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자가 박정희 정권에 넘긴것 자체가 아쉬운 결과였죠. 측근들이 옆에서 다 해먹었고, 박정희 일가의 숨겨진 재산들을 다 관리를 했으니까요..정수장학회나 영남 재단이 일명 가신들이 관리하는 주군의 재산이었는데 박정희 사후에 전두환을 거치면서 또 자금이 새어나갔고 결국 지금은 그 출처나 죄를 묻기가 곤란해졌습니다...
그럼 3배 다시 하면 240만평.......? 이었다는 건데... 그 정도면 당시 한국의 몇대 부자 안에 드나요...? 근데 만일 그 땅이 현대에 그린벨트 묶여있고 지금 가치로 치면 .... 평당 만원만 하더라도 24,000,000,000. 240억이네요. 아무리 똥값 그린벨트라도..... 굉장히 줄어들긴 하다....... 일단 대대로 그만큼 물려왔고 지켰다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어쩌면 대를 걸쳐 더 번영했는지도. 그리고 제가 알기로, 유력한 양반가문들의 재산, 종가로 가면 특히나 더.... 땅 부자들 많았다고 알고 있어요. 일제시대에 얼만큼 뺏겼는진 모르겠는데...... 어떤 집안은, 1800년대생이신 증조할아버지 때까지만 하더라도 240만평은 아니더라도, 100만평은 넘었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분도일제시대 사셨을텐데.. 근데 한국 몇 대 부자 이런 것에서 언급되는 거 한번도 못 들어봤어요. 그게 1800년대 초반? 으로 더 위로 올라가면 더 많았을 거예요. 1700년대 이전부터. 그 전엔 더. 더.더... 고려조, 조선조 몇 대 가문에 들었던 건 알고 있지만 종파도 많고, 가장 최근인 일제시대 이후 기준으로만 쳐도 100만평 넘었던 걸로 아는데...... 조용히 있어서 그럼 안 뺏겼던 걸까요? 최부자는 아직도 80만평 갖고 있어서 언급되는 걸까요? 친구가 일제시대에 나눠주고 가난해진(?) 최부자집 후손이라고 들었어요. 지금도 부자는 아니라고 하던데......
현재 최부자 집안 재산을 알려주면 도움이 될듯 싶은데.. 나 아는 형네 집안은 현재 강남땅 전부를 갖고 있었다구만... 현재 가격으로 치면 수십조원인디... 그렇게 따지면 최부자 보다 더 부자였지... 근데 강남땅을 안팔았으면.. 강남이 개발이 됐을까? 팔고 다른이들이 자본들여서 개발을 했으니 땅값이 오른건데... 현재 오른 가격만 갖고 얘기하면 안되지. 최부자 시절에는 땅값은 똥값으로 알고 있는데... 그당시의 땅값 가격을 환산해서 재산을 추측해야지.. 현재 땅값을 예를 들면 안되다고 봐요.
최부자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재산 형성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 놓았으니 한번 읽어 보시기를. 제가 알기로는 불법적인 방법은 없었고 나름 정당한 방법으로 11대를 걸쳐서 꾸준히 모아온 것들입니다. 정무공 최진립(1568~1636) 공조참판에 기용됐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병자호란 때 종과 수하를 데리고 경기도 용인에서 청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약간의 토지를 하사 받았고 그 토지를 이용해서 이앙법을 빨리 도입해 소출량을 늘리고. 땅도 많이 사들였다. 그때만 해도 정보가 잘 유통되지 않던 시대여서. 경주 일대에서 논 매물이 나오면 소작농들은 경쟁하듯이 달려와 최부잣집에 알렸다. 소작농들은 자신의 지주가 최부자에게 땅을 팔면 소출의 70%~80%를 소출로 가져가던 다른 지주들과 달리 소출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었으니까. 서로 최부잣집의 소작인이 되어 일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논을 사들여 만석꾼이 되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흉년에는 절대로 논.밭을 사지말고. 일정 부분만큼 소출이 나오면 그 이상의 땅들은 소작인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에 조선 팔도에 그렇게 나눠준 땅들과 흉년에 굶어죽지 않을려고 스스로 노비나 머슴으로 들어온 자들을 풀어준 수가 말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고 하고. 흉년에는 사방 100리 안의 굶주리는 사람을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경주 지역에는 어떤 경우에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고. 도적떼들이 쳐들어와 온 마을을 약탈해도 최부자 집 만큼은 손도 대지않고 피해갈 정도로 덕망을 얻었었고. 일제의 눈을 피해 해방 될때까지 지원한 독립 자금 역시 어마어마합니다.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과 3대 교주인 손병희도 경찰을 피해 자주 오래 묵었으며. 대한 광복회 총사령관인 박상진이 사위이며. 광복 뒤 백범 김구의 요청으로 서울에서 만나서. 김구는 최준에게 낡은 장부를 꺼내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최 선생, 그 동안 수고가 많으셨어요. 가산을 탕진하면서 까지 저희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3천만 동포가 최 선생의 공로를 치하하여 우러러볼 거예요. 이 장부는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보내 준 사람들과 그 자금 내역을 기록한 명세서예요.” 괜히 모든 역사 학자들까지 최부잣 집안을 칭송하는게 아닙니다.
