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고구려사를 전공하려다 중증의 수면장애가 생기더군요. 한번 잠들면 며칠씩 일어나지도 못 한 까닭에 출석이 부족하여 대학원은 제적처리되었고, 병원비를 부담하기 위해 잠시 꿈을 접고 취업해야하는 처지가 되어 정말 괴로웠는데 선생님의 영상을 보니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습니다. 아직 먼 길을 가야하지만 영상을 보며 열심히 일하며 꾸준히 치료해서, 하고 싶은 공부도 마저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때는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많은 역사의 장들을 직접 둘러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을 막아서듯 뻗어내린 산맥 말단부에 세워진 묘한 입지의 산성 기가 맥히네요. 너무 잘 봤습니다. 산성 장대지와 바로 옆 산능선 고저차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높기까지 한 형상이 마치 대전 성북동산성이나 흑석동산성 혹은 논산 황산성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영상 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니 늦여름에 갔다가 고소성 등산로에 거미랑 모기, 덩쿨이 너무 많아서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온 기억이 나네요. 직접 가봤으면 설명해주신게 더 와닿았을것 같아요. 산성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따끔 여름에 산성에 가보면 가시박이나 온갖 해충이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지자체에서 이런 사적들 관리좀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고소성 같은 곳은 나름 유명 관광지인데...
이미 발굴 결과로 백제계성으로 나왔으니 논쟁할 여지는 적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 전에 일대를 조망하는 초소의 성격이 강한 망루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씀대로 집수도 마땅치 않고 그러니 대규모 병력을 둘 곳도 아니고, 지금의 모습은 고려, 조선 이후 왜군을 막기 위한/왜군을 피하기 위한 농성용으로 확대증축한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 장기농성용이 아니라면 이해가 갑니다. 왜군은 점령이 아닌 노략질후 이동하는 형태로 움직였으니까요. 모습이 정양리산성이 떠오르는데, 육로로 침략한 몽골군을 피하기 위함/ 수로로 침략한 왜군을 피하기 위함이 차이네요 😊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많은 병력을 수용하기 어려운성이지요 중대규모가 한계로보이고 집수지를 능선에 두었다면 샘이나 기타 물조달이 가능한 수단이 있었을텐데 골짜기에 성벽을 깊이 내린 이유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정작 아래에 집수지가없네요🤔 공간이 필요했다면 능선으로 더 올리면됐었을텐데, , 섬진강과 종심을 짧게두려고했나 싶기도했네요
@@사적돌 옛강에 수군을 배치한 곳을 보면 강변에 면한 마을에 창고가 있고 병력을 두어 지키고 운송로를 통제하게 했지요. 지금도 지도를 보면 강가에 충분한 대지가 있습니다. 성은 유사시 이용하는 시설로 생각되네요. 그러니 강가에서 물자를 옮기기에 용이한 서쪽으로 내려선 형태가 된 것 같습니다. (단, 오랫동안 사용된 성인만큼 규모나 형태는 변화가 있었겠지요.) 늘 영상에 감사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한국 산성의 특징이 저렇게 급경사지에 산성을 잘쌓는데,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실제 올라가보니 왜 그렇게 쌓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급경사지라서 공격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자세로 뭔가를 할 수가 없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텨야 하겠더군요 . 대병력이 집결하기도 매우 곤란합니다 ㅎㅎ 마치 공격하는 쪽에게 최대한 엿먹으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ㅋㅋㅋ 제 개인적인 생각에 서양의 성형진지보다 한국의 산성 형태가 공격군에게는 더 지랄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게다가 서양의 성형진지는 포병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지만 한국의 산성은 산에 의지하고 있어 그럴 수 없고, 현대전에서조차 사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ㅋ
채널의 모든영상은 유물우선주의입니다. 명문와편이나 정황이 설명가능한 고고학적자료가 나오면 사서보다 우선합니다. 그다음으로 비중을 두는 자료는 삼국사기, 조선시대 지리서, 삼국유사, 중국정사전 순서입니다. 일본서기의 정황은 신뢰하지 않고 고유명사는 타 사서와 비교가능한경우 참고하는수준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해석은 정설을 우선하되 의아한부분이 있을때는 공개된 자료에서 의견을 수집하고 문제제기수준에서 언급합니다. 가끔 소수의견이 등장하는 경우는 설명되지 않는부분이 있을때입니다. 고소성에서 백제유물이나오고 섬진강 하류의 남해, 광양, 순천에서 백제 성곽이 나옵니다.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연대파악이 되어있고 이것은 백제의 확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래서 다음 영상들은 섬진강하구의 성과 치소들을 살펴보러갑니다😌
@@사적돌 유물우선주의라.... ? 역사연구에서 유물이 어찌 우선한다는건지 ? 역사는 사서 우선입니다. 유물은 사서를 보완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거니와, 특히 동산에 해당하는 유물은 얼마든지 이동가능하기에 사서의 기록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사서들을 볼 때, 당대에 가장 근접한 기록을 중심으로 보아야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국의 역사를 연구할 때,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하고 중국사서는 후한서, 삼국지, 진서 ~ 신당서 까지만 들여다보며, 공통부분과 비공통부분을 나눠보거나, 사서의 기록을 재현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밖에 삼국유사(이건 사서도 아니지만), 일본서기(삼국유사 보다도 못한 잡서) 등은 가급적 제외시키고 삼국사기를 보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의 개념을 학문의 출발로 본다면 사서가 당연히 기준점이 됩니다만 사서와 유물의 상충이 발생된다면 유물, 특히 금석문과 같은 동시대 기록물이 우선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선실록 처럼 동시대에 기록된 사서라면 이견이 거의 없겠지만 아시다시피 고대사를 기록한 사서는 시차가 많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그렇듯요. 말과 글이 수백년의 시차를 두고 전해졌다면 오류와 오염, 첨삭이 발생 되는 건 어쩔 수 없구요.
