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사단 63연대(지금은 31여단) 3대대근무 하고 대암산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펀치볼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보면 진짜 여기가 중요한 고지입니다 도솔산이랑 가칠봉에서 근무 했는대 뜻깊은곳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진짜 우리나라 지켜주시는 미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 선배님들 존경스럽습니다!
심박사님과 윤박사님..너무 자신감 있는모습....진짜 멋져요 심소령님이 스폿라이트 받이싀며 피를 토하시며 말씀 하시는 그 자신감이 너무 멋져요...역시...대한민국 군인이세요!!!! 윤박사님^~~~^ 응원하고있고...분위기잡으시고 케릭터 빨리 잡으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6.25전쟁이고...민족의 아픔을 너무 잘 다루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역전다방 한국전쟁편을 보고 있으니, 어째서 -화력덕후 포방부- 국방부가 화력에 목 매는지 이해가 되네요 역전다방에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요즘 나오는 국산무기에 어떤 전투의 교훈이 녹아있는지 생각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양질의 방송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6.25 참전 회고록에서 고지전에 대한 심정글------ 적진을 향해 엄청난 준비사격의 포화가 날아가기 시작할때 공격개시선의 병사들 얼굴에서 보여지는 공포와 어두운 표정들 머리속은 텅빈것같고..터질것같이 긴장된 육체는...공격 개시와 동시에 풀리면서.. 어떤 쾌감까지 느낀다 돌격선까지 도달해서 신호탄을 발사하고 적진을 쳐다보는 기분.....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뾰족하고 가파른 고지는 병력이 산개할공간이 비좁아 횡대로 돌진하지를 못하게 한다... 별수없이 교통호를 따라 한,두줄로 기어올라 9부선상의 수류탄 투척거리에서 정상의 적과 대치한다. 적은 우리에게 방망이수류탄 고리를 여러손가락에 끼고 다발로 퍼부어대며 희생자를 강요한다 그 무서운 탄막을 뚫고 우리도 일제히 수류탄을 던지면서 적의 산병호에 뛰어든다. 뛰어들면 진내에서 소총근접전, 동굴전, 피의 육박전이 벌어진다...... 생과 사를 가르는 운명의순간이 펼쳐진다. 목표를 점령하였다 오성신호탄을 쏘아올리면 하늘높이 다섯개의 불꽃이 터져 서서히 사라져가는 광경의 황홀함이란. 대공포판을 후사면에 깔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주님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등 중얼댄다. 이젠 일몰과 동시에 몰려오는 적의 역습...... 필사의 방어전이다 ....... 또 진내서 피의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새벽에 고지의 8부능선으로 후퇴해 대치하고....... 또 우리가 공격한다.......다시 벌어지는 진내 지옥도 아수라장 혼전상황에 양쪽포탄이 피아 구분없이 동시에 막 퍼부어진다. ..... . 적군 아군 할거없이 사람이 산산조각나는 생지옥이다 임무를 끝내고 살아남으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하다. 나는 과연 불사조인가? 천운인가?......... 스스로 자문해본다
국방홍보원 역전다방 진행자 여러분 수고 많으십니다. 소싯적 도솔산 밑 동면에서 살았습니다. 대북방송 대남방송을 들으며 자랐지요. 이젠 도솔산 터널이 건설 됐지만 예전에는 해안을 힘들게 넘나들었습니다. 피의능선 단장의 능선 전투를 대강 들었는데 역전다방에서 자세히 공부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요. 더불어 광주상무대까지 군생활과 인연이 있어 몇번 다시 보기를 했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어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에서 정상까지 가보려고 했으나 왜 출입통제를 하는지 아쉬움이 컸다. 지금은 후방에서 기거하지만 양구지역은 잊을 수 없는 고향입니다. 6.25 당시 부터 지금까지 선배제현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어 소인이 자라고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국방홍보원 역전다방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
96년 안보교육 제4땅굴 견학갔을때가 생각나네요. 양구에 있는 2사단 근무했는데 두돈반 트럭에 실려 5월달에도 눈과 얼음이 있는, 초병들이 방한복을 입고 근무하는 무시무시한 산꼭대기에 폭 들어간 동네가 있다는것이 신기했었는데 해안면 펀치볼 지역은 엄청난 피의 결과로 얻은 값진 땅이었네요.
