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학익진'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모아 들려드립니다 / 비머실록 / 비디오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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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окт 2024
  •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 활용했던 전술, '학익진'. 원래 육지전에서 활용하던 이 진영법을
    해전에서 처음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 한산도 앞바다를, 왜 학익진을, 왜 거북선을 뽑아 썼을까요?
    이순신 장군의 숨은 의도를 비디오머그가 알아보았습니다.
    영상취재 : 이재영 / 편집 : 이기은 / 구성 : 이세미 / CG : 서현중·성재은·전해리·이준호·최하
    늘 / 사전취재 : 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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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636

  • @groupsleep
    @groupsleep 2 года назад +1238

    전술도 이순신장군도 대단했지만 저는 배에 노를 젓던 수군들이 제일 한몪을 했다고 생각함요 그들이 없었다면 학익진도 물살에 휘말려 패배했을거라 생각해요

    • @c3057
      @c3057 2 года назад +111

      대체 훈련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대단.

    • @perseusLEE
      @perseusLEE 2 года назад +134

      수군 중 노를 젓던 사람들은 대부분 죄인들이었습니다. 수군에서 노를 젓는 형을 받은 것이지요. 죄인들이 실제 받는 형 중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형 중에 하나였지요.

    • @안녕-q5s
      @안녕-q5s 2 года назад +12

      @@perseusLEE 그렇죠.. 죽을수도 있는 옥살이와는 차원이 다른일이니..

    • @구름동자
      @구름동자 2 года назад +28

      정신차리세요. 뛰어난 리더가 99프로입니다. 북한과 한국보세요.
      리더의 중요성과 시스템의 중요성.
      우리가 북한보가뛰어난 이유는 같은 민족이지만 철저한 경쟁 시스템이기때문입니다. 무슨 말도안되는 인민민주주의 사고방식을...

    • @LSH-lj9sm
      @LSH-lj9sm 2 года назад +26

      맞습니다. 노젓는 수군 격군이라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명량해전도 그렇고 한산대첩도 일등공신은 손에 피 까지 흘려가며 노를 저는 격군들의 활약이 학익진의 빛을 발하게 한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 @한준수-e7n
    @한준수-e7n 2 года назад +252

    요즘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통해서 더욱 많은 사람이 옛 선조들의 지혜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을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cherrycherry1671
      @cherrycherry1671 2 года назад +1

      오 정말 저와 같은 생각 하셨네요^^~👍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led_levelman6843
      @led_levelman6843 Год назад +2

      영화의 전투신에서 선내 백병전이나 충파는 역사적 고증이나 노를 저어서 가는 방식의 배가 시속 5km 의 속도로 충파를해서 왜선을 파괴했다는 잘못된 설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에 실망이 컸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3만의 왜군을 수장 시켰음에도 백병전은 없었으며 본인 군사의 사상자수는 백명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렸어야 합니다.

    • @neutroP09
      @neutroP0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led_levelman6843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함에도 허구로 영화를 채워 넣었기에 별로 유쾌하게 볼 수 없더군요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순신은 학익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산도 주변의 조수의 흐름이 강하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고, 흐르지 않도록 배를 해안에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좌초를 두려워하고 중앙을 나아갔을 뿐이다. 그것을 후년 조선인이 학익진으로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덧붙여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고, 일본군과 싸운 적도 없다. 한산도 해전 당일 와키자카는 부산으로 돌아와 일본 수군의 배를 무장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그 후 7년간 전혀 이길 수 없게 됐다. 무서운 이순신은 조선 정부의 공격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 백의병에 떨어졌다.
      거북선의 일본 수군의 전투라든가,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는다든가,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든가,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VoidX930
    @VoidX930 2 года назад +354

    이순신이 자기 시나리오대로 전략과 전술 짠 최초의 전투잖아. 다른 전투는 맨날 상황이나 전황에 밀려서 방해받았는데, 자기 생각 제대로 못 펼치면서 싸웠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게 자기 시나리오대로 싸웠으니 진짜 뜻 깊지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순신은 학익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산도 주변의 조수의 흐름이 강하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고, 흐르지 않도록 배를 해안에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좌초를 두려워하고 중앙을 나아갔을 뿐이다. 그것을 후년 조선인이 학익진으로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덧붙여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고, 일본군과 싸운 적도 없다. 한산도 해전 당일 와키자카는 부산으로 돌아와 일본 수군의 배를 무장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그 후 7년간 전혀 이길 수 없게 됐다. 무서운 이순신은 조선 정부의 공격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 백의병에 떨어졌다.
      거북선의 일본 수군의 전투라든가,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는다든가,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든가,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거짓말이다. 이순신의 일기나 조선왕조실록을 한자로 읽으면 한산도 해전 후 7년간 이순신이 이긴 싸움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김혜연-g4d
    @김혜연-g4d 2 года назад +438

    오늘보고 왔는데 그 당시 조선을 지켜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순수순진
      @순수순진 2 года назад +10

      이후 잃어버린 30년

    • @양젠이
      @양젠이 2 года назад +2

      와 저도 그생각했어요
      ㅠㅠ

    • @한민족을위대하게
      @한민족을위대하게 2 года назад

      현재 한국 해군은 일본해군력의 30%정도 밖에 안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일본처럼 무기체계간의 상호 네트워크강화를 통한 합동교전능력(cec)를 구축하지 않는한 필패한다고 봅니다

    • @jaekim1802
      @jaekim1802 2 года назад +11

      조선 수군이란게 팩트로 말하면 전라도 수군 이였지..이순시 장군이 전라 좌수사 였고 갱상도 원균이 폭망해 뒈지고 이순신 장군이 전라도 수군들 대리고 그곳에 사는 전라도 어부들에게 모든 정보를 배우고 전라도 수군을 대리고 싸워 일본 넘들을 이긴거지..그때나 현제나 갱상도 껏들은 이간질 모함 만 잘했지..

    • @순수순진
      @순수순진 2 года назад +4

      @@jaekim1802 이후 경상도 깽깽이란 단어도 생김 ㅋㅋ

  • @바다샘물-i2p
    @바다샘물-i2p 2 года назад +159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전략과 연구, 지형에 대한 연구 등이 합쳐져 일본군을 이긴 한산도 대첩에 대해 심도있는 분석이 좋았어요. 비디오머그 제작진의 취재 감사합니다 그리고 거북선의 용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해서 좋은 영상이었어요.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순신은 학익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산도 주변의 조수의 흐름이 강하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고, 흐르지 않도록 배를 해안에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좌초를 두려워하고 중앙을 나아갔을 뿐이다. 그것을 후년 조선인이 학익진으로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덧붙여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고, 일본군과 싸운 적도 없다. 한산도 해전 당일 와키자카는 부산으로 돌아와 일본 수군의 배를 무장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그 후 7년간 전혀 이길 수 없게 됐다. 무서운 이순신은 조선 정부의 공격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 백의병에 떨어졌다.
      거북선의 일본 수군의 전투라든가,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는다든가,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든가,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모두 거짓말이다.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다. 물론 일본군과 싸운 사실은 없다.

    • @hiroono1
      @hiroono1 3 месяца назад

      거북선이 준공한 증거는 없고, 일본 수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조선의 배가 평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좌초의 위험성이 적다고는 해도 속도가 느리고 파도에 대한 안정성은 낮다. 돛을 사용해 바람에 향할 수도 없다. 일본의 배는 용골을 가진 현대적인 구조였다. 조선선과 일본선은 고무보트와 요트의 차이다.
      이순신이 조류를 이용해 싸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전투 개시 직후에는 조선이 유리하지만 조류가 바뀌면 조선선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한산도 해전에서도 울림해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순신은 전투를 던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명량해전에서는 200km도 북쪽으로 도망치고 있다. 23전 23승은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likemanggo
    @likemanggo 2 года назад +123

    학익진 거북선 어릴 때 교과서로만 배워서 그런지 크게 와닿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역사학자들과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님들의 이야기와 어느정도 픽션이더라도 당시 상황을 영화로 연출하게 되니 재밌네요. 막연하게 알고만 있는것과 깊게 들어가서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니 이순신 장군이 더 대단해보입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순신은 학익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산도 주변의 조수의 흐름이 강하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고, 흐르지 않도록 배를 해안에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좌초를 두려워하고 중앙을 나아갔을 뿐이다. 그것을 후년 조선인이 학익진으로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덧붙여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고, 일본군과 싸운 적도 없다. 한산도 해전 당일 와키자카는 부산으로 돌아와 일본 수군의 배를 무장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그 후 7년간 전혀 이길 수 없게 됐다. 무서운 이순신은 조선 정부의 공격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 백의병에 떨어졌다.
      거북선의 일본 수군의 전투라든가,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는다든가,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든가,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모두 거짓말이다.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다. 물론 일본군과 싸운 사실은 없다.

