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리스토에 푹 빠져 있는데, 제가 읽고 느끼는 방향성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조금 더 안도하는 마음으로 계속 읽을 수 있겠네요 ㅋ. 왜냐면, 타인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독단에 빠진다는 건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4:14 저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집니다. 결국 그 두가지는 우리가 나눈 개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진리의 0을 찾아가는 이데아의 세상인 것 같은데요? 예술이 없으면, 창의력도 없으며, 창의력이 없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상상•개념 인지가 불가능 하지 않나요. 과거 로마 네로 시대와 르네상스의 시대는 일종의 문화•예술을 키운 시대라고 읽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우리들은 ’다양성의 더 확장된 이데아이자 현실 세계‘를 ’개념‘으로 더 깊게 인지하기 시작하였던 것 같구요. 결국은 철학도 예술과 결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예술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이고, 철학은 ’유‘에서 ’무‘를 찾아가는 과정? 😂 나 역시 ’예술‘이 ’이데아‘의 ’상상력의 세상‘이랑 맞 닿아 있다고 보는데. 단지, 나는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은 의미 없는: ”닭이 우선인가? 닭걀이 우선인가?“ 라는 질문이라고 보는 주의. 즉, 그냥 ’소설 속‘의 콜롬버스가 그 시절 이 논쟁을 하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는 계란을 보여주며 계란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요? 가로인가요? 세로인가요? 아닙니다. 우선 가는겁니다.” 라고 하고, 계란을 아래 쪽에 탁자에 쎄게 내려쳐서, 계란을 ‘세로’로 세웠다는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소설이라는 이유는 ‘이 설명’이 단지 비유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인지, 진짜로 콜롬버스가 했던 것인지, 우리 21세기 시대(시간대)를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과거로 회귀가 불가능 하기에, 단지 저 이야기를 소설로 가정 하였습니다.
요즘엔 또 관점 이게 멀티모달 생성AI가 만드는 그림, 사진, 영상, 음악등 AI의 아웃풋 혹은 AI작품을 보는 관점에까지 확대되어.. 1)“인간도 남의껄 베끼는데 뭐! AI라고 폄하하지만, 똑같은거 아냐? 내나 똑같은 예술 아냐? 수용자가 느낌 받으면 그걸로 예술 아냐???” 2)“단지 기존 작품들의 흉내내기, 기존데이터의 모방, 카피, 믹스, 편집일 뿐야!! 저작권 침해! 사기! 예술 아니야!!“ ~로 나뉘는 시대...😂
선생님 저 존재의 정의를 만들어 보았는데, 이 주제로 최근 AI로 영화(이순신 장군이라고 하고 최민석님이 나오는건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 없이 영화를 만들어 보았어요.)로도 만들어 보았어요. 결말이 약간 충격적이에요. 그래서 흑수저지만 저의 정의를 한번만 들어봐주실수 있을가요?
그리고 동굴의 비유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마음이 울렸는데, 만약 제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었다면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그래서 박쥐처럼 살아볼까 했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아무리 일이 없어도 스스로 그 실험까지 하기에는 너무 바빠요 ㅋㅋ😢
플라톤은 극단적으로 예술이 쓸모 없는 것이라고 하네 😂 예술이 없으면 ‘감성’도 성장이 불가능 하지 않을까? ‘모방의 세계’를 눈으로 관측하지 않고서는, ‘모방의 모방’인 ‘이데아’를 관측•상상 자체가 불가능 한 영역 아닌가? 우리 인간은 ‘무(无)’ = ‘빈공간’을 머리에 상상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세요.” 하면 우리는 이 문장을 생각이 갇히게 된다. 머리를 100% 비우는 것 자체가 안되지 않나? 다만, 명상을 하는 이유가, 여기서 우리가 너무 ‘감정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을 때, 얼만큼 ‘명상‘을 통하여 다시 ’0‘의 세상으로 이성적 사고를 찾아가는 과정 같은데. 지식 추구는 위나 옆으로 넓혀지는 것이 아닌, 프로이트의 지식(의식•무의식)의 빙산처럼, 아래로 보이지 않는 0이자 ♾️의 또 다른 빙산 아래의 이데아의 세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플라톤•프로이트 둘 다 역시 우리가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은 또 다른 시간대=시대의 한 사람이니까.
