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속에 두고 있는 내용이....'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 인데요. 결국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고 그들을 돕는 자선행위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위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나 공부는 이웃의 고통을 보듬을 수 있는 내 성장을 위한 노력이며, 성장의 증거는 자선의 실천이다. 언제까지 교회의 품속에서 헛된 거룩함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이런 자책을 하게됩니다. 오늘도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신부님과 코로나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옳으십니다. 머리로 아는 것(Theoria) 역시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Praxis)이지요. 하지만 그 실천의 덕을 쌓는 훈련과 올바른 방향성은 교회의 품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실천과 노력만으로는 완전한 성덕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또 그 은총의 통로는 교회입니다. 따라서 양쪽 다 중요합니다. 1. 은총 안에서!! 2. 적극적으로노력하기!! (신의 은총과 인간 노력 이 양자에 관련한 이야기는 추후 영상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아무쪼록 교회의 품속에서 옳은 방향을 향해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
저는 개신교인이지만 미카엘 신부님의 설명에 정말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는 신앙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이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인데 아버지께선 이리 말씀하셨지요 행위 없는 믿음은 그 믿음의 진가를 드러내지 못하고 실천하는 믿음이 있어 내용이 유익하다 한들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빈 깡통이 울림과 같고 사랑이 넘친다 한들 그 넘치는 사랑은 쉽게 휘발될 수 있으니 소망을 하나님께 구하며 사랑해 나가는 경험만이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이 또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니 늘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한다 어머니께선 이리 말씀하셨지요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믿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오롯이 신뢰할 존재는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또한 배신당하는 아픔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인간들에게 느끼는 아픔을 그로 하여금 알게 하기위해서라고 하셨지요 오로지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성령의 열매가 우리와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마땅히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임을 기억하고 살아라고 조언해주셨지요 이 영상을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연락드렸어요 또 유익한 영상을 올려주신 신부님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또한 이 알고리즘을 타게 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영광돌립니다
제 세례명의 주인공이신 분이 등장하니 반갑네요ㅋㅋㅋ 어느 성인이시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타협없이 행동으로 옮기셨다는 것이 거룩한 모습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현하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요... (본인은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꼰대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본인은 부조리를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부조리에 그냥 적응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제가 군인신분이라 특별히 더 느끼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성인들께서 그런 초월적인 '언행일치'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화되고, 그 모습에서 하느님을 본 게 아닐까 싶네요. 저도 그렇게 살고자 제 이름을 아우구스티노 성인으로 받았지만, 실제로 제가 그렇게 사는지는 제가 하느님 얼굴을 뵈올 때까지 계속 질문해봐야겠습니다. 같은 성당을 다니는 형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개혁자의 삶이 아니라, 성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성 필립보 네리" P.s) 영상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신부님. 제 군생활 중 하나의 낙이 되었네요ㅋㅋㅋㅋ 오늘 성지주일 이었는데 잘 보내셨나요?
세례명이 아우구스티누스시군요~반갑습니다^^ 사제들은 여전히 홀로 미사하고 있습니다...허한 마음이 크지요.. 아무튼 이번 사태를 통해 모두들 뜻깊은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Agere sequitur esse)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 답게, 참된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살아갈 수 있길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습니다~ 군인이시군요. 덕분에 맘 편히 발뻗고 잘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형제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
@@치지시 아이고 답이 늦어서 죄송해요.. 제가 인터넷 사용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사용하는지라 바로바로 답을 못함을 양해바랍니다..ㅠㅠ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을 '존재 그 자체'(ipsum Esse)로 표현합니다. 이는 성경에도 '나는 있는 나다'라고 당신을 소개한 출애굽의 말씀과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모든 '존재자'들(esse), 곧 각각의 나무나 사람, 동물 같은 개채는 이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유'받은 존재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존재 자체의 존재를 분유받은 정도가 다르기에 각각의 개채는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필연적으로는 완전한 존재 그 자체에게로 모든 존재자들은 돌아가게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매우 간단하게 설명한것인지라 자세한것은 신학대전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신은 당신의 생각 속에 있습니다. 뇌속에서 탄수화물을 태워가며 생기는 에너지로 당신은 살아 있는 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당신의 이기적인 옥망이 희노애락의 순간에 누군가가 도와주는 절대자가 있어 주기를 바랄때에 당신의 뇌수 작용에 따라 신이 보우하신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물어보시니 아마 대충은 아시리라 사료되는데,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가톨릭의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은 이렇다 하고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또 자유주의 신학이 과정신학, 민중신학, 사신신학, 생태 신학, 심지어 퀴어 신학까지 그 양상이 다양하다보니 단정지어서 설명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말씀 드릴수 있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같은 경우 80년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하면서 자연스레 후기자유주의 신학적 색채(인권, 생태 등)가 짙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자유주의 신학의 경우 가톨릭의 체계적 구조상 cut된다는 사실을 주지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이단 사상등을 단죄하고 마녀사냥을 했던 중세 검사성성은 없지만 신앙교리성이라는 교황청 내 기구가 있습니다. 신앙교리성에서는 교의상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다루는 기구입니다. 그 곳에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이상 신학은 자유로이 성찰될 수 있으나 중요한것은 가톨릭이 말하는 경계 안에서만 성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abgeschiedenheit4100 매우 옳으신 지적입니다! ^^ 그렇습니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처럼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하듯(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교회의 신앙은 신학을 항상 초월합니다. 한 수 배웁니다!!
