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제자들의 못난 다툼, 누가 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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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7 фев 2025
  • 100. 제자들의 못난 다툼, 누가 크냐? 우편과 좌편에
    46절에는 제자들 간의 논쟁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을 세제자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얘기를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확신에 찼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겠구나 세상의 권세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다스릴 것이다. 드디어 메시아이신 예수가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것이다.” 아마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겁니다.
    그러자 그 제자들 간에 이제 “누가 더 크냐? 누가 예수님의 우편에 앉고, 누가 예수님의 좌편에 앉을 것이냐?” 이런 논쟁을 하면서 제자들끼리 큰 말다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두려워서 묻지 못한 것이기도하지만 도통 들을려 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허용과 망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수제자들조차 예수님의 깊으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베드로의 고백도 허사였다는게 이런 의미입니다. 직접 보고도 이해를 못합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할지 모를 일입니다. 인간의 “믿음없음” 그 자체를 체감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상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영적으로 만나고 기쁨을 누리며 감격한 것을 경험해도 눈을 돌려보면 여전히 위의 제자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게 사실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위대한 영광스런 예수님을 몰라본 것에 끝나지 않는 다는 것이 더 크다 하겠습니다.
    큰 자가 되지 말고 낮은 자가 되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직격탄을 날리십니다.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자가 큰 사람이 된다. 크고자 하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고 낮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높아질 거다. 너희들이 어찌 큰 자가 되려고 하느냐 ?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낮은 자세로 따르라 그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큰 자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배척받은 내용도 담겨져 있고, 그리고 연이어서 57절 하반절에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가만 보면, 제자들을 이해할 듯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으면 뭔가 이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영적인 것든 물질적인 것이든 말입니다. 당시 세례요한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겁니다. 그러면 무언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어야 따릅니다. 귀신을 쫒는 기적을 보든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든가 말입니다. 이런게 제자들에게 없었다면 왜 다르겠습니까? 충분히 이해될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들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고 그 섬김의 최종적인 것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는 것이라는 거 말입니다. 그러니 낮아져야 하는 겁니다. 제자들에게도 이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자리 싸움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것 말입니다. 남에게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낮아지고 섬기는 거 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서 6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걸맞지 않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근심 걱정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을 연이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내가 결혼하고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번에 내가 땅 사놓은 게 있는데 그 땅을 잘 마무리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번에 집에 소가 새끼를 낳는데 그 새끼 낳는 거 보고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때 이런저런 핑계들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한편으로 보면, 그들이 대는 핑계들은 어떻게 보면 정당화할 수 있는 거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당연히 갖추어져야 할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내가 하나님의 붙들린 바 되어져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람들의 저주를 받고 불의한 심판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달리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피를 흘릴 것이다.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해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내가 이것을 완벽하게 하나님 앞에 순종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너희에게 주어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뒤돌아보지 말고 나를 따르라. 하나님의 영광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훈계하시며 확신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요한과 모친 마리아만 있었고 다 흩어졌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말했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당하신 그 참혹한 죽음의 현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적정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생의 현장인 겁니다. 본심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런 연약한 믿음이 있는 겁니다.
    인천 송도역 남인천농협앞, 베짜마 카페에서 이종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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