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제 교수의 가야사 강좌 3강 | 일본서기와 태백일사가 증언하는 임나일본부의 진실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окт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39

  • @waitgold1234
    @waitgold1234 Год назад +1

    늘 잘보고 있어요..감사합니다

  • @ak010305
    @ak010305 Год назад +2

    1.어려운 고대사 연구에 수고많으십니다.
    2.오랜시간 저의 개인적 호기심에 한반도 고대사관련한 의문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3.광캐토호태황비문 任那加羅從拔城城;歸服安羅人戍兵拔新羅城鹽城倭寇大潰城大被我攻;滅無遺倭遂以國降死者十之八九盡臣率來安羅人戍兵 AD 400년도의 기록상 임나가라종발성의 해석에 있어 가야의 임나가 단순지명인지 ???저는 해석상 가야에 도착하여 성을 들어 쫗으매로 해석하면 임나가 하나의 국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입니다.또한 동 단락에 안라인을 술별으로 /병으로 사용하여 쫗으매 ////만약 가야가 대마도 위쪽이 근거였다면 여기 광캐토황비문에서 분명 바다를 넘는 기록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는바 임나의 주근거지가 대마도라는 주장에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한편 삼국지 진수의 마한의 아래 왜가 살고 있었다고 AD323년경 서술한 것이 위 비문의 왜가 금관가야에서 아라가야 즉 함안 고성으로 도망가는 경로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진주에 고구려 기마유물이 출토되는 것이 그 증거이며 지금 전라남도에 있는 왜의 무덤과 일관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4.마한변한진한의 지역경계의 불명과 백제의 관계
    개인적으로 마변진 즉 기존 토착세력이 백제로 전환포습되고 가야신라는 북방의 유민이 새로 지배한 나라가 아닌가 즉 소호금천씨.가야는 백제속 새로운 김해함안지배게층이 한반도 쟁탈전에서 백제패망으로 일본열도로 이주후 670년 이후 일본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키는것으로 추론합니다.가야계 백제인이 그 주인공이 되는것으로 ...그 증거는 대성동고분에서 최초 여장수의 무덤.일본 여자 천황 쓰이코천황...을 언급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마한변한진한이 사라진뒤 백제가야신라가 나타나고 백제가야는 연합국으로서 백제패망후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본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그 주축은 가야계 백제인이다.

  • @연꽃사랑-t8c
    @연꽃사랑-t8c Год назад

    왕망의 자손들이 그 먼거리를 그 많은 수의 사람이 이동이 가능할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될 듯.

  • @서은열-b8v
    @서은열-b8v Год назад +1

    감숙성 쯤에 있었으면 우리의 현재 모습과 같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괘릉에 무인석 보시면 소그드인의 외모를 하고 있죠. 근친혼을 고집해야 할 정도로 성골들은 외모가 하얀? 색다른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 @東方不敗-x5v
      @東方不敗-x5v Год назад

      역시 신라가 맘에 안든 이유가 있었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정론득
    @정론득 Год назад +2

    삼국은 대륙에도 있었고 한반도에도 있었습니다. 박창범교수의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와 박창화의 화랑세기를 보면 천문관측시기가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일식관측이 서기 787년에 시작되었는데 이때가 원성왕 즉위 후고 원성왕은 태종무열왕계의 후손이고 그 이전은 김흠순(김유신동생) 계열의 왕이었습니다.

    • @riso2156
      @riso2156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제발 논점 흐리지 마세요

  • @ak010305
    @ak010305 Год назад +2

    1.일본서기와 광캐토호태황비문의 연혁관계
    일반적으로 『일본서기』는 텐무 천황의 명으로 도네리친왕(舍人親王)이 중심이 되어 680년경 착수, 720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텐무 - 지토 천황기에 시작되어 8세기에 『일본서기』가 편찬되었습니다. 즉 한반도에서 부여계가 사라진 후 20년 만에 편찬된 책입니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석이다. 삼국시대인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된 광개토왕릉비문은 사료가 부족한 4~5세기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와 더불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 여러 세력들의 정세도 함께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장수왕 AD414
    2.연대로보더라도 가야시기를 보다 정확히 기록가능한 시점은 광캐토호태황비문이 맞다고 보는 것이 바로 동시대 기록물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 @아두은인
      @아두은인 Год назад