저기, 일제 강점기 기간에도 큰 부자였다면 자랑이 아닙니다만. 아무리 조선인도 경제활동을 했던 시기라고 해도 조선 총독부의 조선인에 대한 정책 자체가 친일을 안하면 겨우 밥이나 먹고 살만한 재화를 축적할 정도였는데 그시기에 부자였던 것이 자랑? 기부를 많이 해서? 웃기네.기부가 아니고 당연히 반납해야 할 것들이 아닌가? 서상돈이가 조선총독부의 화폐개혁 전에 일본으로부터 특혜를 받아서 기존의 현금성 자산을 보존하고 재산을 더 불렸는데 그것이 친일한 댓가가 아니면 불가능 하듯이 당시 큰 부자들이 재산을 보존했다면 당연히 지탄받을 일이 아닌가? 세월이 오래 지났다고 이제 거짓역사를 만들려고 하네. 노태우가 1990년대초에 가짜 3.1운동 관련 포상을 특정 지역의 미미한 사안의 수형기록까지 근거로 들이밀면서 포상하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친일파나 방관자를 애국자로 둔갑하는 작업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인가? 당시 일제 강점기때 큰 부자는 무조건 100% 친일파다.(당시에 독립운동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한 민족종교계열은 제외..독립자금의 7할이 거기서 나옴.) 이것은 물은 아래로 흐르는것과 같이 그냥 진리다. 그렇다면 그들 중에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냥 양측에 보험을 든거다. 전혀 존경할 일이 아니지. 부녀자 납치 강도 강간범이 죄없는 부녀자를 납치하고 재물을 빼앗어서 대부분 지가 누리는데 쓰고 일부를 고아원에 기부하고 부녀자를 장가못한 노총각과 짝지어 주면 그게 칭찬받을 일인가?
민족기업 백산무역주식회사 설립, 최부자 최준 사장으로서 상해 임시정부 자금의 6할 제공함, 신돌석, 이강년, 최익현 등 의병장 지원함, 강우규, 김지섭, 김시현, 김응섭, 안희제, 박상진, 우재룡, 권영만, 박열, 윤현진...셀 수 없이 많은 독립운동가에게 자금 제공. 이육사 권오설 등 다수 청년들에게 장학금 제공. 현재 영남대의 전신 (구)대구대학 설립, 계림대학 설립, 경주 월성여학교 설립, 보성전문(고려대학교)와 부산상고에 거액 후원금 제공. 경주국채보상운동 회장으로서 지역의 폭발적 참여를 이끌어 냄....일제강점과 해방까지 한 일이야. 좀 알고 말합시다.
@@tomasluis9904 이것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거짓말 하네. 임정을 포함한 독립자금의 7할이 전라도.그중에서도 정읍 인근에 기반을 둔 민족종교 세력에서 나왔는데 뭔 개소리를 짖어대지? 그리고 임시정부 결성 초기에 추축이 1909년 남한폭도대토벌로 와해된 호남지역 항일무장 세력들이야. 그들이 영남지역과 여타지역의 매국성향에 의해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상해로 옮겨가서 임시정부의 초석을 닦았다. 뭔 개소리를 짖어대지? 그냥 얼굴마담 식으로 내세운 이승만을 위시한 인사들 출신지 보고서 주절대나 보네.
