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충남 공주,부여에는 백제계 추정 무덤이 몇개정도 있지만 산동지역에 백제계 무덤이라고 증빙된 무덤이 수천기가 발굴됐습니다 (중국, 충남대 고고학팀 합동조사결과) 그리고 금동향로와 같은 향로도 빈번하게 출토되었습니다. 선서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은 너무 많습니다.(고구려 불상, 자기, 등) 현재 그 유물은 한국인이 관리하는 대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한서에 기록된 옥갑. 현재 산서성 정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는 부여왕이 죽을때 입는 옥갑(옥으로 만든 수의)을 부여의 현토땅(산서성 지역)에 항상 갖다바쳤다." 그리고 중국 문화혁명때 파괴된 우물이 대부분 중국 동부지역의 고구려,백제,신라 유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나라 이전까지는 한족,화하족이 중국 동부지역을 밟아보지 못했으니까요
팩트는 신라 초기에 왜국에 멸망 당할 뻔함. 그리고 4~5c에는 왜국의 힘이 강해져 신라에선 왕자를 볼모로 보내고 백제에서도 왕자를 파견할 수밖에 없었음. 또한 왜국은 고구려의 황해도를 공격하기도 했고.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가까웠던 반도국가들이 문명화가 빨랐겠지만 전투력은 왜국이 뒤지지 않았음.
@@user-oy1fg3wtgfhhn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삼국사 기록에 등장하는 하남 위례성은 중국 황하의 남쪽, 즉 하남 위례성 인것입니다. 그당시 강을 "하"라고 기록한곳은 황하가 유일합니다. 경기도 하남은 조선초기 갖다붙힌 이름입니다. 대륙 백제가 하남, 산동지역에 있었다는 증거는 중국25사에 수두록하게 많이 나옵니다. !!!
한국 충남 공주,부여에는 백제계 추정 무덤이 몇개정도 있지만 산동지역에 백제계 무덤이라고 증빙된 무덤이 수천기가 발굴됐습니다 (중국, 충남대 고고학팀 합동조사결과) 그리고 금동향로와 같은 향로도 빈번하게 출토되었습니다. 선서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은 너무 많습니다.(고구려 불상, 자기, 등) 현재 그 유물은 한국인이 관리하는 대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한서에 기록된 옥갑. 현재 산서성 정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는 부여왕이 죽을때 입는 옥갑(옥으로 만든 수의)을 부여의 현토땅(산서성 지역)에 항상 갖다바쳤다." 그리고 중국 문화혁명때 파괴된 우물이 대부분 중국 동부지역의 고구려,백제,신라 유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나라 이전까지는 한족,화하족이 중국 동부지역을 밟아보지 못했으니까요
@@김수림-b5v 중국놈들이 백제는 중국이라고 우기자나요. 백제는 폐망할때까지 백제의일식이 중국에서만 나타나니까 우기고있는거같습니다. 내가봐도 백제는 황하강중하류에서 산둥반도 양쯔강부근까지가 백제의 영토가 확실해보입니다. 그곳이 맞다면 역사시간에배운 지명이 일치합니다. 한반도에서는 백제의 지명이 전혀 맞지않아서 학창시절 나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이재원-p1h 커서 보니 학교서 배우 역사는 다 잘못 되었음. 삼국사기 삼국유사 내용 부정하고 중국 사서도 우리가 배운 내용과 다름 도대체 우리가 배운 교과서 내용은 어디서 온건지 역사스페셜만 봐도 교과서 내용은 틀린게 많음 삼국 고려만 해도 역사가 최소500년 이상인데 고려 지도 보면 흔적도 없는 천리장성이 그어져 있는데서 고려말에 요동정벌 가는것도 거리가 얼마고 그사이 영토가 얼마인데
마한 석곽 석축이 없었다..ㅋㅋ 익산 황등제 축조방식 판축기법.. 풍납토성 판축 즉 흙을 층층으로 깔고..ㅋㅋ 그 속에 나무 볏짚을 넣어서 굳게 만들면 시멘트 강도의 강성이 나온다..ㅋㅋㅋ 측 석축 이전에 마한의 축성 방식이다..ㅇㅇ 개구라질 하지마라..ㅋㅋ 그 기법이 일본의 저수지 축조방식으로 까지 전해진다.ㅇㅇ
백제 위례성의 흔적이라는 설도 있음 백제초기라는것
막내😅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어요
설이 아니라 사실임
고구리 유물입니다..백제는 한반도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파트 다 지어버렸죠?
그대로 보존되고 있슴.
엄청긴 토성.
전철역 이름이
풍납토성
몽촌토성
역이2개임...
