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전쟁. 그 와중에 가장 아름다운 기적 흥남철수 ★역전다방 133회 6·25전쟁 ep.25ㅣ국방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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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7 фев 2024
  • 밀담포인트 1] 피란민을 구조하라! 기적의 항해가 시작되다
    - 흥남으로 모여든 피란민 114,000명
    - 아비규환?? 평온의 피란길
    - SS 매러디스 빅토리호가 이뤄낸 '크리스마의 기적'
    - SS 매러디스 빅토리호에 14,500여 명이 승선한 비화부터 중국에서 맞이한 최후까지
    못다 한 이야기 공개
    밀담 포인트2] 샤를세환의 1950년 12월의 공중전
    - 소련공군의 MiG-15에 맞서기 위해 최신형 제트전투기를 소환한 미 공군
    - 사상 최초로 한반도 미그앨리 상공에서 펼쳐진
    MiG-15 vs F-86A의 맞대결
    밀담포인트 3] 유엔을 무대로 재점화된 자유진영 vs 공산진영의 외교전
    - 유엔안보리에서 펼쳐진 미·소의 외교전이 유엔총회로 무대를 옮기게 된 상황
    - 아시아·중동 13개국이 주도한 [선 정전- 후 협상 : 38선 정전제안]의 등장
    - 38선 정전 제안을 거부하는 중국과 소련의 노림수
    - 중공군의 한계를 인지한 펑더화이가 내놓은 3차 공세 절충안의 개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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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211

  • @user-ou8uh7jh1g
    @user-ou8uh7jh1g 20 дней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제가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 @jyk3845
    @jyk3845 4 месяца назад +61

    이 배중에 저의 어머니와 할머니 이모 삼춘이 타고 나왔지요. 할아버지 는 북쪽 어느 곳에서 인민제판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있는 감사 함 이지요. 감사합니다. 멸공.

  • @vanguard1051
    @vanguard1051 4 месяца назад +55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우리가 반드시 인수해서 역사를 기억하는 공원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릴 수 있었던 그 배를 구하지 못했던게 너무 안타깝네요...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есяца назад +11

      2차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전설적인 무훈을 세운 엔터프라이츠 항모조차도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스크랩처리한 미국입니다.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есяца назад +3

      @@ddji2hdixbwjs97 그 시절의 미국은 그랬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눈으로 그 당시를 평가하는 것은 좀......

    • @user-jc6bd9pm9z
      @user-jc6bd9pm9z Месяц назад +3

      뭐 그렇게 따지면 미군에 남겨둬야 할 함선들이 한두척이겠습니까?ㅋㅋ

  • @user-iq4ei2gh5x
    @user-iq4ei2gh5x 4 месяца назад +29

    메러디스 빅토리호, 버지니아 시티 빅토리호 외 여러 함선들 ㅜ ㅜ 그냥 함선이 아니라 위대한 철인이네요. 감사합니다.

  • @maatpon
    @maatpon 4 месяца назад +28

    기다림의 일주일! 우리가 너무 기다렸던 역전다방 133회~
    흥남 철수 작전은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거 다 아는 내용 아니야?' 했는데 역시 역전다방의 날카로운 분석으로 보니까 몰랐던 부분들이 참 많았네요. 이래서 역전다방 봅니다. 늘 고맙습니다!

  • @ck_stinger9999
    @ck_stinger9999 4 месяца назад +30

    제 고향이 거제입니다. 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적을 가까운 곳에 두고도 찾아가질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찾아가서 숭고한 작전의 뜻을 느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donghyukcho3586
    @donghyukcho3586 4 месяца назад +36

    저희 외조부께서 흥남철수 때 피란민으로 남한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피난지였던 부산 하숙집의 딸이었던 외조모님과 만나서셔 결혼하셨고, 육군 장교로 임관하셔서 포병장교로 베트남전 때 포대장으로 참전하셨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 말 갑작스레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외조부모님께서 세분의 부모님 세대를 낳으셨고, 저의 사촌 세대는 5명이 있습니다. 아마 저희도 열심히 자식을 만들겠지요??
    저희 외할아버지를 무사히 자유세계로 이끌어주신 미군과 국군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 @Dong27789
      @Dong27789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인도적인 철수작전의 나비효과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했네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 @shinhj72
    @shinhj72 4 месяца назад +19

    다음 주에 드디어 릿지웨이 장군님이 등판하시네요. 6.25 초반 위기를 넘겨주시고 세상을 떠나신 워커 장군님께는 애도를 표합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zx2ge2rz1d
      @user-zx2ge2rz1d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독일 수비의 신인 발터 모델 장군을 마지막으로 이기고 항복 권유를 편지로 보낸 리지웨이 장군😊 그 편지에서 무고한 독일 청년들을 전후 재건을 위해
      희생시키지 말라는 내용이었죠..그리고 발터 장군은 독일 군인들에게 전역
      명령을 내리고 본인은 권총으로 자살하죠..서부전선의 두 명장이야기

  • @popsad2445
    @popsad2445 4 месяца назад +13

    저희 가족 증언에 의하면 각자도생하다가 소식 듣고 뒤늦게 흥남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몰렸을때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은 원산쪽으로 갔다가 길이 막혀 돌아왔고 너무 늦게 와서 그 난리 모습을 멀리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마지막에 철수하는 해병대의 상륙선을 타고 오셨다고 합니다.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есяца назад +4

      군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적대적인 적군으로부터 선량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흥남철수작전은 그런 군인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
      미군의 유일한 작전이자
      미국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전 중 하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중국이나 러시아조차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민을 구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긍지이자 명예 그 자체니까 말입니다.

