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Видео 179
- Просмотров 258 306
역깬 TV
Добавлен 8 апр 2019
Видео
[역깬TV] 한반도 고조선설...강단사학이 제시한 증거. 웃긴다.
Просмотров 4162 месяца назад
강단사학이 한반도 고조선설을 뒷받침 하는 증거라는 것을 분석합니다.
[역깬TV] 고구려 건국의 의문점......
Просмотров 1,5 тыс.3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 건국 초기 상황에 대해 여러분들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몇가지를 분석합니다
[역깬TV] 당 태종의 고구려 공격! 질수 없는 전쟁에 패배한 이유...
Просмотров 2 тыс.8 месяцев назад
[역깬TV] 당 태종의 고구려 공격! 질수 없는 전쟁에 패배한 이유...
[역깬TV] 고려 노비 김준..무신정권 최고 권력자가 되다.
Просмотров 1,1 тыс.9 месяцев назад
[역깬TV] 고려 노비 김준..무신정권 최고 권력자가 되다.
내가 실성 이사금이였어도 똑같이 했을 것, 강단사학계의 수준 참! 답이없다 답이😢, 역깬님의 사서 해석능력🎉🎉🎉강단사학계에 역깬님 같은 분들이 포진해야 한국사가 바로섭니다😮
이 정빈😂 너도 학자라고 할 수있냐 차라리 정치계에 입문해 흙탕물에서 놀아라 한국 강단사학계의 수준은 시정잡배수준이다😢
역사를 환타지 소설로 각색하는 재주가 기가막히네😂😂😂
좋은 영상 항상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설날 감흥없는 1인입니다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셔서 올해도 좋은 영상 계속 업로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더욱 분밣ㅎ
감사합니다
복 뭐시기 역사학자 말을 들어보니깐 고구려시절 평양성인가 수도가 8개였다던데 사실인가 모르겠네요
복기대씨 말이군요. 그냥 그 사람의 생각일뿐이라고 생각하세요.
멍청한~~~ 당신 논리면 세상 그 어떤 역사서도 다 거짓이고 왜곡된거야~~~ ㅎㅎㅎㅎㅎㅎㅎ 조선왕조실록이 특이한 역사서지. 거의 대부분 그런 류의 역사서는 없어. 오로지 우리만 있어~~ 그니까~~~ 환단고기를 부정할 근거가 없단다. 대부분 어느나라든 예전 역사술은 그래~~~ 그리고 니 논리면 사기는 쓰래기책이라 볼 필요도 없어. 이미 역사 서술 내용이 위조에 가깝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럼에도 읽잖아~~~ 그리고 환단고기 내용을 전부 위서라고? 에휴~~읽지않고 비아냥 거리지말자. 적어도 삼국사기정도는 원문으로 읽고 해석하고 해설할 능력이 되야 비판할 자격도 있느거다
선생님 주류사해에서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서도 반박해주시길바랍니다. 중국의 역사서 《수경주》(515년), 《위서》(559년), 《수서》(656년), 《북사》(659년), 《통전》(801년), 《구당서》(945년), 《구오대사》(974년), 《신당서》(1060년) 등에 고구려가 586년 장안성으로 천도하기 이전의 평양성은 예전 낙랑군 조선현이 있던 지금의 평양을 가리킨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을 하셔야지 약한고리만 찾아서 반박하는게 의미가 있을까요?
의견 감사합니다. 위서에서는 옛날 낙랑군이란 이야기가 없구요. 수서 이후 역사서는 당나라인들이 기록한 것인데. 그것을 무엇으로 반박하죠. 조작 되었다고 반박할까요. 약한고리만 반박한다고요. 제 동영상을 처음부터 차근하게 보세요.
