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도에 여행을 좋아 하시던 아버님께서 강원도에서 노후를 살고 싶다고 하시더니 전라북도에서 강원도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가신곳이 이름도 예쁜 "예미" 조그만 개인 의원을 운영하시면서 평소 좋아하시던 여행,사진,음악 들으시면서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일년에 서너번 예미를 가게 되었고 고속도로 아닌 국도로 8~10시간 운전해서 강원도 매력에 완전히 매료 되었습니다. 여러해를 예미에 계시다가 임계로 이사해서 15년정도를 강원도에서 사시다가 고향으로 오셔서 작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의 강원도를 잊을 수 없습니다. 어제도 갑자기 강원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무작정 나와서 차로 왕복 600km를 달려서 바닷가 보고 왔네요 그냥 강원도에 가고싶고 아버님 뵈러 가면 들려간 영월,정선,태백,함백....구룡령,백봉령 그리고 강원도 여기저기..... 5년정도 후에는 저도 강원도로 갈 계획입니다. 정선에서 예미가는 중간쯤 나전쯤 될려나요? 사랑합니다 강원도....예미
언젠가 무작정 기차타고 가다가 예미역에 내렸었는데 넘 이쁜곳이더군요 식당도 하나고 정말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길을걷고 있었는데 장화에 허름한 농사꾼 차림을 하신분이 인사를 하셔서 네 하고 인사를 하니 세상에 그분이 그곳 중학교였나 고등학교 선생님 이라고 하셔서 놀랐던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 다시한번 꼭 가보려고 합니다
상동인구가 천명정도라는 뉴스접하고 다시 옛생각이 나서 살펴보던중 님의 고귀한 발자취 흔적에 깊은 고마움과 감사드립니다. 40대 중반에 한번 다녀온적이 있었지만 옛 사진을 보니 눈시울이 젖어집니다. 53년생인 저는 백운대 뒤 텃골에서 살았으며 상동중 3년때 대구로 떠났습니다. 지금도 어린시절 산딸기,다래, 머루,잣, 더덕을 캐던 그때만한 좋은시절이 없었던것 같았습니다. 텅스텐 채광이 잘되어 다시한번 옛날의 부흥된 상동읍이 되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우연히 상동고교( 모교)가 생각이나서 인터넷 으로 찿아보니... 상동에서 살던 추억의 고장을 만나게 되어 무척 새로워 지는구나!!! 마음이 뭉클 하구나! 이젠 동창들도 다 흩어져 있겠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나이 74세~ 적은 나이 아니지... 나역시 머나먼 미국( California ) 까지 갈줄은 몰랐네~~~ 모두들 건강히 장수들 하시게~~~ 오일파 선생님 감사 합니다. 잠시! 옛추억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건강히 행복 하십시요!!! ***🗽🗽🗽
@@snu64130 // 선생님~ 이렇게 연락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에 무척 만족하고 행복 합니다. 가족들 사진을 한장 한장 보니 무척 행복해 보이십니다. 오선생님은 아직 상동에 거주 하고 계십니까? 저는 몇해 졸업인지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오선생님 께서는 몇해 졸업 인가요? 배경 음악이 무척 감미롭고 편한 합니다. 저도 학교 음악 감상시간을 무척 좋아 했지요!!! 틈틈히 상동 그리고 학교소식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을 떠난지가 45년이 넘은것 갔습니다.***
@@snu64130 // 오선생님 경주~ 옛 신라의 수도 참아름다운 관광 도시죠! 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 그립습니다. 행복한 여생을 보내십시요! 그리고 고등학교 5회 졸업생이면... 연세가 80세쯤 되셨겠습니다. 졸업 횟수로는 나이 분별이 안됩니다. 매일 매일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십시요. ***
60년대 후반에 70년 초에 내게 상동의 추억은 인생의 전부인냥… 40년 넘게 외국에서 살다보니 오늘 우연히 이 영상을 접하고… 반갑구.. 옛 추억에 젖어 봅니다. 꼴뚜바위, 칠량리… 우리 시절에는 구래 국민학교도 학생들이 1000 명을 웃도는 참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저도 상동에서 유치원 그리고 국민학교 1학년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푸른 중석물이 개울로 흐르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이 살면서 몇해전 친구와 한번 들렸더니 우울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곳에서 어릴때 아주 즐거운 추억들이 많았는데. 같은 추억을 가진분이 이렇게 영상을 올려주니 옛친구를 만난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유년시절가 떠나온 50년 전 지금에 모습처럼 정말 고향은 그립고 또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요~ 이젠 유년시절에 꿈 같은 추억들이 영상으로 남겨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릴수는 없지만 행복하고도 아름다운 추억에 한편의 영상으로 남겨 보셧네요~ 누구나 자신에 고향은 있지만 고향땅이라고 해도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고들 합니다. 영상을 만드신 오리파~~님에..아름다운 고향추억.. 늘 마음속 깊이 간직하시며...행복한 인생여정길 되시길 바랍니다.
