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유표가 천하를 도모할 기회를 놓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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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7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72

  • @manbad7303
    @manbad7303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9

    존버는 승리의 방법이지만 존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음을 보여준 대표격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옼케발
      @옼케발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손찬 횽도 역경에서 존버하다 원소한테 ㅠ

    • @닉네임꼭설정해야함
      @닉네임꼭설정해야함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3

      존버도 때가 있는법... 승리할 타이밍이 오기까지 기다리드 풍림화산과 같이 움직이는거지 무한한 존버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거 아니겠음

    • @달로-f8o
      @달로-f8o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까

    • @김효명-f1d
      @김효명-f1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표는 존버가 아닙니다. 형주 호족들이 조조에게 우호적이라서 그래요. 대표적인 채모기 대표적인 친조조파라서 그래요.

    • @kuma7056
      @kuma7056 3 месяца назад

      사마의: ?? (존버 최종승리)

  • @iwillnever-g9l
    @iwillnever-g9l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46

    삼국지를 여러모로 리와인드해봐도 유씨들에게 저렇게 기회가 많았어도 결국 살리지 못한걸 보면 한나라의 기운자체가 끝난건 하늘의 뜻이 맞는거 같음

    • @user-pc4kn2kx5e
      @user-pc4kn2kx5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표는 유씨긴해도 걍 반역자임

    • @몰빵주의자간디
      @몰빵주의자간디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0

      걍 좋은 집안에서 태우나 이론공부만 했지 실전을 재능이나 능력이 없어서 그렇죠.

    • @이름없음-u6c
      @이름없음-u6c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아무리 유씨라고 해도 저렇게 혼란스럽고 지방세력들이 전국시대마냥 군대양성하고 싸우고 저래서 생각없이 나라먹으려하다가 자기도 결국 똑같이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임 조조가 오랜시간 빌드업해서 조비가 황제에 올랐는데 사마씨가 저지른 만행을 보셈 명분과 서사가 둘다 없으니까 삼국통일 이후 더 혼란스러워져서 막장테크탄거 ㅋㅋㅋ

    • @specialkkor
      @specialkko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몰빵주의자간디유엽은 실전파임

    • @라면땅-n6h
      @라면땅-n6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유방 유선 유비 유두 유륜

  • @Waksozm
    @Waksoz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5

    유표는 원하는대로 황제처럼 살다 천수를 누리지 않았나...나도 나이먹을수록 일하기 싫고 눕고 싶은데 형주 만리 다 먹은 60대 노인한테 야망 없다고 할수는 없을 것 같다.

  • @치코리타-q4y
    @치코리타-q4y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이 채널 쭉보고 삼국지게임하면 개꿀잼임

  • @ICUdangjik
    @ICUdangjik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영상하나하나가 왤케 재밌지ㅋㅋㅋ 감사합니다ㅎㅎ

  • @capzzang_choi
    @capzzang_choi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차니형 매일 업로드만 기다리고있어요! ㅋ
    너무너무 재밋어요~🎉

    • @손찬이형
      @손찬이형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JUNWOOSON-h1i
    @JUNWOOSON-h1i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유표는 나이가 젤 큰 걸림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본인은 누릴거 다 누렸고, 나이가 들어 젊을때의 패기는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큰 기회들이 왔다는게 문제 아니었을까요?
    정작 유표 자기자신은 부귀영화를 누리다 갔으니.. 본인을 위한 선택으로는 상책이었을지도..

  • @김지환-c5k2x
    @김지환-c5k2x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굳 재미있게 봤습니다 😊

  • @carrot0204
    @carrot020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믿고보는 손찬이형!!!

  • @hjy6497
    @hjy6497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손찬이 형의 원술 유표 손책편을 보니 확실히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손견의 예상치 못한 죽음이 천하의 흐름에 크게 작용한 것이 보이네요

  • @jaehwanan7561
    @jaehwanan756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존버라기보다는 그냥 형주 호족에 만족하며 살아간 인물인듯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5

    유표는 애당초 호족의 힘을 빌어 형주를 먹었고 타협을 할 수밖에 없던것도 있고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호족들도 보수적이라 나서질 않으니 젊었을때 단숨에 결단했던 그 느낌은 안나왔겠죠. 손권이 호족들 머리 누르고 조조와 싸우는 결단을 한 건 젊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 @abbaccc
      @abbaccc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이걸 요즘 정말 많이 느낌 나이가 정말 중요함 젊을때의 패기는 결코 돌아오지 않음

    • @abbaccc
      @abbaccc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추가하자면 조조도 한중먹고 바로 유비쳤으면 아직 촉이 안정화가 안되서 그냥 먹을수 있었는데 뜬금없이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개소리하다가 기회를 날림 나이가 정말 중요하고 조조는 젊은날의 파죽지세의 패기가 하나도 남질 않음

    • @원펀만
      @원펀만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유비는 그래도 패기가 충만 하던데 조조랑 나이도 거의 비슷했고 그 나이에 지 형제 복수하겠다고 이릉대전으로 나라 말아먹은거 보면😂

    • @아이돈노우-b9f
      @아이돈노우-b9f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원펀만 유비는 원래 패왕 끼가 남달리 강함 ㅋㅋ
      젊었을 적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의욕중독이 보인다고나 할까? ㅋㅋ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원펀만 노인은 도전정신에 해당하는 패기는 줄어들 수 있지만 분노와 관련해선 또 말이 달라지죠. 둘은 같은게 아닙니다. 견훤 보십쇼. 분노에 눈이 돌아가니 죽기 며칠 전에 갑옷입고 전투나가서 니들의 황제가 여깄다 하지 않습니까. 호족세력이 아무리 완강한 반대를 해도 리더가 눈이 돌아가면 별수없이 따르는 거죠.

