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이원수문학관]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살던 집은 어디일까? By 문학관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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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0 сен 2024
  • 고향의 봄길로 떠나는 시간여행
    창원시는 창원 의창구 의창동 일대가 '고향의 봄' 창작 배경지로 이원수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임을 알리기 위해 창원초등학교 입구부터 한국 근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선생 생가까지를 ‘고향의 봄길’ 명예도로로 지정해 입간판을 세워놓았다.
    이원수 선생의 어린 시절 동심과 추억이 깃든 곳은 어디일까? 지금의 의창동에는 이원수 선생의 발자취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궁금해졌다. '고향의 봄' 그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풍경의 그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였다.
    이원수 선생은 양산읍 북정리에서 태어나 10개월 만에 창원군 창원면 중동리 100번지로 이사했고, 다시 북동리 207번지로 이사해 살았다. 이원수 선생이 4~6세 때 살았던 북동리 207번지는 세월의 무게를 못 이기고 집터만 남아 있어, 그 터에 지난 2004년 ‘고향의 봄 동요작가 이원수 선생 4~6세 성장지’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그리고 복숭아나무를 심어 봄이면 복사꽃 향기가 가득하다. 표지석 바로 옆에는 철망으로 덮어두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북동샘이 있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창원읍성이 있던 자리라, 읍성 사람들의 식수를 공급하던 곳이다. 창원읍성 안에는 북동샘과 우샘이, 읍성 바깥으로 좌샘, 대밭샘 모두 4개가 있었지만, 지금은 북동샘만 남아 있다. 북동샘은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수질 또한 좋아서 부임하는 창원부 부사마다 감탄하였다고 전한다.
    창원읍성은 창원시 의창구에 속한 북동과 중동 및 소답동 일대에 걸쳐 있었는데, 천주산과 구룡산 하단부에 해당한다. 창원읍성은 조선 전기 창원 도호부의 치소(治所) 외곽을 옹위하던 성이다. 창원읍성은 1476년(성종 7년)부터 쌓게 되었고, 1477년 10월에 읍성을 완공했는데, 높이가 12척 7촌이고, 둘레가 4,410척이었다. 이로부터 170여 년 후인 1649년(효종 1년) 10월에는 창원읍성을 개축(改築)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없어졌다. 지금은 동서남북에 하나씩 있던 대문은 모두 사라졌고 동문이 있던 곳에 성벽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80년대말까지 성벽 주변으로 미나리 재배지와 논이 있었다.
    이곳에서 이원수 선생은 1918년 7살 때 중동리 559번지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9세까지 살며 동문 밖에 있는 서당을 다니며 글을 배우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르는 사람의 집에 셋방살이를 할 때의 기분은 참 서글프고 집 주인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하였는데, 그런 남의 집에 세들어 살기를 내 일생에도 수없이 많이 했다. 어쨌든 자기 집이 없이 남의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요즘에도 많지만, 5, 60년 전에도 많았다. 집세는 자꾸 올리려 들고, 그러기 위해 집주인은 전부터 세 들어 있는 사람을 내보내고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세를 놓으려 든다.
    이 가엾은 신세의 집 없는 사람들의 이사는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동시 '이삿 길'은 나 자신의 일이나 다름없는 이사 가는 소년의 노래다."
    어린 시절 생활의 빈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가난 때문에 잦은 이사를 했지만, 서당을 다니며 지나다니던 창원읍성이 있었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북산과 천주산이 있었다.
    "나는 여섯 살, 누나는 아홉 살, 우리는 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셨는데, 저녁때가 되어도 오시지를 않았다. 어머니가 가신 산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천주산이다. 하늘 같이 높고 땅덩이만큼 큰 산이었다. 어머니는 이웃 아주머니들과 같이 그 높은 산에 가서 솔잎을 긁어모아 커다랗게 단을 만들어 머리에 이고 오실 것이다. 저녁 해가 엷은 볕을 거두어 가고 있었다.
    “엄마는 어디만큼 오고 있을까?”
    -이원수, '흘러가는 세월 속에' ‘엄마 기다리는 아이의 노래’ 중에서(1981년)
    '천주산' "
    석벽만 남은 동문을 지나다니며 성문을 드나드는 기분으로 지나다녔다고 회고하였던 창원읍성, 천주산의 아기 진달래, 파란들로 표현된 보리밭 등 꽃동네 새동네 옛 고향의 아름다움을 한없이 그리워하며 지었던 '고향의 봄'. 파란 들로 표현된 미나리밭과 보리밭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초록의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고향의 봄'뿐만 아니라 '이삿길', '어디만큼 오시나' 등 많은 작품에서 이미지로 만나게 된다.
    하늘만큼 높고 땅덩이처럼 큰 산 천주산은 해마다 진달래가 만발하면 진달래 축제를 하며 고향의 봄 창작 배경지를 알리고 있다. 이원수 선생이 창원에서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쓴 동시 '고향의 봄'이 창원을 배경으로 창작되었다는 것은 창원을 고향으로 둔 사람의 자랑이다. 이원수 선생이 살았던 집터와 노랫말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고향의 봄', 그 문화유산을 찾아서 새로이 인식하는 ‘고향의 봄길’을 걸어 보았다. 창원시에서 창원읍성의 일부 성곽의 흔적을 발견하여 동문지를 복원한다고 하니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가치를 높이는 뜻깊은 일이라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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