7:03 개인적의 의견으로는, 두 사람의 관점 차이는 ‘현실’의 시기(시간대)의 차이 입니다. 우리 인류가 극좌의 너무 감정적인 시대로 넘어가면, 플라톤은 그 현실을 보고 ”우리 너무 감정적 입니다~ 예술을 멀리하세요~“라고 설명하는거고.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은 플라톤과 동시대인가요? 아니면 1-20년이라도 차이가 있는 건가요? 그러면, 플라톤 이 후 너무 사람들이 ‘이성적 사고’에 ‘억압된 감정’으로 살아가면,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보며; “여러분! 감정은 사실 우리 인간들에게 ‘윤활유‘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너무 억압하지 마세요.” 의 설명 같아 보입니다. 그냥, 궁극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이 맞아. 소크라테스는 애초에 이런 ‘진리론’ 자체를 생각을 안 함. 그냥, 사람들이 너무 좌측이면 우측 이야기 하고, 너무 우측이면 좌측 이야기 함. 가불기로 내로남불 하는 사람들 말을 반문을 통하여, 지식으로 팩폭한 악랄한 인간. 여기서 3명 중에 ‘소크라테스’가 제일 나쁜 놈이여 ㅋㅋㅋ 😂 ㅋㅋㅋㅋㅋ 😂 안타깝지만, ‘미래’의 인류 기술 발전에는; 반문•질문의 토론 방식이 ‘생각’을 확장 시키기에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긴 한 것 같아요. 😂
현생이 바빠 오랜만에 방문 했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언제나 박사님 강의에 영감을 받습니다.
요즘 아리스토에 푹 빠져 있는데, 제가 읽고 느끼는 방향성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조금 더 안도하는 마음으로 계속 읽을 수 있겠네요 ㅋ.
왜냐면, 타인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독단에 빠진다는 건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 팬이예요~!! 미학도 다뤄주시니 넘 좋아요 :)
4:14
저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집니다.
결국 그 두가지는 우리가 나눈 개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진리의 0을 찾아가는 이데아의 세상인 것 같은데요?
예술이 없으면, 창의력도 없으며, 창의력이 없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상상•개념 인지가 불가능 하지 않나요.
과거 로마 네로 시대와 르네상스의 시대는 일종의 문화•예술을 키운 시대라고 읽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우리들은 ’다양성의 더 확장된 이데아이자 현실 세계‘를 ’개념‘으로 더 깊게 인지하기 시작하였던 것 같구요.
결국은 철학도 예술과 결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예술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이고, 철학은 ’유‘에서 ’무‘를 찾아가는 과정? 😂
나 역시 ’예술‘이 ’이데아‘의 ’상상력의 세상‘이랑 맞 닿아 있다고 보는데.
단지, 나는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은 의미 없는: ”닭이 우선인가? 닭걀이 우선인가?“ 라는 질문이라고 보는 주의.
즉, 그냥 ’소설 속‘의 콜롬버스가 그 시절 이 논쟁을 하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는 계란을 보여주며 계란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요? 가로인가요? 세로인가요? 아닙니다. 우선 가는겁니다.” 라고 하고, 계란을 아래 쪽에 탁자에 쎄게 내려쳐서, 계란을 ‘세로’로 세웠다는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소설이라는 이유는 ‘이 설명’이 단지 비유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인지, 진짜로 콜롬버스가 했던 것인지, 우리 21세기 시대(시간대)를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과거로 회귀가 불가능 하기에, 단지 저 이야기를 소설로 가정 하였습니다.
호르몬이 좀 말 안듣는다 싶으면> 예술(영화 시 노래) 들으면 정화되긴해 고건 인정 근데 현대는 정보가 넘치니 플라톤처럼 절제하고 다듬는 사람이 좋아보임
추천합니다 🎉
플라톤이 스승이기에 더 위대할 수 있지만 모방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한표를 주고 싶네요^^
시대의 차이가 있겠죠?^^
1.예술은 ㄱ.절대적이상주의 입장ㅡ 단순모방? (모방의 모방, 가짜의 가짜)
ㄴ. 가변적 현실주의 입장ㅡ
창조적 모방? (현실의 재창조)
2. 창조적 모방은 작품에 본능, 감정, 의지, 지적원칙,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것인가?
감사합니다
많이 도움받고있습니다
6:02
오~ 역시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신거네요.
“감정에 지배되는 것을 주의하자.”
요즘엔 또 관점 이게 멀티모달 생성AI가 만드는 그림, 사진, 영상, 음악등 AI의 아웃풋 혹은 AI작품을 보는 관점에까지 확대되어..
