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방송도 중요하지만 한국 교과서 감시가 훨씬 더 중요한데.... 저 칠지도는 중학생 정도만 돼도 새겨진 글자(한자)풀이를 해 보면 우리 근초고왕이 왜왕을 제후로 삼아 '후왕'이라 칭하며 칼을 하사하고 '후세에 전시하라'는 말까지 남긴 게 확실하거늘... 우리 교과서 8종중 단 하나만 '백제가 일본에 하사'했다'고 썼음.. 나머지 7개 중 3종은 오히려 일본의 왜곡과 유사한 뉘앙스, 4종은 중립적 묘사....ㅠㅠ 미친 사학자 매국노들임...ㅠㅠ 언론 토왜들은 눈 딱 감고 방조질...ㄷㄷ
칠지도 명문 • 뒷면 27자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 앞면 34자 泰△四年五月十六日 丙午正陽造百練銕七支刀 出(生)辟百兵宜供供侯王 △△△△(作)祥 태△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 날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가 만들었다. (△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글자입니다.) 이건 왜곡이 불가능 .... 왜왕 지 에게 줄만하다 . 전시후세 ..후세에 널리 보이고 전하라 백제 왕도 아니고 왕세자가 당시왜왕의 이름까지 부르며 하대 명령문으로 버젓히 적혀있는데도 왜곡 할려고 오만가지 수단 다 찾다찾다 답이 안나오자 무슨 중국에서 백제통해서 내려준거라고 하고 우김
모든 문물의 전파는 하방이 자연스럽다. 원재료인 철정을 한반도로부터 수입해야할 정도로 초보적인 제철기술조차 확립되지 못했던 왜에게 칠지도를 바쳤다?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논리전개. 더구나 백제사상 가장 강력했던 정복군주였던 근초고왕때가 아니던가. 22담로 중 하나였던 왜왕에게 하사했다는 해석이 지극히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명문의 몇가지 불명확한 부분을 들어 역사자체를 왜곡하는 왜인들의 처사가 끔찍할 따름이다. 그리고 실제 사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왜인들의 한반도 컴플렉스가 딱하다. 독도를 저들의 영토라고 억지를 불리고 있는 저들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의 변화도 없다. 왜국과 왜인들은 전혀 신뢰하지 못할 종족이라는 신숙주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된다.
백제가 후왕이라고 인정할정도의 국가였던 왜의 사신 몰골이 저정도라면 후왕이라는 칭호는 다른 의미로 칭해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면 왜의 사신이 정식 왜가 아닌 다른 일본 부속 지역의 사신을 왜의 사신이라 칭했을 수도 있고요. 그땐 일본이 통일되기 전이었으니... 암만그래도 사신은 그나라의 얼굴인데 왕이 다스리는 국가의 사신이 천쪼가리 뒤집어 쓰고 왔다고 보긴 그렇지 않나요? 저런 복장이면 아주 남쪽 지역 오키나와 쪽 사신 같기도 하고요.
고두심씨가 역사 다큐멘터리를 진행한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옵니다. 하지만 낙랑, 대방등 한사군의 위치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식민사관으로 축소한 한국의 역사를 한반도로 국한하여 한반도에 있다고 단정한 자체가 엉터리입니다. 낙랑, 대방은 한반도의 백제가 아니라, 요동이나 요서인 만리장성과 인접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한성 백제에서 발견된 중국의 유물은 백제가 22개의 담로의 일부인 요동지역에 진출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기도 하고 전쟁도 하면서, 입수한 물건중의 일부입니다. 그것을 한반도에서 축출된 한사군의 중국인들에게서 입수하였다고 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방영한 것입니다. 백제가 자신의 담로중의 산둥반도에서 중국과 교역을 통하여 한성백제에 물건을 중국의 물건를 입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이상하게 한반도에 있지도 아니한 한사군에서 중국인에게 중국물건을 입수하여 고분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점령하고 한국의 상고사를 거짓말로 지어낸 일본의 식민지 역사학자의 거짓이론입니다.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으로 거의 한국인들이 백제는 의자왕의 부패한 생활로 낙화암 3천궁녀로 백제의 마지막이라고 알고 있지만, 백제는 22개의 담로의 제후국을 일본, 중국, 베트남까지 가진 해상 지역을 연결한 강한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요동 지역에서 싸운 기록이 중국의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 백제가 당나라를 점령하였다면, 우리는 지금 좁은 한반도에 갇힌 좁은 영토의 국가가 아니였을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22담로의 제후는 모두 백제의 왕족후예들인데, 왜에 방문한 백제의 왕과 인척은 당연히 왜왕의 아버지나 숙부인데 반갑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을 방송에서 마치 마치 백제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왜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바로 왜는 백제의 일부인 것입니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註 008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註 009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註 010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註 031와 대수(帶水)註 032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 : 자 한서지리지 낙랑군편을 보면 패수란 강물의 상류에 낙랑군 패수현이 있는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빠진다 대수란 강물의 상류엔 함자현이 있고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대방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란 강물은 탄열현에서 나와 서쪽으로 점제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의 하구는 열구라 불렸음이 사기 조선전 한서 조선전 후한서군국지에 나오고 낙랑군의 열구현이 있었다. 한나라 침공군이 고조선을 칠 때 패수의 상류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왕검성에 이르고 한나라 수군은 열수의 하구 열구에 상륙해 곧장 왕검성으로 진격하다 우거왕에게 패했다.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이병도 학설 "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조선총독부 > 1925년 6월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 1946년 3월 창설된 국사관(國史館) >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1. 