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님도 백마고지 전투 참전 했던 분이었고 가끔 그 회고를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만화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역전다방을 보니 그말씀이 다 사실이었네요. 20년전 돌어가셔서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습니다. 아버님과 625전쟁과 각종 도발로 희생된 모든 호국영령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 보충병 중 한 분이 현재 현중원에 누워계신 제 할아버지 입니다. 전투부상으로 일병 제대. 제대 후 한쪽눈 시력을 잃은 것으로 다행으로 여기며 제 아버지 포함한 자식들이 보훈청 신청을 요구하였으나 전투에서 돌아가시고 크게 다치신 전우들을 생각하며 국가재정도 좋지 않으니 차마 요청을 못한다고 거절하시다가 돌아가시기전 80년대말 그제서야 보훈청에 6.25참전부상용사 신청, 할아버지 가시고 난후 할머니 혼자 남으실 상황을 대비하시고, 90년대 중반에 선산에 누워계시다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몇해전 현충원으로 이장함.
어머니가, 너희 외할아버지가 백마고지를 열번 넘게 들어갔다 살아나오셨다고 항상 말씀하시긴 했는데, 이렇게 생생하게 들으니 외할아버지가 겪으셨을 그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후에 상무대에서 교관까지 하시다 은퇴하셨는데, 살아계실 때 알았더라면 그때 그 피끓는 이야기 더 들어볼걸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런 방송으로라도 접할 수 있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지전을 그저 고지 하나 먹기 위해 인명과 물자를 소비했다고 가치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겁니다.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하면 그 고지 딱 하나만 잃는 게 아니라 고지가 감제하는 해당 반경 수km~수십km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 같이 포기해야 합니다. 괜히 휴전 직전까지 조상님들이 수없이 고지쟁탈전을 치른 게 아닙니다.
예시를 들어보면 후크고지: 여기 뺏기면 임진강 이북 연천군 방어 못해서 다 포기하고 정확히 임진강이 전선이 되었습니다. 백마고지: 여기 빼앗기면 철원평야 중부 다 포기하고 고대산-금학산까지 전선 물러나야 했습니다. 고암산: 여기 획득하면 평강고원 서쪽 다 먹고 북한의 안협-평강 통로는 물론 신계-지하리-이천-평강 통로까지 차단하여 황해도-강원도 간 연결이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오성산: 여기 획득하면 평강고원, 회양, 창도, 금성 일대 다 감제해서 추가령-철령-통천 선까지 전선 북상했습니다. (즉 지금보다 약 50km 가량 더 전선이 북상했습니다) 백암산: 여기 먹히면 화천은 물론 춘천 방어까지 위협받고 조양ic 근처까지 후퇴했을 수 있습니다. 어은산: 여기 획득하면 임남호, 금강산댐은 물론 미수복 강원도 중동부는 거의 다 수복 가능합니다. (즉 금성-창도-회양 축선의 동쪽은 다 수복했을 것입니다) 가칠봉: 여기 먹히면 펀치볼의 방어가 불가능하게 되어서 펀치볼을 포기하고 도솔산까지 밀려나야 했습니다. 1211고지: 여기 획득하면 금강산을 수복하고 동부전선이 강원도 통천군까지 올라갔습니다. 향로봉: 여기 먹히면 고성군 내륙지역은 물론 진부령도 방어가 위험해져 미시령까지 밀려났을 가능성 높습니다
@@j_oy7088 고지를 먹게 되면 주변의 다른 고지의 유지를 안정시켜 주고, 적이 내려오는 통로들을 감제하여 침략을 막고, 우리의 통로를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감제 반경의 영토를 안전히 방어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의 휴전선이 주요 고지들을 잘 확보해서 북한이 남침시 이용할 수 있는 통로들을 감시하거나 아예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볼수도있지만 솔직히 지도펴놓고보면 역곡천 뒤쪽고지들에서 수비하는게 훨씬 수비에 용이함 백마고지 바로뒤가 지금 국경인데 역곡천 뒤에고지들 먹고 지켯어도 솔직히 피해가 백마고지전보다 상당히 미미할거같음 근데 무리하게 진행한건 자존심이랑 다시 공격할때 이익때문인거같은데 미군이 진격할 맘이 없엇는데 백마고지전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움
@@rkh3207 지형도 보시면 백마고지를 빼앗기면 화살머리고지도 유지하지 못해서 같이 뺏기는 거고 역곡천 뒤의 고지들만으론 철원평야 중부 절대 못 지킵니다.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 두 고지가 철원평야 중부와 철원읍 안전히 지키는 보루라. 여기 뺏기면 전선은 10km 가량 쭉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철원을 포함한 철의 삼각지대는 (Iron triangle: 남서쪽의 철원, 남동쪽의 김화, 북쪽의 평강) 아래와 같은 특성들이 있습니다 1. 여러 통로가 모이고 여러 통로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이자 교통결절점입니다 2. 서울, 경기와 관북을 잇는 남북 방향의 통로와 영서와 해서, 관서를 잇는 남동-북서 방향의 통로가 서로 교차합니다 3. 경원선이 관통하여 서울-원산의 중간 지점이며 내금강으로 가는 금강산선이 분기합니다. 4.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맛있는 쌀이 나 농업에 유리하고 병력과 군사 물자의 대규모 집결에 적절합니다 5.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한 입지입니다 6. 서울로 향하는 남북축 주요 통로 3개와 (3번 국도, 43번 국도, 47번 국도) 춘천, 원주로 남하하는 영서내륙 통로가 동시에 갈라집니다 7.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동부를 (토산, 금천, 신계, 평산) 거쳐 사리원과 평양으로 오가는 통로의 관문이자 길목입니다. 8. 우리가 여기를 가지게 되면 중부전선에서 북한의 남침을 한 곳에 모아 막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며 유사시 북진할 경우 동시에 원산 방면과 (추가령 구조곡= 철원-원산 축선) 황해도 방면으로 (곡산 회랑 = 방원령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9.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 여러 경로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던 38도선 분단 시절과 달리 지금은 중부지역에서 남침할 수 있는 방법은 철의 삼각지대를 뚫는 것이 유일합니다 실제로 철원 지역은 강원도에 속하면서도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우리가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게 됨으로서 얻는 이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철원평야 중부를 안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2. 철원-김화 간 동서 통로를 안전히 이용하고 지킬 수 있습니다 3. 토산(시변리)-안협-철원 간 동서 통로를 북한이 이용하지 못하게 차단합니다. 이로 인해 북한이 평양원산선 이남에서 황해도와 강원도 간 동서 연결을 하기가 많이 어려워집니다 4. 안협-평강 간 통로를 북한이 방어하고 유지하지만 전선에 가깝고 두 고지에서 움직임을 감시하므로 북한이 이 통로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5. 북한의 감제고지를 고암산(김일성고지)으로 후퇴시킵니다
이땅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특히 젊은 시절 아니 얼마전까지도 미국이라는 존재를 다소 껄끄럽게 생각했는데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약 140 명 이상의 미 장군들 아들이 참전했고 그중에서 40 명 넘게 전사했다는 것을 알고 알지도 들어본적도 없는 먼 이국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희새에 크게 감사드린다
제가 식견이 짧은 탓일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전투행위 인듯 합니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곳을 무거운 장비를 들고 지고 목슴을 내어놓고 산비탈을 박박 기어올라가고, 그 와중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졸려도 자지도 못하고, 더구나 이 생고생이 언제 끝난다는 보장도 없고...휴~~~ 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기엔 인간의 언어가 너무 짧은듯 하군요.😢
미군이 9사단을 6.25때 훈련 잘 시켜서...월남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헛된 투자는 절대 아니었음...1966년부터 1973년 철수할때 까지 7년여를 베트남에서 같이 싸웠으니까...전통적인 우방인 영국, 캐나다도 파병을 거부하고...호주와 뉴질랜드는 대대급 병력만 보냈지만...우리나라는 외화벌이와 군원이관이라고 해서...미군이 우리군에게 군수품 지원을 하던 것을 중단하려고 했던 것을...파병 기간동안 계속 해서 해주기로 약속했고..우리군 현대화 지원...플랜트 기술 전수, 일본에서 제철, 조선, 자동차 기술을 전수 받게 해줘서...베트남전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바탕으로..오늘날의 재벌들이 탄생하는 마중물이 되게 해줌...그리고 현대중공업을 만들어서...500원 지폐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며...그리스에 배를 납품한 것이 아니라...현대중공업이 선박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듣게된 밴플리트 장군이...그리스 내전당시 군사고문으로 있었던 그리스에 찾아가서...그리스 정부와 선박왕 오나시스를 설득해서 선박을 수주한 것임...정주영 500원 지폐는 정주영 미화용 자서전 내용이고...실제는 밴플리트 장군 덕분에 현대중공업의 신화가 시작됨...어떤 또라이가 지페 뒷면에 있는 거북선(서양인 기준으로 거북선이 뭔줄 알고?)만 보고 선박을 발주함?
30연대 95년 군번입니다. 영상을 보다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군가의 일부가 떠오르네요..근데 이 군가의 음 은 모릅니다. 고참들에게 배울때도 가사만 받았고 음은..그냥 악쓰면서 부르던거라..기억나는 가사의 일부는 "백마고지 지켜온 육탄3용사의 투혼으로 호국의 선봉에선 백마부대 ?용사들"..로 시작하는 군가? 사가? 가 있었던게 기억나네요. 그 뒤는 기억이 잘 안나구요..훈련과 행군 드럽게 많이 했었는데..일요일에도 화스트페이스 걸어서 대대주둔지내 소산진지 점령하고 대기하다 상황해제도 하고..온갖 훈련이란 훈련은..ㅎ
백마고지(395고지), 화살머리고지는 모두 철원읍, 철원평야 중부의 북서쪽에 위치해 철원평야를 감제합니다. 두 고지의 오른쪽으로는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선 및 추가령구조곡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두 고지의 바로 아래에는 철원읍에서 안협(북한 철원군 철원읍)을 거쳐 토산 시변리로 가는 통로가 위치합니다. 그리고 바로 위로는 안협에서 평강으로 가는 좁은 계곡길 (구룡강을 따라 형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이 두 고지를 먹냐 뺏기냐는 고지 주변을 지나는 여러 통로들을 감제하고 지키느냐의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도가 매우 높았죠
말로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데 실재는 얼마나 처참했겠습니까. 그 많은 고비 고비에 자신들의 목숨을 던지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단순하게 그냥 목숨 걸었다가 아니라 진짜 목숨을 던져 동료를 구하고 나라를 구한 이들이 있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들의 숭고한 희생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님들의 피로 지켜낸 나라... 죽어서도 지키고 계실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ㅠ ㅠ
백마고지, 화살머리고지를 빼앗겨 철원평야 중부를 다 상실해서 고암산 정상에서 3일을 통곡했죠. 농업 생산력이 높은 비옥한 옥토를 잃었거니와 서울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들도 다 뺏기고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동부를 거쳐 사리원과 평양으로 가는 좋은 통로도 막혀버리게 되었죠 ㅋㅋ
우리가 철원과 김화를 가져온 것이 군사지리적으로 이점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ㅜ 여러 통로들이 모이고 갈라지는 교통결절점이자 병력과 물자의 집결에 적절한 넓은 평지가 펼쳐진 지점을 먹는 것은 적이 내려올 교통로들을 차단하고 적이 군사적으로 서로 연결할 통로 간을 막는 효과도 있답니다
백마고지가 위치한 철원평야는 여러 교통로가 모이고 갈라지는 요지이고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들로 둘러싸여 군사적인 중요도가 매우 높습니다. 현재 휴전선이 기존 38선에 비해 우리에게 더 유리해진 이유들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철원을 얻은 것인데 김일성이 철원을 상실하자 3일 동안 고암산에서 울었을 정도입니다. 왜 철원이 이렇게 중요도가 높은지는 본 방송에서 자세히 글로 서술할 예정입니다.
우러전-독소전 시작하면 1년이상은 후딱 갈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6.25와 연속성있는 청일/러일 전쟁편을 하면서 근대 한반도 전쟁편을 마무리 짓는것도 좋을 것 같군요. 혹은 곧 일어날 수 있는 양안전쟁을 대비하는 차원과, 6.25의 적군 중공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국공내전 or 중일전쟁 편을 하는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승리한 전투들을 강조하는 중공도 백마고지 전투만큼은 철저히 패배한 것을 인정할 정도로 국군이 힘들고 처절하게 싸워서 얻어낸 고지입니다 ㅋ 백마고지가 왜 이렇게 양쪽 다 사활을 걸고 얻으려 했는지는 군사지리적으로 중요도가 매우 높은 고지이기 때문이며 왜 그런지 관련 지식들은 매우매우 많답니다 ㅋ
9:39 베트남전, 우크라이나전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될 놈만 지원하는 하지, 그냥 미국이 무턱대고 돈을 퍼 주겠습니까... 거기에 수 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피가 흘렀는데 ㅠ 고지전을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시적으로 봤을 때 안타까움은 당연하지만 그곳에서 피를 흘린 피가 의미 없는게 아닙니다.
