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교사였고 경찰이었고 공무원이었다. 사람들이 악하다는걸 순하다는 표현으로 바꾸지 말길 바란다. 물론 지금이라고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당신들의 모든 태도와 유전자가 그대로 악질적으로 세상에 남기에 내가 어릴때부터 당신들 하는 행동을 봐왔어. 독재자가 선인으로 느껴질 정도였지. 모든 공무원이 뇌물을 요구하고 재미있다는듯이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순하지는 않았고 견디고 살았던 겁니다. 위 영상처럼 오래 된 것 중 상당 수는, 함부로 게시할 수 없는 게, 시간과 장소와 인물이 특정 되면 시효는 끝났지만 심각한 논란을 일으킬 영상이 수두룩할 겁니다. 지금 웬만큼 사니까 미덕으로 합리화 시키는 거겠죠. 세월은 약, 망각은 용기.
@@LUNAINDAY-g2b지금보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순했습니다 물론 말도안되는 짓거리도 많이 했지요 왜 순박했을까요? 지금보다 살기는 어려웠어도 월급받고 은행에 저축만 해도 이자율 높았고 부모봉양 가족건사 가능했고 지금보다 사회 수준이 낮아 일하고 대포집에서 막걸리 한사발 하는게 일탈이고 재미였습니다 지금은 sns인터넷 유튜브 티비서 자극적인거 럭셔리한걸 보여주니 상대적 박탈감 느끼고 열심히 노동하고 노력해도 결혼도 힘듭니다 유신독재에 이것저것 일들이 많았는데도 지금보다 출산율 높았고 국민들이 행복했습니다 나쁜놈을 정당화 하는게 아니라 개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었습니다 사회학자들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부족하지만 희망이 있어 행복했고 지금은 잘살지만 희망이 없어 힘든거라 합다다
이래서 우리는 현세태를 개판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개들이 소중한세태~~!! 이제 이 세상은 인류 멸망으로 길을 가고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진실로 진실로 이 세상은 마귀악마를 따르는 죄악된 행위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옛 세대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것입니다~~~!!!! 그날까지 인내하며 거룩한 사람으로 사람다운 생활을 합시다~~~!!!
@@AutumnSky0083 아닙니다~!!막걸리말고 지금보다 독했던 술은 소주였죠~!! 64년도까지 소주 도수가 35도 였다가, 65년도부터 소주 도수가 30도로 떨어지고(이때부터 쌀이 아닌 지금처럼 주정을 사용한 희석식 소주의 시작), 73년도부터 98년도까지 소주 도수가 오랫동안 25도를 유지했었지요~!!♡ 막걸리 도수는 오히려 저때가 더 순한 게 많았습니다~!!☆ 특히 저 당시 70년대 박정희 대통령때에는 '지평 막걸리(요즘에도 팝니다)'라 해가지고 5도 짜리로 낮춘 제품이 많이 대중화되던 시절이랍니다~!!^^
@@이제한글된다 없이 살던 시절이라 더 그런것도 있겠지만 정말 꿀맛이였죠. 콩 자체가 질이 달라요. 요즘 콩들은 대부분 수입산 GMO인데 그때는 토종콩 종자였으니깐요. 그리고 모든 작물은 토양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인공비료로 질소,인 이런걸 통해 ph농도를 맞추지만 이러다보니 작물의 퀄러리가 그때와는 비교가 안되죠. 토양이 썩으면 작물에 들어가는 영양소의 깊이가 거의 없습니다. 요즘 사과, 오렌지 이런것들이 당도만 높고 실제 비타민이나 이런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게 바로 토양탓이거던요. 그러니깐 저때 콩은 농도가 매우 짙죠. 그러다보니 그걸로 만든 두부는 거의 뭐.. 엄청난 맛이죠.
그건 저시대만 그런게 아니라 지금도 미래도 마찬가지. 그냥 각자 자기살기위해 열심히 산거요. 님은 일할때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나요? 뭘 뻑하면 저시대 존경하고 그덕에 산다라고 하는지. 참. 지금 우리도 가족 먹여살리려 열심히 살았고. 그냥 그렇게들 산겁니다.
