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피디부터 작가, 연출같은 모든직에 여자들이 대거 진출하여 방송 페러다임이 변화해서 그렇습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프로인 리얼리티 쇼와 육아 예능과 음식,요리,관찰 예능같은 방송이 증가하고 남자들이 주로 시청하던 다큐멘타리, 시사프로그램, 역사방송과 심지어 전통사극같은 프로그램도 사라지고 로맨스가 들어간 퓨전사극만 나오는 추세죠
@@pus6646 역사는 해석에 학문이자 승자에 기록이죠 역사서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진실로 보지 않듯이 기록되지않았다고하여 진실이아닌걸로 하지도않죠 앞뒤상황이나 연계가있는 기록들로 진실을 추측할수있는거죠 작금에 역사가들은 대부분 경종은 영조가 독살한걸로봅니다 다수에 학자들이 그럴때는 분명 이유가있죠
님 말대로 병환을 깊게 만드려는 의도였는데 예상과 다르게 너무 빨리 죽어버려서 이런 생각때문에 본인은 떳떳 하다.생각했던게 아닌건지~싶어요. 어쨋거나 몸 상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고 중요하니 잘못이 없는건 아니죠. 참 시대를 잘 타고 났어요.조선시대 마지막 왕으로 남겨졌다면~~ 아들 죽이고(죽어도 마땅하지만) 왕 독살 시도에 이랬다면 폭군 조선시대 왕 으로 남아있겠죠ㅋ
독살설이 맞는것 같네요 하지만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돈면도 있지만 무수리아들과 독살설의 열등감으로 자신이 하루 15시간씩 공부하며 사도를 성군으로 만들려는 과도한 욕심으로 수렴청정을 십몇년식 시키며 사이코패스가 된 사도는 궁녀를 97명이나 죽이는 미치광이가 되어 사도생모도 영조에게 죽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방법이 잔인했지만 더 빨리 사도를 죽였어야 정말 억울한 궁녀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97명이 아니라 서너명 죽일때 그 때 궁을 쫓아내던지 방도를 구했어야죠
과거엔 권력을 얻기 위해 목숨이 아니라 가문의 명운을 걸만큼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인 오늘날엔 권력 못지 않게 돈 특히 인생역전을 노릴 만한 거금이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거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돈이 곧 권력인 시대다. 판타지 영웅케릭터가 지구를 구하는 해피엔딩에 익숙한 이역만리 떨어진 사람들 마저 이젠 현실에 있을 법한 드라마 케릭터에 생전에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입을 통해 몰입하며 오징어게임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영조의 장수비결은 아마 기본적으로 유전(아버지 숙종도 그 드러운 성질머리와 온갖 전염병과 잔병치례 속에서도 꾸역꾸역 성생활하며 60세까진 살음 + 어머니 최무수리의 강인한 체력 - 무수리는 궁안팎을 오가며 물긷는 일하는 개빡센 노동자, 숙종 만나 영조 낳기 전에도 딴 남자랑 자식이 이미 있었다는 썰이 있고 영조 직전에도 요절한 왕자 또 있었음 당시의 비위생적 의료시스템에서도 최소 애 셋 이상 낳고도 몸이 안좋았단 기록은 딱히 없는 건강체질,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편이었다는 썰도 있음. ) + 한끼에 기름지지 않은 심플한 반찬 세가지만 놓고 평생 배불르게 먹은 적 없었다는 소식습관(당시 왕으로선 파격에 가까운 식생활 - 위가 안 좋은 편이어서 조심했다는 썰도 있고 독살위협 때문일수도) 사소한 거에도 미신믿고 엄청 조심하긴 함. 안 좋은 거 보고 들으면 눈 귀 씻고 그 물 싫어하는 자식들 거처에다 버려서 저주를 몸에서 떼냄 다만 너무 오래 살아서 말년엔 치매 왔죠….
영조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친아들을 그렇게 구박하고 병들게하고 죽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100여명의 사람을 죽였기에 폐세자 하는것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뒤주에 가둬서 굶어죽게 한것이 아버지가 할일은 아니지.. 차라리 제주도로 유배보낼수도 있었을텐데... 반대로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은 지극했는지.. 정성왕후에게 손이 곱다고 칭찬을 하자 정성왕후가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그렇다고 하여 무수리였던 자기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이라 생각해 소박을 놨을정도였으니...
@헤르만괴링 현대의 윤리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그렇겠죠. 이건 당시 사회 문화, 사도세자의 신분을 생각해야죠. 세자가 사람죽였다고 사형시키는 법이 있는 때가 아니니까요. 다만 덕이 부족하고 과실이 큰경우 폐서인 하는 경우는 많았기때문에 제주도 유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다못해 일개 왕자가 살인을 해도 처벌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였어요. 선조의 아들 임해군과 순화군 정원군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물의를 일으켰는데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않았어요. 역대 왕들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고, 특히 연산군은 무고한 사람을 많이 도륙했죠. 연산군을 사형시켰을까요? 연산군 폐위후 두달만에 역병으로 죽었습니다. 선조는 정여립모반사건,건저의 사건을 빌미로 무고한 선비 천여명을 죽였어요 사형은 커녕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선조의 후손으로 조선이 대를 이었습니다. 왕이 지존이고 세자가 국본인데 사람죽였다고 사형시키는 법이 있을리가 없죠.
애초부터 영조가 사도세자를 경종을 모시던 궁녀들에게 맡기면서 비극의 시작점이 됐던거죠 자기딴에는 경종의 독살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 궁녀들에게 사도세자를 맡긴건데 문제는 자라면서 이 궁녀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도세자는 소론과 가까워지는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버지 영조와 경종과 관련된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면서 영조의 가장 민감한 부분까지 건들게 되면서 완전 끝장났던거죠
정권을 위해가 아닌 아들이 심각한 정신병이였습니다.의대병을 앓아 자신의 후궁과 궁녀 여럿도 죽였구요.이런 아들을 본인이 아닌 누굴 시켜 죽였다면 만약 정조가 즉위시 연산군과 같이 피바람이 불 수 있기에 본인 손으로 직접 죽인겁니다.영조가 소식을 한거는 그 자신이 굉장히 검소하고 엄격했기 때운입니다.그래서 불행히도 세자가 정신병이 생길때까지 엄격하게 몰아세운거구요. 저도 한때 여기 나오는 이덕일씨 때문에 그가 쓴 사도세자도 읽고 했으나 지금은 저분은 역자학자가 아닌 거의 음모론자 취급을 받고 있죠
경종은 자기 핏줄이 없어서 영조를 죽일 실익이 없습니다. 몸도 안 좋은 가운데 숙종의 혈맥에 가장 근접한 후계가 영조인데 죽일 수도 없었구요. 엄청난 불안 정국이 됬을 듯. 서로 근거 당파는 달랐지만 경종이 동생인 영조를 죽이길 원했는지도 의문이네요. 서로 죽이길 원한건 이 둘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소론, 노론 사람들 아니었을까요? 경종으로선 억울함과 분노도 해소하고, 노론의 횡포도 억제하면서 동시에 휘둘려서 자기 동생까지 죽이지는 않는 절제적 숙청을 잘 했다 싶어요. 일단 그 와중에 세자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도 보통은 넘는듯요. 숙종의 두 아들은 다 영민했다 봅니다.