여기 전투가 치열해서 유해 찾는다는 소식들었는데 중공군 유해도 엄청 나오는듯 부상병이 우리 국군도 있지만 중공군도 있다니 워작 뒤엉켜서 싸우다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네요 !!!! 그런데 1951년 7월 이후로는 휴전협상이 들어간 상태라 굳이 이렇게 싸우지 않아도 되었는데 당시에 스탈린이 서유럽으로 나가기 위해서 세계인의 이목을 한반도에 묶어 두려고 휴전을 해 주지 않다 보니 여기서 우리는 엄청난 피를 흘렸는데 막상 스탈린이 죽자마자 휴전이 되는거 보면 이 당시에 이 정세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빨리 스탈린을 암살했더라면은 ??? 이 전선에서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 수십 수백만 보다 한명 죽이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텐데 ,,,,,,,,,,,,,,,,,,
The korean war : The Chinese intervention JOHN S. BROWN Brigadier General, USA Chief of Military History ( 한국전쟁 : 중국의 개입 , JOHN S. BROWN Brigadier General, USA Chief of Military History 미국 전사 연구소장 브라운 준장 ) 링크 걸면 글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구글에서 ( The korean war The Chinese intervention ) 검색하면 바로 나오니 확인해보길. ------------------------------------------------> 한국전 때 유엔군 지상군 과반 + 해공군력의 대부분을 제공한 미국이 한국전쟁 기술할 때 저렇게 중국이라는 표현 사용. ------------------------------------------------> 이념-감정 들어가지 않은 무미건조한 단어 사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 한국전 당시 해당 공동체 인구의 거의 100%를 장악한 세력에게 중국이라는 이름 사용한 것에 불과. ------------------------------------------------> 냉정하게 본다면 장개석이 대만으로 쫒겨난 순간 이미 인구와 영토에서 중국이란 이름 사용의 대표성 상실. ------------------------------------------------>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중국군 이름이 뭐건 변할 건 없습니다. 그리고 포클랜드전 때 BBC는 우리 식으로 한다면 아군-적군 또는 북괴군-국군 표현 아닌, -------------------------------------------------> 제3자 비슷하게 무미건조하게 모든 감정 다 뺀, 영국군-아르헨티나군으로 표현해 영국 정부와 군에 항의받기도. -------------------------------------------------> 항의받은 후에도 표현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전쟁 때 이미 중국어 사용자 수와 영토의 거의 100%를 점유한 세력을 중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공이라고 표현할 합리적 이유는 없을 것. 미국도 냉정합니다. 표현만 중국 대만이라고 하지 않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회에서 대만을 축출한 다음 대만과 단교 + 모택동의 중국을 상임이사국으로 앉혔으니. -------------------------------------------------> 미국이 저러니 대한민국 역시 국익 추구 또는 비열? ( 님 입장에선 비열할 수도 ) 모드로 대만과 단교 아마 1979년 무렵. 미국은 핑퐁 외교로 공산 중국을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시켜 오늘날 거대한 G2로 변하게 만든 1등 아닌 0등 초특급 공신.
주적 개념과 + 주적을 구태여 명시할 필요성, 둘 모두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한반도 민족 내부 주적질과 완전 대비된 철천지 원수 이민족 연합체의 세계 패권 장악과 내부 패권 승계 무시할 수 없는. 내부 주적질 >>>> 남북의 극단적 좌우익 사생결단 투쟁관 -------------------------------------------------------> 아직 인류는 아와 비아의 투쟁 예외 없으며, -------------------------------------------------------> 모든 도전은 비아로부터 아를 향해 오며 +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을 아가 하는 것. -------------------------------------------------------> 아와 비아의 투쟁 및 도전과 응전, 단순히 인간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 아닌 바이러스와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내포. 내부 주적질에 대해 냉정할 필요, 대한민국 유신-두환 시절 초중고 학생들은 사실상 국가가 제시한 이념으로 가축과 같이 사육되었지만 그들이 가장 강력한 반독재 투쟁자로 번한. 통행금지 + 국민교육헌장 암기 + 국기하강식 + 고등학교 여학생도 교련 + 대학생 교련만이 아닌 전방 입소와 문무대 교육에, 북과 유사하게 뻑하면 학생들 동원해 궐기대회 규탄대회 + 해 마다 6.25 무렵이면 국민학생들이 학교 운동장 빙빙 돌며 행진하며 6.25노래 부르고. --------------------------------------------------------> 냉정하게 본다면 유치 찬란, 북이 아직도 하는 짓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깨닫길. 생각해보길. 한반도 남북의 6.25노래 가사 보면서 두려움에 떨 세계인들이 얼마나 될지. ------------------------------------------------------> 아마도 가사 확인한다면, 세계인들 다수는 재들 같은 민족끼리 왜 저래??? 생각해보길.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체 연합왕국의 룰브리타니아 가사 보면서, 세계인들이 연합왕국 우습게 여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길.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모국 영국이 반공을 국시로 하고 구소련과 현중국을 과연 주적으로 명시했는지. 주적 명시는 어리석은 겁니다. 명시하건 하지 않건 주적에 대한 대비만 철저하면 됩니다. 한국전 직전 주적에 대한 적개심 노출 및 개전 직후 전선 붕괴가 반례. ----------------------------------> 한국전 직전 일부 국군 장성들이, ----------------------------------> 주적 북괴에 대한 적개심과 자심감을 밝혔어도, 개전 직후 전선 붕괴. ----------------------------------> 그들은 이렇게 자신만만 했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 그러나 현실은 완전 달랐던.
아더왕 신화 : 앵글로색슨 용병을 불러들인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 신화로 거듭나다. 로마 철수 후 로마화 문명화한 켈트가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로마에 투쟁했던 켈트 막기 위해 앵글로색슨 용병 고용. 수 백년이 흐르며 결국 용병들이 고용주 켈트 지배층 내쫒고 잉글랜드 왕국 건설. 이후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증오와 투쟁. 영국 정확히는 연합왕국 UK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원수나 다름 없는 증오가 가득찬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연합체. 현재 한반도 남북의 적대감, 대한민국 내부 동서 지역분열 등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피의 복수혈전 반복되던. 하지만 연합왕국 성립 이후, 그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제국으로 팽창했고 미합중국 건국의 초석을 놓았죠.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평화적 합병으로 연합왕국, 이 후 내부 분열 극복하고 세계제국으로 팽창. 중미 식민지 개척에 국운을 걸고 전국민이 투자했다 파산한 스코틀랜드 의회는 잉글랜드와의 평화적 합병을 승인하고 연합왕국이 수립됩니다. 그 이전 까진 같은 국왕 다른 나라였던 동군이국이었는데 진정한 한 나라로. 여기선 그 내용은 생략하고, 로마제국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 시작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브리튼 제도에 오래 전 이주해 살던 켈트족. 줄리어스 시저의 잉글랜드 남부 상륙 시작으로 로마에 점령. 로마화 문명화한 다수 켈트인들이 로마제국 백성으로 번영을 누릴 때, 로마의 군사력에 산악 오지였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바다건너 아일랜드로 쫒긴 켈트인들 로마에 저항. (유명한 미 드라마 왕좌의 게임, 7왕국은 고대 앵글로색슨 7왕국, 스타크 가문이 지키는 북쪽의 얼음장벽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장벽.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웨스트로드 땅덩어리는 아일랜드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붙인 다음 남북을 뒤집은 형태. 즉 왕좌의 게임은 통채로 고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에 기반한 작품입니다. 켈트인들은 얼음장벽 너머의 종족들. 하지만 결국 나중엔 장벽 너머에서 나타난 공동의 적 상대로 함께 싸우게 되죠. 영국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켈트와 앵글로색슨의 원한 증오 시작해보죠. 제정로마 후기 로마가 위태로워지자, 로마 본토 수호를 위해 브리튼의 로마군이 철군하면서, 이미 로마화한 켈트인들은 로마에 저항했던 야만적 켈트인들은 두려워했고, 그들을 막기 위해 현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 지역의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 수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굴러들어온 용병 앵글로색슨이 박힌 돌 문명화한 켈트인들을 내쫒고 잉글랜드 수립. 같은 민족인데 단합하지 못한 켈트인들, 앵글로색슨에 패해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쫒겨났습니다. 그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후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태어난 것이 아더왕 신화입니다. 현실에선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해서 패배했지만, 신화 속에선 승리하죠. 아더왕의 적은 앵글로색슨 침략자. 그 앵글로색슨이 바이킹의 일족 노르만에 정복당해 오늘날의 영국 왕조 수립. 덴마크 스칸디나비아에 기원을 둔 바이킹들이 유럽 각지로 퍼저나가면서 일부 세력이 프랑스 노르망디 점령. 군사력이 너무 막강해 물리칠 수 없었던 프랑스 국왕은 노르만 공이라는 작위 내리고 땅을 영지로 하사하며 달램. 잉글랜드 왕족들과 친척인 노르만 공이, 잉글랜드 국왕 승계 문제로 전쟁.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앵글로색슨 왕조가 붕괴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노르만 왕조가 성립. 노르만디 지역엔 앵글로색슨에 추방된 수 많은 켈트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노르만과 함께 잉글랜드 정복군에 가담. 노르만 정복 이후 아더왕 신화가 영국과 유럽에 널리 퍼짐. 선주민 켈트, 켈트를 정복한 앵글로색슨, 그 앵글로색슨을 정복한 극소수 노르만 바이킹, 노르만 바이킹에 협력해 앵글로색슨에 복수한 노르망디의 켈트 유민들. 그들이 뒤섞여 현 영국. 분열해서 좋을 것 없습니다. 민족의 원수 주적이 같은 민족인 것은 어리석죠.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했던 로마화한 켈트인들의 주적은, 같은 민족인 켈트였습니다. 현명한 외세는 어리석게 내부 분열하는 틈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분열한 켈트인들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와 반성이 신화로 재창조된 것이 아더왕 전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더왕 신화는 켈트를 넘어 모든 브리튼 거주민 및 브리튼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모든 이의 신화. 용병으로 굴러들어왔던 앵글로색슨과 그 앵글로색슨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던 노르만 바이킹의 고대로부터의 관습들이 국왕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에 좀 더 저항하게 만들었고, 결국 잉글랜드 왕국 내부로부터, 느리지만 점진적인 왕권제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1215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으로 성과가 시작.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증오에 바탕한 투쟁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죠. 잉글랜드는 결코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의회 스스로 평화적 합병을 결정. 그 관련 내용은 여기선 생략합니다. 일단 연합왕국 구성 이후엔, 그들은 내부의 증오가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지는 것을 철저히 회피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한국전쟁과 같은 내부 역량을 갉아먹는 대규모 유혈 분쟁을 피하면서 대외 팽창.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약했던 민주주의 싹이 연합왕국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대서양 동서 양편에서 입헌군주정과 공화정으로. 미국 건국은 붕괴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의 약 2000년 후 부활입니다. 미국 건국에는 수 많은 켈트의 후손들이 가담했고, 앵글로색슨은 미 건국의 아버지 대다수였죠. 비록 켈트의 나라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앵글로색슨과 함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는 제2의 조국으로 미국을 건국하였고 많은 미국 대통령도 배출했죠. 사실 함께 섞여 산지 오래라 유전적 분류는 무의미하고, 스스로 누구의 후손이라 여기는지 문화적 차이가 더 중요. 2차대전 때 미 장군 패튼이 몽고메리에 감정적 대립을 보인 겉으로 말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그가 스코틀랜드 후예. 스코틀랜드는 작지만 정말 대단한 지역입니다. 현재 인구 고작 500만 정도인데, 영국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1/3, 영국군 막강한 부대들 배출. 영국은 독일 보다 과학분야 노벨상 수 더 많고, 단위 인구당 수상자 수로는 미국의 2배 이상인데 영국에서 압도적. 아담스미스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 연합왕국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죠. 영국이 만든 세계표준의 거의 다는 스코틀랜드의 결정적 역활 때문. 스코틀랜드 단독으로는 결코 그런 일들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원수나 다름 없는 이민족들이 뭉쳐서 내부 분열을 극복하고 세계로 뻗어나가, 함께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또한 영국에서 파생된 미합중국을 건국해서 세계패권을 승계하며 유지한 역사. 영국은 오늘날 지구촌 자체를 기본 포맷, 세계 표준 확립. 1. 의회 대의 민주주의 2.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산업혁명 3. 뉴턴 이후 자연과학 혁명 4. 명확한 룰 체계 갖춘 근현대 스포츠 5. 현 최강국 미국 건국 기초 물리학과 공학의 가장 밑바닥 핵심 단위명만 봐도 확인되는. 힘의 단위 뉴턴N + 일과 에너지 단위 쥴J + 일률 와트W + 절대온도 켈빈K, 가장 밑바닥은 영국인 이름 딴. 그 유명한 아인쉬타인도 아직 핵심 기본 단위명 채택이 없을 정도로, 미신과 암흑이 판치던 세상에서 가장 먼저 자연과학의 문 통과. 