2분 약간 전후로 털옷입은 할배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요. 그땐 저옷이 좀 사는 집에서 입는 고급이었던거 같아요. 저 양반이 무슨 짐을 지고 무슨 고개를 넘어 포항까지 장터를 다니신 분이다 또는 저 어른은 옛날에 지게에 아무도 못지는 뭣을 지셔서 장군이란 소릴 들어셨다...등등등... 제 기억으로 그 어른들이 지금도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군으로 기억하거든요.. 저땐 동네 십년정도 큰형들도 막걸리를 저 큰잔에 계속 마셔댓고 오줌을 눌때는 3분은 족히 넘길 정도인게 저의 기억입니다. 정말 장군 예찬 시절...
저 시절에 서울에서 국민학교 다녔네요...ㅎㅎ 말이 서울이지 서울 촌 구석 동네에서 다녔습니다. 당시엔 하루에 삼시세끼 다 먹는 집안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포집은 밖에서 모하는 집인지 꽤 궁금해 했었죠. 어른들이 대포 한잔 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 대포 한잔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었죠. ㅎㅎ 아마도 저 어른들은 이승에 안 계실것 같은데 저 어른들이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를 만드신 분들이었습니다. 진짜 안주 하나 시켜드리고 싶을 정도네요. ㅉㅉ...
저도 서울인데요. 저시절이라함은 70년대? 난 60년대 초에 국민학교 다녔는데 그때 학교로 옥수수빵 급식차가 와서 빵나누어 줘서 거의 굶는 애들 없었는데? 저 청량 국민학교..가회동 재동 국민 다니다..?청량국민 그때 3교대하다 2교대..그리고 4학년때 이문국민 생겼고 6학년때 석관 국민 생겼다. ㅋ 말 만타. 옛생각에...
@@chriskim6648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급식차 온적 없소. 그리고 그거야 점심이지,,,내가 점심 얘기 했냐고? 삼시세끼 다 먹는 집이 거의 없었다고 했지,,,70대라서 남의글을 이해 못하면 답글 같은거 달지 마,,,말귀를 이해도 못하고 댓글을 달고 자빠졌네 벼시니,,,
왕대포라고 써있던 막걸리집😅 정말 보기 드문 진귀한 영상이네요.저당시에는 두부 김치에 조촐한 반찬에 저렴하게 마셨을거 같네요. 2000년대 초까지 돼지껍데기팔던 대포집이 있어서 군대동기랑 같이 마신 기억이 납니다. 저당시 힘든 노동마치고 막걸리 한잔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이네요. 힘든 일 마치고 막걸리 한잔은 최고의 행복이죠.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모습인데 정겹습니다
아 ㅡ 옛날이여 정말 그떼 그시절 배고픈시절 시장골목에서 친구들과 막걸리한잔 긔리워지네요 ^^
옛날 아버지들모습!!!!그아버지 어머니는 다땅속으로
초등학교때 막걸리를 좋아하셨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자전거로 출퇴근하시면서 집근처 막걸리집에서 두부에 막걸리 마시던 선생님
이봉희 선생님 보고싶네요
초등하교냐 국민학교냐?
아버지가 내 나이셨을 저 시절...
또 세월은 돌아 언젠가 나는 지금을 어찌 추억할지 궁금해지네요
모두 건강하시길...
수없이 보고 또 보아도 정겨움을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 한없이 그리워집니다
겨울에 추워서개고생하고 눈쌓이면즐겁고 그래도정감있고순수한시절들임
암울했던 추억속에 6.70년대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기위해 허술한 대포집을찾아 양은주전자에 막걸리 한잔 딸아 마시면 배가 벌떡---연통도 없는 화덕가에 둘러앉아 먹다보면 막걸리에 취해 연탄까스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던 생각이납니다.빛바랜 그시절의 흑백 영상을 보면서 추억의 그시절이 그리움으로 남습니다.귀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캬하 내 젊은 시절 추억이 떠올르구마이 마, 한사바리 가지온나
한복입고 주인아주머니 정겹네요. 저땐 소주보다 막걸리가 대세...저 두부 한 점만 먹어봤으면...
그땐 고기안주를 먹기엔 주머니가 너무 얇고 평소 채식위주라 몸에 기름기도 없다보니 독한 소주보다는 주로 막걸리가 서민들에게 대세였었죠 ㅎ
저때 저 옷들 정말 한겨울인거 같은데 저리 얇은옷으로 겨울을 버텻다는게 정말 대단들 하시다 지금 겨울 패딩들이 이리 감사할줄이야
저당시는 지금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았음
@@윤성군-c6b뭔소리야 저당시도 추웠어
단지 추위에 단련되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주택들은 윗풍은 기본으로 달고 살았고 한겨울 냉수마찰도 하던 시절이지
@@jmLim_ 그렇네요. 저당시는 지금처럼 덥지 않았고 지금보다 추웠네요
@@윤성군-c6b 덥진 않았지만 엄청 추웠음. 그러니 오징어가 풍년이었지.