  • @해피텐-w1u
    @해피텐-w1u 2 года назад +12

    오늘 아들이랑 봤는데 잘 찍었더만요. 영화적인 구성상 결말을 아는데 극의 몰입감과 극적효과를 위한 여러 장치가 있더군요. 암튼 넘 재미있었습니다.

  • @스톰-v4p
    @스톰-v4p 2 года назад +64

    거북선이 기선제압으로 사용도 되겠지만...학익진 약점이 바로 측면인데... 그걸 거북선으로 커버치니까... ㅁㅊ 학익진의 완성 :D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순신은 학익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산도 주변의 조수의 흐름이 강하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고, 흐르지 않도록 배를 해안에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좌초를 두려워하고 중앙을 나아갔을 뿐이다. 그것을 후년 조선인이 학익진으로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덧붙여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고, 일본군과 싸운 적도 없다. 한산도 해전 당일 와키자카는 부산으로 돌아와 일본 수군의 배를 무장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그 후 7년간 전혀 이길 수 없게 됐다. 무서운 이순신은 조선 정부의 공격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 백의병에 떨어졌다.
      거북선의 일본 수군의 전투라든가,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는다든가,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든가,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모두 거짓말이다.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다. 물론 일본군과 싸운 사실은 없다.

  • @sixgunshell686
    @sixgunshell686 2 года назад +90

    세계4대 해전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 그리고 학익진 전투.. 이순신 장군은 진정한 이나라의 위인일세!

    • @BaboPig
      @BaboPig 2 года назад +2

      나머지 3개의 해전도 알려조

    • @kkkkkkkkkkkkaaaffha
      @kkkkkkkkkkkkaaaffha 2 года назад +16

      @@BaboPig 살라미스.칼라.트라팔가 이렇게 3대해전입니다

    • @BaboPig
      @BaboPig 2 года назад +1

      @@kkkkkkkkkkkkaaaffha 행복해지자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BUTT2R
      @BUTT2R 2 года назад

      명량해전이 못낀 이유는 해전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을 반영한거라서 그렇다고 하더라구여

    • @juiluskaisar6253
      @juiluskaisar6253 2 года назад

      @@BUTT2R 한산도 대첩이
      패배 했으면
      중국 본토가 공격 당했을게 유력해서
      역사가 바뀐거 때문인가?

  • @kfavorite4976
    @kfavorite4976 2 года назад +36

    치열하게 기억해야한다는 관장님의 말씀에 200% 공감합니다.

  • @hanjukaebin6048
    @hanjukaebin6048 2 года назад +50

    역사 그대로 하면 영화가 아니라 다큐겠지요. 영화를 통해 유적지도 가보고 책도 읽으면서 이순신 장군을 공부하는 계기로 삼으면 될 것 같습니다. 문무를 두루 겸비한 리더십으로 왜군과의 전쟁도 승리하고 부하들의 목숨도 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리더가 모자라면 부하만 개죽음 당하는 겁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redfire-y4v
    @redfire-y4v 2 года назад +136

    학익진은 완벽한 전술은 아닙니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요. 하지만 이순신은 이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하여 화포의 명중률을 높였지요.

    • @번개구름-b5z
      @번개구름-b5z 2 года назад +4

      그 단점이 뭔데?

    • @단지나라
      @단지나라 2 года назад

      @@번개구름-b5z 학익진 대형 중 어느 한 곳이 뚫리게 되면 전체적인 균형이 흐트러져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안 일본군은 학익진 가운데를 뚫기 위해 자신들의 빠른 배의 속도를 활용하려 했습니다 빠르게 가까워진뒤 자신들이 자신있는 월선이라는 배 위에 올라가 칼싸움을 하는 전투 방식을 고수하였는데 이순신 장군님은 이를 간파하고 거리가 가까워졌을때 화포를 쏴 발포시 명중률을 높였습니다 중간 중간 구선이라 불리는 거북선을 돌격선으로 활용하기도 했고요 적절한 구선의 활용과 적의 특성에 대한 높은 이해 그에 대적할 학익진이라는 전술과 학익진의 단점을 보완할 여러 대책을 마련한 것이 한산 대첩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큰 이유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치밀한 전략을 준비했음에 자만하지 않은 것이 일본 장군과는 차별화 된 것이었죠 용기와 철저함을 기반해 이순신 장군님의 인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고 이 인내가 곧 용기가 되어 일본군이 바로 앞에 들이닥칠 때까지 화포 공격을 기다릴 수 있게 해준 것인거죠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학익진 전술은 매우 까다롭고 위험부담이 큰 전술입니다 간격을 맞춰 대형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이 어렵고요 치밀한 계획과 수많은 연습이 학익진 전술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죠

    • @seunghyunhan1370
      @seunghyunhan1370 2 года назад +16

      @@번개구름-b5z 전선이얇아져서 어린진, 즉 집중돌파전술에 약해지며 한곳이 뚫리면 진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됩니다.

    • @번개구름-b5z
      @번개구름-b5z 2 года назад +3

      @@seunghyunhan1370 영화에 나온 내용이군

    • @GO-wl6zg
      @GO-wl6zg 2 года назад +7

      완벽한 전술이 어딨어요. 장단점이 있고 적을 알고 나를 알고 난 후 상황에 맞게 활용해야지요. 전술 모르는 장군이 어딨겠어요. 정확한 판단과 실행력이 중요하져. 정확한 판단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 @우주썸
    @우주썸 2 года назад +104

    3:11 이 부분은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사실상 조선수군 화포들의 조준사격이 가능한 거리는 약 200여m정도였어요. 조선수군이 왜군들과의 백병전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 점은 맞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를 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대장선에서 지휘를 하던 최고사령관인 이순신장군조차도 사거리가 짧은 조총에 직접 피격된 적이 여러번이니까요...
    당시 왜군들은 근접전 능력이 매우 뛰어났는데, 적의 얼굴이 바로 보였을 거리에서 싸우셨던 조상님들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였으면 팬티에 오줌 지렸을 것 같아요 ㅠ 감사합니다 조상님들

    • @박성호-j7e9o
      @박성호-j7e9o 2 года назад +21

      맞는 말씀입니다 최대거리가 1km지 실제 가용거리는 100에서 200보 였죠 실제 해전은 지근거리에서 화포로 사격후 화공으로 적선을 태운후에 도선하여 적을 마무리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론이 설득력 있습니다
      화약이나 탄이 그리 여유있지도 않을 뿐더러 재장전에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고 화포를 식히는 시간도 필요하니...
      그리 생각하면 더 대단한 전투 결과네요 진짜 대단하신 장군님과 장수들 그리고 병졸과 격군들 이네요 감사합니다

    • @golden3314
      @golden3314 2 года назад +9

      조총 50미터라고 해놓고 총통은 키로미터라고 적어놓은거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똑같은 생각을 하신분이 있었군요 ㅋㅋㅋㅋㅋㅋ

    • @user-kimhx1115
      @user-kimhx1115 2 года назад

      실제 총통 유효사거리는 최대 200보로 명시되어있는게 맞기에 2,000보인 2km는 신뢰가 확떨어지네요.
      거기에 판옥선 역시 충각을 염두한 특공선들이 있었고, 거북선 조차 용두 및에 귀신모양의 충각 무기가 있었는데... 전혀 충각을 하지않았다라..

