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전직 한의대 교수인데요. 족삼리는 일본의 한방에서 꽤 중요시하는 자리고요, 현재 한국에서도 여러 질환에 치료혈로 쓰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지금이야 간접구라고 뜸과 피부 사이에 뭔가 물체가 있어서 화상을 방지하지만, 그 당시 뜸이라는 건 직접구가 많아서 화상은 잘 입었을 겁니다. 제가 학생때 의료봉사 같은 걸 가면 나이 드신 할머니들 보면 거기에 화상 자국 있는 분들 꽤 있었습니다.
에도시대도 참 흥미롭네요ㅎㅎ 저는 에도 하면 막부말 정도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알면 알수록 재미 있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특히 실용적인 문화가 이목을 끄는 것 같습니다. 대하드라마나 역사 영화는 정말 고증이 철저하군요...! 작은 부분에까지 하나하나 의미가...... 최근에 NHK 대하드라마 부서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후 우리나라 대하드라마의 맥을 잇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는데, 이것저것 많이 배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유익한 영상 잘 보고 있어요! 바쁘셨을 텐데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포도님께서 NHK대하드라마 같은 전통있는 대하드라마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방송 프로그램에도 우직한 전통이 팔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 라면 같은 대한민국이 "국가적 성공 철학"을 바탕으로 한 층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포도님 같은 분이 많이 나와야 겠지요 !!!
일본은 하체 노출에대한 꺼리낌은 없었습니다. 대신에 가슴등을 비롯한 상체는 꼭 보호하려는 습성이 있었구요, 반대로 한국과 중국은 하체는 반드시 노출하면 안되는 중요한 신체 부위였던 반면에 상체 노출은 꺼리낌없이 드러냈었구요. 아마도 이 것은 일본이 정식 국각 되기 이전부터 더운 날씨와 잦은 아열대성 비 등이 잦았던 대만.오키나와 지역 등지로 부터 넘어온 원주민들의 기후에 따른 의상 착식이 그대로 에도 시대까지도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인위적인 사무라이들의 의식적 풍습과 함께 복합적으로 엮어져 이어진듯 합니다만...
@@mooyook2 선생님께서 어른스럽고 점잖게 답글 달아주셔서 어떻게 답글 달아야 할지 고민 했습니다. 보통은 의견이 다를 경우 감정적인 댓글이 달렸기에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 현실과 과거는 여러가지로 다르고 타국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에 조롱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물리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부족한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somgurm106 아참 그리고 일본의 남성 복장중 훈도시 위로 배를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던 풍속은 사무라이 문화중에 할복(스푸쿠)과 단지(손가락 자르는 )이라는 풍속이 있습니다. 적군한테 복종하지 않기 위해, 혹은 자신이 따르는 주군들과 단체를 위해 목숨을 걸어 맹세를 하기 위해 배를 가르고 할복을 하기도 하죠. 그래서 배는 소중한 곳이자, 할복을 하는 의식에서 기왕이면 숭고하게 하고자 천천히 분위기 고조하며 의식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천을 칭칭 동여 매었던 것을 풀면서 시간을 끌어야 하고 할복을 하고 난 다음에 증표로서 칼에 묻은 피를 천에 담아두고자... 그 아까운 천을 배를 칭칭 동여매었던... 반면에 훈도시 찼던 곳이 물에 젖고 풀리던 말던 아래 성기나 불알이 다 노출되어 내 형수가. 내 어머님이 내 누이가 동네 아줌마나 아가씨들이 보아도 무방한... 마츠리 복장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위 영상속에서 나오는 무릎보호대인 모모다치는 일본의 방 바닥은 온돌문화인 한국과 달리 다다미라는 차갑고 거칠은 소재의 마감재를 사용하기에 무릎이 까지고 다칠 염려가 많아서 첫째 사용하게 된 것이며, 영상에서도 거론햇듯이 일본은 무플 아래의 삼혈에 뜸을 든다고 하는데 그만큼 다다미가 굉장히 냉하고 습하기에 무릎 아래 다리가 냉병이 잦을 수 밖에 없어서 뜸을 뜨게 된 경우입니다. 그래서 무플 보호대를 평상시에는 뜸뜬 자리를 가리고 무릎을 끓고 앉을 때에는 무릎위로 끌어 올려서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현재도 인천이나 부산등지에는 일본식 다다미 집안 구조가 남아 있는 곳이 있는데 제 부모님들이 젊어서 다다미방에 놀러가면 항상 춥고 차가웠었다는 기억만 남는다며 .. 더구나 한국은 겨울에 엄청 추운데 왜 길거리에서 훈도시만 입고 다니고 그러고는 춥다며 집에 들어가서 난로불을 쬐는 일본 사람들 보면 의아해하셨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날씨 추운날에는어르신들이 다다미방으로 된 일본식 집에 사는 친구네 놀러가지말라고... 특히나 여자는 아래를 춥게하면 나중에 냉병이 생기는등 고질적 부인병이 생기니 절대 놀러가지 말라고 잔소리도 하고 그러셨다네요.
@@somgurm106 제가ㅡ 덧글을 단게 하나 더 있었는데 사라져버렸네요,,, 제가 친일사대극우집단들에 대한 비판을 가한 내용을 담아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없어졌네요, 백년의 역사라는 친일사대극우집단 채널의 요망한 내용을 다시 덧글을 달기는 그렇고 ,,, 간략하게 제 입장을 전해드리죠. 그래도 이 채널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본에 대한 문화와 역사의 한 편린들을 오타쿠 정도의 내용으로 취미삼아 다룬 것들이라 그냥 지나치듯 자료 볼려고 들어와보게 되었지만, 백년의 역사라는 채널은 한국의 단점중에 좋지않은 것들만 골라 골라서 올려 놓고는 이런 조선을 개화시켜준 은인이 위대한 일본이라는 식으로 왜곡 편집해서 올리는 패악무도한 곳이지요. 그 곳 한 번 들어가보면 그날 머리속은 정말 둔탁한 몽둥이 맞은듯한 ... 역사에 대한 공부나 견지는 내 나라임에 무조건 좋게 보아서도 안되고, 남의 나라임에 무조건 비난해서도 안되고 제 3의 객관적 시선에서 왜 그런 역사가 있었는지 그 원인과 발달,쇠퇴 과정을 들여다 보려하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국뽕도 좋은게 아니지만, 주체적 의식없이 사대주의 하는 의식은 자기 자신을 썩은 시체와도 같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혹여나 제가 친일주의자이였나 생각하셨나보군요...ㅎㅎ
반일감정,불매운동 ,일본의역사왜곡 등 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일본 역사의 틈 을 애기하는 것에 깊은 감동과 배움을 느낍니다 ,바라건데 일베나 친일이 아닌 "역사적으로 정확한 팩트"를 있는그대로 전달하는 채널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것은 매우중요합니다 !매의눈으로 보고있습니다 ,
저는 일본 무척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냥 일본인들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일본 역사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영상을 일본인이 봐도 내용적으로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다들 용어에 조심하지요. 친일, 지일, 반일, 혐일, 극일, 용일.... 이 굴레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깊이를 알개 되면 일본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한 두려움을 정확히 인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할 겁니다. 제 채널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samurairomance 아닙니다 . 젊은 분들은 조금 느리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중년 넘어서면 결코 느리지않습니다 . 생각하면서 느끼면서 말씀듣기에 편한 속도입니다 .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닌 정치사상문화관습 등 다방면으로 생각할 것이 많고 우리와는 너무 다른 문화를 접하는지라 빠르지 않은 적절한 속도인 지금이 좋습니다 .