경주 최부자댁은 재산도 충만했지만 나라사랑하시고 사람 이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신 겸손한 마음과 인간의. 도리 가치관 품성의 자산또한 최상급자산입니다.물질 만능시대에 많은귀감과 소중한 큰자산입니다.우리 자라나는 학생들 유치원부터 대학 까지 전부 최부자집의 삶매방식들을. 교과서에 싫어 교육자료로 사용하길 바래봅니다.
얼마나 부자였는가도 중요하지만정말 돈을 가치있게 쓴 집안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제에 붙어서 불린 재산으로 100년째 민족 정론지 행세하는 집안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요한 한국 국보급자료를 누군가 ? 최부자님의 깊은 뜻을 .이런 영상을 통해서 알게되어서 감사합니다.
진모님 이런분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저런 정신을 배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부자님들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
거창에 최희할머니96세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 💕
안동생
최소희할머니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말로만 들었는데 영상으로 보니 더 와닿네요
이시대에 최부자댁
같은이 또있을까
국가에 역사가 담긴
소중한 물품 간직하고
계신분은 귀한 보물 자료인 만큼 후대를 위해서라도 내놓아
주세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진짜 도금봉인가요
널리 알려지길바랍니다.~
허석사님 같은 역사학자들이 참여해 최부자 연구가 좀 더 체계적이고 심도 깊게 이루어졌음 좋겠습니다
기부한 물품이 재대로 국민들 품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봅니다 꼭 기부 목록이라도 널리 알려주세요
전문세 듣다가 들어왔어요!! 너무 좋은 영상!!
부자의 품격 경주 최부자
최부자 집근처 모든사람들이 굶는사람들이 없고 모두 배불리 먹고
살았다죠 쌀공짜로 주고 어려운분들 도와주고 지금으로 치면 무료급식소 개념
모든 부자들이 배워야될 정신
돈만타고
죽을때가지고갈것도아닌데주위어러운사람도와주는게나찌
역시 최부자님
배려기부
아주좋아요
욕심이
이 내용은 널리널리 퍼져야 하는데 조회수가 갑자기 팍 줄었네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최부자 재산 ㅎㄷㄷ
저는 경주최가 관가정공파
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경주최씨 화숙공파요~^^
당시 경주라는 도시의 위상도 지금이랑 많이 달랐어요
와 허석사님 몇년전에 전쟁사 팟캐스트 들을때 그목소리 실물보니 상상하고 완전 다르네요 ㅎㅎ
조선시대에는 200평에 쌀 80KG한가마니만 나와도 잘 농사지은 것임
소작들과 반반 나눴다면 400만평 정도 농지가 있었다고 보면 됨
이런 얘기를 들을때 마다 안타까운게 차라리 저렇게 될거면 개인에게 파는게 어찌 보면 사료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 생각 드네요.
돈을 주고 샀으니 관리에 더 신경도 쓰고.
8천 여점에서 반 만 남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행을 악행으로 보답했네요.
허진모작가님 반갑습니다. 예전에 개그맨 장웅씨와 팟캐스트 하시던거 다 들었었어요.
최씨 후손으로 자랑스럽기도 너무나 안타깝고 안타깝네요….ㅠㅠ
전문세 듣고 왔어요! 신품4현 김생의 친필이…어느집으로 들어갔을까요… 정말 화납니다ㅜ ㅜ
이런 집안 사람들이 만주에서 굶어 죽은 사람도 있었으니... 과연 이들 후손에게 최소한의 보상이 돌아 갔는지 궁금하다.
6.25때 물심양면으로 국군지원해주신분도 많습니다. 꼭 기억해야합니다.
기부한게 혹시 권력자에 숨겨진
재산 이런식 으로 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후손들은 검찰 수사 의뢰해
보셨나요?
너무 눈먼 재산이 되었네요
돈있는것들이 뒤로 지들끼리 사고 팔고 하는거죠!!
관계자들도 썩을대로 썩었겠네요 …
찾아내야합니다! 반드시! 남의 조상물건 가지고있은건 절대 좋은게 아닙니다!! 후손이 잘못됩니다!!
