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이 오래살고 단종이 탄탄한 정치적 배경을 갖고 왕이 되었더라면 세조가 그리고 선조가 왕이 되는 일은 없었겠지요 고려 초중기때야 장수를 아꼈다고하나 갈수록 혼란스럽고 무신정변에 몽골의 다루가치 등 고려가 바람잘 날이 없었죠 솔직히 이성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고려는 무너졌을 겁니다 국운이 휘청이는데 북벌이라니요
이순신도 1597년~1598년까진 선조를 왕으로 생각안했지 망궐레조차드리지않았으니 솔직히 1597년 복직시킬때 3성으로 복직시켯지만 그건선조생각이고 우리는 영원한 4성장군 아니 5성 대원수 줘도 될 영웅 이순신장군님 난중일기엔 선조 욕은 없었지만 1597년부턴 극혐 하셧을듯
원균은 부산을 치겠다는 말을 한적 없음. 소규모 함대로 부산까지 무력시위를 반복하여 일본군의 재상륙을 지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던거 뿐임. 그리고 그건 원균 뿐만 아니라 조정 관료들 심지어 이순신도 구상했던 작전임. 그리고 실록을 보면 이미 당시에 원균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좋지 않았음. 원균의 기용은 좀더 복잡한 정치적 이유와 일본군의 재침을 막아야한다는 정유년 당시의 조선의 절박한 사정이 작용한 결과임.
한나라에서 신상필벌이 정치에 핵심이라 말하는데 그런 기본조차 못하는 나라와 그 군주니............. 고려 8대 현종 치세 군주와 강감찬의 이야기가 자꾸 대비되네요 고려사에서 말하길 군주가 한손으로는 술잔을, 다른 한손으론 강감찬의 손을 잡으며 공이 아니였음 오늘날 아 나라가 야만의 나라가 될뻔했다며 엄청 치켜세우고 당시 신하로써 최고의 명예의 궤장까지 하사받는데 하성군 이 찌질해서 빨아도 꼬랑내나는 놈은..................어휴
@@dinos119이승만도 나름 능력은 있었음 토지 개혁과 왕실 폐지로 확실하게 공산주의와 군주론을 억누름 (한국전쟁 초반에서 남로당이 극히 적었던이유) 한국전쟁 막바지에 미국에 악을쓰고 대치하면서 결국 한미방위조약 체결함 (기초적인 국가안보 보장으로 경제성장 기초) 해외 유학생보내서 박정희 시대부터 나오는 지식인들의 등장가능하게함 일본인 재산 몰수해서 일부 기업에 몰아줬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기초가 됨 그리고 출신은 독립운동가 출신 독재할려고 한거랑 부패한게 문제였지 능력자체는 괜찮은 편이였음 독재전까진 명망도 높았고 이승만이 한국 기초 토양을 만들었다고하니깐
선조의 오판하나로 전라도가 털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학살당했음..진짜 대단한넘임
선조 연기한 김태우 배우 정말 대박 연기력으로 보는 사람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함
실제 선조도 징비록의 선조와 많이 비슷했을 것 같네요
김태우는 원래 연기를 잘함...정말로.... 문종도 연기한적 있는 줄 아는데 기억은 안나지만 문종도 잘 어울렸음. 물론 사극이 아닌 현대 드라마도
유능한 무인 민심이 많이따름 강력한 군대를 지휘함 조선태조 이성계와 겹쳐보여서 불안했겠지
@@숫자한글 그쵸
잘 훈련된 군사들을 이끌고 져본 적이 없었다는 점, 민심이 향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성계와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반대의 처지인 자신이 더 위축되게 만들었죠
@@역사채우기 답글 감사합니다
자존심만 세워봤자, 나라잃으면 자존심이고 권위도 쓸모가 없지...
그래서 나라를 잃을뻔 했죠
자신 입장에선 왕좌를 잃는게 나라 잃는 것과 동일할텐데요 뭐
빤스런 선조
선조가 이순신을 경계한건 이순신이 군벌로 성장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 조선은 군벌이 반란 일으켜 세운 왕조라 이런 문제에 매우 민감했고. 그런 조짐이 보이면 예외없이 싹을 제거했음.
최고 지휘관의 부재가 낳은 대참사
국가 의 존망을 흔들 었다
선조 = 원균 무능함에 이갈린다
너무도 위대함에 충무공 께 존경과 경의~ 감사함 을 바칩니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경계한 이유는 민심이 장군께 몰리는것을 경계한것이다
@@금강-l2x 그거랑 최정예 군사를 거느린 게 가장 컷죠
고려때만해도 안그랬는데 조선왕조 들어서면서부터 시대를 이끌 인재만 나오면 바로바로 온갖 혐의를 씌워서 죽여버림..ㅋ
이순신장군도 전사하지 않았으면 선조가 무슨 혐의라도 씌워서 죽이고 역적으로 만들었을거임..
@@louis1071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가 생각나서였겠죠
현종이 강감찬을 대한 것처럼 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요
문종이 오래살고 단종이 탄탄한 정치적 배경을 갖고 왕이 되었더라면 세조가 그리고 선조가 왕이 되는 일은 없었겠지요
고려 초중기때야 장수를 아꼈다고하나 갈수록 혼란스럽고 무신정변에 몽골의 다루가치 등 고려가 바람잘 날이 없었죠
솔직히 이성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고려는 무너졌을 겁니다
국운이 휘청이는데 북벌이라니요
애당초 의병들을 명분삼아 반란일으킨놈들이 몇나오니
거기에 흑화해서 일잘하던놈들까지 의심해버림...
