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보 철강 손자인 정이사 나랑 평생가자ᆢ고마웠어;; 나보고 취미로 하라고? 잘 지내라고 해서? 나도 안 볼 생각으로 카톡으로 다 말하고 나선 건데 정이사 만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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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2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

  • @user-lkjin
    @user-lkjin  2 дня назад +2

    많은 돈을 들여서 제작및 홍보하다가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고 우린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김종환 선배는 절실했는지 sbs 음악방송 피디가 좋아한다며 다시 하자고 내게 찾아 왔었지만 그당시 엄마가 아프셔서 고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엄마 생활비를 드리고 있었는데 내가 혹시 방송하다가 이미 규칙적으로 돈이 나오는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난 그만 잠수를 타고 내가 가야하는 길을 가야했던 것도 내 운명ㆍ김선배는 와신상담했었는지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세미트롯으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던 건 과거 김현식 가수와 같은 행보일 수도 ᆢ다행히 김종환 선배님이 알려져서 훗날 나를 초대 해주어서 다시 만나 같은 무대에 섰던 것도 운명(어쩐지 이상하게 만나는 꿈을 여러번) ㆍ김종환 선배님이 부르기를 원했던 도시를 떠난 참새를 무대에서 부르기까지는 먼 시간이 필요했어요 ㅠㅠ 그때 무대가 어쩌면 단독으로 불렀으니 실제 개인으로 데뷔한 거죠 ᆢ그리고 통기타로 하라고 하셨지만 그당시 급하게 지인 도움받아 엠알 만들어서 한 것은 제 생각이 맞았고요 ᆢ엠알도 잘 만들어졌기에 행사때엔 제 재산인 거죠 ㆍ어쨌든 김종환 선배님은 제 은인이 맞습니다 ㆍ방황하는 저를 데뷔시켜 주셨고 콘서트에도 초대를 해주셔서 생각치도 않게 평생 재산이 되는 엠알을 만들게 해주셨거든요 ᆢ그 당시 콘서트에 해당자들이 늦어서 제가 순 번이 아닌데도 갑자기 백미현 가수 다음 2번 타자로 불릴때는 얼마나 긴장 되었는지 도망치고 싶었던 기억 ㅜㅜ그러나 연습을 많이 했었기에 연습한 그대로 나오더군요ㆍ기립박수 받은건 밖에서 화면으로 봐서 알잖아요ᆢ사실은 노래를 안한 지 오래되어서 안한다고 했었는데 선배님도 후배 하나는 위한다는 고집 펴시고 싶어서 였는지, 저는 집에서 윗몸 일으켜기 몇백번 하고 추운 겨울에 한강 갈대밭에서 소리지르고 이태원 무대에서 떨면서 가사 외우면서 그 걸 열흘을 하고 출정한 거에요 ᆢ어쨌든 선배님과 저는 어릴때 각자의 꿈을 가지고 기타가 들어가 있는 하드케이스 들고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때론 뛰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왔는데요,, 김선배님 고생많으셨는데, 성공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많이 세월이 드셨군요😢 건강하십쇼 ^^ 김선배님이 함께 한 멤버들을 가족으로 이름을 붙여 주셨듯이 저도 우리 유튜브 구독자 분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기에 채널명을 제 이름에 음악가족이라고 만들었죠 ᆢ도움 준 선배를 닮는 건 당연해요 ᆢ

    • @user-lkjin
      @user-lkjin  2 дня назад

      김종환 선배도 좀 늦은 나이에 된 건데 자기 것을 고집하는 건 알려지고 하는 게 맞다 ㆍ 김현식 가수도 그랬었고ᆢ 대중이 음악 공부를 했나? 먹고 살기 바쁜데 개인인 가수의 철학을 누가 아나? 자기들이 듣기 좋으면 따라 부르는 건데 ㅠㅠ 철학 다 필요없고 그냥 똑같은 사람 마음으로 솔직하게 단, 세미냐 발라드냐 락이냐를 선택해서 보통의 마음을 넣으면ᆢ 임재범도, 자기 거 한다고 대중적인 건 안한다며 얼마나 배가 고팠었나 ㅠㅠ 나 코로나때 거리에서 기타 치지 않았나? 그래서 얻지 않았는가?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는 거지ᆢ자존심은 필요없다ᆢ실력이 중요 ㅠㅠ 내가 왜 스카웃 되어서 뮤지컬 넌센스 배우 윤정원을 만났고.우연히 소찬휘 매니저를 만났고 외국인인데 20년 한국에 산 유명 버스커 그리고 남산 하야트 클럽의 흑인 드러머에게 명함을 왜 받았을까? 체면을 버리고 대중과 함께 했었기때문 ᆢ그러나 어디 소속으로 기타로 내가 가는 길이 아니 었었기에 ㅠㅠ 물론 한다면 대중들 다 즐겁게 해줄 자신은 있지만;; 그냥 즐긴 거라서 미련 없이 손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