토성부분만 대부분 있고 내부, 외부는 다 아파트, 주택가,
70~80년대라도 정부가 매입했으면 거대한 유적, 박물관이 될수 있었는데 90년대 이후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넘사벽
서울 송파구 풍납동은 개발멈췄어요 한강옆인데 아파트못지음 ㅋㅋ
영상내용:👍👍👍👍👍👍
단순히 검색해서 읽어보면 이해되는데.. 기록에따른 추측임 내가가지고있는 물건을 땅에뭍어서 몇백년후에 알지못하는것처럼 기록에 근거한 지역적요소를 찾는거임.. 뭔 댓글보면 당시사람인건냥 당당하게 구네 ㅋㅋ
한국 충남 공주,부여에는
백제계 추정 무덤이 몇개정도 있지만
산동지역에 백제계 무덤이라고 증빙된 무덤이 수천기가 발굴됐습니다
(중국, 충남대 고고학팀 합동조사결과)
그리고 금동향로와 같은 향로도 빈번하게 출토되었습니다.
선서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은 너무 많습니다.(고구려 불상, 자기, 등)
현재 그 유물은 한국인이 관리하는 대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한서에 기록된 옥갑.
현재 산서성 정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는 부여왕이 죽을때 입는 옥갑(옥으로 만든 수의)을 부여의 현토땅(산서성 지역)에 항상 갖다바쳤다."
그리고 중국 문화혁명때 파괴된 우물이 대부분 중국 동부지역의 고구려,백제,신라 유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나라 이전까지는 한족,화하족이 중국 동부지역을 밟아보지 못했으니까요
암것도 없네 갑옷이며 칼이며 있어야 할건없고 없어야 할것도 없네 말뼈만 남아있네
@@밝은빛-i5d 풍납토성이면 공간구획이 되어있는데 저기는 제사구역이라 더더욱 그럴듯
200년전 말뼈면~? 😂
@@njctboy 문화층을 기준으로 연대를 나눠서 그런 착오는 아마 없을겁니다
땅주인 : 말뼈가…
땅주인: ?????아....
ㅋㅋㅋㅋ보상도 쥐고추만큼밖에 안줬을거 같은데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전쟁으로 흥망성쇄를 거듭했으나 미개했던 일본 왜를 지배하고 선진문화를 전수해주고 선린지배를 했고 부강하고 찬란한 불교문화의 나라였다 귀중하게 보존하고 받들자!
유사역사 추종자 발견!
팩트는 신라 초기에 왜국에 멸망 당할 뻔함.
그리고 4~5c에는 왜국의 힘이 강해져 신라에선 왕자를 볼모로 보내고 백제에서도 왕자를 파견할 수밖에 없었음. 또한 왜국은 고구려의 황해도를 공격하기도 했고.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가까웠던 반도국가들이 문명화가 빨랐겠지만 전투력은 왜국이 뒤지지 않았음.
태조 님긴말
후백제 는 산설이
배역이니 높은
자리에 앉이지
마라
차현이남이라 집권초기 반란 일으킨 공주 주변만 해당, 차현(고개명)을 당시 개념도 없던 차령산맥으로 간주하여 뻘해석을 한 것임.
백제는 한반도가 아니라 현 중국에 있음 역사 공부를 조금만 해도 현 위치는 말도 안됨
이게 백제라는증거는 무엇일까요
없어요..식민사관에 맞추려고 우기는겁니다. 고구리 유물입니다.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습니다.
@@kim-nh7iu그럼 백제는 중국역사냐
백제거 아니야 고구려거야
말뼈인 것을 보니 기병대의 흔적인건가
마한식 묘제 독무덤이 나오지도 않는 곳에 ㅋㅋ 마한 목지국을 처 맨들어 놓더니..ㅋㅋ 이젠 풍납토성이 백제 위례성이란다..ㅋㅋㅋㅋㅋㅋㅋㅋ 과학을 이겨 먹는 역사여 이 나라 역사가..ㅋㅋ 환타지 소설 쓰고 있넹..ㅋㅋㅋ
그러니까 본인은 학자는 커녕 제대로된 학사 학위도 없는 고졸 주제에 한국사 학계를 욕하신다는거죠?
말투보면 중졸 가능성도 보이기는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배들..참많넹..ㅋㅋㅋㅋㅋㅋ 모지란것들..ㅋㅋㅋ 좋탄다..ㅋㅋㅋㅋㅋㅋ
일배수준은 언제나 저급해. 아는건 없어서 근거제시는 못하고 지 수준대로 개소리나 빼애액 거리는 수준
독무덤이 마한식이라는건 누가 정한거임??