돌아가신 부모님생각나서 한참을 울었어요 보고싶은 우리 부모님
왜이리 눈물이 나려고
할까
태백 탄광촌 에서 살던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합니다
막장인생이었군요.
저도요 생각나요
얘기만 들어도 뭉클하네요
울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핑도네요
ㅎㅎ 나두
저도 아버님 생각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밥보다 막걸리를 더 좋아하셨는데....
70년대 초반 아버지 봉급 타시면 시장에서 통닭 한마리 사주셔서 다섯식구가 맛있게 먹었는데.
이젼 아버님도 고인이 되시고 내머리도 백발이 되었네!
시간의 흐름 앞에 모두가 공평하지 않을런지요..ㅎㅎ 과거를 품에 꼬옥 안고 앞으로의 인생도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서니얌 감사합니다 ㅠ.ㅠ
그러게요..
재작년 93세로 돌아가신 아버지..
버스운전하셨던 아버지가 이틀 일하시고 퇴근할 때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나갔던 기억과 어느날은 약주 한잔 하시고 비틀거리며 골목길 걸어오시던 모습들이 생각이 나고..
주말 토요일에는 금성 19인치 텔레비로 토요명화 서부극을 함께 보며 즐거워했던 기억들이 납니다.
이젠 나도 손주들 재롱보는 할배가 됐으니 인생 참말로
歲月은 流水와 같다 하지요 ...
아득히 멀어진 풋풋하고 싱그러운 젊은 청년 시절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50여년의 세월이 흘러 칠십 중반,
긴 세월 같지만 지나고 보니 한바탕 긴 꿈을 꾼것 같습니다 ...!!!
@@MatthiaChoi 일장춘몽.. 봄날 나른한 날 한바탕 긴 잠을 자다깬 것같은 인생사..
30~50년대생 분들의 노력과 희생이 지금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밑천이 되었습니다,
막걸리에 두부, 김치 정도에도 감사하고 만족해했던 힘들었지만 인간미가 넘쳤던 시절
감사합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님들의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겁니다
감사합니다!
에공 이사진보니 옛적 생두부 안주에 막걸리 간장
찍어 먹다가 크 간장종기 밑바닥 열심히 찍어먹고 보니 파리무덤 옛생각이 절로나네 그시절 벌써70 이 되가니ᆢ
감사합니다. 아~ 그옛날이그립습니다. 배경음악도 이계절에 딱 너무너무 좋습니다.
가슴이뭉클합니다.
70년대 비디오도 귀했던 시절인데 영상까지 담아 놓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살기가 어려웠고 부조리도 많았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순했음
당신들이 교사였고 경찰이었고 공무원이었다. 사람들이 악하다는걸 순하다는 표현으로 바꾸지 말길 바란다.
물론 지금이라고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당신들의 모든 태도와 유전자가 그대로 악질적으로 세상에 남기에
내가 어릴때부터 당신들 하는 행동을 봐왔어. 독재자가 선인으로 느껴질 정도였지.
모든 공무원이 뇌물을 요구하고 재미있다는듯이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순하지는 않았고 견디고 살았던 겁니다. 위 영상처럼 오래 된 것 중 상당 수는, 함부로 게시할 수 없는 게, 시간과 장소와 인물이 특정 되면 시효는 끝났지만 심각한 논란을 일으킬 영상이 수두룩할 겁니다. 지금 웬만큼 사니까 미덕으로 합리화 시키는 거겠죠. 세월은 약, 망각은 용기.