오늘 처음 보는 채널인데 디테일한 설명과 자료,지식에 구독버튼을 눌렀습니다 영상수와 기간을 본후 구독자를 보니 조...존경스럽습니다 일본문화를 잘 알고 계신것 같아 질문을 드리고싶은데요 일본은 옛날 시대 그림이 많이 있는데 수묵화(?)임에도 그상황과 상태를 가늠 할 수 있을정도로 자세하게 묘사 하는게 일본그림의 특징인것 같아요 일본의 그림 문화(?)가 이렇게 발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댓글로 설명해주셔도 좋지만 후에 영상소재로 다뤄주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여 조선 시대에 그려진 부산진순절도와 동래순절도에도 일본군이 저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와 궁금했는데 효율적이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일단 겨울에 추우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데 반바지 차림이란 것은 큰 약점이 될 수 있을텐데... 그럼 전국 시대의 병사들도 겨울에 저런 옷차림을 하고 싸웠을까요?
말씀을 보고, 동래순절도 그림을 찾아보고 좀 의구심이 듭니다만... 동래전투가 4월이었는데 기후적으로도 맞지 않는 복장이며, 누가 봐도 공격진의 복장도 아니고, 코니시 유키나가의 하타사시모노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친 프로 전투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전통적 "왜구"의 모습이지요. 그냥 그림을 보고 퍼뜩 든 생각입니다만, 1700년대에 그려진 그림의 특성상, 정확한 전투 상황 재현보단 그냥 정황을 그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일본군을 단순한 "왜구"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네요. 이 그림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광장히 흥미롭네요. 좀 더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살짝 이해가 안가는게 하카마를 발목 언저리에서 정강이 절반쯤으로 살짝 높여 만들어 입으면 안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사극보면 교토 공가들이나 높으신 분들이 바지 길이를 택도 없이 길게 해 걸을 때마다 아주 바닥을 질질 끌던데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무더운 여름 날에는 저렇게 걷어올리는건 해볼만하지만 겨울에도 저러니 이상합니다. 갑옷을 입을땐 촘촘히 잘 싸매더만 평상시엔 그러면 안된다는 규정이라도 있었나요? 무릎 밑 삼각천도 좀 이상합니다만 평소 무릎꿇고 앉는 생활방식에 편했다면 이해가 갑니다. 솔직히 너도나도 여행가는데 뜸자리는 반드시 생기기 마련인데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국시대에 어떤 이유에서든 길을 닦아놓은 일본이지만 그뒤 시대에 어째 말은 잘 이용안했을까요. 어떤 만화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일본 음식만화 중에선가 급한 소식 전하는 발빠른 사람이 훈도시만 입고 겁나 뛰다 쓰러져 주인공의 요리를 먹고 힘을 되찾는 그런거가 기억납니다. 땀뻘뻘 흘리며 정신없이 뛰다가 쓰러질바엔 그냥 말타고 길따라 쭉 달리면 되지 않았을지 의문입니다. 참근교대 하는 에도시대에서 여전히 길 정비는 잘했을터 몽골제국이나 조선처럼 역참을 세우되 평탄한 길 구간 사이에 놓아서, 역참에서 말을 대여해줘서 쭉 달리는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상업이 발달한 에도니까 민간에서 역참 세워도 될듯 싶은데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이젠 질린 지식이지만 다케다 기마군단이 허구라는건 이런데서도 근거가 나오는듯 합니다. 기마군단이 있을 정도면 그뒤에도 어느정도 말이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 사회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리고 에도경제 특성상 말 사료값 못댈 정도는 아닌데 저렇게 다들 걸어 다닌거 보면 말입니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말이 많이 일상생활에 쓰인 것은 아니지만 군마나 파발마 정도만 썼지만 그건 일본처럼 길을 정비하지도 않고 배를 통해 물류배송을 했으니까란 이유가 달립니다만 저렇게 길을 열심히 정비해놓고 말들이 많이 안달린 일본은 진짜 길낭비를 한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등성할 때, 다이묘나 상급 무사들의 경우에는 종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짐을 들게 할 수 있었지만, 하급 사무라이와 츄우겐 등으로 이루어진 등성행렬 인원들이 추가로 하카마를 한 개 더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등성행렬 역시 주변에, 위엄있고 강하게 보이는 것이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저런 모습이 연출되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토호쿠 지방이 아닌 다음에야 겨울이라고 해도 그렇게 까지 춥지는 않기도 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예외 사항은 없었는지 여부는 추가로 조사해 봐야 알 갓 같네요. 뜸자리가 대단히 흉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카마를 걷아 올리는 "모모다치"를 했을 경우에 "산리아테"를 착용하는 것이 일종의 장신구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도 생각합니다.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미의식을 현대 한국인의 시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저도, 굳이 저런걸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미의식을 보면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쇼군을 알현하기 전 입는 관례복을 보면 하카마가 질질 끌릴 정도로 길지요. 이를 "나가바카마(長袴)"라고 합니다. 뛰어다니거나 종종 걸음 걸이로 인한 소음을 막기 위한 방안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질질 끌고 다녀야 하니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겠지요. 제 생각엔 쇼군 앞에서 칼부림 일어나는 것을 방지 하는 역할도 했으리라 봅니다. 움직임 자체가 부자연 스러우니 쇼군을 암살하거나 할 수가 없으니까요. 쇼군을 대상으로 하지는 읺았지만, 이 불편한 복장으로 칼을 휘둘러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 츄신구라의 주인공 "아사노 타쿠미노카미" 예도 있기는 합니다. 여행을 가는데 말을 이용한다.... 일단, 일반 서민들이 말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상위 계급이 말을타고 지나갈 때, 말에서 내려서 예의를 갖추는 "케바노 레이(下馬の礼)" 만 지켜준다면 말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그 당시 일본 말 종자는 포니 수준의 조그만 말이었습니다. 공무로 "하야우마(早馬)"가 필요한 경우, 전력으로 달리고 역참에서 말을 바꿔타고 달리고 하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수 많은 일반 서민들이 "하야우마" 형태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말들을 대기시켜 놔야 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지요. 모든 에도시대 서민이 말을 탈 줄 아는 것도 아니었고요. 결국 말을 타더라도 터벅터벅 가야하는 것 뿐이라 속도 면에서 큰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운용하려면, 말 고삐를 잡아주는 "우마토리(馬取り)" 같은 사람도 필요하고요. 말도 생물이라서 장기간 여행을 위해서 말 컨디션에 사람이 맞춰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겁니다. 가로등이 없으니 밤에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 역시 위함한 행동이었습니다. 즉, 여행할 때 말의 존재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의문점을 갖고 계시네요 !!