일제 식민사학자 : 요시다 도고, 쓰다 쇼우키치, 이마니시 류, 구로이타 가쓰미, 이나바 이와키치 2. 조선사 편수회 고문/ 대표인물 : 이완용, 권중현, 박영효 / 최남선 이능화 3. 1세대: 이병도, 신석호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註 008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註 009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註 010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註 031와 대수(帶水)註 032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 : 자 한서지리지 낙랑군편을 보면 패수란 강물의 상류에 낙랑군 패수현이 있는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빠진다 대수란 강물의 상류엔 함자현이 있고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대방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란 강물은 탄열현에서 나와 서쪽으로 점제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의 하구는 열구라 불렸음이 사기 조선전 한서 조선전 후한서군국지에 나오고 낙랑군의 열구현이 있었다. 한나라 침공군이 고조선을 칠 때 패수의 상류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왕검성에 이르고 한나라 수군은 열수의 하구 열구에 상륙해 곧장 왕검성으로 진격하다 우거왕에게 패했다.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이소노가미라는 이름을 분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소노가미'를 '이소', ' 노', '가미'로 분리하여 분석해야 합니다. 측 "이소"는 백제근초고이다. 근초고의 이름이 '요속일'인데 '속'은 '소고 '풀어' '근초고'를 의미하고, '일'은 '왕'을 뜻하며 '가미'는 일어의 '신'이어 합하면 '최고의 신의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요속일'은 백제 근초고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근초고가 신궁에 진좌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당시 백제 근초고가 고대일본을 침략할 때 왜에 있는 가라 세력에게 고베/오사카지역에서 사망했으므로 후세에 이소노가미신궁에 진좌한 것이다. 저세한 내용은 본인이 저술한 학마을출판사 발행의 "고대일본은 백제가 지배했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읍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역사가 거짓인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음. 나라가 나라에 영향을 받을 때는 일반적으로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백제가 일본에 영향을 끼친 건 현대까지도 언어에 (쿠다라 나이 : 백제의 것이 아니다 : 가치없다)남아 있는데 일본이 백제에 영향을 끼친 건 찾아볼 수가 없죠.
고구려의 영토가 잘못되었다 서쪽으로 북경까지였으며 북쪽으로는 내몽골 시라무랜강을넘어섰다 그리고 고구려가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평양에 한사군이 그럼 한사군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 포위된 상태란말인데 고구려가 가로막혀있는데 한나라가 어떻게 관리했을까 비행기타고 ?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는것은 사실이다 나머지 일본서기를 인용한것은 모두 사기다
사랑하는 훌륭한 코리언 여러분!! 이조실록(조선왕조실록 원본) 세종편에 이런 기록이있습니다."한글은 이세종(이도)이 만든것이 아니라 옛고려의 큰들을 본 따 만든것이다" 놀라운 기록 입니다.왜? 사관은 굳이 이런 기록을 남겨야 했을까요? 왜 이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당시,이조실록을 기록했던 담당 사관은,중국황제가 직접 임명했기때문에 조선왕도 못건드렸습니다. 그만큼 조선왕조내에서는 왕보다 위에 있었다고 할수있습니다.그런데 당시 세종은 한글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전국방방곡곡에 방을 붙이고 선전하며 심지어 해례본이란걸만들어 직접 창제한것처럼 속이고있었습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실록담담 사관은 후세에 이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그런데 이조실록을 읽어본 국내역사학자는 한명도 없다는 사실..다만,다른사람이 일부분만 읽어서 이 사실을 숨기는데만 급급해왔습니다.여러분들 더 세종이 한글창제한걸로 알고들계시죠? 고려글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시죠.서울대 사학교수에게 이 부분에 대해 물어봤더니 생전 처음듣는다며 사실이냐고 되려 묻더라구요...아~ 아~ 수능암기교육제도하의 한국인들! 그리고 한국사학자들 모두 우리역사를 절반이상 잘못배워왔스습니다.우리는 이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이런식으로 현재 한국사와 같이 중국과 조선왕조 중심의 비객관적으로 만들어진 한국사 부분이 절반이 넘는 부분들(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분단/위화도회군등) 이렇게 삐뚤어진 내용의 국사인 韓국사로 계속 암기교육으로 세습시키는 한 우리한국인들...남욕 남탓 생활과 내로남불 정신은 고쳐질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 근본인 가짜韓국사(반짱깨 韓국사 상태)의 진실을 이렇게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참역사 펌)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註 008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註 009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註 010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註 031와 대수(帶水)註 032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 : 자 한서지리지 낙랑군편을 보면 패수란 강물의 상류에 낙랑군 패수현이 있는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빠진다 대수란 강물의 상류엔 함자현이 있고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대방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란 강물은 탄열현에서 나와 서쪽으로 점제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의 하구는 열구라 불렸음이 사기 조선전 한서 조선전 후한서군국지에 나오고 낙랑군의 열구현이 있었다. 한나라 침공군이 고조선을 칠 때 패수의 상류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왕검성에 이르고 한나라 수군은 열수의 하구 열구에 상륙해 곧장 왕검성으로 진격하다 우거왕에게 패했다.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예전 역사스페셜은 참 다양하고 역사적 지평이 넓었다!
