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석조 감독입니다. ‘면제받지못한자‘ (줄여서 ’면받자‘)라는 웹툰 기억하시나요? 제가 자대 편 초반부까지 그리고, 아직 미완인 웹툰인데요. 워낙 수익성이 적어서, 초판도 판매가 안 된 작품이죠. 이 작품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를 고민하다가 결심했는데요. 이렇게 유튜브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면받자’는 제 군 생활 이야기로서, 그 웹툰에서 사용할 이야기를 유튜브에 맞게 잘 각색해서 편안하게, ‘삽시간’ 애니 형태로 그려낼 생각입니다. ‘축복 소녀’ 그리다가 텀이 길어지면 종종 내보낼 생각이오니, ‘면받자’의 다음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시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6년 9월 18일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자 추억이 여기서 나올줄이야. ㅠㅠ 전역 하루 앞두고... 새벽 5시에 기상을 시키는 선임하사. 그래서 기상 시간 멀었는데 왜 깨우냐고 따지니.... 귀에 와서 속삭이듯 기상이 아니라 "비상" 이라고....강릉 앞바다 무장공비 침투. 그래서 그날 전역 무기한 연기 발표ㅎㅎㅎㅎ 그러다가 다음날 정상 전역이 된 사건. 당시 우리 부대였던 27사 사병도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안타깝게 전사한 사병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ㅠㅠ 이 자리를 빌어 당시 교전중 순국하신 장교와 사병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01년 2월 군번으로 23사단 철벽부대, 삼척 아래 강원도 임원 해안 경계병 출신입니다. 당시, 대체 이런 곳에 어찌 작업했을까.. 막연히, 작업하셨을 선배님들이 존경스럽다 못해 불가사의함까지 느껴지는 구간이 제법 있었드랬죠. 장석조님께서도 그 선배님들 중 한 분 이셨군요. 많이 늦었지만,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충성~!!!
저도 98군번으로 23사단 어찌보면 1기 훈련병인데.. 우리때 68사단 꿈의 부대가 작가님께서 고생하시면서 23사단으로 바뀌고. 11사단이 쓰던 막사로 전입가고 갔는데 23사단으로 훈련소 끝내고 갔는데 선임은 11사단 젓가락부대 마크로 경계 군무나갔던 기억이. 제가 제대하기저 2000년에 새 막사 짓고.. 그랬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강원도 삼척시 교동 인가? 4년전에 갔는데 이제는 역사 속으로 없네요.
저는 부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던 적이 있는데, 상병 꺾였을쯤입니다. 작전 수행하고 있는데, 캠핑카 타고가던 여자들이 길 물어봐서 고참이 길 가르쳐 줬더니 (군바리 뺑이쳐라 우린 놀러간다.) 지금도 기억남! 진짜 부러움이 분노로 바뀌는게 이런거라고 알게 됨! 그래도 제일 부러운건 전역자져. ㅋㅋ
전 가려웠던 단계까지밖에 못가봤는데 심해지면 살이 뜯겨 연골이 보이는군요.. 저 역시 군대에서 허리와 무릎을 다쳐 무거운 짐을 들거나 15분이상 달리면 극심한 통증과 함께 무릎이 부어오르게 되었습니다.. 제대한 분들 정말 고생하셨고 입대할 분들은 안다치는게 최고입니다.. 건강하세요.
98년 해군 3월 군번입니다. 당시 저도 동해에서 근무했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같은 해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쳤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고생하셨습니다. 2000년 제대하고 2001년 복학하고 2002년 오인용의 팬이되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돌아보니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네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참 재밌게 봤었던 오인용의 작품들이었는데 요즘도 활동을 하시는걸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재밌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 요며칠 명화마을과 축복소녀를 정주행 했는데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들 많이 만들어 주셔서 저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쁜 여캐들 볼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지니 많이많이 등장시켜주세용~
92년 3월 102보충대에서 눈오는 날 포차타고 22사단 신교대로 이송 중 미시령 휴게소에서 화장실 다녀오라고 차를 세웠습니다. 동기들과 화장실 갔다가 주차장에서 칼바람과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엉거주춤 자세로 담배 피우는데 산장카페인지 식당인지 안에서 벽난로를 피워놓고 창가 테이블에 하얀 스키복을 입은 남녀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모습이 마치 나와는 다른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30여년 전 일이 희미하게 떠오르는데 그때 머리속에 스쳐갔던 마음속의 결심이 나도 나중에 제대하면 반드시 사랑하는 누군가와 저 자리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겠노라 . . .