장거리 달리기라는 이슈에 천착하면 말은 사람보다 빠를지라도 장거리 이동능력과 그 속도가 뒤쳐질 정도라 말의 속도를 유지하려면 말씀하신대로 역참마다 말을 환승할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개인은 아무리 부자라도 시도할수 있는 일은 아닐겁니다. 국가의 중앙정부에서나 긴급서신용으로 종종 쓸순 있을텐데 그나마도 일본 같은 지방분권제에선 잘 발상하기 어려웠을 수 있을겁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보았을때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하는것은 특권층이 스스로 특권층임을 드러내는 목적이 크죠. 전근대엔 고기를 삼시세끼 먹고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려서 다 먹지도 않고 남기고 턱살이 늘어질 정도로 뚱뚱한 모습을 유지하는게 특권층의 모습이던 시절이 있었구요, 현대에는 서민들이라면 그렇게 먹으면 배고파 쓰러질 정도로 적게먹고 비건을 하고 디톡스를 한다느니 하면서 "자기관리"하는 모습이 되죠. 현대사회는 육류가 들어간 식사가(최고급 한우 같은거 말구요, 냉동 뒷다리살 불고기나 제육볶음...뭐 그런식으로요) 더 저렴하게 든든히 배를 채울수 있으니까요. 그런식인겁니다. 더워도 하인들이 부채질을 해주고 땀흘릴 정도로 오래 걷거나 할일이 없고 저택은 하인들이 청소하고있고 집 밖에 나가면 가마를 탈꺼니까 땅에 끌리는 긴 옷을 입는거죠. 그렇게 입고도 바짓단이 해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랫것들"과는 다른 "높은사람"임을 보여주는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검도회의 이러한 만행(?)을 사기질로 규정합니다. 일단 KUMDO라는 단어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이야기 하려면... 어휴.... 30분짜리 영상 하나는 만들 수 있겠네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본정신의 정수인 무도가 바로 켄도인데... 일본 것을 일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스럽게 우리 역사에 끼워 맞추니, 찍찍이 도복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요. 전자 호구는 어케되었나 모르겠네요. 기가 찹니다. 반일 정신병의 영향으로 무예를 한다는 인간들이 "야마토 타마시이"의 정수인 켄도를 대 놓고 못하는 것이지요. 컴플렉스의 표현을 역사왜곡으로 대응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계가 한국의 검도판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검도 업계가 욕먹는 것으로 그치지 않죠. KUMDO라는 이름의 국적불명 스포츠가 되어 한국이라는 나라를 망신살 뻗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찍찍이 도복, 국제대회에 나가면 정체 불명의 흰색 도복. 국제대회 한국선수들의 경기 후 자세에 대한 문제점도 자주 지적되지요. 그럴 수 밖에요. 그 정신이 뭔지도 모르고 "민족의 혼을 검도에 담아.." 라는 병신같은 문구나 보며 운동 한 사람들이 "에이가 나오키의 "일격에 걸다"" 같은 다큐에서 오는 감동의 1/100이라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냥 직업 운동 선수에 불과하니... 단 심사에 들어 있는 실체도 부정확한 뜬금없는 조선 무예. 제 성격 같아서는 그냥 도장에서 운동 하는 것 이외, 단심사, 대회출전(운동을 너무 못해서 사실 대가리 수 채우는 역할 이었지만....) 등 전혀 관계를 맺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검도협회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일본 검도를 표방했다가 이단 취급받고 고생했던 걸로 아는데.. 워낙 몸이 둔해서 잘 못하는 운동이지만, "일본인의 정신세계의 진수"를 느끼기 위해 입문한 켄도였습니다. 대한검도회라는 조직은 역사왜곡을 멈추고 반성해야 합니다. 국가 망신까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등 퇴행성 질환이 나타나는 나이에 들어섰지만, 마지막으로 북진일도류 한국지부에서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검도업계의 심각한 문제점. 반일 정신병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지요...
Jaewon Jang 이게 우리 나라 근대 무도 대부분이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는게 문제입니다. 다른 두 무도는 그래도 왜색이 덜한데 검도는 복장부터 하까마에다가 준거를 포함해서 너무 왜색이 강해서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여기에 불을 지피게 해동검도구요. 한편으론 협회의 곤혹스런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장기적으로 검도를 포함한 근대무도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밝히고 더 이상 왜곡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무도에 대한 일본의 비판에 답변이 궁한건 사실이니까요.
약 26년 전에 검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요즘 같은 개량 검도복이 아니고 요판이 있는 도복이었습니다. 중간의 어느 시점부터 요판 도복을 금지했습니다. 당시가 적어도 1995년 이후이니까 반일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에 개인적으로는 검도계 내부의 정치적 파워게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옹졸함에 상당히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정말 다른 사람들 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섬세한 미학적인 부분에서 우리와 차이가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일본은 불교예술이 에도시대를 통해 쭉 계승, 발전되어 왔습니다. 중국대륙의 위성국가를 자처하며 탄생한 조선은 유교 사상이 지배하면서 불교 예술의 화려함이 사라지기 시작했지요. "국가 철학"이 왜 중요한지 조선과 일본이라는 두 국가의 중세사, 근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삼국 시대 백제 미술품이 조선시대 미술품 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기도 하니까요..
현대 한국사회가 조선 중후기 이전의 다채로운 한국 고대문화에 패쇄적인 것도 잘못이 큽니다. 애초에 일본 문화 자체가 가야와 백제 문화권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던 것을 고려하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보존은 확연한 비교가 되죠.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지식인들과 사상가들도 고대 한국사와 문화를 되찾으려고 했고요. 한국 정체성 자체를 조선 중후기에 국한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와 문화는 그런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게 문제죠.
@@adenyang4398 저는 아직도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운운하는 유교적 역사관을 볼때마다 토나옴. 세계사로 볼때 외부적이 쳐들어왔을때 국왕이 수도에서 후퇴 내지 도주 안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잡혀서 죽는 경우가 얼마나됨? 일본 전국시대나 도망갈 곳이 없으니까 그러는 것이지...