@@user-jjy1015 그것때매 의심병이 심해졌고 자신의 입지가 위태롭다고 생각해서 광해군과 이순신을 계속 경계했죠
에시당초 쿠데타로 세워진 국가는 또 다른 영웅을 두려워 하는 법이지
@@피캉3세 그럼요
이순신이 이성계와 비슷한 점이 좀 있어요
불패의 장수였고, 왜구를 상대로 전과를 올렸다는 점,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 등등 이성계가 야심을 품은 거랑 사병이 있었다는 것만 빼면 꽤 그렇죠
@@역사채우기 이순신은 이성계에비해 학문적으로 우월했고 행정력과 정치력이 있었기 때문에 왕이 견제했을겁니다. 이건 선조뿐만 아니고 세종대왕이라도 그렇게했죠.
이성계는 정도전이 아니라
정몽주를 선택했어야 했어요.
이순신도 1597년~1598년까진 선조를 왕으로 생각안했지 망궐레조차드리지않았으니 솔직히 1597년 복직시킬때 3성으로 복직시켯지만 그건선조생각이고 우리는 영원한 4성장군 아니 5성 대원수 줘도 될 영웅 이순신장군님 난중일기엔 선조 욕은 없었지만 1597년부턴 극혐 하셧을듯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원균은 부산을 치겠다는 말을 한적 없음.
소규모 함대로 부산까지 무력시위를 반복하여 일본군의 재상륙을 지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던거 뿐임.
그리고 그건 원균 뿐만 아니라 조정 관료들 심지어 이순신도 구상했던 작전임.
그리고 실록을 보면 이미 당시에 원균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좋지 않았음.
원균의 기용은 좀더 복잡한 정치적 이유와 일본군의 재침을 막아야한다는 정유년 당시의 조선의 절박한 사정이 작용한 결과임.
@@agm1144 그 방안을 제시한게 이순신과 권율이고 원균은 부산을 공격하겠다고 장계를 올린 바 있습니다
@@역사채우기 장계 내용에 부산공격은 언급도 안했어요.
주력 함대를 가덕도 인근에 매복해두고 2-3척씩 정찰대를 주변에 돌아다니게 하면 수전을 피하는 왜군은 대마도에서 거너오지 못할거란 내용이였습니다.
한나라에서 신상필벌이 정치에 핵심이라 말하는데
그런 기본조차 못하는 나라와 그 군주니.............
고려 8대 현종 치세 군주와 강감찬의 이야기가 자꾸 대비되네요
고려사에서 말하길
군주가 한손으로는 술잔을, 다른 한손으론 강감찬의 손을 잡으며
공이 아니였음 오늘날 아 나라가 야만의 나라가 될뻔했다며
엄청 치켜세우고
당시 신하로써 최고의 명예의 궤장까지 하사받는데
하성군 이 찌질해서 빨아도 꼬랑내나는 놈은..................어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구한 두 전쟁영웅이 받은 대우'라는 제목으로 이순신과 강감찬이 조정에서 받은 대우를 비교하는 영상을 올린 적이 있어요
ruclips.net/user/shortsPHC3NElsAgs?si=wo1lGT8_T9fGXpBh
그나마 선조가 잘한건 도망이라도 잘갔지.
인조는 니가 할수 있음 해봐!
이새끼야!
이런식으로 후금에게 계속 명분을 주고 정작 전쟁터지고 나선 도망도 못갔으니...
원균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가 팩트
@@인생은아름다워-d9q 원균의 행적이 자신과 좀 겹쳐보여서 우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토 요격 실패는 이순신으로선 변명하기 힘든 실패인건 맞음. 그걸 쉴드 친다고 적의 간계였다 운운하는데 사실이 아님. 노젓는 격군 소집이 지연되는 바람에 출동이 2주나 늦어져 가토를 놓친거임.
그래서 이미 가토가 상륙한 상황이지만 뒷북 출격이라도 시도했던 것
지금 우리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임진왜란 때보다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선조->이승만->윤석열(사이에 문재인)
이연-이종~이명복_윤석렬
최소한 선조는 능력있고 똑똑한 인재를 적재위치에 배치하는 재주도 뛰어났고 인재 발굴 능력도 발군이었죠.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하기도 심히 민망한 수준
다 유능한 리더인데 헛소리하노
@@dinos119이승만도 나름 능력은 있었음
토지 개혁과 왕실 폐지로 확실하게
공산주의와 군주론을 억누름
(한국전쟁 초반에서 남로당이 극히 적었던이유)
한국전쟁 막바지에 미국에 악을쓰고 대치하면서 결국 한미방위조약 체결함
(기초적인 국가안보 보장으로 경제성장 기초)
해외 유학생보내서 박정희 시대부터 나오는 지식인들의 등장가능하게함
일본인 재산 몰수해서 일부 기업에 몰아줬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기초가 됨
그리고 출신은 독립운동가 출신
독재할려고 한거랑 부패한게 문제였지
능력자체는 괜찮은 편이였음
독재전까진 명망도 높았고
이승만이 한국 기초 토양을 만들었다고하니깐
지 조상 이성계가 다 군벌이라
선조. 인조는 제왕으로써 자질이 부족한 왕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네요
원균 초상화 보니 완전 윤석열 상 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