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곳에 가서 본 기억은 1953년 6.25 휴전의 해. 즉 중 1학년 때의 가을 소풍이 있었을 때였다. 실은 내가 그곳을 보고 싶어 갔던 것은 아니고 그 넘어에 단체 소풍을 갔다 돌아 오는 길에 그 산을 넘어 왔기 때문이다. 상부에서 쉬면서 그 묘지 몇개를 바깥에서 훑어 보았는데 상부의 꽤나 컸던 묘역 전체는 모두가 많은 대리석 같은 돌을 써 바깥 부분을 치장하였고 대부분 상석을 세운 것처럼 보이는 대리석에는 한자로 0000장군이라는 글귀를 쓴 것으로 보아서는 틀림 없는 장군 묘역이었고 그 묘의 크기는 모두가 같은 것이 아니었고 그 중 가장 큰 묘는 상석 뒤편 묘지 아래 쪽으로 크게 파 놓은 묘실이 하부까지 훤히 내려다 보였는데 사각형으로 된 그 안의 묘실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분명 상단의 이 묘들은 모두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일본 장군들의 묘역으로 근거 없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당시 피난민들은 그 훨씬 아래의 하단에 마을을 이루며 살았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찌 이런 곳을 그냥 두고만 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시나 도에서 기념물로 그냥 두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젊은이들이 입담만으로 좌빨들 처럼 근대사를 왜곡하며 떠드는 것이 있으면 그런 곳에 댓글을 다는 사람이랍니다. 예를 들면 남로당이 제주도에 진을 치고 있었는 데도 김일성이 해방후 제주도를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말로 4.3 사건은 우리의 자작극이라는 뜻을 비추고 또 6.25때 진동 전투는 채병덕의 공이라하고... 채병덕은 6.25를 맞은 4일 후 참모총장에서 내려왔고 실은 그는 왜정때 병기 장교. 진동 전투! 해병대의 혼이 담긴 전투였고 뉴욕 타임스의 여기자 히긴스가 바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을 만든 격전지였지요. 또 야인시대에서는 계엄사령관 김종원씨가 대령이었는데도 소장으로 나오고.. 원 ㅉㅉㅉ
ㅋㅋㅋ 죄송합니다. 이런 곳에 글을 써서... 사실은 195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6.25를 겪은 세대라 갈 길이 먼저 공부 아니면 노동 또는 장사였습니다. 나이는 들어도 그렇게 무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개인용 컴도 1980년 초에 썼었구요. ㅎㅎㅎ 암튼 감사합니다. @@illijllillj4477
일본은 전통적으로 사망하면 조선시대처럼 그대로 묻지를 않고 불교식으로 화장해서 납골후 그위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조선이 일제에 의해 지배가 시작했을때까 1910년인대.. 그전에 죽은 일본인들이 우리땅에 묻힌거 보면 그전에도 일본의 위세가 대단했고 조선의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했던거 같습니다..
사실 1900년은 열강의 제국주의시대 위세가 끝판왕이던 시기죠, 우리나라도 프랑스니 네덜란드니 해안가와서 포쏴대고 신미양요니 병인양요니 듣도보도 못한 코쟁이들이 매서운 무기로 공격하니까 어쩔수없이 보호해달라는 식으로 조약한것이 을사늑약(1905년) 입니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메이지유신으로 포기술이 발달해 조선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죠 일본이 아니다? 미국이던 프랑스던 네덜란드던 영국이던 누군가에겐 무조건 먹혔을 시기입니다.유교질하던 나라는 다 먹혓으니까요. 그 큰 중국이 일본에 먹힐거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홍콩싱가폴 필리핀 인도 네팔 부탄 호주 뉴질랜드 괌 아프리카는 말할것도 없고 중동까지도 세계 열강들에 의해 거의 약한나라들은 다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무섭기는 개뿔이 무섭노 모든 생은 모든 죽음위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일 뿐. 오늘 살아있는 생 위에 내일 또 다른 생이 덮이고 쌓이며, 지구가 존속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가능한 만큼의 시간동안 머뭄을 빌려 왔을 뿐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정해지지 않은 약속이, 모두에게 완벽하게 이뤄지는 순간으로 도래하고, 거기에 다른 생이 있을 뿐이다.