저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지역이 ㄹㅇ 중요한 게 저 축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대체로 고도가 낮아지는 형세라 여기를 먹으면 북쪽을 훤히 감시하고 북한이 이쪽으로 남하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효과가 크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양구읍과 주변 일대를 모두 감제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길 뺏지 못했거나 다시 북한이 먹어버리면 양구읍 방어가 불가능해 모두 버리고 소양강까지 후퇴해야 했습니다. 산악지대라 쓸모없을 거 같지만 국군과 유엔군이 저 능선들을 괜히 치열하게 싸워서 뺏은 게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는~~~ 국군5사단 27 연대 안상열 일등병 가칠봉 전투중 적군 폭탄 파편 에 다리 머리 중상~~치료가 된줄 알고 38년간 생활하시다~~ 머리에 폭탄파편으로 인해 87년11월 뇌종양진단 (진단 당시 말기로 극심한고통에 3개월 만에) 88 년 2월 보훈병원에서 57세 로 사망 대전 현충원 사병 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이런 전투들을 보면 휴전회담 시작 이후로도 절대 유엔군이 설렁설렁 싸우지 않고 한뼘의 땅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희생했는지 알 수 있죠. 실제 휴전회담 시작때인 51년도 7월때의 전선과 최종 휴전선 간에는 상당히 차이가 난답니다. 서부, 중부, 동부 모두 상당히 더 북상했죠 ㅋ
펀치볼 북서쪽의 가칠봉의 바로 위에 있는 1211고지를 수복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ㅜ 이 고지 북쪽으로는 양구-동면-금강, 원통-서화-이포-금강 축선 사이로 고도가 쭉 낮아지는 형세라 1211고지를 빼앗으면 금강군까지 북진을 막을 지형물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1211고지를 빼앗으면 금강산을 수복하는 건 물론이고 동부전선이 강원도 통천까지 북상했을 겁니다 ㅋ 그래서 1211고지를 북한이 사수한 것을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저 고지를 신성시하죠
ㅋ~ 눈물의 1031고지. 12사단 관할 서쪽 끝 GP가 여기서 부터 시작. 80년초 12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어 경계근무를 섰던 곳. 펀치볼은 21사단 관할 구역이었는데 1031GP에서 펀치볼 까지 선임병 4명이 몰래 야간 행군으로 가서 막걸리 한 말을 사서 장대에 걸고 돌아와 소대 전체가 한 사발씩 목을 축였으나 나중에 21사단에서 이를 알고 12사단에 연락 조사하는 바람에 들통나 엄청 혼나고 기합 빡시게 받았음. 그러나 재미 있었음. 별도 처벌은 받지 않아어요. 정말 간도 컸었지. 위수지역을 벗어났으니 탈영이나 다름 없었고 21사 야간 초병들에 들켜 오해를 샀더라면 총에 맞아 죽었을 수도 있었음. 44년전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함. 영하 20도 의 산꼭대기에서 '빤바라(빤스 바람 복장)' 기합은 죽음보다 힘들었네요. 얼었던 몸이 녹는데 전신에서 일어나는 극도의 간지러움으로 손톱으로 피부를 파내어 피가 철철 흘러도 미칠 정도로 간지러워 비명을 지르고.. 그런 가혹행위를 했던 소대장은 다음날 바로 후방으로 전출 조치 되었고요. 무식하고 잔인한 세월이었음. 병사는 인간도 아니고 그져 1회성 총알 받이 소모품 취급을 당했던 시절. 그시절 의식이 변함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얼마전 훈련병이 중대장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분노할 일이 벌어졌지요.
5사단이 이렇다할 전공이 없다가 피의 능선에서 치열한 투혼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네요... 80년대 5사단 36연대 1대대 출신자... 합천의 초계적중 분지에 두개의 읍면이 들어있고, 물이 흘러 나오는 길이 오직 하나임. 내 고향 합천에 옛 어른으로 부터 하늘에서 엄청난 불덩어리가 떨어졌다는 구전 전설같은 말이 전해 들었다는 사람도 있음.
안녕하세요. 선배님이시네요. 최소한 저보다 2~10년 정도는 어른이실 듯 하니 건강 잘 챙기십시오. 전 91군번 5사단 27연대 입니다. 제가 자대배치 받았을 때 88년 11월 군번이 제대 말년이라서 나보고 맞먹으라고 놀려대곤 했었음. 그 다음 소대 왕고가 89년 1월군번(한 병장님)이었는데 그 분 덕에 막내 신참 시절이 나름 재미있었음. 허구헌날 야간 점호 후에 창고에 집합당해서 구타당했었는데 가끔은 그 분이 나한테 시킬 일 있다고 열외시켜주기도 하고, 밤에 불침번 서고 있으면 일직하사 시켜서 라면 끓여오라고 해놓고 막사 바깥 뻬치카 불 때는 곳에 데리고 가서 라면도 먹여주기도 했음.(당시 라면 먹다가 일직사령에게 걸리면 군장 메고 연병장 수십바퀴는 돌아야 했는데 제대 얼마 남지 않은 병장들에게는 다들 눈감아주는 분위기였음) 나중에 내가 소대 왕고가 되어서 자다가 라면 끓여오라고 해서 불침번 서고 있는 신참이랑 같이 빼치카입구에서 라면 먹어봤는데 이상하게도 그 맛이 안남. 신참이었을 때는 눈물나게 맛있었는데.... 한번은 그분이 사수로 내가 부사수로 밤에 부대 바깥에 있는 탄약고 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편하게 생각을 한건지 몰라도 암구어를 깜빡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대충 얼버무리면서 "나야" 그러니까 근무서고 있던 사람들이 "단결"하고 인사하면서 그냥 넘어갔음. (중대 전체에서 최고 왕고인 시절이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음) 당시 군대 분위기에서 암구어 안챙기고간 부사수는 보통의 경우라면 근무서는 내내 구타를 당하고, 또한 그 다음날 아침 점호후에 깜깜한 창고에 집합당해서 작살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아무일 없이 잘 넘어가기도 했음. 내 동기는 암구어를 외우고 갔는데 너무 긴장해서인지 잠시 깜빡했다가 근무시간 내내 깍지끼고 엎드려뻗쳐를 하고 또 그 상태에서 고참이 군화발로 차고 밟고 해서 손톱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던 험악한 시절이었음. 하여간 80년대 군번이라고 하시니까 그분 생각이 많이 나네요. 한 병장님도 잘 지내시고 계시겠죠?