요즘 마음속에 두고 있는 내용이....'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 인데요. 결국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고 그들을 돕는 자선행위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위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나 공부는 이웃의 고통을 보듬을 수 있는 내 성장을 위한 노력이며, 성장의 증거는 자선의 실천이다. 언제까지 교회의 품속에서 헛된 거룩함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이런 자책을 하게됩니다.
오늘도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신부님과 코로나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옳으십니다. 머리로 아는 것(Theoria) 역시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Praxis)이지요.
하지만 그 실천의 덕을 쌓는 훈련과 올바른 방향성은 교회의 품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실천과 노력만으로는 완전한 성덕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또 그 은총의 통로는 교회입니다. 따라서 양쪽 다 중요합니다. 1. 은총 안에서!! 2. 적극적으로노력하기!!
(신의 은총과 인간 노력 이 양자에 관련한 이야기는 추후 영상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아무쪼록 교회의 품속에서 옳은 방향을 향해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
@@미카엘의잡학사전 네. 신부님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개신교인이지만 미카엘 신부님의 설명에 정말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는 신앙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이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인데 아버지께선 이리 말씀하셨지요
행위 없는 믿음은 그 믿음의 진가를 드러내지 못하고 실천하는 믿음이 있어 내용이 유익하다 한들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빈 깡통이 울림과 같고 사랑이 넘친다 한들 그 넘치는 사랑은 쉽게 휘발될 수 있으니 소망을 하나님께 구하며 사랑해 나가는 경험만이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이 또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니 늘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한다
어머니께선 이리 말씀하셨지요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믿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오롯이 신뢰할 존재는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또한 배신당하는 아픔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인간들에게 느끼는 아픔을 그로 하여금 알게 하기위해서라고 하셨지요
오로지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성령의 열매가 우리와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마땅히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임을 기억하고 살아라고 조언해주셨지요
이 영상을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연락드렸어요 또 유익한 영상을 올려주신 신부님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또한 이 알고리즘을 타게 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영광돌립니다
제 세례명의 주인공이신 분이 등장하니 반갑네요ㅋㅋㅋ
어느 성인이시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타협없이 행동으로 옮기셨다는 것이 거룩한 모습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현하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요... (본인은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꼰대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본인은 부조리를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부조리에 그냥 적응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제가 군인신분이라 특별히 더 느끼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성인들께서 그런 초월적인 '언행일치'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화되고, 그 모습에서 하느님을 본 게 아닐까 싶네요. 저도 그렇게 살고자 제 이름을 아우구스티노 성인으로 받았지만, 실제로 제가 그렇게 사는지는 제가 하느님 얼굴을 뵈올 때까지 계속 질문해봐야겠습니다.
같은 성당을 다니는 형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개혁자의 삶이 아니라, 성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성 필립보 네리"
P.s) 영상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신부님. 제 군생활 중 하나의 낙이 되었네요ㅋㅋㅋㅋ 오늘 성지주일 이었는데 잘 보내셨나요?