일본인들이 아미동에 조상참배 하러왔다가 비석보고 그냥 갔다는.웃픈일이 있었음.
저게 뭐가 무섭냐. 어차피 사람은 다죽는데. 산사람이 제일 무섭지.
응 그럼 그대는 그런데로 가서 살어
@@susiesong670땅이 없어서 집 짓고 사는거지. 죽은사람이 남 해쳤다는 뉴스 있나? 산 사람이 무섭지. 요즘 묻지마 인간들이 무덤에서 나왔나?
@@송광마루
응 그래 니 말도 맞어
그래서 그런지 난 너도 무서워 😨
헛소리하지말고너가살아봐라~
맞는말이긴하지 사람이 가장무서운건
내가 그곳에 가서 본 기억은 1953년 6.25 휴전의 해. 즉 중 1학년 때의 가을 소풍이 있었을 때였다. 실은 내가 그곳을 보고 싶어 갔던 것은 아니고 그 넘어에 단체 소풍을 갔다 돌아 오는 길에 그 산을 넘어 왔기 때문이다. 상부에서 쉬면서 그 묘지 몇개를 바깥에서 훑어 보았는데 상부의 꽤나 컸던 묘역 전체는 모두가 많은 대리석 같은 돌을 써 바깥 부분을 치장하였고 대부분 상석을 세운 것처럼 보이는 대리석에는 한자로 0000장군이라는 글귀를 쓴 것으로 보아서는 틀림 없는 장군 묘역이었고 그 묘의 크기는 모두가 같은 것이 아니었고 그 중 가장 큰 묘는 상석 뒤편 묘지 아래 쪽으로 크게 파 놓은 묘실이 하부까지 훤히 내려다 보였는데 사각형으로 된 그 안의 묘실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분명 상단의 이 묘들은 모두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일본 장군들의 묘역으로 근거 없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당시 피난민들은 그 훨씬 아래의 하단에 마을을 이루며 살았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찌 이런 곳을 그냥 두고만 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시나 도에서 기념물로 그냥 두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연세 많으신데 유튜브에 댓글도 남기시네요 신기하당
할버지가 불러주는 걸 손자가 작성했겄지.. 설마 직접 썼겠어
나는 젊은이들이 입담만으로 좌빨들 처럼 근대사를 왜곡하며 떠드는 것이 있으면 그런 곳에 댓글을 다는 사람이랍니다. 예를 들면 남로당이 제주도에 진을 치고 있었는 데도 김일성이 해방후 제주도를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말로 4.3 사건은 우리의 자작극이라는 뜻을 비추고 또 6.25때 진동 전투는 채병덕의 공이라하고... 채병덕은 6.25를 맞은 4일 후 참모총장에서 내려왔고 실은 그는 왜정때 병기 장교. 진동 전투! 해병대의 혼이 담긴 전투였고 뉴욕 타임스의 여기자 히긴스가 바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을 만든 격전지였지요. 또 야인시대에서는 계엄사령관 김종원씨가 대령이었는데도 소장으로 나오고.. 원 ㅉㅉㅉ
ㅋㅋㅋ 죄송합니다. 이런 곳에 글을 써서... 사실은 195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6.25를 겪은 세대라 갈 길이 먼저 공부 아니면 노동 또는 장사였습니다. 나이는 들어도 그렇게 무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개인용 컴도 1980년 초에 썼었구요. ㅎㅎㅎ 암튼 감사합니다. @@illijllillj4477
@@9전10승-m6p 오 아녜요 완전 멋지세요👍 유튜브 댓글까지 작성하시는 나이 많으신분들은 별로 없거든요 존경스러워요~~제가 겪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구요 유튜브 댓글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해요ㅎㅎ
일본은 전통적으로 사망하면 조선시대처럼 그대로 묻지를 않고 불교식으로 화장해서 납골후 그위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조선이 일제에 의해 지배가 시작했을때까 1910년인대.. 그전에 죽은 일본인들이 우리땅에 묻힌거 보면 그전에도 일본의 위세가 대단했고 조선의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했던거 같습니다..