왜인들이 전시후세하라는 말을 깊이 새겨듣고 지금에까지 저 칼을 고이 보존해서 보여주니, 얼마나 말을 잘 들은 것인가....!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너의 주장대로면 지금 2019년인 서기를 쓰는 나라들은 유대인의 후손이고 괴뢰국들인 거임?
그러고 보니 근초고황제님의 어명을 받들고 있네요
잘하고 있어 왜왕 칠지도 쭉 후세에 전하라
3
왜!!인들은 왜?라고 묻지않고 말을 잘 듣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왜놈들이라고 불렀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유물을 도굴해 일본에 많이 팔아먹던 도굴자들의 문제가 자주 뉴스에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일본은 부강한 나라였고 우리는 이제 겨우 먹고 살 걱정을 덜기 시작 했을 때니...이제 그 유물들은 일본의 역사가 되어있겠군요 ..
이런 좋은 영상은 광고 없애서 편하게 다들 볼수 있도록 해주세요
일본의 천황이 백제인이였다는걸 생각하면 일본서기를 백제서기로 이해하면 대충 내용이 맞아떨어지지 않나요? 임나일본부설은 백제의 가야에 대한 영향력이고, 일본서기에 남만을 정벌하여 백제에 주었다는 표현은 백제가 남부지역을 정벌했다는 얘기고
이런 방송도 중요하지만 한국 교과서 감시가 훨씬 더 중요한데....
저 칠지도는 중학생 정도만 돼도 새겨진 글자(한자)풀이를 해 보면 우리 근초고왕이 왜왕을 제후로 삼아 '후왕'이라 칭하며 칼을 하사하고 '후세에 전시하라'는 말까지 남긴 게 확실하거늘...
우리 교과서 8종중 단 하나만
'백제가 일본에 하사'했다'고 썼음..
나머지 7개 중 3종은 오히려 일본의 왜곡과 유사한 뉘앙스, 4종은 중립적 묘사....ㅠㅠ
미친 사학자 매국노들임...ㅠㅠ
언론 토왜들은 눈 딱 감고 방조질...ㄷㄷ
국사를 논하는 본인이 함부로 사용하는 토왜 단어를 생각해 보세요. 후에 토왜라는 말 자체가 일본인 거주했다는 말로 변질 되지는 않을지. 누가 토왜 프레임으로 이득 보는지.
어느 신하가 황제에게 칼을 진상하면서 자손대대로 물려주라고 말하냐? 맞아 죽을 소리지... 황제가 신하에게 하사하니...자손대대로 물려주라고 하는거지.... 신하가 진상을 할때는 아무소리 안하고 알아서 처분하십시요 하고 바치는거야....
ㅂㅂㅂ
내용잘듣고있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두심선생님.
너무 멋지세요.
일본은 고대사컴플렉스 가 있을수밖에
칠지도 ??일곱칠 가지지 일곱개 가지중 중앙 가장 높은 가지는 백제왕이고
여섯개 가지는 백제왕이 형제나 왕자 공신 장군 등을 보내서 다스리던 제후의 나라가 아니었을까요???
북두칠성 입니다.
칠성할머니 북두칠성과 함께 내려온
하느님 =마고할머니
애국가에 하느님
그리고 궁금한사람은 마고할머니 유튜브치셈
우리나라 진짜 무당존재 이유입니다.
@露積成海 .
왜 가 왜 우리의 선조야? 도대체 왜 왜??? ㅋㅋㅋㅋㅋ
말을 못배웠나?? ㅋㅋ
우리 (한국)가 왜의 선조지.
왜가 우리의 선조라니
조지고싶네 ㅋㅋㅋ
말을 배우는 중인 일본사람이 쓴 글인가? ㅋㅋ
역사공부 단디하거라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칠지도랑 똑같은 거 경주에서 출토되었죠
근데 강단사학하는 애들이 근데 거기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이 사실만 봐도 당시 상황이 그려지는데 역시 강단식민사학계한텐 무리겠죠
칠지도 명문
• 뒷면 27자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 앞면 34자
泰△四年五月十六日
丙午正陽造百練銕七支刀
出(生)辟百兵宜供供侯王
△△△△(作)祥
태△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 날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가 만들었다.
(△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글자입니다.)
이건 왜곡이 불가능 ....
왜왕 지 에게 줄만하다 .
전시후세 ..후세에 널리 보이고 전하라
백제 왕도 아니고 왕세자가 당시왜왕의 이름까지 부르며 하대 명령문으로 버젓히 적혀있는데도 왜곡 할려고 오만가지 수단 다 찾다찾다 답이 안나오자 무슨 중국에서 백제통해서 내려준거라고 하고 우김
더 중요한 게....