  • @아이돈노우-b9f
    @아이돈노우-b9f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제 기준으로는 이 분이 역사에 대한 접근이 가장 올바른 듯.. 약간 전공자인 느낌도 들고요..
    특히 사서에 나온 기록이라 무조건 맹신하지 않고 교차검증에 의미부여를 크게 하는 것 보면 그런 생각이 듬..

  • @beer5250
    @beer525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4

    어느 날 조조가 가후에게 후계자에 대해 조언을 구하니 가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조가 어찌하여 대답하지 않느냐 재차 묻자 그제서야 가후는 원본초와 유경승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 @손찬이형
      @손찬이형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

      그리고 조비는 이 사실을 알고 이에 보답하고자 훗날 가후를 태위까지 시켜줌.

    • @진정-n9z
      @진정-n9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역시 처세의 달인 가후.. 조언도 주공!이리 하십쇼! 하면 건방질까봐 고민하는척, 말도 아끼고 팩트는 알려 주되 예시로~ 은근슬쩍ㅎㅎ 배워 갑니다.

    • @zse260
      @zse26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가후가 동탁, 장수시절만 없었다면 좀 더 정면에 나섰을텐데 아쉬운 부분이 많죠

    • @컹스-j2u
      @컹스-j2u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건 조조가 맞았음.
      기껏 천하 2/3먹어놓고 조비가 술처마시고 깽판 꼬장 피워서 결국 사마씨한테 홀라당 넘긴거 보면 조조가 맞았죠

    • @IllIllIllIlllIll
      @IllIllIllIlllIll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컹스-j2u 조앙을 죽인게 조비가 후계되는 스노우볼

  • @user-dp9sl3if1k
    @user-dp9sl3if1k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ㅋㅋ 목각인형 평가 팩폭이네요

  • @맛동산-o3n
    @맛동산-o3n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설명은 잘해주셨는데 글쎄요
    당시 중앙 조정의 관직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시기 입니다 사례교위 지금으로 따지면 수도방위 사령관이 백성에게 맞아 뒤지는 그런 개막장 시대였다는거죠
    유표라는 인물. 아무것도 없이 홀홀단신 형주자사랍시고 부임합니다. 이게 먹힐까요??
    다행히 먹혔습니다 채모 괴월 등의 형주 호족의 힘을 빌려서요. 이게 유표의 훌륭한 정치적인 능력이자 동시에 약점이었다는 것이죠
    영상에서 설명해 주셨듯이 황제의 의전을 행할만큼 야심있는 유표가 왜 관망만 했을까요?
    정답은 바로 유표는 대표이사에 가깝다는거죠
    손씨의 침공으로 수비병력을 징발하는것은 호족들도 당연히 존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월했지만 거대 세력인 원소 조조 중 택일해서 쳐들어가는 일은 호족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이기 때문이죠 유표가 아득바득 우겨서 쳐들어갔다면 십중팔구 형주는 원소파 조조파로 나뉘어서내분이 일어났을겁니다
    연의에서는 도겸처럼 근본없이 맘씨좋은 노인네로 만들어버렸지만 유표는 결코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렇게 보였던거 뿐이죠

    • @라이머-t8h
      @라이머-t8h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게 맞죠. 삼국지 게임을 보고 다들 그 시대를 투영하니 다들 이러쿵 저러쿵 하는데.. 만약 유기를 후계자로? 아주 형주 다 찢어 졌을듯.. 그리고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것이 형주의 아이덴티티 였을건데... 뭔 게임하듯이 딸깍 딸깍 전쟁이 쉬운거도 아니고..

  • @zse260
    @zse26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

    4:47 유표가 손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결국 대호족이자 유능한 군 사령관이자 또 군주에게 충성하는 주유와 같은 존재의유무 아니였을까 싶네요.
    손권은 세력내에서 유표보다도 입지가 약했지만 국태부인이 친자식으로 본다고 공인한 주유가 있었기에 호족들도 설득해가며 전쟁을 수행했고 그 이후 대도독들 역시 비슷하죠. 또 그 과정에서 군권도 어느정도 관리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유표는 그런 좋은 행운이 없었죠. 장수는 별장취급에 동탁잔당이니 입지도 나빴고 유비는 경계대상이기도 했으니 불가능. 결국 인척관계로 엮인 채모를 믿고 갈 수 밖에 없었고 결국은 채모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는걸 견제하는 것도 실패.
    4:54 이 부분은 아마 원소도 같았지 않았나 싶네요. 조조의 세력이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협천자를 통한 정당성이 강해지니 호족들은 생각이 복잡할 수 밖에 없죠. 원소도 약간 가불기 걸린 느낌이 강한데 원씨 패망 후의 제후들은 명분, 세력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상대가 안되니 더더욱 그런 상황이 심화되었을듯. 그런 면에서 적벽대전은 군사적인 패배보다도 정치적인 의미가 크다 봅니다.

    • @메이피아
      @메이피아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동의합니다. 그에 더해 손권에게는 강동을 무력으로 평정한 손가의 권위가 있었죠. 홀홀단신 부임한 유표보다는 손권 쪽이 말에 힘이 있었겠죠.