    • @juiluskaisar6253
      @juiluskaisar6253 2 года назад

      에초에 서양도
      머스킷 보병전열 전술도
      서로 동공이 보이는 거리에서 쏘는 전술이니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midnightbluee
    @midnightbluee 2 года назад +83

    어제 한산 보고 왔는데 “바다 위의 성”을 쌓는다는 구상이 넘 소름돋았 ㅠㅠㅠ 킹갓제너럴 이순신 장군님 ,, 🫶🫶

    • @candyeye2766
      @candyeye2766 2 года назад

      재미 있었나요? 궁금하네요. 명랑은 솔직히 영화 자체는 너무 재미없어서...

    • @저글링튀김
      @저글링튀김 2 года назад +17

      @@candyeye2766 보면 확실히 신파를 많이 없앤게 보이고 거북선 나올때의 쾌감이 쩔긴함 ㅋㅋㅋ
      그냥 영상미로만 국뽕이 느껴짐 과하지 않아서 좋았음

    • @candyeye2766
      @candyeye2766 2 года назад

      @@저글링튀김 감사합니다. 솔직히 명량은 티켓구매는 국뽕이고, 줄거리는 역사를 알아야지 좀 이해되는 수준인거 같았는데...이번 영화는 예고편부터 기대 되네요.

    • @저글링튀김
      @저글링튀김 2 года назад +11

      @@candyeye2766 진짜 솔직히 역대급 이순신이 아닌가 싶음. 과묵하다 싶으면서도 고뇌하는 이순신 연기를 잘해낸거같음. 시원시원합니다~

    • @purealex100
      @purealex100 2 года назад +3

      @@candyeye2766 재미없습니다. 영화관에서 시작 한 시간내에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replica3lalang
    @replica3lalang 2 года назад +8

    실제 거북선은 충돌 전법을 쓰지 않았다지만 영화적으론 충돌하는게 그림상 더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더라구요 ㅎㅎ

    • @TV-mr5lm
      @TV-mr5lm 2 года назад

      실제 충파가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분들입니다^^

  • @Levis502tpd
    @Levis502tpd 2 года назад +4

    한사람의 영웅이 나라를 구한다 그 영웅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있다

  • @파란하늘-p7v
    @파란하늘-p7v 2 года назад +62

    보는데 눈물이 다나네요~~선조님들이 어떻게지켜온 나라인데~~고향이 한산도 근처다보니 더 눈물의감동~~😭😭😭

    • @파란하늘-p7v
      @파란하늘-p7v 2 года назад

      @@hkoo3205
      우리아버지께서는 그날을 잊지안도록 지나가는 말에도 이렇게 마씀하셨죠..이곳에 문어가 왜 맛나는지 아냐?왜맛납니까?아버지~~
      여기에 일제시대에 왜놈( 애놈)들이 많이 빠져죽어서 문어가맛나다~하시고..또 밭에서 일하시다가도 못생긴 무나 못난이 작은게 나오면 무시가꼬랭이 애놈들~이라카시고~우리큰밭에 밭을매다가 일본돈이 나오면 이곳이 일본막사였는데 광산에 구리를캔다고 마을주민들을 얼마나 노역을 시켰는지~~애놈들~~애놈들~~하시던 기억이나네요^^~그런데 한가지는 칭찬하셨어요~~일본오키나와 고구마 종자가 있엇는데 빨간자색..그고구마는 맛나다고 유일한 한마디^^~ㅋㅋ

    • @catthestupid2686
      @catthestupid2686 2 года назад +2

      그 당시 왕의 이름 선조 ...
      그는 명나라로 망명하려 했었다...

    • @user-uu5wj9nx3h
      @user-uu5wj9nx3h 2 года назад

      그럼에도 도망만다니던 선조를 보면 낯설지가 않네요 ㅎㅎ..

  • @jhchoi7012
    @jhchoi7012 2 года назад +143

    와 이순신 장군은 단순히 업적만 뛰어난게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뛰어난 전략가였다..!

    • @purealex100
      @purealex100 2 года назад +37

      뭔소리에요;; 전략과 전술적으로 뛰어나서 업적을 세운건데... 한국말을 이상하게 하시네 ㅋㅋ 귀여워요

    • @Cro-cop
      @Cro-cop 2 года назад +1

      @@purealex10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空-l6o
      @空-l6o 2 года назад

      @@purealex100 욕이야 칭찬이야ㅋㅋㅋㅋ

    • @purealex100
      @purealex100 2 года назад

      @@空-l6o 당근주고 채찍하기ㅎ

    • @空-l6o
      @空-l6o 2 года назад

      @@purealex100 :)

  • @abcomg7206
    @abcomg7206 2 года назад +49

    진짜 이순신장군님은 역사상최고의 영웅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abcomg7206
      @abcomg7206 2 года назад +1

      @@hiroono1 근거는?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abcomg7206 무엇이든 일본인에게 가르쳐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한국인은 스스로 조사하는 습관을 붙이십시오. 그러니까 노벨상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것은 정중하게 의뢰하십시오. 일본의 교육에 의해 한국인은 소변으로 얼굴을 씻어 길에서 배설물을 하는 습관을 멈췄지만, 매너는 모르는 것 같다.

    • @abcomg7206
      @abcomg7206 2 года назад

      @@hiroono1 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네 ㅋㅋㅋㅋ 예예 그리 사세요.

  • @어머어머얘좀봐진짜대
    @어머어머얘좀봐진짜대 2 года назад +12

    진짜 첫번째 거북선이랑 마지막 거북선 나왔을 때 울었음 심장에서부터 들려오는 전율을 느끼고 마치 내가 그 당시 사람들같이 전의가 들끓었음ㄹㅇ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순신은 학익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산도 주변의 조수의 흐름이 강하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고, 흐르지 않도록 배를 해안에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좌초를 두려워하고 중앙을 나아갔을 뿐이다. 그것을 후년 조선인이 학익진으로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덧붙여 거북선이 준공한 기록은 없고, 일본군과 싸운 적도 없다. 한산도 해전 당일 와키자카는 부산으로 돌아와 일본 수군의 배를 무장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그 후 7년간 전혀 이길 수 없게 됐다. 무서운 이순신은 조선 정부의 공격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 백의병에 떨어졌다.
      거북선의 일본 수군의 전투라든가,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는다든가,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든가,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여극창
    @여극창 2 года назад +21

    거북선 좌타수 우타수가 환생해서 현실에서 잘 지내는것을 보니 흐뭇합니다

    • @hiroono1
      @hiroono1 4 месяца назад

      모두 거짓말이다.

  • @프릭-c2c
    @프릭-c2c 2 года назад +9

    학익진이 단순한 진형이 아니라
    되도록 원의 모양을 만들어 둘러싸서
    포의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서였구나
    진짜 전율입니다 장군님

    • @이정희-w9b6m
      @이정희-w9b6m 2 года назад

      양옆으로 쏴대니 한쪽은 안맞아도 반대쪽 한쪽은 맞을확률도 잇으니 명중률 극대화 ㅋㅋ

  • @windkid70
    @windkid70 2 года назад +8

    이순신 장군의 기록을 보면 직충(直衝) 당파(撞破)를 하여 적선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충파가 아닌가요?

    • @golden3314
      @golden3314 2 года назад

      아예 안하진 않았겠죠 ㅋㅋ 주된 전술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요?

  • @hkoo3205
    @hkoo3205 2 года назад +44

    한산대첩은 열위에 있는 조선 수군이 압도적인 전력의 왜군을 무찌른 대첩이 아니라 화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그걸 잘 의식한 충무공의 전략으로 승리한 전투입니다. 충무공은 명량대첩과 같이 불가파한 경우를 빼고는 불리한 전투는 최대한 피하려 했고 백전백승을 노렸습니다. 그래서 충무공 이순신이 세계 최고의 명장인 겁니다.

    • @SKYBLUE-oo2ld
      @SKYBLUE-oo2ld 2 года назад +2

      그래서 명량해전이 말도 안되는 전투죠 아무리 지형지물을 이용해도 12척으로 수백척을 상대하는게 말이 안되는 상황이죠

    • @laputa1978
      @laputa1978 2 года назад +3

      @@SKYBLUE-oo2ld 일본수군이 이순신에게 쫄아서... 한산도 처럼대패할까봐 개돌안하고 ㅌㅌ 하는바람에 대패함

    • @1302고윤
      @1302고윤 2 года назад

      @@SKYBLUE-oo2ld 그게 말도 안된다기엔 당장 우리도 8만 이끌고 1600명한테 개돌하려다 역습당하고 모랄빵나서 갈린적이 있어서...