우리 한국 교과서 8종중 고작 1종만 , '하사''라고 정확히 표기...
나머지 7종 중 3종은 일본 왜곡 동조 뉘앙스, 4종은 애써 중립적...
토왜 사학자 놈들이 더 심각함....ㅠㅠ
미친 저 지자는 임명한다는거지 어케 이름이 지야..저걸 그렇게 해석한다는건 고문에 대해서 무지하다은증거
생각좀해보쇼..왕세자가이런걸만들면 반역임 백제왕이 백제왕세자를 왜왕으로 임명했단거임
칠지도는 백제와 7개의 위성국가와 도시란 뜻입니다...즉 왜와 중국에 있던 위성 도시 제후에게 임명의 뜻을 가진 검입니다...우리나라 장군들 임명할때 장군검을 하사하듣...
고두심 선생님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상징물을 보내주고 잘 다스리라 하는 것은 왕이 제후들에게 하는 것이고 칠지도는 담로에게 보내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결국 일본왕은 백제의 담로 였던 것이다.
1
일본은 조상들부터 한반도에 자격지심이 있는거 같음...핏속에 계속 흐르고 있음 한반도를 이기고 싶아하는 DNA
아님 사실은 한반도를 사랑하는거임
부모와 같은 나라한테 약탈하고 죽이고 했으니.... 저건 천벌 받을거고 앞으로 망하게 될거에요
까불지 말라고 던져줬더니 뭐? 진상품으로 바친거라고?
고두심 선생님 너어무 아름다우십니다.. ㅠ,.ㅠ
칠지도, 백제의 유물이군. 그마저도 조선 침략의 도구로 이용했지만......!
칠지도 관련 내용을 지켜보다 보면 백제는 항상 신비스런 느낌입니다.
혹시 [그것이 알고싶다. 레이건 대통령이 1985년에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으면...
재미있네. 백제왕이 왜왕에게. 후세에 전하여 보여줘라. 하사품인 것이 분명하군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게 지들 입장에선 잃어버린 선조의 땅인 백제를 찾으러 온거임?
모든 문물의 전파는 하방이 자연스럽다. 원재료인 철정을 한반도로부터 수입해야할 정도로 초보적인 제철기술조차 확립되지 못했던 왜에게 칠지도를 바쳤다?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논리전개. 더구나 백제사상 가장 강력했던 정복군주였던 근초고왕때가 아니던가. 22담로 중 하나였던 왜왕에게 하사했다는 해석이 지극히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명문의 몇가지 불명확한 부분을 들어 역사자체를 왜곡하는 왜인들의 처사가 끔찍할 따름이다. 그리고 실제 사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왜인들의 한반도 컴플렉스가 딱하다. 독도를 저들의 영토라고 억지를 불리고 있는 저들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의 변화도 없다. 왜국과 왜인들은 전혀 신뢰하지 못할 종족이라는 신숙주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된다.
크 칠지도 간지긴 간지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아니근데요 제가 초딩이지만 님 생각이이해가안되네요? 저분은그냥 멋지다고한거뿐인데 왜 그런소리를 하시는지?.
저때 완전히 쓸어버리고 정복했어야 되는데!
옳으신 말씀 입니다 특히 배 기술 만큼은 전해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주제에 지들이 무슨 수로 가야와 신라를 공격해서 백제에 주냐 그냥 지들이 용병일 뿐이지
식민지 백성이 전쟁터에 끌려 갔을 뿐
저때 상태가 정복해 놓은 식민지 분국입니다. 그 식민지가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구요.
마치 미국이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여 다른 나라가 된 것 처럼.
@露積成海 식민지는 그 대상이 국가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식민하는 땅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임. 그 땅이 주인이 있던 땅이든 주인 없는 무주공산 미개척지든 식민하는 땅은 모두 식민지임.
@@dolgum826 니같은 논리가 뭔줄아냐? 아편전쟁때 영국에게 개박살 난 중국이,화약의 발상지는 중국이다 라고 정신승리 하는거야. 아직도 현실은 인식못하고 1천년지난 역사적 사실에 정신딸잡는거
@@ttggvvyyhhbb5266 멍청한 놈이 뭔 개소리냐?
백제가 후왕이라고 인정할정도의 국가였던 왜의 사신 몰골이 저정도라면 후왕이라는 칭호는 다른 의미로 칭해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면 왜의 사신이 정식 왜가 아닌 다른 일본 부속 지역의 사신을 왜의 사신이라 칭했을 수도 있고요. 그땐 일본이 통일되기 전이었으니...
암만그래도 사신은 그나라의 얼굴인데 왕이 다스리는 국가의 사신이 천쪼가리 뒤집어 쓰고 왔다고 보긴 그렇지 않나요?
저런 복장이면 아주 남쪽 지역 오키나와 쪽 사신 같기도 하고요.
고두심씨가 역사 다큐멘터리를 진행한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옵니다.