대학원에서 고구려사를 전공하려다 중증의 수면장애가 생기더군요. 한번 잠들면 며칠씩 일어나지도 못 한 까닭에 출석이 부족하여 대학원은 제적처리되었고, 병원비를 부담하기 위해 잠시 꿈을 접고 취업해야하는 처지가 되어 정말 괴로웠는데 선생님의 영상을 보니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습니다. 아직 먼 길을 가야하지만 영상을 보며 열심히 일하며 꾸준히 치료해서, 하고 싶은 공부도 마저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때는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많은 역사의 장들을 직접 둘러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고생하십니다 쾌차하셔서 원하시는 학업에 꿈을 펼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걸사비우대신 김사비우?
좋은 영상을 보면서 힐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여행 가고 싶은 장소를 많이 배워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 후원 감사드립니다😌 출장비로 요긴하게 사용하겠습니다😄
사적돌님 덕분에 잃어버렸던 학부생 시절의 고고학적 감성이 되살아니네요. 현실적인 문제로 지금은 기계쟁이로 살지만 덕분에 항상 대리만족하네요. 감사합니다. 올해 실버버튼 꼭 가시지요^^
덕담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재밌는 영상 감사합니다.
오 시청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오 후원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다녀오겠습니다😄
고소성 탐방 재밌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소성에 얽힌 후삼국시대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줄 알았는데...아쉽네요!! 소격달....
오 조만간 후백제 영상 많이 등장합니다😄
저는 최참판댁이랑 건너편에 악양 축지리 문암송(소나무) 보러 가는 길에 악양면으로 빠지는 곳에 이정표가 "고소성" 이라는 이정표를 본 적이 있긴 한데, 이렇게 영상으로 제작해주시니 궁금한게 풀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토지를 남겨주고 가셨는데 그생각이 많이 났더랬습니다, 저날도 방문객들이 많았네요😌
산성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절경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한번 더 가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사계절 풍광이 다좋은곳이지요 지리산 줄기가 참 영험합니다😄
@@사적돌 육지에서는 강진과 해남에서 지리산의 소백산줄기가 끝나지만 바닷속으로도 지리산의 소백산줄기가 이어집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악양면이 이렇게 나오니까 뿌듯하네요
시골이라 내가 왜 이곳에 태어났나 싶었는데
영상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악양의 전경이 워낙 뛰어나지요😄
훌륭한 영상 너무감사합니다.선생님의 해박한지식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역시 새해 대길할 영상입니다....정말 처음 보는 산성인데요...!!! 새해 건승 건강 건운 하시길.
오 새해 복많이받으시고 계획하신바 다 이루시는 복된한해 기원드립니다😌 항상 신경써주심 감사드립니다😄
매번 영상을 보면서 생각하는게 혼자 다니시는지 영상팀이 있는지입니다. 방방곡곡 사적지의 해박한 설명에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혼자다닙니다, 삼각대 필수네요😅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사적돌 힘드시겠습니다.
영상 고맙습니다.