앞으로 수 백 년 자연과학의 새로운 성과가 누적되고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과학들이 개척되어야, 더 근본적인 새로운 단위들로 교체될 것. 내부 주적질 환장한 공동체들은 저런 시도를 해볼 여력 없기에 기본 자격도 안되는 겁니다. 민주주의 가볍게 보지 말기를. 그 어떤 효율적-유능-탁월한 개발독재도 선민주-후경제개발 세력과의 패권 경쟁에서 패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며 + 또한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지난 수 백 년 최고의 교양과 최강의 주먹은 가장 먼저 내부 민주화를 달성한 세력. 철천지 원수 연합체 켈트-앵글로색슨의 세계 패권 쟁취와 비교한다면 지극 한심한 지구촌 최고 순도 한반도 내부 자폭 주적질 겸허히 반성해야.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 공동체 연합왕국.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웨일즈 등 켈트와의 끝 없는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내렸던 결단 2가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왕권을 스코틀랜드에 넘기고 + 왕세자 이름,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 아닌 프린스 오브 웨일즈!!! 얼마 전 영국 여왕 사망. 사망 직전 여왕은 스코틀랜드 고성으로 이동해 거기서 사망. 왜??? -------------> 우연 아닐 겁니다. 입헌군주제에 대한 반감으로 공화정 여론 + 스코틀랜드 독립 의지 ---------------> 등을 고려해 연합왕국 유지를 위한 나름의 마지막 행보??? 현 영국 왕가는 부계 + 모계 전부 다 살피면, 앵글로색슨 왕조의 알프랫 대왕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부계만 따지면 외부 침략 + 영국내 정변 + 아들이 없이 공주가 왕이 되면서 데릴사위 성씨 ----------------------> 사유로 몇 번 바뀐. 부계 성씨 가장 큰 변화는 3번 정도. 노르만 정복 때 노르만 바이킹이 앵글로색슨 부계를 대체 + 엘리자벳1세 사망 후 스코틀랜드계로 부계 바뀜 + 공주가 왕이 되며 독일계 데릴사위 ( 명예혁명 때, 유럽 거주 영국 왕실 후손 여왕 + 여왕의 부군 하노버공 공동 국왕. 빅토리아 여왕 때 부군 앨버트 공 ---------------> 데릴 사위 성씨로 부계. ) (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국 왕실 부계가 독일계라고 독일이 잉글랜드 정복한 것 아닌 그냥 여왕의 부군 데릴 사위. ) ( 1차대전 때 데릴사위 독일계 성씨 문제로, 영국 왕가 성씨는 윈저로 바뀌고 영구 고정. 즉 앞으로는 공주가 왕이 되더라도 데릴사위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윈저 성씨를 영구히 사용. ) 노르만 정복은 이미 소개했으니 스코틀랜드 왕가로 잉글랜드 왕위가 넘어간 부분 소개하죠. 엘리자벳1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현명했습니다. 로마군 철군 후 반복된 켈트-앵글로색슨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잉글랜드의 최고 권력을 철천지 원수 스코틀랜드 쪽 친척에게 넘기는 결단 했던. 후계 없이 사망할 때 엘리자벳1세는 잉글랜드 내부 아닌 스코틀랜드 쪽 친척인 스코틀랜드 현직 국왕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승계시킨. ------------------------------------------> 1603년? ~1707년 연합왕국 출범까지, 약 100년간 같은 공동 국왕 + 서로 다른 두 나라 체제가 유지되다 ------------------------------------------>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의 평화적 합병 결의로 연합왕국 출범 + 파산한 스코틀랜드의 모든 부채를 잉글랜드가 인수 청산 ---------------------------------------------------------------------------------------------------------------------------->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군사적으로 패해 무력 합병된 것 아닙니다. 엘리자벳1세만 현명했던 것 아니랍니다. 영국 왕위 계승자 왕세자의 공식 명칭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 왜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 노르만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웨일즈도 정복. 웨일즈의 반란과 투쟁이 지속되자 잉글랜드 국왕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 웨일즈 대표들과 회동. ------------------------------------------------------------------>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주면 잉글랜드 국왕에게 충성하겠냐? ------------------------------------------------------------------> 웨일즈 귀족들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웨일즈에서 태어나 웨일즈어를 말하는 국왕이라면 충성하겠다! ---------------------------------------------------------------------------------------------------------------------> 즉 잉글랜드 니 넘들 꺼져!!!!!!!!!!!!!!!!!!!!!!!!!!!!!!!!!!!!!!!!!!!!!!!!!!!!!!!!!!!!!!!!!!!!!!!!!!!!!!!!!!!!!!!!!!! 잉글랜드 국왕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임신한 왕비를 웨일즈의 성에 머물게 했고, 운 좋게도 왕자가 태어난. 그 왕자를 프린스 오브 웨일즈로 봉하고 + 웨일즈인 보모에게서 웨일즈어를 배우며 자라도록 했고 + 훗날 왕위를 계승토록. -----------------------------------------------------------------------------------> 이 전통은 이미 1천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모든 영국 왕세자들은 웨일즈어를 어릴 때부터 배웁니다. -----------------------------------------------------------------------------------> 1천년 전부터 모든 영국 왕세자 책봉식은 웨일즈에서 행해집니다. ( 저 현명한 잉글랜드 국왕, 브레이브 하트에 폭군으로 묘사된.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폭군이었던 자가 저랬던. ) 최근 영국 여왕 사망 때 새 국왕 챨스3세의 사실상 첫 임무는, 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 방문해 연합왕국의 연대를 강조, 특히 웨일즈 의회에선 영어만이 아닌 웨일즈어로도 연설. 따라서 아마도 영국 여왕이 사망 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왕조 뿌리이기도 한 스코틀랜드에서 최후를 맞이해 연합왕국 유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여왕 장례식 시청했다면 바로 느낄 겁니다. 스코틀랜드-풍 의식이 연합왕국 공식 의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국왕 지위를 철천지 원수 쪽에 넘기는 통 큰 배포와 피의 투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 ---------------------------------------------------------------------------> 저랬으니 저 조그만 세력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 제국과 미합중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던 겁니다.
1. 100 Greatest Generals in History 역사상 승리 많은 장군 랭킹 : 전투 중요도 가중치 없이 횟수만, 나폴레옹 1위 ruclips.net/video/TmSQriq0zTc/видео.html 2. Have the British really invaded 90% of the countries in the world? 영국은 전세계 국가 90%를 실제로 침략했는가? ruclips.net/video/t86J_zZjjq4/видео.html : 유엔 회원국 193개 시점에서, 무려 171개국 군사적 침공 1. 승리 횟수로 본 장군 랭킹 정리 1위 나폴레옹 56회, 2위 웰링턴 39회, 3위 칼리드 이반 알 왈리드 28회, 4위 줄리어스 시저 23회, 5위 알렉산더 22회 전투 승리 횟수로 본 국가 랭킹과 달리 실제 체감과 차이가 훨씬 더 나는 편입니다. 단순한 전투 승리 횟수 보다 전투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국가 랭킹에서는 누적 전투 수가 1만회를 넘어가지만, 장군 지휘관들의 한 평생 전투 누적 기록은 아무리 많아도 100회를 넘기 어렵게 때문에 통계적 오류 발생 확률이 커서.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시켜도 랭킹 1위, 4위, 5위에는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가 포함됩니다. 문제는 한니발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 20위 근처인데 그런 부분은 결정적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전투 횟수 산정에 애매한 점이 있기 때문이죠.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에 진공한 다음 로마군과 거의 20년을 이태리 반도에서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러진 전투를 어떻게 구분하고 횟수 산정할지 지극히 애매하죠. 한니발은 횟수만이 아닌 질도 결정적이죠. 고국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섬멸전의 원조, 망치와 모루의 원조인 칸나 전투 하나만으로도 한니발은 1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한니발은 최종적으로 로마에 패했다는 약점이 있고, 알렉산더는 아예 패전을 경험한 적이 없이 젊은 나이에 병사. 승리 횟수로만 산정할 때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이 꽤나 순위에 들어가는 오류도 생깁니다. 그런 부분들은 고려하면서 영상 보면 될 겁니다. 충무공이 11승으로 나오는데, 23전 23승 아닌 무패로 본 모양. (충무공의 23전에는 매우 인접한 장소에서 몇 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각각 셈한 결과. 그런 전투들은 1개로 통합될 여지도.) (충무공의 23전 식으로 횟수 산정할 경우, 2차대전 대서양 해전은 어마어마한 횟수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송선단과 유보트 교전 횟수는 약 1,000회에 개별 항해 선박과 유보트 교전은 수천 회에 달하지만 모두 다 교전 횟수로 계산하지는 않았겠죠.) 근대 이후로는 단연 나폴레옹이 압도적입니다. 1차, 2차대전의 탁월했던 그 어떤 독일 장군도 감히 넘보지 못할 기록이며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중반부 이후 포병 장교로 등장해서 워털루에서 패배 까지 20년 동안 유럽을 석권. 1차 대전 독일 4년, 2차대전 독일 6년과 비교할 수 없고 나폴레옹은 모스코바를 점령 후 후퇴했지만 독일은 불가능했죠. 웰링턴의 승리 횟수 상당 수는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제 친척들은 유럽 각각의 국왕으로 임명하면서 스페인 국왕 역시 그렇게 되었죠. 그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반 프랑스 봉기가 일어났고, 영국은 10년 이상 이베리아 반도에서 장기적 전투를 수행. 스페인 전역에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패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 희미한데 프랑스가 스페인에서 손실한 병력이 10년 동안 누적해서 대략 30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랑비에 몸이 젖은 셈이죠. 만쉬타인, 구데리안, 롬멜, 패튼 몽고메리 등도 나옵니다. 롬멜, 패튼, 몽고메리는 제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고 해도 만쉬타인급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2차대전에서 그토록 유능했던 전쟁의 대가 만쉬타인 조차도 인류 전쟁사에선 앞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독일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 독일은 무수한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엔 패배. 영국은 수 많은 전투의 패배에도 결국 전쟁에선 승리. 그 원인은 전투의 중요도 결정성 때문. 1588년 무적함대 격파는 세계제국 팽창 시발점,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충무공의 승리는 조선의 강대국 부상과 아무 관련 없고. 영국 북미와 인도에서의 결정적 승리로 대륙 장악, 트라팔가와 워털루는 유럽의 향후 100년을 결정. 독일은 분명 압도적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결정적 승리가 아닌 지역적 일시적 승리에 지나지 않았고. 2. 영국은 과연 오늘날 존재하는 전세계 모든 국가 90%를 그 어떤 이유건 침공한 적이 있는가? 정리하면 상당 부분 근거는 있는 것 같군요. 침공 후 지배 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 개입, 주둔, 압박. 동영상에 소개된 책자 발행 시점 당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에서 무려 171개국이 영국의 군사적 침공을 경험. 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 관저 : 화이트 하우스, 불 탄 후 흰색 페인트로 가림.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시기 잠시 일어났던 미영 전쟁 중 수도 워싱턴이 점령당해 대통령 관저가 불타버렸죠. 막강한 군사강국 러시아 : 크림 전쟁 때 크림 반도만 점령당한 것이 아니고, 그 무렵 극동에서 캼차캬 반도 까지 일시적이지만 점령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알래스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에 매각했죠.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과 접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영국이나 미국에 먹힐 것이라고 판단해 손 턴 것. 러시아 혁명 당시 적백 내전이 벌어졌고, 영국이 주도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이 무르만스크, 흑해의 크림반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등에 상륙해서 상당기간 점령. 하지만 트로츠키가 지휘하는 적군의 승리로 백군 반혁명군이 패배하자 결국은 모두 철수. ( 적백 내전 당시 영국군이 상륙 점령한 곳은, 북극해 무르만스크 + 발트해 페테스부르크 + 흑해 크림반도 + 카스피해 일부 지역 + 극동 블라디보스톡 등. ---------------------------------> 프랑스 3군데, 미국은 2군데? 상륙, 일본은 블라디보스톡 1곳 상륙. 영국은 5곳 모두에 발 걸치고 공산혁명 진압 시도. ) 중국과 인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카리브해와 남미에도 영국령 섬들과 영령 가이아나. 심지어 조선말 우리도 거문도를 점령당했죠. 일본 역시 일부 지역 번들이 영국과 소규모지만 전쟁 했고.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전쟁터, 독일은 18세기초 말버러공이 이끄는 대륙 원정군의 전쟁터. 지중해는 영국의 연못. 중동 아프리카 생략. 정리하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대다수는 영국의 직간접 침공, 주둔, 압박등 경험한 적이 있다. 없는 곳을 구태여 찾자면, 바다로 부터 완전 격리된 몽골과 같은 정도. 그런데 다른 강대국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죠. 대영제국은 위대한 영웅에 의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 알렉산더, 징키즈칸, 시저, 나폴레옹 급의 탁월한 군사지도자 없이 고만 고만한 장군들과 그렇게 많지 않은 병력으로 세계 최초로 전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었죠.