동부전선이 산악지대만 가득하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치가 없다며 동부전선 북상을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ㅜ 하지만 산악지대는 고도가 높아 적들의 침입을 바로 감시할 수 있어 침입을 막기 수월하고 적들이 여러 우회로들을 통해 남하하고 우회 공격하는 길들을 봉쇄하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절대 중요도가 낮지 않습니다
펀치볼은 동부전선에서 가장 중요성이 높은 요충지입니다 ㅋ 해안분지라 병력과 물자의 집결에 유리하고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들로 즐비해 방어와 공격에 매우 유리하죠. 그리고 서쪽으론 양구-동면-금강 축선 (31번 국도), 동쪽으론 원통-서화-이포-금강 (453번 지방도)가 모두 남북으로 나란히 달려 북한이 두 통로를 통해 양구와 인제로 남침하는 길들을 감시하고 막을 수 있답니다 ㅋ 또 역으로 우리가 북진시 두 통로들을 이용해 금강산과 회양으로 진격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요
고지전을 단순히 고지 하나 먹기 위해 쓸데없이 인명과 물자를 소비했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ㅠ 그러나 고지를 먹고 뺏기냐의 문제는 고지 딱 하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해 버리면 그 고지 하나만 잃는 것이 아닌 고지가 감제하는 반경 수km~수십km 범위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 같이 포기하고 후퇴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들이 침투할 수 있는 고지 주위의 통로들이 적에게 열려 버리고요. 괜히 휴전 직전까지 조상님들이 수없이 힘들게 고지쟁탈전을 치른 게 아닙니다
초계분지 관련한 내용은 몇년전 EBS에서도 방영되었습니다. 암튼 한국 현대사는 초반에는 일본이라는 부정적 영향과 후반에는 미국이라는 긍정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본과의 접촉이 많아 기술전수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착각하나 실제 중요 기술은 미국이 전수해 주었고 일본은 시시하거나 한물간 기술 몇 가지만 전수해 주었습니다.
영화 퓨리에서 셔먼도 뒤로 가서 쐈고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서도 해치 밖으로 나가 탱크 포탑 뒤에서서 M2를 갈깁니다. 이유는 대공 방어 때문이라고 하네요. 해치에선 고각 사격이 힘든데 반해 뒤쪽에 마운트를 달면 쭈구리고 앉으면 고각이 나오니깐 그렇게 해놨다고 하더군요.... 셔먼이 마운트를 바꾼건 고각사격을 포기 한건지...아니면 마운트 자체가 고각 사격이 되는건지 궁금하네요.
@@남자탁용삼 앞의 이라크의 문제는 설명이 더 필요하네요. 이라크군 미군 재건이 무엇을 의미를 하는지 더 설명을해봐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한 것은 빈라덴 제거라는 목적을 이뤘기 때문이고요. 아프가니스탄의 군대가 바로 서지 못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나라 구조 자체가 하나의 동네 마다 통치자가 따로 있기에 무너진거죠. 구심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고 미국으로서는 계속 주둔을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철수를 한거죠.
완전군장에 공용화기 메고 고지전을 지금은 못하죠. 군장만 싸도 귀한 우리 우쭈쭈하는 엄마들과 훈련중 사망사고만 나도 지금이 전시가 아닌데 왜 군장을 싸냐는 댓글들.... 심지어 고문이라고까지 ... 기본적으로 전쟁은 나와 아무 관련없고 하청주면 된단 인식이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어 있음. 학교, 관공서 등 모든 요직을 여성이 70%장악. 군복무자는 무직자.
기관총 거치대는 2차대전때나 셔먼 퍼싱 패튼 M47 하다못해 찌프차도 공통인 건데. 셔먼이 다를 게 없지요. 그냥 무게가 덜 나가니까 산에 올라가기 쉬웠고, 차폭도 좁아서 산길 소로에서도 잘 움직인 것이고. .......... 그냥 가볍고 작아서 다른 탱크보다 고지에 올리기 좋았다 정도...
====고지공격==== 넌 이제 고지를 점령하러 올라간다 네가 고지를 올라갈때부터.......... 포탄이 다발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포탄들이 잠잠해지면 ..................지뢰가 여기저기서 너를 기다린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면,............어김없이 적 기관총들이 애처롭게 흐느낄 거다 이놈들의 기관총이 끝나면...........이젠 수류탄이 다발로 너를 향해 날아올거다 수류탄의 다발이 멈추면 ............이젠 총검과 함께 동물적인 육체의 향연이 너를 기다릴거다 고지를 점령하고 싶나? .............. 앞에 순서를 무사히 통과한자에게만 그 행운이 갈것이다 끝났다고 생각하나?......................반대로 적이 똑같이 올라올것이다 이 지랄을 수없이 반복하고도 살아있다면..............너의 주변에는 아무도 아는얼굴이 없을것이다
102보에서 듣던 말 인제가도 안원통해 양구가 있으니까 ㅋㅋ 21사 87년 당시 가장 가난하고 암울한 사단 이였는데 보급도 항상 모잘라 ㅋㅋ 누가 그리 삥을 치는지 딱 하나 좋은점 그때 당시 정기 휴가가 타부대 보다 10일 많았음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봐야 겠네요 부산이라 너무 멀다 휴가 나올때도 17시간 걸려서 왔는데 ㅋㅋ
후방상륙작전으로 적의 보급로를 끊으면 저토록 철저히 요새화된 진지라도 쉽게 제압했을텐데 제공 제해권을 가진 유엔군이 피흘리는 고지전에 고착된건 엄청난 전략 전술의 오류였군요. 물론 냉전으로 전세계를 고려하는 전략이 3차대전을 유발할수있는 확전을 원하지 않았었던게 아쉽군요.
[자막 오타 수정]
단장의 능선을 영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오타가 있었습니다.
"Heartbrake Ridge -> Heartbreak Ridge"로 변경합니다.
앞으로 이런 실수가 없도록 제작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토전사 임진왜란 편 다시 올려주세요
이 정도 오타야 뭐... 감사합니다.
울할아버지가 참전하셨고 무공훈장 수여 받으셨던 도솔산 지구전투!! 살아생전 매년 펀치볼 전투 기념행사에 초청받아서 참가하셨습니다
지금은 현충원에 계십니다
영웅이시네요 할아버님 👍
감사드립니다
21사단 63연대(지금은 31여단) 3대대근무 하고 대암산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펀치볼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보면 진짜 여기가 중요한 고지입니다
도솔산이랑 가칠봉에서 근무 했는대 뜻깊은곳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진짜 우리나라 지켜주시는 미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 선배님들 존경스럽습니다!
이야 저는 66연대였는데 도솔 제설작업 쉽지않았죠ㅋㅋㅋㅋ 가칠봉은 경관이 정말 대단했죠 펀치볼이 한눈에보여서.. 그 반대쪽은 북한초소가 바로보이고..