  • @user-ez2pz8no7k
    @user-ez2pz8no7k 4 месяца назад +19

    빅토리아호가 안타깝네요.
    30억이면 충분히 구매할수 있었을텐데~
    선장님이 수도사가 됐다는것도
    처음 알고

  • @user-bi5ry4oc7z
    @user-bi5ry4oc7z 4 месяца назад +18

    저 대규모 철수 작전 때 그걸 정리한 행정과 폼 미쳤다...;; 대단허이

  • @sinhu4194
    @sinhu4194 4 месяца назад +15

    매번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드라마 한편보는거 같습니다~~~시간 가는줄 모릅니다 잘때도 틀어놓고 자네요 ㅋ

    • @user-zx2ge2rz1d
      @user-zx2ge2rz1d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저도 잘 때 틀어놓는데😂ㅋㅋ
      그리고 밥 먹을 때도ㅋㅋ

  • @user-sb4zt7cv8f
    @user-sb4zt7cv8f 4 месяца назад +37

    오늘 내용이 너무 아름답네요. 감동적입니다. 그 당시 함께 싸웠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 @user-zc8du8sx7i
    @user-zc8du8sx7i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주신 미군을 주축으로한 유엔군과 국군 선배님들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합니다.

  • @user-qc4pi7qk5g
    @user-qc4pi7qk5g Месяц назад

    대충 알고 있던 흥남철수작전....이렇게 자세히 알고보니, 마음이 찡하네요...
    철수할때 도와주신 모든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 @kwwtjvdb
    @kwwtjvdb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와 진짜 감동이네요. 보는 내내 소름이 돋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user-kf7ow7fl8j
    @user-kf7ow7fl8j 4 месяца назад +9

    정말 뭉클합니다 ㅜㅜ

    • @user-zx2ge2rz1d
      @user-zx2ge2rz1d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오늘 영상은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네요😂

  • @user-nw5fc5lm2h
    @user-nw5fc5lm2h 4 месяца назад +8

    와 진짜 눈물 나네요 ㅠㅠ

  • @user-yn1no5qg2u
    @user-yn1no5qg2u Месяц назад +1

    진짜 뭉클해지는 얘기 알고들어도 뭉클해지네

  • @han-seung-hee-and-his-frends
    @han-seung-hee-and-his-frends 4 месяца назад +7

    좋은 내용~~
    알찬 방송에 감사드려요.

  • @user-ol1du8by2q
    @user-ol1du8by2q 4 месяца назад +28

    초딩때나 미군 물러가라 했고
    중딩때는 반미 감정도 꽤나 있었는데....미군은 정말 자국을 위한 파병, 참전이었지만 미군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국방군 선조님들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 @truth1472
      @truth1472 4 месяца назад +13

      전교조의 영향이었군요!

    • @user-wu3rg4dj4b
      @user-wu3rg4dj4b 4 месяца назад +12

      전교조랑 지금 이재명 지지하는 70년대생들이 그랬죠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есяца назад +9

      적어도 한국전쟁 당시 싸운 미군은 민간인을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기는 했습니다.
      6.25 초반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실수를 많이 했어도
      적어도 저 당시에는
      필사적으로 북한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미 해병 1사단 장병들은
      저 때 싸운 기억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 @bennyspapa9510
      @bennyspapa9510 4 месяца назад +2

      국방군???????
      여기 간첩 검거!!!!!
      대한민국에서 국군을 국방군이라고 쓰는 사람이 어딨냐? 저거 전형적인 북한이나 중국에서 국군 부르는 용어인데

    • @user-ol1du8by2q
      @user-ol1du8by2q 4 месяца назад

      @@bennyspapa9510 별 ㅋㅋㅋㅋㅋㅋ국방군 국군 검색이나 좀 하고 싸질러.. 창피하다

  • @user-bb9mj8sj6d
    @user-bb9mj8sj6d 4 месяца назад +16

    어떠한 갈등, 위기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이겨낼수있을 것이란것을
    믿습니다.
    흥남철수는 기적이 아닌
    위대한 인류애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 @lalayh181
    @lalayh181 4 месяца назад +16

    윤재균 감독 고증 무시하고 생각없이 영화 찍었네. 실제로 많이 혼란하고 불안한상태였는데 피난민들이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배에 탑승한 사실이 신기하네요. 그리고 작지만 우리 해군도 큰 역할을 했다는게 자랑스러워지네요.