당시 경종은 자신이 자식을 낳을수 없는걸 알아서인지. 종친중 소현세자의 손자인 밀풍군을 양자로 들이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숙종의 계비인 인원왕후가 연잉군의 후원자로 나서면서 숙종의 핏줄은 경종과 연잉군 뿐이라는 이유를 들어 밀풍군을 양자로 들이는 일은 성사되지 못했고, 연잉군을 왕세제로 삼죠.특히 그 양자의 일은 계비인 선의왕후가 주도했기에 그녀는 영조즉위후 미움을 받았습니다.
연잉군 영조는 경종의 보호가 없었으면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죠 아무리 왕권이 약했어도 왕족이 역모에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죽일 수 있는 명분이 됨 (그것도 한 두번도 아니었고) 만약 태종이었으면 연잉군의 사돈의 팔촌까지 탈탈 털었겠지만...;; 조선 초 왕권이 강했을때 같진 않지만입지가 약했던 경종이라도 일단 왕은 왕임 무리를 해서 내가 내상을 입더라도 연잉군을 죽이고자 마음먹었으면 충분히 죽일수 있었겠죠 하지만 연잉군을 죽여버리면 가장 가까운 왕족 중에 왕위를 이을 후계자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고 본인 소생의 딸 조차 없었던 경종이니 종묘와 사직을 생각 안 할 수 없었을 듯 (뭐 소현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처럼 대체자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연잉군이 있는 상태에선 많은 무리수를 둬야 했을 듯 ) 경종이 어렸을 때 부터 몸이 약했다곤 하나 골골대서 병석에 누웠을 정도는 아니었고 어머니의 죽음이후로 홧병이 생겼다 하니 이해하고도 남음 성격 괴팍하고 깐깐한 부왕아래 자칫 실수라도 하면 본인을 벼랑으로 밀어트릴 사람들이 즐비한 곳에서 우울증을 얻었지만 부왕의 시험대에 올려진 대리청정도 빌미를 주지 않고 잘 수행하며 10년 이상을 세자로 버텼으니 시대 상황만 아니었으면 평타는 쳤을 듯
사도 세자도 죽엿는데 이복형 죽이는건 쉬웠겟죠 사도세자도 경종 안죽인거 증명한다고 경종 좋아하는척 하려고 경종 처소에서 키웟는데 그거 보고 사도세자를 경종으로 느껴서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거 같음 경종은 당파 싸움에도 영조 살려 줫건만 영조 이복형 죽이고 아들 죽이고 권력욕 심하고 잔인한 인간임
@@딩고-c4t 사람의 신분이 귀한 양반과 천한 천민으로 나눠지던 시대입니다 지금의 잣대로 볼 수 없죠 희빈 장씨만 해도 친가외가가 다 역관 출신이라 중인이상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숙빈 최씨는 할아버지대는 고사하고 아버지 어머니대도 알 수 없고 고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로 치면 한미하다 못해 미천하기까지 하다고 볼 수 있죠 이 전에도 나인 출신은 있었어도 무수리 출신 어미를 둔 왕은 없었어요 사가의 양반 집에서도 어미가 첩이면 아버지가 아무리 잘나가는 영의정이라도 그냥 첩의 자식인 시대에요 하물며 왕실인데요? 그런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 대신도 아니고 왕이 되었으니 주변 사람들 말 나오기전에 본인의 컴플렉스가 어땠을지는 상상이 가죠 경종 독살설과 무수리 출신 어미는 영조 재위 시절 내내 따라다녔던 키워드(?)인데요 본인도 그 컴플렉스때문에 신하들이 반대해도 숙빈 최씨의 지위를 계속 승격시키려 애썼구요
영조의 본모습이 드러났던 일이 1753년에 시행된 궁원제도입니다. 궁원제도란, 국왕 사친의 사당과 무덤을 묘묘(廟墓)에서 궁원으로 높여 왕권 왕실의 지위를 안정되게 유지하고자 제정한 제도입니다. 묘지에는 등급이 있는데 묘 → 원 → 능 순으로 갈수록 높은 등급이었는데 당시 장희빈, 숙빈 모두 묘였기에 두 여인 모두 원으로 올려야 하는데 자신의 어머니만 소령원으로 올렸고 장희빈의 묘는 올리기는 커녕 장희빈묘의 망주석 위치도 마음대로 바꿔놓았습니다. 모든 무덤에는 망주석을 두는데 망주석은 무덤 앞에 세우는 1쌍의 돌기둥으로 풍수의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망주석에 붙어있는 작은 동물조각인 세로가 무덤의 기운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망주석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곡장의 터진 끝부분의 안쪽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조는 희빈 장씨의 대빈묘에 곡장의 터진 부분의 바깥쪽으로 망주석을 옮겨놓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영조가 경종 덕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경종 독살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희빈묘도 원으로 올렸어야 임금다운 처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에 분명히 숙종이 숙빈에게 1711년 6월 자로 이현궁을 비우고 연잉군 집으로 들어가 살라고 적혀있는데, 영조는 소령원 비석에는 1716년에 궐에서 나갔다고 거짓으로 적었고, 또 다른 비석 기록에는 숙빈이 7살에 입궁했다고 적었습니다. 보통 궁녀들의 입궁 시기가 7살이기 때문에 영조는 숙빈이 궁녀출신이라는 걸 돌려말하기 위해 그렇게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숙빈은 천한 출신이라 평생동안 신분컴플렉스를 겪었던 영조였는데 또 조작해서 적은 것입니다. 영조는 인간적으로서는 믿을 만한 위인이 못됩니다. 정말 경종을 생각했고 독살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장희빈 묘도 더 웅장하게 꾸며주고 원으로 올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조는 본인 몸은 끔찍히 생각했던지 재위 평생동안 3일 간격으로 진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수 임금이 된 것입니다. 본인 몸의 반의 반만이라도 경종을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종은 영조가 간장게장과 꽂감을 가져 가기전 심한 설사와 복통을 격으며 죽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많이 아팠고 영조가 찾은날 겨우 식사를 할 정도로 회복 했습니다. 그리고 영조가 들고온 꽂감과 간장게장중 간장게장을 먹고 다시 심한 복통과 설사에 아파하며 승하 하였습니다 문제는 간장게장을 끓이지 않은 간장으로 만들었다면 이 간장게장은 복통과 설사의 원인 되는 것 입니다 꽂감을 먹었다면 건강을 회복 하였을 껍니다 꽂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리기도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하나 뿐인 이복형제에 이미 왕세제라서 앉아있기만 해도 다음 타자라 독살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 라고 보기엔, 왕세제를 향한 암살 위협도 계속 있었음… 연잉군이 묵는 궁에 불도 난 적 있고 대비한테 헐레벌떡 도망가서 살려주세요 한 적도 실록에 있음. 왕세제가 제거되면 다른 왕족을 또 찾아내 옹립하면 됨. 경종의 비가 실제로 진지하게 왕손입양을 고려한 적도 있음. 그런 반대파 입장에선 왕이 간당간당할 때 저 반쪽 왕세제 빨리 제거해야겠다 vs 연잉군 입장에선 내가 당하기 전에 빨리 왕위에 앉아 버려야겠다 이런 구도였으면 독살 감행할 수도 있을 거 같음.