군생활하던 곳이라 반갑네여~~ 66연대 4대대 소속으로 대우산선점중대> 도솔대대> 사태리 gop소초> 무학대대에서 제대 했네여 ㅎㄷㄷ
@user-gl4uh7po5q 대우산정상에 M4셔먼이 있었고 그 아래로 오래된 철조망100미터 아래로 녹슨 소총,철모등 영화 고지전에서 나왔던 장면이 생각납니다.88년 봄에 DMZ에서 사태리부근 수색작전중 전사하신 66연대 전초중대 4분의 명복을 빕니다.
아~ 저는 21사 공병대대 근무했는데 연대에서 경계근무 체험한 기억이 나네요. 연대 근무하신 분들 존경합니다. 저는 일직부관 근무하면서 들었던 가칠봉 들으니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저는 93군번 66연대 2대대 출신입니다. 지금은 그때 왜 힘들었는지 기억도 안나네여..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작고하신부친, 5사단36연대피의능선전투참가당시소대장
부친의 노고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부친의 노고와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부친의 용기, 희생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부친의 노고에 경의를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심박사님과 윤박사님..너무 자신감 있는모습....진짜 멋져요
심소령님이 스폿라이트 받이싀며 피를 토하시며 말씀 하시는 그 자신감이 너무 멋져요...역시...대한민국 군인이세요!!!!
윤박사님^~~~^
응원하고있고...분위기잡으시고 케릭터 빨리 잡으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6.25전쟁이고...민족의 아픔을 너무 잘 다루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80년도 백두산부대 66연대 도솔산, 펀치볼, 가칠봉에서 군생활을 했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 한번 가고싶내요.
역전다방 한국전쟁편을 보고 있으니, 어째서 -화력덕후 포방부- 국방부가 화력에 목 매는지 이해가 되네요
역전다방에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요즘 나오는 국산무기에 어떤 전투의 교훈이 녹아있는지 생각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양질의 방송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6.25 참전 회고록에서 고지전에 대한 심정글------
적진을 향해 엄청난 준비사격의 포화가 날아가기 시작할때
공격개시선의 병사들 얼굴에서 보여지는 공포와 어두운 표정들
머리속은 텅빈것같고..터질것같이 긴장된 육체는...공격 개시와 동시에 풀리면서.. 어떤 쾌감까지 느낀다
돌격선까지 도달해서 신호탄을 발사하고 적진을 쳐다보는 기분.....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뾰족하고 가파른 고지는 병력이 산개할공간이 비좁아 횡대로 돌진하지를 못하게 한다...
별수없이 교통호를 따라 한,두줄로 기어올라 9부선상의 수류탄 투척거리에서 정상의 적과 대치한다.
적은 우리에게 방망이수류탄 고리를 여러손가락에 끼고 다발로 퍼부어대며 희생자를 강요한다
그 무서운 탄막을 뚫고 우리도 일제히 수류탄을 던지면서 적의 산병호에 뛰어든다.
뛰어들면 진내에서 소총근접전, 동굴전, 피의 육박전이 벌어진다......
생과 사를 가르는 운명의순간이 펼쳐진다.
목표를 점령하였다
오성신호탄을 쏘아올리면 하늘높이 다섯개의 불꽃이 터져 서서히 사라져가는 광경의 황홀함이란.
대공포판을 후사면에 깔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주님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등 중얼댄다.
이젠 일몰과 동시에 몰려오는 적의 역습...... 필사의 방어전이다 ....... 또 진내서 피의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새벽에 고지의 8부능선으로 후퇴해 대치하고....... 또 우리가 공격한다.......다시 벌어지는 진내 지옥도 아수라장
혼전상황에 양쪽포탄이 피아 구분없이 동시에 막 퍼부어진다. ..... .
적군 아군 할거없이 사람이 산산조각나는 생지옥이다
임무를 끝내고 살아남으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하다.
나는 과연 불사조인가? 천운인가?......... 스스로 자문해본다
국방홍보원 역전다방 진행자 여러분 수고 많으십니다.
소싯적 도솔산 밑 동면에서 살았습니다. 대북방송 대남방송을 들으며 자랐지요. 이젠 도솔산 터널이 건설 됐지만 예전에는 해안을 힘들게 넘나들었습니다. 피의능선 단장의 능선 전투를 대강 들었는데 역전다방에서 자세히 공부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요. 더불어 광주상무대까지 군생활과 인연이 있어 몇번 다시 보기를 했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어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에서 정상까지 가보려고 했으나 왜 출입통제를 하는지 아쉬움이 컸다. 지금은 후방에서 기거하지만 양구지역은 잊을 수 없는 고향입니다. 6.25 당시 부터 지금까지 선배제현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어 소인이 자라고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국방홍보원 역전다방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
김일성고지 모택동고지가 위치하고 을지전망대가 있는 그곳에서 군생활을 했었죠. 여름엔 1주일에 5일이 안개속인대다 8월에도 12시엔 야상을 안입고는 못 버티고 겨울엔 허리까지 눈이 쌓이고 체감온도 영하 30도는 일상적인 극한지입니다. 12사단 후배 여러분 화이팅입니다.
다 퍼줬네 미국 너무 고마워
다 퍼주기 전에 다 버려서 이 문제가 생겼죠... 미리 좀 잘하지.....
80년중반 피의능선 983 에서 파견근무했던 기억이남니다 여기저기 땅만파면 쏘다져나오는 녹슨탄피들을보며 많은생각을 했던곳 가슴이 먹먹합니다
밴플리트 장군님은 오래전에 아들이 실종되서 잃은 분으로만 알았는데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군요. 아들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네요.
고맙습니다 ^^*
21사단 66연대 gop에서 아침점호후 펀치볼 내려다보면 구름이 그릇에 담겨있는것처럼 장관이었습니다
10:33 군시절, 5사단 군가 부르던 가사속 가칠봉이 저기구나!