1. 4,500년간 전투 승리 횟수 국가별 랭킹 : BC2,500~2,017년, 위키디피아 오른 전투들, 중요도 무시 오직 횟수, 내전 포함. ruclips.net/video/HK5OsDWYJmQ/видео.html 1위 프랑스 1,115회 , 2위 영국 1,105회 , 3위 미국 833회 , 4위 러시아 491회 , 5위 독일 425회 6위 스페인 387회 , 7위 폴란드 344회 , 8위 로마 259회 , 9위 중국 244회 , 10위 터키 210회 위키디피아 등재된 전투가 어떤 규모 이상인지 아니면 규모 상관 없이 역사 기록에 남은 전투 모두인지 모름. 승률이 아닌 승리 횟수만을 반영한 통계. 프랑스가 횟수로는 근소한 차의 1위지만, 승률로는 1위는 아닌 느낌. 2차대전 대서양에서 벌어진 해상 전투들은 나타나지 않는 것 같군요. 4,500년 전체 관점에서는 미미한 오류.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미세한 차이는 역전되고도 남을만한 누락임도 분명합니다. 영국은 수 백년 동안 해상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반으로 강대국으로 거듭났는데, 대규모에 결정적인 해상 전투들도 누락된 느낌. 마찬가지로 항공전도 빠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4,500년 장기 통계엔 거의 영향은 없고. ( 아마도 영국 항공전 포함 유럽에서의 항공 전투를 1개의 전투 취급했거나 + 대서양 해전의 무수한 유보트 전투들을 종합해 1개의 전투로 처리했을 수도 ) 세계지도에서 전투 발생을 점으로 나타내며 승리 횟수 높은 국가 순으로 자막이 나옴. 인용된 총 전투 수는 약 10,600개 전투의 중요도 가중치 없이 모든 전투를 1회로 단순 평가. 내전에서의 전투 또한 1회로 취급해서 실제 타국과의 전쟁에서 군대의 강력함을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측정해도 결과는 현재 강대국들 다 포함. 비스마르크 통일 독일제국에서 1,2차 대전 까지 막강했던 독일이 5위로 조금 낮은 평가인듯 하지만, 4,500년의 누적임. 로마는 로마공화정과 제정로마를 모두 합산했는데, 생각 보다 전투 횟수가 많지 않은 듯. 중국의 경우는 주로 한족 왕조만 따진 것 같음. 몽골 등이 별도로 계산. 하지만 청나라는 중국으로 환산됨. 즉 국적 분류가 딱부러지게 쉽지만 않고 애매할 수가 있음. 청 등이 중국으로 분류되었다면, 한족 주도의 중국의 승리 횟수와 승률은 추가로 하락하게 됨. 프랑스와 영국은 거의 같은 횟수, 그 두 나라 사이의 전투가 아마도 상당한 비중일 것임. 백년전쟁 여파로. 프랑스는 승리 횟수로 간발의 차이로 영국에 앞선 1위지만, 결정적 전쟁에 패한 충격이 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위 아님. 나폴레옹 때문에 프랑스의 1위가 결정된듯. 하지만 나폴레옹 몰락 후, 특히 보불 전쟁 부터 프랑스는 중요한 전쟁에서 패배한 취약점이 있음. 프랑스의 승리에 노르만 정복을 포함한다면 수정 필요. 노르만 정복의 승리로 현재의 영국이 완성되니까 영국의 승리, 영국의 내전 횟수로 기록해야 되는데 파악할 길은 없음. 노르만과 앵글로색슨 왕가는 애초 친척지간. 친척간의 왕위 다툼.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3위. 하지만 남북전쟁으로 내전에서 승리 횟수도 상당히 많음. 폴란드 전투 승리 많은 편. 폴란드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세계사에서 막강했던 세력들이라 간단한 어림셈도 상당히 정확한 결과를 낸듯. 2. 거의 같은 자료, 세계지도가 아닌 국가별 통계로 1위~100위 까지 나열한 랭킹 총 전투 횟수는 약 12,000회로 더 많음. ruclips.net/video/xgLKVaJwpXY/видео.html 1위 2위 ...10위 결과는 1번 자료와 동일함. 승리 횟수도 같거나 거의 같음. 미국은 역사가 아주 짧지만, 남북전쟁 이후 1차 2차대전 참전과 2차대전 이후로는 현재 까지 꾸준히 계속 전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3위에 오른 것 같음. 영국은 2차대전 이후에도 미국과 거의 같은 전장에서 함께 전투하기 때문에 승리 횟수도 늘고. 저런 통계를 분석한 사람이 외국에 존재한다는 것, 사용된 원본 데이터에 상당한 오류나 누락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크게 보았을 때 지난 4,500년간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 시야 대단히 넓은 것. 개인적으로 정리한다면, 1. 4500년간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유럽. 2. 주관적 가중치 부여하면, 가장 강력한 전투 민족은 영국 범게르만의 일족으로 통합한다면 영국 미국의 앵글로색슨과 독일. 미국의 인구 구성 조차도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를 통칭한 영국계 및 독일계가 백인의 주류. 3. 1차 2차대전 독일의 막강함이 인상적이었지만, 미국이 독일 아닌 영국으로 부터 건설되었듯 영국의 영향력 결정적. 4. 영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군대의 규모, 병력 수에서는 다른 경쟁국 보다 작지만 승리 많고 결정적 승리를 반복. 그 전통이 여전히 남아 미 육사의 샌드허스트 경연에서 영국과 영연방에 미국 조차 압도당할 정도로 지난 수 백년 지구촌 최강 전투 민족은 원조 앵글로색슨. 사관생도들 경연에서 저런 결과, 그 원인은 소규모지만 꾸준히 어디선가 계속 전투 중이고, 그 전훈을 지속 엎데이트 하는 걸로 추정. 실전 경험 없는 군 또는 실전 경험은 있지만 전훈을 엎데이트 하지 않는 군의 생도들 압도. 5. 위키디피아에 등재된 기록은 일단 영어가 압도적이고 분석하는 사람도 영어 자료를 분석했을 듯. 따라서 영어권 아닌 지역의 전쟁이나 전투 기록은 영어로 올리지 않는다면 제외될 수도. 그래서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대 발생한 전쟁들, 고대 몽골 초원의 전투들을 모두 포함했는지 확인 안됨. 즉 역사는 실제 사건 발생 여부를 떠나, 기록을 남긴 자들의 영향력이 더 크게 남음.
제 아버님도 백마고지 전투 참전 했던 분이었고 가끔 그 회고를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만화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역전다방을 보니 그말씀이 다 사실이었네요. 20년전 돌어가셔서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습니다. 아버님과 625전쟁과 각종 도발로 희생된 모든 호국영령들께 감사 드립니다.
아버님께 직접 들으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친의 헌신 경의를표합니다
두분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같은 분들의 피로 지켜낸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영웅
오늘 방송은 재미 있게보다, 화랑고지11중대 인원중 살아돌아온 인원이 2개 분대가 되지 못했다는 심중령님의 맨트에서 .. 소름이 쫘악 끼쳤습니다... 그 말로만 듣던 백마고지전투의 전사를 자세히 들으면서, 재미보다는 마음이 숙연해 지네요... 백마고지의 용사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 !
국군이여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금 누리는 자유 피흘려 지켜내시고 막으신 헌신과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패널분들 응원합니다 ~~
70여년전.. 대한민국 영토를 지키기위해 싸우신 선배님들의 노고에 머리숙여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그 보충병 중 한 분이 현재 현중원에 누워계신 제 할아버지 입니다. 전투부상으로 일병 제대. 제대 후 한쪽눈 시력을 잃은 것으로 다행으로 여기며 제 아버지 포함한 자식들이 보훈청 신청을 요구하였으나 전투에서 돌아가시고 크게 다치신 전우들을 생각하며 국가재정도 좋지 않으니 차마 요청을 못한다고 거절하시다가 돌아가시기전 80년대말 그제서야 보훈청에 6.25참전부상용사 신청, 할아버지 가시고 난후 할머니 혼자 남으실 상황을 대비하시고, 90년대 중반에 선산에 누워계시다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몇해전 현충원으로 이장함.
지난번 전적기념관에서 바라본 백마고지는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더군요. 70여년전 화랑고지 백마고지를 넘나들며 산화하신 순국선열들의 영혼이 울부짓는듯 했습니다. 이나라 이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치신 국군용사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마전투 국군선배님들,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소령님 이야기만으로도 처절함이 느껴져서 소름 돋고 진이 빠질 지경인데, 실제 전투는 참,,, 어마어마했을듯요..장진호전투와 또다르네요ㅠ
어머니가, 너희 외할아버지가 백마고지를 열번 넘게 들어갔다 살아나오셨다고 항상 말씀하시긴 했는데, 이렇게 생생하게 들으니 외할아버지가 겪으셨을 그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후에 상무대에서 교관까지 하시다 은퇴하셨는데, 살아계실 때 알았더라면 그때 그 피끓는 이야기 더 들어볼걸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런 방송으로라도 접할 수 있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름 전쟁사 마니아에 나름 많이 안다고 생각 했는데 그런분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습니다.
백마고지도 5번 이상 가봤습니다.
혹시 외할아버님 소속과 직책을 알 수 있을까요?
외할아버지가 영웅이십니다ㅠ 감사드려요 또, 부럽습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이런 유공자 분들이 대우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동 스럽고
치열한 전투이야기입니다
호국영령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선배님들께서 지켜주신 이나라가 현재 이게나라냐는 소릴듣는 현실에 슬퍼집니다..ㅜㅜ
보고 듣는 사람도 지칠 정도로 진과 맥이 다 빠지게 만드는 백마고지 전투편이었습니다. 말이 전투지 말씀하신대로 축소판 6.25 전쟁이네요. 잘 봤습니다.
하. 동감입니다ㅜ 방송 보는것만으로도 백마전투는 소름에, 진빠지고 땀까지 나네요ㅠ
고지전을 그저 고지 하나 먹기 위해 인명과 물자를 소비했다고 가치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겁니다.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하면 그 고지 딱 하나만 잃는 게 아니라 고지가 감제하는 해당 반경 수km~수십km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 같이 포기해야 합니다. 괜히 휴전 직전까지 조상님들이 수없이 고지쟁탈전을 치른 게 아닙니다.
예시를 들어보면
후크고지: 여기 뺏기면 임진강 이북 연천군 방어 못해서 다 포기하고 정확히 임진강이 전선이 되었습니다.
백마고지: 여기 빼앗기면 철원평야 중부 다 포기하고 고대산-금학산까지 전선 물러나야 했습니다.
고암산: 여기 획득하면 평강고원 서쪽 다 먹고 북한의 안협-평강 통로는 물론 신계-지하리-이천-평강 통로까지 차단하여 황해도-강원도 간 연결이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오성산: 여기 획득하면 평강고원, 회양, 창도, 금성 일대 다 감제해서 추가령-철령-통천 선까지 전선 북상했습니다. (즉 지금보다 약 50km 가량 더 전선이 북상했습니다)
백암산: 여기 먹히면 화천은 물론 춘천 방어까지 위협받고 조양ic 근처까지 후퇴했을 수 있습니다.
어은산: 여기 획득하면 임남호, 금강산댐은 물론 미수복 강원도 중동부는 거의 다 수복 가능합니다. (즉 금성-창도-회양 축선의 동쪽은 다 수복했을 것입니다)
가칠봉: 여기 먹히면 펀치볼의 방어가 불가능하게 되어서 펀치볼을 포기하고 도솔산까지 밀려나야 했습니다.
1211고지: 여기 획득하면 금강산을 수복하고 동부전선이 강원도 통천군까지 올라갔습니다.
