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이-r8f연호도 달라요. 칠지도가 부식돼서 연호 한 글자가 파악되지 않고있습니다. 그런데 동진의 연호는 태화(太和)인데 칠지도의 연호는 태□(泰□)입니다. 애초에 엄연히 다른 글자이나 서로 뜻이 통하는 글자이고 극히 일부 실제로 두 한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경우도 발견됐지만 설령 같은 의미라 하더라도 무령왕릉 묘지석을 보면 적어도 6세기 초반까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음이 밝혀졌습니다. 즉, 동진이 제후국에 하사한 것이라면 동진에서 나오는 철을 쓰지 백제의 철을 쓸 이유도 없고 결정적으로 연호도 다릅니다.
지구촌 어느나라 역사서에 바다건너 먼 다른 나라 역사를 저리도 자세히 나열한거 보셨나요? 일본서기인지 백제서기인지 그 내용이 구분이 되나요? 일본이 왜 백제역사를 저리도 자세히 기슬하나요 바다건너 먼나라 백제 역사를 일본인들이 섬에서 어찌 저리 자세히 안다는 말인가요? 저게 말이됩니까?
☘ 재팬열도에 7세기까지 도성/왕성이 없었다는 것은 재팬 학자 전체도 인정한 공인된 사실입니다. (재팬열도 최초의 도성/왕성, 후지와라교, 등원경, 7세기 후반) 재팬열도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할 정도의 강력한 가 있었다면, 도성/왕성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따라서 칠지도 등에 등장하는 은 입니다. 총독 관저 정도의 건물은 있는데, 중요한 것이 이 바뀔 때마다
@@김유신태대각간 1☘ 에 의하면, CE 5세기에 讚, 珍(彌), 濟, 興, 武라는 이 등장하는데, 이들 왜왕의 계보가 와 에 나오는 천황의 계보와 일치하지 않고 있어 현재까지 이들 을 와 의 어느 천황에 비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자들은 재팬열도가 백제의 행정구역이었음을 숨기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유신태대각간 2☘ 그래서 이들 의 혈통관계에 대해서도 讚 珍(彌)과 濟興武가 별 개의 왕통이라는 설이 제시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왕통이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백제의 임명직인데 어떻게 왕의 계통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소위 중 武가 CE 478년 송에 표문을 보냈습니다. 표문의 내용은...(참고로 CE 475 개로왕 사망, CE 477 문주왕 사망, CE 477 곤지왕 사망)
공부 좀 더 하시길. 1. 칠지도 제작 시기로 유력한 4세기 후반은 백제 국력이 최상이었고 일본 열도 야마토 정권은 이제 막 성장 중이었음. 2. 4세기 말 이후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약화되던 시기에 왜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려 함. 그 과정에서 왕족을 파견함. 왜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고 백제가 상황이 급했기에 왕족들을 파견함. 3.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왜에게 군사적인 지원을 원했고, 왜는 백제에게 문물 교류를 원했음. 이 과정에서 백제가 일본에게 유학과 불교를 전한 사실은 이미 기록으로 있음. 4. 어쨌든 칠지도 자체는 백제 국력이 최상이던 시절에 제작되었고 명문 자체가 아랫 사람에게 쓰는 말투임.
@@start5903-pr7lg 그건 한국식 일방적인 국뽕소설이고요 당시 일본이 백제 밑에 있던 적이 없습니다 ^^ 다수의 기록에서요 백제가 일본에 바친 선물이거나 조공 둘중에 하나라고 보는게 맞다봅니다 기록으로 비추어 보면 칼을 받친 것은 백제가 일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받친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백제가 일본에 진상한 것이라면 왜왕(倭王) 이라고는 안적었겠지, 낮춰부르는 후왕이라고 까지 적어놓았으니 당연히 하사품. 칠지도 내용대로 일본천황이 아니라 왜왕으로 부르는게 맞는 말!!
왜 자체가,.백제가세운나라인데...
하사품이겟지
칠지도는 왜완贊(근구수왕)이 왜왕旨(모노노베씨)에게 선물로 준칼 이 칼이 이소노카미 신궁에서 발견된거는 이소노가미가 왜왕지의 사당이고 왜왕지는 야마토의 군사담당 관리였기 때문임
이런것이 진정한 방송이고, 이게 시청자의 품격을 올려주는 프로그램인기라!! 다시 부활좀 하소.