초기백제는 무신
백제는 역사 내내 중국에 있었다
헛소리ㅋㅋㅋ유튜브로 역사 배웠지??
@@PrettyT-rex넌 대가리가 없냐 조금만 생각을 해봐
상고사
백제라! 개뿔! 초기왕궁터지...? ㅋㅋㅋ
고스란히 아파트 지어버려서 끝났음
서울 사람아니죠?? ㅎ
걍 지방 사는애들 신문 같은거 안보고 맘대로 끄적이는듯..무식하긴
풍남토성은 고구려 유적입니다.
백제 고구려 다 섞여있지않나요? 대부분 한강 이남지역 강남,송파,강동구는 백제 땅이었을건데
@@user-oy1fg3wtgfhhn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백제 아니에요.
삼국사 기록에 등장하는 하남 위례성은 중국 황하의 남쪽, 즉 하남 위례성 인것입니다.
그당시 강을 "하"라고 기록한곳은 황하가 유일합니다.
경기도 하남은 조선초기 갖다붙힌 이름입니다.
대륙 백제가 하남, 산동지역에 있었다는 증거는 중국25사에 수두록하게 많이 나옵니다. !!!
중국땅에서 백제 유물 유적 나온거 있나요?
@@이벨라-d7k 그리고 중국 북망산은 지금도 백제인의 무덤으로 유명합니다.
중국에서 발굴조사후 조용히 덥허버렸죠.
한국 충남 공주,부여에는
백제계 추정 무덤이 몇개정도 있지만
산동지역에 백제계 무덤이라고 증빙된 무덤이 수천기가 발굴됐습니다
(중국, 충남대 고고학팀 합동조사결과)
그리고 금동향로와 같은 향로도 빈번하게 출토되었습니다.
선서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은 너무 많습니다.(고구려 불상, 자기, 등)
현재 그 유물은 한국인이 관리하는 대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한서에 기록된 옥갑.
현재 산서성 정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는 부여왕이 죽을때 입는 옥갑(옥으로 만든 수의)을 부여의 현토땅(산서성 지역)에 항상 갖다바쳤다."
그리고 중국 문화혁명때 파괴된 우물이 대부분 중국 동부지역의 고구려,백제,신라 유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나라 이전까지는 한족,화하족이 중국 동부지역을 밟아보지 못했으니까요
백제의일식은
폐망할때까지 중국본토에서만
나오는데
무슨 한반도에 백제운운하냐
한반도에 백제는 없었다고 보여진다
?
무령왕릉은..
기이 하네요..
마곡사도..그렇고..
ㅜㅜ
@@김수림-b5v
무녕왕릉은
이미 한두번도굴되었다고하네요.
사실 왕릉이라기보다는
공동묘지느낌입니다
@@김수림-b5v
중국놈들이
백제는 중국이라고 우기자나요.
백제는 폐망할때까지 백제의일식이
중국에서만 나타나니까
우기고있는거같습니다.
내가봐도 백제는 황하강중하류에서 산둥반도 양쯔강부근까지가
백제의 영토가 확실해보입니다.
그곳이 맞다면 역사시간에배운 지명이
일치합니다.
한반도에서는 백제의 지명이 전혀 맞지않아서 학창시절 나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k천사-i4n 헛소리 반도국가들은 중국의 천문기록을 그대로 갖다 썼을 뿐이다. 천문을 관찰 기록한게 아니라ㅉㅉ
무슨소용있나 ^
백제가. 중국에 잇엇을 덴데
중국에서 나온 백제 유물 뭐뭐 있나요
말뼈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
지금 그 역사를 충청계 놈들과 가야계 경남 애들이 쌩 조작질로 감추고 있지..ㅋㅋ 배역지..ㅋㅋㅋㅋㅋㅋㅋㅋ
오吾 가家 무无없다 보寶 물物 🐼
보寶 물物 유惟 양良 심心마음 🐼
네덜란드 🇳🇱 🇳🇱 🇳🇱 🇳🇱 불교 ☸️ ✈️ 미이라
통도사 부석사 선암사 봉정사 대흥사
마곡사 법주사 🎉국내 칠대사찰🎉
세계최고의 문화유산 보존회 등재되다
경남창녕 화왕산 ⛰️ 관용사寺절사당 🏔
경주시내 석굴암 😂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석조양식 본존불상 조성된 작품이라네요
충북영동 😂 백화산 ⛰️ 반야사 🏔 🐯
박재혁 독립투사 😂😂
큰절로 충성맹세 올립니다 😂😂
부산개성고등학교 독립운동 출신자
1895년 ~ 1921년 5월 27일 자결하다
김원봉 하달 ↙️ 🌺 부산경찰 폭파 🌺
👣 🍆발가락이 문제입니다 👣 🍆
👣 👣 귀 👂 멍멍 🐶 🐰 😂 🐰 😂 👀
👣 👣 라임 발란스 건강 연구소 👣
👣 👣 서울 미아리厘 다스림 🎉🎉 👣
오자환 😂
궁穹하늘 간肝 신腎콩팥 보강제입니다
임금 일편단심 스태미너 보약입니다
오미자 복분자 구기자 토사자 사상자
그러면 답이 대충 나오지..ㅋㅋ 위례성이 불타고 개박살이 나서 쫓겨 내려간 곳이 현 풍납토성 이남 충청 어디 정도에 위치했을 거라는...ㅋㅋㅋ
말대가리가 찬란한 유물이가?