최고부자에 개경이나 평양이 없는게 신기하네요...그리고 기부된 사료는 누구 수중에 떨어진걸까
전문세 듣다가 방문헸습니다. 박통이 대구대를 접수(?)한 이유가 있었네요. 병철이는 어쩔 수 없이 빼앗긴 것 같습니다....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다들 꼭 봤으면 좋을텐데 구독자가 팍팍 안늘어나네요. 속상합니다
이렇게 채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흉년에 땅 사지 말라는 가훈,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바이런이 거리에 피가 흐르면 땅을 사라는 말과 비교해 보면 한국 부자의 품격이 다르다는 걸 느낌,
@@musiqkim8860 무식한 소리..... 흉년에 땅 사면 농민들한테 싸게 땅을 사서 재산증식하고 농민들은 장기적으로 더 힘들어지는 거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musiqkim8860 듣기로는 경주 최부자 같은 경우엔 헐값에 땅을 사지 않고 담보로 돈을 빌려줬다고 들었습니다, 결국엔 담보 문서도 불에 태워버렸구요, 백성이 재기할 기회를 준거지요, 때문에 상생의 덕을 높이 평가하는거구요,
기부한 학교땅의 지금의 실질적 주인은 박가...
족보 볼수있는 온라인사이트는 없나요?
8천점을 기부했는데 4천점이 사라졌다………….예나 지금이나 인간형상을 한 날강도들이 많았구나~나쁜것들
경주 최씨부자 이야기는 초4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다행히(?) 초등학생들은 다 알아요^^;;;; 박근혜 정부때 초등학교 교과서가 개정되었는데... 그때 실렸습니다.
공정하고 참되게 하지않고
어떤놈이 훔쳐갔나 ?
영원한 도둑놈!
최부자가 박정희 정권에 넘긴것 자체가 아쉬운 결과였죠. 측근들이 옆에서 다 해먹었고, 박정희 일가의 숨겨진 재산들을 다 관리를 했으니까요..정수장학회나 영남 재단이 일명 가신들이 관리하는 주군의 재산이었는데 박정희 사후에 전두환을 거치면서 또 자금이 새어나갔고 결국 지금은 그 출처나 죄를 묻기가 곤란해졌습니다...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기부물건을 훔쳐갔는지 그당시 관련자들이 도둑놈이겠지
저재산 거의 다 독립자금 조달해서 지금 나라가 독립할수 있었던것 같다
그럼 3배 다시 하면 240만평.......? 이었다는 건데... 그 정도면 당시 한국의 몇대 부자 안에 드나요...?
근데 만일 그 땅이 현대에 그린벨트 묶여있고 지금 가치로 치면 .... 평당 만원만 하더라도 24,000,000,000. 240억이네요. 아무리 똥값 그린벨트라도..... 굉장히 줄어들긴 하다....... 일단 대대로 그만큼 물려왔고 지켰다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어쩌면 대를 걸쳐 더 번영했는지도.
그리고 제가 알기로, 유력한 양반가문들의 재산, 종가로 가면 특히나 더.... 땅 부자들 많았다고 알고 있어요. 일제시대에 얼만큼 뺏겼는진 모르겠는데......
어떤 집안은,
1800년대생이신 증조할아버지 때까지만 하더라도 240만평은 아니더라도, 100만평은 넘었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분도일제시대 사셨을텐데..
근데 한국 몇 대 부자 이런 것에서 언급되는 거 한번도 못 들어봤어요. 그게 1800년대 초반? 으로 더 위로 올라가면 더 많았을 거예요. 1700년대 이전부터. 그 전엔 더. 더.더... 고려조, 조선조 몇 대 가문에 들었던 건 알고 있지만 종파도 많고, 가장 최근인 일제시대 이후 기준으로만 쳐도 100만평 넘었던 걸로 아는데...... 조용히 있어서 그럼 안 뺏겼던 걸까요?
최부자는 아직도 80만평 갖고 있어서 언급되는 걸까요? 친구가 일제시대에 나눠주고 가난해진(?) 최부자집 후손이라고 들었어요. 지금도 부자는 아니라고 하던데......
돈 기부는 눈먼 돈! 어떻게 돈을 버는지 재능기부로...
역사는 재미써욤
대구서 경주갈려면 최부자땅을 안밝고는 갈 수 없는..
그때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얼마 안 난듯 합니다~
경주최부자는 박정희.이병철만 아니였어요
더 좋았을텐데ㅠ
영광스럽고 대단하지만 후손들은 힘들게 사시는게 씁쓸하네요..
부러 학교측에서 없다하고 기밀로 한거라면 좋겟지만
혹여라도 있다면 삼성쪽에 있슬것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추측일뿐이다
관가정공파 36대손 90년생입니다.