@@LUNAINDAY-g2b지금보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순했습니다 물론 말도안되는 짓거리도 많이 했지요
왜 순박했을까요? 지금보다 살기는 어려웠어도 월급받고 은행에 저축만 해도
이자율 높았고 부모봉양 가족건사 가능했고
지금보다 사회 수준이 낮아 일하고 대포집에서 막걸리 한사발 하는게 일탈이고
재미였습니다
지금은 sns인터넷 유튜브 티비서 자극적인거 럭셔리한걸 보여주니 상대적 박탈감 느끼고 열심히 노동하고 노력해도
결혼도 힘듭니다
유신독재에 이것저것 일들이 많았는데도
지금보다 출산율 높았고 국민들이 행복했습니다 나쁜놈을 정당화 하는게 아니라 개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었습니다
사회학자들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부족하지만 희망이 있어 행복했고 지금은 잘살지만 희망이 없어 힘든거라 합다다
@@user-iamwhoiam4141그냥 무식하면 입닫고 사는게 맞는거다ㅋ
@@로보-i4g 자연과학은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70년대 아버지 담배심부름 다녔던기억이있네요...지금은 상상도 못할일이지만...ㅎㅎ 한산도를 자주피셨던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새마을, 환희 담배 피셨던 아버지.. 환희 담배 100원 하던게 생각나네요..나두 담배 심부름 했겠다..가격이 기억나는 거 보니..
청자 거북선....
할머니는 환희 아버지는 청자 피우셨음.. 근데 두 분 다 멀쩡하시다가 70대 에 뇌경색 ㅠㅠ
와 그때 한산도는 고급담배였어요 1솔2한산도 은하수3청자4환희 이렇게 담배등급이었지요 울 아버지는 청자 태우셨는데요
@@살구-w7jㅋㅋㅋ 환희100원청자200원한산도 은하수330원솔500원하던시절 협동 새마을은 한참떨어진 담배고요
춥고 배고프던 시절 막걸리 한잔으로 허기와 피로를 달레던 시절 마음이 아프네요.
그당시,
막걸리 한잔에 뜨끈한 시락국이 최고였지요
추운 겨울에는 속이 뜨끈뜨끈 했지요
추운겨울 새벽 막걸리 해장 한사발 시락국에 밥 한술 말아 먹었죠 벌써 4~5십년 전...!
아버지 그립습니다 어릴적 아버지 동네 친구 분들과 대포집 에서 막걸리 드실때 어린저 옆에 앉히시고 고기구워 먹이시며 지식자랑 하시던 아버지 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편히계시죠 사랑 합니다 아버지
꼭 그러실겁니다 ~ 아버지들은 그래야해요 👍
내 나이 일흔에 이런 광경을 다시 보게 되다니 정겹고 그 시절 그립습니다 우리 삶이
그랬지요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풍요롭고 편리한데
사람끼리의 정은 온데간데가 없고 맨 강아지들 판이니
희안하게 느껴집니다
사람간에 정이 없으니 개만 좋아하지요 기형적사회
이래서 우리는 현세태를 개판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개들이 소중한세태~~!!
이제 이 세상은 인류 멸망으로
길을 가고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진실로 진실로 이 세상은 마귀악마를 따르는 죄악된 행위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옛 세대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것입니다~~~!!!!
그날까지 인내하며 거룩한 사람으로 사람다운 생활을 합시다~~~!!!
롯데캐슬 아래에 아침마다 개판 진풍경.. 볼때마다 어이없습니다.
시대에 대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니 어쩔수 없지요.
지들 부모한테 강아지한테
신경쓰듯 할까요? 골목 길량이가
애처로워 밤잠 못자고 서성이는
중년을 보면서 슬픕니다
내나이 47세에. 이런영상. 정겹습니다. 감사 합니다
저시대 부모님들 고생이란 고생 다하셨지ᆢ어머님들 시집살이 하랴ㆍ자식들 키우시랴ㆍ남몰래 눈물 흘리시고ㆍ어느분 말처럼 지구가 아무리 무겁다해도ㆍ부모님의 사랑또한 그 무게보다 절대 가볍지않다
문장력좋으심..글을잘쓰심.
이시절 국산김치에 정이 한가득 했지
옛날 생각나네요...
하루의 비곤함을 탁주 한사발에 달래던 시절!
왜이리 자꾸
눈물만 난다
아버지 어머님
덕분에 후손들은
잘살고 있습니다
옛날에 배가 고파서 아들의 하소 노래 부르면던 시절이 생각 나네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
몇주전 태백 철암역 갔다가 탄광촌 민속관(?)에서 봤던거랑 완전 똑같아요~ 그시절 어르신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철암 좋지요.
울산 살면서 1년에 몇 번씩 꼭 여행갑니다.
태백으로
그저 감사할따름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죠.