그거슨 마한시대의 볍씨였다.. 겜끝..ㅋㅋ 백제 이전에 풍납토성이 존재했다..ㅋㅋㅋㅋㅋㅋ
백제라는 근거는 1도없는데 왜 백제라고
우기는지
식민사학자인가
@@cskim277 이상한사람일세
@@이재원-p1h 커서 보니 학교서 배우 역사는 다 잘못 되었음. 삼국사기 삼국유사 내용 부정하고 중국 사서도 우리가 배운 내용과 다름 도대체 우리가 배운 교과서 내용은 어디서 온건지 역사스페셜만 봐도 교과서 내용은 틀린게 많음 삼국 고려만 해도 역사가 최소500년 이상인데 고려 지도 보면 흔적도 없는 천리장성이 그어져 있는데서 고려말에 요동정벌 가는것도 거리가 얼마고 그사이 영토가 얼마인데
??? : 한민족은 로마의 후예..
대륙삼국설 믿는분이죠? 책보고채널 구독자 맞죠?
@@이재원-p1h내가볼땐 자네가 더 이상하네
헛소리말고..ㅋㅋㅋ탄소연대측정결과..볍씨에서 마한시기볍씨가나왔며..ㅋㅋㅋㅋㅋ 설명이나해봐..ㅋㅋ백재가아니라..마한기에축성된거넹??ㅋㅋㅋㅋ
백제초기랑 마한이랑 같은 시대인데?
@@마춘법파개자 어떻게 같은 시대에유...ㅋㅋㅋ 마한이 기원전 400년까지 올라가는 걸로 아는데유..ㅋㅋㅋ 단군 기준이 남하하는 때가 기원전 1세기 전후 아닌가?ㅋㅋ
그 이전에 이땅에 마한이 있었슈.. 그 후에 기준이 백제를 받아주구유..ㅋㅋㅋㅋㅋㅋ
@@마춘법파개자 가 볍씨가 기원전 몇 년인지 공개나 해보라구 해봐유우우.. 내가 마한이라고 했을 땐 백제 이전 아니것슈?ㅋㅋ 답답하넹 이 사람..ㅋㅋㅋㅋㅋ
@@canunoh4723백제초기면 삼한시대 맞아..
마한 석곽 석축이 없었다..ㅋㅋ
익산 황등제 축조방식 판축기법.. 풍납토성 판축 즉 흙을 층층으로 깔고..ㅋㅋ 그 속에 나무 볏짚을 넣어서 굳게 만들면 시멘트 강도의 강성이 나온다..ㅋㅋㅋ
측 석축 이전에 마한의 축성 방식이다..ㅇㅇ
개구라질 하지마라..ㅋㅋ 그 기법이 일본의 저수지 축조방식으로 까지 전해진다.ㅇㅇ
왜 ? 성왕기엔 완전히 충청계를 탈피해버리거든..ㅇㅇㅋㅋ 남부여 사비성을 완성해버려..ㅋㅋ 그기에 반기를 드는게 바로 충청권 번진 가야계 것들이다..이말씀이야..ㅋㅋ
말뻐따귀 개뼈따귀.보다 현재 사는 사람이
더중요 하다
지구망하면
현재 사는 사람도
고대 시대딘
그냥 아파트
지어서 현재 사람살자
그리고 의자가 다시 충청계와 붙어 먹다가 거덜이 나는 역사가 백제 멸망이다..끝..ㅋㅋ
마한진한백제고구려신라고려조선대한제국일제현대대한민국역사까지~
대한민국역사이죠.
대한민국의 모든것은아름답습니다
백제후손 즐라도
지금은ᆢ친중 ㅁㅐ국 역사학자 ᆢ너무 많음ᆢㅋㅋ
니들 판타지 망상 소설 안믿어주면 매국이지?ㅋㅋㅋㅋ
돈이썩어나냐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