    • @zse260
      @zse260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메이피아 그 권위가 있었음에도 손책의 혈족 중 배신자도 있고 이술의 반란도 있던걸 보면 손권도 결코 쉽지않은 상황이였던 느낌이 강하죠. 주유가 있었다 해도 어린나이에 그 반란들을 제압한 손권도 역시 타고난 군주였던거 같네요. 노숙과 제갈근을 중용한것도 그렇고 ㅋㅋㅋ

    • @메이피아
      @메이피아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zse260 손권이 능력이 있었던 것도 맞지만 제가 주목하고 싶은 건 손가의 권위, 나아가 친위군 세력의 존재네요. 강동을 평정한 무력 집단의 대표가 이제는 손권이니까요. 대도록 주유를 견제할 목적으로 임명된 부도독 정보가 대표적이죠. 유표가 대군을 일으킨다고 할 때 채모를 견제할 사람으로 누굴 임명할 수 있을까요. 실제 무력이 뒷받침된 손가의 권위, 이것이 손권의 주된 성공 요인이고, 유표에게는 없었던 요소라고 생각하네요.

  • @진정-n9z
    @진정-n9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삼국지가 재밌는 게 이렇게 다들 열심히들 산다 열심히들 살어 했는데 다 죽고 결국 1세대 중에 통일하는 사람은 없었다는..ㅎㅎ 모이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모이는.. 재밌어요 인생도.

    • @몰빵주의자간디
      @몰빵주의자간디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인간의 중대사란 모두 통수에 통수를 거듭하는지라 ㅋㅋ..진짜 승자는 없죠

  • @외노자-l9k
    @외노자-l9k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관도대전 당시 객관적으로 원소의 승리가능성을 8할정도로 점치고 있었을것임 그러니 조조에게 붙어서 원소를 견재해야 한다고 했던것이었을듯 뚜껑을 열어보니 원소는 조조한테 개처럼 털리고 대세의 흐름을 통찰하지 못하고 어버버대다가 황금같은 시기를 놓친듯

    • @hyunjoonpark7440
      @hyunjoonpark744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저도 이 의견에 동의. 존버하다가 조조가 패하면 원소보다 먼저 허도로 치고 올라가서 먹거나, 아니면 조조원소 둘 다 체력 빠질 것을 기대한거 같음.

    • @joenginjo8235
      @joenginjo8235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저도 이말이 가장 의미있는 거같네요
      통찰력이 좋으시네요

  • @스티븐제라드8
    @스티븐제라드8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1등이다 ㅋ 항상잘보고 있습니다

    • @손찬이형
      @손찬이형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uy6ul9vp2o
    @user-uy6ul9vp2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유표는 참 이해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진짜 맛있게 한상 딱 차려놓고는 그걸 전시만 해 놓은채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렸죠. 차라리 원소는 한번 싸워보고 패망하기라도 했지. 조조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건, 조조가 주변 세력을 칠때 남쪽 세력들이 조조를 그냥 냅둬서 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세력도 한가운데 있던 인물이 제일 강한 세력이 될수가 있는지.

    • @닉네임꼭설정해야함
      @닉네임꼭설정해야함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노부나가도 ㅈ밥에서 가장 강한 다이묘가 되어 히데요시가 통일하는 밑거름이 되었었죠

    • @시대흐름-k3i
      @시대흐름-k3i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닉네임꼭설정해야함 노부나가가 도쿄 대 평원 먹고 있었으니까 좀 다르지 않나요? 나머지 땅은 따라가지도 못할 생산량이 나왔을 텐데요

    • @호랑둥이
      @호랑둥이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시대흐름-k3i 노부나가는 관동(도쿄지역)이 아닌 중부(나고야지역)이 근거지였습니다. 지금의 나고야지역인 당시의 오와리 지역도 물자가 풍부한 지역이긴 했습니다만, 그곳에서도 노부나가는 ㅈ밥이었습니다. 동쪽으로는 다케다 가문, 남쪽으로는 마쓰다이라(훗날 도쿠가와 가문) 가문을 앞세운 거대한 이마가와 가문으로부터 압박을 받았습니다.
      위로는 사이토 도산이 이끄는 사이토 가문이 있었구요. 물론 사이토 도산의 딸과 정략결혼으로 어느정도 안정을 찾음...
      노부나가가 얼마나 상대적 열세였는지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기습하여 요시모토와 중신들을 대거 척살하였음에도 공손하게 화의를 요청해야 했을 정도입니다.

  • @보니하니-n8g
    @보니하니-n8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유표의 핵심 수하들 거의 대부분이 그 지역의 호족세력으로 구성되었고, 그들은 형주가 전란에 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군웅할거의 시대엔 외부로 세력을 투사하자는 참모들의 책략이 나올리 없었고,
    조조가 천하를 통일할 시기엔, 그냥 항복하는 것이 그들에겐 더 이득인 상황이였죠.
    안정적으로 인재풀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장점이, 오히려 악재가 되었던 상황으로 해석이 가능해보입니다.
    무능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형주외로 세력을 내보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때문으로 보입니다.

  • @이수민-l8o
    @이수민-l8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 잘보고있습니다 ~~ 하후돈에 대해서도 한번 다뤄 주실수있나요 ?