향로봉: 여기 먹히면 고성군 내륙지역은 물론 진부령도 방어가 위험해져 미시령까지 밀려났을 가능성 높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휴전 이후 다시 전쟁이 시작될때 그 고지는 적을 막아내는 중요한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 고지 다 포기하고 휴전되었으면 휴전기간 내내, 그리고 다음 전쟁 때 우리가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j_oy7088 고지를 먹게 되면 주변의 다른 고지의 유지를 안정시켜 주고, 적이 내려오는 통로들을 감제하여 침략을 막고, 우리의 통로를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감제 반경의 영토를 안전히 방어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의 휴전선이 주요 고지들을 잘 확보해서 북한이 남침시 이용할 수 있는 통로들을 감시하거나 아예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볼수도있지만 솔직히 지도펴놓고보면 역곡천 뒤쪽고지들에서 수비하는게 훨씬 수비에 용이함 백마고지 바로뒤가 지금 국경인데 역곡천 뒤에고지들 먹고 지켯어도 솔직히 피해가 백마고지전보다 상당히 미미할거같음
근데 무리하게 진행한건 자존심이랑 다시 공격할때 이익때문인거같은데 미군이 진격할 맘이 없엇는데 백마고지전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움
@@rkh3207 지형도 보시면 백마고지를 빼앗기면 화살머리고지도 유지하지 못해서 같이 뺏기는 거고 역곡천 뒤의 고지들만으론 철원평야 중부 절대 못 지킵니다.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 두 고지가 철원평야 중부와 철원읍 안전히 지키는 보루라. 여기 뺏기면 전선은 10km 가량 쭉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폭도 감내한 3군신 이야기는 잊지않겠습니다
선배 국군분들 결사항전으로 백마고지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목숨으로 지킨 395 백마고지 화랑고지~~
숭고한 희생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벤장군님 이번주도 감사합니다...
지도에 사진으로. 쉽게 보여줘서 너무좋군요 포대까지. 너무재미있습니다😂
말로만 들어도 숨막히네요. 숙연해집니다.
백마고지전이 영화 고지전의
모티브였구나
백마고지 백마고지 듣기 는 많이 들었서도 이런 전투가 있었는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무명용사 여러분께 미안합니다
9사단 제51포병대대 출신이라 뭔가 더 뜻깊은 내용이네요 나라를 지켜주신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백마~~
보는 내내 눈물이 흐르내요
28연대 1대대 출신입니다.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백마고지 전투 기간과 저희 부대 KCTC 훈련 일정이 겹쳤습니다...사단장이 참 많이 왔습니다 후...
고맙습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목술 걸고 용감하게 싸우지 않은 분들이 없겠지만...
강승우 소위 오규봉. 안영권 병장 님들의 이름이라도 기억하겠습니다....
심교수님...자신감 넘나 멋진것~♡
살벌한 포격에도 결사로 싸우신분들 산화하신분들 마음이 아픕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유튜브도 잘 못 보고 있는데, 그래도 역전다방만은 꼭 챙겨봅니다.
전쟁사를 보면서 힐링이 되는 변태... 가 저만 있는 건 아니겠죠? ㅋㅋㅋ 늘 그렇듯, 이번주도 정말 고맙습니다.
백마고지전투승리는 고구려때 안시성에서 당나라군대에 맞서 승리한 것과 같습니다 한국군의 자존심을 세운 전투입니다
철원을 포함한 철의 삼각지대는 (Iron triangle: 남서쪽의 철원, 남동쪽의 김화, 북쪽의 평강) 아래와 같은 특성들이 있습니다
1. 여러 통로가 모이고 여러 통로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이자 교통결절점입니다
2. 서울, 경기와 관북을 잇는 남북 방향의 통로와 영서와 해서, 관서를 잇는 남동-북서 방향의 통로가 서로 교차합니다
3. 경원선이 관통하여 서울-원산의 중간 지점이며 내금강으로 가는 금강산선이 분기합니다.
4.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맛있는 쌀이 나 농업에 유리하고 병력과 군사 물자의 대규모 집결에 적절합니다
5.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한 입지입니다
6. 서울로 향하는 남북축 주요 통로 3개와 (3번 국도, 43번 국도, 47번 국도) 춘천, 원주로 남하하는 영서내륙 통로가 동시에 갈라집니다
7.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동부를 (토산, 금천, 신계, 평산) 거쳐 사리원과 평양으로 오가는 통로의 관문이자 길목입니다.
8. 우리가 여기를 가지게 되면 중부전선에서 북한의 남침을 한 곳에 모아 막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며 유사시 북진할 경우 동시에 원산 방면과 (추가령 구조곡= 철원-원산 축선) 황해도 방면으로 (곡산 회랑 = 방원령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9.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 여러 경로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던 38도선 분단 시절과 달리 지금은 중부지역에서 남침할 수 있는 방법은 철의 삼각지대를 뚫는 것이 유일합니다
실제로 철원 지역은 강원도에 속하면서도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백마고지 우리군 영웅들의 넋을 그리며, 언제든 적국의 도발에 맞서 싸울 ,만반의 준비를 다 가춰야 될터..
드론 세상...전투전에서 우위 압승을 달성 할수 있도록.. 과거 승리에 도취되는 일이 없이 무기빨 에서..
필승을 기대해 봅니다..
정말 얼마나 많은분들의 피가 흘렷을지 감도 안잡히네요 ㅠㅠ
우리가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게 됨으로서 얻는 이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철원평야 중부를 안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2. 철원-김화 간 동서 통로를 안전히 이용하고 지킬 수 있습니다
3. 토산(시변리)-안협-철원 간 동서 통로를 북한이 이용하지 못하게 차단합니다. 이로 인해 북한이 평양원산선 이남에서 황해도와 강원도 간 동서 연결을 하기가 많이 어려워집니다
4. 안협-평강 간 통로를 북한이 방어하고 유지하지만 전선에 가깝고 두 고지에서 움직임을 감시하므로 북한이 이 통로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5. 북한의 감제고지를 고암산(김일성고지)으로 후퇴시킵니다
우와... 이런 걸 어떻게 다 알고 계시는지... 지식 수준이 ㅎㄷㄷ 하시네요
쉬운 설명 감사드립니다!!!
92년/6/19연/수중 4.9전역하고
23년 작년에 가보고 싶어서 신교대 금학산 학저수지 백마고지 고석정 노동당사 등등 한 번 둘러보고 왔는데..
이렇게 방송으로 다시 들으니 더 집중해서 듣네욤 많은 분들 희생으로 이 땅에 살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열심 싸우셨습니다…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김종오 장군은 명장입니다 6 25전쟁이 났을때 춘천에서 북한군과 처음 싸워서 이기고 이들을 저지시킨게 김종오장군의 6사단입니다
아~~ 듣는 내내 눈물나네..
이땅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특히 젊은 시절 아니 얼마전까지도 미국이라는 존재를 다소 껄끄럽게 생각했는데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약 140 명 이상의 미 장군들 아들이 참전했고 그중에서 40 명 넘게 전사했다는 것을 알고 알지도 들어본적도 없는 먼 이국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희새에 크게 감사드린다
주한미군철수 같은 생각을 가진 자와는 연을 맺지 않을 지어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8인치 견인포 4.2인치 전투지원중대라 공지합동훈련 가면 구경할 수 있는 8인치
제가 식견이 짧은 탓일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전투행위 인듯 합니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곳을 무거운 장비를 들고 지고 목슴을 내어놓고 산비탈을 박박 기어올라가고, 그 와중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졸려도 자지도 못하고, 더구나 이 생고생이 언제 끝난다는 보장도 없고...휴~~~
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기엔 인간의 언어가 너무 짧은듯 하군요.😢
수만발 포격에도 희생이 있었지만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등
미군이 9사단을 6.25때 훈련 잘 시켜서...월남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헛된 투자는 절대 아니었음...1966년부터 1973년 철수할때 까지 7년여를 베트남에서 같이 싸웠으니까...전통적인 우방인 영국, 캐나다도 파병을 거부하고...호주와 뉴질랜드는 대대급 병력만 보냈지만...우리나라는 외화벌이와 군원이관이라고 해서...미군이 우리군에게 군수품 지원을 하던 것을 중단하려고 했던 것을...파병 기간동안 계속 해서 해주기로 약속했고..우리군 현대화 지원...플랜트 기술 전수, 일본에서 제철, 조선, 자동차 기술을 전수 받게 해줘서...베트남전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바탕으로..오늘날의 재벌들이 탄생하는 마중물이 되게 해줌...그리고 현대중공업을 만들어서...500원 지폐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며...그리스에 배를 납품한 것이 아니라...현대중공업이 선박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듣게된 밴플리트 장군이...그리스 내전당시 군사고문으로 있었던 그리스에 찾아가서...그리스 정부와 선박왕 오나시스를 설득해서 선박을 수주한 것임...정주영 500원 지폐는 정주영 미화용 자서전 내용이고...실제는 밴플리트 장군 덕분에 현대중공업의 신화가 시작됨...어떤 또라이가 지페 뒷면에 있는 거북선(서양인 기준으로 거북선이 뭔줄 알고?)만 보고 선박을 발주함?
38군이 천안문사태때 진압군으로 나서고 현재도 수도 북경을 지키는 부대로 알고 있습니다
30연대 95년 군번입니다. 영상을 보다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군가의 일부가 떠오르네요..근데 이 군가의 음 은 모릅니다. 고참들에게 배울때도 가사만 받았고 음은..그냥 악쓰면서 부르던거라..기억나는 가사의 일부는 "백마고지 지켜온 육탄3용사의 투혼으로 호국의 선봉에선 백마부대 ?용사들"..로 시작하는 군가? 사가? 가 있었던게 기억나네요. 그 뒤는 기억이 잘 안나구요..훈련과 행군 드럽게 많이 했었는데..일요일에도 화스트페이스 걸어서 대대주둔지내 소산진지 점령하고 대기하다 상황해제도 하고..온갖 훈련이란 훈련은..ㅎ
백마고지(395고지), 화살머리고지는 모두 철원읍, 철원평야 중부의 북서쪽에 위치해 철원평야를 감제합니다. 두 고지의 오른쪽으로는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선 및 추가령구조곡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두 고지의 바로 아래에는 철원읍에서 안협(북한 철원군 철원읍)을 거쳐 토산 시변리로 가는 통로가 위치합니다. 그리고 바로 위로는 안협에서 평강으로 가는 좁은 계곡길 (구룡강을 따라 형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이 두 고지를 먹냐 뺏기냐는 고지 주변을 지나는 여러 통로들을 감제하고 지키느냐의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도가 매우 높았죠
교본상 155mm 긴급 방열이 3분인가 그랬는데 2분컷 하느라 조뺑이 쳤죠
고생하셨습니다
돌이라도 나오면 불가능할텐데요!
대꾸가 필수로 있어야겠어요!
말로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데 실재는 얼마나 처참했겠습니까. 그 많은 고비 고비에 자신들의 목숨을 던지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단순하게 그냥 목숨 걸었다가 아니라 진짜 목숨을 던져 동료를 구하고 나라를 구한 이들이 있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들의 숭고한 희생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님들의 피로 지켜낸 나라... 죽어서도 지키고 계실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ㅠ ㅠ
저격능선 바로 앞 gop에서 복무할때 밤낮으로 보던 오성산이네요 독특한 지형만큼이나 김일성이 남반부 장교 군번줄 10만개하고도 안바꾼다고 한 그 유명한 오성산과 저격능선 전투 다음 방송이 기다려지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2번째 정주행 했습니다. 항상 잘보고 있어요
86년에 포병여단
8인치 자주포 사수로서
윈없이 방열ㅡ사격했네요
진짜 백마고지 잘보고 가요 감사해요
막은 국군은 대단하고 이걸 계속 뺏은 중공군은 진짜 무섭다 무서워.
김일성이 백마고지에서 져서 철원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암산에서 통곡했다고 하네요ㅋㅋ
백마고지, 화살머리고지를 빼앗겨 철원평야 중부를 다 상실해서 고암산 정상에서 3일을 통곡했죠. 농업 생산력이 높은 비옥한 옥토를 잃었거니와 서울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들도 다 뺏기고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동부를 거쳐 사리원과 평양으로 가는 좋은 통로도 막혀버리게 되었죠 ㅋㅋ
그 정도 안목도 없는 녀석입니다.
군생활을 학저수지를 아침구보로 뛰었는데 저곳에 저런 사연이 있었네요.
기다렸어요 ❤❤
백마 3군신 너무 멋지다...
한국 고지 지형에선 포병과 수류탄이 만능이었군요. 거기에 총검을 조합하면...