98년7월군번 입니다 헌화로 쪽에서 근무했습니다 망상 촞대바위 정말 아련하네요 근무서는데 동해항에서 갑지가 폭죽터저서 뭐지? 하고 보는데 고참이 저배가 금강산 가는 첫 배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으로 저희 소초로 공병들이 철책치러 왔는데 처음 본 잠바?개구리복 잠바? 그런걸 입고 와서는 공사하면서 후임들한테 군기가 장난 아니더라구요 엄청살벌 했던 공병군기를 봤던 기억이나네요
입대전 면제받지 못한자를 읽었어요. 20년전 이야기임에도 훈련병 시절 매주 훈련 받을때마다 면받자를 떠올리며 그게 이거였구나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만 여름 군번이었던 감독님과 달리 전 12월 군번이라 추위와 내내 싸워야 했지만요. 요즘 복무중인 병사 및 훈련병들도 면받자를 공감할까 싶어요ㅎㅎㅎ
와.. 작가님 저랑 같으시네 78년말띠 저는 99년 5월군번입니다 논산출신이고요 21살에 군대 갔는데 ㅎㅎ 문산에 있는 1사단 12연대 의무중대 근무 했습니다. 구타 있었고 부조리도 심했죠 ... 김대중 대통령님 북한 가신 일도 있었고 서해안 1차교전도 있었고.. 진짜 아버지 군번이 이였던 그세퀴 여자목소리 나던 그세퀴 한번만 마주쳤으면 했는데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정도 였는데... 보면서 제 군생활이 다시 기억나네요
96년도에 강릉무장공비 사건 기억하고 있죠. .. 전 고1때라 교련선생님이 수업시간중에 리얼진지하게 이야기 하시더군요 그때 위에 커다란 브라운관티비에 뉴스속보 보면서 다들쫄고 우리동네 오는거 아니냐고 긴장했죠 우리사촌형 군입대했던 시기라 백일휴가때 집에와서 울었다고 들었어요 그 빡쌔다는 백골 철원으로 갔는데 진짜 힘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신남에서 인제 초입에 군축령 넘어 내려오면 우측에 하천옆에 있던 부대 맞죠? 92년 4월군번인데 말년에 그 부대 갔었는데 미대 다니는 내 고등학교 동창놈이 이등병으로 있던데 님 전에 미대고참이 그놈이 아닐까요 ㅎㅎ 매일 부식차량을 몰았는데 제2전차대대에서 부식수령하러 다니던 생각이 나내요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장석조 감독입니다.
‘면제받지못한자‘ (줄여서 ’면받자‘)라는 웹툰 기억하시나요?
제가 자대 편 초반부까지 그리고, 아직 미완인 웹툰인데요.
워낙 수익성이 적어서, 초판도 판매가 안 된 작품이죠.
이 작품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를 고민하다가 결심했는데요.
이렇게 유튜브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면받자’는 제 군 생활 이야기로서,
그 웹툰에서 사용할 이야기를 유튜브에 맞게 잘 각색해서
편안하게, ‘삽시간’ 애니 형태로 그려낼 생각입니다.
‘축복 소녀’ 그리다가 텀이 길어지면 종종 내보낼 생각이오니,
‘면받자’의 다음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시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 화이팅!!
장감독님 감사합니다
10년 2월 군번인데 입대하기전에 친구가 사줘서 보고 갔고 아직까지 집에 책장에 잘있습니다 ㅎㅎ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그거 삿습니다--!! 아직까지심심하면 보고있네요^^ 훈련병 두부설사 찍 싼거 아직도 기억 ㅋ
기다렸잖아...
촛대바위에서 해안근무했던 00년5월 군번 23사단 출신입니다.장석조감독님 부대가 설치한
철책이었군요.여긴 근무투입,철수할때 걸어다니기도 힘든곳인데 이런곳에 철책작업을
하셨다니,게다가 140명으로 200명분 작업이었다니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도
안가네요.수고하셨습니다.