경종 너무 안쓰럽고 가엽네요…
집권대신들에 아버지에 아버지손에 죽임당한 어머니에 대비까지…마지막엔 동생손에…한이 서려 있을듯..
진짜면 영조 ㄹㅇ 천벌받은놈
아들을 죽인 냉혹한 사람인데, 형을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아들이 개판이어도, 뒤주에 굶겨 죽이는 건 소시오패스임
북방 노에역사밖에 없는 쫜꼐~~~ 북방 몽골 ,만주족노에 가축역사밖에 없는 한족 ㅋㅋㅋㅋㅋ 너희들의 운명이다 ㅋㅋㅋ
@@4protoss293 뭔 개소리?ㅋㅋㅋㅋ
아들이 무너진 인성 가진 대표적인 이유가
7살보고 미적분 적분 가르치고 왜 못 풀지 못하냐고 대리청청 했는데 가만히 있다고 해서 왕세자가 왜 가만히 있냐고 뭐라고 하고 행동하면 전에 내가 잘못 했냐고 지적질 함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게장과 생감 아픈데 목구멍에 생감이 넘어갔을까?
영조는 자식을죽이고 자식몫까지 오래살았다
영조가 무슨 탕평책 어쩌고저쩌고?? 저 놈은 지 아들을 죽인넘이고 평생 당파싸움에서 자유롭지못했다 다른당에서 조금씩 등용해서 탕평책 구색만 맞추고 실제로는 노론을 중용하고 노론들한테 주요직책을 줬지
경종이 왕중에 제일 착했다함... 원수의 자식인 연잉군을 자기 후대로 만들어 준것만봐도 근데 그걸 그냥 배신하고 독살... 쓰레기같은왕 영조
이런 시사 방송이 요즘엔 왜 안나오나… 성우 목소리 자체가 뭔가 신뢰감을 주시네요👍
방송 피디부터 작가, 연출같은 모든직에 여자들이 대거 진출하여 방송 페러다임이 변화해서 그렇습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프로인 리얼리티 쇼와 육아 예능과 음식,요리,관찰 예능같은 방송이 증가하고
남자들이 주로 시청하던
다큐멘타리, 시사프로그램, 역사방송과 심지어 전통사극같은 프로그램도 사라지고 로맨스가 들어간 퓨전사극만 나오는 추세죠
@@June0696 하..님도 또옥 같은데 난 여자지만 다큐 좋아하고 시사나 역사 좋아라함!! 물론 아미기도 하고 하지만 이건 개취고..쥐똥만한 나라에서 지역으로 나누고 성별로 또 싸우고 지겨워 정말.. 일반화 하기전에 자신부터 돌아봅시다
@@tae-tae1230 얘는 아이디부터 사진까지.극단적.빠순이네ㅋ 이런 여자들이 저질 예능에 환장하는 전형적인 여자들 ㅋㅋ
게다가 그냥 방송 트렌드에 대한 팩트만 말했는데
혼자 피해의식 가지고 성차별 이라며 빼애액 거리는거 보니 페미도 하나 보네 ㅉ
권력을 잡고 놓지 않을려던 좌파들의 국민우민화 정책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June0696 기ㅣ
영조가 군주로서는 나름 훌륭한 왕이다만 경종은 분명 독살했을거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고 재위52년동안 양위파동하면서 생난리를피면서 사도세자 피말리게한거부터 거짓쇼하는거보면 왕에대한 집착은 장난아니였긴한듯 경종은 거의 영조가 독살한걸로봐야맞는거지
'
ㅈ
모르죠 ㅠ 영조 양심고백 책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pus6646 역사는 해석에 학문이자 승자에 기록이죠 역사서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진실로 보지 않듯이 기록되지않았다고하여 진실이아닌걸로 하지도않죠 앞뒤상황이나 연계가있는 기록들로 진실을 추측할수있는거죠 작금에 역사가들은 대부분 경종은 영조가 독살한걸로봅니다 다수에 학자들이 그럴때는 분명 이유가있죠
아들도죽였는데 누굴못죽여..본인임지가 위험하니..
경종이나 인종님들은 마음이너무착해서 누구도 벌못주고 승화하셨네요 독해야살아남나봐요
어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게장, 생감 올린 거 보면 독살은 아니더라도 병환을 깊게 만드려는 의도는 있었을 듯 ㅋㅋㅋ 연잉군도 당황했을거야 천천히 죽어가길 바랬는데 경종이 먹자마자 바로 죽어버렸으니
영조의 발목을 잡아두고자 같은노론의 부추킴이 있었는지?
결론은
그뒤로 영조는 쭉 노론.
님 말대로 병환을 깊게 만드려는 의도였는데 예상과 다르게 너무 빨리 죽어버려서 이런 생각때문에 본인은 떳떳 하다.생각했던게 아닌건지~싶어요.
어쨋거나 몸 상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고 중요하니 잘못이 없는건 아니죠.