우리가 철원과 김화를 가져온 것이 군사지리적으로 이점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ㅜ 여러 통로들이 모이고 갈라지는 교통결절점이자 병력과 물자의 집결에 적절한 넓은 평지가 펼쳐진 지점을 먹는 것은 적이 내려올 교통로들을 차단하고 적이 군사적으로 서로 연결할 통로 간을 막는 효과도 있답니다
같은 청원분이군요 ㅠ..ㅠ 지금 청주입니다
학교에서도 이런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데 ㅜㅡㅜ
그러게 말입니다. 공감합니다... 근데 오히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선생들이 득실득실 하니..
예비군 와서 이걸 보는게 맞겠지?
ㅇㅇ
백마고지가 위치한 철원평야는 여러 교통로가 모이고 갈라지는 요지이고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들로 둘러싸여 군사적인 중요도가 매우 높습니다. 현재 휴전선이 기존 38선에 비해 우리에게 더 유리해진 이유들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철원을 얻은 것인데 김일성이 철원을 상실하자 3일 동안 고암산에서 울었을 정도입니다. 왜 철원이 이렇게 중요도가 높은지는 본 방송에서 자세히 글로 서술할 예정입니다.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네요. 덕분에 항상 참고용으로 잘 보고 갑니다 ㅎㅎ
@@kimnucknam ㅎㅎ 감사합니다
목숨을 희생하면서 지킨 나라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길이 빛내고 감사해야 한다.
백마고지 공방전 시작 22:20 지옥이 따로 없었겠다.. 할말이 없네요
백마고지전투 편 기대된다
11중대원들중 살아돌아온 인원이 2개 분대면 고작 20명 남짓 살아돌아왔다는건데...영화 고지전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중공군 이 징글징글한것들 ..우리 국군 참 대단합니다
웬만한 영화 보다 훨씬 재밌네
인어공주보다 재밌음
백마고지 영화 만들면 대박
비사격 훈련 하루에 20번도 했음 미침 진짜... 눈감고도 방열 가능했음
방열 뺑뺑이의 전통이 저때부터였군요..
625때 국군은 대전차자주포 차량들로 기갑부대를 꾸렸죠
6.25 컨텐츠도 이제 끝이 보이네요 다음 주제는 혹시 독소???
아니면 쉬어가는 주제로 현재 진행 중인 우러전쟁, 이팔전쟁 이야기도 좋을 듯요?
담주는 오성산,저격능선,상감령 전투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ㅋ 그리고 이 외에도 여러 중요한 고지전들과 휴전회담 관련 내용들 그리고 피날레인 금성 전투도 남아 있어서 최소 몇회는 더 남았어요
우러전-독소전 시작하면 1년이상은 후딱 갈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6.25와 연속성있는 청일/러일 전쟁편을 하면서 근대 한반도 전쟁편을 마무리 짓는것도 좋을 것 같군요.
혹은 곧 일어날 수 있는 양안전쟁을 대비하는 차원과, 6.25의 적군 중공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국공내전 or 중일전쟁 편을 하는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유인촌씨나온 625영화에 포탄들고 고지올라가서 폭사한 장면이 기억이나는데 그게 백마고지 작전 이었군요
강승우 소위, 오규봉 병장, 안영권 병장 3군신....이 분들은 아마 처자식도 안남기고 나라를 위해 헌신했는데, 1952년 정치인들은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참...못난 후손은 이제야 알았네요....
2878 378 앞에는 편각 뒤에는 사각 조준점이 었는데, 지금은 우리집 도어락 비번
그랜드 슬램과 클라우드 메이커가 남아있었다면 고지 째로 중공군을 묻었을텐데...
자기들이 승리한 전투들을 강조하는 중공도 백마고지 전투만큼은 철저히 패배한 것을 인정할 정도로 국군이 힘들고 처절하게 싸워서 얻어낸 고지입니다 ㅋ 백마고지가 왜 이렇게 양쪽 다 사활을 걸고 얻으려 했는지는 군사지리적으로 중요도가 매우 높은 고지이기 때문이며 왜 그런지 관련 지식들은 매우매우 많답니다 ㅋ
9:39 베트남전, 우크라이나전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될 놈만 지원하는 하지, 그냥 미국이 무턱대고 돈을 퍼 주겠습니까... 거기에 수 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피가 흘렀는데 ㅠ
고지전을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시적으로 봤을 때 안타까움은 당연하지만 그곳에서 피를 흘린 피가 의미 없는게 아닙니다.
군생활 할때 30연대 연대 본부 까지 가보긴 했네요
상승백마 독수리연대 무적 30연대.
42:55 이당시 병장이란 계급 명이 없는걸로
아는데~~맞나요?
정말 장수가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승패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리더의 중요성 다시한번 느낌니다.
자신은 잘못이 없고 대대장이 잘못했다는 해병사단장의 수치는 오래도록 기억 될 것 같습니다.
나도 105미리 삼포반 출신, 기준포! ♥♥♥
박원장님 계셨으면 발췌개헌 얘기 하셨을 것 같은데 좀 아쉽군요
아마도 세계전쟁사에서 고지전은 유일하지않을까요?
증언이 영화 보다 더 처절하다.
중공군으로 호칭을 통일하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유는요?정치체계 때문인가요?대만은 아직도 중공이라고 하던데 걔네는 하나의 틀에서 싸우는거라 이해할만한데
전투상황도 좋지만 방위군 사태로 어이없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모도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국군 최대의 삽질중의 삽질인데 내보낼리가 없죠.
39:48 자막 내 태극기 좌우 반전 되어있습니다
고지전 영화네 로테이션
9사단 창설 때 주역이었던 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9사단 참모장으로 9사단의 철수작전을 잘 이끌기도 했습니다.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
여기 전투가 치열해서 유해 찾는다는 소식들었는데 중공군 유해도 엄청 나오는듯
부상병이 우리 국군도 있지만 중공군도 있다니 워작 뒤엉켜서 싸우다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네요 !!!!
그런데 1951년 7월 이후로는 휴전협상이 들어간 상태라 굳이 이렇게 싸우지 않아도 되었는데
당시에 스탈린이 서유럽으로 나가기 위해서 세계인의 이목을 한반도에 묶어 두려고 휴전을 해 주지 않다 보니 여기서 우리는 엄청난 피를 흘렸는데
막상 스탈린이 죽자마자 휴전이 되는거 보면
이 당시에 이 정세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빨리 스탈린을 암살했더라면은 ???
이 전선에서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
수십 수백만 보다 한명 죽이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텐데 ,,,,,,,,,,,,,,,,,,
으에아악 열어줘
중국군이 아니라 중공군이죠.
The korean war : The Chinese intervention JOHN S. BROWN Brigadier General, USA Chief of Military History
( 한국전쟁 : 중국의 개입 , JOHN S. BROWN Brigadier General, USA Chief of Military History 미국 전사 연구소장 브라운 준장 )
링크 걸면 글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구글에서 ( The korean war The Chinese intervention ) 검색하면 바로 나오니 확인해보길.
------------------------------------------------> 한국전 때 유엔군 지상군 과반 + 해공군력의 대부분을 제공한 미국이 한국전쟁 기술할 때 저렇게 중국이라는 표현 사용.
------------------------------------------------> 이념-감정 들어가지 않은 무미건조한 단어 사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 한국전 당시 해당 공동체 인구의 거의 100%를 장악한 세력에게 중국이라는 이름 사용한 것에 불과.
------------------------------------------------> 냉정하게 본다면 장개석이 대만으로 쫒겨난 순간 이미 인구와 영토에서 중국이란 이름 사용의 대표성 상실.
------------------------------------------------>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중국군 이름이 뭐건 변할 건 없습니다.
그리고 포클랜드전 때 BBC는 우리 식으로 한다면 아군-적군 또는 북괴군-국군 표현 아닌,
-------------------------------------------------> 제3자 비슷하게 무미건조하게 모든 감정 다 뺀, 영국군-아르헨티나군으로 표현해 영국 정부와 군에 항의받기도.
-------------------------------------------------> 항의받은 후에도 표현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전쟁 때 이미 중국어 사용자 수와 영토의 거의 100%를 점유한 세력을 중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공이라고 표현할 합리적 이유는 없을 것.
미국도 냉정합니다. 표현만 중국 대만이라고 하지 않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회에서 대만을 축출한 다음 대만과 단교 + 모택동의 중국을 상임이사국으로 앉혔으니.
-------------------------------------------------> 미국이 저러니 대한민국 역시 국익 추구 또는 비열? ( 님 입장에선 비열할 수도 ) 모드로 대만과 단교 아마 1979년 무렵.
미국은 핑퐁 외교로 공산 중국을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시켜 오늘날 거대한 G2로 변하게 만든 1등 아닌 0등 초특급 공신.
바둑에서 빵때림은 30집의 가치가 있다고들 한다. 고지가 중요한 이유도 이와 똑같습니다. 전선을 유지하기 위한 교두보가 됨 단순한 언덕 하나가 아닙니다.
황현필이 이거보고 반성좀해야되는디
주적 개념과 + 주적을 구태여 명시할 필요성, 둘 모두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한반도 민족 내부 주적질과 완전 대비된 철천지 원수 이민족 연합체의 세계 패권 장악과 내부 패권 승계 무시할 수 없는.
내부 주적질 >>>> 남북의 극단적 좌우익 사생결단 투쟁관
-------------------------------------------------------> 아직 인류는 아와 비아의 투쟁 예외 없으며,
-------------------------------------------------------> 모든 도전은 비아로부터 아를 향해 오며 +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을 아가 하는 것.
-------------------------------------------------------> 아와 비아의 투쟁 및 도전과 응전, 단순히 인간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 아닌 바이러스와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내포.
내부 주적질에 대해 냉정할 필요, 대한민국 유신-두환 시절 초중고 학생들은
사실상 국가가 제시한 이념으로 가축과 같이 사육되었지만 그들이 가장 강력한 반독재 투쟁자로 번한.
통행금지 + 국민교육헌장 암기 + 국기하강식 + 고등학교 여학생도 교련 + 대학생 교련만이 아닌 전방 입소와 문무대 교육에,
북과 유사하게 뻑하면 학생들 동원해 궐기대회 규탄대회 + 해 마다 6.25 무렵이면 국민학생들이 학교 운동장 빙빙 돌며 행진하며 6.25노래 부르고.
--------------------------------------------------------> 냉정하게 본다면 유치 찬란, 북이 아직도 하는 짓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깨닫길.
생각해보길.
한반도 남북의 6.25노래 가사 보면서 두려움에 떨 세계인들이 얼마나 될지.
------------------------------------------------------> 아마도 가사 확인한다면, 세계인들 다수는 재들 같은 민족끼리 왜 저래???
생각해보길.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체 연합왕국의 룰브리타니아 가사 보면서, 세계인들이 연합왕국 우습게 여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길.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모국 영국이 반공을 국시로 하고 구소련과 현중국을 과연 주적으로 명시했는지.
주적 명시는 어리석은 겁니다. 명시하건 하지 않건 주적에 대한 대비만 철저하면 됩니다. 한국전 직전 주적에 대한 적개심 노출 및 개전 직후 전선 붕괴가 반례.
----------------------------------> 한국전 직전 일부 국군 장성들이,
----------------------------------> 주적 북괴에 대한 적개심과 자심감을 밝혔어도, 개전 직후 전선 붕괴.
----------------------------------> 그들은 이렇게 자신만만 했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 그러나 현실은 완전 달랐던.
아더왕 신화 : 앵글로색슨 용병을 불러들인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 신화로 거듭나다.
로마 철수 후 로마화 문명화한 켈트가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로마에 투쟁했던 켈트 막기 위해 앵글로색슨 용병 고용.
수 백년이 흐르며 결국 용병들이 고용주 켈트 지배층 내쫒고 잉글랜드 왕국 건설. 이후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증오와 투쟁.
영국 정확히는 연합왕국 UK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원수나 다름 없는 증오가 가득찬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연합체.
현재 한반도 남북의 적대감, 대한민국 내부 동서 지역분열 등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피의 복수혈전 반복되던.
하지만 연합왕국 성립 이후, 그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제국으로 팽창했고 미합중국 건국의 초석을 놓았죠.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평화적 합병으로 연합왕국, 이 후 내부 분열 극복하고 세계제국으로 팽창.
중미 식민지 개척에 국운을 걸고 전국민이 투자했다 파산한 스코틀랜드 의회는 잉글랜드와의 평화적 합병을
승인하고 연합왕국이 수립됩니다. 그 이전 까진 같은 국왕 다른 나라였던 동군이국이었는데 진정한 한 나라로.
여기선 그 내용은 생략하고, 로마제국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 시작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브리튼 제도에 오래 전 이주해 살던 켈트족.
줄리어스 시저의 잉글랜드 남부 상륙 시작으로 로마에 점령.