    • @sklee7071
      @sklee7071 4 месяца назад +5

      우리나라 민간인배도 수백대 동원 되었다고함. 영화에서는 극적인 표현을 위해 그런게 다 생략되고 메러디스 호 만 부각시킨거죠... 11만명의 철수인원중 14500명이 한배에 탔지만, 나머지 88% 피난민은 다른 군함 또는 동원된 민간인 빼에 탔다고함. 민간인 배는 수십명 탈수 있는 어선에서 3000명까지 탈수 있는 배까지 동원 되었다고 함. 민간인배가 거의 절반 정도 담당한 것으로 보임.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사실 철수작전 급으로 따지면
      덩케르크 탈출작전과 맞먹을 정도급의 철수작전이었습니다.

  • @ImperatorDDragon
    @ImperatorDDragon 4 месяца назад +4

    교과서보다 훌륭한 역전다방 최고!

  • @user-wb8ut3pr3v
    @user-wb8ut3pr3v 4 месяца назад +8

    인간의 모든 행위가 모순적인 것처럼 전쟁만큼 상대에게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건 없는데 아이러니하게 그 전쟁과정에서 우리 안의 인류애는 더 커지는 듯.. 당시 미군이나 수송선 관계자들도 그랬을 듯 합니다.

  • @alreadystupid9717
    @alreadystupid9717 4 месяца назад +3

    라루 선장님 감사합니다

  • @LEK611
    @LEK611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질서의 대한민국. 자랑스럽습니다.

  • @user-it6tm3xt2i
    @user-it6tm3xt2i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정치적 수뇌부와 현장의 지휘관이 달라서 일어나는 중공군 3차공세가 시작되는군요. 독일제국의 통일전쟁도 수뇌부인 비스마르크와 그 장군들의 생각이 달랐응수도 있는데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역전다방에서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 @user-do6tz1sq2x
    @user-do6tz1sq2x 4 месяца назад +5

    정말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 나 몰라라 하실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도와주신 라루 선장님 정말 고맙읍니다.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есяца назад +6

    미군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작전 중 하나가
    바로 이 흥남철수작전입니다.
    군인의 기본적인 임무인
    악랄하고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적을 상대로
    평범한 민간인을 지키면서
    단 한명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철수하기 위해서 싸운 전투라는 것.........
    진짜 덩케르크 철수작전 이상급으로
    군사적으로
    진짜 군대가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싸워서
    결과적으로 많은 민간인을 살려서 안전지역으로 대피시킨 유일한 전투니까 말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에서 구한 민간인들보다
    더 많은 선량한 시민을 구한 유일한 작전이니까 말입니다.......