심소령님 진짜 멋져요~~~~쵝오~~~!!!!!
5사단 출신입니다.
사단가에서 나오는 가칠봉, 피의능선 전투가 역전다방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주로 신병이 많았던 한국군은 경험 많은 고참보다 상황판단 어려운 신병들의 소모가 미국에 비해 너무 많았다는게 더 큰 슬픔이였습니다.
고귀한 넋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펀치볼 저동네에서 군생활 했는데
운해가 정말 멎져요
습도가 높다는거 진짜 ㅎㅎㅎ
ㄹㅇ 공감, 겨울에 해 뜰 때 쯤 gop 소초에서 펀치볼 바라보면 운해가 정말 경이롭고 멋집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풍경이 있나 싶습니다.
채박사님은 사실 엄청난 천재가 아닐까? 책을 한번만 읽어도 통으로 외워버리는 기억력과 그에 맞는 이해, 계산력을 가져서 뭐든 빨리빨리 배우고 넘겨버려서 별별 지식들을 다 가질 수 있는거지
카이스트 물리학박사에서 이미 천재 인증한듯ㅋㅋㅋ
97군번 백석산 800고지 169 찰리포대 근무했습니다 선배님이 있었기에 저희도 있을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96년 안보교육 제4땅굴 견학갔을때가 생각나네요. 양구에 있는 2사단 근무했는데 두돈반 트럭에 실려 5월달에도 눈과 얼음이 있는, 초병들이 방한복을 입고 근무하는 무시무시한 산꼭대기에 폭 들어간 동네가 있다는것이 신기했었는데 해안면 펀치볼 지역은 엄청난 피의 결과로 얻은 값진 땅이었네요.
저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지역이 ㄹㅇ 중요한 게 저 축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대체로 고도가 낮아지는 형세라 여기를 먹으면 북쪽을 훤히 감시하고 북한이 이쪽으로 남하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효과가 크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양구읍과 주변 일대를 모두 감제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길 뺏지 못했거나 다시 북한이 먹어버리면 양구읍 방어가 불가능해 모두 버리고 소양강까지 후퇴해야 했습니다. 산악지대라 쓸모없을 거 같지만 국군과 유엔군이 저 능선들을 괜히 치열하게 싸워서 뺏은 게 아닙니다
마지막 멘트 인상 깊네요
항상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국군5사단 27 연대 안상열 일등병
가칠봉 전투중 적군 폭탄 파편 에
다리 머리 중상~~치료가 된줄 알고
38년간 생활하시다~~
머리에 폭탄파편으로 인해
87년11월 뇌종양진단
(진단 당시 말기로 극심한고통에 3개월 만에)
88 년 2월 보훈병원에서 57세 로 사망
대전 현충원 사병 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부친의 헌신에 경의를표합니다
@@채월띠
답글 감사합니다~~
건강 하시고~~행복 하세요~~
@@인디언-i1h
네 항상 응원합니다
어제 현충일이라 더욱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ㅎ
이런 전투들을 보면 휴전회담 시작 이후로도 절대 유엔군이 설렁설렁 싸우지 않고 한뼘의 땅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희생했는지 알 수 있죠. 실제 휴전회담 시작때인 51년도 7월때의 전선과 최종 휴전선 간에는 상당히 차이가 난답니다. 서부, 중부, 동부 모두 상당히 더 북상했죠 ㅋ
진짜 우리나라가 대단한거에요.ㅜㅜ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
펀치볼 북서쪽의 가칠봉의 바로 위에 있는 1211고지를 수복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ㅜ 이 고지 북쪽으로는 양구-동면-금강, 원통-서화-이포-금강 축선 사이로 고도가 쭉 낮아지는 형세라 1211고지를 빼앗으면 금강군까지 북진을 막을 지형물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1211고지를 빼앗으면 금강산을 수복하는 건 물론이고 동부전선이 강원도 통천까지 북상했을 겁니다 ㅋ 그래서 1211고지를 북한이 사수한 것을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저 고지를 신성시하죠
예전에만 해도 이런 저런 고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사실 대국적으로 보면 잘못된 전략 때문에 부각된 부차적 목표였다는 생각만 듭니다.
21사단 66연대 11중대에서...대암산근무
피의능선, 펀치볼, 해안을 지나 절터에서도 근무
철책00기지에서도 근무
40년전이네요
그렇군요
85년 7월군번
66연대 2대대 6중대
두솔대대 GOP 1소초
근무 겨울대대였음
반갑습니다
철책이중화 작업 하셨나요?
내가갔을때는 이미완료
@@kwoanghokim 우리 근무때 철책따라 근무초소만들고(시멘트 등에지고,벽돌도 등짐으로 져 올리고) 통문열고 들어거서여러종류 작업하고...다 위험한 작업이라 지뢰사고가 나서 전우도 잃고.... 우리때가 마지막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진짜 이것만 기다림..
ㅋ~ 눈물의 1031고지. 12사단 관할 서쪽 끝 GP가 여기서 부터 시작. 80년초 12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어 경계근무를 섰던 곳. 펀치볼은 21사단 관할 구역이었는데 1031GP에서 펀치볼 까지 선임병 4명이 몰래 야간 행군으로 가서 막걸리 한 말을 사서 장대에 걸고 돌아와 소대 전체가 한 사발씩 목을 축였으나 나중에 21사단에서 이를 알고 12사단에 연락 조사하는 바람에 들통나 엄청 혼나고 기합 빡시게 받았음. 그러나 재미 있었음. 별도 처벌은 받지 않아어요. 정말 간도 컸었지. 위수지역을 벗어났으니 탈영이나 다름 없었고 21사 야간 초병들에 들켜 오해를 샀더라면 총에 맞아 죽었을 수도 있었음. 44년전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함. 영하 20도 의 산꼭대기에서 '빤바라(빤스 바람 복장)' 기합은 죽음보다 힘들었네요. 얼었던 몸이 녹는데 전신에서 일어나는 극도의 간지러움으로 손톱으로 피부를 파내어 피가 철철 흘러도 미칠 정도로 간지러워 비명을 지르고.. 그런 가혹행위를 했던 소대장은 다음날 바로 후방으로 전출 조치 되었고요. 무식하고 잔인한 세월이었음. 병사는 인간도 아니고 그져 1회성 총알 받이 소모품 취급을 당했던 시절. 그시절 의식이 변함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얼마전 훈련병이 중대장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분노할 일이 벌어졌지요.