  • @1one하나
    @1one하나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조조에게 난세에는 간웅, 치세에는 능신이라고 했다는데 유표가 내정이나 학문에는 공이 있기 때문에 난세보다 치세에 적합했을 듯
    그 가후도 치세였다면 삼공에 오를 인물이라고 봤으니

  • @likephoenix659
    @likephoenix65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삼국지가 재밌는게 지금도 적용가능한개 보임. 유표를 보면 딱 중진국의 함정과 자원의 함정에 빠진 나라 같음. 그 당시 형주는 전란으로 많은 인물들이 피난온 몇안되는 전란에서 안전한 지역이었고 그렇기에 물자와 인재가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였음. 거기다 양양은 훗날 몽골조차 혀를 내두르던 최강의 요새였고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한개 하나도 없음.

    • @임캠프
      @임캠프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종이 진짜 ㅁㅊ놈임ㅋㅋ

  • @polalis1102
    @polalis1102 Месяц назад

    하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탐구해주세요

  • @미어캣-n3o
    @미어캣-n3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우유부단의 대명사는 원소가 아니라 유표 였군요

  • @아무것도아닌것-k6v
    @아무것도아닌것-k6v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유장은 촉에 틀어박혔고 손권은 동오정벌 후에 아직 세력을 완전하게 안정시키기 전이니 관도대전 때 허도를 치는 게 진짜 좋았을텐데...

  • @changjoim3900
    @changjoim390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촉이나 오나 형주 먹었다고 천통 못 했죠. 천하통일은 관도대전 때 결정되었습니다. 유표나 손책은 천통하려면 이 때 조조 쳤어야 해요.

    • @art-jo-history
      @art-jo-histo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당시 인구밀도, 개발상태를 봤을 때 익,형,양주 중국남방을 다 먹은 세력이라도 북쪽 위나라와 대항하면 이길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편입니다. 즉 노숙,제갈량의 융중대의 성공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봄, 남북이 쪼개진 채로 오호시대까지 유지/존버할 수는 있었겠죠.

    • @izumiaco5079
      @izumiaco507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막말로 하북지에서 하북 먹고도 천통 못 한 원소가 세상 멍청이임

    • @art-jo-history
      @art-jo-histo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반절휴먼 당시 형주남부는 그냥 유표 간접통치지대와 다름 없음. 조조가 내려오니까 태수들이 바로 친조조세력으로 갈아탄거 보면 ㅋㅋ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izumiaco5079원소는 곧 죽는 병이 있었다고 봅니다. 군주의 몸은 자기만 아는거죠.. 피를 토하는상황이었으면 이미 그전부터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조짐이 있었을 것 전풍의 지구전론을 걷어찬 것도 이유도 아프다 라고 생각하면 이해됩니다. 그게 승률이 높다는 것 정도는 원소정도면 알았겠죠. 하지만 자기 살아있을때 천통을 보고싶어하는게 창업군주의 기본 자세. 하지만 수명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애가 끓죠.. 많이 아팠다는 가정을 내린다면 원소가 내린 모든 삽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cpt_doodle
    @cpt_doodl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표에게 원술 같은 무개념의 들이받는 성정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싶으면서도 환경이 아무리 받쳐줘도 타이밍을 읽고 결단을 할 수 있는 그릇이 거기까지였다고 보면 아쉽지는 않습니다. 결국 돌고돌아 형주는 조조의 배후를 치자고 종용했던 그 유비의 손에 넘어간 걸 떠올려보면.. 역사란 참 재밌는 거 같아요.

  • @이종훈-j4q
    @이종훈-j4q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코에이 능력치보다 빠른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죠. 전란의 시대란

  • @wolfk3893
    @wolfk3893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표는 초기 손권마냥
    지역호족들에 대한 통제력이
    워낙 떨어지다보니
    안전빵만 선택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손권이 인물은 인물인데...
    아무래도 피난민 출신 인재들은 있어도
    군사적 기반은 채씨같은 지역유지들이
    꽉 쥐고있으니 더 방도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함.

  • @izumiaco5079
    @izumiaco507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유표나 원소처럼 했으면 조조도 사후에 조비 조창 조식 아주 개ㅈㄹ이 났을 것 같습니다. 매정할 정도로 자식들을 시험한 조조가 새삼 대단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궁지쟁.. ? 정말 왕조에서 제일 어려운게 창업군주의 후계문제인듯. 요즘 태조왕건 보는데 견훤은 아예 그것때문에 스스로 나라문을 닫아버렸고 그 왕건의 고려도 개판이나죠.

  • @소설가지안씨
    @소설가지안씨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5:36 오늘 밤 유현덕이 때려죽여도 안올라옵니더

  • @최성준-g5o
    @최성준-g5o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유표 유장이 합쳤다면 영토가 곱배기지 그렇치만 둘다 형주 익주를 활용못했지 유표 유장도 병력이 많았고 멤버들도 짱짱했지만 실패했지 유표 유장 둘다 약했지

  • @개똥같은상훈이
    @개똥같은상훈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나왔다 내 야동

  • @dongwooklim4511
    @dongwooklim4511 7 месяцев назад

    결과론적인 평가라고 생각하네요 유표자체가 조조나 손권 유비를 상대할 적수가 못됩니다 아무리 그런세력이 있다해도 적수가 안되니 관망할수밖에요 전 개인적으로 현명했다생각하네요 그랬으니 멸문을 피하고 가문을 유지라도 시켰지 원술같이 되지도않은 꿈을꿨으면 진작 망했겠죠 천통을 생각하는 입장에선 유표가 바보같이보이지만 인간을 놓고보면 현명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기자신을 잘아는사람이 제일 현명한 사람이니까요