15년전에 한번 가보고 너무 멋져 올10월에 강원도 여행하면서 마지막 코스로 삼척에서 태백거쳐 상동을 지나왔습니다 상동지나 영월 가다 우측 하천 넘어 보이는 큰 구조물이 중석광산을 덮어 놓은 구조물도 알게 되었구요 내덕에서 두부전골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영상으로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귀향을하게 되면 결국 이곳으로 가게되겠지요.. 많이 재개발되고 하더라도.. 산천은 그대로이기에.. 그때 그 풀향이 그대로 나는듯 합니다.. 절골, 연애골, 저루마골... 이런곳이 있었지요.. ㅎ 망경사 뒤로 올라갔던 그 산이 장산 연결되었던 곳이었군요.. 지금도 그 깊은산에 대한 느낌으로 산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산에 바위가 엄청 많은 우리 장산...^^ 더 늙어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 언제 가 보려는지 기약은 없지만 젊은 아버지,어머니 어렸던 우리 여러남매가 어우러져 깔깔거렸던 아름다운곳,지금보다 오히려 물자가 많았던듯 건오징어,고등어,꽁치,가자미,이면수 지게지고 칼국수사세요 하고 다니던 흰옷입은 아저씨,밥상엔 두릅,더덕,자반고등어 생태찌개,꽃고무신.색동저고리 빨간치마,스펀지 핑크색 머리리본,등등 그리운 어린날,어머니는 사년전 하늘가시고 아버지도 오래전 하늘가시고,,,,부모님 그리워라,,,
이런영상보고 좋아라해야하는데 , 옛날은 가고없고 아련한 추억만 남아 그때 그시절이 그리워 가슴한켠이 아리고 눈시울이 불거진다. 내 기억 속 그리움이 진짜인가,가짜인가.. 고향가도 아무도없고, 그시절 모습들도 다 없어진지 오래, 고향엘 가도 ,지금 사는곳에 있어도 늘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서글프네.생각해보면 어린시절이 좋았던것도 같은데..
엄마가 턱골인가 텃골인가 무슨 대한중석 직원들이 모여사는 마을?에서 살았었다고 했는데..05년생인 내가 엄마랑 다시 가봤을 때는 마을은 산위에 있던 텃골 사라진지오래고 폐쇄되어서 을씨년스러운 대한 중석 건물 잔해밖에 없었다.. 추가로 뭔 교회가 있었는데 거기 신도도 많았다는데 지금은 아랫쪽으로 건물 이사해서 거기서 예배봤던 기억이... 구래초등학교인가? 그렇게 학생이많았다는데 난 몰랐음.. 근데 진짜 그 텃골 한창때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89년도에 여행을 좋아 하시던 아버님께서
강원도에서 노후를 살고 싶다고 하시더니
전라북도에서 강원도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가신곳이 이름도 예쁜 "예미"
조그만 개인 의원을 운영하시면서
평소 좋아하시던 여행,사진,음악 들으시면서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일년에 서너번 예미를 가게 되었고
고속도로 아닌 국도로 8~10시간 운전해서
강원도 매력에 완전히 매료 되었습니다.
여러해를 예미에 계시다가
임계로 이사해서 15년정도를 강원도에서 사시다가
고향으로 오셔서 작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의 강원도를 잊을 수 없습니다.
어제도 갑자기 강원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무작정 나와서 차로 왕복 600km를 달려서 바닷가 보고 왔네요
그냥
강원도에 가고싶고
아버님 뵈러 가면 들려간
영월,정선,태백,함백....구룡령,백봉령
그리고
강원도 여기저기.....