반갑습니다. 역깬님의 지난 고수전쟁 영상을 보다가 치밀한 논리와 설명에 감명받아, 평양성을 묘사한 원문을 찾아논 자료가 있어 올립니다 都平壤城, 亦曰長安城, 東西校勘 六里, 東西六里 隨山屈曲, 南臨浿水. [高句麗]王은 궁실(宮室)을 잘 지어 치장한다. 도읍은 평양성(平壤城)으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하는데, 동서의 거리가 6리로 山을 따라 굴곡(屈曲)을 이루며, 남쪽으로는 浿水에 닿아 있다. 《북사(北史) 열전(列傳) 고구려(高句麗)》 *참고로 계룡산은 남계룡(충청도)과 북계룡이 있는데, 북계룡은 지금 말씀하신 평양위치의 계관산과 오룡산을 합쳐서 계룡산이라 한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과객님. 좋은 의견이네요.
한성이 지금있는 평양 아닙니까?
잘 올라온다 짝짝짝😊😊😊
역사와 경제를 떼어놓고 분석하면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듯. 당시 고구려는 중국경제에 예속된 상태, 백제 역시 산서성 지역 세력에 경제가 예속된 상태로 두 나라 모두 내부 친중 좌파 국가반역세력의 모반에 멸망되었고, 모반을 주도한 반역세력은 공로를 인정받아 당나라 황실이 내어준 산서성 지역 경제권을 잡고 잘살았다고 중국 역사서에 나옴. 민족진영 백제 의자왕이 친중 좌파세력 지역 토호세력을 몰아내려하자 산서성 기반 친중 좌파 벡제세력의 이권, 당나라의 이권 손실이 예견된 당나라가 백제를 침공한 것이었고 신라입장에서 백제는 친중 좌파세력이 판을 치는 국가에 불과하여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침공하게 된 것이었던 듯. 신라 역시 중국경제와 문화에 예속되기시작하였으나, 인도, 중동, 동남아 해양 교역으로 탈중국에 성공한 상태였고, 소정방 포함 친중좌파세력을 몰살시켰고, 원주를 통해 경주를 함락시키려 몰려온 당대 전세계 최강 중국군 기마군단 30만명을 한강 수계 매소산에서 몰살시켜 신라는 멸망되지 않고 살아남는다. 이 전쟁에서 신라가 패배하였다면 한반도는 중국세력에 넘어가고 한민족 전체가 사라질 뻔한 전쟁이었으며, 신라침공 중국군 기마군단의 1/10 병력으로 고선지 장군이 서역원정에서 연전 연승하였음은 당시 중국군 기마군단이 전세계 최강이었음을 증명한다. 나당전쟁은 신라야 말로 한민족을 구원한 세력임을 입증한 것이었으나, 이 전쟁을 폄훼하고 은폐시킨 세력은 고구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친중 좌파 집권세력이었던 듯. 친중 좌파세력이 건국한 조선이 멸망했음에도 현재까지 한국사회에 기생하면서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세력 북조선과 중국에 빌붙어 반민족 행위를 일삼는 자들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 친중 좌파세력, 이들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근대화 발전에 단 1의 기여도 하지 않은 쓰레기들이다.
1. 고대사 관련, 많은 분들의 개인적인 연구자료와 자연 및 천문지리학에 기반하여 힘써 만든 유튜 버 영상물들을 접해 본 결과, 기원전 및 기원후 고대시기에 하북성 지역은 대 체적으로 바다이었거나 뻘빹이었던 것으로 간주 됩니다(참고로 이 시기에 한반도의 경상남도 김 해시 지역(과거 속칭 김해평야)은 죄다 바다이었 습니다). 따라서 하북성지역은 일부분 높은 지역만 반도 내지 섬 모양을 형성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요녕성지역도 해수면 상승의 영향이 있었을 듯?) 2. 해수면이 오랜기간에 걸쳐 가라앉으면서, 수면 하에 있던 땅이 돌출하고 경화되면서, 하북성 지역 에서 대규모 군사이동이 가능했던 시기는 금나라 의 중원진출과 견련성이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해수면 하강 이전 동아시아 남북간 및 종족간의 주요통로는 산서성지역과 태항산맥내의 회랑을 이용한 것으로 사료됨) 아울러 몽골과 금나라간의 전쟁도 연산산맥과 하북 성지역에서 큰 전투가 일어난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즉, 하북성 지역은 11세기내지 12세기에 이르러 오 늘날의 하북성과 같은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사료 됩니다. 4. 따라서 속칭 지나의 중원지역에 소재했던 고대국 가들은 하북성지역 넘어 연산산맥을 넘어서 존재하 는 오늘날의 요녕지역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수준이 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왜냐하면, 중원지역과 북방민족(종족)과의 전쟁 및 제 전투는 90% 이상 산서성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 이기도 하고(한무제와 묵돌선우와의 흉한전쟁 포함),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유달스 럽게 산서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고대시대에 하북성지역에서의 종족간 마찰과 국가의 흥망성쇠 사실은 너무 빈약합니다. 5. 따라서 고대 요동은 북극성을 기준하여 태항산맥 지역을 요동이라 하였고, 산선성의 오른쪽에 속해 있 는 분지들을 요서라 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제 개인의 지식에 기반한 것이 아니고 많은 역사유튜버 영상을 접하며 관심있게 관찰한 결 과물의 한 단편으로 말씀을 올려 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만 그런 쓰레기 가설은 믿지 마세요.
