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비의 신인 발터 모델 장군을 마지막으로 이기고 항복 권유를 편지로 보낸 리지웨이 장군😊 그 편지에서 무고한 독일 청년들을 전후 재건을 위해 희생시키지 말라는 내용이었죠..그리고 발터 장군은 독일 군인들에게 전역 명령을 내리고 본인은 권총으로 자살하죠..서부전선의 두 명장이야기 ㅍ
저희 외조부께서 흥남철수 때 피란민으로 남한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피난지였던 부산 하숙집의 딸이었던 외조모님과 만나서셔 결혼하셨고, 육군 장교로 임관하셔서 포병장교로 베트남전 때 포대장으로 참전하셨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 말 갑작스레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외조부모님께서 세분의 부모님 세대를 낳으셨고, 저의 사촌 세대는 5명이 있습니다. 아마 저희도 열심히 자식을 만들겠지요?? 저희 외할아버지를 무사히 자유세계로 이끌어주신 미군과 국군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적어도 한국전쟁 당시 싸운 미군은 민간인을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기는 했습니다. 6.25 초반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실수를 많이 했어도 적어도 저 당시에는 필사적으로 북한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미 해병 1사단 장병들은 저 때 싸운 기억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저희 가족 증언에 의하면 각자도생하다가 소식 듣고 뒤늦게 흥남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몰렸을때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은 원산쪽으로 갔다가 길이 막혀 돌아왔고 너무 늦게 와서 그 난리 모습을 멀리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마지막에 철수하는 해병대의 상륙선을 타고 오셨다고 합니다.
군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적대적인 적군으로부터 선량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흥남철수작전은 그런 군인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 미군의 유일한 작전이자 미국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전 중 하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중국이나 러시아조차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민을 구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긍지이자 명예 그 자체니까 말입니다.
우리나라 민간인배도 수백대 동원 되었다고함. 영화에서는 극적인 표현을 위해 그런게 다 생략되고 메러디스 호 만 부각시킨거죠... 11만명의 철수인원중 14500명이 한배에 탔지만, 나머지 88% 피난민은 다른 군함 또는 동원된 민간인 빼에 탔다고함. 민간인 배는 수십명 탈수 있는 어선에서 3000명까지 탈수 있는 배까지 동원 되었다고 함. 민간인배가 거의 절반 정도 담당한 것으로 보임.
미군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작전 중 하나가 바로 이 흥남철수작전입니다. 군인의 기본적인 임무인 악랄하고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적을 상대로 평범한 민간인을 지키면서 단 한명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철수하기 위해서 싸운 전투라는 것......... 진짜 덩케르크 철수작전 이상급으로 군사적으로 진짜 군대가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싸워서 결과적으로 많은 민간인을 살려서 안전지역으로 대피시킨 유일한 전투니까 말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에서 구한 민간인들보다 더 많은 선량한 시민을 구한 유일한 작전이니까 말입니다.......
덩케르크 철수와 흥남 철수, 군사적 측면에선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상 유럽 대륙 제공권 장악한 독일 공군 상대로 + 전격전 돌파중인 강력한 독일 지상군 상대로 했던 철수와 ----------------------------------------------> 사실상 알보병만의 중공군 상대로 + 거의 거의 거의 100% 제공권과 제해권 상태에서 흥남 철수는 동일한 조건이 아닙니다. 덩케르크 철수 직후 브레스트 지역을 포함한 서부 프랑스에서도 대규모 철수 작전이 + 그것도 덩케르크와 달리 독일 지상군 정지 명령 없는 상태에서 감행되었습니다. 서부 프랑스 한 항구에서 병력을 태우고 출항 대기중인 여객선이? 독일 공군 폭격에 침몰 1척에서 구조된 인원 제외하고약 2500명 사망 사례도. 