지금 대한민국은 개딸들이 다 망치고있다
제 장인어른이 철암 그쪽 중고등학교교사 생활했었고 제 마누라가 철암유치원 나왔네요 지금저희집에 유치원앨범도 있네요 제 처가 66년생인데 그때에 철암쪽 강원도가 탄광산업이 발전하는때라서 유치원을 다녔네요 제시골은 유치원은 들어본적도없는데
부인도 철암서 학교 다니셨겠네요
당신은 진정. 시간여행자입니까???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ㅎㅎ 옛날 생각나네 생두부 썰어서 양념간장 부어서...지금 젊은이들은 별로라 생각하겠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끝내주는 안주입니다 그라고 주인 아주머니가 주시는 곁가지 반찬이라도 주면 좋아라하고 먹었드랬습니다
옛날영상 넘 재밌어요~~👍👍👍👍👍👍👍
보기만해도 정겹다.물질적 풍요는 없었지만 서로의 정이 넘치던 그시절
이승연의 잊으리 노래가 깔리니 흘러간 세월에 더욱 슬프네요.
우리아버지들 ..
존경합니다.
크으..이런 영상을 도대체 어떻게 가지고 계신지 정말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ㅎ ㅏ ㅇ ㅏ…😞이분들은 이때 일 끝나고 마시는 막걸리는 정말 꿀맛일거 같다..
지금이야..먹을거 마실거 풍성 하지만 이런게 진짜 술맛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저때는 막걸리 숙성을 카바이드로 했다했는데 물도 많이 타고..조그만 과하게 먹으면 머리 깨졌다는.
빠꾸없이 들이키는 막걸리 두부위에 양념장에 찍어먹는사람들... 대단하십니다
뭐 대단할 거까지얔ㅋㅋㅋㅋ
요즘에도 다들 저렇게 먹잖아욬ㅋㅋㅋ
10도 짜리 막걸리에다가 시골 두부 한입 냠~!!♡
@@4차원제니 근데 요즘 술이 저 때 시절 보다 많이 순해 졌어요
@@AutumnSky0083 아닙니다~!!막걸리말고 지금보다 독했던 술은 소주였죠~!!
64년도까지 소주 도수가 35도 였다가,
65년도부터 소주 도수가 30도로 떨어지고(이때부터 쌀이 아닌 지금처럼 주정을 사용한 희석식 소주의 시작),
73년도부터 98년도까지 소주 도수가 오랫동안 25도를 유지했었지요~!!♡
막걸리 도수는 오히려 저때가 더 순한 게 많았습니다~!!☆
특히 저 당시 70년대 박정희 대통령때에는 '지평 막걸리(요즘에도 팝니다)'라 해가지고 5도 짜리로 낮춘 제품이 많이 대중화되던 시절이랍니다~!!^^
@@4차원제니 도수가30도 대이니까 어렸을 적 드라마에서 소주 원샷 하면 박수 치는 이유가 있었네요 ㅋㅋ
ㅋㅋㅋ 빠쿠없이...
눈물이 난다.. 아버지 찾으로 갔더니.. 아버지께서 친구분 들과 저리앉아서 두부 김치로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시고 입을 맨손으로 쓰윽 닦으시던것을 봤었는데... ㅠㅠ
윽....dr
어릴적 막걸리 받아와라. 심부름받아 저기 대포집 간 사람 있었읕듯
@@Claymore-chobo 맞습니다 ㅎㅎㅎ
@@Claymore-chobo 그리고 주전자 뚜껑으로 몰래 할짝
격하게공감합니다
저시절엔 두부도 직접 하고 김치 깍두기 다 직접하던 시절인데...겨울에 무김치하면 그거 나중에 1월달 되면 살얼음으로 얼어가지고 젓가락으로 쿡 쑤셔서 한손에는 흰쌀밥 한손에는 무먹으면 진짜 꿀맛이였는데... 두부도 뜨끈 뜨근.
저 시절 두부맛은 어땟나요? 궁금하네여
@@이제한글된다 없이 살던 시절이라 더 그런것도 있겠지만 정말 꿀맛이였죠. 콩 자체가 질이 달라요. 요즘 콩들은 대부분 수입산 GMO인데 그때는 토종콩 종자였으니깐요. 그리고 모든 작물은 토양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인공비료로 질소,인 이런걸 통해 ph농도를 맞추지만 이러다보니 작물의 퀄러리가 그때와는 비교가 안되죠. 토양이 썩으면 작물에 들어가는 영양소의 깊이가 거의 없습니다. 요즘 사과, 오렌지 이런것들이 당도만 높고 실제 비타민이나 이런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게 바로 토양탓이거던요. 그러니깐 저때 콩은 농도가 매우 짙죠. 그러다보니 그걸로 만든 두부는 거의 뭐.. 엄청난 맛이죠.