    • @scz8333
      @scz8333 4 месяца назад

      덩케르크 철수와 흥남 철수, 군사적 측면에선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상 유럽 대륙 제공권 장악한 독일 공군 상대로 + 전격전 돌파중인 강력한 독일 지상군 상대로 했던 철수와
      ----------------------------------------------> 사실상 알보병만의 중공군 상대로 + 거의 거의 거의 100% 제공권과 제해권 상태에서 흥남 철수는 동일한 조건이 아닙니다.
      덩케르크 철수 직후 브레스트 지역을 포함한 서부 프랑스에서도 대규모 철수 작전이 + 그것도 덩케르크와 달리 독일 지상군 정지 명령 없는 상태에서 감행되었습니다.
      서부 프랑스 한 항구에서 병력을 태우고 출항 대기중인 여객선이? 독일 공군 폭격에 침몰 1척에서 구조된 인원 제외하고약 2500명 사망 사례도.
      덩케르크 철수 + 서부 프랑스 에어리얼 철수 작전 합산해 군인과 민간이 합해 약 56만이 영국으로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 때 세워진 퀸 메리의 1척당 최대 병력 수송 기록은 아마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1. ruclips.net/video/MsoiKnnUskM/видео.html
      The Grey Ghost - The Queen Mary LBUSD Education : 영국 거대 여객선 퀸메리
      성격이 다르지만 영 거대 여객선 퀸메리 단 1척이 2차대전 기간 5대양 ( 주로 대서양 ) 누비며 병력 약 80만 수송.
      영국 8만톤급 거대 여객선 단 2척 퀸메리-퀸엘리자벳, 왕복 인원 약 160만 병력 수송, 즉 귀환 아닌 파병만 따질 경우 약 80만 병력 수송.
      병력 수송 대부분은 미군 병력 + 소수의 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군 = 즉 대서양 건넌 약 300만 미군 중 대략 그 1/4이 영 거대 여객선 2척으로 수송된.
      -----------------------------------------------> 유보트에 격침될 위험 때문에, 탑승 병력을 1만명 조금 넘는 정도로 제한하고서 세운 기록.
      -----------------------------------------------> 군인 1명을 넉넉하게 100kg 가정하고 1만명 태운다면 = 0.1톤 x 1만 = 고작 1천톤 불과한 무게. 사람 무게 보단 태울 공간이 더 중요.
      퀸 메리 8만 1천톤 + 최고 속도 32.8 노트
      퀸 엘리자벳 8만 3천톤 + 최고 속도 32.5 노트 -----------------------> 퀸 엘리자벳은 1939년 진수되어 퀸 메리 보다 몇 년 늦게 항해 시작. 그 때문에 퀸 메리가 병력 수송 기록 세운.
      -----------------------------------------------------------------------------------------------> 퀸 엘리자벳은 2004년 퀸 메리2 등장 전까지 약 65년간 여객선 부분 세계 최대 배수량 기록.
      -----------------------------------------------------------------------------------------------> 2차대전 병력 수송 당시 저 두 척과 함께 상시 고속 항해할 영국-미국 해군함이 없어서 사실상 대양을 단독 항해.
      -----------------------------------------------------------------------------------------------> 독 유보트는 속도가 느려 저 거대 여객선 2척 추격할 수 없어 격침시키지 못한.
      2.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철수 및 그 직후 실시된 에어리얼 철수, 민간인 포함 약 56만명 탈출 = 영국군 약 37만 포함
      1940년 5월26일~6월4일 덩케르크 다이나모 + 1940년 6월14일~6월25일 브리타뉴 지역 에어리얼 철수 작전 합산.
      From the end of Operation Dynamo at Dunkirk, Operation Cycle from Le Havre, elsewhere along the Channel coast and the termination of Operation Aerial, another 191,870 troops were rescued, bringing the total of military and civilian personnel returned to Britain during the Battle of France to 558,032, including 368,491 British troops.
      덩케르크 이후에도 프랑스 서부의 여러 항구들에서 채널제도의 영국령 섬들을
      거치는등 부지런히 탈출시켰습니다. 물론 최종적 으로는 채널 제도의 영국령 섬들은 독일에 점령.
      덩케르크 종료 후 에어리얼 작전, 브리타뉴로 밀려난 영불군 셀부르와 브레스트 등에서 20만 추가 탈출 성공.
      ruclips.net/video/tH4zintf6qg/видео.html : Troops In Louvain, Belgium - May 1940 (1940)
      영국군 1940년 벨기에, 덩케르크 쪽으로 철수하는 모습. 유니버설 캐리어에 병력이나 견인포 메달고 후퇴 장면.
      트럭이 아닌 다양한 경장갑 차량들도 보일 겁니다. 1940년 당시 기계화 보병 수준이었습니다. 이 영상 말고 다른
      영상에는 차량 후퇴 대열 후미에서 영국군 최후방 보병들이 폭파물 설치하면서 후퇴하는 장면도 있음.
      ruclips.net/video/0GsuaHTSgbA/видео.html : 에어리얼 철수 영상, 도로 건물들 멀쩡. 신속한 후퇴 의미.
      당시 독일군은 정지 명령 없이 공격중이었지만, 항구 도로 건물들 멀쩡한 상태로 보아 후퇴 속도가 훨씬 빨랐던 것.
      영상에 나오듯 상공에는 영국 공군기들이 철수 행렬 엄호, 화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때도 역시 철수 부대 후미에선 독일군과 치열한 교전 있었을 것.
      한국전쟁 흥남 철수는 압도적 제공권+제해권 조건에서 장비 빈약한 중공군 상대의 철수였지만
      ----------------------------------------------> 1940년 프랑스에서의 철수는 강력한 독일 공군과 지상군 공세 속에서 벌어진 철수라는 성격 차이.
      ----------------------------------------------> 흥남 철수에선 미군 전함 항모 포함 수 많은 전투함들이 안전하게 해안 및 가까운 해역에서 철수 작전을 엄호할 수 있었지만,
      ----------------------------------------------> 1940년 프랑스에선 독일 공군 위협으로 영국 해군 주력 전투함들은 영불해협 근처에 접근도 하기 힘들었고 구축함급에서 큰 손실.

  • @SUMTAL2023
    @SUMTAL2023 4 месяца назад +6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месяца назад +95

    저희 외할아버지의 고향은 함흥이셨습니다. ㅜ 저 흥남철수작전 때 피난민들 대열에 합류하여 자유대한민국으로 무사히 남하하셨고 부산에 정착하셨습니다. 원래 부산에서 쭉 자라신 외할머니를 만나셔서 결혼하셨답니다 ㅜ

    • @usergwhsj1
      @usergwhsj1 4 месяца назад +9

      ​@@djcjfisjsq그만큼 공산당 치하가 X같았다는 거죠...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месяца назад +7

      @@djcjfisjsq공산당 치하에 남으면 김일성 독재 아래 지옥도가 펼쳐질 텐데 당연히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싶죠 ㅋ