즐겨 들려주심 감사드립니다😌
겨울 답사 수고하셨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잘 보고 갑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매일 챙겨보는데 사적돌님은 매일 산 타셔서 건강관리를 잘 하시겠네요ㅎㅎ
아 쉽지않습니다😅 안건강한것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을 막아서듯 뻗어내린 산맥 말단부에 세워진 묘한 입지의 산성 기가 맥히네요. 너무 잘 봤습니다. 산성 장대지와 바로 옆 산능선 고저차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높기까지 한 형상이 마치 대전 성북동산성이나 흑석동산성 혹은 논산 황산성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런구조가 은근히 있는것같아 재미있습니다 목책성이 이어지지않았을까 싶네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우리나라도 참 아름답네요. 영상을 멋지게 찍으신건지, 산이 사적을 품으니까 더욱 고즈넉하고 잔잔한 운치가 흐르네요. 그나저나 요즘 드론은 저렇게 높게까지 올라가나 보네요.
맞은편이라서 그렇습니다 해발150미터 이상은 별도 허가를 받아야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너무 가보고싶습니다
오 근처에 볼것 먹을것 유숙할곳이 많습니다 휴양하기에도 좋을것같네요😄
유투브 상받아야돼요..이 채널..❤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기억이 나는군요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의 배경이 된 토지의 최참판댁 뒷편에 이 성이 있죠 그리고 최참판댁에서 정면으로 마주보는 곳에 평사리 부부소나무도 유명하지요
악양에 갈때마다 부부소나무들러 차사진을 찍습니다
생각보다 나무가커서 놀랍지요😄
영상 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니 늦여름에 갔다가 고소성 등산로에 거미랑 모기, 덩쿨이 너무 많아서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온 기억이 나네요. 직접 가봤으면 설명해주신게 더 와닿았을것 같아요.
산성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따끔 여름에 산성에 가보면 가시박이나 온갖 해충이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지자체에서 이런 사적들 관리좀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고소성 같은 곳은 나름 유명 관광지인데...
고생많으셨습니다,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데, 지자체에서 성에 근접한곳까지 정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미 발굴 결과로 백제계성으로 나왔으니 논쟁할 여지는 적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 전에 일대를 조망하는 초소의 성격이 강한 망루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씀대로 집수도 마땅치 않고 그러니 대규모 병력을 둘 곳도 아니고, 지금의 모습은 고려, 조선 이후 왜군을 막기 위한/왜군을 피하기 위한 농성용으로 확대증축한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 장기농성용이 아니라면 이해가 갑니다. 왜군은 점령이 아닌 노략질후 이동하는 형태로 움직였으니까요. 모습이 정양리산성이 떠오르는데, 육로로 침략한 몽골군을 피하기 위함/ 수로로 침략한 왜군을 피하기 위함이 차이네요 😊
와~
고급적 학술이 가미되는 느낌이 들어 이쪽 분야의 해박한 학자이신 것 맞죠.
감사합니다.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많은 병력을 수용하기 어려운성이지요 중대규모가 한계로보이고 집수지를 능선에 두었다면 샘이나 기타 물조달이 가능한 수단이 있었을텐데 골짜기에 성벽을 깊이 내린 이유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정작 아래에 집수지가없네요🤔 공간이 필요했다면 능선으로 더 올리면됐었을텐데, , 섬진강과 종심을 짧게두려고했나 싶기도했네요
@@사적돌 옛강에 수군을 배치한 곳을 보면 강변에 면한 마을에 창고가 있고 병력을 두어 지키고 운송로를 통제하게 했지요. 지금도 지도를 보면 강가에 충분한 대지가 있습니다. 성은 유사시 이용하는 시설로 생각되네요. 그러니 강가에서 물자를 옮기기에 용이한 서쪽으로 내려선 형태가 된 것 같습니다. (단, 오랫동안 사용된 성인만큼 규모나 형태는 변화가 있었겠지요.)
늘 영상에 감사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악양에 갔을떄 저 성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인줄 몰라서 올라가볼 생각을 못했었네요 ㅠ 직접봤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영상으로나마 대리만족해봅니다
악양에 볼거리가 많지요😄 몇일 묵어가기좋다는 생각입니다😌
하동 고소산 형제봉 산행한 경험이 잇습니다 눙선 끝에 활공장이 잇더군요 거긴 차타고 올라가는
ㅎㅎㅎㅎㅎㅎ
오 형제봉 넘어가면있지요😄
답사하면서 대부분 경사지라 의문스러웠는데 이제 의문이 풀리네요. 두번다녀왔습니다만 또 다녀와야겠어요^^
동문지에서보는 섬진강전경은 절대잊을수 없지요, 예전에눈내릴때오른적이 있는데 환상적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부터 걸어서 무딤이벌판 일부를 가로질러 갔던 소풍 단골 코스 였습니다.
고소산성 올라 가기전 한산사에서 쉬면서 도시락 먹고 최종 목적지가 고소산성 이었습니다.