그러게요 사연자 분 고생 엄청 하셨네요
그때 동두천에 있던 일병이었는데 빨간 계급장 때문에 공비들에게 우리 병들이 쉽게 보였다해서 검정 계급장으로 바뀐것은 기억나네요
96년 9월 18일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자 추억이 여기서 나올줄이야. ㅠㅠ 전역 하루 앞두고... 새벽 5시에 기상을 시키는 선임하사. 그래서 기상 시간 멀었는데 왜 깨우냐고 따지니.... 귀에 와서 속삭이듯 기상이 아니라 "비상" 이라고....강릉 앞바다 무장공비 침투. 그래서 그날 전역 무기한 연기 발표ㅎㅎㅎㅎ 그러다가 다음날 정상 전역이 된 사건. 당시 우리 부대였던 27사 사병도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안타깝게 전사한 사병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ㅠㅠ 이 자리를 빌어 당시 교전중 순국하신 장교와 사병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어?
그 시절 군생활 하셨군요.
저도 헌병이라 군단으로 이동해서
8군단으로 파견가서 도로 봉쇄 했습니다.
3개월동안 뒤지는줄...
ㄷㄷㄷㄷㄷ 미필인데 개무섭네요
01년 2월 군번으로 23사단 철벽부대, 삼척 아래 강원도 임원 해안 경계병 출신입니다.
당시, 대체 이런 곳에 어찌 작업했을까.. 막연히, 작업하셨을 선배님들이 존경스럽다 못해 불가사의함까지 느껴지는 구간이 제법 있었드랬죠.
장석조님께서도 그 선배님들 중 한 분 이셨군요. 많이 늦었지만,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충성~!!!
저도 98군번으로 23사단 어찌보면 1기 훈련병인데..
우리때 68사단 꿈의 부대가 작가님께서 고생하시면서 23사단으로 바뀌고. 11사단이 쓰던 막사로 전입가고 갔는데 23사단으로 훈련소 끝내고 갔는데 선임은 11사단 젓가락부대 마크로 경계 군무나갔던 기억이. 제가 제대하기저 2000년에 새 막사 짓고.. 그랬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강원도 삼척시 교동 인가? 4년전에 갔는데 이제는 역사 속으로 없네요.
그 당시 사단장이 1군사령관-합참의장-국방부장관까지 되었다군요~
@@ow3es7owj8os 김태영 장군이죠 김태영 장군이 부임했을때 상비사단으로 승격되서 소장이 맡게된거죠 23사단 수방사령관 1군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한거죠
저는 부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던 적이 있는데, 상병 꺾였을쯤입니다. 작전 수행하고 있는데, 캠핑카 타고가던 여자들이 길 물어봐서 고참이 길 가르쳐 줬더니 (군바리 뺑이쳐라 우린 놀러간다.) 지금도 기억남! 진짜 부러움이 분노로 바뀌는게 이런거라고 알게 됨! 그래도 제일 부러운건 전역자져. ㅋㅋ
죽이고 싶었겠네요
@@메탈슬러그-e4m네, 왜 남자만 가는 군대를 여자들이 비웃는걸까요?ㅠ 서글펐지요!
양아치네요 폭언을 날리다니ㅋㄱㅋ
미친년들이네요...
여성도 징집하자
이편은 너무슬프다
우리나라 국군장병들
정말 귀하게생각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군대에서 제일 부러운 존재는 당일 전역자지 ㅋㅋㅋㅋ
@@멋재이오병장 일상생활 가능?
10년도 2월 23사단 출신입니다 그험한길을 2달만에 철책 설치라니
제몸 힘들어 별생각 없이 근무했는데 선배님들의 피와땀으로 만들어진 길이였군요 ㅠㅠ
고생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감독님
간부새끼들 진급을 위한 무리한 작업ㅋㅋㅋ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군대서 제일 불쌍했던 후임 하나가 갑자기 생각나는데 원래 입대전부터 허리가 안좋아서 의무대 외진도 자주 나가던 일병이 하나 잇엇는데 결국 의가사 처분받고 집에갓던 후임이 생각나네요... 군대서 안다치고 무사히 전역하는것만으로도 참 감사한일입니다.
의가사가 아니라 의병전역 입니다
제가 98년 11월 군번인데..