역깬님, 잘 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죠. 시국이 어수선해서요.
한소제때 요서군과요동군이 대릉하쪽으로 옮겼으면 낙랑군과 현도군은 어디 있었나요? 현 요동인 요하 유역 동서로 있었나요? 그리고 항우때 한광은 연국왕이었는데 항우가 한광의 부하 장도와 같이 秦나라를 멸망시키고 공을 세운 장도를 연국을 나누어 연국과 요동국을 세우고 한광을 변두리인 요동국왕(도읍 무종)에 봉하자 연국왕 장도와 갈등이 있어 장도가 한광을 죽이고 병합합니다. 당시 난하유역까지가 진. 한초의 국경이 이었다고 봅니다. 현 진황도시 까지가 漢초기 경계이었음(요동평정)을 대명일통지에 나옵니다
낙랑군과 현도군 위치는 동영상을 올려 놓았으니 참고 하시고. 대명일통지 같은 쓰레기는 믿지마세요.
마야에도 있던 풍습인데😊😊😊
가야인들 역시 부여계인데 부여인들 풍습에 편두? 황당😂😂😂
뭐가 좋은지 실실쪼개면서.ㅈ 비아냥거리면서 말하는지...그냥 말에 신뢰성이 뚝 떨어지는군..
그럼 최치원의떡밥이란걸 증거를들이대셔보세요 인터넷이나뒤져서찾지마시고 저때분들은 당신생각같이 현대사람보다 지식이떨어지는사람들이아니고 스스로깨우치는 진짜 지식인들입니다 당신같은 허접이아님
대략적인 위치는 공감합니다. 다만 패수를 난하로 또는 석하. 육고하로 보는 경우도 있고. 위만이 빠져나간 요동고새는 지금 진황도시 무녕현으로 보고있습니다. 아무튼 사기. 대명일통지 영평부에 주발이 요서. 요동군을 점령한기사를 보면 현 노룡현과 그인근에 요동군이 있던것은 맞습니다
역깨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논리는 치열하고 엄정하십니다…. 학벌, 생계적 직업연계를 하는 강단직업사학자놈들과는 다른 역깬님의 합리적, 논리적 접근에 찬사를 보냅니다.
내년도 건강하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잖아요.
고조선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 아닙니다. 고조선은 중국 요서에 살고 있었던 오랑캐족인데 어떻게 한반도에 있지도 않는 고조선 오랑캐족의 수도가 평양일 수 있겠습니까?
조선열전에 왕험성임. 평양은 나중에 기록된 것임
@@ch-ob2hg이게 뭔경우냐면 요동 왕험성은 위만조선의 수도인데, 중국 역사 공정으로 평양이 기자조선의 수도로 조작됩니다. 여기에 위만이 기준(?)을 찬탈했다고 조작해서, 평안도 평양이 왕험성으로 둔갑하고, 요동의 왕험성이 평양이 되기도 합니다. 개판입니다.😅
고구려가 5부족 연맹체로써 초기에 소노부가 중심이 되었다라고 하는데 그 소노부가 중심이 된 성읍국가는 당연히 주몽 이전부터 존재했슬 것이고 그에 맞추어서 사로국이라는 성읍국가의 건국도 삼국사기의 기원전 57년보다 더 오래전에 건국했슬 것입니다.
