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첫 수도 동모산의 새로운 후보지 마반촌산성은 고구려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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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5 сен 2024
  • 중국이 발해 건국지 동모산으로 새롭게 추정한 마반촌 산성은 어떤 곳인지, 알아봅시다. 이곳은 고구려 동부의 중심지인 연길시 동부에 위치하고 있고, 1937년에 발견된 이후, 고구려 산성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중국은 최근 8년간 발굴 결과 이곳을 여진족이 세운 동하국(1215~1233)의 수도인 남경성 유적지로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해 건국지로도 보도하였지만, 고구려와 관련성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간략히 알려지기는 했지만, 마반촌산성 발굴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제대로 알아야, 무엇이 중국의 역사 왜곡인지, 무엇을 그들이 잘못 보는지를 알고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 20

  • @김용만의역사문
    @김용만의역사문  3 года назад +5

    마반촌 산성에 대한 세계한민족문화대전 ( www.okpedia.kr/ ) 의 설명을 추가로 소개합니다.

    마반촌 산성은 말발굽 모양과 비슷한 형태를 지닌 험준한 성자산 위에 축조되어 있는데, 성벽은 이러한 산줄기를 따라 토석 혼축 내지 석축으로 쌓았다. 산성은 비교적 불규칙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의 총 둘레는 4,454m 이다. 성벽의 기저부의 너비는 5~7m, 높이는 1~3m이다. 산성의 동쪽, 동북쪽, 서쪽 그리고 동남쪽에 성문 터가 있는데, 동남쪽 문터를 제외한 곳에는 모두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동문과 북문의 경우 계곡부에 위치해 있어 중요한 통로의 방어를 강화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서문 터 바깥쪽에서는 토축 차단벽도 확인된다.
    성 내부에는 4곳의 경사지와 3곳의 대지가 있는데,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다량으로 산재해 있다. 중심부 대지에는 궁전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있는데, 계단식으로 된 기단이 조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성자산 산성(城子山山城)으로 불렸으나, 최근 중국 정부에서는 마반촌 산성으로 명칭을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마반촌 산성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4월, 경성 제국 대학의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에 의해 조사되었고, 조사 내용이 1942년 『간도성 고적 조사 보고』에 보고되었다. 이 보고서에는 금(金)대의 유물 일부만이 보고되어 있지만, 성 중앙부의 계단상 건축 대지의 토층 하단부에서 고구려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해당 유물은 현재 서울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중 고구려 시기의 유물은 승문, 사격자문이 찍혀 있는 적갈색 기와 조각과 니질 태토의 회색 및 적갈색 토기 조각 등이 있다. 일부 기와 내면에는 고구려 기와의 특징인 모골흔도 확인된다. 이밖에도 박물관에는 철촉 및 철모, 철제 가위, 은제 귀이개, 청동 금구류 등 다양한 금속 유물들도 소장되어 있다.

    마반촌 산성의 입지 조건이나 규모, 그리고 인근에 하룡 고성이 축조되어 있는 점 등을 볼 때, 고구려 및 발해 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일제 강점기에 수집된 유물을 볼 때, 고구려 때부터 금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 내부에서 고구려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고, 그동안 문물지나 여러 중국 논문에서도 마반촌 산성을 고구려가 축조한 것으로 판단하였으나, 최근 중국 정부는 별다른 근거없이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고 발해 때 쌓은 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 @안윤이-f9j
      @안윤이-f9j 3 года назад

      추가설명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용곡-g9q
    @우용곡-g9q 3 года назад +5

    상세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장님. 오늘도 영상 잘 보았습니다.

  • @최용두-u1t
    @최용두-u1t 3 года назад +3

    감사합니다

  • @김용만의역사문
    @김용만의역사문  3 года назад +2

    중국 북경전파국의 저작권 문제 제기로, 1분 정도 분량이 분량이 줄어들었음을 알립니다.

  • @yongbumyun60
    @yongbumyun60 2 года назад

    Keep Corea rolling

  • @hawk8873
    @hawk8873 3 года назад +3

    발해의 건국 세력은 국인, 즉 나라사람과 말갈의 연합체로 역사에 나와 있는데 여기서 국인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귀족 세력을 가르키는 말임에는 이론이 없는데 말갈이 무슨뜻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분명한건 당시 말갈은 지방민을 가르키는 보통명사로도 쓰였기 때문에 흔히 말갈족과 연합 정권으로 오해했다고 보여지며 그냥 당시 만주 거주민중 평민 전부를 말갈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결국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 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은 인적 구성만 봐도 당연할 수 밖엔 없다.

    • @abkaiaisinusiha349
      @abkaiaisinusiha349 3 года назад +3

      말갈은 고구려 물길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말갈' 이라고 하는 기록은 지금까지 지나학계의 일부와 일본학계에서도 검증이 된 것인데, 범칭. 동북지방에 있는 주민들을 낮춰 부른 호칭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 고구리 국민들입니다. 우리 선조의 땅을 지금 지나가 차지하고 있어서 너무 속상합니다. 빨리 되찾아야 하는데.

  • @Brooklyn_99
    @Brooklyn_99 3 года назад +3

    고구려 유적과 기록을 중국이 자꾸 묻으려 드는 게 재미있네요. 중국의 역사에 슬쩍 고구려를 넣기는 힘들지만 한국의 역사에서 고구려를 지우겠다는 이야기로 들려요. 솔로몬의 두 어머니 이야기에서 친어머니가 아닌 여자가 아이를 가르는 것에 동의한 것처럼 말이에요. 일본인 중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영토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걸 본 적이 있어요. 씁쓸합니다

  • @뚠공주-x8c
    @뚠공주-x8c 3 года назад +5

    이번 국가직9급에서 9번문제로 나옴ㅋㅋㅋ

  • @노인좌
    @노인좌 Год назад

    말타고~산에서 산다?!

  • @이완희-h7r
    @이완희-h7r 3 года назад

    허허!! 고구려도 자기 역사라는데 그게 중요한가요!!

  • @jhsphinx81
    @jhsphinx81 3 года наза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해왔다가 다시 밀려서 동에서 서로 이동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오랜 시간에 걸린 일이겠죠
    조선시대때는 현 키르키즈스탄이 발해라고도 하고 터키가 발해유민들이 이동한거라고 하기도 하는데
    연구가 많이 필요하겠죠

  • @michaelyi2532
    @michaelyi2532 3 года назад +1

    고구려가 우리역사는 맞습니다만, 고구려 유민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끌려갔고, 또 지금 중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진데, 우리가 고구려를 우리역사로 어찌 주장가능할까요? 중국의 말도 일견 일리 있습니다. 그걸 깨야지, 그냥 민족주의만을 가지고 우리 국내에서만 큰소리 처봐야... 이게 한국인의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