    • @youto8160
      @youto8160 2 года назад +1

      @@1302고윤 신립장군?

    • @초월-n2z
      @초월-n2z 2 года назад

      @@youto8160 신립 아니고 충청도인가? 경기 근처 3도 연합군이였음. 훈련의 부재가 낳은 임진왜란 최악의 대패.

  • @띠로리-v1y
    @띠로리-v1y 2 года назад +4

    이순신 장군님 , 그리고 선조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 @부산은산지다
    @부산은산지다 2 года назад +11

    편집증환자(선?조) 데리고 캐리한 영웅들을 존경합니다

    • @아목동아
      @아목동아 2 года назад +5

      내심 질투심 의심 열등감이 쩌는 놈
      선조

    • @부산은산지다
      @부산은산지다 2 года назад

      @@아목동아 능력이 쪼금 있지만 극한의 편집증을 곁들인 왕 ㄹㅇ

  • @손정건-s8q
    @손정건-s8q 2 года назад +16

    이번 영활보고 일본이 더 무서워졌음
    일반대중은 안그렇더라도 지도층은 너무 호전적임
    그런 호전적이고 늘 무장되어있는 무뢰한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순신장군은 더 높이 칭송되어도 마땅한 사람

    • @riankal
      @riankal 2 года назад

      그런 무뢰한들이 양아치마냥 일반 시민들 밟고 군림해서 그 유전자가 지도층으로 올라간겁니다 ㅋㅋㅋㅋ

    • @purealex100
      @purealex100 2 года назад +2

      ;;;; 사실과 다릅니다. 일본 지도층을 그렇게 호전적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냥 영화의 역사적 고증 오류입니다.

    • @golden3314
      @golden3314 2 года назад +2

      재미로 봅시다요 ㅎ 자세한 진실은 본인이 공부하고 조사한다음 결론 내리는거임

    • @akremember9398
      @akremember9398 2 года назад +2

      ㅋㅋㅋ영화는 영화로만 근데 일본측이 너무 멋있고 분량많게 나왔죠

  • @j8663
    @j8663 2 года назад +7

    송희립:완벽한 승립니다
    이순신: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 @ks3350
    @ks3350 2 года назад +5

    포술의 정확도가 높았는지 알수 있는 부분이네. 일시에 격파했다. 라는 부분부터 졸라 빡세게 훈련을 한게지.

  • @도그피그월드
    @도그피그월드 2 года назад +23

    거북선 최초모델은 조선초기 태조때 나온것이고 충돌격파용이 아닌 돌격선이라는게 영화와 다른부분이라고들 하더군요. 극적인 재미를위해 만든 장치려니 생각됩니다.

    • @사상사부
      @사상사부 2 года назад

      사실 거북선의 태초 모델이었던 갑선 설계도는 고려, 신라 같은 자료를 꺼내서 썼다는 말도 있다더군요

    • @catthestupid2686
      @catthestupid2686 2 года назад

      귀선이라고 고려시대에 최초 모델이 있었다는걸로 암 실용성이 부족하다 판단되어 당시엔 단종시켰다고 함

  • @아루루-e3h
    @아루루-e3h 2 года назад +17

    이런 전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격군들의 노고도 있었습니다

  • @chanyoung77
    @chanyoung77 2 года назад +37

    김한민 감독의 거북선에 대한 집착(?)은 명량에 이어서 한산에서도 여지없이 연출된 듯... 픽션이긴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이기에 그것이 주는 즐거움은 충분했었음..

    • @hamagum
      @hamagum 2 года назад

      역사서에 있는 내용에 살붙인 픽션맞음..삼국연의처럼 전과나 사건의 흐름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만 뭐 인물의성격이나 대화, 전투과정은 픽션맞지

    • @moment-t8v
      @moment-t8v 2 года назад

      영상에서 설명하는거좀 보세요 뭐가 픽션인데 하지말고

    • @아크하트-y5l
      @아크하트-y5l 2 года назад

      픽션 맞아요 학익진도 달라요

    • @Ulsan_81
      @Ulsan_81 2 года назад

      거북선으로 충파하는 내용도 사실과다름

    • @chanyoung77
      @chanyoung77 2 года назад +1

      @@Chgbdvvvw12 명량에선 거북선 건조 와 불타는 장면 그리고 배설이 죽는 장면 등이 다 픽션이구요. 한산에선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거북선의 충파 전술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네요. 제가 알기로는 한산대첩에서 와키자카가 쿠키와 가토 세 사람이 같이 출전했다가 두 사람보다 먼저 나서는 과정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에선 두 사람을 출전 전에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그것 말고도 세세한 부분이 있겠지만 영화가 다큐는 아닌 이상은 가능한 묘사로 봅니다. 영화라는 장르이니깐 가능한 표현 범위인 듯 싶구요. 그리 민감해 할 대목은 아닌 듯..

  • @삼색고양이-o3x
    @삼색고양이-o3x Год назад +1

    정말 성웅 이순신 그가 우리의 선조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잊지않고 부끄럽지않은 한국인으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군님, 그곳에서 그저 편히 쉬시기를.
    아직도 장군님만 생각하면 계속 마음이 아립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살자-y5t
    @재미있게살자-y5t 2 года назад +22

    넬슨 따위를 감히 이순신에 비교하다니, 우습다.

    • @frederickkim7273
      @frederickkim7273 2 года назад +2

      따위는 뭔따위임 둘다 훌륭한 명장들인데 살았던 시대
      상황 전술 모든게 다른데

    • @너와나-h3b
      @너와나-h3b 2 года назад +4

      @@frederickkim7273 2222222222222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명장인거지. 넬슨 따위라니.
      그 사람도 명장인 건 맞음. 다만 영국에서 태어나서 상황이 훨씬 더 좋았다는 거지.
      이순신 장군은 열악한 조선에서 잘했다는 거고

    • @frederickkim7273
      @frederickkim7273 2 года назад

      @@너와나-h3b 그렇게 따지면 명장인 사람 없고 명장 아닌사람도 없음

  • @choyc
    @choyc 2 года назад +7

    근데 다큐같은거 보면 조선시대 화포의 선상에서의 사거리는 최대사거리는 1km정도 인건 맞는데
    효력을 발휘하는 유효사거리는 200m전후라던데....
    그리고 충파가 주목적이 아니였다 하더라도 충파는 결국은 필요전술 아니였나?
    선봉으로서 적 함진에 침입해서 좌우로 함포사격할려고 하면 결국은 돌격인데 이리치고 저리치고 했을것같은데?

    • @choyc
      @choyc 2 года назад +2

      @Diva 그 역할이 맞긴한데 개미같이 많은 함진사이를 오고가는데 의도적인 충파보단
      간접적으로 선체측면을 부딪혀서 긁고 지나간다든지 측면에서 파고들다보면 돌격하면서 측면을 들이박아서충파도 했을듯.

    • @Chgbdvvvw12
      @Chgbdvvvw12 2 года назад +2

      충파는했다고봐야함

    • @purealex100
      @purealex100 2 года назад

      거북선은 말 그대로 돌격선임, 전쟁의 메인 함선이 아닙니다. 전열을 흐트러트리면 조류가 강한 지형에서 자기들끼리 치고 박으면서 우왕좌왕 하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나타나는게 병목현상인데 그걸 노리고 돌격선을 사용하고 그 곳에 집중포화를 터트리면 효과가 큽니다.