다른 분 질문에도 답을 달았습니다만, 등성행렬은 각 번 번주들의 위엄과 절도를 보여주는 장면이기고, 현대 시대의 인권 개념 같은 것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어시가루들이 잠깐 느끼는 추위는 큰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등성 시간이 그다지 길지도 읺고요. 토쿄는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기도 하고요. 다만, 예외 사항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개인적으로 추가 조사가 필요할 듯 합니다.
진막(陣幕, 진마쿠)이라고 부릅니다. 다이묘 정도 되면 전쟁터 현장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드물지요. 출진한 이후 야전 또는 신사 등에."진막"을 치고 지휘본부를 설치한 후 전갈을 통해 전장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쿠사효오죠오(戦評定)"를 하거나 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일본 사무라이 정체는 얘기 안하네 사무라이가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 했다는 내용은 없네 .칼을 새로 장만 했는데 잘 드는지 알아보러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칼로 베고.기분나쁘나고 사람 죽이고 동네깡패보다 더한 존재 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된다.일본이 멋있게 만든 영화에 물들지 말고 진실을 알기 바란다.
에도 초기에는 평민들도 두자루 칼을 차고다녔는데, 후기에는 츠카부쿠로 씌우지 않은 상태로는 에도성에서 돌아다닐수도 없었군요. 님 영상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무라이로망스님 검도복을 직접 입고 촬영하신듯 하네요. ^^ 열정에 감사합니다~
혹시 직접 찍어주신 분 아닙니까??
흥미로운 주제와 지식에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저도 기쁩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요
감사합니다.
높은 안목으로 추려낸 소소한 내용들. 넘나 잼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저도 궁금했었던 것이라 많은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까 싶어서 만든 것 뿐입니다. 안목까지야.뭐...ㅋ
목소리도 좋으시고
내용도 상세하고
너무너무 좋아요
계속 오래도록 일본문화 알림이 사무라이 알림이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갑사합니다. 꾸준히 봐 주세요.
연이은 두번의 태풍에 시달리다보니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 보았습니다..
역시 오늘도 지식 하나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앗. 태풍 피해 보셨나요?? 별 일 없으셨기를 바랍니다.
@@samurairomance 그냥 물새고 정전되고 ...소소하게
근데 주위엔 큰 피해도..감사합니다
전 전직 한의대 교수인데요. 족삼리는 일본의 한방에서 꽤 중요시하는 자리고요, 현재 한국에서도 여러 질환에 치료혈로 쓰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지금이야 간접구라고 뜸과 피부 사이에 뭔가 물체가 있어서 화상을 방지하지만, 그 당시 뜸이라는 건 직접구가 많아서 화상은 잘 입었을 겁니다. 제가 학생때 의료봉사 같은 걸 가면 나이 드신 할머니들 보면 거기에 화상 자국 있는 분들 꽤 있었습니다.
전문가의 설명이 곁들여지니 훨씬 좋네요.감사합니다.
아, 옜날 뜸은 불 붙은쪽을 살에 대는거였군요.... 셀프고문 ㄷㄷㄷㄷ
전문가 분의 설명에 감사합니다.😊
저도 검도를 하면서 초심자들에게 발구름, 발동작 (踏み込み、足さばき)을 보여줄때 하카마를 저렇게 걷고 할때가 있는데, 그게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하던 풍습이었다는건 오늘 처음 배웠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쵸. 검도할 때 선생님들이 항상 하까마를 살짝 걷어서 발 모양을 보여주시곤 했죠.
검도도 잘 하고 싶었는데, 저질체력에 형편없는 운동신경으로 단체전 출전으로 머리수만 채우다가 끝났네요. ㅋ
언제나 흥미로운 무로마치 바쿠후 시대와 에도시대의 전국시대 이야기 영상들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힘이되네요.
진짜 놓칠수있는부분을 깨알같은 디테일로 살리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그냥 저도 궁금했던 것이니...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지 않을까.. 하는 평범한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새롭습니다.일본의역사.
구독은 시청료. 좋아요는 덤.
이 채널 대박임!!
정말정말 흥미있는 주제가 가득이네요!
흥미있고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
일본 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잘 배우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
넵. 감사합니다.
저도 데려가주세요 전 미소년스타일 일본에서 인기잇겟죠 호호호
엄청난 정보채널이네요
유튜브의 순기능이 바로 이런채널
재밌게보겠습니디ㅣ
유튜브 순기능 !! 감개무량합니다.
흥미있게 보고 있어요
에도시대도 참 흥미롭네요ㅎㅎ 저는 에도 하면 막부말 정도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알면 알수록 재미 있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특히 실용적인 문화가 이목을 끄는 것 같습니다. 대하드라마나 역사 영화는 정말 고증이 철저하군요...! 작은 부분에까지 하나하나 의미가...... 최근에 NHK 대하드라마 부서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후 우리나라 대하드라마의 맥을 잇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는데, 이것저것 많이 배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유익한 영상 잘 보고 있어요! 바쁘셨을 텐데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포도님께서 NHK대하드라마 같은 전통있는 대하드라마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방송 프로그램에도 우직한 전통이 팔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 라면 같은 대한민국이 "국가적 성공 철학"을 바탕으로 한 층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포도님 같은 분이 많이 나와야 겠지요 !!!
넓고 깊은 지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능하시다면 일본 검도 (기술) 용어를 이 동영상 처럼 우리말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면 합니다.
검도 기술의 원래 용어와 그 의미를 알면 검도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본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유투브 내용이네요.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에도시대 풍속이나 시대상에 관심이 많아서 국내에 출판된 책도 읽어보는데, 이곳에 올라오는 내용들은 그런 대중서적에서 확인하기 힘든 것들이 나와서 좋습니다. 이번 내용도 에도시대 영화나 드라마보면서 궁금했던 내용인데...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로 제가 궁금했던 기억들을 떠 올리며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재 자체가 대중적이지 못하기도 하죠....
흥미롭네요
감사합니다.
김사합니다.
일본 소국가: 번 , 너무 많아, 암살이 많았네요. 에도 문화 다양하게 설명해 줘 감사합니다. 잘
시청했씁니다 .🌻🌻
좋은 영상 잘 보겠습니다.
제미있게 보세요 !!!
내용이 엄청자세하네요 구독누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ㅋㅋㅋ 융통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네요. 뛰기 불편하다고 추운데 맨살을 드러내다니. ㅋㅋㅋ 대단하다.