덩케르크 철수 + 서부 프랑스 에어리얼 철수 작전 합산해 군인과 민간이 합해 약 56만이 영국으로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 때 세워진 퀸 메리의 1척당 최대 병력 수송 기록은 아마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1. ruclips.net/video/MsoiKnnUskM/видео.html The Grey Ghost - The Queen Mary LBUSD Education : 영국 거대 여객선 퀸메리 성격이 다르지만 영 거대 여객선 퀸메리 단 1척이 2차대전 기간 5대양 ( 주로 대서양 ) 누비며 병력 약 80만 수송. 영국 8만톤급 거대 여객선 단 2척 퀸메리-퀸엘리자벳, 왕복 인원 약 160만 병력 수송, 즉 귀환 아닌 파병만 따질 경우 약 80만 병력 수송. 병력 수송 대부분은 미군 병력 + 소수의 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군 = 즉 대서양 건넌 약 300만 미군 중 대략 그 1/4이 영 거대 여객선 2척으로 수송된. -----------------------------------------------> 유보트에 격침될 위험 때문에, 탑승 병력을 1만명 조금 넘는 정도로 제한하고서 세운 기록. -----------------------------------------------> 군인 1명을 넉넉하게 100kg 가정하고 1만명 태운다면 = 0.1톤 x 1만 = 고작 1천톤 불과한 무게. 사람 무게 보단 태울 공간이 더 중요. 퀸 메리 8만 1천톤 + 최고 속도 32.8 노트 퀸 엘리자벳 8만 3천톤 + 최고 속도 32.5 노트 -----------------------> 퀸 엘리자벳은 1939년 진수되어 퀸 메리 보다 몇 년 늦게 항해 시작. 그 때문에 퀸 메리가 병력 수송 기록 세운. -----------------------------------------------------------------------------------------------> 퀸 엘리자벳은 2004년 퀸 메리2 등장 전까지 약 65년간 여객선 부분 세계 최대 배수량 기록. -----------------------------------------------------------------------------------------------> 2차대전 병력 수송 당시 저 두 척과 함께 상시 고속 항해할 영국-미국 해군함이 없어서 사실상 대양을 단독 항해. -----------------------------------------------------------------------------------------------> 독 유보트는 속도가 느려 저 거대 여객선 2척 추격할 수 없어 격침시키지 못한. 2.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철수 및 그 직후 실시된 에어리얼 철수, 민간인 포함 약 56만명 탈출 = 영국군 약 37만 포함 1940년 5월26일~6월4일 덩케르크 다이나모 + 1940년 6월14일~6월25일 브리타뉴 지역 에어리얼 철수 작전 합산. From the end of Operation Dynamo at Dunkirk, Operation Cycle from Le Havre, elsewhere along the Channel coast and the termination of Operation Aerial, another 191,870 troops were rescued, bringing the total of military and civilian personnel returned to Britain during the Battle of France to 558,032, including 368,491 British troops. 덩케르크 이후에도 프랑스 서부의 여러 항구들에서 채널제도의 영국령 섬들을 거치는등 부지런히 탈출시켰습니다. 물론 최종적 으로는 채널 제도의 영국령 섬들은 독일에 점령. 덩케르크 종료 후 에어리얼 작전, 브리타뉴로 밀려난 영불군 셀부르와 브레스트 등에서 20만 추가 탈출 성공. ruclips.net/video/tH4zintf6qg/видео.html : Troops In Louvain, Belgium - May 1940 (1940) 영국군 1940년 벨기에, 덩케르크 쪽으로 철수하는 모습. 유니버설 캐리어에 병력이나 견인포 메달고 후퇴 장면. 트럭이 아닌 다양한 경장갑 차량들도 보일 겁니다. 1940년 당시 기계화 보병 수준이었습니다. 이 영상 말고 다른 영상에는 차량 후퇴 대열 후미에서 영국군 최후방 보병들이 폭파물 설치하면서 후퇴하는 장면도 있음. ruclips.net/video/0GsuaHTSgbA/видео.html : 에어리얼 철수 영상, 도로 건물들 멀쩡. 신속한 후퇴 의미. 당시 독일군은 정지 명령 없이 공격중이었지만, 항구 도로 건물들 멀쩡한 상태로 보아 후퇴 속도가 훨씬 빨랐던 것. 영상에 나오듯 상공에는 영국 공군기들이 철수 행렬 엄호, 화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때도 역시 철수 부대 후미에선 독일군과 치열한 교전 있었을 것. 한국전쟁 흥남 철수는 압도적 제공권+제해권 조건에서 장비 빈약한 중공군 상대의 철수였지만 ----------------------------------------------> 1940년 프랑스에서의 철수는 강력한 독일 공군과 지상군 공세 속에서 벌어진 철수라는 성격 차이. ----------------------------------------------> 흥남 철수에선 미군 전함 항모 포함 수 많은 전투함들이 안전하게 해안 및 가까운 해역에서 철수 작전을 엄호할 수 있었지만, ----------------------------------------------> 1940년 프랑스에선 독일 공군 위협으로 영국 해군 주력 전투함들은 영불해협 근처에 접근도 하기 힘들었고 구축함급에서 큰 손실.