하지만 낙랑, 대방등 한사군의 위치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식민사관으로 축소한 한국의 역사를 한반도로 국한하여 한반도에 있다고 단정한 자체가 엉터리입니다.
낙랑, 대방은 한반도의 백제가 아니라, 요동이나 요서인 만리장성과 인접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한성 백제에서 발견된 중국의 유물은 백제가 22개의 담로의 일부인 요동지역에 진출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기도 하고 전쟁도 하면서, 입수한 물건중의 일부입니다. 그것을 한반도에서 축출된 한사군의 중국인들에게서 입수하였다고 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방영한 것입니다. 백제가 자신의 담로중의 산둥반도에서 중국과 교역을 통하여 한성백제에 물건을 중국의 물건를 입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이상하게 한반도에 있지도 아니한 한사군에서 중국인에게 중국물건을 입수하여 고분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점령하고 한국의 상고사를 거짓말로 지어낸 일본의 식민지 역사학자의 거짓이론입니다.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으로 거의 한국인들이 백제는 의자왕의 부패한 생활로 낙화암 3천궁녀로 백제의 마지막이라고 알고 있지만, 백제는 22개의 담로의 제후국을 일본, 중국, 베트남까지 가진 해상 지역을 연결한 강한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요동 지역에서 싸운 기록이 중국의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 백제가 당나라를 점령하였다면, 우리는 지금 좁은 한반도에 갇힌 좁은 영토의 국가가 아니였을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22담로의 제후는 모두 백제의 왕족후예들인데, 왜에 방문한 백제의 왕과 인척은 당연히 왜왕의 아버지나 숙부인데 반갑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을 방송에서 마치 마치 백제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왜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바로 왜는 백제의 일부인 것입니다.
동진도 백제의 땅이었는데 그것도모르고ᆢ그당시는 한중일의 구분이 없었고 백제 고구려 등등 각 나라들이 널려있었다고한다 4세기당시까지 백제라는 나라는 동아시아의 최고나라가있었고 백제가 자신의 담로제후에게 열도를 6개로 통일시켜 백제가 지배하기 쉽게 정리하라는 의미이다
이제알겠다 한성백제가 동아시아 지배세력이었는데 일제시대때 자료들을 다 없앴으나 다시 드러나는군. 일본은7세기 즉 백제가 망한후 일본으로 태어난거군.백제가 망하니 백제왕을 중심으로 새나라형태를 세운거네
중국의 동북공정왜곡도 다루어주세요 ~중공천멸!
틀린 고증이다...상감은 고조선에서 유래한것이다...
웃기는 나라. 백제의 것이 왜 섬기는 신이 되겠는가? 바보들. 하사품을 가지고....
ㄹㅇ 조공받은걸 저리 귀하게 대하냐 ㅋㅋㅋ
역사는.남에.나라에.있는데.유물은.이.나라에.있으니.어찌.진정한.역사를.찾으리오.
33:27 잘못된 한사군 위치다
한사군은 북경 주변에 있었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註 008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註 009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註 010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註 031와 대수(帶水)註 032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 : 자 한서지리지 낙랑군편을 보면 패수란 강물의 상류에 낙랑군 패수현이 있는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빠진다 대수란 강물의 상류엔 함자현이 있고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대방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란 강물은 탄열현에서 나와 서쪽으로 점제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의 하구는 열구라 불렸음이 사기 조선전 한서 조선전 후한서군국지에 나오고 낙랑군의 열구현이 있었다. 한나라 침공군이 고조선을 칠 때 패수의 상류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왕검성에 이르고 한나라 수군은 열수의 하구 열구에 상륙해 곧장 왕검성으로 진격하다 우거왕에게 패했다.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yoshitsune1184 q
이병도 학설 "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조선총독부 > 1925년 6월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 1946년 3월 창설된 국사관(國史館) >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1. 일제 식민사학자
: 요시다 도고, 쓰다 쇼우키치, 이마니시 류, 구로이타 가쓰미, 이나바 이와키치
2. 조선사 편수회 고문/ 대표인물
: 이완용, 권중현, 박영효 / 최남선 이능화
3. 1세대: 이병도, 신석호
@@sunnyan151 문제는 이병도 전에도 조선시대 선비들은 낙랑군을 평양 대방군을 황해도라 봤다.
@@sunnyan151 그럼 조선시대 선비들도 전부 식민사학자냐
당시 왜는 하나의 나라가 성립이 안되고 다수의 조그만 나라가 여기저기 각자 놀고 있었고 야마토 왜가 가장 힘이 좋았지 왜냐 백제가 지원하고 있었지 정치,문화적으로 당시에 백제왕족이 가서 총독으로 왜왕을 통제하고 있었을거야.
일본국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보면
금방 알 수가 있음.
일본국에 딱 1번만 가봐도 금방 알게 됨.
(저는 2번 가봤음)
일본에서 1년 살았는데 무엇을 알게 된다는 말인가요?
고두심 선생님은 어찌 이리 아름다우실 수 있는지요.정말 대단한 미인이십니다.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 이건 속국의 왕이 할소리가 아니죠
고로 백제의 왕이 더 위라는
역시 대한민국 이야ㅡ!!