일본은 하체 노출에대한 꺼리낌은 없었습니다. 대신에 가슴등을 비롯한 상체는 꼭 보호하려는 습성이 있었구요, 반대로 한국과 중국은 하체는 반드시 노출하면 안되는 중요한 신체 부위였던 반면에 상체 노출은 꺼리낌없이 드러냈었구요. 아마도 이 것은 일본이 정식 국각 되기 이전부터 더운 날씨와 잦은 아열대성 비 등이 잦았던 대만.오키나와 지역 등지로 부터 넘어온 원주민들의 기후에 따른 의상 착식이 그대로 에도 시대까지도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인위적인 사무라이들의 의식적 풍습과 함께 복합적으로 엮어져 이어진듯 합니다만...
@@mooyook2 선생님께서 어른스럽고 점잖게 답글 달아주셔서 어떻게 답글 달아야 할지 고민 했습니다. 보통은 의견이 다를 경우 감정적인 댓글이 달렸기에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 현실과 과거는 여러가지로 다르고 타국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에 조롱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물리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부족한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somgurm106 아참 그리고 일본의 남성 복장중 훈도시 위로 배를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던 풍속은 사무라이 문화중에 할복(스푸쿠)과 단지(손가락 자르는 )이라는 풍속이 있습니다. 적군한테 복종하지 않기 위해, 혹은 자신이 따르는 주군들과 단체를 위해 목숨을 걸어 맹세를 하기 위해 배를 가르고 할복을 하기도 하죠. 그래서 배는 소중한 곳이자, 할복을 하는 의식에서 기왕이면 숭고하게 하고자 천천히 분위기 고조하며 의식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천을 칭칭 동여 매었던 것을 풀면서 시간을 끌어야 하고 할복을 하고 난 다음에 증표로서 칼에 묻은 피를 천에 담아두고자... 그 아까운 천을 배를 칭칭 동여매었던... 반면에 훈도시 찼던 곳이 물에 젖고 풀리던 말던 아래 성기나 불알이 다 노출되어 내 형수가. 내 어머님이 내 누이가 동네 아줌마나 아가씨들이 보아도 무방한... 마츠리 복장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위 영상속에서 나오는 무릎보호대인 모모다치는 일본의 방 바닥은 온돌문화인 한국과 달리 다다미라는 차갑고 거칠은 소재의 마감재를 사용하기에 무릎이 까지고 다칠 염려가 많아서 첫째 사용하게 된 것이며, 영상에서도 거론햇듯이 일본은 무플 아래의 삼혈에 뜸을 든다고 하는데 그만큼 다다미가 굉장히 냉하고 습하기에 무릎 아래 다리가 냉병이 잦을 수 밖에 없어서 뜸을 뜨게 된 경우입니다. 그래서 무플 보호대를 평상시에는 뜸뜬 자리를 가리고 무릎을 끓고 앉을 때에는 무릎위로 끌어 올려서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현재도 인천이나 부산등지에는 일본식 다다미 집안 구조가 남아 있는 곳이 있는데 제 부모님들이 젊어서 다다미방에 놀러가면 항상 춥고 차가웠었다는 기억만 남는다며 .. 더구나 한국은 겨울에 엄청 추운데 왜 길거리에서 훈도시만 입고 다니고 그러고는 춥다며 집에 들어가서 난로불을 쬐는 일본 사람들 보면 의아해하셨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날씨 추운날에는어르신들이 다다미방으로 된 일본식 집에 사는 친구네 놀러가지말라고... 특히나 여자는 아래를 춥게하면 나중에 냉병이 생기는등 고질적 부인병이 생기니 절대 놀러가지 말라고 잔소리도 하고 그러셨다네요.
@@somgurm106 제가ㅡ 덧글을 단게 하나 더 있었는데 사라져버렸네요,,, 제가 친일사대극우집단들에 대한 비판을 가한 내용을 담아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없어졌네요, 백년의 역사라는 친일사대극우집단 채널의 요망한 내용을 다시 덧글을 달기는 그렇고 ,,, 간략하게 제 입장을 전해드리죠. 그래도 이 채널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본에 대한 문화와 역사의 한 편린들을 오타쿠 정도의 내용으로 취미삼아 다룬 것들이라 그냥 지나치듯 자료 볼려고 들어와보게 되었지만, 백년의 역사라는 채널은 한국의 단점중에 좋지않은 것들만 골라 골라서 올려 놓고는 이런 조선을 개화시켜준 은인이 위대한 일본이라는 식으로 왜곡 편집해서 올리는 패악무도한 곳이지요. 그 곳 한 번 들어가보면 그날 머리속은 정말 둔탁한 몽둥이 맞은듯한 ... 역사에 대한 공부나 견지는 내 나라임에 무조건 좋게 보아서도 안되고, 남의 나라임에 무조건 비난해서도 안되고 제 3의 객관적 시선에서 왜 그런 역사가 있었는지 그 원인과 발달,쇠퇴 과정을 들여다 보려하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국뽕도 좋은게 아니지만, 주체적 의식없이 사대주의 하는 의식은 자기 자신을 썩은 시체와도 같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혹여나 제가 친일주의자이였나 생각하셨나보군요...ㅎㅎ
반일감정,불매운동 ,일본의역사왜곡 등 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일본 역사의 틈 을 애기하는 것에 깊은 감동과 배움을 느낍니다 ,바라건데 일베나 친일이 아닌 "역사적으로 정확한 팩트"를 있는그대로 전달하는 채널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것은 매우중요합니다 !매의눈으로 보고있습니다 ,
저는 일본 무척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냥 일본인들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일본 역사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영상을 일본인이 봐도 내용적으로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다들 용어에 조심하지요. 친일, 지일, 반일, 혐일, 극일, 용일.... 이 굴레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깊이를 알개 되면 일본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한 두려움을 정확히 인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할 겁니다.
제 채널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무라이 로망스님 영상은 모두 1.2 배속해야 되는 거 같아요
말 느린게 많이 개선 된거 같았는데... 아직도 느린가보네요. 헛..
@@samurairomance
아닙니다 .
젊은 분들은 조금 느리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중년 넘어서면 결코 느리지않습니다 .
생각하면서 느끼면서 말씀듣기에 편한 속도입니다 .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닌 정치사상문화관습 등 다방면으로 생각할 것이 많고 우리와는 너무 다른 문화를 접하는지라 빠르지 않은 적절한 속도인 지금이 좋습니다 .
오늘 처음 보는 채널인데
디테일한 설명과 자료,지식에 구독버튼을 눌렀습니다
영상수와 기간을 본후 구독자를 보니 조...존경스럽습니다
일본문화를 잘 알고 계신것 같아 질문을 드리고싶은데요
일본은 옛날 시대 그림이 많이 있는데
수묵화(?)임에도 그상황과 상태를 가늠 할 수 있을정도로
자세하게 묘사 하는게 일본그림의 특징인것 같아요
일본의 그림 문화(?)가 이렇게 발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댓글로 설명해주셔도 좋지만
후에 영상소재로 다뤄주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말 좋은 주제네요. 영상을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에도시대 그림이 참 많더라고요. 정리할 필요가 있는 주제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여 조선 시대에 그려진 부산진순절도와 동래순절도에도 일본군이 저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와 궁금했는데 효율적이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일단 겨울에 추우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데 반바지 차림이란 것은 큰 약점이 될 수 있을텐데... 그럼 전국 시대의 병사들도 겨울에 저런 옷차림을 하고 싸웠을까요?