삼척에서 군생활했는데 작가님이 만든 소초 및 철책을 사용했네요.
고생하셨고 고맙습니다.
바닷바람이 엄청 ...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team5p 선임보다 고생했을까요? 전역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작가님 에피소드 보면 공감 가는 일화가 많습니다. 옛날 유트브 없던 시절 어찌어찌 봤던 작품을 다시 보며 구독하고 좋아요 눌러용. 홧팅 하십시요.
이번편은 정말 ptsd가 오는 편이로군요.. 우리 대대에는 이미 물건너간 진급에 병사들 갈아넣는 운영과장이 있었는데 훈련기간만 되면 참 죽고싶게 힘들었습니다
저는 04군번GOP 였는데 저 말도안되는작전(?) 작업 엄청 공감합니다ㅠ 해안선이 아닌 산악에서 작업한게 다르긴한데 너무 공감갑니다. 저 미친짓은 진짜 작업이 아닙니다. 진짜 너무 괴로운일입니다.
전 가려웠던 단계까지밖에 못가봤는데 심해지면 살이 뜯겨 연골이 보이는군요.. 저 역시 군대에서 허리와 무릎을 다쳐 무거운 짐을 들거나 15분이상 달리면 극심한 통증과 함께 무릎이 부어오르게 되었습니다.. 제대한 분들 정말 고생하셨고 입대할 분들은 안다치는게 최고입니다.. 건강하세요.
군인 일하는곳에서 데이트하는건 아니다
그래봤자 결혼이야
최상인지 최악인 모르지만..
중간아닌 끝은 결혼이야
@@beringSea일부 '러'
경제력 10위권이 대한민국이 될수있는 이유 군인에게 돈이 안들어가니깐
장감독님 동해 철책 설치하셨군요..
저도 당시 23사단 철벽부대 근무하며 해안경비하였는데 이 철책 다 누가 설치했는지 당시에 엄청 고생했겟다.. 생각했엇는데 장석조감독님 부대가 설치하셨다니... 하 고생 많이햇네요
눈물겨운 고생담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작가님.
98년 해군 3월 군번입니다. 당시 저도 동해에서 근무했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같은 해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쳤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고생하셨습니다.
2000년 제대하고 2001년 복학하고 2002년 오인용의 팬이되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돌아보니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네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98년 3월이면 421기? 쯤 되시겟네 ㅎㅎ
@@아웃토반 맞습니다^^
@@kim4609 제가 98년 2월 420기 입니다 반갑습니다
자대배치 받고 짐 풀고 씻는데 당직 서던 동창이 와서 인사 하면서 한달 남았다는데 발가벗고 동창한테 긴장한 모습으로 다나까 쓰던 모습을 생각하면 참..
매번 재미나게 봤는데 이번 내용은 욕나옴... 군대가 참 ㅈ...
노가다 뛰면 일당이라도 두둑하개 받을 일을 잔업도 새벽부터 밤까지... 이건 진짜 노예다
취사병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제가 자대들어왔을때 말년은 김치만 썰고 그냥 쉬러가는게 제일 부러웠음.. 우린 뒤지도록 일하는데 ㅠㅠ
저희부대는 왕고는 간만 보구 신병이 설겆이과정 끝나면 김치써는 칼질햇는데 ㅋㅋ
촛대바위 두번인가 놀러갔었는데 이렇게 애잔한 사연이 서린곳이었을 줄은...ㅋㅋㅋ
제가 이등병 전입오고
전역하던 병장이 그랬죠
'니가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병사가
다 집에가야 너도 가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그말 들었을때가 제일 현타왔어요 ㅋㅋ ㅠㅠ
ㅋㅋㅋ 비슷한 말인데 신병 전입후 중대 일과 집합때 중대 왕고가 저한테.... 여기있는 중대원 120명 다 집에 가야 너도 간다? 했을때 진짜 살기 싫었어욬ㅋㅋㅋㅋㅋ
ㅋㅋ 난 이등병때 병장이 눈감아봐 해서 눈감으니 뭐가 보이냐고 물어보니 깜깜합니다 했더니 병장 왈 ~~ 어~ 그게 네 군생활 이야 ㅜㅜ 그때 진짜 깜깜 했든데 ㅋ
ㄹㅇ 이건 국룰이구나; 전입 첫 아침점호 때 모레 집가는 병장 놈이 “여기 대대 500명 집가야 너도간다?” 동기 빼고 470명이라고 혼자 계산했눈데 ㅠ
옛날에 참 재밌게 봤었던 오인용의 작품들이었는데 요즘도 활동을 하시는걸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재밌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
요며칠 명화마을과 축복소녀를 정주행 했는데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들 많이 만들어 주셔서 저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쁜 여캐들 볼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지니 많이많이 등장시켜주세용~
저랑 동갑(78년생) 동기 군번이심...감정이입이 되네요.. 건강하시고 화이팅입니다.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복무땐 군대랑 상관없는 모든 것이 부럽죠ㅎㅎ
휴가나왔을때 도로 표지판조차도 부럽더라구요...