      미추홀성은 어딘가요
      잔국과 백잔국은 글자가 다르니
      다른 국가가 아닌가요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미추홀성은
      어느국가의 성인가요

    • @ak010305
      @ak010305 Год назад

      @@아두은인 미추가 본래 이름인것 같습니다.홀=성 과 같이 사용한다고 하네요. 인천이 아닐까 합니다.아직 그 지명을 그대로 사용되는것으로 판단됩니다.한편 잔은 쓰레기 잔으로 군대에서 잔반 , 남은 적의 무리 잔당.즉 백잔은 백제쓰레기 남은 찌끄래기 정도로 고구려비문은 표현한다고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 @아두은인
    @아두은인 Год назад

    현 백두산은 화산으로 여러번 터지고 규모도7,이나 되어
    거의 최고의 폭발을 했는데
    여기서 단군이 사람들을 모아서
    조선을 건국하지는 못하죠
    단군의 태백산은 어디고,
    신시는 어디입니까

  • @ak010305
    @ak010305 Год назад +1

    가야사를 AD 323년 이전으로 추론한다면 변한 진한과 가야의 시대적 서술관계가 정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진수가 한반도에 와서 마한 변한 진한의 경계를 설명한 시점이 그 땐데 만약 가야가 있었다면 가야의 서술이 있었겠지요...즉 소호금천의 후손들이 가야 신라를 지배한 것은 최소 323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변한 진한을 지배한 것이고 김수로가 먼저 금관가야 지역을 점령하고 6가야를 연맹부족국가로 만든후 신라는 새로운 소호금천 후손이 왔다고 봄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따라서 고대 변한 진한의 유물과 가야의 유물은 구분되는 것이 맞지않을 까 합니다.한편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1145년 경이니 삼국유사등과 함께 시대연대기측면에서 신화적 서술은 추론할 수 밖에 없지않겠습니까...신라의 소호금천씨는 남쪽바다를 이용해 김해에 왔다가 먼저온 소호금천 김수로를 보고 경주로 싸우고 갔든지 스스로 물러났든지 이동한것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다소 차이가 있는 서술을 보입니다.다만 김수로는 육론지 해로로 왔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 @수연-e3k
    @수연-e3k Год назад

    이런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한국이 존재하는것. 그런데 지금은 굿당굥개판검등토착왜구들이 또 활개짓중임

  • @아두은인
    @아두은인 Год назад

    가락국 과 금관가야가 같은 국가인가요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은
    같은 사람인가
    금관가야의 건국연도는
    금관가야가 임나입니다

  • @bright_energy
    @bright_energ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백제를 중국에서 부르던 이름이 백제 백잔 왜 일본이라 불렀음..심지어 니폰이 일본이란 이름을 쓴것은 700년으로 백제가 멸망한 이후임

  • @궁즉통-q8l
    @궁즉통-q8l Год назад +4

    동이족....활 잘 쏘는 잘 다루는 민족.....^^....구이족 이라고도 ....^^.

    • @awesome-mz2lj
      @awesome-mz2lj Год назад

      이라는 것을 활이라는 뜻으로만 알면 반만 맞는 겁니다. 활이나 잘 쏴라 라는 의미뿐이겠죠…뭐 오랑캐와 대체 어떤 차이가 있겠나요. 활 잘 쏘는 오랑캐…!?!????
      모자란 학자놈들이 씨부리는 말에서 점프해서 더 높이 나시길….
      동이의 이는 그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뜻이 있답니다.

    • @東方不敗-x5v
      @東方不敗-x5v Год назад

      @@awesome-mz2lj 바봉 ㅋ

    • @쭌-e4w
      @쭌-e4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동이는 화하족입장에서 동이입니다. 우린 예맥 삼한

  • @서은열-b8v
    @서은열-b8v Год назад

    흉노도 단일 민족 제국이ㅈ아니었죠~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었을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소호금천씨 세력도 있었겠죠~~

  • @김성태-i6b6j
    @김성태-i6b6j Год назад

    김일제의 직계 후손은 요동으로 피신하고 동생 김윤의 후예들은 산동반도를 통해서 한반도로 곧장들어 왔다. 그래서 김알지의 한반도 진입시기가 차이나는 것이다.