이 집 따님이 안동 류가에 시집가면서 친정에서 도와준 것도 상당하겠네요 가보니 너무 못살았다던데
공뭔 출신 최이켜이도 갱주최씨고 깡패두목 최행배도 갱주최씨 아인교?
경상도 소문이 경주땅에서 최부자 아닌땅이 없고 흉년이 들면 곶간을 열어 백리밖에 굶는사람이 없겠했다는데
백리밖이 아니고 백리내입니다... 대략 경주에서 100리가 근처인 동래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본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경주에 3대 부자(1000석)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조 단위는 절대 아닙니다 인구도 경제도 현재가 더 많고 낫지만 지금도 경주에 수백억 부자라면 몇 손가락에 꼽힙니다.
기부한걸 도둑념들이 챙겼구만
위대하신분
나도 경주최씨인데...^^
영남대학 까지는 모르겠지만 선산은 찾으셔야죠..
기부받은 학교도 문제가 심각했네여...ㅠㅠ
1980년에 2천억원이면 지금돈으로 얼마인가요?
최소 10~20배
선한 양심.. 그게 영남대 였는데, 그걸 가로 챈게 누구게요? 박근혜.. 내가 살던 나라는 600년전부터 잘 못 됬다고 누가 말 했었을까요? 노무현.. 내가 많이 부끄럽습니다. 지금의 민주당 국회의원들 대부분 부끄러워 해야 할 겁니다.
와 기부한걸 얼마나 해먹은거냐 ㅋㅋㅋ
내가 경주 최씨이고 집에 족보도 있지만
족보 산거 같음
그니까 친일을 했으면 지금도 자손들이 국회의원 했을 건데 ㅋㅋㅋ
ㅠㅠ 내때까지내려왔었으면..
후손들은 선대분들을 본받아 모범적인 삶을 살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충렬공광위파 입니다
허참 당대에 잘나가켠 잘살수밖에업겠조?
농경사회에서 토지가 한곳으로 집중되면 결국 나머지 사람들은 산에서 풀을 뜯어먹고살아야 하는 시대라 최부자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시대 자체가 농민들이 나누어서 가질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소작료 좀 적게 받고 빈궁기에 이자없이 곡식을 풀었던 최부자는 지금으로 생각해도 대천사급 레벨이 아닐까요?
세상보는 눈이 한쪽으로만 보는
권력자들이 음으로 가지지 않고서야
어처구니가...
이건희 삼성 문화재 소사해봐라 거기있을수도?
빼돌리고 팔아버린거지 뭐
댓글들 최씨들한테 맞은적있나 배가 많이 아파보리네
기부한 책들
돈 될만한거는 다 빼돌렸다는 이야기네
나의 외 할머니 댁
개나소나 ㅋㅋ 부러워서 게거품 무네
지들이면 절대 못했을 일들을 했는 가인데
우리나라 기부 특: 기부하면 여기 저기서 삥땅치고 뜯어가고 없음
자세불량
기증을 하면 다 뒤로 빼돌린다 ~ 는거지
변호사 아니세요 좀 집요하게 파보세요
이것뿐이겟냐 기부하면 관리 개즇같이 해놓고 다뺴돌리고 ㅋㅋ
저런 노블레스 오블리쥬 해봤자 도움되는거 1도없음
과거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하지 않을시 몰수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학교를 세우고 기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행배야
최태민이 관리했으니 최순실이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손이 아닌 저도 정말 화가 납니다. 사라진 기증품들이 어디 있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ㄴㄷㅎ
박정희가 가지고 갔지
육영재단 만든다구
그리고 전 전통집에 가서
수색영장 받아야지
ㄴㄷㅎ
대구대아니고~영남대입니다
당시 교명은 대구대가 맞습니다 삼성에 학교 운용을 위탁했고 삼성이 위탁자의 동의 없이 박정희에 헌납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영남대로 변경되었습니다
영남대의 전신은 대구대학와 청구대학입니다. 지금의 대구대와 다른 학교입니다.