칠지도는 일곱개의 줄기.
일곱명의 형제.
한반도와의 혈연관계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낙랑 대방이 북경근처 요동지역에 있었다는 사실, 중국 산동포함 동해안에 백제가 진출했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함
한사군은한반도에 없었다는데 왜 공영방송에 서 한반도에있었다고하나요
백제! 그리고 온조,,, 만일 고주몽과 이복형제이나마 형제간의 우애가 상하지 않고, 고구려를 더욱 강성케 했더라면,,, 백제에 의해 고구려 역시 운명은 다르지 않을 수 있었잖을 지,,,
백제는 7곳을 지배 했던 대 제국, 중국일부와 서일본도 백제의 땅, 고구려와 백제는 서일본, 중국을 지배 하였다. 이들과 신라는 고조선의 후예들이다.
에이~신라는 고조선 후예가 아니쥬~
왜왕을 후왕(侯王)이라 표현했는데 백제에서 왜를 상국으로 생각했다면 이런표현을 안썼겠지.
새싹이 나오는 북방유목족의 고유문양이죠 , 싹이3개 곱하기 3 , 지배층의 북방에서 남으로 결국 열도로,
그리고 한사군 저건 중국사서도 낙랑군이 북경쪽이라고 정확히 말하고 있는데 뭐임?
개똥 삼국사기. 신라는 우리 민족사에 씻지못할 배신감과 불명에 스럼을 안겨주었다!!!! 삼국사기의 원천이 신라에서 나왔다는것이 우리 민족의 슬픔이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註 008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註 009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註 010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註 031와 대수(帶水)註 032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 : 자 한서지리지 낙랑군편을 보면 패수란 강물의 상류에 낙랑군 패수현이 있는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빠진다 대수란 강물의 상류엔 함자현이 있고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대방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란 강물은 탄열현에서 나와 서쪽으로 점제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의 하구는 열구라 불렸음이 사기 조선전 한서 조선전 후한서군국지에 나오고 낙랑군의 열구현이 있었다. 한나라 침공군이 고조선을 칠 때 패수의 상류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왕검성에 이르고 한나라 수군은 열수의 하구 열구에 상륙해 곧장 왕검성으로 진격하다 우거왕에게 패했다.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북경 그러니까 베이징에 낙랑군이 있다는 중국 사서는 서기 432년 낙랑군이 베이징으로 이사한 후의 기록이다
@@yoshitsune1184 월급은 잘나오냐?
곳곳에 독버섯을 심고 다니네
이늠추적해보면 동북공정관련된 자료 찼아다니며 분탕질댓글 알바로 추정됨
차단들 하세요
왜왕은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
왜왕이 은혜를 후세에 전하겟습니다. 이런말입니다 .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ㅋㅋㅋ이아저씨 병이네 ㅋㅋㅋ 여기저기 똑같은 댓글쓰시네 ㅋㅋ
대륙삼국이인데 지도는한반도에만 우리나라로 나와있네 천문기록은 몽골 중국에 적혀있는데
어째서 목숨을 망치는 전쟁으로 꼭 나라가 병합되어야 햇는지 궁금하다
백제보다는 가야가 먼저 일본의 주인이었음 ㅋㅋ
가야사가 한일고대사의 열쇠고
외국석학들은 이미 다 인정중
국내 친일강단사학만 끝가지 모르쇠
칠지도나 칠자경은 당대에 선진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백제가 그런 물건을 만들어 왜에 보냈다고 한다면 백제가 선진국이고 왜는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진국이 후진국의 식민지라고 할 수 있는가
선진국인 백제가 후진국인 왜에 보낸 물건이지
당연 왜가 백제의 식민국이지
좋아오
일본서기는 오노야스마로(태안만려)에 의해 출간되었고 그는 백제에서 일본에 이주한 백제인이었다.
고두심은 말도 똑똑하고 재색이 겸비한 출중한 여걸이다. 제주도가 고향이라는데 제주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어떤 미친 신하가 왕한테 칼을 선물해 ㅋㅋㅋ 그리고 선넘게 물건주면서 후세에 보여라 이런 말을 하나 ㅋㅋㅋ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닌 요동지역에 있었다.
이 프로그램도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에 매몰되어 있구나.
칠지도ㅡ뜻 일곱을 지탱하여 베는 것ㅡ이 세상에 칠지도를 가르치는 물건이 딱 하나 있었지
당시 왜가 백제의 제후국이라면 백제왕자는 어째서 왜로 볼모로 갔는가?
그리고 일본서기가 허구라고 하면 같은 책에 적혀있는 왕인이 문물을 전해주었다는 사실도 거짓인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미친놈이 많네
@@JDSIM-jl1uf 사료로 반박할 생각을 않고 욕부터 박는거보니 한국스럽네ㅋㅋㅋ
한반도에 낙랑과 대방군이 있다는 것은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인 것 같음
중국의 한의 군현이 한반도 내부에 중국과 떨어져 있다는 것은 도무지 역사적 경험에 없는 것임
😃👍7가지는 북두칠성을 형상화 한것이 아닐까요!~누루황의 황색깃발은 백제가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사슴뿔!~북쪽에서 왔다는 증거?~닭머리 주전자는 중국 계림지역이 신라?백제!