사실 1900년은 열강의 제국주의시대 위세가 끝판왕이던 시기죠, 우리나라도 프랑스니 네덜란드니 해안가와서 포쏴대고 신미양요니 병인양요니 듣도보도 못한 코쟁이들이 매서운 무기로 공격하니까 어쩔수없이 보호해달라는 식으로 조약한것이 을사늑약(1905년) 입니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메이지유신으로 포기술이 발달해 조선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죠 일본이 아니다? 미국이던 프랑스던 네덜란드던 영국이던 누군가에겐 무조건 먹혔을 시기입니다.유교질하던 나라는 다 먹혓으니까요. 그 큰 중국이 일본에 먹힐거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홍콩싱가폴 필리핀 인도 네팔 부탄 호주 뉴질랜드 괌 아프리카는 말할것도 없고 중동까지도 세계 열강들에 의해 거의 약한나라들은 다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뭐 요즘 아파트들도 공동묘지 밀고 지은데가 많은데요
과정이 틀리잖아요..최근엔 무연고묘지 다 공고하고 이장하고 과정을 거친것이고..저곳은 말그대로 무법으로
남의 무덤걸 가져온거니까.
@@추억닷컴2 다 공고 됐다고 생각하나여
@@추억닷컴2 틀린게 아니라 다른겁니다
부산양정현대
아마 공동묘지라서 생각이 예민해 질수 밖에없을것 같네요.그래서 제명에 못살듯 ? 필리핀은 죽은사람들을 굴속에 넣어두는데 아에 무덤 굴에서 시체하고 사는사람들이 마을 을이루고 살고 있드라고요.
실제 돌(비석) 위에 집이 있는데 옛날 분들은 귀신을 자주 봤다고 들었습니다
이땅은 모두 무덤위에 있지요
선사시대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마음편이 먹고 지내면 끝!!!
조선때 일반시민들도 묘를 썼을건데 1000만명이 넘는 묘는 다 어디갔죠?
유명인들 묘는 남아있는데, 관리를 아무리 못한들 봉분1천만개는 다 어디에...
총각들은 저기가면 시름시름 않는다는.., .그동내
그 동네..
짐 아파트들 모두 공동묘지에 짓는다~
공동묘지가 땅값이 싸니깐니
울시골집도 묘지옆에 옆에 다 잇엇다~
고스트 헌터가 살펴봐야 겠어요
무섭기는 개뿔이 무섭노 모든 생은 모든 죽음위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일 뿐. 오늘 살아있는 생 위에 내일 또 다른 생이 덮이고 쌓이며, 지구가 존속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가능한 만큼의 시간동안 머뭄을 빌려 왔을 뿐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정해지지 않은 약속이, 모두에게 완벽하게 이뤄지는 순간으로 도래하고, 거기에 다른 생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부산.인천.김해.목포.군산 등지에는 광복 후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살던 집에 들어가 살던 사람들도 많앗고.
일본인 공동 묘지등에 50년대 이후 ~ 70년대 재개발로 갈 곳이 없던 이들이 터잡고 살았가게 된 경우가 많았음.
저 곳은 아주 특이한 경우이고..
거기에 많은 보물이 묻혀 있다고 확신합니다.