밴버지는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감사한 분이네요...국부라고 칭해도 과하지 않을..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 잘 보고 갑니다.
ㅋㅋㅋ 비하인드 영상 너무 재미있네요!
피디님 창고에 이런 꿀잼 영상들이 많을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언제 한번 쫙~ 창고 대개방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사단이 이렇다할 전공이 없다가
피의 능선에서 치열한 투혼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네요...
80년대 5사단 36연대 1대대 출신자...
합천의 초계적중 분지에 두개의 읍면이 들어있고,
물이 흘러 나오는 길이 오직 하나임.
내 고향 합천에 옛 어른으로 부터 하늘에서 엄청난 불덩어리가 떨어졌다는
구전 전설같은 말이 전해 들었다는 사람도 있음.
5사단종전직전,금성전투역습한사단,5사단
반갑습니다 93군번 36 4대대입니다 ㅎㅎㅎㅎ 사단가에 피의능선 가칠봉 전투얘기가 나오는데 저곳이었네요.
안녕하세요. 선배님이시네요. 최소한 저보다 2~10년 정도는 어른이실 듯 하니 건강 잘 챙기십시오.
전 91군번 5사단 27연대 입니다.
제가 자대배치 받았을 때 88년 11월 군번이 제대 말년이라서 나보고 맞먹으라고 놀려대곤 했었음.
그 다음 소대 왕고가 89년 1월군번(한 병장님)이었는데 그 분 덕에 막내 신참 시절이 나름 재미있었음. 허구헌날 야간 점호 후에 창고에 집합당해서 구타당했었는데 가끔은 그 분이 나한테 시킬 일 있다고 열외시켜주기도 하고, 밤에 불침번 서고 있으면 일직하사 시켜서 라면 끓여오라고 해놓고 막사 바깥 뻬치카 불 때는 곳에 데리고 가서 라면도 먹여주기도 했음.(당시 라면 먹다가 일직사령에게 걸리면 군장 메고 연병장 수십바퀴는 돌아야 했는데 제대 얼마 남지 않은 병장들에게는 다들 눈감아주는 분위기였음)
나중에 내가 소대 왕고가 되어서 자다가 라면 끓여오라고 해서 불침번 서고 있는 신참이랑 같이 빼치카입구에서 라면 먹어봤는데 이상하게도 그 맛이 안남. 신참이었을 때는 눈물나게 맛있었는데....
한번은 그분이 사수로 내가 부사수로 밤에 부대 바깥에 있는 탄약고 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편하게 생각을 한건지 몰라도 암구어를 깜빡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대충 얼버무리면서 "나야" 그러니까 근무서고 있던 사람들이 "단결"하고 인사하면서 그냥 넘어갔음. (중대 전체에서 최고 왕고인 시절이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음)
당시 군대 분위기에서 암구어 안챙기고간 부사수는 보통의 경우라면 근무서는 내내 구타를 당하고, 또한 그 다음날 아침 점호후에 깜깜한 창고에 집합당해서 작살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아무일 없이 잘 넘어가기도 했음. 내 동기는 암구어를 외우고 갔는데 너무 긴장해서인지 잠시 깜빡했다가 근무시간 내내 깍지끼고 엎드려뻗쳐를 하고 또 그 상태에서 고참이 군화발로 차고 밟고 해서 손톱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던 험악한 시절이었음.
하여간 80년대 군번이라고 하시니까 그분 생각이 많이 나네요. 한 병장님도 잘 지내시고 계시겠죠?
선배님 안녕하세요 16군번 5사단 36연대 1대대 에서 복무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립니다
그시절 군생활은 얼마나 고되셨을지 짐작조차 가질않네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작고하신부친 5사단36연대피의능선전투참가,당시소대장
오늘도 유인한 방송 잘보고 갑니다
비하인드도 재밌게 봤습니다. 이런 비하인드 많이 올려주세요
6.25전쟁 끝나면 베트남 전쟁 역전다방 시선으로 보고싶어요
담주에 공군 훈련소에서 시험 봤던 승호리철교 작전이 나오는군요... 귀중한 영상 늘 감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다음 회를 벌써 기다립니다..
미군의 엄청난 피해에 숙연해 지네요 감사합니다
97군번사태리에서근무했었는데 다시가보고싶네요
동부전선이 산악지대만 가득하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치가 없다며 동부전선 북상을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ㅜ 하지만 산악지대는 고도가 높아 적들의 침입을 바로 감시할 수 있어 침입을 막기 수월하고 적들이 여러 우회로들을 통해 남하하고 우회 공격하는 길들을 봉쇄하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절대 중요도가 낮지 않습니다
우리의 땅 한 뼘엔 가치가 낮고 높음이 없죠.
피 흘린 선대의 노고에 감사드릴뿐이죠.
@@참기름-d8x 서부지역은 인구와 농업 생산성 면에서 동부지역은 군사적인 가치 면에서 다 중요하죠 ㅋ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피를 흘리신 선조들의 노력에 묵념
설악산 가는 길에, 저 무수한 고지군 마다 한뼘한뼘의 땅을 순국 선열들의 피를 뿌려가며 확보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끔씩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21사단 66연대 사태리 가칠봉 도솔산 천봉 그리운 이름이네요..ㅋㅋ 벌써 10년전이구만
90년도에 사태리에 있던 gp에서 근무했는데, 기억이 아련하네요!