대구대는 박근혜 거라든데 어찌 된거야
최준 선생님이 건립하셨지만 운영이 어려워 삼성 이병철에게 댓가없이 기부하셨는데 그게얼마뒤 박정희 명의로 변경됐다고 다큐멘터리에서
알려주네요
그리고 대구대로 건립했지만 이후 영남대로 바뀌었슥니다
지금 잘살아 환산 수십조지
그때 로치면 그냥 못살던 나라 부자지
우리나라가 필리핀이면 그정도 가치가 있나
어차피 부자는 3대가 끝임
자손들 분할하고 세금 다 떼면 끝
현 시점에 어차피 남아 있을수가 없음
영남대에서 땅도 팔아먹고 문화재도 팔아먹고
최준 선생님이 건립하셨지만 운영이 어려워 삼성 이병철에게 댓가없이 기부하셨는데 그게얼마뒤 박정희 명의로 변경됐다고 다큐멘터리에서
알려주네요
선산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산소를 이장하라고 합니다.
최부자집과 선산이라도 최씨집안에서 찾았으면 합니다.
순실이 아빠 태민이가 있어서
ㄴㄷㅎ
실례지만..어데 최심니까~?
재산 물려받음ㅋ
현재 최부자 집안 재산을 알려주면 도움이 될듯 싶은데.. 나 아는 형네 집안은 현재 강남땅 전부를 갖고 있었다구만... 현재 가격으로 치면 수십조원인디... 그렇게 따지면 최부자 보다 더 부자였지...
근데 강남땅을 안팔았으면.. 강남이 개발이 됐을까? 팔고 다른이들이 자본들여서 개발을 했으니 땅값이 오른건데...
현재 오른 가격만 갖고 얘기하면 안되지.
최부자 시절에는 땅값은 똥값으로 알고 있는데... 그당시의 땅값 가격을 환산해서 재산을 추측해야지.. 현재 땅값을 예를 들면 안되다고 봐요.
얼마나 부자인지 궁굼도 하지만
그 재산을 어떤 방법으로 모았느냐가
중요한듯. 조상들이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으며 그 수단이 난 중요하다
생각됨. 정당한 방법? 아니면 불법?
난 그게 궁굼하거든.
최부자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재산 형성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 놓았으니 한번 읽어 보시기를.
제가 알기로는 불법적인 방법은 없었고 나름 정당한 방법으로 11대를 걸쳐서 꾸준히 모아온 것들입니다.
정무공 최진립(1568~1636) 공조참판에 기용됐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병자호란 때 종과 수하를 데리고 경기도 용인에서 청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약간의 토지를 하사 받았고 그 토지를 이용해서 이앙법을 빨리 도입해 소출량을 늘리고. 땅도 많이 사들였다.
그때만 해도 정보가 잘 유통되지 않던 시대여서. 경주 일대에서 논 매물이 나오면 소작농들은 경쟁하듯이 달려와 최부잣집에 알렸다.
소작농들은 자신의 지주가 최부자에게 땅을 팔면 소출의 70%~80%를 소출로 가져가던 다른 지주들과 달리 소출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었으니까.
서로 최부잣집의 소작인이 되어 일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논을 사들여 만석꾼이 되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흉년에는 절대로 논.밭을 사지말고. 일정 부분만큼 소출이 나오면 그 이상의 땅들은 소작인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에
조선 팔도에 그렇게 나눠준 땅들과 흉년에 굶어죽지 않을려고 스스로 노비나 머슴으로 들어온 자들을 풀어준 수가 말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고 하고.
흉년에는 사방 100리 안의 굶주리는 사람을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경주 지역에는 어떤 경우에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고.
도적떼들이 쳐들어와 온 마을을 약탈해도 최부자 집 만큼은 손도 대지않고 피해갈 정도로 덕망을 얻었었고.
일제의 눈을 피해 해방 될때까지 지원한 독립 자금 역시 어마어마합니다.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과 3대 교주인 손병희도 경찰을 피해 자주 오래 묵었으며. 대한 광복회 총사령관인 박상진이 사위이며.
광복 뒤 백범 김구의 요청으로 서울에서 만나서. 김구는 최준에게 낡은 장부를 꺼내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최 선생, 그 동안 수고가 많으셨어요. 가산을 탕진하면서 까지 저희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3천만 동포가 최 선생의 공로를 치하하여 우러러볼 거예요. 이 장부는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보내 준 사람들과 그 자금 내역을 기록한 명세서예요.”
괜히 모든 역사 학자들까지 최부잣 집안을 칭송하는게 아닙니다.
누군가 빨았네 ㅋㅋㅋㅋ
최부자 라도 결국 인간으로써 짧은 인생을 살고 죽었음. 인생무상.
