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 36] 을사오적 제대로 알기 - 대한제국 참정대신 박제순(朴齊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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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дек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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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순은 일제강점기 내부대신, 자작, 중추원 고문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인데 철종 9년인 1858년에 태어나 1916년에 사망했습니다.
    1883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 대사성, 호조참판, 농상공부대신 등을 역임했고 1894년 충청도관찰사로 재임하며 일본군과 연합해 공주에서 동학농민군 진압에 앞장섰습니다.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을사오적’으로 지탄을 받았는데 국권피탈에 앞장선 대사로 일본 정부의 자작 작위를 받았고 중추원 고문, 이문회(以文會) 회장, 가정박람회 명예고문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1858년 12월 7일 경기도 용인에서 참정 박홍수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본관은 반남이며 선대를 거슬러가면 선조의 딸 정안옹주와 박미 부부의 8대손, 여말선초 대신 박은의 16대손입니다.
    그의 부친 박홍수는 유신환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동문이었던 김윤식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으며 박홍수의 아들인 박제순도 김윤식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를 유지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특별히 암기에 뛰어났고 일찍 글을 깨우쳤지만 어린 시절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지만 모두 낙방을 합니다.
    고종 20년인 1883년 별시 문과에 합격한 뒤 1883년 4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주사를 시작으로 10월 주차 텐진종사관, 1884년 1월 기연해방군사마, 3월 주차 텐진독리통상사무 종사관에 임명되었습니다.
    1885년 3월 홍문관 부교리, 5월 사헌부 장령, 1886년 1월 주텐진대원, 2월 주차 텐진통상사무를 역임하고 4월에 귀국했고 같은 해 7월 승지로 임명되면서 다시 텐진으로 부임해 1887년 6월까지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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