참 시대를 잘 타고 났어요.조선시대 마지막 왕으로 남겨졌다면~~ 아들 죽이고(죽어도 마땅하지만) 왕 독살 시도에 이랬다면 폭군 조선시대 왕 으로 남아있겠죠ㅋ
장희빈의 업보가 아들을 죽게하는군
권력앞엔 배다른형제도 친부모자식도 안가리는 옛날~~
ㅎ
@@냥냥냥-r3v 사도세자가 왜 죽어도 마땅함? ㅋㅋ
영조가 권력을 지키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가렸고. 특히 사도세자 경우 사약을 내리면 될일을 뒤주에 가두어 잔인하게 죽인그 성품으로 볼때 능히 경종을 독살하고도 남을 인간 아니었나?
칼을 내리고 자결을 명했는데 사도세자가 거부했어요
그리고 뒤주를 처음에는 가정용을 가졌왔다가
좁다고 군대용 큰뒤주를 가져와서 들어가게 했어요
드라마에서처럼 좁은곳에 웅크려 있던것 아닙니다
사약을 내리면 죄인이 되잖아요. 그러면 정조가 죄인의 아들이 되는데 정통성에 문제가 생겨서 왕노릇하는데 지장이 와요. 그래서 자결을 명했는데 사도세자가 자결하지 못했기때문에 할수없이 뒤주에 가둔거지요. 즉 정조때문에 죄인을 만들지 않기위해서
영조 모자는 우리가 아는 장희빈보다 더 최악질 모자다
드라마 동이는 그냥 미화시켰을뿐
일개 무수리 영조 모가
살기위해 순악질 모자가 되었던것이다
영조의 업적??만 배웠는데..이런거 되게 알게돼서 좋네요
아들도 죽였는데 이복형 못 죽였을까?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정치성향 궁중 어의가 말렸는데도 약드린다고 음식올린 영조임 독살 확실함
죽였음우리가 보진 못했지만 그피가 사도세자 죽였음
@@박천-c4x 개장과 생감은 상극이고 영조가 인삼부자차를 올렸는대 부자는 독성이 있어서 죽을수도 있음 그리고 독살은 확실하지 않음
@@김영숙-b7q 경종 죽였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영조의 성격이나 친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였던 잔인성을 봐서는 이복형 경종의 독살은 확실한것 같음
설득력있네여
앞 뒤가 안맞음 원래 생감 게장을 같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데 경종이 몸이 약해서 배탈 심하게 나서 죽은거임 독살은 앞 뒤가 안맞음
게장과 감을 함께 먹어도 건강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경종이 본래부터 몸이 약해서 그런것 같고 불임인 사람은 후계자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현재 의 이재명이네 헐
굳이 어의의 의견을 무시한 영조가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영조의 성격으로 봐선 능히 하고도 남을~~
지아들 사도세자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 말씀이신가요..?
독살설이 맞는것 같네요 하지만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돈면도 있지만 무수리아들과 독살설의 열등감으로 자신이 하루 15시간씩 공부하며 사도를 성군으로 만들려는 과도한 욕심으로 수렴청정을 십몇년식 시키며 사이코패스가 된 사도는 궁녀를 97명이나 죽이는 미치광이가 되어 사도생모도 영조에게 죽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방법이 잔인했지만 더 빨리 사도를 죽였어야 정말 억울한 궁녀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97명이 아니라 서너명 죽일때 그 때 궁을 쫓아내던지 방도를 구했어야죠
사도가 100명을 살인할 때 까지
영조 도 숙종 닮아서
사이코 패스어요
딸이 엄청 많은데
지가 맘에 든 딸만 총애하고
못마땅한 딸은 만나지도 않고
싫어하는 티 팍팍내고. 그쪽으로 발길도 않앗데요
그 부분 읽고
영조한테 정이 뚝@@둔내터널
연인군이 왜 그랬을까 경종은 어머니 장희빈과 연인군어머니 숙빈최씨와 사이가 좋지않음에도 연인군을 총애했는데 이해가 되지않은 사건
영인군아님?
연잉군
진짜 경종 얼마나 원통하고 분통이 터졌을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감정을 숨지고 때가 오자마자 곧바로 전광석화로 복수를 행한 그 인내심과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있던 점에서 감탄이 나온다.
본성을 숨겼다가 드러낸 경종 역시 아버지 숙종 유전자는 어디 안가네
숙종이 나쁜아빠
경종의 영원한 충신 김일경. 단종에게 사육신이 있었다면 경종에게는 김일경.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고 영조에게 일갈하고 부대시참을 당하였다.
@@sejungkim3055
김일경:나는 갑인년부터 개장을 먹지 않았소!
영조:(대노)나는 이복형님을 죽이지 않았다!
김일경:시원하개 나를 죽이시오!
영조:(극대노)오냐!소원대로 시원하개 죽여주마!
@@정치성향
정치적 신념 하나에 자신과 가문이 몰살당하고 수백년간 신원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는 그 정신세계는 무엇일까.
표 한장을 위해서 이념과 동료를 배신하는 걸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하는 모리배들이 판치는 세상.
경종이 보살이네
지 엄마 죽인 원수나 마찬가지인
이복 동생을 살려 두다니
에휴
@Blind kim 아버지 숙종의 성품도 닮아서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신임옥사 일으켜서 본성을 드러냄
자기 엄마 죽인 원수는 이복동생이 아니라 아버지 숙종과 서모 숙빈최씨지
@@정치성향 그 씨앗을 살려뒀으니 문제임 죽였어야했음 ㅅ
@@entp9205 경종이 안 죽인건 문재 아님 사도새자 죽인걸로 욕 많이 먹지만 정치는 나름 잘했음 신문고 부활시켰고
난 게장을 감싸고 같이 먹었다가 죽도록 아팠고 회복되는데 두달 걸렸던 기억이 있어서 독살설에 비중을 둔다
형죽이고 노망나서 뒤지에가둬 아들도 죽인 연산군보다 악질왕 초상화보면 그렇게 생겼지요 ㅎ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ㅇ
관상은 과학이다!
관상 ㅋ 생쥐상
이씨들과 씨가 다름 ㅡ 최무수리와 김춘택의 아들
영조가 이것때문에 평생 불안했지비
어디 사투리임니꽈?
@@user-sh1yr3ho5m ㄱ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리가 없으니 뭔가 있긴했겠지
영조가 경종을 독살한 정황이 뚜렸하고 영조의 언행이 의심이 든다.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8일 동안 가두어 죽인 비정한 애비인데 이복형을 죽이는데 꺼릴 것이 있으랴?
거기다 아들의 정신병의 큰 원인 재공자 였죠…
결국 만악의 근원은 숙종이었군요......
권력욕때문에 형님이나 자식쯤 죽이는일 아무것도 아닌 냥반이니 후손으로서 평가를 내려줘야죠.. 최악에 군주라고 ㅋㅋㅋㅋ
당파싸움.. 환국의 연속 이군요.. 오늘날도 마찬가지고요..