동해 철책 초소 작업 이야기는 정말 뺑이쳤다고 귀따갑게 들었는데
영상을 보니 정말 뺑이친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최악이었네요;;
난 훈련소에서 집에가는사람이 제일부럽더랬죠 다시와야하는걸 알지만 그때는 그게 왜이리 부러웠는지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 잘보겠습니당!
의가사 제대한 후배를 부러워 했지만 부모님이 함께 돌아가셔서 그렇단 소식에 너무나 안타깝던 기억이 생각나네요. 뭐 사는데 그 속사정 알아보면 그닥 그렇구 드런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구요
앗~! 계속 만드는구나 즐감할게~ 면제받은자라서 공감은 덜하지만 후배들 자랑스럽당 화이팅하고 새해 복 많이 받오~~ form : 들판에
와 ㅠ 제가 08년도 23사단 근무하면서 해안 절벽 철책보고 정말 미친짓이다 누가했을까 생각했는데 여기 있었군요 ㅠ이게 과연 사람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결국 저 자신도 철조망을 나르게 된ㅋㅋㅋ
범죄자도 인권이 있는데 막상 나라를 지켜야하는 군인의 인권은 없는나라
와........ 정말 정말 고생이 많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군대에 있을때 다 서럽죠 저도 후임 한명이 입대하자마자 1~2달 뒤에 전역하더군요
비슷한 사례였습니다. 부모랑 형제 가족중에 일할수있고 수입이 있는게
그 친구 혼자 였다더군요 전산착오 같은 걸로 입대했는데 면담을 통해서 전역처리 되더군요
저도 농업고라 2학기때 취업나가야해서 선생님이랑 상담해서 03년 11월에 102보충대로
입대했네요 ㅎ 보충대부터 7사단 5연대 지오피까지 원빈이랑 같이 군복무하다 다쳐서
의병제대 해버리더라구요 진짜 빡빡 밀어놔도 남자들 오징어 되버리더군요
미성년에 입대하고 자대배치 받고 1살많은 84년 그리고 간부들이 하는말이 미성년놈이 합법적으로 연초 보급 받아 필라고 군대왔냐 하더군요 ㅎㅎㅎ 04년 1월이 되서는 민증에 먹물 말랐다면서
뒷통수좀 많이 맞았구요 ㅎ
제가 병장때도 집안 형편으로 이등병이 제대하고,같은 동기가 6개월 방위로 가야 하는데 우리 이기자(27사단)에 와서 함꺼번에 전역했는데...우리는 부러움 보다는 같이 입대했는데 우리 중대에 혼자만 남은 동기가 걱정이라서 늘 챙겨주었던 생각이 나네요!!!
12년 복무하고 몸이 안좋아져서 전역 했습니다.
군 생활때부터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8:57 결국 결혼은 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이군요.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기가 있었던 부대가 제일 힘들다고 하지만. 정말 힘든 군생활 하셨네요. 요즘 젊은 여자애들이 군캉스다 뭐다 하는데 미쳐돌아가는거 같습니다
와.....제가 빠른년생이라 21살 5월이 전역 2개월 전이었고 그때 새로 들어온 신병이 29살이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절 그렇게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 사람은 그 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거 같아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춧대바위 위쪽에 안인(영동화력발전소)에서 근무했던 23사단 출신(00년 1월 군번)입니다... 지역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 사단 작업 해 주셨네요... 근무서면서 이걸 누가 만들었지? 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바로 옆에 계셨네요...ㅋㅋ
오 잠만 동해안? 와우 제가 그위에 산에서 GOP 근무했었는데 어제 찐전역하고 제대했는데 즐겨보시던 분이 엄청난 대선배셨군요 그 초소들 다 장석조 감독님이 지었다니 고생하셨습니다 충성!
