했겠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는 오지 않았을거임

  • @눚곳넉홒
    @눚곳넉홒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서울 근처에 신도시들과 아파트들 한강과 수 많은 민가가 존재하는 이유임
    어찌저찌 경기랑 서울 북부를 뚫어도 한강에 알박고 다리 몇개 터뜨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강원도 산길을 피해 몇 없는 멀쩡한 도로로 가야하는데 어디로 올지 뻔함 걍 죽어도 너는 데려가 이상태임

  • @XIVLouis-qi7bv
    @XIVLouis-qi7bv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역시 믿고 봅니다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XIVLouis-qi7bv 항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kspistol
    @kspistol 2 месяца назад +1

    0:25 안녕? 내 이름은 흐루쇼프

  • @rrangwooo
    @rrangwooo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혹시 수오무살미 전투에 대해서 다뤄주실 수 있나요?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rrangwooo 네 낫질잣전 다음꺼로 하겠습니다

  • @김수진1
    @김수진1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영상 잘봤습니다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김수진1 감사합니다:) 좋은밤되세요

    • @수오미의WG
      @수오미의WG 2 месяца назад +1

      yellow puppy

  • @뮤-13
    @뮤-13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
    유럽을누비던 3호 가패하다니!
    명절 잘보내세용~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뮤-13 감사합니다 :) 좋은밤되세요

    • @뮤-13
      @뮤-13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미직딩 저도 매일하트 달아주고
      답글달아주는거 감사합니다.

  • @tv-zl6zj
    @tv-zl6zj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다음번에는 쿠르스크 전투 영상이 올라오겠군요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tv-zl6zj 바로 다음 영상은 낫질작전이고 그거 다음으로 쿠르스크 준비해 보겠습니다

  • @tassader3317
    @tassader3317 2 месяца назад +3

    3:51 아비터 로 구출해 드림 ㄱㄷ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 아비터 생각 못했네요 😂

  • @bluefishfff
    @bluefishfff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 파울루스....

  • @어저버보
    @어저버보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히틀러가 그냥 다 말아먹었군요...

  • @Erwin_Rommel-q9i
    @Erwin_Rommel-q9i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에초에 저기까지간것도 어마어마한 운이따랐음에 가능하였던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낮질작전이군요
    영상분량이 아주아주 많이 길터인데..
    팁드리자면
    당시 가장 중요하였던 A집단군의 클라이스트 기갑집단군, 공수부대와 함께 조공이었던 B집단군, 그리고 기만용인 C집단군을 하나하나설명하시고...... 뫼즈강을 구데리안보다 각성제 없이 먼저통과한 롬멜을 이야기하시면 될듯합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어떤 행운이었는지도 설명하셔야 됩니다.
    콧수염은 믿을게 못되요

    • @미직딩
      @미직딩  2 месяца назад +1

      @@Erwin_Rommel-q9i 덜덜...반영해서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

    • @푸틴은나빠
      @푸틴은나빠 2 месяца назад

      오류가 있네요 프랑스침공 당시 만슈타인은 38기갑군당장 이었고, 프랑스 침공아 거의 끝날 무렵에 38기갑군단이 투입되었습니다. 아마도 뫼즈강에서의 전투는 만슈타인이 아닌 구데리안보다 롬멜이 가장 먼저 돌파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 @Erwin_Rommel-q9i
      @Erwin_Rommel-q9i 2 месяца назад

      @@푸틴은나빠 아 넵 이제 보았습니다 오류지적 감사합니다.

  • @구데리안-e6f
    @구데리안-e6f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자세히 알고싶다면 지식해ㅇㅇ 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