로마화 문명화한 다수 켈트인들이 로마제국 백성으로 번영을 누릴 때,
로마의 군사력에 산악 오지였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바다건너 아일랜드로 쫒긴 켈트인들 로마에 저항.
(유명한 미 드라마 왕좌의 게임,
7왕국은 고대 앵글로색슨 7왕국, 스타크 가문이 지키는 북쪽의 얼음장벽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장벽.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웨스트로드 땅덩어리는 아일랜드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붙인 다음 남북을 뒤집은 형태.
즉 왕좌의 게임은 통채로 고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에 기반한 작품입니다. 켈트인들은 얼음장벽 너머의 종족들.
하지만 결국 나중엔 장벽 너머에서 나타난 공동의 적 상대로 함께 싸우게 되죠. 영국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켈트와 앵글로색슨의 원한 증오 시작해보죠.
제정로마 후기 로마가 위태로워지자,
로마 본토 수호를 위해 브리튼의 로마군이 철군하면서,
이미 로마화한 켈트인들은 로마에 저항했던 야만적 켈트인들은 두려워했고,
그들을 막기 위해 현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 지역의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
수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굴러들어온 용병 앵글로색슨이 박힌 돌 문명화한 켈트인들을 내쫒고 잉글랜드 수립.
같은 민족인데 단합하지 못한 켈트인들, 앵글로색슨에 패해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쫒겨났습니다.
그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후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태어난 것이 아더왕 신화입니다.
현실에선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해서 패배했지만, 신화 속에선 승리하죠. 아더왕의 적은 앵글로색슨 침략자.
그 앵글로색슨이 바이킹의 일족 노르만에 정복당해 오늘날의 영국 왕조 수립.
덴마크 스칸디나비아에 기원을 둔 바이킹들이 유럽 각지로 퍼저나가면서 일부 세력이 프랑스 노르망디 점령.
군사력이 너무 막강해 물리칠 수 없었던 프랑스 국왕은 노르만 공이라는 작위 내리고 땅을 영지로 하사하며 달램.
잉글랜드 왕족들과 친척인 노르만 공이, 잉글랜드 국왕 승계 문제로 전쟁.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앵글로색슨 왕조가 붕괴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노르만 왕조가 성립.
노르만디 지역엔 앵글로색슨에 추방된 수 많은 켈트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노르만과 함께 잉글랜드 정복군에 가담.
노르만 정복 이후 아더왕 신화가 영국과 유럽에 널리 퍼짐.
선주민 켈트, 켈트를 정복한 앵글로색슨, 그 앵글로색슨을 정복한 극소수 노르만 바이킹,
노르만 바이킹에 협력해 앵글로색슨에 복수한 노르망디의 켈트 유민들. 그들이 뒤섞여 현 영국.
분열해서 좋을 것 없습니다.
민족의 원수 주적이 같은 민족인 것은 어리석죠.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했던 로마화한 켈트인들의 주적은, 같은 민족인 켈트였습니다.
현명한 외세는 어리석게 내부 분열하는 틈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분열한 켈트인들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와 반성이 신화로 재창조된 것이 아더왕 전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더왕 신화는 켈트를 넘어 모든 브리튼 거주민 및 브리튼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모든 이의 신화.
용병으로 굴러들어왔던 앵글로색슨과
그 앵글로색슨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던 노르만 바이킹의 고대로부터의 관습들이
국왕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에 좀 더 저항하게 만들었고, 결국 잉글랜드 왕국 내부로부터,
느리지만 점진적인 왕권제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1215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으로 성과가 시작.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증오에 바탕한 투쟁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죠.
잉글랜드는 결코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의회 스스로 평화적 합병을 결정.
그 관련 내용은 여기선 생략합니다.
일단 연합왕국 구성 이후엔,
그들은 내부의 증오가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지는 것을 철저히 회피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한국전쟁과 같은 내부 역량을 갉아먹는 대규모 유혈 분쟁을 피하면서 대외 팽창.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약했던 민주주의 싹이 연합왕국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대서양 동서 양편에서 입헌군주정과 공화정으로.
미국 건국은 붕괴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의 약 2000년 후 부활입니다.
미국 건국에는 수 많은 켈트의 후손들이 가담했고, 앵글로색슨은 미 건국의 아버지 대다수였죠.
비록 켈트의 나라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앵글로색슨과 함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는 제2의 조국으로 미국을 건국하였고 많은 미국 대통령도 배출했죠.
사실 함께 섞여 산지 오래라 유전적 분류는 무의미하고, 스스로 누구의 후손이라 여기는지 문화적 차이가 더 중요.
2차대전 때 미 장군 패튼이 몽고메리에 감정적 대립을 보인 겉으로 말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그가 스코틀랜드 후예.
스코틀랜드는 작지만 정말 대단한 지역입니다.
현재 인구 고작 500만 정도인데, 영국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1/3, 영국군 막강한 부대들 배출.
영국은 독일 보다 과학분야 노벨상 수 더 많고, 단위 인구당 수상자 수로는 미국의 2배 이상인데 영국에서 압도적.
아담스미스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
연합왕국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죠.
영국이 만든 세계표준의 거의 다는 스코틀랜드의 결정적 역활 때문.
스코틀랜드 단독으로는 결코 그런 일들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원수나 다름 없는 이민족들이 뭉쳐서 내부 분열을 극복하고 세계로 뻗어나가,
함께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또한 영국에서 파생된 미합중국을 건국해서 세계패권을 승계하며 유지한 역사.
영국은 오늘날 지구촌 자체를 기본 포맷, 세계 표준 확립.
1. 의회 대의 민주주의
2.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산업혁명
3. 뉴턴 이후 자연과학 혁명
4. 명확한 룰 체계 갖춘 근현대 스포츠
5. 현 최강국 미국 건국 기초
물리학과 공학의 가장 밑바닥 핵심 단위명만 봐도 확인되는.
힘의 단위 뉴턴N + 일과 에너지 단위 쥴J + 일률 와트W + 절대온도 켈빈K, 가장 밑바닥은 영국인 이름 딴.
그 유명한 아인쉬타인도 아직 핵심 기본 단위명 채택이 없을 정도로, 미신과 암흑이 판치던 세상에서 가장 먼저 자연과학의 문 통과.
앞으로 수 백 년 자연과학의 새로운 성과가 누적되고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과학들이 개척되어야, 더 근본적인 새로운 단위들로 교체될 것.
내부 주적질 환장한 공동체들은 저런 시도를 해볼 여력 없기에 기본 자격도 안되는 겁니다.
민주주의 가볍게 보지 말기를.
그 어떤 효율적-유능-탁월한 개발독재도 선민주-후경제개발 세력과의 패권 경쟁에서 패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며 + 또한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지난 수 백 년 최고의 교양과 최강의 주먹은 가장 먼저 내부 민주화를 달성한 세력.
철천지 원수 연합체 켈트-앵글로색슨의 세계 패권 쟁취와 비교한다면 지극 한심한 지구촌 최고 순도 한반도 내부 자폭 주적질 겸허히 반성해야.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 공동체 연합왕국.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웨일즈 등 켈트와의 끝 없는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내렸던 결단 2가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왕권을 스코틀랜드에 넘기고 + 왕세자 이름,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 아닌 프린스 오브 웨일즈!!!
얼마 전 영국 여왕 사망. 사망 직전 여왕은 스코틀랜드 고성으로 이동해 거기서 사망. 왜??? -------------> 우연 아닐 겁니다.
입헌군주제에 대한 반감으로 공화정 여론 + 스코틀랜드 독립 의지 ---------------> 등을 고려해 연합왕국 유지를 위한 나름의 마지막 행보???
현 영국 왕가는 부계 + 모계 전부 다 살피면, 앵글로색슨 왕조의 알프랫 대왕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부계만 따지면 외부 침략 + 영국내 정변 + 아들이 없이 공주가 왕이 되면서 데릴사위 성씨 ----------------------> 사유로 몇 번 바뀐.
부계 성씨 가장 큰 변화는 3번 정도.
노르만 정복 때 노르만 바이킹이 앵글로색슨 부계를 대체 + 엘리자벳1세 사망 후 스코틀랜드계로 부계 바뀜 + 공주가 왕이 되며 독일계 데릴사위
( 명예혁명 때, 유럽 거주 영국 왕실 후손 여왕 + 여왕의 부군 하노버공 공동 국왕. 빅토리아 여왕 때 부군 앨버트 공 ---------------> 데릴 사위 성씨로 부계. )
(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국 왕실 부계가 독일계라고 독일이 잉글랜드 정복한 것 아닌 그냥 여왕의 부군 데릴 사위. )
( 1차대전 때 데릴사위 독일계 성씨 문제로, 영국 왕가 성씨는 윈저로 바뀌고 영구 고정.
즉 앞으로는 공주가 왕이 되더라도 데릴사위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윈저 성씨를 영구히 사용. )
노르만 정복은 이미 소개했으니 스코틀랜드 왕가로 잉글랜드 왕위가 넘어간 부분 소개하죠.
엘리자벳1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현명했습니다.
로마군 철군 후 반복된 켈트-앵글로색슨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잉글랜드의 최고 권력을 철천지 원수 스코틀랜드 쪽 친척에게 넘기는 결단 했던.
후계 없이 사망할 때 엘리자벳1세는 잉글랜드 내부 아닌 스코틀랜드 쪽 친척인 스코틀랜드 현직 국왕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승계시킨.
------------------------------------------> 1603년? ~1707년 연합왕국 출범까지, 약 100년간 같은 공동 국왕 + 서로 다른 두 나라 체제가 유지되다
------------------------------------------>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의 평화적 합병 결의로 연합왕국 출범 + 파산한 스코틀랜드의 모든 부채를 잉글랜드가 인수 청산
---------------------------------------------------------------------------------------------------------------------------->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군사적으로 패해 무력 합병된 것 아닙니다.
엘리자벳1세만 현명했던 것 아니랍니다.
영국 왕위 계승자 왕세자의 공식 명칭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 왜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
노르만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웨일즈도 정복.
웨일즈의 반란과 투쟁이 지속되자 잉글랜드 국왕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 웨일즈 대표들과 회동.
------------------------------------------------------------------>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주면 잉글랜드 국왕에게 충성하겠냐?
------------------------------------------------------------------> 웨일즈 귀족들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웨일즈에서 태어나 웨일즈어를 말하는 국왕이라면 충성하겠다!
---------------------------------------------------------------------------------------------------------------------> 즉 잉글랜드 니 넘들 꺼져!!!!!!!!!!!!!!!!!!!!!!!!!!!!!!!!!!!!!!!!!!!!!!!!!!!!!!!!!!!!!!!!!!!!!!!!!!!!!!!!!!!!!!!!!!!
잉글랜드 국왕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임신한 왕비를 웨일즈의 성에 머물게 했고, 운 좋게도 왕자가 태어난.
그 왕자를 프린스 오브 웨일즈로 봉하고 + 웨일즈인 보모에게서 웨일즈어를 배우며 자라도록 했고 + 훗날 왕위를 계승토록.
-----------------------------------------------------------------------------------> 이 전통은 이미 1천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모든 영국 왕세자들은 웨일즈어를 어릴 때부터 배웁니다.
-----------------------------------------------------------------------------------> 1천년 전부터 모든 영국 왕세자 책봉식은 웨일즈에서 행해집니다.
( 저 현명한 잉글랜드 국왕, 브레이브 하트에 폭군으로 묘사된.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폭군이었던 자가 저랬던. )
최근 영국 여왕 사망 때 새 국왕 챨스3세의 사실상 첫 임무는,
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 방문해 연합왕국의 연대를 강조, 특히 웨일즈 의회에선 영어만이 아닌 웨일즈어로도 연설.
따라서 아마도 영국 여왕이 사망 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왕조 뿌리이기도 한 스코틀랜드에서 최후를 맞이해 연합왕국 유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여왕 장례식 시청했다면 바로 느낄 겁니다.
스코틀랜드-풍 의식이 연합왕국 공식 의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국왕 지위를 철천지 원수 쪽에 넘기는 통 큰 배포와 피의 투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
---------------------------------------------------------------------------> 저랬으니 저 조그만 세력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 제국과 미합중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던 겁니다.
1. 100 Greatest Generals in History 역사상 승리 많은 장군 랭킹 : 전투 중요도 가중치 없이 횟수만, 나폴레옹 1위
ruclips.net/video/TmSQriq0zTc/видео.html
2. Have the British really invaded 90% of the countries in the world? 영국은 전세계 국가 90%를 실제로 침략했는가?
ruclips.net/video/t86J_zZjjq4/видео.html : 유엔 회원국 193개 시점에서, 무려 171개국 군사적 침공
1. 승리 횟수로 본 장군 랭킹 정리
1위 나폴레옹 56회, 2위 웰링턴 39회, 3위 칼리드 이반 알 왈리드 28회, 4위 줄리어스 시저 23회, 5위 알렉산더 22회
전투 승리 횟수로 본 국가 랭킹과 달리 실제 체감과 차이가 훨씬 더 나는 편입니다.