어디서 온 독한 유전자인가? 후일 자식마져 ㅜㅜ
열뻗친다 진짜 경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글쎄 그 귀한 아들을 경종 나인한테 맡길 정도면 진짜 결백하지 않을까? 40대에 얻은 늦둥이 아들인데... 모르겠다 연잉군이라는 인간은 독한 놈이라서 그럴 수도 있을거 같고
연잉군(훗날 영조)는 무슨수를 동원했어라도 경종을 죽였을거다...아니면 자기자신이 죽을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아들을 자기손으로 죽이는데
경종은 안죽였는지
답은 같은 노론의 누군가는 알고있을듯
아들 죽인 인간이 배다른 형제 죽이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지
@Blind kim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지 그리고 고운손은 야사고 처조카 서덕수 때문애 평생 소박시킨 거지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지
@Na Kyung 레알ㄷㄷ
@@정치성향 서덕수가 왜요
@@marketg1612 서덕수가 경종 암살하려고 했어요
친아들을 죽인 방법의 잔인성 그만큼의 권력욕이라면 이복형 독살할 인간성이긴 함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정치성향 알수없지만 그럴수있는 인성임
@@megod6365 님 말대로 그럴수 있는 인성이긴함 아들 사도새자를 뒤주애 가둬서 죽였으니
지 목숨을 위해서는 뭔 짓인들 못하리
불쌍한 경종 왕따 당하고에미도 사살되어. ..애가 무슨죄냐
과거엔 권력을 얻기 위해 목숨이 아니라 가문의 명운을 걸만큼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인 오늘날엔 권력 못지 않게 돈 특히 인생역전을 노릴 만한 거금이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거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돈이 곧 권력인 시대다.
판타지 영웅케릭터가 지구를 구하는 해피엔딩에 익숙한 이역만리 떨어진 사람들 마저 이젠 현실에 있을 법한 드라마 케릭터에 생전에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입을 통해 몰입하며 오징어게임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계장에 땡감은 절대 같이 먹으면 안된다던데 어찌~
아들을 죽이고 탕평책이 업적인 조선왕 클라스.
나 성격 더럽다
아들도 죽이는데
너거들도 조심혀
영조가 사람죽이고도 제일 오래 살지 않았나….그래서 독하다는거임..
😬🤐😜
전두환 미만잡!
예
독살이 아니면 왕들이 일찍 죽지 않았다
영조가 80대까지 살앗는 건, 어디 가거나, 먹는거 엄청 조심하엿다
불길하다고 느끼면, 늘 가는 문도 바꿨다고 한다
죽을까봐 아들도가둬주김
@@정재웅-b8u 말이그렇다는고임ㅋㅋㅋㅋ그정도로 조심했다구용
영조의 장수비결은 아마 기본적으로 유전(아버지 숙종도 그 드러운 성질머리와 온갖 전염병과 잔병치례 속에서도 꾸역꾸역 성생활하며 60세까진 살음 + 어머니 최무수리의 강인한 체력 - 무수리는 궁안팎을 오가며 물긷는 일하는 개빡센 노동자, 숙종 만나 영조 낳기 전에도 딴 남자랑 자식이 이미 있었다는 썰이 있고 영조 직전에도 요절한 왕자 또 있었음 당시의 비위생적 의료시스템에서도 최소 애 셋 이상 낳고도 몸이 안좋았단 기록은 딱히 없는 건강체질,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편이었다는 썰도 있음. )
+ 한끼에 기름지지 않은 심플한 반찬 세가지만 놓고 평생 배불르게 먹은 적 없었다는 소식습관(당시 왕으로선 파격에 가까운 식생활 - 위가 안 좋은 편이어서 조심했다는 썰도 있고 독살위협 때문일수도)
사소한 거에도 미신믿고 엄청 조심하긴 함. 안 좋은 거 보고 들으면 눈 귀 씻고 그 물 싫어하는 자식들 거처에다 버려서 저주를 몸에서 떼냄
다만 너무 오래 살아서 말년엔 치매 왔죠….
자기가 독살했으니 지도 엄청 조심했겠지
@@쿵짝쿵짝-e6e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
영조가 경종을 죽였건 안죽였건 경종은 영조를 먼저 죽일수 있었는데 봐줬지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이 역모죄로 숙청 하는 와중에도 넘어가고 왕족들중 한명을 양자로 삼아 폐세제 시킬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음
북방 노에역사밖에 없는 쫜꼐~~~ 북방 몽골 ,만주족노에 가축역사밖에 없는 한족 ㅋㅋㅋㅋㅋ 너희들의 운명이다 ㅋㅋㅋ
@@4protoss293 노에는 뭔데?
숙청하지않으면 숙청당한다.
@@롤스로이스타고싶다 무섭다...그런 거라니...
고마워요 ! 😄 😄 😄
경종 대인배
영조 소인배
영조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친아들을 그렇게 구박하고 병들게하고 죽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100여명의 사람을 죽였기에 폐세자 하는것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뒤주에 가둬서 굶어죽게 한것이 아버지가 할일은 아니지.. 차라리 제주도로 유배보낼수도 있었을텐데...
반대로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은 지극했는지.. 정성왕후에게 손이 곱다고 칭찬을 하자 정성왕후가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그렇다고 하여 무수리였던 자기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이라 생각해 소박을 놨을정도였으니...
천성이 잔인한거 아닐까요. 싸이코페스. 나르시시스트.
@@dph8982 백성들에게 한거보면 천성이 그런건 아닌거 같음
@헤르만괴링 현대의 윤리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그렇겠죠.
이건 당시 사회 문화, 사도세자의 신분을 생각해야죠. 세자가 사람죽였다고 사형시키는 법이 있는 때가 아니니까요. 다만 덕이 부족하고 과실이 큰경우 폐서인 하는 경우는 많았기때문에 제주도 유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다못해 일개 왕자가 살인을 해도 처벌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였어요. 선조의 아들 임해군과 순화군 정원군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물의를 일으켰는데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않았어요.
역대 왕들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고, 특히 연산군은 무고한 사람을 많이 도륙했죠. 연산군을 사형시켰을까요? 연산군 폐위후 두달만에 역병으로 죽었습니다.
선조는 정여립모반사건,건저의 사건을 빌미로 무고한 선비 천여명을 죽였어요
사형은 커녕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선조의 후손으로 조선이 대를 이었습니다.
왕이 지존이고 세자가 국본인데 사람죽였다고 사형시키는 법이 있을리가 없죠.