일본인 뼈다귀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어릴때 아미동 뒷산에서 여치잡고 많이 놀았는데 공동묘지가 있어요 민둥산에 무덤이가득 아미동하고 괴정사이에 있어요 변압기도 엄청큰거 있어요
나는 못살거같음 과학적인 영향이 없더라도
저건 좀.. 그냥 이사가는게 더 나을듯ㅠㅠ
저런곳에 사는 사람들이 대단..
우환은 없나 모르겠네...
동네 이름이 좋네요. 아미동
이름 바꾸지 마세요
`
한집건너 한집이 유공자라고 소문난 광주도 빼놓을 수 없죠
무섭지는 않더라도 무덤위에 집짓고살면 좋은건 없죠 그나마 비석 같은게 없다면 몰라도 있고 유골 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 해보세요 좋지 안겠죠
오.
흐머나 그집들에살아서 병들고 우환있고 많이들 죽어나갔겠어요 영매님 불러보시면 아마도 안좋은말 하실것같아요😢
반대로 한국인공동묘지 위에다 일본인들이 집짓고 살고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있을까? 아마 나라가 들썩들썩 난리가 났을듯 ㅋㅋ
처참했던피난시절 건축자료로사용했습니다
쓸대없는곳에 과하게 재개발하지말고
저런곳에 필요한곳에 재개발해라
택에다 집을 세워놨으니
흥부가,기가막혀
공동묘지 위에 사는건 영적으로 안좋다고 하던데 .?.
믿거나 말거나 ㅋㅋ
삼풍백화점도 ㅜㅜ
저런집에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니니까 계속 일이 일어나서 나가는거지. 집터 이ㅈㄹ
부산 덕천 3동도 다무덤 입니다 그래도 열심희 일해서 잘살아요 사람 않죽었는 땅 어디 있어요 다무덤이지 죽은 사람은 ㅡ않무서 워요ㅡ 사람이 더무서 워요 터가 써면 장사가 잘되는 집도 있어요 연때가맞어면 터가세도 아무 이상 없어요 인간이 엄청 무섭지요 ㅡㅡㅡ
무덤 마을이네...
비석 조상님 부모 대신입니다 희생 도움 주고 ㅎㅎ ~ 존경합니다 하면 널 지켜 주신다
모두이사시키고 재정비해야겠구요ㆍ땅속에 유골단지 나오면비석과함께일본으로 송환시켜주세요
동석아 이사 가라
초등학생 터도 많은 곳이 무덤터
어렷을적에공동묘지에사람이산다고뉴스에민이나왓는데육이오때피란민들이파린와그기서집잣고살앗는데현재는살고판다고어런들이말햇다공동묘지에산다하니뭄버웟는데빔벅을파내면혹해낄칠까봐길대없는사람들이말해서어럿을적에는저렇게무섷ㄴ데어ㄸㅎ겜바나햇는데오죽햇어면그런뎀발겟나
괴짜가족 엽기집 현실판
그래서 공동묘지터에 집짓고 살았나보네.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 하여튼일본인들은 끝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을 괴롭히네
bts 아미동?
공무원이나 건설사나,,돌값이아까우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참
삼성가포함 재계재벌들도 이태원 언덕 (옛 일제공동묘지터)에 자리잡고 사는데 ......뭐 어때요 ㅎㅎ
괜히 남의 나라 침략해서 편히 자지도 못하네. 저기 있는 사람들은 하층민이겠다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파묘는 한국이 했구만
그래서못살구나
재건축
저기 LH짓던데 ㅋㅋㅋ
역시 경상도 것들
부산아미동아니가
잘들만산다
이제사와할일이그리도없나
아무문제없이잘들만산다
할일이그리도없나ㅡ
1890년대에 비석이 세워졌다고?
아니 그럼 일제 강점기 전부터 일본인들이 많이들 살았나보네
많이 살았다고합니다
옆동네 송도해수욕장는별장지였다고합니다
경남 부산쪽에 일본인들 많이 살았다고 함
부산은 조선시대부터 왜관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