하사품이맟을퉂하고 !!!
저가어릴적에 삼촌오셌다고해서인사한번하고... 그분은 어머니삼촌벌돼신분이일본에서 평생을 칼만드는 대장간에서일하시다 눈을못보게돼었다는말씀에 한번 뵛고 그이후에는못뵙었어요 .
일본서기 자체가 소설 허구인데 그걸 믿냐ㅋㅋ
한사군의 위치는 요서인데, 여기 왜 식민사관을 받들어 평양위치로 나오나요??
한국 지배층에 호적세탁한
중국인이 수십만명임
언론이 철저히 쉬쉬해왔음
중국돈 쳐먹고
첨볼때 딱 봤을때
저거 미국남구 선인장같다고 느꼈는데
선인장 영상인가?하고 들어왔는데 칠지도였엌ㅋㅋㅋㅋㅋ
후왕이라 한것은 백제가 황제라고 한 것은 아니다. 담로를 다스리는자가 후왕이다.
후왕중 왜에 있는 후왕이라는 말
칼을 준것은 판권 즉 독립된 관할권을 준다는 것을 말한것
근초고왕 시절 만든 칠지도를 남용하네
오디오 왜 울림?
저도 울리네요 ㅎ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긋지긋한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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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참대단하네요
칠지도의 비밀은 왜가 백제의 7개 식민지중 하나로서 왜왕에게 하사한 백제의 하사품이다.
이소노가미라는 이름을 분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소노가미'를 '이소', ' 노', '가미'로 분리하여 분석해야 합니다. 측 "이소"는 백제근초고이다. 근초고의 이름이 '요속일'인데 '속'은 '소고 '풀어' '근초고'를 의미하고, '일'은 '왕'을 뜻하며 '가미'는 일어의 '신'이어 합하면 '최고의 신의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요속일'은 백제 근초고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근초고가 신궁에 진좌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당시 백제 근초고가 고대일본을 침략할 때 왜에 있는 가라 세력에게 고베/오사카지역에서 사망했으므로 후세에 이소노가미신궁에 진좌한 것이다. 저세한 내용은 본인이 저술한 학마을출판사 발행의 "고대일본은 백제가 지배했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읍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사신 완전 거지 꼬라지 ㅋㅋㅋ 그래도 훈도시 한장만 걸치고는 안나와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고 기트한것들.
일본사기는 정사이고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안읽어봤다는 교수님이 나와서 고증하고 계시네요 허이구야
일본서기는 일본 역사왜곡의 시초! 자기들 마음대로 소설 쓰듯 역사를 거꾸로 바꿔버리고 끼워 맞춰서 자신들의 열등을 우월로 수정하려했음.
근초고왕때 가야를 배제하고 백제랑 단독교류를 위해 특별히 제작해서 선물로 보낸거임
이제 낙랑군, 대방의 위치는 반도 안이 아니라 요서로 봐야한다...백제의 영양권도도 호남과 서울뿐 아니라 중국 대륙 동남부와 일본 서부까지 봐야한다.
일본의 역사가 거짓인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음.
나라가 나라에 영향을 받을 때는 일반적으로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백제가 일본에 영향을 끼친 건 현대까지도 언어에 (쿠다라 나이 : 백제의 것이 아니다 : 가치없다)남아 있는데 일본이 백제에 영향을 끼친 건 찾아볼 수가 없죠.
고구려의 영토가 잘못되었다 서쪽으로 북경까지였으며 북쪽으로는 내몽골 시라무랜강을넘어섰다 그리고 고구려가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평양에 한사군이
그럼 한사군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 포위된 상태란말인데 고구려가 가로막혀있는데 한나라가 어떻게 관리했을까 비행기타고 ?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는것은 사실이다 나머지 일본서기를 인용한것은 모두 사기다
날조 왜국을 고발하는 소중한 역사 고증..
반면 유튭의 해설 및 번역 문자써비스는 최악 쓰레기..