    • @곽성덕-q1i
      @곽성덕-q1i 2 года назад +1

      맞아요 애초에 거북이처럼 만든 이유가 근접했을때 올라타지 못하게 하는건데
      엄청 가깝게 붙을 수 있었고 간접적인 충파 정도는 있었을겁니다

  • @seo-x5b
    @seo-x5b 2 года назад +11

    장군님 없었다면 일본의 속국이되었을겁니다, 직계 조상으로서 더 감사드립니다

  • @곽성덕-q1i
    @곽성덕-q1i 2 года назад +9

    어차피 모든 전투의 막판은 결국 서로 얽혀서 개싸움인데 충돌이 왜 없었겠어요
    거북선이 일본 선에 비해 더 무겁고 훨씬 단단했던 것은 팩트입니다 의도적이든 아니었든 부딪히면 일본 배는 충격을 크게 받고 나가리 되는 거죠

    • @dabret7972
      @dabret7972 2 года назад

      부딪하면 왜군 배 노가 다 부러졌다고 함

  • @장경욱-s1x
    @장경욱-s1x 2 года назад +3

    가슴이 웅장해진다 감사합니다 ♡❤️🧡💛💚

  • @김수민-g2w2c
    @김수민-g2w2c 2 года назад +46

    정부에서 최고의 지원을 받은 넬슨과 정부에서 탄압받고 자급자족하며 싸웠던 이순신 제독님과 비교라니.. 넬슨도 훌륭하지만 이순신제독에게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 @youngpyokim8123
      @youngpyokim8123 2 года назад

      악성 국뽕 으휴

    • @frostfire311
      @frostfire311 2 года назад +13

      @@youngpyokim8123 국뽕이 아니라 펙트긴함. 영국인조차 인정할텐데. 기본적으로 군대란 국가와 국민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으면서 싸우는데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경우는 둘다 없이 싸웠음.
      국가vs국가가 아닌 일개 개인 vs 일본 정부로서 싸웠다 라는게 이순신 장군님의 가장 큰 업적임. 전투의 승리는 부차적인거고

    • @youngpyokim8123
      @youngpyokim8123 2 года назад +3

      @@frostfire311 국뽕맞음 싸우기 귀찮아서 길게 대답은 하기싫지만 결론은 닐슨도 이순신도 훌륭한 장군이고 우열을 가릴수없음. 개인 vs 일본정부는 진짜 개소리인게 한산대첩당시에 조선수군에 지원은 잘되어있었음. 애초에 해전 자체의 경험과 기술 교리 모두 조선이 앞서는 상태였음. 내가 국뽕이라고 하는 이유는 굳이 닐슨을 데리고와서 닐슨이랑 비교한다는 점임 애초에 둘다 상황이다르고 둘다 명장임. 이거는 워크래프트 게이머랑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둘데리고와서 누가 더대단하냐 비교하는거랑 같으논리임

    • @youngpyokim8123
      @youngpyokim8123 2 года назад +3

      @@frostfire311 난 이런글 볼때마다 정말 이해안가는게 닐슨한테 열등감있음? 왜 맨날 닐슨을 데리고와서 비교가 될수없는 상황을 비교하는지 모르겟음 ㅋㅋㅋ 이순신은 그자체로 훌륭한 장군임. 동북아시아에는 이순신 , 유럽에는 닐슨이 명장이다로 깔끔하게 정리할수있음.

    • @사람-i1o6t
      @사람-i1o6t 2 года назад

      @@youngpyokim8123 팩트로 두들겨 패시네....

  • @한성희-r5m
    @한성희-r5m 2 года назад +3

    진짜 가슴이 웅장해지네.
    이게 바로 국뽕이지싶다

  • @noname-dg9my
    @noname-dg9my 2 года назад +9

    임한용 박사님이 절대로 '이순신 장군님이 육지에서만 사용하던 학익진을 최초로 해전에 도입한게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여기 영상에도 자막으로 이렇게 써놨데 ㅋㅋㅋㅋㅋㅋㅋ

  • @Will.Son-Hi
    @Will.Son-Hi 2 года назад +2

    간단 명료하네요. 감사합니다.

  • @sundayschoolcontents7035
    @sundayschoolcontents7035 Год назад

    여러모로 자랑스럽습니다

  • @팅팅구-j3q
    @팅팅구-j3q 2 года назад +19

    아 나라가 풍전등화로구나.
    먼저 깨어나고,
    각자 할수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하자.
    손놓고 있으면 다 죽는다

    • @Primeonenotyou
      @Primeonenotyou 2 года назад +2

      빨갱이들한테 나라 넘어갈뻔했죠
      천만다행 입니다

    •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2 года назад +3

      @@Primeonenotyou 글쓴이는 윤석열 비꼰거같은데 ㅋㅋ

    • @yeomjiwon
      @yeomjiwon 2 года назад +3

      @@Primeonenotyou 그놈의 빨갱이타령. 독재가 문제지. 어느나라건. 이젠 공산주의는 없다고 봐야해요. 윤가도 독재하려들고... 에휴

    •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2 года назад

      @@yeomjiwon 빨갱이 있는데요?

    • @StormBackHit
      @StormBackHit 2 года назад

      @@yeomjiwon 공산주의가 왜 없냐? 무친ㅋㅋㅋㅋㅋㅋ

  • @storyfour8761
    @storyfour8761 2 года назад +4

    당시 수평적인 사고의 시대에 입체적인 사고는 가히 천재적이다.

  • @fundvic4952
    @fundvic4952 2 года назад +34

    학인진이 대단한게 당연히 좁은곳으로 유인해서 싸우는 전술이아니라 울돌목처럼 좁은곳으로 어떻게든 유인시킨게 대단한거임

    • @공자는말했지
      @공자는말했지 2 года назад +2

      무슨 울둘목처럼 좁은곳으로 유인해서 싸움? 한산 앞바다가 큰바다라서 큰 바다로 유인해서 싸웠는데

    • @golden3314
      @golden3314 2 года назад

      ㅋㅋ 아는척

    • @ouykcuf3008
      @ouykcuf3008 2 года назад

      ㅋㅋㄱㅋㅋ아는척ㅋㅋ 귀여우시네요

  • @user-to2d4e
    @user-to2d4e 2 года назад +1

    좋은 영상 고맙고 재밌게 잘 봤어요

  • @seongmin663
    @seongmin663 2 года назад +4

    포의 사거리가 1km라고 1킬로에서 쏘는 줄 아나 ㅋㅋㅋ
    이순신은 200m 내에서 싸웠다고 기록이 되있는데 ㅋㅋ

  • @herogood4491
    @herogood4491 2 года назад +7

    거북선은 충파용이 아니라해도 의도하지 않은 충파를 했을거라 확신함
    스쳐지나만 가도 왜선의 노가 다 부러져서 기동불가능 상태가 됫을거라 예상함.

    • @DreamingPigHongdon
      @DreamingPigHongdon 2 года назад +1

      노선끼리 전투할때 지나가며 상관없이 노를 부수는 방식은 동서 상관없이 유사 깊고 자주 쓰였습니다. 특히 배의 용도의 차이로 체급차이가 확실하던 임진왜란 상황에서는 안 쓰일 이유가 없지요. 이제 정면으로 들이박는 충파 전술에 관해서는 영상 이야기 처럼 안 쓰였을 것 같은 것이 당장 자동차로 약3~50km/h 정도로 박아도 안전벨트 없을때 큰 부상이 올 가능성이 있는데 이걸 무기, 화약, 노, 다수의 사람이 있는 배에서 한다면 소중한 수군이 상할 수 있어서 수군 한명의 죽음도 싫어하던 충무공께서는 즐겨 쓰지는 않았을듯합니다.

  • @asdfghjkl-js4ti
    @asdfghjkl-js4ti 2 года назад +15

    거북선은 학자마다 말이 다 달라서...거북선이 출토되면 진짜 좋겠다.

  • @제임스본드3세
    @제임스본드3세 2 года назад +2

    충무공도 대단하지만 저 전술을 완성 시키고 이뤄낸 격군들을 잊지 말아야함. 격군들 없엇으면 충무공의 학익진도 완성 될수 없엇음

  • @Lovesserafim-0502-LSF
    @Lovesserafim-0502-LSF 2 года назад +3

    아니 유인을 하는 장수들이 다 달라
    어느 곳은 사도첨사 김완,광양현감 어영담
    그리고 어느곳에서는 방답첨사 이순신
    영화에선 어영담.옥포만호 이운룡 뭐가 맞는건지 모르겠네...

  • @수호-x9t
    @수호-x9t 2 года назад

    아니,, 영화를 보는데도 이순신 장군님에게 계속 감동받고 죽어서도 따르고 싶단는 기분이 들었어요 ...!