5년정도 후에는 저도 강원도로 갈 계획입니다.
정선에서 예미가는 중간쯤
나전쯤 될려나요?
사랑합니다
강원도....예미
제발 강원도 물 흐리지 마세요 왜 외국사람이 강원도를 슬픈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언젠가 무작정 기차타고 가다가 예미역에
내렸었는데 넘 이쁜곳이더군요
식당도 하나고 정말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길을걷고 있었는데 장화에 허름한 농사꾼 차림을 하신분이 인사를 하셔서 네 하고 인사를 하니
세상에 그분이 그곳 중학교였나 고등학교 선생님 이라고 하셔서 놀랐던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
다시한번 꼭 가보려고 합니다
상동인구가 천명정도라는 뉴스접하고 다시 옛생각이 나서 살펴보던중 님의 고귀한 발자취 흔적에 깊은 고마움과 감사드립니다. 40대 중반에 한번 다녀온적이 있었지만 옛 사진을 보니 눈시울이 젖어집니다. 53년생인 저는 백운대 뒤 텃골에서 살았으며 상동중 3년때 대구로 떠났습니다. 지금도 어린시절 산딸기,다래, 머루,잣, 더덕을 캐던 그때만한 좋은시절이 없었던것 같았습니다.
텅스텐 채광이 잘되어 다시한번 옛날의 부흥된 상동읍이 되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1975년경 상동으로
출장 다니던 사람입니다
중석에 황산납품하던 한국유산서울
본사 직원이었지요 반가워 눈물나네요
상동에서 77년도에 태어나서 85년까지 살았었습니다. 30년 넘게 가보지 못했지만 언제나 맘의 고향으로 남아 있네요. 치렛골에서 멱감고 놀며 꼴두 바위에 오르락 거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 감사합니다.
너무 어릴때 떠나와 기억할수없는 내가 태어난곳 늘 꿈속에서도 그리웠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할수 있어 너무나 감사드립니다ㆍ
상동광업소 계시던 아버님 아래 그 청랑한 바람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서른된 청년입니다. 고향생각 늘 함께 합니다. 가끔 앉았다 갈수있게 게시물 내리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반가웠습니다.
너무나 반갑습니다
저는 66년생으로 상동 초중고 졸업생으로 현재는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추억속으로 빠져봅니다
영상속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봅니다. 영상을 올려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68년생으로 태백 황지중ㆍ고
졸업후 지금은 청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립습니다.
고향산천이~
영상 올려주신 분 감사드려요!😊
어릴적 생각이납니다
엿추억을 생각나게 해주시니 감사드려요 잊었던고향이 새록새록 생각이나네요
이제 정말 나이를 먹었나봅니다
고맙습니다
우연히 상동고교( 모교)가 생각이나서 인터넷 으로 찿아보니...
상동에서 살던 추억의 고장을 만나게 되어 무척 새로워 지는구나!!!
마음이 뭉클 하구나! 이젠 동창들도 다 흩어져 있겠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나이 74세~ 적은 나이 아니지...
나역시 머나먼 미국( California ) 까지 갈줄은 몰랐네~~~
모두들 건강히 장수들 하시게~~~
오일파 선생님 감사 합니다. 잠시! 옛추억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건강히 행복 하십시요!!! ***🗽🗽🗽
멀리 외국에서 찾아주셨군요, 상동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다녀가십니다. 그곳에서의 아릿한 추억을 떠올리면서요... 내내 건강하십시요.
@@snu64130 // 선생님~ 이렇게 연락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에 무척 만족하고 행복 합니다.
가족들 사진을 한장 한장 보니 무척 행복해 보이십니다. 오선생님은 아직 상동에 거주 하고 계십니까?
저는 몇해 졸업인지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오선생님 께서는 몇해 졸업 인가요?
배경 음악이 무척 감미롭고 편한 합니다. 저도 학교 음악 감상시간을 무척 좋아 했지요!!!
틈틈히 상동 그리고 학교소식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을 떠난지가 45년이 넘은것 갔습니다.***
예 저는 중학교7회, 고등학교5회 입니다. 세상바닥 소용이 다하여 경북 경주시 한적한 시골에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상동에는 일년에 한번정도 들리는 편입니다. 아직 옛정취가 남아있고 깨끗이 다듬어져 보기좋았습니다.