군대에서 배운 전술전략론에서 아직도 기억나는게 공산당은 정치는 총성없는 전쟁이고 전쟁은 총칼로 하는 정치라고 교육받는다는 것이죠.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차암.. 가슴아프다 이놈에 625...
잃는게 있으면 얻어지는 것도 있어 위안은 삼지만..
너무나 아프다...
펀치볼은 동부전선에서 가장 중요성이 높은 요충지입니다 ㅋ 해안분지라 병력과 물자의 집결에 유리하고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들로 즐비해 방어와 공격에 매우 유리하죠. 그리고 서쪽으론 양구-동면-금강 축선 (31번 국도), 동쪽으론 원통-서화-이포-금강 (453번 지방도)가 모두 남북으로 나란히 달려 북한이 두 통로를 통해 양구와 인제로 남침하는 길들을 감시하고 막을 수 있답니다 ㅋ 또 역으로 우리가 북진시 두 통로들을 이용해 금강산과 회양으로 진격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요
관할지역이 나오니 흥미가 더 하네요.
철원.양구..
재밌다~!~!!~~!
1211고지가 드디어 나오네요. 수복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움ㅜㅜ
저 고지가 북한 입장에선 마지막 보루입니다 ㅜㅜ 지금도 저 고지 지켜낸 걸 굉잔히 신성시 하고요. 저길 우리에게 빼앗기면 금강산은 물론 강원도 통천까지 단번에 밀려났을 겁니다
배구하다가 아빠 군번 선임한테 죽빵을 날려서 한동안 선임 별명이 펀치볼이 됐었는데 군 생활 기록 새록새록 나는군여
40:55 한국 초기에 장교집단이 최고 엘리트집단이었던 이유
지금 미국은 맘에 안들지만 그 당시 미국 덕분에 한국이 자라난 것은 부인할 수 없네요
미국이 고맙네요
우리는 원래 전투민족이다.
조부께서 피의능선전투 에서 전사하셨습니다.
좋아요가 아니라 애도 입니다.
펀치볼유래가...와인잔 바닥(받침대)부위가 오목하게 들어가서 미군이 이지역을보고와인잔 손잡이 믿부분을 떠올라서 펀치볼이라고했답니다.
한국의 경제 개발 성장의 바탕을 벤버지 장군이 만든 것이 었군요.
가평 춘천 탈환전, 피의 능선 가칠봉 청사에 아로세긴 전공 세운 5사단!
여기에 임용한 교수님도 계시면 완벽한데
전쟁 초기와 다르게 유독. 고지전시 공군의 지원이 없었을까 궁금합니다.
밴플릭트라는 분은 정말 대단하시네
2.25전쟁당시 저희아버께서는 제주도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전투에 참여
하셨다고 하셨는데
제주도 훈련소는 언제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96년에 운전병으로 21사단 66연대 931고지에 단장의 능선 근무 했습니다...지도 보니까 전부 아는 곳이네요 983고지 비득 이목정 사태리 가칠봉 금강op 참 지프로 하루에 몇번을 다니던 곳 이었는데 이련한 추억이네요...983, 931고지는 아무 곳이나 샆으로 파도 탄피 군용 용품들 어마하게 나오던게 기억이 나네요
21사단애들 진짜 개생고생함 수고하새여
저 랭글러계획에 나온 통천이 바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고향이죠 ㅋㅋ 정주영 회장이 1998년 소떼를 몰고 방북해 저 통천에 가서 고향 사람들 만났죠 ㅋ
유엔군 최초의전투인 오산 죽미령 전투도 다뤄주세요...
화력덕후의 시작이군요. 미국이 어떻게 하는지 봤으니...
대구와 해남에도 크레이터가 있지요.
21사단 백두산부대
동면 팔랑리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나마 미군의 화력이 있어서 아군피해가 줄어들었네요
일주일에 두번했으면 좋겠다요 ㅜㅜ
고지전을 단순히 고지 하나 먹기 위해 쓸데없이 인명과 물자를 소비했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ㅠ 그러나 고지를 먹고 뺏기냐의 문제는 고지 딱 하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해 버리면 그 고지 하나만 잃는 것이 아닌 고지가 감제하는 반경 수km~수십km 범위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 같이 포기하고 후퇴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들이 침투할 수 있는 고지 주위의 통로들이 적에게 열려 버리고요. 괜히 휴전 직전까지 조상님들이 수없이 힘들게 고지쟁탈전을 치른 게 아닙니다
단장의 능선 스타크래프트 맵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이름이 붙은 에피소드가 있었군요
한국전에는 벤버지가 있었고 월남전에는 벤장군이 없었구나
부친형님,조카삼대가12사단근무
초계분지 관련한 내용은 몇년전 EBS에서도 방영되었습니다. 암튼 한국 현대사는 초반에는 일본이라는 부정적 영향과 후반에는 미국이라는 긍정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본과의 접촉이 많아 기술전수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착각하나 실제 중요 기술은 미국이 전수해 주었고 일본은 시시하거나 한물간 기술 몇 가지만 전수해 주었습니다.
까 공감
원래는 15일씩 4번었는데 다 못찿아먹고 전역하는사람들이 소원수리 넣어서 3번에 20일 짜리휴가로변경
난 85년 7월군번
66연대 2 대대
일주일 포상휴가로 부산집에가면 3일자고 또가는느낌
영화 퓨리에서 셔먼도 뒤로 가서 쐈고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서도 해치 밖으로 나가 탱크 포탑 뒤에서서 M2를 갈깁니다. 이유는 대공 방어 때문이라고 하네요. 해치에선 고각 사격이 힘든데 반해 뒤쪽에 마운트를 달면 쭈구리고 앉으면 고각이 나오니깐 그렇게 해놨다고 하더군요.... 셔먼이 마운트를 바꾼건 고각사격을 포기 한건지...아니면 마운트 자체가 고각 사격이 되는건지 궁금하네요.