한국인으로써 한반도 역사 늦게라도 좀 알아가도록!!
구냥 제후국이다 하사햇다 라고 써잇는데 .... 뭐가 미스테리인거지 ..? 백제가 본국이고 지방에 친척들이 다스리게 햇던가같은데
서양판타지로 대입하면 간단히 이해됨.
주군이 기사에게 검을 하사하며 신하로 인정하지.
게임 세키로에도 나옴
일본의 철지도는 백제 금 제작 기술의 결과이죠.
칠지도에 녹이 켜켜이 쌓였다니 천황 보물창고 관리자는 1000+년 동안 직무태만 했구만.
검 본체에 하사한다 써있는데 당연히 하사품이지. 백제가 대륙에 있었던건 기록에 나오는 팩트. 여러 지방 정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유신태대각간 백제에서 채취한 철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동진이 제후국에게 선물?ㅋㅋ
@@김유신태대각간애지간히 할 짓도 없나보네
@@석이-r8f연호도 달라요. 칠지도가 부식돼서 연호 한 글자가 파악되지 않고있습니다. 그런데 동진의 연호는 태화(太和)인데 칠지도의 연호는 태□(泰□)입니다. 애초에 엄연히 다른 글자이나 서로 뜻이 통하는 글자이고 극히 일부 실제로 두 한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경우도 발견됐지만 설령 같은 의미라 하더라도 무령왕릉 묘지석을 보면 적어도 6세기 초반까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음이 밝혀졌습니다. 즉, 동진이 제후국에 하사한 것이라면 동진에서 나오는 철을 쓰지 백제의 철을 쓸 이유도 없고 결정적으로 연호도 다릅니다.
그건 백제가 중국놈이 세운 나라라는 이야기.
지구촌 어느나라 역사서에 바다건너 먼 다른 나라 역사를 저리도 자세히 나열한거 보셨나요?
일본서기인지 백제서기인지 그 내용이 구분이 되나요? 일본이 왜 백제역사를 저리도 자세히 기슬하나요
바다건너 먼나라 백제 역사를 일본인들이 섬에서 어찌 저리 자세히 안다는 말인가요? 저게 말이됩니까?
애시당초 주어만 거꾸러 쓴거고 일본서기에도 씌여있잖아. 뭘 고민하노
모방의 역사
허구의 역사
세계최고 자기들만의 일본역사
과연 믿을수 있나?
지나가던 개가 웃을일이다 ㅎㅎ
아니 칼을 준다는건
위에 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주는게 당연한거아닌가
미국은 2차 대전 때 일본에게 살려 달라며 원폭을 줬다.
교토국제고 교가에 동해바다 건너 야마도땅 나오는데 때맞춰 나오네.
그런데 2절은 서해가 됩니다. 마냥 국뽕에 취해잇을 때가 아니에요. 그 노래는 야마토가 제1 도래인이듯이 제2의 도래인 일본이 되자라는 뜻으로 해석될수도 잇으니까요...
그래 이렇게라도 정신승리해야지. 일본에게 식민지로써 정복당한 팩트에 대한 마스터베이션하니 기분좋니 조선인들아?