영조가 나쁜놈 이네
애초부터 영조가 사도세자를 경종을 모시던 궁녀들에게 맡기면서 비극의 시작점이 됐던거죠 자기딴에는 경종의 독살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 궁녀들에게 사도세자를 맡긴건데 문제는 자라면서 이 궁녀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도세자는 소론과 가까워지는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버지 영조와 경종과 관련된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면서 영조의 가장 민감한 부분까지 건들게 되면서 완전 끝장났던거죠
경종은 유명해요
Bgm으로 이누야샤 ost가 들리네요..ㅋㅋ
ㅋㅋ
땡김도왜여름에
간장게장도왜여름에말이않맞아
그시대에
현시대도어렵지
정권을 위해 아들도 죽인 놈이다. 당연히 이복형쯤이야 우습지. 일개 무수리의 아들 영조. 이 인간이 장수한 이유가 소식이다. 소식한 이유는 지도 독살 당할까봐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정권을 위해가 아닌 아들이 심각한 정신병이였습니다.의대병을 앓아 자신의 후궁과 궁녀 여럿도 죽였구요.이런 아들을 본인이 아닌 누굴 시켜 죽였다면 만약 정조가 즉위시 연산군과 같이 피바람이 불 수 있기에 본인 손으로 직접 죽인겁니다.영조가 소식을 한거는 그 자신이 굉장히 검소하고 엄격했기 때운입니다.그래서 불행히도 세자가 정신병이 생길때까지 엄격하게 몰아세운거구요. 저도 한때 여기 나오는 이덕일씨 때문에 그가 쓴 사도세자도 읽고 했으나 지금은 저분은 역자학자가 아닌 거의 음모론자 취급을 받고 있죠
형은 독으로 아들은 뒤주로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좌파?뒤집어씌우게 증거도없이 재명인가?
4:22아니 이거 브금 이누야샤 브금 같은데??
장희빈의업보아닐까요..숙반이 희빈을
영조는경종을...
예나지금이나 권력이란 하나변하는게없네요
게장이 장염원인이지.요즘도 탈이 나는디 .그한여름에 냉장고도 없던시절에
예나지금이나 권력다툼
한의학적으로만 따지지 말고 현대 과학적으로 약초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의 화학작용을 밝혀내고 유전자적 조사와 실험을 계속해서 해야합니다.
근데 이상하긴함 물론 미심쩍긴하지만 이후에 영조가 경종 들먹이면서 "황형의 은혜가 깊다" 이런식으로도 말한거보면 독살설이 진짜든 아니든 콤플렉스긴 했을듯
근데 더욱더 이상한건 경종은 연잉군을 고깝게 봤다는거임
아들도 죽인 영조..이복형이라고 못죽였을까...
절반의 귀족 영조의 열등감은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된것일지...
21세기 북한인민은 .. 조선 시대만도 못 한, 혹독한 독재시대를 살고 있다.
유완장. 모자이크 좀 안되요?
경종은 자기 핏줄이 없어서 영조를 죽일 실익이 없습니다. 몸도 안 좋은 가운데 숙종의 혈맥에 가장 근접한 후계가 영조인데 죽일 수도 없었구요. 엄청난 불안 정국이 됬을 듯. 서로 근거 당파는 달랐지만 경종이 동생인 영조를 죽이길 원했는지도 의문이네요.
서로 죽이길 원한건 이 둘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소론, 노론 사람들 아니었을까요?
경종으로선 억울함과 분노도 해소하고, 노론의 횡포도 억제하면서 동시에 휘둘려서 자기 동생까지 죽이지는 않는 절제적 숙청을 잘 했다 싶어요.
일단 그 와중에 세자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도 보통은 넘는듯요. 숙종의 두 아들은 다 영민했다 봅니다.
당시 경종은 자신이 자식을 낳을수 없는걸 알아서인지. 종친중 소현세자의 손자인 밀풍군을 양자로 들이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숙종의 계비인 인원왕후가 연잉군의 후원자로 나서면서 숙종의 핏줄은 경종과 연잉군 뿐이라는 이유를 들어 밀풍군을 양자로 들이는 일은 성사되지 못했고, 연잉군을 왕세제로 삼죠.특히 그 양자의 일은 계비인 선의왕후가 주도했기에 그녀는 영조즉위후 미움을 받았습니다.
@@denischoi8100 선의왕후가 밀풍군을 밀긴 했지만, 경종이 적극 왕세제 영조를 폐하고 밀풍군을 옹립하려 했다고 볼 근거가 있나요?
연령군만 요절하지 않았어도 목숨부지 못했음. 연령군 좀만 더 오래살았으면 연령군부인 유산하지도 않았고 양자로 들였을 확률높음.
Can you put english caption please.
연잉군 영조는 경종의 보호가 없었으면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죠
아무리 왕권이 약했어도 왕족이 역모에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죽일 수 있는 명분이 됨
(그것도 한 두번도 아니었고)
만약 태종이었으면 연잉군의 사돈의 팔촌까지 탈탈 털었겠지만...;;
조선 초 왕권이 강했을때 같진 않지만입지가 약했던 경종이라도 일단 왕은 왕임 무리를 해서 내가 내상을 입더라도 연잉군을 죽이고자 마음먹었으면 충분히 죽일수 있었겠죠
하지만 연잉군을 죽여버리면 가장 가까운 왕족 중에 왕위를 이을 후계자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고 본인 소생의 딸 조차 없었던 경종이니 종묘와 사직을 생각 안 할 수 없었을 듯
(뭐 소현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처럼 대체자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연잉군이 있는 상태에선 많은 무리수를 둬야 했을 듯 )
경종이 어렸을 때 부터 몸이 약했다곤 하나 골골대서 병석에 누웠을 정도는 아니었고 어머니의 죽음이후로 홧병이 생겼다 하니 이해하고도 남음
성격 괴팍하고 깐깐한 부왕아래 자칫 실수라도 하면 본인을 벼랑으로 밀어트릴 사람들이 즐비한 곳에서 우울증을 얻었지만 부왕의 시험대에 올려진 대리청정도 빌미를 주지 않고 잘 수행하며 10년 이상을 세자로 버텼으니 시대 상황만 아니었으면 평타는 쳤을 듯
경종이 유약했어도 저렇게 쉽게 사망할 사람은 아니었는데...