@@snu64130 // 오선생님 경주~ 옛 신라의 수도 참아름다운 관광 도시죠!
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 그립습니다. 행복한 여생을 보내십시요!
그리고 고등학교 5회 졸업생이면... 연세가 80세쯤 되셨겠습니다. 졸업 횟수로는 나이 분별이 안됩니다.
매일 매일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십시요. ***
70 ~ 80년대 근무했던 옛 시절이 생각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는듯 합니다 . 감사합니다.
지나간 시간 다시는 오지 않겠지만,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제 고향이자 아버지 청춘을 바친곳... 타국에서 보니 더 그리워지네요
길러주신 아버지, 어머니들께서는 이제 모두들 무지개다리를 건너 무릉도원에 계십니다. 머지않아 우리들도 거기 다시 모이겠지요? 그때까지 안녕~
오일파님 반갑습니다 😁 저는상동 55년도에 음지사택 구래5리에서 태어나 아버님 상동광업소에서 돌아가시고 떠나 현제는 태백에서 살고있답니다 정말 반갑읍니다 유투브 에서나마 자주뵙도록 합시다 고맙읍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홧팅 옛날 생각지도 못했던 영상 기리기리 오래도록 보관 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반갑고 고마워요, 상동고 5회입니다. 1972년도에 대한중석에서 POSCO로 전직, 지금은 경주시 관내 시골에 살고있지요.
부모님과 조모님 산소가 함백산 자락에 모셔저 일년에 한두번씩 다녀오고 있습니다. 기회봐서 찾아 뵈올께요
제 잔뼈가 굵었던 곳입니다.
몇번이고 보고 또 봅니다.....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련한곳 ~~ 세월이지나 지금은 쓸쓸한곳 사는데 바빠서 지주하지못하다 요즘은 일년에 한번은 찾곤 합니다.예전엔 그리추워서 싫어서 빨리 떠나고 싶었는데 나이들어 돌아가곳 싶은곳이 되었읍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타이머신타고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상동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나마 저의 20대 중반을 회상해 봅니다
63년생이고... 90년도 까지 고향 상동에서 살았습니다. 내일 상동에 가려고 영상을 찾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제가 살던 고향집도 영상에 남아 있군요... 구래 초등학교 담장을 끼고... 당시 천일식당 옆이 저희 집이었습니다.
동갑이데혹시내덕초산동중나온분아닙니까
76년부터 93년 까지 살았던 내고향 상동입니다 지금도 친구 선후배들이 있어 가끔 가는곳이지만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세삼스럽네요 좋은영상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고마워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많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울 같은 친구 같은데...
저는 하칠량리 살던 백대영이야.
88년도 6학년 3반이었는데...
그루터기님은 누구실까?
@@coren3445 정민이야 대영아
네네 정말 감동입니다.
자료를 꼼꼼히 챙겨 편집에도
사진 설명도 구성을 너무 잘 하셨습니다.
참으로 귀한 영상을 잘 보았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상동서 태어나 6살때 까지 살았는데
눈이 마니와서
무릎까지 쌓여 겨우 걸었던
기억만 있네요
저당시에 어린시절을 보낸사람들은 현재 아련하고 그리운 고향이고 그당시에 가족을 위해 갱도를 오르내리며 뿌연돌가루에 숨이가슴까지 차오르고 그로인한 진폐증을 얻고 그분들중에는 돌아가신 분들도 많죠
우리들은 추억이 였겠지만 그분들은 삶과에 전쟁에 연속이 였겠죠
당신이 계셔서 더운밥에 따뜻한 아랫목에 동지섯달 긴긴밤을 잘수있었네요
아버지라는 이름석자 앞에 허리숙여 큰절을 올립니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ㅡㅡ
대한중석.아.동네동네마다발길이있던곳.항상그리운곳
너무 아름다운 산천 입니다...
정말 그리운 시절입니다..
따뜻한 정이 흐르던 그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은 힘이들때 더 단결하는거 같습니다.