  • @rationalconservative7792
    @rationalconservative7792 2 года назад +3

    난 도대체 신사임당이 왜 오만원인지 모르겠다 오만원은 세종 만원에 이순신을 넣어야하는거 아닌가..??

    • @스텔라리-r5v
      @스텔라리-r5v 2 года назад

      오만원권을 만들 줄 몰랐겠죠

    • @rationalconservative7792
      @rationalconservative7792 2 года назад

      @@스텔라리-r5v 그건 알지만 왜 신사임당인지 모르겠네요..인물이 그렇게 없을까요??

  • @kibaeklee1121
    @kibaeklee1121 2 года назад +3

    이순신장군님이 대단한게 네임드가 될 수 있었던 다이묘,준다이묘들에게 승리함으로써 평가절하(펙트)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듬.
    또한 도쿠가와 막부수립 지분 30%(뇌피셜) 정도는 먹음.

  • @용포-m6q
    @용포-m6q 2 года назад +1

    제장명님 임원빈님 두분다 해사 출신입니다. 해사는 충무공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두고 있지요. 엉뚱한 사람이 그 연구소장과 연구원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씁쓸합니다.

  • @shtk5763
    @shtk5763 2 года назад +17

    이순신 장군님의 최대의 적
    = 선 조 =

    • @luhar0202
      @luhar0202 2 года назад +3

      거꾸로 읽으면 조 선

    • @주피터-g7j
      @주피터-g7j 2 года назад +2

      원균도 있죠.. 빌런중에 빌런

    •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2 года назад +1

      그 이순신을 대신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파격승진시킨게 선조

    • @shtk5763
      @shtk5763 2 года назад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ㅇㅇ ㅋㅋㅋ

    •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2 года назад

      @@shtk5763 애당초 녹둔도에서 만호로 죽었을 운명인데
      그걸 반대 무시하고 특진시켜서 장군만들어준 선조까는거 보면 답없음

  • @최재훈-p8o
    @최재훈-p8o 2 года назад +1

    3:41 순식간에 학익진펼치는거 간지나네

  • @campsite97
    @campsite97 2 года назад

    3:05 무슨 화포 유효사거리가 1km입니까
    영화 초반에서 "그나마 조준사격을 할 수 있는 것은 100보 이내"라고 짚고있는데, 제작자분의 1보는 10m인가봅니다.

  • @얼까무
    @얼까무 2 года назад +3

    이길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이긴다

  • @vinko7538
    @vinko7538 2 года назад

    7분도 안되는 영상에 오프닝이 30초.... 적당한 것이 좋아요... 너무 깁니다.

  • @우주알
    @우주알 2 года назад +1

    짝짝짝 대단합니다 옛날에는 당하고만 살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

  • @Charlie-vd5of
    @Charlie-vd5of 2 года назад +3

    드라군 히드라 마린 등 레인지 어택 유닛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학익진 컨트롤 👍

  • @장트러블타-n4l
    @장트러블타-n4l 2 года назад +27

    1. 유인하는게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와키자카처럼 경험 많은 장수가 뭘 믿고 뛰쳐 나왔는지가 궁금하고
    2. 영화에 학익진 펼치고 판옥선들이 종으로 있다가 적선이 다가올 즈음에 횡으로 전환해서 포격을 하던데, 왜 미리 횡으로 대기하지 않았는지가 더 궁금했음.

    • @서방관-k6o
      @서방관-k6o 2 года назад +12

      와키자카는 수군진영으로 오기 전 용인전투에서 비슷한 전략으로 싸움 걸어온 조선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한 장수였기에 수군에서도 이길 수 있을거라고 판단하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음. 미리 횡으로 대기하고 있어야 유사시에 바뀔 물살에 빠르게 이동대처공격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 @peace4222
      @peace4222 2 года назад

      1.와키자카가 용인 전투에서 천명 남짓으로 팔만 조선 연합군을 이겨서 사기 탱천해 있었을 듯. 근데 사실 팔만이라고 해봐야 일반인이었고 아침에 밥먹는 도중에 군인들이 기습하자 일반인이 겁먹고 도망가버린 것 정도 밖에 안되는데 이걸로 조선군을 우습게 본 듯.근데 얘가 원래 시고쿠 혼슈 사이 섬 해적 출신임 .임란 초기에 조선 수군에 대해서 알지도 못한 채 원래 자신 주특기로 조선 배들이 보이자 어서 기올라가서 때려 잡는 걸로 일본 해적 원래 폼을 보여줄려고 한 것 같음.
      2.횡으로 있다 그대로 때리면 폼이 좀 안 나 보일 듯.
      임란 당시 일본애들은 엄밀히 따지면 해군이 아니라 해적에 가까움.일본 모리 가문이랑 하시바랑 싸우는 것도 봐도 배타고 들어가서 내려서 칼싸움 하거나 수군 끼리 싸움해도 서로 배끼리 묶어놓고 배위에서 칼싸움하는 것 밖에 없음.임란 당시 시고쿠 혼슈 사이에 내해에 섬들 해적들이 주로 수군을 담당하는데 원래 해적들은 어쨌든 배 위에 올라가서 터는 거 위주로 하는 거라 애들 보고 싸우라고 하면 원래 하던 짓 그대로 하는 거 밖에 없음.이걸 그대로 우리 나라에 써먹다 이순신 한테 개 털린 거라 봐야함.

    • @onulsiktak
      @onulsiktak 2 года назад

      헐저도 이부분 너무 궁금했는데 분명 보이지 않는 많은 수들이 왔다갔을거라 생각했는데 잘 안보이더라고요!

    • @mathnfish
      @mathnfish 2 года назад

      @@user-gv5vc1fx5z 이름 있는 장수였어요. 맹장에 가까웠습니다

    • @mathnfish
      @mathnfish 2 года назад +15

      와키자카의 전술이 돌격후 섬멸입니다.
      일본 내에서도 써먹었고 조선에서 육지전투에서
      같은 전술로 대승을 해서 기고만장 했었죠

  • @리라-u3h
    @리라-u3h 2 года назад +3

    선조들의 지혜에, 용기와 패기,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게됩니다. 영화 한산 최고였어요!!!

  • @wusongyang7751
    @wusongyang7751 2 года назад +3

    노를 젓는 수군은 대채 가능했지만 이순신장군은 대채 불가능한 인물... 떄문에 수군도 중요했지만 더욱 중요했던것은 이순신장군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배들은 전부 모터달린 배같아 실전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장군의 포격전이 성공한것도 그 적들의 속도가 낮았기 떄문이죠... 육지에서 기마병을 상대로 학익진을 펼치면 실퍠했을겁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이 활약한 것은 최초의 2~3전뿐이며, 그 후는 연전 연패이다. 명량해전조차 결국 일본군에 쫓겨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바다)까지 퇴각하고 있다. 마지막은 속국인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과 일본이 화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죽었다. 이순신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3승 20패 정도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싸움에 출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 측의 자료에도 그들 함선의 기록은 없다. 덧붙여 와키자카가 이순신에 대해 말한 내용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와키자카의 후손이 미역을 먹는다고 하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인의 망상에 의한 날조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날조한다.