세례명이 아우구스티누스시군요~반갑습니다^^ 사제들은 여전히 홀로 미사하고 있습니다...허한 마음이 크지요.. 아무튼 이번 사태를 통해 모두들 뜻깊은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Agere sequitur esse)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 답게, 참된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살아갈 수 있길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습니다~
군인이시군요. 덕분에 맘 편히 발뻗고 잘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형제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
@@미카엘의잡학사전 감사합니다 신부님~
얼른 코로나 사태가 끝나야 성당을 갈텐데요ㅠㅠ 저도 성당가고싶네요
@@미카엘의잡학사전 그 신부님 궁금해서 여기에 질문을 드려보는데요 위키에서들은 정보입니다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본질이 무한유(끝없이 있음)즉 존재 그자체가 신의 본질이라고 하더라고 되어있던데 사실입니까요????????????????
@@미카엘의잡학사전 신부님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질문을 올려드려서용 근데 되실수 있으면 빠른 답변들 부탁드립니다::;;
@@치지시 아이고 답이 늦어서 죄송해요.. 제가 인터넷 사용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사용하는지라 바로바로 답을 못함을 양해바랍니다..ㅠㅠ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을 '존재 그 자체'(ipsum Esse)로 표현합니다. 이는 성경에도 '나는 있는 나다'라고 당신을 소개한 출애굽의 말씀과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모든 '존재자'들(esse), 곧 각각의 나무나 사람, 동물 같은 개채는 이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유'받은 존재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존재 자체의 존재를 분유받은 정도가 다르기에 각각의 개채는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필연적으로는 완전한 존재 그 자체에게로 모든 존재자들은 돌아가게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매우 간단하게 설명한것인지라 자세한것은 신학대전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정말 위대한 설명입니다^^
저는 위대한 교부와 성인의 사상을 읊조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실제로 책을 읽어서 이해하려면 힘들었을 거 같은 내용이네요..
이걸 5분영상으로 만드시다니!! 박수를 보냅니다.
어제 그레고리성가로 이 채널 알게 되었는데요...정주행 하느라 날을 꼴딱 세우고있습니다.
이런 주제도 넘 좋아요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흥미롭고 유익한 주제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
신은 당신의 생각 속에 있습니다. 뇌속에서 탄수화물을 태워가며 생기는 에너지로 당신은 살아 있는 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당신의 이기적인 옥망이 희노애락의 순간에 누군가가 도와주는 절대자가 있어 주기를 바랄때에 당신의 뇌수 작용에 따라 신이 보우하신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호.... 퀄리티가 좋은데요???
ㅋㅋㅋㅋㅋㅋ
ㅋㅋㅋ하나 만들어보시렵니까?
응악때문에 안들립니다
말빨---> 언변(言辨) 이라는 단어를 쓰시면 배운 사람같이 보이일 텐데요.
신부님, 최근 제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분야가 악의 존재문제에대한 내용인데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외의 이러한 문제에대해 다룬 다른 철학도 혹시 존재할까요?
이 영상을 보고 자유주의 신학이 생각나는군요
가톨릭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물어보시니 아마 대충은 아시리라 사료되는데,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가톨릭의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은 이렇다 하고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또 자유주의 신학이 과정신학, 민중신학, 사신신학, 생태 신학, 심지어 퀴어 신학까지 그 양상이 다양하다보니 단정지어서 설명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말씀 드릴수 있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같은 경우 80년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하면서 자연스레 후기자유주의 신학적 색채(인권, 생태 등)가 짙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자유주의 신학의 경우 가톨릭의 체계적 구조상 cut된다는 사실을 주지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이단 사상등을 단죄하고 마녀사냥을 했던 중세 검사성성은 없지만 신앙교리성이라는 교황청 내 기구가 있습니다. 신앙교리성에서는 교의상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다루는 기구입니다. 그 곳에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이상 신학은 자유로이 성찰될 수 있으나 중요한것은 가톨릭이 말하는 경계 안에서만 성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카엘의잡학사전 네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자유주의는 두가지로 보면 넓어진 스팩트럼과 신비에대한 말살입니다. 가톨릭 신앙의 느낌은 넓어진 스팩트럼과 신비적 측면의 보존이기 때문에 자유주의 신학과는 비슷하지만 오히려 자유주의를 초월하지요
@@abgeschiedenheit4100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abgeschiedenheit4100 매우 옳으신 지적입니다! ^^ 그렇습니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처럼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하듯(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교회의 신앙은 신학을 항상 초월합니다. 한 수 배웁니다!!
1:12 교부문헌이 아닌 호교론서가 끼어있다....
들.켰.다.
@@미카엘의잡학사전 ㅋㄲㄲㅋㄱㅋ
배경음악 짜증이..
ㅎㅎ 앞으로 주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