  • @아무것도아닌것-k6v
    @아무것도아닌것-k6v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24 이제와서 보면 삼국지 이야기는 황건적 이후 입촉까지 각지 군주들이 개똥짓 해서 이뤄진 것 같음 원술, 유표, 유장, 원소, 마등 이 5명 중 단 한 군주라도 현명하게 행동했으면 삼국지는 없었음 다 지 집에 박혀있다가 타이밍 놓치고 나락감

    • @KMKim-z3z
      @KMKim-z3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정도 깜냥이 있어야 천하를 먹는다는 뜻인듯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별개로 창업군주의 후계자 문제만큼 골치아픈게 없는듯. 그나마 청나라가 상대적으로 스무스했지 단 한번도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대형사고가 안터진 적이 없는듯. 가장 처참했던건 후백제 견훤같고..

  • @agile154
    @agile15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

    빼앗긴 지형을 회복할 수 있지만, 놓친 타이밍은 다시 오지 않죠. 유표가 형주에서 왕처럼 지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노조위원장이나 조합장 정도였다고 봅니다. 호족 세력들에 비하면 지지기반이 단단하지 않아 유표는 대군을 움직이는 것에 고민이 많았겠죠. 서주의 유비처럼 여포 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타이밍을 놓치면 본인은 초반 킬 먹은 리신이고, 결국 리통기한 오면서 나서스에 뚝배기 깨지고 말죠. 성공을 위해선 위험을 껴안고 도전해야 하나 봅니다. 삼국지 초반 16강에서 4강까지 가는 사람과 사라지는 사람은 위험을 감내하는 능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봐요. 그 대표적 예가 유비와 유표이고요. 최근 손찬이형 채널 만나서 영상 기다리는 재미가 있어요. 황보숭인지 얼음보숭인지 영상도 어서 보고 싶어요. 요즘 날씨가 궂습니다. 건강보다 영상이니 우선이니 영상 챙겨가면서 쉬시고요. 10만 실버버튼 갑시다~

  • @JHRYU-eu8rc
    @JHRYU-eu8rc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유씨들사이에서도 유비가 군계일학이 맞는듯

  • @art-jo-history
    @art-jo-histo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태평성세일 땐 성군이요~난세일 땐 범인(凡人)이요~

  • @beginofsquare
    @beginofsquare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유표 장군이 없다고 할려고 했는데 나름 문빙이 있었네

  • @j0byeon
    @j0byeon 4 месяца назад

    지금으로 보면 젊을 적 국회의원, 원내대표, 당대표, 상임위원장, 국회의장, 시장 다 해보고 80대 다 되어서 말년에 경기도지사 하고 있는 여당 중진 할배 느낌... 근데 현 여당은 레임덕이 와서 곧 정권교체가 예정 된 상태이고. 여기서 굳이 본인 입장에서 대통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싶긴 함.

  • @칼스타이너-h1o
    @칼스타이너-h1o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그런데 허도를 침공해 헌제를 옹립하는건 유표의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았을수도 있을거 같네요... 대체로 봐도 유표는 황제가 되어 권좌를 누리고 싶었던 것이지, 조조나 사마의처럼 권력을 가진 2인자의 포지션을 원한건 아닌거 같거든요...

  • @Kyungsu-z4j
    @Kyungsu-z4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언때도 그렇고 중간에 황제의 수레 천 대를 만들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게 혹시 제후를 의미하는 천승지국을 돌려 표현한거 아닌가요? 제가 원문을 보진 않았으니 확실치 않지만 유언이 주자사면서 제후왕인양 행동한다는 그 시절 특유의 돌려까기가 아닐지요. 상식적으로 당시에도 전쟁에 쓰이지 않는 수레를 천 대나 만들었다는게 이해가 안가네요.

  • @이재홍-k1n
    @이재홍-k1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후계문제에 대해 원담이 문제가 많아 일찍이 절차를 밟고 있던 원소는 수명이 받쳐 주지 못해 마무리 못하고 죽어 내분이 남.

  • @hosanglee5976
    @hosanglee5976 8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비자 선생 맵다매워

  • @skylovel10
    @skylovel1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제 짧은 생각은? 일단은 삼국지 배경에는 군주가 패권을 다투는 군웅,제후들이 패권 다툼 시대인데..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유표는 어울리지 않지요. 고을을 잘 다스리는 능력이 있지.. 조조,유비등 패권을 다투는 군주상하고는 거리가 있지요. 이미 저런 힘이 있으면서 조조를 쳐서 이득을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원소랑 대결을 했을 때도 조조는 5대 모사 전부 데리고 않았으며 허도에 남긴 인물이 순욱인가 가후를 남겼을 겁니다. 유표도 조조의 뛰어난 책사,모사를 모를리가 없고 지례 겁먹고 있고요. 유표 구성원도 글쎄요? 형주가 그렇게 인물 많다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서서,제갈양,방통도 뛰어난 책사이자 모사인데 이상하게도 형주에 있으면서 유표 밑에 없는 것을 보면 유표가 정말 나무인형으로 본 것 같아요.
    조조가 유비하고 영웅론을 논할 때도 유표평가가 아주 개차반인 건 다 알죠. 심지어 유비보다 못하다고..