    • @wusongyang7751
      @wusongyang7751 2 года назад

      @@hiroono1 얘야 또 나대지 말고 역사책이나 재대로 읽고 다녀라 일본에서는 역사도 재대로 가르치지 않니?... 이순신장군에게 이겼다는 역사책이라도 있냐?... 너희들 역사책에 나오는 이순신장군은 우리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나온다... 네가 좋아하는 날조 네가 하고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wusongyang7751 이하가 이순신이 지는 큰 싸움의 예다. 다른 싸움도 1592년 7월 7일 이후에는 모두 지고 있다. 음, 이순신이 200km도 도망친 싸움도, 본인이 죽은 싸움도 한국인은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승부의 기준이 다르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세계의 상식에서는 영토를 잃고 철수하거나 본인이 죽은 싸움은 지는 것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해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지고, 인심은 겁먹고, 도피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후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이를 격퇴 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 @wusongyang7751
      @wusongyang7751 2 года назад

      @@hiroono1 싸우는 장소를 고르는것도 유능한 장수의 능력입니다 압도적인 수의 차를 게릴라 전법으로 이기는 것도 전투의 한 방법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에 타격을 입히고 수군을 재구성하기위해 각지를 돌면서 백성과 군인을 모으고 싸움을 준비하던것도 모르는 사람이 전쟁을 논하나요?... 일본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나요?... 줄기차게 전쟁만 한다고?.. 다행히 일본장수들은 당신과 같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인간들은 아니었던것 같내요 그들은 주변에 성을쌓고 앞으로 있을 전쟁을 준비했으니까요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wusongyang7751 게릴라전에서도 뭐든지 좋지만, 이순신은 전투에서 지고 있다. 연전 연패다. 그러니까 무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덧붙여 제2차 세계대전의 4년간으로 일본의 인구는 줄었지만, 한반도의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일본인이 전장에서 총을 쏠 때 조선인은 잠자리에서 정자를 치고 있던 증거이다. 베트남에서는 안전한 남쪽 지배구역에서 베트남 여성을 강간해 3만 명의 라이다이한을 만들었다. 한국인에게 전쟁을 말할 자격은 없다.

  • @Lofi카빙
    @Lofi카빙 2 года назад +1

    옛날부터 선박을 잘만든거보니 지금도 그대로 물려받은 선박선진국 자랑스럽네요

  • @UH1Hlastpilot
    @UH1Hlastpilot 2 года назад +4

    바다에서 죽인 적만 거의 7만. 당시 왜군 입장에서는 자연 재해에 가까웠던 존재 ㄷㄷ

  • @LeadingWorshiper
    @LeadingWorshiper 2 года назад +1

    영화 이제 보고 왔는데
    거북선이 돌격? 들이받는 장면
    넘 박력있더라 😁

  • @최성봉-z9n
    @최성봉-z9n 2 года назад +1

    우리는 뭉치고 하나가 되면 강하다 하지만 항상 그게 어렵다는게 문제다.

  • @bruceha1615
    @bruceha1615 2 года назад

    제가 아주 예전에 KBS에서본 다큐멘터리에서와는 다르게 말씀하시네요. 거북선의 용머리 바로 밑에 위치된 도깨비 머리를 사용해서 부딪혀 가며 적진속으로 헤집고 들어가서 포격하며 공격했다고 들었습니다.

    • @golden3314
      @golden3314 2 года назад

      기록이 자세히 쓰여있지 않으니;; 난감하네요 생각해보면 격군이 슈퍼맨도 아니고 거북선+부딪힌 적선까지 밀면서 노를 젓는것도 힘들어보이긴 하네요

    • @gabihj7932
      @gabihj7932 2 года назад

      그런기록이안돼있어서 다추측임
      충파의 경우 속도가빨라야하는데 거북선의속도는 느렸다고합니다

  • @하하호호-y5p
    @하하호호-y5p 2 года назад +4

    진짜 그 시대에 대단한 발상이다

  • @박창엽-q5o
    @박창엽-q5o 9 месяцев назад

    학익진이 무슨 진법이란 설명은 많으나 정작 세밀하게 강의하는 유튜브를 본적이 없습니다. 저는고향이 함평인데 학익진 우현에함평선과 무안선 군산선이 보여서 군청에 자세하게 어떤 출생 누가 참여했는지 물어보면 그 자체를 모르더군요. 부디 전문가분께서 학이진을 보면서 한척한척 자세한 설명부탁드려요 꼭요!!!

  • @cszmoon
    @cszmoon 2 года назад

    취재기자님 멘트가 아쉽네요. 이순신과(X)~ / 이순신장군과(O)~

  • @mklee8993
    @mklee8993 2 года назад +2

    6:16 해설자뒤에 장이수 동상ㅋㅋㅋㅋ

  • @worldlover195
    @worldlover195 2 года назад

    명중률문제해결했다는 내용이해가잘안됩니다 ㅠㅠ
    역사적사실 충파는 없군요!!!

  • @neutroP09
    @neutroP0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거리 1km는 지상에서 최대로 쏘는 거리고... 바다에선 끊임없이 배가 흔들리기 때문에 거의 무조건 직사로 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근대에 전열함 같은 더 진보된 시점에서도 마찬가지고 1~2차 세계대전에서도 함포는 직사 쏘았음)
    조총보다는 사거리가 길었겠지만 의외로 상당히 근접했을 때부터 포를 쏘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에서 양각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킬존을 형성하는 것과 같이
    학익진을 통해 빗나간 포탄이 목표로 하지 않은 다른 함선을 타격하게끔 하는 데에서 충무공의 천재적인 전술을 옅볼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배가 끊임없이 요동치기 때문에 노를 젓는 그 당시에는 단순히 나아 가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을텐데 학익진과 같은 고난도의 진법을 해전에서 훌륭하게 구현하고
    걸핏 잘못하면 적이 달아나기 쉬운데(일본 배는 선회가 느리지만 속도가 빠르기에...) 74척중 59척이 박살난 것을 보면 아마도 학익진으로 그물을 만들어 왜적을 섬멸한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것이 한산도 대첩 전투 상황이 되겠네요.

  • @sunilsohn4137
    @sunilsohn4137 2 года назад +9

    거북선 영어로 Geogukseon 이라 하셔서 너무 보기 좋았어요 ㅎㅎ
    만약 한국 원래 하는것처럼 이름자체를 다 번역해버려서 K-turtle ship (케이 터틀십) 이따구로 했으면 걍 나올려고 했어요 ㅋㅋ.
    거북선 화이링~~

    • @ckm4010
      @ckm4010 2 года назад

      ㅎㅎ저두요

    • @sunilsohn4137
      @sunilsohn4137 2 года назад

      @@ckm4010 ㅋㅋ 같은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셔서 기분 좋네요 ㅎ

    • @1027gee
      @1027gee 2 года назад +1

      ㅎㅎㅎㅎ케이 터틀 쉽ㅎㅎㅎㅎㅎ몬가 웃기네욯ㅎㅎ

    • @sunilsohn4137
      @sunilsohn4137 2 года назад

      @@1027gee ㅋㅋㅋ 그니깐요. 그런 웃긴걸.
      우리나라 음식들에게 하고있으니… 문제예요.
      냉면 - k cold noodle
      전 - k pancake… 참 이름이 있는데 말이죠

  • @금동이-y6h
    @금동이-y6h 2 года назад +1

    영화에서는 어영담장군이 유인을 하는데...다른 이순신이 유인하러 갔다니 누구말이 맞는겨?

  • @miraclevictory
    @miraclevictory 2 года назад +1

    고맙습니다

  • @Eruda_707
    @Eruda_707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장군님이 지금 시대에 다시 한번 태어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 @nyang3451
    @nyang3451 2 года назад +2