말씀을 보고, 동래순절도 그림을 찾아보고 좀 의구심이 듭니다만... 동래전투가 4월이었는데 기후적으로도 맞지 않는 복장이며, 누가 봐도 공격진의 복장도 아니고, 코니시 유키나가의 하타사시모노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친 프로 전투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전통적 "왜구"의 모습이지요.
그냥 그림을 보고 퍼뜩 든 생각입니다만, 1700년대에 그려진 그림의 특성상, 정확한 전투 상황 재현보단 그냥 정황을 그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일본군을 단순한 "왜구"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네요.
이 그림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광장히 흥미롭네요. 좀 더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동래부순절도는 아무래도 종군화가가 전투를 직접 보고 그린것이 아닌 후대의 그림이기에 당대 우리 의복에 대한 고증을 위해서면 모를까 일본군의 모습을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을듯 싶네요
족삼리 종아리 앞뼈 붙은곳(두개가 교차하는 ) 손 엄지 검지 뼈사이는 합곡이라는 최고의 혈자리입니다 컴터 하시다가 꾹꾹 ...저도 족삼리에 흉이 ^^
저도 꾹꾹 눌러주겠습니다.
언제나 유 익 한 정보 감사합니다^^ 몸빼바지가 생각나는건 왜일까요? ㅋㅋㅋ
헛..그렇군요. 몸뻬도 하카마의 일종이니까요. 그 편리함으로 2차대전 당시 "몬뻬스가타(モンペ姿, 몸뻬바지복장)"로 일하는 부녀자들이 일본에 많았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몸뻬바지는 일본 하카마의 개량버전입니다.
그렇군요. 몸뻬바지 자체도 포루투칼에서 온건가요??
실제 저자리 지압하면 정강이 앞쪽 근육 전체가 가벼워지는 느낌들어요
오늘부터 함 해보겠습니다 !!
바지가 기능성바지 였다는거 처음알았습니다^^
기능성 바지...ㅋㅋ
@@samurairomance 처음에 정말 너무 궁금했습니다 추운데 왠 바지라며.....;;;;;;
감사합니다
근데 칼 손잡이를 저렇게 보호한다고 싸매는 이유가 있나 사쿠라다몬 얘기를 보면서 궁금하더라고요.
손잡이를 츠카(柄)라고 하죠, 두꺼운 평사로 츠카를 둘러 싸죠. 이를 츠카마키(柄巻き)라고 합니다. 츠카마키 안쪽이 어피로 되어 있어서 습기로부터 어피와 츠카마키를 보호하기 위함인데... 츠카부쿠로도 천으로 되어 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런지...
저 무릅보호대를 무심코 보다 속옷이 흘러내린 것 같아 보인다고 무심코 생각해 버린 1인
흠.. 분리된 속 옷...
살짝 이해가 안가는게 하카마를 발목 언저리에서 정강이 절반쯤으로 살짝 높여 만들어 입으면 안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사극보면 교토 공가들이나 높으신 분들이 바지 길이를 택도 없이 길게 해 걸을 때마다 아주 바닥을 질질 끌던데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무더운 여름 날에는 저렇게 걷어올리는건 해볼만하지만 겨울에도 저러니 이상합니다. 갑옷을 입을땐 촘촘히 잘 싸매더만 평상시엔 그러면 안된다는 규정이라도 있었나요?
무릎 밑 삼각천도 좀 이상합니다만 평소 무릎꿇고 앉는 생활방식에 편했다면 이해가 갑니다. 솔직히 너도나도 여행가는데 뜸자리는 반드시 생기기 마련인데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국시대에 어떤 이유에서든 길을 닦아놓은 일본이지만 그뒤 시대에 어째 말은 잘 이용안했을까요. 어떤 만화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일본 음식만화 중에선가 급한 소식 전하는 발빠른 사람이 훈도시만 입고 겁나 뛰다 쓰러져 주인공의 요리를 먹고 힘을 되찾는 그런거가 기억납니다. 땀뻘뻘 흘리며 정신없이 뛰다가 쓰러질바엔 그냥 말타고 길따라 쭉 달리면 되지 않았을지 의문입니다. 참근교대 하는 에도시대에서 여전히 길 정비는 잘했을터 몽골제국이나 조선처럼 역참을 세우되 평탄한 길 구간 사이에 놓아서, 역참에서 말을 대여해줘서 쭉 달리는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상업이 발달한 에도니까 민간에서 역참 세워도 될듯 싶은데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이젠 질린 지식이지만 다케다 기마군단이 허구라는건 이런데서도 근거가 나오는듯 합니다. 기마군단이 있을 정도면 그뒤에도 어느정도 말이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 사회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리고 에도경제 특성상 말 사료값 못댈 정도는 아닌데 저렇게 다들 걸어 다닌거 보면 말입니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말이 많이 일상생활에 쓰인 것은 아니지만 군마나 파발마 정도만 썼지만 그건 일본처럼 길을 정비하지도 않고 배를 통해 물류배송을 했으니까란 이유가 달립니다만 저렇게 길을 열심히 정비해놓고 말들이 많이 안달린 일본은 진짜 길낭비를 한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등성할 때, 다이묘나 상급 무사들의 경우에는 종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짐을 들게 할 수 있었지만, 하급 사무라이와 츄우겐 등으로 이루어진 등성행렬 인원들이 추가로 하카마를 한 개 더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등성행렬 역시 주변에, 위엄있고 강하게 보이는 것이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저런 모습이 연출되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토호쿠 지방이 아닌 다음에야 겨울이라고 해도 그렇게 까지 춥지는 않기도 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예외 사항은 없었는지 여부는 추가로 조사해 봐야 알 갓 같네요.
뜸자리가 대단히 흉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카마를 걷아 올리는 "모모다치"를 했을 경우에 "산리아테"를 착용하는 것이 일종의 장신구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도 생각합니다.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미의식을 현대 한국인의 시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저도, 굳이 저런걸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미의식을 보면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쇼군을 알현하기 전 입는 관례복을 보면 하카마가 질질 끌릴 정도로 길지요. 이를 "나가바카마(長袴)"라고 합니다. 뛰어다니거나 종종 걸음 걸이로 인한 소음을 막기 위한 방안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질질 끌고 다녀야 하니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겠지요.