27:48 한국전쟁 초기 미군은 F-86A 세이버에 흰색과 백색의 스트라이프를 동체에 그려넣고 육안식별을 했습니다. 이후 사진과 같은 넓은 노란색 띠로 변경되었습니다. 30:28 공중에서의 피아식별장치는 2차대전 말기 때부터 나왔습니다. 근거리에서의 특정 라디오주파수를 이용한 후방접근 음성경보장치는 이미 P-51D 머스탱이나 P-47D 썬더볼트 후기형들에 탑재되고 있습니다. F-86에도 더 발전된 장비가 탑재됩니다.
진짜 진짜 울컥 한다 남의 나라에 대충대충 싸운것도 아닌 진짜 사력을 다해 싸운 미군 눈물나게 고맙다 특히 워커 장군 과 무어 장군 미 장군 아들들도 6.25 로 사상자가 많았다고 함 한국 은 고위급 장군 장관 등은 다 도망쳐 빠져 나가고 국군도 중공군만 보이면 총이고 대포고 다 버리고 도망가고 하도 도망을 가니 밴플리트가 이승만한태 엄청 화냈다고 함,,,그래서 후방에서 훈련 받고 미군들이 대신 싸웠다고함 특히 국군의 아버지 밴프리트 장군 아들도 전사 미국과 한국 진짜 혈맹 광하문 사거리에 세종대왕 이순신 그 다음 멕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 졌 어면 한다
10만명이 피난을 가는 거라면 주변에 대대적으로 전쟁 물자 징발 피해가 속출 했을 거고 특히 중공군은 급히 와서 약탈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퍼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당하고 해방이 된지 몇해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 중공군이 약탈에 화들짝 놀랐을 수도 있죠.
임진 왜란 때도 왕이고 신하고 군인이고 다 도망가고 겨우 명나라 참전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명나라는 조선에 너무 많이 도와줬어 걍 망해 버리고 6.25도 대통령 장관 고위직도 전부 다 도망 가고 미군의 참전으로 겨우 국난을 극복하고 국난이 오면 일단 도망가는 국민성 눈물난다 남의 나라 등꼴 빼먹는 나라,국난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 하고 꼭 외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라 그래도 억세게 운이 좋아 지리적 이점 때문에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나라
괜찮음. 참 아쉽긴 한데, 그래도 괜찮음. 그 배가 도착한 거제는 지금 조선소가 두 개나 있고, 고작 만몇천톤짜리 화물선 한 척 댈 곳 없던 곳이 지금은 그 몇십 배 크기의 화물선을 찍어내는 곳이 돼있음. 그것만으로 지금 실물이 남아있지 않은 그 배의 기적은 여전히 거제에 살아있는 거나 마찬가지임. 메레디스 빅토리의 기적도 수천톤짜리 쇳덩어리가 아니라 그 쇳덩어리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이룬 기적이었으니,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때의 일이 기억과 기록에서 잊혀지지 않게 사람들이 잘 간직해 나간다면 그게 곧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가 아닐까 싶음.
전쟁 협상에서는 항상 자기 쪽에 현재보다 더 유리한 제안을 먼저 하는 것이 관례이자 상식이랍니다. 즉, 유엔군이 38도선 정전을 제안한 것은 당시 전황에 비해 38도선 휴전을 하는 것이 유엔측에게 더 유리했기 때문이죠. 저 1950년 12월 때는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엄청난 규모와 전략전술에 밀려 겁을 먹고 38도선 인근까지 물러났다가 여기도 사수하지 못하고 더 후퇴할 위기였답니다. 38도선보다 더 남쪽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전황에 비해 더 유리한 38도선 휴전을 제안한 겁니다 ㅜ 저 때는 다시 재북진하기는 커녕 전쟁 이전보다 더 남쪽으로 다시 밀려날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에 (실제로 1951년 1월에는 서울을 한번 더 적에게 내어주고 37도선까지 밀려났죠) 더 밀려나지 않고 전쟁 이전의 38도선으로 복귀하면 적어도 지지는 않게 되니까요
흥남,함흥지역에 교두보를 유지하고 나중에 유엔군 재북진까지 잘 버텼으면 좋았었겠지만 당시 정황과 지형적 특성 및 기타 여건들을 보았을 때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죠 ㅜ 그래도 저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많은 병력들을 보존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많은 시민들을 대한민국에 합류시킬 수 있었답니다.