기원전 57년 건국이 신라의 건국인지 아니면 성읍국가로써의 사로국의 건국인지를 따저볼 사안입니다. 삼국사기에 삼국의 건국기준을 이미 상당부분 규모있는 국가의 틀을 갖추어서 시작한 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혹자는 신라가 고구려보다 먼저 건국된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인식하지만 큰 규모와 그에 걸맞는 체제를 갖춘시기로 따지면 그리볼수 있스나 그 이전에 근원이 되는 성읍국가시절까지 포함한다면 꼭 고구려가 먼저 건국되어야 한다라고도 볼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건국에 대해서도 주몽이 기원전 37년에 건국했다라는 것에 대해서 주몽이전에 고구려를 구성하는 원류세력은 존재했고 북한학계에서는 기원전 277년으로 설정합니다. 북한학계말을 신빙을 못한다고 하도라도 적어도 주몽이전에 고구려의 원류가 되는 세력들 즉 그 권역의 성읍국가들이 존재하고 성읍국가들간에 연맹체를 형성해서 서서히 고대국가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밟아온것은 확실하다고 봅니다. 그 시기가 적어도 위만조선 멸망이전부터 압록강 중류권역에서 그런 성장이 이루어져가고 있다고 봅니다.
신라건국의 기준이 무었인가요? 사로국의 건국시기? 아니면 보다 큰 국가형태로써 형성된 시기?
다좋아요. 현토가 대릉하 와 요하사이에 있다면 낙랑군은 어디에 있나요? 요동동쪽인근에 고구려가 있으면 있을데가 없는데?
사마천의 사기를 믿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6:35 진나라 영토가 바다에 이르러 조선에 닿고를 난하 동쪽이라고 한 후 뒤에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듯 합니다. 334년 연나라 동쪽에 조선과 요동이 있었다고 하고, 난하 서쪽을 요동(동호), 난하 동쪽을 조선으로 설명하고, 306년에 조나라는 연과 동호와 접한다고 했는데, 조나라는 동호와 접하지 않게 설명한 점은 모순입니다. 동호는 연나라 북쪽에 있어야 사서와 합치합니다. 영정하 -난하는 1천리가 아니라 400리도 안됩니다. 물론 동호를 1천리나 물렸다는 것은 거짓일수 있긴 합니다만, 연나라 남쪽 호타하/역수에서 계성이 4-5일 거리인 것하고, 난하가 폐수인 것하고는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연나라가 동호 1천리를 물리고 수도를 변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호를 치기 전 즉,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을 설치하기 전 수도이므로 서쪽에 치우친 것이 당연합니다. 17:58에 상곡의 위치를 영정하 북으로 나타냈는데, 상곡/어양/우북평/요서군의 위치 비정이 불가한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난하 패수설의 핵심 맹점은 '수경'에서 난하 - 대요수 - 소요수 - 패수에 대한 반론이 불가하다는 부분이며, 이 영사에서도 그것에 대한 반론은 없어 보입니다.
공감은 가는데. 좀더 구체적인 근거사료를 찾는게 중요합니다 한서지리지의 패수가 현 요하(혼하)라고 하면 한의 요동군이 임둔지역(대릉하유역)이고 현 요동이 낙랑군인가요? 후한때 현요동지역이 낙랑군지역으로 이전된것인지? 그럼 고구려는 어디에 있었는지?
질문 감사합니다. 북부여와 한나라의 전쟁 동영상을 보시면 됩니다.
왜케 패수의 위치를 옮기고 기록했는지 ㅎㅎ 그래도 똘똘한 애들이긴해요 자기들에게 유리한 역사랑 글이 후대에 남았기 때문에 우린 그대로 받아들일수만에 없는 상황 ㅎㅎ
역사를 왜 신화나 설화로 해석 하나요? 역사 학자들은 일본과 러시아 도서관 가서 우리의 옛 역사서보고 연구 하셔요! 글구 과학 유물 외 모든 자료를 가지고 통합해서 모임을 가지셔서 후손들에게 알려 주세요! 장난처럼 하지 마셔요! 고조선은 연방국가라는 사실을 관가하지마셔요!