제 생각엔 쇼군 앞에서 칼부림 일어나는 것을 방지 하는 역할도 했으리라 봅니다. 움직임 자체가 부자연 스러우니 쇼군을 암살하거나 할 수가 없으니까요.
쇼군을 대상으로 하지는 읺았지만, 이 불편한 복장으로 칼을 휘둘러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 츄신구라의 주인공 "아사노 타쿠미노카미" 예도 있기는 합니다.
여행을 가는데 말을 이용한다....
일단, 일반 서민들이 말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상위 계급이 말을타고 지나갈 때, 말에서 내려서 예의를 갖추는 "케바노 레이(下馬の礼)" 만 지켜준다면 말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그 당시 일본 말 종자는 포니 수준의 조그만 말이었습니다. 공무로 "하야우마(早馬)"가 필요한 경우, 전력으로 달리고 역참에서 말을 바꿔타고 달리고 하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수 많은 일반 서민들이 "하야우마" 형태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말들을 대기시켜 놔야 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지요.
모든 에도시대 서민이 말을 탈 줄 아는 것도 아니었고요. 결국 말을 타더라도 터벅터벅 가야하는 것 뿐이라 속도 면에서 큰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운용하려면, 말 고삐를 잡아주는 "우마토리(馬取り)" 같은 사람도 필요하고요. 말도 생물이라서 장기간 여행을 위해서 말 컨디션에 사람이 맞춰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겁니다. 가로등이 없으니 밤에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 역시 위함한 행동이었습니다.
즉, 여행할 때 말의 존재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의문점을 갖고 계시네요 !!
장거리 달리기라는 이슈에 천착하면 말은 사람보다 빠를지라도 장거리 이동능력과 그 속도가 뒤쳐질 정도라 말의 속도를 유지하려면 말씀하신대로 역참마다 말을 환승할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개인은 아무리 부자라도 시도할수 있는 일은 아닐겁니다. 국가의 중앙정부에서나 긴급서신용으로 종종 쓸순 있을텐데 그나마도 일본 같은 지방분권제에선 잘 발상하기 어려웠을 수 있을겁니다
무릎에 천을 댄 것은 방바닥의 재질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은 온돌이라 상관없지만 일본은 다다미라서 맨 무플으로 조아리고 있으면 무플이 까지기에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보았을때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하는것은 특권층이 스스로 특권층임을 드러내는 목적이 크죠. 전근대엔 고기를 삼시세끼 먹고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려서 다 먹지도 않고 남기고 턱살이 늘어질 정도로 뚱뚱한 모습을 유지하는게 특권층의 모습이던 시절이 있었구요, 현대에는 서민들이라면 그렇게 먹으면 배고파 쓰러질 정도로 적게먹고 비건을 하고 디톡스를 한다느니 하면서 "자기관리"하는 모습이 되죠. 현대사회는 육류가 들어간 식사가(최고급 한우 같은거 말구요, 냉동 뒷다리살 불고기나 제육볶음...뭐 그런식으로요) 더 저렴하게 든든히 배를 채울수 있으니까요.
그런식인겁니다. 더워도 하인들이 부채질을 해주고 땀흘릴 정도로 오래 걷거나 할일이 없고 저택은 하인들이 청소하고있고 집 밖에 나가면 가마를 탈꺼니까 땅에 끌리는 긴 옷을 입는거죠. 그렇게 입고도 바짓단이 해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랫것들"과는 다른 "높은사람"임을 보여주는겁니다.
검도를 꽤 오랜 수련했습니다만, 대한검도회에서 왜 벨크로 하카마는 인정하고 요대가 있는 오리지날 하카마는 배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ㅋㅋ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검도회의 이러한 만행(?)을 사기질로 규정합니다. 일단 KUMDO라는 단어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이야기 하려면... 어휴.... 30분짜리 영상 하나는 만들 수 있겠네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본정신의 정수인 무도가 바로 켄도인데... 일본 것을 일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스럽게 우리 역사에 끼워 맞추니, 찍찍이 도복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요. 전자 호구는 어케되었나 모르겠네요. 기가 찹니다.
반일 정신병의 영향으로 무예를 한다는 인간들이 "야마토 타마시이"의 정수인 켄도를 대 놓고 못하는 것이지요. 컴플렉스의 표현을 역사왜곡으로 대응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계가 한국의 검도판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검도 업계가 욕먹는 것으로 그치지 않죠. KUMDO라는 이름의 국적불명 스포츠가 되어 한국이라는 나라를 망신살 뻗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찍찍이 도복, 국제대회에 나가면 정체 불명의 흰색 도복.
국제대회 한국선수들의 경기 후 자세에 대한 문제점도 자주 지적되지요. 그럴 수 밖에요. 그 정신이 뭔지도 모르고 "민족의 혼을 검도에 담아.." 라는 병신같은 문구나 보며 운동 한 사람들이 "에이가 나오키의 "일격에 걸다"" 같은 다큐에서 오는 감동의 1/100이라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냥 직업 운동 선수에 불과하니...
단 심사에 들어 있는 실체도 부정확한 뜬금없는 조선 무예.
제 성격 같아서는 그냥 도장에서 운동 하는 것 이외, 단심사, 대회출전(운동을 너무 못해서 사실 대가리 수 채우는 역할 이었지만....) 등 전혀 관계를 맺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검도협회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일본 검도를 표방했다가 이단 취급받고 고생했던 걸로 아는데..
워낙 몸이 둔해서 잘 못하는 운동이지만, "일본인의 정신세계의 진수"를 느끼기 위해 입문한 켄도였습니다. 대한검도회라는 조직은 역사왜곡을 멈추고 반성해야 합니다. 국가 망신까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등 퇴행성 질환이 나타나는 나이에 들어섰지만, 마지막으로 북진일도류 한국지부에서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검도업계의 심각한 문제점. 반일 정신병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지요...
Jaewon Jang 이게 우리 나라 근대 무도 대부분이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는게 문제입니다. 다른 두 무도는 그래도 왜색이 덜한데 검도는 복장부터 하까마에다가 준거를 포함해서 너무 왜색이 강해서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여기에 불을 지피게 해동검도구요. 한편으론 협회의 곤혹스런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장기적으로 검도를 포함한 근대무도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밝히고 더 이상 왜곡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무도에 대한 일본의 비판에 답변이 궁한건 사실이니까요.
살아남기 위해서 왜색을 뺀 것이 아닐까요... 요즘이야 일본문화에 대한 배척이 없었지만 일본문화개방 이전까지만 해도 왜색은 배척되어야 할 대상이었잖아요?
약 26년 전에 검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요즘 같은 개량 검도복이 아니고 요판이 있는 도복이었습니다.
중간의 어느 시점부터 요판 도복을 금지했습니다.
