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깬TV] 북부여 내전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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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삼국사기나 동명왕편의 기록에는 없지만 정황상 북부여에서 내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분석합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 5

  • @TV-pk6ht
    @TV-pk6ht 2 месяца назад

    감사합니다🎉🎉🎉

  • @jipark_2373
    @jipark_2373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는 한국어로 사람을 의미한다(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고대 중국내륙 중원보다 문명이 앞섰던 홍산, 요하 문명의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사람들은 모두 '이' 였다... "이"는 고유명사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이'를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동이의 예맥족이다... 맥이란 밝다는 의미이고 맥족은 밝음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예는 만주의 예수 지역으로 옮겨 살았던 맥족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예맥은 모두 같은 족이다... 예족은 북만주 부여의 중심이 되었고 맥은 남만주, 발해만, 요서지역, 한반도에 널리 분포한 농경민들이었다... 예맥은 모두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중심이었다... 신시배달 시기 요하의 예맥족은 일부가 황하지역으로 이동하여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황하문명을 일으켰다... 중국의 3황이라 일컬어지는 복희, 신농, 수인 등은 중원의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해준 동이의 지배계층이다... 5제도 역시 동이족이다... 3황5제는 중국 토착민들의 관점에서 동쪽에서 온 문명을 전수해 준 사람들이었고 그들보다 소수의 세력이었으므로 수천년의 기간이 지나며 언어적으로 다수의 토착민들과 동화되면서 중국 내륙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동이였지만 화하의 시조가 된것이다
    정통 동이족인 발해만, 만주 그리고 일부 산동반도의 예맥 동이족은 신시배달로부터 단군조선까지 동아시아 문명의 가장 앞선 국가로 천제의 나라, 천독국, 군자국으로 불리며 주변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동일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방계 동이족인 요,순,우의 당,하나라는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황하의 치수를 관리하며 독자적 황하문명의 시초를 이루는 나라를 세웠고 이후 하나라 걸왕의 폭주로 하북과 산동반도 지역 동이의 백성들이 일어나 상나라를 세웠다... 상은 동이족이 세운 왕조로 단군조선의 거수국에 불과하였으나 중원의 많은 인구와 토지 등 경제적 이점으로 발해만, 만주지역과 문화적으로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상나라 말기 은주왕의 폭주로 서쪽의 주문왕이 일어나 은을 멸하고 주를 세웠다... 사료에 주문왕 세력을 '서이'로 기록하였으며 당시까지 '이'는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서이의 주나라 세력은 지금의 관중땅 서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였고 그들이 중원의 패권을 잡으면서 은나라, 산동반도 지역의 동이 사람들은 상당수가 발해만의 고죽, 조선으로 돌아갔다고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중원은 서안 지역의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원의 제후 봉건국가로 화하족이 지배하게 되었다 (화하는 관중지역 화산의 화족과 황하유역 하나라의 하족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란 것이 중국인들의 주류 관점이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제도, 문화, 예법을 그대로 물려받아 황하문명을 발전시켰다... 춘추시대 공자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문제 해법은 주나라의 문화와 예법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그것이 그가 말한 유교의 핵심 원리이다... 공자는 죽기전 자신은 은나라 사람이다 라고 말하였다 (공자의 선조는 송나라 왕족출신이었고 송나라는 은나라 왕족인 미자계가 세운 주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이다) ... '동이' 라는 명칭은 주나라 이후 서서히 고유명사화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중국의 동쪽지역에 사는 이민족들을 모두 '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라는 말이 사람이라는 보통명사가 아닌 외부 특정 이민족의 의미를 갖게된 것이다... 당대 사료적 관점에서 화하가 바라본 동이는 3부류가 있었다... 1. 자신들과 인접한 발해만의 고죽, 번조선 등 예맥 집단 2. 내몽골 동부 유목민 집단 3. 만주의 군자국,대인국 (군자국은 단군조선을 의미하고 대인국은 부여를 의미한다) ... 화하족이 동이를 오랑캐로 멸시한 것은 대부분 유목민 집단들이다... 산융(북융), 동호, 선비, 오환, 거란... 내몽골 유목민은 산융때까지 단군조선의 거수국으로 통제되었으며 춘추시대 고죽과 연합하여 연,노,제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단군조선이 점차 쇠퇴하여 bc238년 망하면서 내몽골 동부 유목민 동호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강성하게 되었으나 흉노에 멸망당하였다... 유목민 집단인 동호는 예맥 농경민 집단인 조선이 아니다... 고죽(고리, 탁리), 번조선 역시 단군조선(진조선, 진한, 대부여) 멸망후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단군조선은 열국으로 분열되었다.... 한반도의 마한과 수십개 소국들도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분열하게 되었다... 한무제에 의한 위만조선 침공은 발해만의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이 열국으로 분열된 북부여와 만주, 한반도 북부의 기타 중소국가들과의 무역을 방해하여 중개 이권을 차지한데 대한 보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에 대한 열국들의 이간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 한무제는 흉노 등 북방 유목민 집단에 대한 보복으로 강력한 토벌을 하였으나 발해만의 번조선 등 이민족 농경민 집단인 예맥에 대해서는 적대하지 않았고 서로가 오랜기간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위만조선에 대한 침공은 여러 이유가 작용했으리라 본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도 당시 만주에 있던 북부여를 사마천은 조선이라 칭하고 기록하였다... 위만의 손자 우거의 아들과 조선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북부여(또는 동명부여)와 통하였고 그것이 발각되어 모두 처형된다... 위만조선 유민들과 통하였던 북부여를 당대의 중국인들은 조선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단군조선(대부여)의 뒤를 이은 북부여는 사회, 문화, 종교적 측면에서 조선 그 자체였다

  • @연태백-w9y
    @연태백-w9y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목민 역사를 생각해보면 공감이 되네요 사람들이 머릿속에 부여가 드라마 영향으로 거의 고려시대 비슷한
    국가의 형태 왕실 궁실 의전 이 자리잡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