영상은 모두 정독하였습니다. 한나라식 벽돌무덤이 낙랑군에서만 발견되고 오히려 한나라와 가까운 요동군에서는 벽돌무덤이 출토되지않았으므로 벽돌무덤만가지고는 낙랑군의 위치를 지금의 평안도 지역으로 비정할수 없다가 포인트이시군요. 그렇다면 역깬님이 비정하고 계신 낙랑군의 위치는 어디로 보고계신가요?
감사합니다. 동영상도 올렸지만. 지금의 요동반도 북단이라고 봅니다.
낙랑군이 요동반도의 북단이라고한다면 미천왕이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한 4세기경에 고구려가 요동을 먹었다는게 되는것이되는데요. 그렇다면 고구려가 평안도를 먹은건 언제라고 보시나요?
@@세상의모든지식-f4k 그에 관한 동영상이 많습니다. 그걸 좀 참조하시죠. 서기 190~230년 사이로 봅니다.
한사군의 문제는 일제가 한사군에 집중을 하게 만든것일 겁니다. 일단 당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맥조선의 영토는 당연히 연5군 포함입니다. 이것을 잊게 만들고 한사군에 연연하게 하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 학계가 크게 당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은 연구되어야겠죠. 1. 세키노 다다시가 수집해온 물건은 리스트가 있으며, 분명 "낙랑에서 출토된 물건과 같은 종류는 다 있다" 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낙랑에서 출토된 물건과 같은 종류의 것을 사왔다는 것 뿐인데, 이것에 어찌 낙랑이 평양이 아닌 증거가 될지요? 2. 이병도의 정확한 주장은 모르겠지만(관심도 없구요), 신채호 등은 패수와 왕험성을 태자하즘과 그 동부로 봤고, 한사군은 북한에 설치되었다고 했습니다. 즉, 위만조선의 도읍지인 왕험성과 낙랑은 다르다는 것이 현재 강단의 추세입니다. 물론 강단의 특성상 선배들을 반박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분명, 패수난하설, 만번한=천산산맥 등등 이후로 반론이 없다시피 합니다. -- 현 강단사학계 저도 잘은 모르니 아는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제 말이 맞는듯 합니다. 3. 낙랑의 유물중 조작이 된 것이 있다고쳐도, 왜 평안도에서만 유물+조작유물이 나올까요?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안나올까요? 일본이 악착같이 원래 낙랑군(???) 에 있던 유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아 놨을까요? 실수로 놓치지도 않았을까요? 아무리 일본이라도 이런 조작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일제 입장에서 낙랑이 꼭 평양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습니다. 완벽한 조작이 가능하다면 황해도로 해도 됬을테구요 일단 이정도 답변기다리겠습니다. 더 물을게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그런지 동영상을 이해 하시면 알텐테. 괜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해답을 정해 놓고 본질을 흐리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라니...제 영상을 다시 돌려 보기 하시면 그것이 답변 아니겠습니까...
@TV-xt3yr 본질이라면 신채호의 재평양설과 이지린의 요동설이겠죠. 신채호의 평양설이 맞다면 이걸 흐리는 쪽은 요동설쪽이겠죠. 제가 이야기 하는 핵심은 일제 어용애들이 평양설을 지지했다고 단재의 재평양설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이거죠. 일제가 수작부린거 빼고 학설대 학설로 평양설 반박이 가능하실지???
실제로 우리가 알고있는 고구려강역이 아닌곳에서 고구려 토성이 발견되고 그러죠. 우리는 역사를 도둑맞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학계에선 우리가 도둑맞은 역사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사이비로 취급하고 있죠. 항상 영상 잘보고있습니다
그런 인간들 많죠. 오랜만이네요. ㅎㅎ
@@TV-xt3yr 건강하십쇼
역깬님 방송 기다렸습니다. '이놈들' 때문에 고생 많으십니다….