가고싶다면 미래보단 저시절로 가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고향 아우라지 그리워 가슴이 먹먹
눈엔눈물이
그 뒤는 제가 이어주겠습니다 형님
지금 현재 교회랑 폐허가 되어 무너지기 직전이고
구래초등학교도 폐교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원 태백 영월 사북지역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60년대 후반에 70년 초에 내게 상동의 추억은 인생의 전부인냥… 40년 넘게 외국에서 살다보니 오늘 우연히 이 영상을 접하고…
반갑구.. 옛 추억에 젖어 봅니다. 꼴뚜바위, 칠량리… 우리 시절에는 구래 국민학교도 학생들이 1000 명을 웃도는 참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외국에서 보셨군요. 외국생활 40년...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국내에 계신분들은 여가내어 찾아보기가 쉬워요. 도로여건이 좋아졌고 교통편도 다양하기 때문이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가보고싶다내고향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납니다.
선배님 덕분에 타국에서도 보게 되어 새삼스럽습니다.
어른들이 월급받는 날이면 시장동네가 붐볐습니다.
金
항상들어도.좋은음악.그리고설레임.항상그리운곳.구래국민학교.배구.상동중학교.축구선수.고등학교.밴드부.파란만장한.잔뼈가!
그리운 곳.
올려주신 영상을 보면서 더욱 그리움에 젖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
만나서 반가워요 세월 많이흐른 지금에도 정말 그리운곳이지요
반가워요초중고.고.21회입니다.옛추억이가슴을메입니다.선후배님.항상건강하십시요.
그리운 곳... 감사합니다
고향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분이시군요.
예술 작품 한껏 감상했습니다.
훌륭한 족적을 남기셨어요.
00:38 멋있네요. 😳
20:52 어? 반갑다, 봉래산아! 😀
거기에다 22:45 이 경치는 집에 돌아온 것처럼 왜 이리 반가운지! 😢
영상이 아주 좋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향분들 반갑드래요
2022년 선후배님들모두모여체육대회를햇거든요고향서. 만나뵈어서정말반가웠읍니다 잼나는하루였습니다
내 고향 상동.........
마음은 늘 고향을 향하나
돌아갈 준비는 물거품이되고........
그래도 또 고향을 향해 고개를 쭉 빼고 어슬렁 거린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아련한 추억....
만항재에서 세송으로 내려가는 사계절이 이쁜 가을.... 곱게물든 아름다운 산길을 걸어가고싶네요
7ㅇ년대 내가 한글을 깨우치던 구래국민학교 아옛날이여 이제 머리카락에 흰눈이 내려 아득한 기억 저너머 상동 언제한번 가볼수 있을까지구반대편에 있으니 아련함만가득하구나 상동중고등학교 담장이 ㅇ때쯤 아카시아 꼿으로 물들엇던것 같은데
먼곳에서 주신 글...고마워요 학교담장의 아카시아~ 식목일날 봉우제에서 옮겨심었던것 기억이 납니다. 초여름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꽃들도...
저도 상동에서 유치원 그리고 국민학교 1학년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푸른 중석물이 개울로 흐르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이 살면서 몇해전 친구와 한번 들렸더니 우울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곳에서 어릴때 아주 즐거운 추억들이 많았는데. 같은 추억을 가진분이 이렇게 영상을 올려주니 옛친구를 만난것 같습니다.
1950년도부터 1965년까지 상동 광산지에서 아버님이 목회하시면서 많은 추억이 있던곳입니다 어렸을때 치렛골에서 놀던생각이 나는군요 . 외국에서 오래살면서 늘 강원도의 아름다운 모습들과 향기가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 때 당시에는 제일교회와 상동중앙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목사새끼들사기꾼
구래국민학교 졸업한지어언46년 그리고 미국이민 정말가고싶은 내고향 상동 살아생전 가볼수있을까?
완이형캍은데요
스케이트잘타시던
길남이형동기아니신가요
애향심 많고 사진속 그림움이 넘쳐나는군요.
저또한 영월 산골짜기. 출신이며. 지금도 상동에는 옛추억이 많아
가슴 시려오네요
가슴이 짠해집니다. . . . . 지나고 나면 모든것이 그립지요,
우리.19회는항상.6월둘째토요일날.상동서동창회를하지요.이번은코로나때문에가을로연장됐네요
아름다운 유년시절가 떠나온 50년 전 지금에 모습처럼
정말 고향은 그립고 또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요~
이젠 유년시절에 꿈 같은 추억들이 영상으로 남겨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릴수는 없지만
행복하고도 아름다운 추억에 한편의 영상으로 남겨 보셧네요~
누구나 자신에 고향은 있지만
고향땅이라고 해도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고들 합니다.