  • @아두은인
    @아두은인 Год назад

    김구형은 532년에 항복했는데
    김수로왕은 42년에 가락국을 세움
    김구형이 금관가야 10대왕이니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은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다른 사람이다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나요
    김해 김씨들 때문인가

  • @강강윤기
    @강강윤기 Год назад

    구지봉은최근 향가로 밝혀져습니다ㆍ유튜브 김영회 향가

  • @ak010305
    @ak010305 Год назад

    단서대강이라는 1950년 소설을 역사로 설명하는 것은 힘든 노력에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니신지요...

  • @이인-v3e
    @이인-v3e Год назад

    오씨는 백제십제가 아니다 ㅎㅎ

  • @東方不敗-x5v
    @東方不敗-x5v Год назад +1

    신라역사 개극 혐오 ㅠㅠ

  • @남성송기준-m5w
    @남성송기준-m5w Год назад

    오순재씨 왜 신라를 한반도의 지명에 대입합니까?
    최근 책보고 연구를 읽어보시고 설명하세요

  • @ak010305
    @ak010305 Год назад

    사천의 늑도에 나타난 중국화폐 :전라남도의 왜가 독자적으로 중국과 교류하면서 사천 늑도에서 물물교환을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다소 깔끔하지 않은가요...즉 진수의 기록대로 마한의 아래 왜가 존재했고 그 왜는 중국과도 교류하면서 화폐를 이용하여 늑도에서 거래했다고 생각합니다.결국 일본본토와의 거리상 김해로 무역지가 최종 통일화 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 @roiesai
      @roiesai 4 месяца назад

      오히려 니가 억지같은데...왜 굳이 한반도 남부에 왜가 존재했다고 우기는거지? 일본에서 역사배웠나?

    • @ak010305
      @ak010305 4 месяца назад

      @@roiesai 음 즌라도가 나머지 국민과 성향이 다른 이유 땡깡 떼법 듸집어씌우고 남탓하기 특히 즌라남도

    • @roiesai
      @roiesai 4 месяца назад

      왜는 철을 생산할수없었다 철도 생산못하면서 소수받아간 철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할수가 없음 일본이 철생산을 시작한건 고구려유민이 일본에서 철광산을 발견한 후야

  • @김태길-i4o
    @김태길-i4o Год назад +2

    동이족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중국사람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말을 왜? 우리가 따라하지요.
    이제 한국족(韓族)이라고 합시다.
    漢족과 韓족은 틀리잖아요.
    앞으로 동이족이라고 하지맙시다.

    • @지수신-j6l
      @지수신-j6l Год назад

      현대까지 남은, 당시를 기록한 문헌이 중국 문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독일인들도 게르만족을 바바리안이라 표기한 그리스 로마 기록을 그대로 따릅니다.
      韓이라고 하면 동이 중 일부만 지칭하기 때문에 중공의 동북공정에 부역하게 됩니다.

    • @예언자-c9z
      @예언자-c9z Год назад +2

      글자만 놓고 보면 비하하는 의미는 없습니다. 夷는 파자하면 大弓(큰활)입니다. 동쪽에 사는 큰활을 잘 쓰는 민족이 동이족. 夷자를 오랑캐 이라고 훈독하지 말아야 합니다.

    • @j3459
      @j3459 Год назад

      한국족이 아니라 백두산족이라고 해야 맞아요
      현문명 만년역사는
      백두산을 영산으로 여기는 민족의 흥망성쇠입니다
      한반도 만주 바이칼나와리 태생의 인물 과 후예 후손이 세계를 좌지우지했어요

    • @정신교육대-h1c
      @정신교육대-h1c Год назад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다음 검색

  • @이영수-h3s
    @이영수-h3s Год назад

    여기도 역시나 아는체를 좋아하는 자들이 많네.
    그 시대를 살아다 해도
    사방100리내의 일들도 잘 알수없다.
    그 아득한 엿날에 소식통도 없으니
    내가사는 주변이외는 어떤 일들에대한 진실을 알기는 어렵다.
    말도 전해지는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축소 또는 왜곡된다.
    그런데 하물며 1000년 이상의 아득한 과거의 일들을 마치 직접보고 들은것 처럼 얘기 하다니
    한심하기 짝이없다.
    역사늕소설과도 같은 것이다.
    누가옳고 누가 틀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록도 믿으면 안된다.
    승자는 기록은 미화된다.
    그자또한 풍문으로 들은 것을
    자기 맘대로 편집하여 기록 하기 땡문이다.
    그런것을 기준으로 맞네틀리네
    하는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