    • @user-qe8qf6sl7l
      @user-qe8qf6sl7l 4 месяца назад +4

      ​@@user-hl4cz9ti8j 근데 그당시만 해도 아직 자유주의진영이 확실히 공산주의보다 잘살게 된시기도 아니고, 그당시 피난민들 의식수준이 공산당이 더 안좋다라는걸 알았을까요

    • @SUMTAL2023
      @SUMTAL2023 4 месяца назад +3

      ​@@user-qe8qf6sl7l 아마 인민재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태극기 휘난리며랑 다른 영화에 보면 인민재판으로 자산가등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민재판이 영향을 줬지 싶네요.다른이유도 있겠지만 일단 생각 나는게 이겄뿐이라

    • @77yong8e7
      @77yong8e7 4 месяца назад +2

      독소전쟁 언제하실건지 살짝 힌트 좀 주세요

  • @jiyongkim4513
    @jiyongkim4513 4 месяца назад +7

    우리나라 도와주신 모둔분들 감사합니다. 저분들이 없었으면 저는 태어났을지도 모르겠죠. 태어나 생을 살아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 합니다.

  • @gomdorij3213
    @gomdorij3213 4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맙습니다^^*

  • @user-uk8ov8ek8n
    @user-uk8ov8ek8n 4 месяца назад +10

    한마디로 미국은 우리의 헐맹이며 우리나라가 앞으로 전진할수 있도록 길을 밝혀준 멘토였다

  • @iamreal7083
    @iamreal7083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메러디스빅토리 이야기에 울컥 했습니다 ㅜㅜ

  • @iIlilIlilliIiIll
    @iIlilIlilliIiIll 4 месяца назад +5

    채박사는 지식을 베풀 의무가 있다!!! 개인유튜브 개설하고 전쟁사 강의해라❤

  • @user-oc8eb8on9f
    @user-oc8eb8on9f 2 месяца назад

    위대하고 기적과 같은 작전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 @MrWjswotks
    @MrWjswotks 4 месяца назад +5

    퇴근하고봐야지 후후

    • @user-zx2ge2rz1d
      @user-zx2ge2rz1d 4 месяца назад +1

      ㅋㅋㅋ저랑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

  • @DarkFuse
    @DarkFuse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왔다 내 역전다방!!

  • @user-ho1ti7mf1m
    @user-ho1ti7mf1m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우리할머니도 흥남철수때 홀로내려오셔서 울진근처에서 내리고 부산으로 내려오심

  • @user-bx4os3xh6h
    @user-bx4os3xh6h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저희 아버지 고향 거제 연초 다공에도
    피난민들이 헛간? 남는 지붕만 있으면 같이 살았다네요

  • @user-os4uz5qb3o
    @user-os4uz5qb3o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 부두에 ~~ 불러 보았다. 굳세어라 금순아

  • @kjs2771
    @kjs2771 4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냥 미화물선들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만 고맙고 고맙다 ㅠㅠb

  • @PeterYi7
    @PeterYi7 4 месяца назад +4

    보는데도 눈물이 나는데
    저당시 피난민들은 어땠을까요.
    라루선장, 다른분들 감사합니다.

  • @user-uo4fw8oc7h
    @user-uo4fw8oc7h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빅토리호 덕분에 부산밀면, 함흥냉면을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수 있었음.

  • @copland6268
    @copland6268 Месяц назад

    정말 눈물이 흐르네 ㅠ

  • @shawn6052
    @shawn6052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아버님 20대초 총각이라 흥남에서 홀로 탈출. 형들은 결혼해서 가족이 있어서 남아있음

    • @shawn6052
      @shawn6052 4 месяца назад

      술로 향수 달램..그땐 왜이리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지....7년전 돌아가셨지만 지금은 이해감.

  • @user-xv8po6gt3e
    @user-xv8po6gt3e 4 месяца назад +8

    샤를공 게르만 발언때문에 또 재업될것 같은데 불안하다 ...

  •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외국인들이 인천공항 도착했을 때부터 놀라는 짐 줄서기가 목슴건 그 옛날 함흥철수 때 영상에도 볼 수 있다니 진짜 우리 민족 대단하네^^

  • @junghochoi3159
    @junghochoi3159 4 месяца назад +2

    9:45 화면에서 좌측 하단에 코트 입고 계신 피난민 남자 분은 심중령님 아니신가요? ㅋㅋㅋ

  • @seaname1
    @seaname1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 가슴이 아파온다. 승리가 코앞이였는데 밀리고 밀려서 분단이 고착화되는게 보인다

  • @user-gf1dt8ic5q
    @user-gf1dt8ic5q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진짜 진짜 울컥 한다 남의 나라에 대충대충 싸운것도 아닌 진짜 사력을 다해 싸운 미군 눈물나게 고맙다 특히
    워커 장군 과 무어 장군 미 장군 아들들도 6.25 로 사상자가 많았다고 함 한국 은 고위급 장군 장관 등은 다 도망쳐 빠져 나가고 국군도 중공군만 보이면 총이고 대포고 다 버리고 도망가고 하도 도망을 가니 밴플리트가 이승만한태 엄청 화냈다고 함,,,그래서 후방에서 훈련 받고 미군들이 대신 싸웠다고함
    특히 국군의 아버지 밴프리트 장군 아들도 전사 미국과 한국
    진짜 혈맹 광하문 사거리에 세종대왕 이순신 그 다음 멕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 졌 어면 한다