오 주민분 반갑습니다😌
고저차가 65m ㄷㄷ 이걸 지은 고대인들이나 이걸 답사하는 사적돌님이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ㅎㅎ
격려 감사드립니다😌 만들기 어려운 성이었을것같습니다😄
한국 산성의 특징이 저렇게 급경사지에 산성을 잘쌓는데,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실제 올라가보니 왜 그렇게 쌓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급경사지라서 공격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자세로 뭔가를 할 수가 없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텨야 하겠더군요 . 대병력이 집결하기도 매우 곤란합니다 ㅎㅎ 마치 공격하는 쪽에게 최대한 엿먹으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ㅋㅋㅋ 제 개인적인 생각에 서양의 성형진지보다 한국의 산성 형태가 공격군에게는 더 지랄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게다가 서양의 성형진지는 포병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지만 한국의 산성은 산에 의지하고 있어 그럴 수 없고, 현대전에서조차 사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ㅋ
칠곡 가산산성이 그러했지요😄 현대전에도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성의 생김새가 되게 재밌어요 ! 안쪽 건물들과 성의 보존상태가 그대로 였다면 더 재밌는 광경이 펼쳐졌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혓바닥같기도하고😅 성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라 더 재미 있는듯합니다😌
발해 왕자 대광현의 후손 태씨 집성마을도
시간이 되신다면 방문하여 주세요.
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놀라운 자료조사와 치밀한 영상에 감탄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고소성 서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으면 외성의 흔적도 람아있고, 그 아래부분에 무덤군이 모두 도굴돈것인지 파헤쳐진 상태로 많이 있습니다.
또한 악양면사무소 뒷편 산에 토성의 상태가 남아있습니다
오 평사리고분군인근에 유의미한 토축이 항공사진으로 관찰되는데, 관련 문헌이 전혀없어 본문에는 제외하였습니다. 참고자료로 커뮤니티에 올려두겠습니다😌
@사적돌 네 토성에 대한 기록이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악양면지에만 간략히...
악(嶽)이 작다는 뜻의 우리말 '아기' 또는 '아지'의 음차 표기인가 보군요.
소다사 小=嶽=아기=아지
오 그렇습니다 악=아가=작다라고 분석한 의견을 따랐 습니다😌
오 그렇네요 아기 = 악이 = 작은 이
성곽 축성 방식을 조사 하면 백제인지 가야인지 알수 있는것 아닌가요?
후대의 축성이나 여러이유로 뚜렷하나 나뉘지 않는경우도 있습니다😌
그 올라가는 길 앞에서 가야성이 아닌가하고 적혀있는 안내판을 본것같았는데 백제였군요
물론 가야성임을 배제할수없으나 유물유적은 연결점이 없네요😮
주인을 모르는 성에 들어가다니 고소하겠어요....
앗😱
힘 내시요
변함없는 응원 감사드립니다😌
고소성 입니다.
근처에 한산사두 있구여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백제는 기문을 차지하고 몇년뒤에 다사진을 차지하게 되는데, 저 성이 백제성이라면 그 사이에 필요했을 거 같군요.
설명이되는 위치지요😄
이영상이 왜 내 알고리즘에 떳는지는 모르겠지만~~내가 살고있는곳이라 본다
시청감사드립니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능선에 걸터앉아 있는 백제인의 형상을 닮은 산성인 것 같습니다^^
오 그러하네요😄 결국 돌파하지요😌
가야가 아닐까요?
가야의견도 많습니다😮
5:20 성 입구 같아보이는데 원래는 저기에 목조 건물로 성문이 있었다 봐야되죠?
동문지인데 주변에서 백제와편이 나왔으니 있었다고봐도될것같습니다, 모습이 진안합미산성을 연상케합니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 산성도 규모가 큰 산성인데 연구고증이없이 허물어저가는게 안타깝습니다
지자체의 예산이 한계가있으니 안타까운일입니다 허물어진모습도 세월을 보여주는듯한 성만의 모습인듯합니다😌
저런 산성 유적들을 보면 안의 나무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던가 아니면 다 베어내고 성터 그대로 복원했으면 합니다. 일본도 공구리 쳐서 관광지 만드는데 우리도 저렇게 넘쳐나는 산성을 관광지화 할 수는 없는걸까요.
대전옥천 산성 밀집지에 주목해 대전에서 띄워보려고하는것같더만요 이야기가 있어야 될것같은데 말이지요🤔
고소산성?
정식명칭은 하동 고소성입니다😌
@ 지리산 다니는 사람들은 산성이라고 불렀거든요.