한달동안 죽을둥 살둥 의식까지 잃었다더군요.비만에 당요.신장 한열증 설사 ...여러가지로 안좋은 상황이었다더군요.그 와중에 계장과 생감 먹고 설사가 더 심해졌고 급작스레 죽었으니 영조가 의심받을수밖에요.@@나이아흐
사도 세자도 죽엿는데 이복형 죽이는건 쉬웠겟죠 사도세자도 경종 안죽인거 증명한다고 경종 좋아하는척 하려고 경종 처소에서 키웟는데 그거 보고 사도세자를 경종으로 느껴서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거 같음
경종은 당파 싸움에도 영조 살려 줫건만
영조 이복형 죽이고 아들 죽이고
권력욕 심하고 잔인한 인간임
북방 노에역사밖에 없는 쫜꼐~~~ 북방 몽골 ,만주족노에 가축역사밖에 없는 한족 ㅋㅋㅋㅋㅋ 너희들의 운명이다 ㅋㅋㅋ
이복형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연잉군 죽이면 후계자가 없어서 죽이면 안되고요
그리고 영조도 후계자가 없어서 사도세자를 봐주다가 그렇게 된것입니다
사도세자가 사람을 죽였을때 바로 폐위했으면 되는데
마땅한 후계자가 없으니 100명 죽일때까지 폐위를 안한게 문제였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게 옥좌의 자리다.
누가 누구를 나쁘다고 말할수 있을까?
그런데 왕한테 땡감을 줄리가 있냐 그때는 기미상궁이 없었냐
수라간에 들어오는 재료는 최상품이라고 하는데 그런감이 들어올리가 없다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도 쌀뒤주에 가둬서 죽였는데 환자인 경종은 힘들이지도 않고 죽였겠지요
어의와 싸워가면서 위중한 임금에게
굳이굳이...굳이 냄새와 색깔이 진한??게장과 생감을먹도록했다!!?????
연잉군과 경종이 친근하지 않았다면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석으로 낯빛이 변했고
까탈스럽고
자식에게조차 편애가 극에 달할만큼
히스테리컬했다는 영조로 볼 때.
천한 놈이 뭔 짓을 못 하겠어...
경종이 원래 즉위때부터 몸이 안 좋았고 재위기간 내내 계속 골골댔다던데, 영조가 독살한건지는 모르겠네요.
고로. 중립기어 ON
경종이 몸이 안 좋았고 아들도 없었는대 영조가 굳이 독살할 필요가 없었갰죠 저도 중립기어 박습니다
@@정치성향 그냥 빨리 가버리라고 그랬겠죠 똥줄 타고 불안하니까 아니면 진짜 빨리 군침나는거 갖고싶어서 그랬을수도.. 잡힐 듯 말듯 하면서 안잡히니
@@user-up7pw7be7m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운개 경종이 병약하고 무정자증으로 자녀도 없었는대 굳이 죽일 이유가 있을까요 노론 4대신 죽어나갈때 경종은 영조만 살려줬죠
팩트고 사실이니깐 후대에도 기록이 있는거 아닐까요??
짠걸먹으면 염증성장질환 생겨요 ~?인삼이나한약제는 독이되는게 염증성장질환으로 복통설사에 독이 된다고해요~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안좋은~게 짠것과 맵고 자극적인 젓갈류와 액젓 고춧가루 자극적이고 짠음식들은 멀리해야합니다~~
아들도 죽이는 인간인데 형도 죽였겠지 ㅉㅉ
이복형 죽였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지 ㅈㅈ
사도세자가 경종독살 진실 파헤치려 하니,영조가 이쁠까요.영조가 사도가 마음에 안들고 그런 상황에 노론이 흔들어 머리가 정상이 아니니
아들 죽인 영조는 용납 할수없는 놈이다
예나지금이나 결론 왕 똑똑해안 나라가안정되지요
본인 아들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놈이 그 전에는 착했을리도 없고 왕이 되려면 뭔들 못할까. 어의들이 안된다는데도 준거보면 독살은 아니어도 적어도 해를 끼친건 확실함.
이누야사 다큐편이야?
영조를 연잉군으로 격하하라
선조를 하성군으로 인조를 능양군으로
근데 조선사여서 후세사람들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음
능양군이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정통성을 겨우 잡아놨더니 이걸 파탄 가정사로 다시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숙종은...
영조가 어찌 간장게장과 단감의 부조화를 알았을까?
장희빈의 죽음과 연결된 모든 이가 요절될것이었을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둘러 제거해야했음
자식을 죽인 잔인성이 이복형은 죽이고도 남을 인간형 이다 ㅉㅉㅉ
천한 무수리의 자식주제에 정통성을 가진 형님을 독살하고 사사로이 왕권을 탐하였구나. 역대 왕중에서도 오래 살면서 아들까지 잡아먹은 영조는 왕대우를 해줄수없다. 천한 백정도 당신보다 인정이 있을것이다.
답없네
다같은 후궁의 자식입니다
천하고 귀한게 어딨어요 다같은 사람입니다
@@딩고-c4t 오 킬링보이스
맞아요.재발재단해서.판단마시길~~
@@딩고-c4t 사람의 신분이 귀한 양반과 천한 천민으로 나눠지던 시대입니다
지금의 잣대로 볼 수 없죠
희빈 장씨만 해도 친가외가가 다 역관 출신이라 중인이상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숙빈 최씨는 할아버지대는 고사하고 아버지 어머니대도 알 수 없고 고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로 치면 한미하다 못해 미천하기까지 하다고 볼 수 있죠
이 전에도 나인 출신은 있었어도 무수리 출신 어미를 둔 왕은 없었어요
사가의 양반 집에서도 어미가 첩이면 아버지가 아무리 잘나가는 영의정이라도 그냥 첩의 자식인 시대에요
하물며 왕실인데요?
그런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 대신도 아니고 왕이 되었으니 주변 사람들 말 나오기전에 본인의 컴플렉스가 어땠을지는 상상이 가죠
경종 독살설과 무수리 출신 어미는 영조 재위 시절 내내 따라다녔던 키워드(?)인데요
본인도 그 컴플렉스때문에 신하들이 반대해도 숙빈 최씨의 지위를 계속 승격시키려 애썼구요
경종도 정통성 없는 후궁의 자식이다. 장희빈이 왕비냐? 후궁이지. 정통성따지고 있네. 적자가 아무도 없는데 영조도 왕 할수도 있지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이 있음.