七支(枝)刀=蛇行剣(專示後世,倭侯王)을 비롯 韓日古代史는 韓=倭, 倭=韓(から)の의 同等(兄弟国)한 歴史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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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팬열도에 7세기까지 도성/왕성이 없었다는 것은 재팬 학자 전체도 인정한 공인된 사실입니다. (재팬열도 최초의 도성/왕성, 후지와라교, 등원경, 7세기 후반) 재팬열도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할 정도의 강력한 가 있었다면, 도성/왕성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따라서 칠지도 등에 등장하는 은 입니다. 총독 관저 정도의 건물은 있는데, 중요한 것이 이 바뀔 때마다
☘ 하지만, 천황이 아닌 재팬열도 총독인 이라면 설명이 가능합니다. 는 를 분석하셔서 '이 의 임기가 초기 3년에서 후기 7년으로 변화한다'라고 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유신태대각간 저자도 없고, 필사본인, 판타지 소설 일본서기 파이팅~
@@김유신태대각간 ☘ 이 이번엔 또 이란 주제로 답글을 달았기 때문에 ▶ 왜 가 판타지 소설인지 ◀ 를 아래에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김유신태대각간 1☘ 에 의하면, CE 5세기에 讚, 珍(彌), 濟, 興, 武라는 이 등장하는데, 이들 왜왕의 계보가 와 에 나오는 천황의 계보와 일치하지 않고 있어 현재까지 이들 을 와 의 어느 천황에 비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자들은 재팬열도가 백제의 행정구역이었음을 숨기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유신태대각간 2☘ 그래서 이들 의 혈통관계에 대해서도 讚 珍(彌)과 濟興武가 별 개의 왕통이라는 설이 제시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왕통이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백제의 임명직인데 어떻게 왕의 계통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소위 중 武가 CE 478년 송에 표문을 보냈습니다. 표문의 내용은...(참고로 CE 475 개로왕 사망, CE 477 문주왕 사망, CE 477 곤지왕 사망)
상납
백제의 진왕
즉 삼한왕이 칠지도를 하사한다
엠파이어백제
군사가 5만이상되는
요서 조선성 대방고지에
갯뻘을 개척한 나라
백만대군을 거느린
나라
구태 간위거 마여 의라 의려 여현 여울
여구 여휘 인덕 전지 비유 개로 문주 동성 무령 성왕...
이분들이 백제왕이시고
그 앞에는 삼한왕이시다
엥? 박민의 kbs아냐? 이거 영상 내려가겠구만. 감히 대일본제국의 과거를 폄훼한 죄
너네들이 다 중 일......
태워 버렸잖아.....
@@김유신태대각간 제 말은...중.,.,알..,.
있을수 있을까 해서.....
다........
@@김유신태대각간 제 말은 저 넘들 없었으면...
뭉쿨합니다.....
좋은 일본문화 많이 받아들이자 🇯🇵
@@豊田大中-r8z 좋은 문화없음. 속을 알수없고 혼자 있으려고 하는 이상한 문화
성진문화? ㅋㅋㅋ
백제는 일본에 왕자를 인질로 갖다 받치고 그 인질생활하던 왕자가 백제로 와서 왕이 되고 일본에
군사력도 빌리던 나라인데 이것도 우리측 삼국사기 기록인데 간단한걸 부정하고 역사조작한다고 애쓴다
니혼진데스까?
공부 좀 더 하시길.
1. 칠지도 제작 시기로 유력한 4세기 후반은 백제 국력이 최상이었고 일본 열도 야마토 정권은 이제 막 성장 중이었음.
2. 4세기 말 이후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약화되던 시기에 왜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려 함. 그 과정에서 왕족을 파견함. 왜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고 백제가 상황이 급했기에 왕족들을 파견함.
3.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왜에게 군사적인 지원을 원했고, 왜는 백제에게 문물 교류를 원했음. 이 과정에서 백제가 일본에게 유학과 불교를 전한 사실은 이미 기록으로 있음.
4. 어쨌든 칠지도 자체는 백제 국력이 최상이던 시절에 제작되었고 명문 자체가 아랫 사람에게 쓰는 말투임.
인질이 천황이 되냐? ㅋㅋㅋ 천황이 된 백제왕자들 검색해보슈 ㅋㅋㅋ
@@start5903-pr7lg 그건 한국식 일방적인 국뽕소설이고요 당시 일본이 백제 밑에 있던 적이 없습니다 ^^ 다수의 기록에서요 백제가 일본에 바친 선물이거나 조공 둘중에 하나라고 보는게 맞다봅니다 기록으로 비추어 보면 칼을 받친 것은 백제가 일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받친것입니다
@@Ross6437-k2w 천황이 된 백제왕자는 니덜 국뽕소설이고요 그런 기록은 없고요 ㅋㅋ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 있습니다요 백제왕자들이 일본에서 인질 생활하던거 그 인질생활하던 백제왕자가 돌아와서 백제왕이 되었던거 역사 사기를 쳐도 이정도면 너무 뻔뻔하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