92년 3월 102보충대에서 눈오는 날 포차타고 22사단 신교대로 이송 중 미시령 휴게소에서 화장실 다녀오라고 차를 세웠습니다.
동기들과 화장실 갔다가 주차장에서 칼바람과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엉거주춤 자세로 담배 피우는데 산장카페인지 식당인지
안에서 벽난로를 피워놓고 창가 테이블에 하얀 스키복을 입은 남녀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모습이 마치 나와는 다른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30여년 전 일이 희미하게 떠오르는데 그때 머리속에 스쳐갔던 마음속의 결심이 나도 나중에
제대하면 반드시 사랑하는 누군가와 저 자리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겠노라 . . .
헉.. 아직도 귀에 이상이있으시다니.. 몸 성히 전역한게 진짜 축복받은거네여
하.... 고생많이하셨네요...
복무하신곳이 동해안이셨네요 저는 강릉토박이라 무장공비사건때 무서웠어요 ㅜㅜ 여튼 해안 초소 공사 하시느라고생 많으셨네요
헉... 동갑이셨네요...ㅋㅋㅋ 그래서 더 현실감이...ㅎㅎㅎ
와...진짜 스티붕유, 아르헨도....등등 군기피자들....
면제받은 xx들에 대해서 왜 분노하는지 알게되는 영상이네요....ㅎ
장석조작가님 군생활 정말 고생하셨네요...
?? 기피자가 아니라 저렇게 강제징용시키고 나 몰라라하는 헬조센한테 분노해야지 아직도 노예끼리 사슬자랑하누
요즘드는생각인데
난 유승준이 그렇게까지 잘못한건가싶다
군대는 안갈수있으면 안가는게 최선이지
@@맹구-s7q 혹시 발치몽이세요?
마지막 한탄 할때 현웃 터졌넼ㅋㅋㅋㅋㅋㅋㅋ
어으, 정말 90년대 군대는 더했군요...
밀레니엄 시절때 군대도 이정돈 아니었는데 ㄷㄷ
87년 1월 제 2 훈련소 29연대 입대. 조교 박범찬 하사. 제 기억 한켠에 외딴섬처럼 잊혀지지 않는 이름. 정말 터프하고 멋진 사나이이었죠. 점호 내무반 복도를 다니며 반야바라밀다를 왼다든지 내주의 보혈은 찬송을 부르기도 할때는 얼마나 웃기든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정말 고생 많으셨네요ㅠㅠ
예나 지금이나 커플들 보면 항상 부럽습니다ㅋㅋ
제가 82년 상남에서 3중대에서 근무했습니다.아홉싸리고개에 있던 1중대에도 놀러가곤했는데...많이 반갑습니다.3군단 이야기만 들어도 좋습니다.
11시에 재우고 4시30분에 기상인데 불침번까지...진짜 미친건가ㅋㅋㅋ
대한민국 모든 현역 다녀오신분들
모두 고생많으셨습니다~
와... 나는 진짜 개꿀빨았구나..
군대안에서 했던 불평불만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영상이었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1:36 크게 한 번 웃었습니다ㅎㅎ 스티붕 ㅋㅋㅋ
1:37 군대 관련 이야기에 절대 빠지지 않는 국민의 적 스티붕유
나 군사적 또라이 중대장이 생각나는데 내일 전역하는 사람을 오늘 애간근무를 시켰다.
젠장
고생많이 하셨어요 ㅜㅜ
토닥토닥 고생하셨어요 그때 그렇게 고생해주셔서 그때 잘지냈어요
98년7월군번 입니다 헌화로 쪽에서 근무했습니다 망상 촞대바위 정말 아련하네요
근무서는데 동해항에서 갑지가 폭죽터저서 뭐지?