  • @윤장훈-x3f
    @윤장훈-x3f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급발진인지 우유부단인지 당시엔 우찌알리요

  • @danieljk115
    @danieljk115 2 месяца назад

    조조 뒤를 치고 협천자했으면 위촉오가 아니라 위초오 삼국 형세가 됐을지도...

  • @고대경-b6d
    @고대경-b6d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비가 형주를 맡았다면 천하를 얼마나 쉽게 도모 했을까요? 유표가 유비와 함께 원소와 싸우는 조조의 배후를 노리거나 관도대전 이후 원소의 세 아들과 싸우는 조조의 배후 노린다면 충분히 천하를 도모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 @Karuse9000
    @Karuse9000 4 месяца назад

    유표가 실권이 없어도 헌제를 모시고 형주에 정착시키고 유비까지 받아들었으면 유씨 라인 장난 아닐 듯. 채모나 괴월이 실권을 쥐었어도 황제를 모시고 유비 세력 라인으로 호족 제압하면 할 만 할 텐데..

  • @wung-suu
    @wung-suu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원술 : 선배님....

  • @이명훈-z5e
    @이명훈-z5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차피 유표는 한나라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였을 뿐인데, 그에게 조조나 원소처럼 주군의 자질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것 같음. 그냥 관리였을 뿐이지. 그걸 곽가는 정확히 파악한 것이고. 삼국지 독자 시점에서 우유부단 어쩌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주군의 자질이 없다면 그냥 유표처럼 처신하는 게 가장 나았을 것 같음. 아마도 천하를 도모할 마음도 없었을 것 같고. 실제로 황제처럼 한 지역에서 군림하다가 잘 먹고 잘 간 사람임.

  • @agr436
    @agr43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표의 평화주의적 학자 성향이 난세와는 맞지가 않아서 큰 것 같습니다. 특히 세력을 키우고 싸워야하는 하나의 리더의 자리로서는 더더욱 말이죠. 유표가 키운 형주가 난세에 상황임에도 거의 문제없이 돌아갈 정도로 잘 키워내고 학자들을 배출한 것이 유표의 업적이지만 에초에 이런 것도 지방 호족 세력인 채씨 일가의 힘이 밑바탕이 된 상태이고 유표도 딱히 어떻게 하지는 않은 상태이니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호족 세력과 유표의 단편적인 면이죠.
    결국 후계자 자리로 가장 총애했던 유기가 아닌 나약한 유종이 호족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는 이유로 되었으니 후에 채씨 일가는 유비와 유기를 내쫓아버리고 유종에게 조조에게 투항을 해버리자는 조언을 내었으니... 유표의 업적은 죽써서 조조에게 준 꼴이 되었죠.

  • @andrew.kim2953
    @andrew.kim295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유표 머릿 속 계획
    1. 북쪽에는 문빙 박아 놓고, 동쪽에는 황조 박아 놓고
    2. 철통 같은 국경 수비를 완성 한 후,
    3. 나머지는 남쪽으로 계속 세력을 넓히고,
    4. 그러면 중원 못지 않은 영토, 경제력 완성,
    5. 말년까지 편하게 형주에서 안전하게 보내기.

    • @옼케발
      @옼케발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나 뒤지고나서 처남(채모)이 홀라당 항복 ㄷㄷ

  • @바잘이
    @바잘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표는 영웅의 재목이 아니었습니다

  • @MoreLiet
    @MoreLiet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지방호족의 힘으로 힘을 얻었지만 호족들 힘이 너무 쌔서 아무 것도 못한, 늙고 호랑이 사냥하러다닐 힘 없는 손권 같네요

  • @메이피아
    @메이피아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표는 한계가 명확한 인물이었습니다. 홀홀단신 부임해서 형주를 장악한 능력은 탁월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군을 이끌어 조조와 맞상대하기에는 군재가 부족했고, 내부의 대호족을 제어할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유비를 앞세워 조조를 격파한다면 그 후에는 유비를 제어할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표의 선택은 관망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웅이 되기엔 부족했지요.

  • @게임공략월드
    @게임공략월드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진짜 문제는 유비는 못믿고 채모는 조조의 친한 친구였습니다.

  • @juon91
    @juon91 25 дней наза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걸 존버라고 해주는 것도 많이 올려쳐준거다.

  • @까마귀용
    @까마귀용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유표는 조조가 하북 제패하기전 익주까지 먹었어야합니다

    • @손찬이형
      @손찬이형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익주를 간접적으로 도모하려 한 이력이 있긴 있습니다. 유언 사후 유장 추대에 대해서 감녕 등이 반기를 들 때 뜬금없이 '형주별가' 유합이 이에 호응했다고 나오는데, 사서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옆 동네 익주 땅 정치상황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모반을 지원하고 뭔가 챙기려고 한 정황 정도로는 볼 수 있겠습니다.