  • @prococonut
    @prococonut 4 месяца назад +2

    10만명이 피난을 가는 거라면 주변에 대대적으로 전쟁 물자 징발 피해가 속출 했을 거고 특히 중공군은 급히 와서 약탈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퍼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당하고 해방이 된지 몇해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 중공군이 약탈에 화들짝 놀랐을 수도 있죠.

  • @user-ww1vo6nq7k
    @user-ww1vo6nq7k 4 месяца назад +2

    한국전쟁 다시봐도 안타깝습니다. 중국군의 전술과 전략만 잘파악했다면 이겨내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을 하네요.

  • @user-wh5je8qw4p
    @user-wh5je8qw4p 4 месяца назад +1

    흥남 철수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제 처절하게 밀고 당기는 전투들이 계속 이어지겠네요

  • @user-gf1dt8ic5q
    @user-gf1dt8ic5q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용기 있게 내려 오신 분의 선택이 지금 보면 하늘의 선택이 었네
    순간의 선택이 천국과 지옥을 갈라 놓아서 본인 뿐만 아니고
    자손 대대로

  • @gustavjung63
    @gustavjung63 4 месяца назад

    27:48 한국전쟁 초기 미군은 F-86A 세이버에 흰색과 백색의 스트라이프를 동체에 그려넣고 육안식별을 했습니다. 이후 사진과 같은 넓은 노란색 띠로 변경되었습니다.
    30:28 공중에서의 피아식별장치는 2차대전 말기 때부터 나왔습니다. 근거리에서의 특정 라디오주파수를 이용한 후방접근 음성경보장치는 이미 P-51D 머스탱이나 P-47D 썬더볼트 후기형들에 탑재되고 있습니다. F-86에도 더 발전된 장비가 탑재됩니다.

  • @NoEulBitHaNeul
    @NoEulBitHaNeul 4 месяца назад +5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 @hyunjae7777
      @hyunjae7777 2 месяца назад

      피란민 20만, 배에 탄 피란민 9만8천... 나머지 10만의 피란민이 흥남부두 폭파때 같이 폭사 했다.....

  • @user-lk6hz4vs5g
    @user-lk6hz4vs5g 4 месяца назад

    다음 전쟁으로 청일 아님 러일전쟁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 @user-vo6yl7fo8w
    @user-vo6yl7fo8w 4 месяца назад +1

    함흥, 흥남지역이면 고려때 동북9성에 해당되는 여진, 말갈족들의 밀집지역으로 윤관(예종 1108년)이 토벌했던 곳입니다. 북조선 지역에서는 해양성 기후의 지역으로 살기좋은 곳이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중화학공업 단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해서 1950년 전 후 북조선에는 살기좋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남한)이 오히려 살기 어려웠던 곳인데 왜 북조선인들이 남하를 택했을까요.

  • @user-os1xn3ev9x
    @user-os1xn3ev9x 4 месяца назад

    한번쯤 참전용사분들을 초청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건 어떨까요?

  • @user-xc7ve7iv3x
    @user-xc7ve7iv3x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ㅜㅜㅜㅜ
    진짜
    기적적인
    적재량으로
    피난민들을
    수송해 주신
    매러디스 빅토리호
    선장님
    포함
    선원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 @user-kt6vp3bk8q
    @user-kt6vp3bk8q 3 месяца назад

    4천톤급이라도 공간만 되면 1만명 이상의 사람을 충분히 태울수 있죠. 긴시간이면 불가능하겠지만 2-3일정도 운항이고 공간이 문제이긴 하죠. 중량은 널널합니다.

  • @fierwalt
    @fierwalt 4 месяца назад +4

    오늘날 성심당의 빵이 있게 해준...

  • @davidkhris8466
    @davidkhris8466 8 дней назад

    혹시 가능하다면......중국으로 팔린 메러디스 빅토리의 어떤 부분이라도 다시 거제 앞바다로 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부디...그 누군가가 그렇게 해 주기를요~

  • @user-ss4pc1js8t
    @user-ss4pc1js8t 4 месяца назад

    역시 현실 고증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국제시장 감독

  • @user-jc4vu2gt7h
    @user-jc4vu2gt7h 4 месяца назад +18

    알몬드가 지휘관으로는 무능했지만 흥남 철수는 대단한 결단이었지. 그리고 현봉학 박사님 고맙습니다

  •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실제로 흥남철수 시에 피난민들은 함포사격이 오랜 시간 멈추면 불안해 했습니다. 함포사격이 재개되면 안심하구요.
    항포사격이 미군의 철수작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 @knpark2025
    @knpark2025 8 дней назад