    이순신 앓이 너무 멋있어ㅜㅜ

  • @피디슨-z6i
    @피디슨-z6i 2 года назад +19

    < 실제 한산대첩과 영화상의 미세한 차이점 >
    1. 어영담 장군의 견내량 진입과정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들을 폭이 좁고 물살이 강한 견내량 쪽으로
    유인작전을 먼저 시도한 것은, 현 방화도 남단에서 이순신 장군을 정찰하고 있었던,
    와키자카 부대의 선발대였음.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이를 사전에 간파(자신의 작전과 맞아 떨어짐)하였으며,
    노를 젓는 격군을 두배로 투입(기동의 중요성)한 어영담 장군의 판옥선들로 하여금,
    적의 미끼가 되어 준 척 하면서, 견내량쪽으로 따라가도록 한 후,
    왜군의 미끼가 되어 주고, 잠시나마 포격으로 적에게 피해를 입힌 후,
    오히려, 견내량 밖으로 도망쳐 나오는 연출을 하면서, 역으로 적을 유인해 낸 것임.
    2. 학익진 운용 (영상 1:40 지역이 아닙니다)
    한산대첩을 이끈 학익진 본대의 중심은, 현 통영 마리나리조트 옆 방파제 지역임.
    수많은 판옥선들을 일사분란하게 기동시켜, 적을 포위해야만 하는 학익진의 형태를
    만들기에는 종적거리가 다소 짧아서, 완성된 학익진형태를 짧은 시간에 만들기에는
    전술적으로 무리가 있는 지역임.
    따라서,
    현 통영해양경찰서 전용부두쪽(학익진 좌측)에 이억기 장군의 판옥선들과,
    현 화도방파제쪽(학익진 우측)에 원균 장군의 판옥선들을 매복 시킨 후,
    왜선들이 방화도 남단까지 쳐들어 왔을 때, 진영에 합류시켜
    비로소,
    그들을 완전 포위하는 학익진을 펼쳐 공격을 퍼 부었는데,
    말은 학익진이지만, 그야말로 “가두리양식장” 형식으로 적을 가두어 공격하였음.
    왜군의 유일한 퇴로는,
    한산도로 향하는 학익진의 우측 끝부분이었으며,
    당시, 한산도는 무인도였기 때문에, 그쪽 퇴로는 이순신장군이
    작전적으로 열어 두었다고 판단됨.
    3. 거북선 운용
    거북선은 충파에 적합한 함선이 아님.
    더군다나, 함선자체가 무겁고 기동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조류에 역행하면서 기동하기엔 매우 부적절함.
    결론적으로,
    거북선의 전술적 운용은, 적의 본대로 침투시켜, 적의 조총사거리 밖에서
    일정한 거리를 계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거북선으로 접근하는 왜선을 지속적으로
    포격하여 격침시키는 역할임.

    • @purealex100
      @purealex100 2 года назад

      그리고 실제로 와키자카는 일본 내에서도 듣보잡 장수였는데 너무 과대평가해서 나오죠. 이순신의 맞상대로 나오기 위해서요. 명량에서는 역사에서 거의 언급 조차 안되는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이순신의 적으로 출연시킵니다. 제작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 @henryv4989
      @henryv4989 2 года назад +3

      오히려 무거울 수록 조선 배 입장에선 충파에 좋음 빠르게 다가오는 적이 단단한 조선배에 들이 박으니 당연히 부서질수밖에 나무 질이랑 나무못은 물에 스며들수록 팽창해서 더 단단해짐

    • @marinej7267
      @marinej7267 2 года назад +2

      @@purealex100 엥? 무슨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듣보잡이라니?
      시즈가타케 칠본창중 한명이고 3만석 이상을 받는 다이묘 였는데?

    • @purealex100
      @purealex100 2 года назад

      @@marinej7267 3만석이면 진짜 적은거야.,, 일본역사나 석고계산할줄 모르지? 보통 전국에 알려진다 싶으면 10만 이상이고 대형다이묘는 100만200만 수준 a급들이 40만 이런식이다 3만이면 아주 적은거야 대단한게 아니야. 제발 아는척 자제해라ㅋ

    • @marinej7267
      @marinej7267 2 года назад

      @@purealex100 그니깐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듣보라고? 너 혹시 임진왜란 전을 이야기 하는거냐? 아님 후를 이야기 하는거냐? 당연히 전국시대의 신겐,겐신,모리 같은 다이묘, 즉 영주들은 몇십만석,100만석인 대형 다이묘랑 비교하는건 무리지~
      근데 임진왜란 직전에는 가토 기요마사는 1만석 다이묘였다.. 그래서 가토 기요마사가 듣보냐? 임진왜란전 시즈가타케 전투때까지 전부 그냥 도요토미의 장수나 가신들이였다고.. 대부분이 대형 다이묘들이 아니였다고.. 그리고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도요토미가 직접 키운 수군이였고 아와지라는 작은 섬을 받아서 근거지로 삼고 있는 다이묘 였음..
      그리고 세키가하라 전투에도 참전 했는데도 듣보라고?
      근데 왜 일본에서 별로 안 유명하냐고? 도쿠가와가 집권하면서 다른 대형다이묘들 숙청하고 견재할때 와키자카는 알아서 기어서 세력을 넓힐 생각도 않고 그냥 아와지 섬에 쳐박혀서 활동을 안함.. 그리고 바로 아들한테 다이묘 자리 넘기고 그냥 은퇴함.. 그 덕분에 다른 다이묘들은 가문 멸망하고 없어질때 와키자카는 메이지유신까지 버틴거고..
      그리고 왜 우리나라는 와키자카를 중요시하고 영화에 나오냐고?
      조선에는 중요한 인물이니깐~
      용인전투 대승, 칠전량전투 대승, 한산도전투에서는 대패했으니깐~
      와키자카는 무인도에 갇혀 미역줄기를 뜯어 먹었으니깐~
      그리고 그걸 기록으로 남겨서 조선이나 일본에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되니깐~
      이제 알겠어?

  • @timij7757
    @timij7757 2 года назад

    거북선이 격파용은 아닐지몰라도 바다라는 전쟁 북새통에 어느정도의 선체끼리 충돌로 기선제압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듭니다.

  • @Benedict-j9w
    @Benedict-j9w 2 года назад

    안내하시는 분 목소리 듣고 미스터 선샤인에서 함안댁 연기하신 배우님인줄 알았다..

  • @VeryDeepBlueSky
    @VeryDeepBlueSky 2 года назад +1

    판옥선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나라는 해군이 아니라 수군이었음. 수군이었기에 첨저선보다는 판옥선이 맞는거였던...

  • @이정희-w9b6m
    @이정희-w9b6m 2 года назад

    영화에서는 긴사정거리로 계속 포를 쏴대는게 아니라 근접에서 더큰데미지를 주는 산탄포? 랑 화포랑 섞어서 쏘던데 역사기록이랑은 다른건강~

  • @5분순삭한국사
    @5분순삭한국사 2 года назад +3

    개인적으로는 거북선 등장에 너무 포커스가 맞춰져서 그런지, 정작 한산도 대첩의 임팩트가 기대했던 것보다 웅장하지는 않았던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ㅜㅜ

  • @김현래-p9b
    @김현래-p9b 2 года назад +1

    00:19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라는 건 일본의 한자 읽기 용법입니다.

  • @happilyeverafter1903
    @happilyeverafter1903 2 года назад +1

    이 영상 보고 다시 국뽕에.. 취해부렀

  • @jeki1978
    @jeki1978 2 года назад +2

    한 나라 장군이 이런 생각을 하였는데.. 현재 군이나 정치계를 보라... 한심하기 그지 없다.. 아.. 정치쪽은 그 옛날 매국노가 판치던 그시대를 참으로 닮았다.

  • @ofparasite
    @ofparasite 2 года назад

    1차 대전 때 트랜치라인 그어 놓은 거 보면 알겠지만 십자포화를 만들기 위함. 고구려 성의 치 구조도 같은 원리.... 사실 특정 시기를 전후하여 유튜브에 한산해전에 대한 컨텐츠가 쏟아지는 것이 학익진의 가장 좋은 예.... 엄청난 지원사격이 아닌가??ㅋㅋㅋㅋㅋㅋ

  • @ksd4597
    @ksd4597 2 года назад +12

    요즘 하는짓꺼리들보면 울 조상님들 황당해서 무덤파고 일어서실듯!!

  • @koabounga
    @koabounga 2 года назад +3

    이런거보면 원균의 심정도 이해가가 자기가아는전술론 말도안되는 자살행위를 병사를끓고가서 하겠다는건데 ㅋㅋ

  • @남자탁용삼
    @남자탁용삼 2 года назад +2

    이순신장군의 학익진 😁👍🇰🇷

  • @클팡-x6y
    @클팡-x6y 2 года назад +4

    개봉하자봤는데 꿀잼

  • @Leo-uu3os
    @Leo-uu3os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 장군님이 바다를 찢으셨네요. 명품 작전!!!

  • @info_biz
    @info_biz 2 года назад +1

    정교한 포위섬멸전… 십자포화로 적을 무너트린, 전쟁사에서도 손 꼽을만 한 전략적 승리

  • @bachkim4485
    @bachkim4485 2 года назад +1

    저런 물속에 수장된 유물들은 찾기 어려운건가? 우주는 가도 바다속은 아직 힘든건가

  • @맹호부대-i8s
    @맹호부대-i8s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장군님은 사람도 잘 기용해서 보통의 왕들보다도 나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