뭘로 돈벌었나
뭔 부자야. 아프리카 부자라고 인정해주나??
우리나라가 이정도로 성장해서 그런거지.
조선은 당시 거지 국가 중에서도 상거지 국가였는데.
뭔 10조야??
그냥 아무것도 없던 조선에서 비단 좀 있고
쌀 좀 많았던거지.
조선은 당시 일본 한 도시보다 못하게 가난한 나라였음.
퇴직전 출퇴근시 팟빵에서 전문세를 들으며 귀하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됬는데, 김어준 같은 기생충을 만든 장본인이란 야그를들으니 사람이 달라 보이는군요, 울산 공장 근무하며 오갔던 경주사람이라 친근감도 있었는데....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이제 커밍아웃 해도 안되겄는감유?
결국 박정권때문에....
저기, 일제 강점기 기간에도 큰 부자였다면 자랑이 아닙니다만.
아무리 조선인도 경제활동을 했던 시기라고 해도 조선 총독부의 조선인에 대한 정책 자체가 친일을 안하면 겨우 밥이나 먹고 살만한 재화를 축적할 정도였는데 그시기에 부자였던 것이 자랑?
기부를 많이 해서?
웃기네.기부가 아니고 당연히 반납해야 할 것들이 아닌가?
서상돈이가 조선총독부의 화폐개혁 전에 일본으로부터 특혜를 받아서 기존의 현금성 자산을 보존하고 재산을 더 불렸는데 그것이 친일한 댓가가 아니면 불가능 하듯이 당시 큰 부자들이 재산을 보존했다면 당연히 지탄받을 일이 아닌가?
세월이 오래 지났다고 이제 거짓역사를 만들려고 하네.
노태우가 1990년대초에 가짜 3.1운동 관련 포상을 특정 지역의 미미한 사안의 수형기록까지 근거로 들이밀면서 포상하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친일파나 방관자를 애국자로 둔갑하는 작업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인가?
당시 일제 강점기때 큰 부자는 무조건 100% 친일파다.(당시에 독립운동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한 민족종교계열은 제외..독립자금의 7할이 거기서 나옴.) 이것은 물은 아래로 흐르는것과 같이 그냥 진리다.
그렇다면 그들 중에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냥 양측에 보험을 든거다. 전혀 존경할 일이 아니지.
부녀자 납치 강도 강간범이 죄없는 부녀자를 납치하고 재물을 빼앗어서 대부분 지가 누리는데 쓰고 일부를 고아원에 기부하고 부녀자를 장가못한 노총각과 짝지어 주면 그게 칭찬받을 일인가?
응 뇌피셜말고 증거를 제시해
@@꾸러기-n2i 응.너나 뇌피셜 말고 부자들이 전부 친일파는 아니었다는 증거를 제시해.
아니면 최소한 친일을 안해도 많은 재산을 빼앗지 않았다는 증거라도 제시해.
민족기업 백산무역주식회사 설립, 최부자 최준 사장으로서 상해 임시정부 자금의 6할 제공함, 신돌석, 이강년, 최익현 등 의병장 지원함, 강우규, 김지섭, 김시현, 김응섭, 안희제, 박상진, 우재룡, 권영만, 박열, 윤현진...셀 수 없이 많은 독립운동가에게 자금 제공. 이육사 권오설 등 다수 청년들에게 장학금 제공. 현재 영남대의 전신 (구)대구대학 설립, 계림대학 설립, 경주 월성여학교 설립, 보성전문(고려대학교)와 부산상고에 거액 후원금 제공. 경주국채보상운동 회장으로서 지역의 폭발적 참여를 이끌어 냄....일제강점과 해방까지 한 일이야. 좀 알고 말합시다.
@@tomasluis9904 이것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거짓말 하네.
임정을 포함한 독립자금의 7할이 전라도.그중에서도 정읍 인근에 기반을 둔 민족종교 세력에서 나왔는데 뭔 개소리를 짖어대지?
그리고 임시정부 결성 초기에 추축이 1909년 남한폭도대토벌로 와해된 호남지역 항일무장 세력들이야. 그들이 영남지역과 여타지역의 매국성향에 의해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상해로 옮겨가서 임시정부의 초석을 닦았다.
뭔 개소리를 짖어대지?
그냥 얼굴마담 식으로 내세운 이승만을 위시한 인사들 출신지 보고서 주절대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