@@bird-honey 오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알려주셔서 .. 무슨말인지 대강 알거 같습니다. 궁금 하네요ㅠ 두부맛이 ..
오오
70년대에도 직접안만들고 판두부 납품받았어요 😅
가게 아주머니가 두부 쉬지말라고 호스로 물을 계속 시간대별로 틀어줌 ㅎㅎ
이유는 냉장고가 귀했던 시절임
이승연의 잊으리 노래가 더 정겹게 다가오는 영상 입니다.
열심히 살다보니 벌써 나이가 나이가 ㅠ
정겹고 따뜻한 분위기입니다. 😊
저때는 참 지푸라기 한자락도 귀하던 시절이었지요ㆍ그래도 지금처럼 세상인심이 야박하고 제잇속만 차리는 사람이 적어서 그래도 행복의 지수는 지금보다 높았다고 생각합니다ㅡ
에이 과거미화죠
@@동시이행의항변권
어느정도 맞는 말이긴
함 모든게 부족해도 이
웃과 나누며 살았음 지
금은 모든게 풍족해도
이웃과 나누며 살기도
힘든 세상이 된건 맞지
않음?
아뇨 요즘 나이드신 빌런들보면 저때 어케 살았을까 생각듬.경직되고 획일화되고 구타가 당연시되는- 물론 인정많은건 맞음
옛날올겐소리 너무듣기 좋습니다.
와.. 밥그릇 크기... 대접...
저 때도 주모라고 했을 듯...
많이 허기지셨을텐데
막걸리로 배 채우시는듯...
이분들이 계서서 지금 대한민국이 잘 먹고 편하게 사는거다~ 국가 발전에 힘을 쓰신 거룩한 분들~~^
그 분들이 지금은 자식들 앞에 놓인 사다리 걷어차고 자식들 등골 빨아먹고 있쥬 😂
그건 저시대만 그런게 아니라 지금도 미래도 마찬가지. 그냥 각자 자기살기위해 열심히 산거요. 님은 일할때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나요? 뭘 뻑하면 저시대 존경하고 그덕에 산다라고 하는지. 참. 지금 우리도 가족 먹여살리려 열심히 살았고. 그냥 그렇게들 산겁니다.
아이고 아부지 평안히 잘 계시지요 다들 아부지 같아서 눈물이 흐르네요 언제일런지는 모르지만 주님 품안에 안기는 그날 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부지 사랑합니다
70년대 초에도 변두리 식당이나 대폿집 아부지 따라 가봤지만 저정도는 아녔음
아마도 50년대나 60년대 일듯
항상 느끼지만 1920년대 30년대 40년대 태어나신 분들이 정말 상상할수 없는 고생을 하신듯 합니다
70년대 맞아요
저는 흔히 보는 일상 이었네요
70년대입니다. 50 ~60년대에 저렇게 앉아서 따닷히 불쬘 가게도 없소
구수한
인간미가 느껴져
넘 좋은것 같네요.😋😋😋
저녁겸 반주를 하시는~ 참 소박합니다.. 정이 넘치던 시절...
이런영상 자주올려주세요 😂😂
옛날에는 몰라서 연탄가스 마시면서 대포한잔씹 먹었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옛날 생각나네요
좋아요ㆍ구독누르고갑니다
와우 나 태어날때 영상이네요 추억돋네요 저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던지 80가까이 됐겠네요 우리네 아버지들 참 추억돋네요
제가 58개띠 입니다 상업학교 나와 75년ㅊ실습거쳐..76년에 화신ㅊ소니 자재과 근무했읍니다. 저는 넥타이 메고 다녔고. 공고나온 애들은 같은소니래도 작업복.ㅋ
건강한 안주입니다. 요새 안주들이 맛은 더 있을지 몰라도 칼로리도 높고 몸에 안좋은 음식도 많지요. 담백한 맛,담백한 세상도 나쁘지 않을겁니다
이렇케 살았지요
추워도 춥다고 말하지 않는 우리들
한잔술에 추위를 달래고 자식 키워가면서 묵묵히 살았지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오늘을 내일을 걱정하면서 살고있다
술 끊은지 오래됐지만,저 영상보니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잔 하고 싶네.