    • @까마귀용
      @까마귀용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위연 가후도 부탁드립니다

  • @보인짱-r7i
    @보인짱-r7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예전에 한신도 똑같지....책사(괴철)이 말한 천하삼분지계 말하니 한신이 괴철 말 듣지 않다...토사구팽...괴철 말만 잘 들었어도...유방.항우가 아니라 한신이 중원통일 했을텐데

  • @gyeongseokson1007
    @gyeongseokson1007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조와 유비는 자수성가형 원소 원술 유표 유장은 승계형

  • @나일권-h4r
    @나일권-h4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삼국지에서제일큰땅형주
    유튜브책보고영상많이봐주세요

  • @용가리비
    @용가리비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근데 유표가 형주 비웠으면 손책이 들어올거라고 생각했을것 같음 아이러니하게도 그쯤에 손책암살당해 유표 맨붕왔을듯 준비라도 해놨으면 바로 출진이라도 했을텐데

  • @rebornlee9602
    @rebornlee960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관도대전 당시 유표는 조조를 칠 수 없었습니다. 장선의 반란이 있었고 이 반란은 꽤나 오래갔습니다. 관도대전이 끝난 이후에야 장선의 반란이 겨우 진압됐습니다. 그리고 군권을 쥔 채모가 조조와 친분이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 @손찬이형
      @손찬이형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정사 환계전을 인용하면 그 말씀이 맞는데, 이는 후한서와 자치통감의 내용과 배치되는 부분입니다.
      환계전에서는 조조가 관도대전 중에 장선을 꼬드겨서 모반을 획책하여 이에 호응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다른 사서나 열전에서 교차 검증이 되지 않고, 나머지 두 사서에는 장선의 난이 건안 3년(198년) 발발하여 후한서의 경우 관도대전 이전에 정리, 자치통감의 경우에도 200년 관도 대전 중 이미 정리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결정적으로, 원소가 지원군을 보내라는 요청에 대한 한숭과의 긴 담화에서, 장선 또는 후방의 난리에 대한 내용은 한 구절도 없는데, 이는 만약 당시 유표가 장선과 전쟁 중이었다면 설명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그리하여, 후한서의 내용을 채택하였습니다.

  • @ryank794
    @ryank79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적극성은 부족하지만 아예 이해못할건아닌게 원소 아들놈들이 서로 싸우지만 않았다면 세력 고착화가 됐을수있다고 생각함

  • @topkkobang
    @topkkobang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형주의 왕같은 존재

  • @skj4409
    @skj440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표휘하 인재로 천하도모가 가당키나한가요? 지방호족처럼 존버만 해도 다행이지

  • @kmsg816
    @kmsg816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언럭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거네

  • @dhwndud18
    @dhwndud18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만병력을 가지고 있는게 말이 되느냐 참언했다고 했다가 갑자기 조조한테 붙으라고?..

  • @동치미무사
    @동치미무사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나관중 이넘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사람의 이미지를 바꿨단말인가. 저승에서 소송들어오겠어요

  • @LevisKIM
    @LevisKI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표가 군재가 부족해서, 여기저기 많이 얻어터져서 자신이 없어서 그랬지 않았을까요?
    이미 조조한테는 여러번 기가막히게 얻어맞았고, 손책한테도 씌게 얻어맞아서 이미 유표 군내에서는 패배주의가 만연했을지도요.
    그래서 쌈 좀 하는 장수랑 유비를 환영했을 듯 합니다.

  • @김동환-m1z6g
    @김동환-m1z6g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다른거 다 제쳐두고 유표는 군재가 없음.

  • @아르마딜로-w8z
    @아르마딜로-w8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지리상으로 관도대전 당시 원소와 연합하여 형주에서 기습적으로 조조의 허창을 한번 찔러볼만 했는데...본인 자식도 그렇고 주변에 인재풀 능력이 딸린다고 판단했나..주변정세를 방관만 하다 기회를 놓치더니..ㅉㅉ

  • @역사잼
    @역사잼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촉에 갔던 유언이 진짜
    야심가 아들인 유장이 참 안닮았음

  • @아무것도아닌것-k6v
    @아무것도아닌것-k6v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비가 데려갔던 장수들을 원술 망할때쯤 얻을 수 있던 군주

  • @KHH-h7j
    @KHH-h7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손찬이형
    저평가의 아이콘, 연의의 피해자 '주연' '보즐'은 영상 만들면 분량이 너무 안나오려나?

    • @손찬이형
      @손찬이형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둘다 이것저것 막 갖다붙이면 각각 10분은 만들수는 있는데, 한번 해볼께!

  • @baekjungkim8336
    @baekjungkim8336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

    그 꿀땅인 형주를 안정화 한거 보면 범상치 않은 인물이죠

    • @손찬이형
      @손찬이형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네, 양양과 강릉, 남군을 일거에 평정했을 때는 누가 알았겠습니까. 딱 거기까지였을지.

    • @이주표-g2z
      @이주표-g2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사실 확장 욕심이 없던 건 아니라고 함. 태사자가 괜히 예장 붙박이가 된 게 유표가 자기 조카와 황충 보내서 그 쪽으로 확장 시도할려다가 막힌거고 관도대전 이후엔 장선의 반란 때문에 발목 잡혀버렷고(반란이 끝난 시점에선 관도대전은 끝나버림)... 뭐 그 이후엔 교주를 노렷다거나 등등 아주 욕심이 없던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쪽도 원술처럼 군사적인 부분이 딸려서 망해버렷죠. 아, 물론 원술보단 무리수를 안둿긴 한데... 물론 유비를 안 밀어 준건 아무리봐도 정상참작은 안되면서도 또 어쩔 수 없는 게 유표의 세력 자체가 순전 양양을 기반으로 한 채씨랑 괴씨의 힘으로 얻게 된 것인데다가 어느정도 자기만의 세력을 이룰려고 나름대로 이들을 약화시킬려고 북쪽의 장수나 유비를 키운다거나 강하의 황조 세력을 키우거나 자기 조카를 예장 확장을 시키거나 하는걸 노리긴 햇는데 다 실패해서 오히려 공고히해버린 채씨랑 괴씨의 힘이엿죠.