당시가 적어도 1995년 이후이니까 반일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에 개인적으로는 검도계 내부의 정치적 파워게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옹졸함에 상당히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thewannabefree9033 오... 그렇군요
에도 시대 중반에 여행붐이 잃었을때 조선은 어떻게 살고 있었나요?
1700년대 ~ 1800년대 조선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 보면 알 수 있겠지요... 소수의 양반 계층을 위해 자국민을 노예로 부리던 나라였으니, 애당초 서민계층의 여행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토착왜구는 민족의수치라
@@theshadowofjustice6745 뭉가일당과엉터리 역사 지껄이는자요.
우익한테 빌미제공자.한쪽으로 치우쳤구먼.한국인 자체가이러니.왜곡당하지.이런채널 안봐야된다
제발 좀 오지 말고 관심좀 끊어주길. 안오면 되는데 왜 와서 기웃거리는지.
일식집 와서 한식은 메뉴에 없다며 치우친 메뉴라고 난리부리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지않겠습니까. 마지막 배려입니다.
입맛에 안맞는 식당에 자꾸와서 진상부리는 손님이랑 뭐가다른지.
2:46 아니 갑자기 따봉하길래 웃기네 ㅋㅋㅋ
사무라이끼리에 계급에 대해 알려주세여
너무 포괄적인데요...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르기도 할텐데..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끔 참~ 특이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같은 동양인이지만, 정말 다른 사람들 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섬세한 미학적인 부분에서 우리와 차이가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일본은 불교예술이 에도시대를 통해 쭉 계승, 발전되어 왔습니다. 중국대륙의 위성국가를 자처하며 탄생한 조선은 유교 사상이 지배하면서 불교 예술의 화려함이 사라지기 시작했지요. "국가 철학"이 왜 중요한지 조선과 일본이라는 두 국가의 중세사, 근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삼국 시대 백제 미술품이 조선시대 미술품 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기도 하니까요..
@@samurairomance 건물도 그렇죠.
삼국시대나 고구려시대보다 거대건축물 뿐만아니라 장식관련도 조선시대가 초라함.
현대 한국사회가 조선 중후기 이전의 다채로운 한국 고대문화에 패쇄적인 것도 잘못이 큽니다.
애초에 일본 문화 자체가 가야와 백제 문화권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던 것을 고려하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보존은 확연한 비교가 되죠.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지식인들과 사상가들도 고대 한국사와 문화를 되찾으려고 했고요.
한국 정체성 자체를 조선 중후기에 국한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와 문화는 그런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게 문제죠.
@@adenyang4398 저는 아직도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운운하는 유교적 역사관을 볼때마다 토나옴. 세계사로 볼때 외부적이 쳐들어왔을때 국왕이 수도에서 후퇴 내지 도주 안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잡혀서 죽는 경우가 얼마나됨? 일본 전국시대나 도망갈 곳이 없으니까 그러는 것이지...
@@adenyang4398 그 유교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망친 것임. 고려시대보다 1. 군사력도 약해지고, 2. 건축물이나 미술품도 검소해진다는 미명하에 볼품없이 변하고. 3.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현실이 아닌 이상론에 사로잡히고.
항상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근데 방한에 대한건 전혀 없는건가요? 너무 추워보이는데..ㅋㅋ
다른 분 질문에도 답을 달았습니다만, 등성행렬은 각 번 번주들의 위엄과 절도를 보여주는 장면이기고, 현대 시대의 인권 개념 같은 것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어시가루들이 잠깐 느끼는 추위는 큰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등성 시간이 그다지 길지도 읺고요. 토쿄는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기도 하고요.
다만, 예외 사항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개인적으로 추가 조사가 필요할 듯 합니다.
왜 다이묘들이 전투때 고수 ? 텐트같은거 치는게 궁금합니다
진막(陣幕, 진마쿠)이라고 부릅니다. 다이묘 정도 되면 전쟁터 현장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드물지요.
출진한 이후 야전 또는 신사 등에."진막"을 치고 지휘본부를 설치한 후 전갈을 통해 전장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쿠사효오죠오(戦評定)"를 하거나 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신기한채널이군
저 영화 엄청 보고싶은데 받을 수 있는데를 못찾았어요... 혹시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토렌토로 받았습니다. 화질은 안좋고요...
칼싸움 연습하면 더 심한 흉터가 많을텐데
그까짓 무릎 흉터가 얼마나 흉하길래
그건 정말 무술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
일본인들 이름 붙이는 거 참 좋아하네요 ㅋㅋ
저도 비슷한 생각합니다. 명사가 많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samurairomance 가부키 관련 강의도 들은 적 있는데 화장할 때 입술 모양 같은 것도 이름붙이는 거 보고 놀랐어요 자잘한 거에도 다 명사가...
그냥 묶으면되는걸;
길거리 깡패들ㄹ
일본 사무라이들이 멋있긴 하지... 쩝... 하아 나도 일본 사무라이 의상 하나 사 입어보고 싶다
우리 나라에서는 목숨걸고 사입어야 할 듯 합니다.
@@samurairomance 그래야 겠지요
뭐 결국은 재봉기술이 없었다는 거구만
사무라이하면 잔인하게 죽이는거 밖에 안떠오른다
한국에도 도요타 다이쥬 센세라는 전라도 출신의 훌륭한 사무라이가 있습니다
그 양반은 친일 정도가 아니라 존일인사였음 일왕이 아닌 덴노헤이카를 공식명칭으로 지정 했고요 ㅋㅋㅋㅋ
왜?
왜?의 영상을...??
곧 일본 대지진은 옵니다. 저런 후진국의 야만적인 문화는 인류의 기억에서 영원히 없어져야 합니다.
일본은 선진국입니다. 님만 모르시는 듯.
@@samurairomance 내년부터는 아님
내년 2주도 안남았는데.. 거참... 댓글 다는 나도 어이없네. 헛헛..
제일 중요한 일본 사무라이 정체는 얘기 안하네 사무라이가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 했다는 내용은 없네 .칼을 새로 장만 했는데 잘 드는지 알아보러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칼로 베고.기분나쁘나고 사람 죽이고 동네깡패보다 더한 존재 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된다.일본이 멋있게 만든 영화에 물들지 말고 진실을 알기 바란다.
영상 주제가 뭔지 모릅니까? 정말 이상한 사람들 많네. 아무나 벨 수 있는 특권이 있었지만, 아무나 벨 수 있는 상황이 항상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요. 감상평을 적는건 자유지만, 어설피 아는 지식으로 훈수 두지는 말기를.
그런건 과장이에요. 조선시대에 양반이 노비를 사적처벌로 때려죽일수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가문의 체통이 깍이는거라 극히 드물었죠. 님이 쓰신건 노비를 사사로이 때려죽인 케이스 몇개 가지고 조선양반은 노비때려죽이는 흉악한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하는거나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