술을 끊으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담배는 끊어도 술은 못끊겠던데..
낭만적이네요
갬성돋아요
저시절 우리 아버지들 덕에 지금의 부유한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 감사합니다.
네 맞습니다~
왜 그대들 집은 부유하지않죠?
훌륭한 리더가 있어서 가능했지 본인들 건사하겠다고 경제활동한걸로 대단한 국위선양한걸거마냥 포장하는건 옳지 못합니다
@@Talmoman_TV 그러니깐 대머리지ㅋㅋ
@@Talmoman_TV 리더같은 소리하고 처있네
한사람한사람 열심히 사는게 모여서 나라의 경쟁력이 되는거다
그시절 대통령 공무원들 경찰들이 얼마나 부정부패가 심했는데 개소리 처하고있노
김치랑두부.. 그리고 막걸리 ... 아무턴 그 옛날.먹거리 없었던 시절. 60년 세대 분들....참 고생 했습니다
감미로운 경음악 이승연의 잊어리 너무 조타 ~❤
난 저때 태어나기는 커녕 생기지도 않았지만 이렇게만 봐도 왠지 저떄가 더 사람 사는 세상 같고 정도 많고 추억거리도 많은 시절 이었던거 같아요 저 영상속의 모든 분들 건강 하셨으면 좋겠어요ㅎㅎ
저는 저때 응애 했을때 인듯한데.. 경쟁보다 남이 잘살면 그건 그 사람 복이고... 내려놓고 살던 마인드 세대다 보니 서로간에 정겨웠던거 같아요.
올려주신분 복 많이 받으세요
이때는 사람과 사람들의 정이 넘쳤을 것 같아요^^
나에게도애수의추억이있었으니.그때.그시절.애잔하게떠오르네ㅡ어머니생각과함께ㅡ그리워라ㅡ *현미경느낌
이런건 누가 찍었을까...진심 귀한 영상을 남겨줘서 고맙네요 ㅎㅎ
그시대
최고의 술 막걸리
최고의 안주 두부
최고의 조명 백열등
최고의 난방 연탄불
태산보다 크시던 아버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아~ 옛날들이 그립습니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가게 천정에 매달린 파리 잔뜩 달라붙은 파리끈끈이
저도 허름한곳에서의 백열등이 미친듯이 그립습니다...
지금의 시간이 흘러 보면 오늘도 저렇게 보이겠지.
그라지라
시간여행자님 반갑읍니다😊 옛날생각이 새삼스레 추억에 날들 생각나게 합니다 옛날 영상 감사합니다 함께합니다 홧팅🎉🎉🎉
왜,자꾸눈물이날까?
돈암동 연탄공장에서 일 마치고 개천가에 있던 주막에서 저렇게 막걸리 한 사발로 초라하게 살았어도 그때는 사람냄새나는 세상이었습니다.
저시절 김치 두부만 있어도 꿀 맛 이죠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80년대에 방영했던 .그때 그시절. 영상인듯 합니다 저 어렸을때 방영할때마다 안방에서 엄니 아부지 형제들과 같이 보면서 잠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
그 프로는 보관되어있을듯
가슴이 먹먹해 지는 영상이네~~!!
추억의 막걸리 한사발 땡기게 만드네. 저 시절 막걸리는 수입곡이 안들어가서 더 맛있었지.
젓가락 두개만있으면 다같이 노래하고 지금의 노래방처럼ㅎ 저때 안주는 돼지비개에 김치찌개 조개젓.새우젓 짠맛에 금복주한잔해떠랫지 ㅎㅎ
저시절 영상보니 왠지 마음이 울컥하다 다시 저 시절로 돌아 가고싶다
옛날 생각 나네요
막걸리 한주전자 300원 부추전 1장에 200원 할때의 추억이 아련합니다..추억와 인정..사람과 의리, 낭만이 있는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저 시대가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너무빨리 흘러가버렸군
아버지모시고 오던때가
생각납니다.아버지냄새가 그립네요~
왕대포 집에서 두부에다가 김치에 주전자 막걸리 한잔 예전 두부는 국산 콩이라 참 맛있엇겟죠 영상속에 이분들 다 돌아가셧겟네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그립습니다 옛동무와 그때가 ~~
저시절이그립다.인정이넘치든시절.막걸리 한잔에.오늘의피로를풀든.막걸리한되.3십원.백원만잇어도.하루의회포를풀든그때.친구들아.잘지내고잇나.보고십다
막걸리에 두부한모..