영상을 만드신 오리파~~님에..아름다운 고향추억..
늘 마음속 깊이 간직하시며...행복한 인생여정길 되시길 바랍니다.
15년전에 한번 가보고 너무 멋져 올10월에 강원도 여행하면서 마지막 코스로 삼척에서 태백거쳐 상동을 지나왔습니다 상동지나 영월 가다 우측 하천 넘어 보이는 큰 구조물이 중석광산을 덮어 놓은 구조물도 알게 되었구요 내덕에서 두부전골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영상으로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반가운 곳~~~~ㅎㅎ
영월 상동.의 추억
귀향을하게 되면 결국 이곳으로 가게되겠지요.. 많이 재개발되고 하더라도.. 산천은 그대로이기에.. 그때 그 풀향이 그대로 나는듯 합니다.. 절골, 연애골, 저루마골... 이런곳이 있었지요.. ㅎ 망경사 뒤로 올라갔던 그 산이 장산 연결되었던 곳이었군요.. 지금도 그 깊은산에 대한 느낌으로 산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산에 바위가 엄청 많은 우리 장산...^^ 더 늙어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데..
동영상 올려놓은 '오일파'입니다.
금년77세, 세상바닥의 역할 모두끝내고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 남은생 맡기려합니다.
@@snu64130 부럽습니다.. 혹시나 모르니.. 귀향하는 사람들 오면 반갑게 맞아주세요~~ 건강하시고.. 상동물이 좋아서 건강에는 좋을것 같습니다.. 틈나는데로 고향방문 하겠습니다..
장산을 알고 계시군요, 머루 다래도 생각 나시죠?
@@snu64130 다래넝쿨에 출렁이며 놀던 생각이 압니다.. 시큰한머루 ㅎㅎ
저는 언젠가 강원도 영월군 덕포리에
간적이 있었는데 넘 멎있고 슬펐습니다
그리 좋지않은일로 갔었거든요
아직도 그곳을 잊지않고 있습니다
정말깨끗하고 아직도 때묻지 않은곳
인것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언제 가 보려는지 기약은 없지만 젊은 아버지,어머니 어렸던 우리 여러남매가 어우러져 깔깔거렸던
아름다운곳,지금보다 오히려
물자가 많았던듯 건오징어,고등어,꽁치,가자미,이면수
지게지고 칼국수사세요 하고
다니던 흰옷입은 아저씨,밥상엔 두릅,더덕,자반고등어
생태찌개,꽃고무신.색동저고리 빨간치마,스펀지 핑크색
머리리본,등등 그리운 어린날,어머니는 사년전 하늘가시고 아버지도 오래전 하늘가시고,,,,부모님 그리워라,,,
저는 50년대 후반 구래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기억은 없지만 지금도 매년 할머니 산소에 벌초 동생들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갈때마다 늘 맘이 아련해 옵니다
저의 시작인데....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상동 광업소가 잘 운영 될 때
는 상동이 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폐광 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찾아 경기도
안성 쪽으로 많이 떠났지요.
감동사라호태풍을경험한곳 꼴두바위몊에살았는데
여름날세송꼴짝기물놀이도흐르는물에담겨있는물김치훔쳐먹은그맛육십년지난지금도잊지못합니다유년시절을돌아보게해주셔감사합니다
이런영상보고 좋아라해야하는데 , 옛날은 가고없고 아련한 추억만 남아 그때 그시절이 그리워 가슴한켠이 아리고 눈시울이 불거진다. 내 기억 속 그리움이 진짜인가,가짜인가.. 고향가도 아무도없고, 그시절 모습들도 다 없어진지 오래, 고향엘 가도 ,지금 사는곳에 있어도 늘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서글프네.생각해보면 어린시절이 좋았던것도 같은데..