벤버지🇺🇲🇺🇸 한국 🇰🇷 군 아버지 군대도 제대로만들었구나 베트남전쟁때 남베트남군 제대로 못만들어서 실패😮
미군에게 베트남군의 작전권이 없었죠.
@@truth1472 북풍통일 님 20년후 이라크군 미군 제건 성공 아프간 군 실패 원인이 뭘까요 🤔 😀
@@남자탁용삼
앞의 이라크의 문제는 설명이 더 필요하네요.
이라크군 미군 재건이 무엇을 의미를 하는지 더 설명을해봐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한 것은 빈라덴 제거라는 목적을 이뤘기 때문이고요.
아프가니스탄의 군대가 바로 서지 못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나라 구조 자체가 하나의 동네 마다 통치자가 따로 있기에 무너진거죠.
구심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고 미국으로서는 계속 주둔을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철수를 한거죠.
@@truth1472 아 그래요
@@남자탁용삼
이라크는 이미 통합된 군대가 있던 나라였었고 후세인 세력을 제외한 세력으로 군대를 만들면 되는 상황이었죠.
후세인의 반대편 종족들로 군대를 만들면 되는 상황이었죠.
완전군장에 공용화기 메고 고지전을 지금은 못하죠. 군장만 싸도 귀한 우리 우쭈쭈하는 엄마들과 훈련중 사망사고만 나도 지금이 전시가 아닌데 왜 군장을 싸냐는 댓글들.... 심지어 고문이라고까지 ...
기본적으로 전쟁은 나와 아무 관련없고 하청주면 된단 인식이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어 있음. 학교, 관공서 등 모든 요직을 여성이 70%장악. 군복무자는 무직자.
내가 알고 있는 고지 전투는 방카 고지, 볼모고지, 포크찹 고지, 백마고지, 저격 능선, 지형 능선, 수도 고지, 크리스마스 고지, 피의 능선, 단정의 능선, 351 고지, 철의 삼각지대, 김일성 고지 밖에..... 그 외에 수많은 고지 전투가 있겠지만...
역시 전쟁은 무기가 아니라 정신력.......
미육군 기갑부대에는 P-47 썬더볼트가 있습니다 ㅋㅋ
유구한 세계 미군의 현지 군대 건설 실패사례 가운데 유별난 성공 사례가 우리나라였죠.
기관총 거치대는 2차대전때나 셔먼 퍼싱 패튼 M47 하다못해 찌프차도 공통인 건데. 셔먼이 다를 게 없지요. 그냥 무게가 덜 나가니까 산에 올라가기 쉬웠고, 차폭도 좁아서 산길 소로에서도 잘 움직인 것이고. .......... 그냥 가볍고 작아서 다른 탱크보다 고지에 올리기 좋았다 정도...
비득고개추억돋네울중대저고개서일주일동안철조망설치작업했던곳 피의능선지역 은온갖엠원실탄과간혹엠1대검도나오는등전쟁때정말치열했음을실감함천도리함가보고싶네서화리도
M36 '스톤월' 잭슨 전차..크으
고지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한건데 포격이 안통하면 블록버스터같은 폭탄을 쓸생각은 왜 않했을까요? 화력에 미친 미군이?
라이브는유!!!😂
월드오브탱크 해봤던 사람이라면 구축전차가 익숙할텐데 ㅎㅎ
====고지공격====
넌 이제 고지를 점령하러 올라간다
네가 고지를 올라갈때부터.......... 포탄이 다발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포탄들이 잠잠해지면 ..................지뢰가 여기저기서 너를 기다린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면,............어김없이 적 기관총들이 애처롭게 흐느낄 거다
이놈들의 기관총이 끝나면...........이젠 수류탄이 다발로 너를 향해 날아올거다
수류탄의 다발이 멈추면 ............이젠 총검과 함께 동물적인 육체의 향연이 너를 기다릴거다
고지를 점령하고 싶나? .............. 앞에 순서를 무사히 통과한자에게만 그 행운이 갈것이다
끝났다고 생각하나?......................반대로 적이 똑같이 올라올것이다
이 지랄을 수없이 반복하고도 살아있다면..............너의 주변에는 아무도 아는얼굴이 없을것이다
102보에서 듣던 말 인제가도 안원통해 양구가 있으니까 ㅋㅋ 21사 87년 당시 가장 가난하고 암울한 사단 이였는데 보급도 항상 모잘라 ㅋㅋ 누가 그리 삥을 치는지 딱 하나 좋은점 그때 당시 정기 휴가가 타부대 보다 10일 많았음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봐야 겠네요 부산이라 너무 멀다 휴가 나올때도 17시간 걸려서 왔는데 ㅋㅋ
그냥 올라왔다
구축전차 잭슨
저기서 아침점호 할때 구름이 봉우리들에서 꺾여 넘어가는거 보곤 했는데 장관이긴 했음
우울할때는 망망대해에 갖힌거 마냥 산에 갖혀있단 느낌도 들었고
진짜 격전지가 대부분 경치가 좋았었음
채팅창 볼려고 했는데 아쉽네....
다시는 슨배임들과 같은 치욕을 겪지 않겠다는 12사단 신교대의 意志로 훈련합니다!!!!
후방상륙작전으로 적의 보급로를 끊으면 저토록 철저히 요새화된 진지라도 쉽게 제압했을텐데 제공 제해권을 가진 유엔군이 피흘리는 고지전에 고착된건 엄청난 전략 전술의 오류였군요. 물론 냉전으로 전세계를 고려하는 전략이 3차대전을 유발할수있는 확전을 원하지 않았었던게 아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