1)“인간도 남의껄 베끼는데 뭐! AI라고 폄하하지만, 똑같은거 아냐? 내나 똑같은 예술 아냐? 수용자가 느낌 받으면 그걸로 예술 아냐???”
2)“단지 기존 작품들의 흉내내기, 기존데이터의 모방, 카피, 믹스, 편집일 뿐야!! 저작권 침해! 사기! 예술 아니야!!“
~로 나뉘는 시대...😂
선생님 저 존재의 정의를 만들어 보았는데, 이 주제로 최근 AI로 영화(이순신 장군이라고 하고 최민석님이 나오는건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 없이 영화를 만들어 보았어요.)로도 만들어 보았어요. 결말이 약간 충격적이에요. 그래서 흑수저지만 저의 정의를 한번만 들어봐주실수 있을가요?
미학 빨리 전체 시리즈로 다 보고 싶다..ㅎㅎㅎ
감사합니다.
제 아무리 플라톤이라 하여도 살바토르 달리가 얼마에 팔렸는지를 알았다면,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을지도 모릅니다.ㅋㅋ😂
그리고 동굴의 비유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마음이 울렸는데, 만약 제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었다면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그래서 박쥐처럼 살아볼까 했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아무리 일이 없어도 스스로 그 실험까지 하기에는 너무 바빠요 ㅋㅋ😢
음.. 물론 본다는 것이 눈꺼풀 운동은 아니겠지만. 그래도요!
영상 퀄리티가 점점 좋아지네요!, 생각날 때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상들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감사핮니다!!
플라톤은 너무나도 기계와도 같은 논리로만 세상을 보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역시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감정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를 해야 말을 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 흠....ㅁ...
플라톤은 극단적으로 예술이 쓸모 없는 것이라고 하네 😂
예술이 없으면 ‘감성’도 성장이 불가능 하지 않을까? ‘모방의 세계’를 눈으로 관측하지 않고서는, ‘모방의 모방’인 ‘이데아’를 관측•상상 자체가 불가능 한 영역 아닌가?
우리 인간은 ‘무(无)’ = ‘빈공간’을 머리에 상상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세요.”
하면 우리는 이 문장을 생각이 갇히게 된다.
머리를 100% 비우는 것 자체가 안되지 않나?
다만, 명상을 하는 이유가, 여기서 우리가 너무 ‘감정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을 때, 얼만큼 ‘명상‘을 통하여 다시 ’0‘의 세상으로 이성적 사고를 찾아가는 과정 같은데.
지식 추구는 위나 옆으로 넓혀지는 것이 아닌, 프로이트의 지식(의식•무의식)의 빙산처럼, 아래로 보이지 않는 0이자 ♾️의 또 다른 빙산 아래의 이데아의 세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플라톤•프로이트 둘 다 역시 우리가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은 또 다른 시간대=시대의 한 사람이니까.
7:03
개인적의 의견으로는,
두 사람의 관점 차이는 ‘현실’의 시기(시간대)의 차이 입니다.
우리 인류가 극좌의 너무 감정적인 시대로 넘어가면, 플라톤은 그 현실을 보고 ”우리 너무 감정적 입니다~ 예술을 멀리하세요~“라고 설명하는거고.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은 플라톤과 동시대인가요? 아니면 1-20년이라도 차이가 있는 건가요?
그러면, 플라톤 이 후 너무 사람들이 ‘이성적 사고’에 ‘억압된 감정’으로 살아가면,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보며; “여러분! 감정은 사실 우리 인간들에게 ‘윤활유‘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너무 억압하지 마세요.”
의 설명 같아 보입니다.
그냥, 궁극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이 맞아. 소크라테스는 애초에 이런 ‘진리론’ 자체를 생각을 안 함.
그냥, 사람들이 너무 좌측이면 우측 이야기 하고, 너무 우측이면 좌측 이야기 함.
가불기로 내로남불 하는 사람들 말을 반문을 통하여, 지식으로 팩폭한 악랄한 인간.
여기서 3명 중에 ‘소크라테스’가 제일 나쁜 놈이여 ㅋㅋㅋ 😂
ㅋㅋㅋㅋㅋ 😂
안타깝지만, ‘미래’의 인류 기술 발전에는; 반문•질문의 토론 방식이 ‘생각’을 확장 시키기에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긴 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