    괜찮음. 참 아쉽긴 한데, 그래도 괜찮음. 그 배가 도착한 거제는 지금 조선소가 두 개나 있고, 고작 만몇천톤짜리 화물선 한 척 댈 곳 없던 곳이 지금은 그 몇십 배 크기의 화물선을 찍어내는 곳이 돼있음. 그것만으로 지금 실물이 남아있지 않은 그 배의 기적은 여전히 거제에 살아있는 거나 마찬가지임. 메레디스 빅토리의 기적도 수천톤짜리 쇳덩어리가 아니라 그 쇳덩어리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이룬 기적이었으니,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때의 일이 기억과 기록에서 잊혀지지 않게 사람들이 잘 간직해 나간다면 그게 곧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가 아닐까 싶음.

  • @user-gf1dt8ic5q
    @user-gf1dt8ic5q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임진 왜란 때도 왕이고 신하고 군인이고 다 도망가고 겨우 명나라 참전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명나라는 조선에 너무 많이 도와줬어 걍 망해 버리고 6.25도 대통령 장관 고위직도 전부 다 도망 가고 미군의 참전으로 겨우 국난을 극복하고 국난이 오면 일단 도망가는 국민성 눈물난다 남의 나라 등꼴 빼먹는 나라,국난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 하고 꼭 외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라 그래도 억세게 운이 좋아 지리적 이점 때문에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나라

  •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4 месяца назад +3

    흥남철수작전

  • @rightbloodyelbow
    @rightbloodyelbow 4 месяца назад +1

    29:10 영감 와꾸 한번 살벌하네

  • @user-nm5pr3bp1w
    @user-nm5pr3bp1w 4 месяца назад +3

    국민수준이 저때보다 역행하는듯

  • @user-up7rw4me1g
    @user-up7rw4me1g Месяц назад

    라루선장님 감사합니다

  • @TV-hk3no
    @TV-hk3no 4 месяца назад

    서부전선 청천강하고 평양전투는 왜 안 다루나요?

  • @AI-클린채팅-감시봇
    @AI-클린채팅-감시봇 4 месяца назад

    관리자님 국방티비 광고나와요
    방치하면 귀찮은일 생기실듯해요

  • @TV-pu5ph
    @TV-pu5ph 4 месяца назад +2

    러일전쟁도 다뤄 주시길 바랍니다 ^^

  • @user-yz3hu3hu4x
    @user-yz3hu3hu4x 4 месяца назад

    tnt1000톤은 1kt 입니다.

  • @user-oj1gc8jx4q
    @user-oj1gc8jx4q 4 месяца назад

    참 이번 흥남철수작전을 보면서 울컥하네요 30대이지만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미군,국구장병들에 무한한 감사인사 전합니다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 @sesangmansa74
    @sesangmansa74 4 месяца назад

    영화는 픽션이 많이 들어갔죠 ㅎ

    • @user-oo9lw3wl1s
      @user-oo9lw3wl1s 4 месяца назад +2

      맞습니다. 현실이 더 영화보다 대단했으니까요 영화는 그거를 다 못담은것 같습니다. 건국전쟁처럼 다큐형식이 나오면 좋을듯 합니다!

  • @hyunjae7777
    @hyunjae7777 2 месяца назад

    피란민 20만, 배에 탄 피란민 9만8천... 나머지 10만의 피란민이 흥남부두 폭파때 같이 폭사 했다.....

  • @98kindman
    @98kindman 4 месяца назад +4

    허준님 살이 점점 빠지는듯...턱뼈가 보이네요

  • @user-mu6dw1eu3i
    @user-mu6dw1eu3i 4 месяца назад

    저당시 우리나라에 해군이란게 있었구나
    근데 6.25발발당시 우리나라 전차보유량 0대로 알고있는데
    LST는 왜저렇게 많은거야

  • @plplppll
    @plplppll 3 месяца назад

    철수는 상륙의 역순ㅋㅋ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전쟁 협상에서는 항상 자기 쪽에 현재보다 더 유리한 제안을 먼저 하는 것이 관례이자 상식이랍니다. 즉, 유엔군이 38도선 정전을 제안한 것은 당시 전황에 비해 38도선 휴전을 하는 것이 유엔측에게 더 유리했기 때문이죠. 저 1950년 12월 때는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엄청난 규모와 전략전술에 밀려 겁을 먹고 38도선 인근까지 물러났다가 여기도 사수하지 못하고 더 후퇴할 위기였답니다. 38도선보다 더 남쪽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전황에 비해 더 유리한 38도선 휴전을 제안한 겁니다 ㅜ 저 때는 다시 재북진하기는 커녕 전쟁 이전보다 더 남쪽으로 다시 밀려날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에 (실제로 1951년 1월에는 서울을 한번 더 적에게 내어주고 37도선까지 밀려났죠) 더 밀려나지 않고 전쟁 이전의 38도선으로 복귀하면 적어도 지지는 않게 되니까요

  • @shawn6052
    @shawn6052 4 месяца назад

    815 해방후 분단만 되지 않았어도 6.25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 @user-iu3id1zn7q
    @user-iu3id1zn7q 3 месяца назад

    한국서 샀어야지 아오

  • @fmrksptrld6994
    @fmrksptrld6994 4 месяца назад

    흥남철수 피난민이 왜 피난을 했는지 왜 전쟁이 생겼는지, 그 전체주의 특히 공산주의가 왜 지옥의 불개인 악마인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피난민들이 다시 한번 일깨워 주네요.