단순한 전투 승리 횟수 보다 전투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국가 랭킹에서는 누적 전투 수가 1만회를 넘어가지만,
장군 지휘관들의 한 평생 전투 누적 기록은 아무리 많아도 100회를 넘기 어렵게 때문에 통계적 오류 발생 확률이 커서.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시켜도 랭킹 1위, 4위, 5위에는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가 포함됩니다.
문제는 한니발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 20위 근처인데 그런 부분은 결정적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전투 횟수 산정에 애매한 점이 있기 때문이죠.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에 진공한 다음 로마군과 거의 20년을
이태리 반도에서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러진 전투를 어떻게 구분하고 횟수 산정할지 지극히 애매하죠.
한니발은 횟수만이 아닌 질도 결정적이죠. 고국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섬멸전의 원조, 망치와 모루의 원조인 칸나 전투 하나만으로도 한니발은 1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한니발은 최종적으로 로마에 패했다는 약점이 있고, 알렉산더는 아예 패전을 경험한 적이 없이 젊은 나이에 병사.
승리 횟수로만 산정할 때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이 꽤나 순위에 들어가는 오류도 생깁니다.
그런 부분들은 고려하면서 영상 보면 될 겁니다. 충무공이 11승으로 나오는데, 23전 23승 아닌 무패로 본 모양.
(충무공의 23전에는 매우 인접한 장소에서 몇 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각각 셈한 결과. 그런 전투들은 1개로 통합될 여지도.)
(충무공의 23전 식으로 횟수 산정할 경우, 2차대전 대서양 해전은 어마어마한 횟수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송선단과 유보트 교전
횟수는 약 1,000회에 개별 항해 선박과 유보트 교전은 수천 회에 달하지만 모두 다 교전 횟수로 계산하지는 않았겠죠.)
근대 이후로는 단연 나폴레옹이 압도적입니다.
1차, 2차대전의 탁월했던 그 어떤 독일 장군도 감히 넘보지 못할 기록이며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중반부 이후 포병 장교로 등장해서 워털루에서 패배 까지 20년 동안 유럽을 석권.
1차 대전 독일 4년, 2차대전 독일 6년과 비교할 수 없고 나폴레옹은 모스코바를 점령 후 후퇴했지만 독일은 불가능했죠.
웰링턴의 승리 횟수 상당 수는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제 친척들은 유럽 각각의 국왕으로 임명하면서 스페인 국왕 역시 그렇게 되었죠.
그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반 프랑스 봉기가 일어났고, 영국은 10년 이상 이베리아 반도에서 장기적 전투를 수행.
스페인 전역에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패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 희미한데 프랑스가 스페인에서 손실한 병력이
10년 동안 누적해서 대략 30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랑비에 몸이 젖은 셈이죠.
만쉬타인, 구데리안, 롬멜, 패튼 몽고메리 등도 나옵니다.
롬멜, 패튼, 몽고메리는 제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고 해도 만쉬타인급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2차대전에서 그토록 유능했던 전쟁의 대가 만쉬타인 조차도 인류 전쟁사에선 앞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독일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
독일은 무수한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엔 패배.
영국은 수 많은 전투의 패배에도 결국 전쟁에선 승리. 그 원인은 전투의 중요도 결정성 때문.
1588년 무적함대 격파는 세계제국 팽창 시발점,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충무공의 승리는 조선의 강대국 부상과 아무 관련 없고.
영국 북미와 인도에서의 결정적 승리로 대륙 장악, 트라팔가와 워털루는 유럽의 향후 100년을 결정.
독일은 분명 압도적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결정적 승리가 아닌 지역적 일시적 승리에 지나지 않았고.
2. 영국은 과연 오늘날 존재하는 전세계 모든 국가 90%를 그 어떤 이유건 침공한 적이 있는가?
정리하면 상당 부분 근거는 있는 것 같군요. 침공 후 지배 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 개입, 주둔, 압박.
동영상에 소개된 책자 발행 시점 당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에서 무려 171개국이 영국의 군사적 침공을 경험.
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 관저 : 화이트 하우스, 불 탄 후 흰색 페인트로 가림.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시기 잠시 일어났던 미영 전쟁 중 수도 워싱턴이 점령당해 대통령 관저가 불타버렸죠.
막강한 군사강국 러시아 :
크림 전쟁 때 크림 반도만 점령당한 것이 아니고,
그 무렵 극동에서 캼차캬 반도 까지 일시적이지만 점령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알래스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에 매각했죠.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과 접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영국이나 미국에 먹힐 것이라고 판단해 손 턴 것.
러시아 혁명 당시 적백 내전이 벌어졌고,
영국이 주도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이 무르만스크, 흑해의 크림반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등에 상륙해서 상당기간 점령.
하지만 트로츠키가 지휘하는 적군의 승리로 백군 반혁명군이 패배하자 결국은 모두 철수.
( 적백 내전 당시 영국군이 상륙 점령한 곳은,
북극해 무르만스크 + 발트해 페테스부르크 + 흑해 크림반도 + 카스피해 일부 지역 + 극동 블라디보스톡 등.
---------------------------------> 프랑스 3군데, 미국은 2군데? 상륙, 일본은 블라디보스톡 1곳 상륙. 영국은 5곳 모두에 발 걸치고 공산혁명 진압 시도. )
중국과 인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카리브해와 남미에도 영국령 섬들과 영령 가이아나.
심지어 조선말 우리도 거문도를 점령당했죠. 일본 역시 일부 지역 번들이 영국과 소규모지만 전쟁 했고.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전쟁터,
독일은 18세기초 말버러공이 이끄는 대륙 원정군의 전쟁터. 지중해는 영국의 연못. 중동 아프리카 생략.
정리하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대다수는 영국의 직간접 침공, 주둔, 압박등 경험한 적이 있다.
없는 곳을 구태여 찾자면, 바다로 부터 완전 격리된 몽골과 같은 정도.
그런데 다른 강대국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죠.
대영제국은 위대한 영웅에 의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
알렉산더, 징키즈칸, 시저, 나폴레옹 급의 탁월한 군사지도자 없이
고만 고만한 장군들과 그렇게 많지 않은 병력으로 세계 최초로 전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었죠.
1. 4,500년간 전투 승리 횟수 국가별 랭킹 : BC2,500~2,017년, 위키디피아 오른 전투들, 중요도 무시 오직 횟수, 내전 포함.
ruclips.net/video/HK5OsDWYJmQ/видео.html
1위 프랑스 1,115회 , 2위 영국 1,105회 , 3위 미국 833회 , 4위 러시아 491회 , 5위 독일 425회
6위 스페인 387회 , 7위 폴란드 344회 , 8위 로마 259회 , 9위 중국 244회 , 10위 터키 210회
위키디피아 등재된 전투가 어떤 규모 이상인지 아니면 규모 상관 없이 역사 기록에 남은 전투 모두인지 모름.
승률이 아닌 승리 횟수만을 반영한 통계. 프랑스가 횟수로는 근소한 차의 1위지만, 승률로는 1위는 아닌 느낌.
2차대전 대서양에서 벌어진 해상 전투들은 나타나지 않는 것 같군요. 4,500년 전체 관점에서는 미미한 오류.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미세한 차이는 역전되고도 남을만한 누락임도 분명합니다. 영국은 수 백년 동안 해상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반으로 강대국으로 거듭났는데, 대규모에 결정적인 해상 전투들도 누락된 느낌.
마찬가지로 항공전도 빠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4,500년 장기 통계엔 거의 영향은 없고.
( 아마도 영국 항공전 포함 유럽에서의 항공 전투를 1개의 전투 취급했거나 + 대서양 해전의 무수한 유보트 전투들을 종합해 1개의 전투로 처리했을 수도 )
세계지도에서 전투 발생을 점으로 나타내며 승리 횟수 높은 국가 순으로 자막이 나옴. 인용된 총 전투 수는 약 10,600개
전투의 중요도 가중치 없이 모든 전투를 1회로 단순 평가. 내전에서의 전투 또한 1회로 취급해서 실제 타국과의 전쟁에서
군대의 강력함을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측정해도 결과는 현재 강대국들 다 포함.
비스마르크 통일 독일제국에서 1,2차 대전 까지 막강했던 독일이 5위로 조금 낮은 평가인듯 하지만, 4,500년의 누적임.
로마는 로마공화정과 제정로마를 모두 합산했는데, 생각 보다 전투 횟수가 많지 않은 듯.
중국의 경우는 주로 한족 왕조만 따진 것 같음. 몽골 등이 별도로 계산. 하지만
청나라는 중국으로 환산됨. 즉 국적 분류가 딱부러지게 쉽지만 않고 애매할 수가 있음.
청 등이 중국으로 분류되었다면, 한족 주도의 중국의 승리 횟수와 승률은 추가로 하락하게 됨.
프랑스와 영국은 거의 같은 횟수, 그 두 나라 사이의 전투가 아마도 상당한 비중일 것임. 백년전쟁 여파로.
프랑스는 승리 횟수로 간발의 차이로 영국에 앞선 1위지만, 결정적 전쟁에 패한 충격이 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위 아님.
나폴레옹 때문에 프랑스의 1위가 결정된듯. 하지만 나폴레옹 몰락 후, 특히 보불 전쟁 부터 프랑스는 중요한 전쟁에서
패배한 취약점이 있음.
프랑스의 승리에 노르만 정복을 포함한다면 수정 필요. 노르만 정복의 승리로 현재의 영국이 완성되니까 영국의 승리,
영국의 내전 횟수로 기록해야 되는데 파악할 길은 없음. 노르만과 앵글로색슨 왕가는 애초 친척지간. 친척간의 왕위 다툼.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3위. 하지만 남북전쟁으로 내전에서 승리 횟수도 상당히 많음. 폴란드 전투 승리 많은 편.
폴란드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세계사에서 막강했던 세력들이라 간단한 어림셈도 상당히 정확한 결과를 낸듯.
2. 거의 같은 자료, 세계지도가 아닌 국가별 통계로 1위~100위 까지 나열한 랭킹 총 전투 횟수는 약 12,000회로 더 많음.
ruclips.net/video/xgLKVaJwpXY/видео.html
1위 2위 ...10위 결과는 1번 자료와 동일함. 승리 횟수도 같거나 거의 같음.
미국은 역사가 아주 짧지만, 남북전쟁 이후 1차 2차대전 참전과
2차대전 이후로는 현재 까지 꾸준히 계속 전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3위에 오른 것 같음.
영국은 2차대전 이후에도 미국과 거의 같은 전장에서 함께 전투하기 때문에 승리 횟수도 늘고.
저런 통계를 분석한 사람이 외국에 존재한다는 것, 사용된 원본 데이터에 상당한 오류나 누락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크게 보았을 때 지난 4,500년간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 시야 대단히 넓은 것.
개인적으로 정리한다면,
1. 4500년간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유럽.
2. 주관적 가중치 부여하면, 가장 강력한 전투 민족은 영국
범게르만의 일족으로 통합한다면 영국 미국의 앵글로색슨과 독일.
미국의 인구 구성 조차도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를 통칭한 영국계 및 독일계가 백인의 주류.
3. 1차 2차대전 독일의 막강함이 인상적이었지만, 미국이 독일 아닌 영국으로 부터 건설되었듯 영국의 영향력 결정적.
4. 영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군대의 규모, 병력 수에서는 다른 경쟁국 보다 작지만 승리 많고 결정적 승리를 반복.
그 전통이 여전히 남아 미 육사의 샌드허스트 경연에서 영국과 영연방에 미국 조차 압도당할 정도로 지난 수 백년 지구촌 최강 전투 민족은 원조 앵글로색슨.
사관생도들 경연에서 저런 결과, 그 원인은 소규모지만 꾸준히 어디선가 계속 전투 중이고, 그 전훈을 지속 엎데이트 하는 걸로 추정.
실전 경험 없는 군 또는 실전 경험은 있지만 전훈을 엎데이트 하지 않는 군의 생도들 압도.
5. 위키디피아에 등재된 기록은 일단 영어가 압도적이고 분석하는 사람도 영어 자료를 분석했을 듯.
따라서 영어권 아닌 지역의 전쟁이나 전투 기록은 영어로 올리지 않는다면 제외될 수도.
그래서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대 발생한 전쟁들, 고대 몽골 초원의 전투들을 모두 포함했는지 확인 안됨.
즉 역사는 실제 사건 발생 여부를 떠나, 기록을 남긴 자들의 영향력이 더 크게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