유툽 운영자는 반성해야~
축복합니다 사랑해요 응원합니다 일본 은 천왕의 말대로 백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ㆍ일본은백제 입니다 감사합니다
백제,신라는 중원에 있었다,,,,,,,,,,,,,,,,,,,,,,정신들 차리자,,,,,,,,,,,,,,,,
흉노족은 빼라 ㅋ 역겹다
연개소문이 흉노족인데 먼소리
사랑하는 훌륭한 코리언 여러분!! 이조실록(조선왕조실록 원본) 세종편에 이런 기록이있습니다."한글은 이세종(이도)이 만든것이 아니라 옛고려의 큰들을 본 따 만든것이다" 놀라운 기록 입니다.왜? 사관은 굳이 이런 기록을 남겨야 했을까요? 왜 이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당시,이조실록을 기록했던 담당 사관은,중국황제가 직접 임명했기때문에 조선왕도 못건드렸습니다. 그만큼 조선왕조내에서는 왕보다 위에 있었다고 할수있습니다.그런데 당시 세종은 한글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전국방방곡곡에 방을 붙이고 선전하며 심지어 해례본이란걸만들어 직접 창제한것처럼 속이고있었습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실록담담 사관은 후세에 이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그런데 이조실록을 읽어본 국내역사학자는 한명도 없다는 사실..다만,다른사람이 일부분만 읽어서 이 사실을 숨기는데만 급급해왔습니다.여러분들 더 세종이 한글창제한걸로 알고들계시죠? 고려글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시죠.서울대 사학교수에게 이 부분에 대해 물어봤더니 생전 처음듣는다며 사실이냐고 되려 묻더라구요...아~ 아~ 수능암기교육제도하의 한국인들! 그리고 한국사학자들 모두 우리역사를 절반이상 잘못배워왔스습니다.우리는 이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이런식으로 현재 한국사와 같이 중국과 조선왕조 중심의 비객관적으로 만들어진 한국사 부분이 절반이 넘는 부분들(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분단/위화도회군등) 이렇게 삐뚤어진 내용의 국사인 韓국사로 계속 암기교육으로 세습시키는 한 우리한국인들...남욕 남탓 생활과 내로남불 정신은 고쳐질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 근본인 가짜韓국사(반짱깨 韓국사 상태)의 진실을 이렇게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참역사 펌)
왕관의 모양은 사슴의뿔모양 입니다
이쁜 고두심선생님
일본의 원형이 백제라고 해도 의미 있나? 정작 일본 애들은 딴 말하는데 ...
칠지도,상강기법즉:명나라,장안에서입수한기술이네요.?~~(중국사대발명:제조종이기술,인새술,지남침,화약제조기술).얼마많은기술을,수입해는지요?~~ㅠㅠ
명나라와 백제의시대는 다른데요
일본은 한문해석을 어떻케 이렇케 하나 나라글이 절반 이상을 한문을 쓰면서 이따위 노 말도 않되게 해석을 하나
이 당시 일본이 미개 했을 때. 처서 없애서야 했는데.. 방심해서 역으로 우리민족이 당 했다.
현실은 백제가 위기일때마다 일본에 백제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서 군사를 구걸했음.
일본도 우리와 유전자가 같음 한반도에서 다 건너갔음 만주 한반도 일본 똑같은 종족
근데 요즘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 요동 근처라는 설이 나오는데 이부분도 점검이 필요하다!
그러게요 북경근처에 있었는데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註 008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註 009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註 010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註 031와 대수(帶水)註 032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 : 자 한서지리지 낙랑군편을 보면 패수란 강물의 상류에 낙랑군 패수현이 있는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빠진다 대수란 강물의 상류엔 함자현이 있고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대방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란 강물은 탄열현에서 나와 서쪽으로 점제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진다 열수의 하구는 열구라 불렸음이 사기 조선전 한서 조선전 후한서군국지에 나오고 낙랑군의 열구현이 있었다. 한나라 침공군이 고조선을 칠 때 패수의 상류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왕검성에 이르고 한나라 수군은 열수의 하구 열구에 상륙해 곧장 왕검성으로 진격하다 우거왕에게 패했다. 그러면 열수는 대동강. 패수는 청천강 대수는 예성강 혹은 그 근처의 강이니 이로써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요 대방은 황해도란게 확실해진다.
@@yoshitsune1184 북경텐진
@@mayday1044 낙랑군이 북경으로 이사가는건 서기 432년으로 위서지형지에 나온다.
@@yoshitsune1184 대륙백제=대방군=구이백제=하북성
나당연합군의 욕을 하지 않기
로 했습니다,
백제수도권의 투표항태를 보
면,
2020년 아직도 한사군이 황해도에있었다고 말 하는 머저리는 없겠죠?
일본이나중국이나 역사외곡하는데는 특급이다 ㅋ
저거 바람의나라 칠지도 이벤트햇엇는데
이거 바람의나라에 나오는 검인데..
거상에도나옴 ㅋㅋㅋ
이유는 일본에 칠지도가 있기 때문에 백제에서 일본에 하사 한것임
칠지도 유물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일본 주장도 맞을수 있는 근거가 됨
태화가 진화가 아닐가요
백제가 연호를 생각해보면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기억하건대 락초 있는것같으데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삼국사기도 읽어보지 않은수준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가야 구일본
고구려 신일본
이정도는 아는지
ㅋㅋ ㅎㅎ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경기 전라 충청 경상도가
대가야 즉 대왜 야마도
야마는 산 도는돼지
산융이라고 읽지
대화는 파자하면
삼황이라
이정도는이해하시는지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너 금오냐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하는 한은 민주주의는 커녕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한국에서 약탈한 보물
우왕도더블어만진당당원인가
백제의 영토확장은 멀게는 베트남 가깝게는 중국 북경부근부터 대만등 해안선 위성도시까시 해양대국이었다
백가제해 그게 백제다
백제가 한성백제 이외에 6곳으로 뻣어 나간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나라백제(왜백제)가야백제 신라백제 탐라백제 요서백제 산동백제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병신...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재밌니? 븅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