하고 보는데 고참이 저배가 금강산 가는 첫 배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으로 저희 소초로 공병들이 철책치러 왔는데 처음 본 잠바?개구리복 잠바? 그런걸 입고 와서는 공사하면서 후임들한테 군기가 장난 아니더라구요 엄청살벌 했던 공병군기를 봤던 기억이나네요
87년도에 산 중턱 깍아서 간부용 테니스장 만들던 생각이 나는군요 ㅠ.ㅠ
단지 삽과 곡괭이만 가지고 ...(한겨울에 땅이 얼어서 파지지도 않았는데.......................)
88년8월 군번인데 이갈리는 군생활30개월이었지만 세월많이가면 다 그리워요 ㅠㅠ 춘천지날때 큰맘먹고 철원경유자대앞에 위병소 후배들보니 참인생이ㅠㅠ 모두들 수고했어요~~
복무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그립다니... 어찌 그런 끔찍한 말씀을... 😢
전 군대 얘기만 들어도 모조리 다 부셔버리고 싶고 욕밖에 안나와요!😡
@@내셔널가이 민방위 끝나면 젊은 시절이 그립죠.. 님도 그러실 겁니다
@@내셔널가이 누구나 군대는 욕나오지만 그 젊음 자체가 그리운 법이에요 ㅋㅋㅋ
3:51 저 택시기사 김창후 이병 탈영사건때 택시비로 김창후가 훔친 오리 받은 그 아저씨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입대전 면제받지 못한자를 읽었어요. 20년전 이야기임에도 훈련병 시절 매주 훈련 받을때마다 면받자를 떠올리며 그게 이거였구나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만 여름 군번이었던 감독님과 달리 전 12월 군번이라 추위와 내내 싸워야 했지만요. 요즘 복무중인 병사 및 훈련병들도 면받자를 공감할까 싶어요ㅎㅎㅎ
그래도 군대 또 가고싶다.
꿈도많고 몸도 내맘대로 움직여지던 파릇파릇하던 20대초반 그때로 돌아가고싶다.
96년도 자대 전입 하자마자 유격훈련이 잡혔었는데..
강릉무장공비 침입으로 유격훈련 취소되서 꿀 빨았던 1인 입니다..(__)
공비들한테 고맙다고 하면 안되겠죠?
웅컁컁컁..;;;
어이쿠야. 선배님이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와.. 작가님 저랑 같으시네 78년말띠
저는 99년 5월군번입니다 논산출신이고요
21살에 군대 갔는데 ㅎㅎ
문산에 있는
1사단 12연대 의무중대 근무 했습니다.
구타 있었고 부조리도 심했죠 ...
김대중 대통령님 북한 가신 일도 있었고
서해안 1차교전도 있었고..
진짜 아버지 군번이 이였던 그세퀴 여자목소리
나던 그세퀴 한번만 마주쳤으면 했는데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정도 였는데...
보면서 제 군생활이 다시 기억나네요
초등학생때 학원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깔깔웃으면서 보던 아기돼지삼형제가 생각나네요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12월 31일에 입대 했습니다. 그 기분을 알랑가 모르겠네요
2002 월드컵 때 연병장에 쭈구리고 축구 볼 때 사회는 미친 분위기... 꽁술과 함께 활짝 마음이 오픈된 처자들 ㅡ,.ㅡ 아놔~
1번 개공감.. 전입간 자대에서 일주일뒤에 전역하는 동갑있었는데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음
역대급 꿀잼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ㅠㅠ 20대 그 젊은 나이에..ㅠ 최저시급도 안되는 월급에 노예급으로 혹사시키고 밥도 제대로된거 안먹이면서..ㅜ
커플들 군인들 앞에서 그러지마라ㅠㅠ
작가님 군대있던 곳이 저랑 똑같은데요 ㅎㅎㅎ 안인진리에서 근무 하셨나봐요 저는 삼척 동해 강릉 이순으로 갔는데 촛대바위 오랜만에 듣네요 ㅎㅎㅎ
96년도에 강릉무장공비 사건 기억하고 있죠. .. 전 고1때라 교련선생님이 수업시간중에 리얼진지하게 이야기 하시더군요 그때 위에 커다란 브라운관티비에 뉴스속보 보면서 다들쫄고 우리동네 오는거 아니냐고 긴장했죠 우리사촌형 군입대했던 시기라
백일휴가때 집에와서 울었다고 들었어요 그 빡쌔다는 백골 철원으로 갔는데 진짜 힘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공병 병과지만... 후방인지라 오만 개꿀을 빨았던지라 데빌성과는 극락과 지옥차이의 군대생활이었군요. 웅컁컁
77년생 98군번 극히공감
2년 늦게 군대감
그맘때 태풍직격탄으로
맞아 개고생 지독히함
여수반잠수정 우리사단 초비상
군생활 하면서 일게 병이 포스타
3번봄 ㅠ ㅠ
13년 1월 20살에 지원
13년 2월 고졸
13년 3월입대
14년 21살 12월에 전역
군대동기들도 다 형들이였고
상꺽~병장때 신병이 25~29살형들..
