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성인이 아닙니다. 스스로 그러지 못함을 자각하고 그러고자 실천하는 것이 철학이고 그 철학을. 하는 사람을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일례로 성인은 강연하지 않지요. 그의 행동과 말이. 본보기이면서 동시에 가르침 자체이니까요. 허나 사람들이 성인을 보고 비범함을 느낄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것으로 쉽게 깨닫기는 힘들죠. 철학자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철학자의 사상과 주장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강연을 우리가 듣는 것이지요😊
하나 덧붙이자면 적절한 지적이란 당신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가 아니라 이 강연내용이 정말 나은 삶을 살게 할 수 있는가? 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 더 덧붙여도 된다면 전에 강신주 작가님은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나도 상담하고 강연하지만 내가 말하는 대로 다 못한다. 잘 하지도 못하고. 대개 그렇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위대한 성인이. 아닌 이상은 혹은 사이비 교주가 아닌 이상은요 ㅎㅎ
노예인 걸 알고 있다고 해서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노예인 걸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모든 철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강신주가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건 그게 강연이기 때문이죠. 퍼포머는 연단 위에서 강단을 보여줘야 합니다. 무당이 신내림 굿을 하는데 이건 신이 온 거 같기도 하고, 안 온 거 같기도 하고 이딴 식으로 굿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무당이라고 항상 신이 내린 느낌을 받겠습니까? 그냥 지르는 겁니다. 퍼포머는 대중 감화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건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느냐, 마느냐의 성격이 아닙니다. 퍼포머가 대표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내가 뭐라는 의식, 자의식을 내려놓으면 어마어마하게 자유롭고 수평적인 사람이 된다 😮
열자의 삶. 궁극적으로 인간이 자만심을 내려놓고 스며드는 삶. 진심으로 따르고 싶은 삶이네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삶의 자세로 보이네요.
아버지가 닭잡아 줬을때 잘 먹었는데 내가 오리목 비틀고 잡으니 못먹겠더라.
근데 아들들 잘 먹는거 보먼서 느껐다.
아빠는 그런거더라.
감사합니다.
나랑 같은 생각을 좋은 언어로 풀어주셔서요.
섬기는 삶. 겸손
마음의번뇌가 사라지는 강의네요.항상 감사해요❤
아....이번편 왜 눈물이나지.......
와아~ 진짜 역대급 강의네요! 👍진짜 백만불짜리 강의입니다. 😵이번 내용은 자의식과도 연결되어있는거 같아요. 그나저나 열자 참 대단하네요. 😇 정말 깨달음의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생각이 하나 일어나면 덩달아
반대도 생기니 괴로움에 빠지
는 것
손은 그냥 손일 뿐인데
손등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으니 손바닥도 생겨난 것
1) 나는 남자다. ~을 하면 안된다.
2) 나는 인간이다. 먹는 존재
3) 특별히 편애하는 것이 없다.
그냥 스며드는 것. 오는 대로 스며 듦. 급한 사람을 도와 줌.
집에 삼식이가 있어요...
공자 맹자하는 삼식이.
근데 그 인간이 지가 삼식이인지
몰라요....속 터져....
강신주 선생님은 그런 삶을 살고 계세요?
그렇게딴지를걸고싶냐?그렇게궁금하면 직접 대면해서 물어보셔.꼬면 안들으면되지 꼭 다듣고gr이네ㅋㅋㅋㅋ
철학자는 성인이 아닙니다. 스스로 그러지 못함을 자각하고 그러고자 실천하는 것이 철학이고 그 철학을. 하는 사람을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일례로 성인은 강연하지 않지요. 그의 행동과 말이. 본보기이면서 동시에 가르침 자체이니까요. 허나 사람들이 성인을 보고 비범함을 느낄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것으로 쉽게 깨닫기는 힘들죠.
철학자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철학자의 사상과 주장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강연을 우리가 듣는 것이지요😊
하나 덧붙이자면 적절한 지적이란 당신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가 아니라 이 강연내용이 정말 나은 삶을 살게 할 수 있는가? 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 더 덧붙여도 된다면 전에 강신주 작가님은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나도 상담하고 강연하지만 내가 말하는 대로 다 못한다. 잘 하지도 못하고. 대개 그렇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위대한 성인이. 아닌 이상은 혹은 사이비 교주가 아닌 이상은요 ㅎㅎ
노예인 걸 알고 있다고 해서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노예인 걸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모든 철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강신주가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건 그게 강연이기 때문이죠. 퍼포머는 연단 위에서 강단을 보여줘야 합니다. 무당이 신내림 굿을 하는데 이건 신이 온 거 같기도 하고, 안 온 거 같기도 하고 이딴 식으로 굿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무당이라고 항상 신이 내린 느낌을 받겠습니까? 그냥 지르는 겁니다. 퍼포머는 대중 감화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건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느냐, 마느냐의 성격이 아닙니다. 퍼포머가 대표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듣고 당신이 하면 좋은거지.생뚱맞고 쓸데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