72년도에 1년쯤 살았었는 데 그 때 6살 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에서 다시 생활했지만 영원한 마음속의 고향입니다.치랭이골에서 물놀이 하던 기억과 할머니와 함께 성당 옆 골짜기로 반나절 걸어서 산촌마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영상 감사합니다.
김군66년생인가
우리 아버지는광부다
존경한다 아버지를
너무너무 그립네요. 우리동창들이 구독많이했으면 합니다
저는 현재 72세
국민학교6년, 중학교3년 졸업, 서울로' ' '
태어난 엄마품 !
눈물어린 내고향 !
꼴두바위, 고무라골, 치렛골, 연애골...
길가 돌하나 하나 사연이. . .
철없고 춥던 그 시절 행복이 . . .
지금도 돌아가고픈 내고향. . .
영월 상동의 역사를 보여주는군요~난 65 주천
귀한자료 감사드립니다!
혹시 연락 가능하실까요?
상동고.19회.밴드부.구래국민학교배구.상동중학교축구.목조건물불탈때.많이울었지요.
반갑습니다.오개동하고친구입니다
반가워요 우리 언제한번 만나요~♡
칠랑리 치랭이 할머니 ㅠㅠ
내고향 작은 우체국 연탄공장 버스터미널 꼬마네집
저는50년대태어나영월모운동탄광지대에서60~70년대중반까지살았는데/그때는상동광산에들어가려는사람이많아서/
국회의원빽이라야들어간다는말까지있던곳이었고/대우가좋았고성황을이루었던곳이지요이젠그곳이나
모운동도모두페광해서문닫았지요/험난했던삶의지난새월이떠오릅니다/
저는 대한 중석 91년 입사 손 명호 입니다. . . . . 너무 좋은 사진 감사 합니다. . . . 지금은 프랑스의 어느 국제기구에서 근무 합니다만 내인생 첫 직장 대한 중석 너무 그립네요. . . . 좋은 그림 감사 합니다. . .
멀리 프랑스에서 글을 올려주셨네요.
외국생활에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상동고 28회졸업생이자 상동야구고등학교 추진위원회 대외분과위원장 입니다.
봉우제.언제가봐도.아침에그공기.어휴
만항제.잦을따가지고.줍고해서.상동우리집까지어깨에메고와서.턱골우리집에연탄불에구워.발로부서서.씻어까먹던생각.왜그리도잣타는냄새가좋았던지
고향갈때 한 번 들려야지
엄마가 턱골인가 텃골인가 무슨 대한중석 직원들이 모여사는 마을?에서 살았었다고 했는데..05년생인 내가 엄마랑 다시 가봤을 때는 마을은 산위에 있던 텃골 사라진지오래고 폐쇄되어서 을씨년스러운 대한 중석 건물 잔해밖에 없었다.. 추가로 뭔 교회가 있었는데 거기 신도도 많았다는데 지금은 아랫쪽으로 건물 이사해서 거기서 예배봤던 기억이...
구래초등학교인가? 그렇게 학생이많았다는데 난 몰랐음.. 근데 진짜 그 텃골 한창때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턱골 올라가는 작은개울 건너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새빠갛게 녹이 슬어있더군요... 아버님이 그 다리에서 용접하셨던 기억이... 그다리가 아직 있더라구요
울동네 시장동네도 보이네요
구래 국민학교 2년 서울로 왔는데
안당유치원 기억도 있고
구래국민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기억이 맞다면 신의식(女) 선생님
2학년 담임선생님 김화자 선생님이 었던거 같은데 교통사고가 나서 김화자 선생님댁에서 따로 공부했던 기억이...
어머니 고향이 상동인데
우리 옆동네 상동~
지금은 경제가 많이죽었지만...
치렛골이였군요. ^^ 여태 치랭이골로 알았네요
꼴두바위?
한자는....쥔장
죄송~~
좋은한글 놔두고 ~
63년생 상동친구들보고싶다
상동중이학년까지 다녔어요
장산에올라.머루.다래.많이따먹었지요
님들에추억소중하게간직하세요
옛추억 소환해 주신오일파님 감사해요 영상보고 있자니 눈물이나서요~~🙏😭
봉우재~~이젠 으시년스럽게 변했더라구요 옛적 어릴때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자전거 고무줄놀이 ~~~추억이 됫네요
나 중고등 때까지는 잘사는 동네 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