속으로 승리자라고 느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신남에서 인제 초입에 군축령 넘어 내려오면 우측에 하천옆에 있던 부대 맞죠? 92년 4월군번인데 말년에 그 부대 갔었는데 미대 다니는 내 고등학교 동창놈이 이등병으로 있던데 님 전에 미대고참이 그놈이 아닐까요 ㅎㅎ 매일 부식차량을 몰았는데 제2전차대대에서 부식수령하러 다니던 생각이 나내요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그때동해시에살고잇엇는데..공비땜에 야영도못헷엇는데.. 그때고생많이 하셧구나.. 감사합니다 ..그때 초등하꾜 5학년 .ㅋ
내가 적으로부터 열심히 지킨 나라가 적에게 팔을 벌리고 있었을 때... 그 때 그 박탈감과 분노...
훠훠훠 북한동포 여러분 훠훠훠
그럼 니 자식들도 계속 그렇게 적대하고 고생해야 되겠냐?
거의 20년전. 강원도 인제 원통 12사 37연대 1대대 4중대 2소대 81미리 박격포. 전입 며칠후 말년 병장 말년 휴가 나가기전 더블백 정리하면서 꺼낸 디스 담배 한갑. “야 신병, 이 디스가 너보다 2년 고참이야. “. 그랬다. 자기가 처음 받은 연초중에 한갑 더블백에 남겨둔거라고 했다. 그 디스 한갑이 부러웠다 나는. 거점 s-7까지 다섯개 중대가 나눠서 산꼭대기까지 눈 치우던것도 생각나고 정고개 할떡고개 말고개 생각나네. 김윤호 병장님 어디선가 잘살고 계시죠?
저도 군대꿈 종종꾸는데
처음엔 일어나서 욕하다가
이제는 집이라는 사실에 씨익웃습니다.ㅋㅋㅋ
첫번째 두번째는 절대 부러운게 아니죠
대학도 못 다닌 케이스
소년가장 케이스
요즘에야 기간이 엄청 줄어서 21살병장전역이 굉장히 흔한일이됬죠 ㅎ
저는 94년 군번인데요 20살에 입대해서 23살에 전역 했습니다.94.12.8~97.2.13 5일 손해봄 지금은 모르나 그 때는 무조건 전역은 목요일~
그게 나임
는 작년 11월 전역
진짜 고생하셨네요.. 04 군번인 저는 비비지도 못 할 정도네요..
94년 여름 화천에서 m60메고 행군하고 있는데 강가에 놀러온 행락객들 보니
지옥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달까
개졸잼 ㅋㅋㅋ 하... 어찌그리나오고 싶었는지...후
개인적으로 장석조 감독님의 군생활중 가장 외롭고 슬프고 힘들었던, 말로 다 못 표현할 만큼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8:45 군대가 아니었어도 저기 있었을까요? (앗, 아아....)
광고끝까지 다밨네요 ㅎㅎ
옆포대에 어렸을때 아는놈 있었는데
상병땐가 자대전입옴
전 걔를 기억했지만 걔는 절 기억못하는줄 알았다가
전역하는날 걔는 근무나가는데
절보더니
"와 쟤 전역하네...와..."
이게 짬때문에 아는척하기 애매했던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다른부대인데 뭔상관ㅋㅋ
아니 이렇게 재밌는데
구독자가 안늘어 !!!
전 05군번인데 정말 한 몇장면? 이라고할까 이런것들빼고는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대단하십니당 그만큼 전 편하게 군대갓다왓나봐요 기억이 잘안남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