    • @zse260
      @zse26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주표-g2z 채모를 견제할 카드를 만들어내지 못한게 큰 실책이였던거 같네요. 괴월, 괴량은 중립기어였던거 같고.

    • @이주표-g2z
      @이주표-g2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zse260 아무래도 그 탓에 누구보다 자신의 조카 유반의 장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성공하길 바랫을거 같은데 이 쪽은 태사자에게 막혓으니가... 뭐 갤 보낸거보면 걔들 공세도 당하는 쪽 입장에선 만만치 않앗을거 같긴 하지만요.

    • @zse260
      @zse260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주표-g2z 딱 주유와 같은 카드가 없던게 큰거 같네요. 명문호족이면서 충신+개 유능한 대도독ㅋㅋㅋ 이야기 주신대로 원술의 한계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러시안블루-y5m
    @러시안블루-y5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반쪽짜리 군주 ㅎㅎ

  • @닉네임꼭설정해야함
    @닉네임꼭설정해야함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표는 그냥 치세에고 잘나가는 계열사 사장이나 하던가, 본업은 교수고 관련기업에 사외 이사 같은거나 할 그릇이지. 회사의 사세를 키우거나 할 그릇은 아님. 따지고 보면 유표가 잘 나갈때도 형주의 호족들이 도와준거나 똑같음. 그냥 허우대 멀쩡한 바지사장이나 다름없음. 근데 하는짓은 황제 코스프레나 하고 다니는 그냥 주제 파악도 못하고 그러면서 그 야심에 비례하는 배짱이가 있든거도 아님

  • @단칼-h1v
    @단칼-h1v 2 месяца назад

    원소죽은후 조조뒷치기했어야했음

  • @김종한-m2k
    @김종한-m2k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손찬이형님 종회 부탁드립니다. 촉 멸망 후 그의 행보가 전혀 이해가 되지않네요.

  • @user-jw1le9ie1i
    @user-jw1le9ie1i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범상치 않은 정치가이면서 전쟁에선 의외의 다크호스였고 지방호족과 뜻이 잘 맞았던 인물이지만 ....용기가 없고 도전정신이 없었던 인물

  • @맹충현T61
    @맹충현T6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개인적으로 원소와 더불어 삼국지 투톱 등신이라고 생각함

  • @ToyosuSalaryman
    @ToyosuSalaryma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기는 왜케 일찍 죽엇나요

  • @sjch7899
    @sjch789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우리야 앉은자리에서 천하지도를 보고 역사를 다아니까 누구를 쳤어야 했느니 알지만, 저 당시를 살던 사람 입장에선 쉽지 않았겠죠 머 신중한 편이었나 보네요 유표는.

  • @MDkarma
    @MDkarma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뭐 그까이꺼 유종처럼 인생 사는 것도 딱히 나쁘진 않은.. ㅋㅋㅋ

  • @고정도
    @고정도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일단 형주자사로서 갔을때야 자신의 생명을 부지해야하니 냉혹하게 일을 처리할수있었지만 이후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그대로 안주해버린것이죠
    조조와 원소의 결전에서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거자체도 틀리지는 않았다고봅니다
    조조가 협천자를하면서 가지는 명분의우위라는게있지만 실질적인 군사력이라던가 이후 보급같은 여러 뒤를봐주는 부분 같은걸 생각하면 원소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할정도니까여
    당장 조조를 뒤치기한다해도 이후에는 강대한 원소를 맞대야 하는상황이니만큼
    어느정도 서로간에 전투로 세력이 꺽였을때 자신은 차분히 물자와 병력을 증강시키고 이후 이들을 한번에 잡는다는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어부지리니까여
    당시시점이라면 후위에는 황조가 강하에서 손씨의 압박을 막아주고있고 촉은 유장이후 나올생각도안하니까 후위도 안정적이고
    근데 예상보다도 그렇게 강대한원소가 세력차이를 생각하면 쉽게무너졌다라고 평할만큼 빠르게 무너지다보니까 뭘 해볼수가 없게된거죠
    이후의 원씨형제와 오환족이 연합하자 이를처리하는 부분에서도
    정작 유표도 아래쪽에 만족들의 전투력을 알고있는데 북쪽의 기마부족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깨질거란 예상을 못한거라고봅니다

  • @나야나-v1w
    @나야나-v1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자식들한테는 미안한짓이지만 본인자체는 ㄹㅇ 개꿀로 떵떵거리며 살다가 가신거 아닌가요

  • @무...물고기-z8k
    @무...물고기-z8k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형
    유비 ㅈㄹ
    좋아하네
    ㅇㄹㅇ ㅉㅉ

  • @Sunnymoon-v2h
    @Sunnymoon-v2h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난세에는 무조건 죽어라 싸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자신은 둘째치고 자손들은 모조리 죽는다............

  • @카르트시아
    @카르트시아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만약 손책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유표가 비어 있는 허도를 습격했다면... 지금의 삼국지는 없었을 것 같네요.

  • @소주좋아-c7z
    @소주좋아-c7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곽가같은 인재가 유표밑에있었다면 어땠을까 새삼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