고대국가라고 표현은 하지만 중세유럽 소영지가 연상됨
작은곳은 현재의 면소재지 정도이니, 비슷하겠습니다😮
역사 중요하죠.
옛날에 도 유명했지만 역시 유명했죠.
역시나 왜관도 있던터라...
연제구는 보셨을테고, 금정구도 한번 찾아 보세요.
저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
아 테스트는 이제 끝입니까?
오 원인파악했습니다😌 이대로 계속하면 될것같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이 작은 영토에 부족이라고 해야지
고대에는 그정도도 국가로 봤지요 영상의 국명은 삼국지위서동이전의 기록을 따릅니다😌 지금 면단위 크기도 있네요😯
지형이 멋지네요! 조용히 자연을 벗삼아 살기에는 좋을 것 같네요
아늑한 기분이 드는곳이지요😄
저기 송이 나는 곳인데
백제에서 송이버섯 지킬려고 성 쌓았나보네
ㅎㅎㅎ 소나무가 많은 산이더만요😄
중국 하동이 실제 삼국사기 위치입니다
하동 대가야
시청감사드립니다😌
사료공부 좀더 해야할듯 합니다
오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열심히 하시는분 억까하면 니가 뭐라도 된줄 알지?? 신고나 먹어라
백제시대에 뭔 돌성을 만든다고 조선시대에나 돌로 성을 만들었지.
엉떠리 역사나 하니 한국학이 조롱당하지.
일본 왜겠지요
시청 감사드립니다😌
일본서기를 엄청 신봉하시는군요.
삼국유사 보다 못한 소설책에 지나지 않는 책을 보느니, 환단고기를 읽어보는게 낫지 않을까요 ?
채널의 모든영상은 유물우선주의입니다.
명문와편이나 정황이 설명가능한 고고학적자료가 나오면 사서보다 우선합니다.
그다음으로 비중을 두는 자료는 삼국사기, 조선시대 지리서, 삼국유사, 중국정사전 순서입니다.
일본서기의 정황은 신뢰하지 않고 고유명사는 타 사서와 비교가능한경우 참고하는수준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해석은 정설을 우선하되 의아한부분이 있을때는 공개된 자료에서 의견을 수집하고 문제제기수준에서 언급합니다.
가끔 소수의견이 등장하는 경우는 설명되지 않는부분이 있을때입니다.
고소성에서 백제유물이나오고
섬진강 하류의 남해, 광양, 순천에서 백제 성곽이 나옵니다.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연대파악이 되어있고
이것은 백제의 확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래서 다음 영상들은 섬진강하구의 성과 치소들을 살펴보러갑니다😌
@@사적돌 유물우선주의라.... ?
역사연구에서 유물이 어찌 우선한다는건지 ?
역사는 사서 우선입니다. 유물은 사서를 보완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거니와,
특히 동산에 해당하는 유물은 얼마든지 이동가능하기에 사서의 기록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사서들을 볼 때, 당대에 가장 근접한 기록을 중심으로 보아야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국의 역사를 연구할 때,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하고 중국사서는 후한서, 삼국지, 진서 ~ 신당서 까지만 들여다보며, 공통부분과 비공통부분을 나눠보거나, 사서의 기록을 재현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밖에 삼국유사(이건 사서도 아니지만), 일본서기(삼국유사 보다도 못한 잡서) 등은 가급적 제외시키고 삼국사기를 보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의 개념을 학문의 출발로 본다면 사서가 당연히 기준점이 됩니다만 사서와 유물의 상충이 발생된다면 유물, 특히 금석문과 같은 동시대 기록물이 우선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선실록 처럼 동시대에 기록된 사서라면 이견이 거의 없겠지만 아시다시피 고대사를 기록한 사서는 시차가 많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그렇듯요. 말과 글이 수백년의 시차를 두고 전해졌다면 오류와 오염, 첨삭이 발생 되는 건 어쩔 수 없구요.
@@권보-l6z책보고 가서 놀아 이런데 뭐하러 와서 부들거리냐?? ㅋㅋㅋ
보자마자 고소산성인줄 알았네요ㅋㅋㅋ
저기서 사진찍으면 경치쥑입니다...
왼쪽으론 만지들판 가운데는 섬진강 우측엔 높은산맥
워낙절경이지요😄
저성은 제가 100년전에 스트레스 해소할려고 쌓았습니다. 하도 제가 고소를 많이 당해서요. ㅠㅠㅠ
아이고😞 강점기에 고소를..
고소성 경사가 심하다고 ?
처음에는 평평한 지형이 아닐까 🤔
산이 조금씩 침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시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