이분들이 일구어낸 이나라..
정겹다...
2분 약간 전후로 털옷입은 할배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요. 그땐 저옷이 좀 사는 집에서 입는 고급이었던거 같아요.
저 양반이 무슨 짐을 지고 무슨 고개를 넘어 포항까지 장터를 다니신 분이다
또는 저 어른은 옛날에 지게에 아무도 못지는 뭣을 지셔서 장군이란 소릴 들어셨다...등등등... 제 기억으로 그 어른들이 지금도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군으로 기억하거든요..
저땐 동네 십년정도 큰형들도 막걸리를 저 큰잔에 계속 마셔댓고 오줌을 눌때는 3분은 족히 넘길 정도인게 저의 기억입니다.
정말 장군 예찬 시절...
참 옛날 생각하니 너
무 저시절 고생만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
친구하나가 사라지면 추억도! 삶 의미!도 그 만큼 사라진다! 고인 된 분들아 부디 하늘 나라에서 편안하시랴!
이런영상 보고싶었습니디ㅣ
감사합니다
아😢엣날이생각이나내요
퇴근해서삼삼오오모여서
대포한잔드러킬대가어제같은대벌서80세가
다가오내요정거리운추억이내요허허허웃을수박게😅
내나이 칩십인데
옛날 마포에서 ㅡ
그때생각이나네요
여러분 건강하세요
귀한영상 감사합니다
저 시절에 서울에서 국민학교 다녔네요...ㅎㅎ 말이 서울이지 서울 촌 구석 동네에서 다녔습니다. 당시엔 하루에 삼시세끼 다 먹는 집안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포집은 밖에서 모하는 집인지 꽤 궁금해 했었죠. 어른들이 대포 한잔 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 대포 한잔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었죠. ㅎㅎ 아마도 저 어른들은 이승에 안 계실것 같은데
저 어른들이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를 만드신 분들이었습니다. 진짜 안주 하나 시켜드리고 싶을 정도네요. ㅉㅉ...
저도 서울인데요. 저시절이라함은 70년대? 난 60년대 초에 국민학교 다녔는데 그때 학교로 옥수수빵 급식차가 와서 빵나누어 줘서 거의 굶는 애들 없었는데? 저 청량 국민학교..가회동 재동 국민 다니다..?청량국민 그때 3교대하다 2교대..그리고 4학년때 이문국민 생겼고 6학년때 석관 국민 생겼다. ㅋ 말 만타. 옛생각에...
근데 자랑스러운 한국을 지금은 윤씨가 열심히 깍아먹죠
@@chriskim6648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급식차 온적 없소. 그리고 그거야 점심이지,,,내가 점심 얘기 했냐고? 삼시세끼 다 먹는 집이 거의 없었다고 했지,,,70대라서 남의글을 이해 못하면 답글 같은거 달지 마,,,말귀를 이해도 못하고 댓글을 달고 자빠졌네 벼시니,,,
그리 오래 안됬어요..
1980년 초 까지 흑백 이였고. 만약 1970년대 청년이면..
75세 전후 입니다.. 살아 계심
@@chriskim6648 60년대 중반에는 빵을 줬고, 처음에는 옥수수빵 나중에는 밀가루빵, 61년 도에는 깡냉이로 죽을 쒀어서 도시락 못싸오는 얘들 한컵씩 나눠 줬지요... 제가 61년도에 국민학교 1학년이라서 기억이 나네요.
아 아부지 ㅠㅠ
참 맨발의 청춘 모든게 배가 고프던 시절 대포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곤 했죠 그립네요
저때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인데 주전자 들고 막걸리 심부름 많이 다녔죠 저녁때 안들어 오시면 찾으러도 많이 다녔고 !
왕대포라고 써있던 막걸리집😅 정말 보기 드문 진귀한 영상이네요.저당시에는 두부 김치에 조촐한 반찬에 저렴하게 마셨을거 같네요. 2000년대 초까지 돼지껍데기팔던 대포집이 있어서 군대동기랑 같이 마신 기억이 납니다. 저당시 힘든 노동마치고 막걸리 한잔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이네요. 힘든 일 마치고 막걸리 한잔은 최고의 행복이죠.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모습인데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