궁녀는 처녀만 될수 있지만 무수리는 유부녀도 될수있기 때문애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가 김춘택과의 사이애서 아들을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음
수염이 많이 생긴것도 영조부터라고도 하죠
숙빈의 첫아들이 오삭둥이로 태어나서 두달인가 살고 죽었음ᆢ그런데 지금도 육삭둥이는 아무리좋은인큐베이테에 들어가있어도 살기가희박한데ᆢ조선시대에오삭둥이가 두달을 살았다고?오삭둥이면 인간의 장기가 미완성인 상태로 태어났을텐데ᆢ딴새끼자식이란거지ㅡ
@@고기사랑-b8d 숙빈 최씨 장남이 이영수인대 그쪽 말대로 이영수가 다른 작자 아들이라 쳐도 영조는 숙종 아들 맞지않음~~~~~?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성격이 명성왕후부터 숙종까지 이어져온 그 불같고 변덕심하고 깐깐한 성격 그대로 닮아서 ...ㅋㅋ
설이면 사실상 확실하단거 ㅋ
초반에 나오는 브금 익숙해서 뭔가 했는데 이누야샤 브금 ㅋㅋㅋㅋㅋㅋㅋ
" ? " 물음표가 이 영상에 더욱더 관심을 갖게한다.
" . "이었다면 ㅎ
역사는 늘 " ? " 가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한다.
영조의 본모습이 드러났던 일이 1753년에 시행된 궁원제도입니다. 궁원제도란, 국왕 사친의 사당과 무덤을 묘묘(廟墓)에서 궁원으로 높여 왕권 왕실의 지위를 안정되게 유지하고자 제정한 제도입니다. 묘지에는 등급이 있는데 묘 → 원 → 능 순으로 갈수록 높은 등급이었는데 당시 장희빈, 숙빈 모두 묘였기에 두 여인 모두 원으로 올려야 하는데 자신의 어머니만 소령원으로 올렸고 장희빈의 묘는 올리기는 커녕 장희빈묘의 망주석 위치도 마음대로 바꿔놓았습니다. 모든 무덤에는 망주석을 두는데 망주석은 무덤 앞에 세우는 1쌍의 돌기둥으로 풍수의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망주석에 붙어있는 작은 동물조각인 세로가 무덤의 기운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망주석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곡장의 터진 끝부분의 안쪽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조는 희빈 장씨의 대빈묘에 곡장의 터진 부분의 바깥쪽으로 망주석을 옮겨놓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영조가 경종 덕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경종 독살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희빈묘도 원으로 올렸어야 임금다운 처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에 분명히 숙종이 숙빈에게 1711년 6월 자로 이현궁을 비우고 연잉군 집으로 들어가 살라고 적혀있는데, 영조는 소령원 비석에는 1716년에 궐에서 나갔다고 거짓으로 적었고, 또 다른 비석 기록에는 숙빈이 7살에 입궁했다고 적었습니다. 보통 궁녀들의 입궁 시기가 7살이기 때문에 영조는 숙빈이 궁녀출신이라는 걸 돌려말하기 위해 그렇게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숙빈은 천한 출신이라 평생동안 신분컴플렉스를 겪었던 영조였는데 또 조작해서 적은 것입니다. 영조는 인간적으로서는 믿을 만한 위인이 못됩니다. 정말 경종을 생각했고 독살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장희빈 묘도 더 웅장하게 꾸며주고 원으로 올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조는 본인 몸은 끔찍히 생각했던지 재위 평생동안 3일 간격으로 진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수 임금이 된 것입니다. 본인 몸의 반의 반만이라도 경종을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누아샤 브금을 넣을줄이야 ㅋㅋㅋ
권력이란게 이렇게 무서운겁니다
형제도 죽이고 자식도 죽이고 지금도 우리나라는
당파때문에 나라가 허구헌날. 시끄럽고
서로 못잡아먹어서 난리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성이
남잘되는거 배아픈 국민성입니다 니네할거 없이. 다 똑같습니다
광고에 나오는 음악 제목이 뭔가요?
이런 영조의 악마 같은 성격이 있었네요 좋은 공부했습니다
경종은 영조가 간장게장과 꽂감을 가져 가기전 심한 설사와 복통을 격으며 죽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많이 아팠고 영조가 찾은날 겨우 식사를 할 정도로 회복 했습니다. 그리고 영조가 들고온 꽂감과 간장게장중 간장게장을 먹고 다시 심한 복통과 설사에 아파하며 승하 하였습니다 문제는 간장게장을 끓이지 않은 간장으로 만들었다면 이 간장게장은 복통과 설사의 원인 되는 것 입니다 꽂감을 먹었다면 건강을 회복 하였을 껍니다 꽂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리기도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게장 아낙플락시스 갑각류 알레르기 호흡곤란
영조가 경종을 죽였는지 안죽였는지 알수없다가 정답인듯
영조가 개장과 생감과 인삼부자차를 경종이 먹개 했는대 개장이랑 생감은 상극이고 부자는 독성이 있어서 죽을수도 있음 물론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는지 아닌지는 알수없음
@@정치성향 맞아요 저도 그게 의심스럽긴함 ㅋ
아픈 사람은 날 거 먹는 거 아님
군사 이천해(?)였나, 왕의 행차 중에 나타나 쌍욕을 하기까지 했다는...
우리나라도 광서제처럼 경종릉 파서 사후 부검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겠죠..시체보존은 잘 되어있을거 같은데
과거나 현제나 그누구도 자리 싸움
난 독살설 맞다고 봄 누가 아픈 가족한테 먹이지 말란거 주냐고ㅋㅋ 다들 아픈 가족이 병원에서 오늘내일 하는데 찾아가서 콜라같은거 먹이고 싶음???
이복형인대 가족은 아니지 난 독살설 아니라고 봄 병약해서 곧 죽을거고 아들도 없으니 굳이 독살할 필요가 없었음
하나 뿐인 이복형제에 이미 왕세제라서 앉아있기만 해도 다음 타자라 독살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 라고 보기엔, 왕세제를 향한 암살 위협도 계속 있었음…
연잉군이 묵는 궁에 불도 난 적 있고 대비한테 헐레벌떡 도망가서 살려주세요 한 적도 실록에 있음. 왕세제가 제거되면 다른 왕족을 또 찾아내 옹립하면 됨. 경종의 비가 실제로 진지하게 왕손입양을 고려한 적도 있음. 그런 반대파 입장에선 왕이 간당간당할 때 저 반쪽 왕세제 빨리 제거해야겠다 vs 연잉군 입장에선 내가 당하기 전에 빨리 왕위에 앉아 버려야겠다 이런 구도였으면 독살 감행할 수도 있을 거 같음.
죽이려면 은밀하게 죽이지
그렇게확 티나는 방법으로 죽이겠어요
경종이 보위에 오를때부터 몸이 약했는데 기다리면 보위에 오르는데 독살은 아닐것같음
역시 역사스페셜은 유인촌때가 찐이다
이누야사 브금 ㅋㅋㅋㅋㅋ
이누야샤 브금ㅋㄱㄱㄱㄱㄱㄱㅋ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