역깬님이야 말로 강단에 서서 후학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강단사학계는 공부를 지질하게도 안하는 문제학생들과 같은 수박 걷할기식 조악하고 편협한 지식 수준에 사고방식이 순진한듯 하네 추종할게 없어 일제가 편집해 놓은 한국사를 맹신하고 있는 꼴이 참 어리석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얘네들이야 말로 진짜 유사사학자들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강단 유사사학계 바보들아 쫌! 공부해라 바보 멍충이들아😂😂😂.
고조선과 부여가 민족적으로 관계가 있을까요? 그 여부를 밝혀야 고조선이 선비, 흉노와 같이, 우리 한민족 결이 다른 오랑캐족이란 사실이 밝혀질텐데 말이죠.
'제왕운기'에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등의 군주의 후예는 단군을 계승했다고 합니다.
관산성 전투라면 성이 클텐데 어디에 있는지 왕이 나와서 싸웠다면 큰 성일텐데 한반도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네요
깬님, 방송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스니컬한 웃음도 좋구요…우리 역사를 이토록 분탕질한 '이놈들'에 대한 말없는 냉소로 보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과객님
이사부가 법흥왕때 사라진다고 하셨지만 일본서기에 의하면 529-532년 사이 금관국 등을 멸망, 근강모야신 축출 일등 공신이 이사부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이사부가 가야국을 공격한 시기는 진흥왕이 왕위에 있을때입니다. 삼국사기 사다함열전에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가장 문제점이 기년의 문제이므로 삼국사기 기록이 맞다고 봅니다.
@TV-xt3yr 일본서기 내용 윤색부분은 제외하고 기년문제는 계체기이전이고 그 이후는 기년문제는 딱히 없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수백년을 뛰어넘는 조작을 합니다. 온조가 서기 1세기 초반에 마한을 정복했다고 하는데 정작 고고학적 조사 결과에 의하면 마한 정벌은 수백년 뒤의 일입니다.
헤헤헤 케케케 그렇게 웃는다고 머라안하니???? 지인들이?????
사마천 사기 졸라신봉하네 사기또한 자기주장 역사판타지야. 진나라기록도 구전등 과거 기록 짜집기한 다 편집한거고 그이후 기록은 사실 구라 섞은 자기주장 기록이고.
이사람 골때리네 고조선위치보기 더멀리잇는 부여 이주민이 신라 토종핏줄 이라면서 고조선은 또까네???? 신라 박씨정권 김씨랑 남방계가 6토막내서 죽인 기록은 아는지모르겟네.....
고인돌 한반도포함 산동반도 요서요동도 다있습니다. 고인돌이랑 같이분포되는게 청동검이구요 .
박혁거세 죽이고 몰아낸게 김씨집안 동남아 집안 석탈해 아녀????그뒤로 김씨가 신라 다먹고. 순다랜드 민족들 이라메? 신라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 영상을 보고 기분이 더럽네요 양직공도에 나와있는 박제사신을 설명하는 글좀 보세요 고구려가 요동낙랑을 차지하자 백제는 요서를 차지했다는 자료도 있어요 무조건 그럴 리가 없다? 이건 그냥...
대한민국 대통령실의 상징토템이 봉황입니다. 소호씨족은 해를 숭배하고 천신의 메신저 봉황을 토템으로 삼은 우리 한민족입니다. 소호 금천씨는 산동지역에서 대문구문명을 꽃피었던 우리 한민족입니다. 일부 소호씨는 서방으로 이주하여 중동지역에 슈메르문명을 건설하였습니다. 슈메르인들이 사용한 언어가 현재 우리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말이였음이 고고학적으로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황제헌원도 조상 공손씨가 우리 한민족이니 현재 중공인들은 우리 한민족 인물들을 조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신라의 건국 기년이 BC57년으로 그대로 믿기에는 중앙집권화라든지 영토크기라든지 하는부분이 동시대 고구려보다 너무 미진하지않나요?
의견은 감사한데. 건국연대하고 중앙집권화 영토크기 무슨 상관이 있죠. 시조가 왕이 되면 그 시점인거죠. 강단쪽 사람들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 ㅎㅎ
전덕재 이놈..........강도사학패거리......이놈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객님 현실적으로 강단사학 패거리를 전횡을 막을 방법은 없네요. 이들이 한국 역사학을 장악했기 때문이죠.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