  • @user-zx5qp2tb3c
    @user-zx5qp2tb3c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다음회에 코 뀀...

  • @WaterFist1
    @WaterFist1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러고보니 공군도 없이 밀고 내려온거네; 다 그냥 사람 수로 채우겠다는 계산이었나 와

  • @basmania-wd9kl
    @basmania-wd9kl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서부전선 얘기는 언제 해주시나요?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месяца назад +4

    흥남,함흥지역에 교두보를 유지하고 나중에 유엔군 재북진까지 잘 버텼으면 좋았었겠지만 당시 정황과 지형적 특성 및 기타 여건들을 보았을 때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죠 ㅜ 그래도 저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많은 병력들을 보존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많은 시민들을 대한민국에 합류시킬 수 있었답니다.

  • @__supernova__
    @__supernova__ 4 месяца назад

    독소전 안하나?

  • @joinso3744
    @joinso3744 Месяц назад

    어떤 역사 강사는 6.25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라고 선동하던디..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중공과 소련이 유엔측의 38도선 정전을 단칼에 거절한 것은 당시 전황이 공산측에 너무나 유리했고 이 기회를 이용해 38도선 이남으로 재남진해 서울을 다시 먹고 더 아래인 평택-충주-삼척선 (37도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매우 컸기 때문이죠. 이 기회를 차버리고 38도선 원상복귀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저들에겐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이었죠

  • @user-ss4pc1js8t
    @user-ss4pc1js8t 4 месяца назад

    C47 후퇴익 아님?

  • @kyzer8525
    @kyzer8525 4 месяца назад +2

    625전쟁의 얘기를 시작하면서 뜬금없이 인천상륙작전 부터 시작한것이 의아했는데
    이상한 괴뢰영화가 런승만 올려치기를 하고있는 요즘세태를 볼때에
    차라리 아무언급도 하지 않고 넘어간게 다행이다 싶네요
    (물론 팩트로 신랄하게 까지 않고 넘어간것은 아쉽지만, 국방tv라는 특성상..... )

  • @cosmicdust22
    @cosmicdust22 4 месяца назад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피난민 중에 강제로 남쪽으로 온 사람도 많다.
    피난 안가면 빨갱이 되서 처형되니까. 친척중에 이런분들이 있는데, 직접 들은 얘기.

  • @user-sg1qc5pn6g
    @user-sg1qc5pn6g 4 месяца назад +3

    기적이 아니라 지형상 중공군은 절대 흥남을 공격할수 없었음
    1개사단이면 흥남을 지킬수. 있었는데
    공포에질려 무대포 철수한거임
    1개사단과 제7함대면. 최소한 중공군1개집단군을 잡아둘수 있었는데 너무 아쉬움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месяца назад +2

      흥남 교두보 범위를 보시면 이해가 되실 텐데 성천강을 완전히 끼지 않고 무엇보다 흥남 지역을 감제하는 높은 함경산맥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교두보를 만들어도 중공군이 함경산맥에서 훤히 흥남을 다 감제할 수 있어 흥남 공격 언제든 가능한 구조고 장기적으로 지키기 어렵습니다 ㅜㅜ

    • @user-sg1qc5pn6g
      @user-sg1qc5pn6g 4 месяца назад +2

      @@user-hl4cz9ti8j 그당시 전투상황 을 너무 모르시네요
      해병1사단이 철수할수 있었던건 제공권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중화기도 없던 그겨울에 중공군이 고지를 점령해도 그리고
      그당시 중화기가 있다해도 방어선까지 포를 쏠수가 없었읍니다
      반면에 해군화럭은 육상화력의 두배거리를 쏠수있었지요

    •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4 месяца назад

      @@user-sg1qc5pn6g 음 님 의견도 일리는 있는데 원산 지역을 통해 직접 육지로 연결해서 점령했던 진흥왕 시절 신라도 결국 안변 이북의 함흥평야 일대를 결국 자진철수 또는 고구려에게 공격받아 상실한 것을 고려해 보면 아예 본토와 뚝 끊겨 있는데다 이미 전선이 양양까지 물러난 상황에서 중공군이 함경산맥 높은 고지들에서 일방적으로 감제해 내다보고 우리는 양양 이남에서 먼 거리를 통해 해상보급만 되는데 무조건 교두보를 유지했을 거라는 건 너무 유리한 해석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