중공과 소련이 유엔측의 38도선 정전을 단칼에 거절한 것은 당시 전황이 공산측에 너무나 유리했고 이 기회를 이용해 38도선 이남으로 재남진해 서울을 다시 먹고 더 아래인 평택-충주-삼척선 (37도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매우 컸기 때문이죠. 이 기회를 차버리고 38도선 원상복귀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저들에겐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이었죠
625전쟁의 얘기를 시작하면서 뜬금없이 인천상륙작전 부터 시작한것이 의아했는데 이상한 괴뢰영화가 런승만 올려치기를 하고있는 요즘세태를 볼때에 차라리 아무언급도 하지 않고 넘어간게 다행이다 싶네요 (물론 팩트로 신랄하게 까지 않고 넘어간것은 아쉽지만, 국방tv라는 특성상..... )
고작 하루면 되는 거리를 + 게다가 남의 나라도 아닌 같은 나라의 다른 지역으로 + 더우기 대한민국을 선택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수 많은 이민자 또는 이민자 후손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계도 미국 대통령이 되는 판에. 정치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수 많은 이들이 미국에 정착해 미국을 이끌었습니다. 애플사 스티브 잡스의 부모는 모두 시리아 출신의 미국 유학생으로 잡스를 미국에서 입양시킨. 현 미국 부통령은 인도계 + 현 영국 수상 인도계 + 현 런던 시장은 이슬람 + 미국 첨단 기업 CEO들과 수 많은 엔지니어들은 인도에서 왔고. 흥남철수 피난민 출신의 대한민국 대통령 배출은 대한민국이 북 보다 훨씬 더 건전하다는 확고부동한 증거. ----------------------------------------------------> 흥남 피난민 출신이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 민족 내부 주적질 사생결단 적대적 투쟁은 언젠간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겁니다. ----------------------------------------------------> 미필이 이빨 전사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타는 적개심 승리에 대한 열망 보다 훨씬 더 바람직. 미국 대통령 가계 - 부모의 조상 출신지 분포, 아일랜드계-독일계 거대한 인구에 비해 제한, 부계 독일계 대통령 역시 인구에 비해 극단적 제한 단 2명. ruclips.net/video/jMd0SdXGkFc/видео.html 잉글랜드38 >> 얼스터 스콧21(북아일랜드개신교) > 스코틀랜드17 > 웨일즈15> 독11-프9-네덜란드5-아일랜드4-스위스3-케냐1 얼스터 스콧은 북아일랜드 신교도, 친-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세력이 영국 정책에 의해 아일랜드 북부 이주 정착. 현재 스코틀랜드 인구는 약 550만에 불과하고, 북아일랜드 인구는 지극 소수에 불과하지만 미국 대통령 부모 배출은 엄청난. 미국 이주민 수 랭킹 3위 아일랜드계 수적으로 엄청 나지만, 카톨릭-개신교 대립 구도 속에서 아일랜드계 대통령과 대통령 부모 적음은 ------------------> 아일랜드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 미국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그레이트 브리튼 제도 출신,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즈 +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포함해 확장한 영국 제도는, 그레이트 브리튼 제도 출신에 ---------------> 케네디-레이건-바이든 추가됩니다. 부계로만 따질 때, 확장된 영국제도 아닌, 영불 해협 건너 유렵대륙 및 기타 지역 출신 대통령은 단 6명에 불과. 유럽 대륙 5명 = 네덜란드계 3명 + 독일계 2명. 아프리카계 1명. ------------------------> 저 6명 조차 모계 따질 경우 영국 제도와 무관한 경우는 1~2명에 불과. ------------------------> 첫 네덜란드계 대통령 부모 모두 네덜란드 출신 + 아이젠하워 모계 스위스?(잉글랜드 혈통 혼혈이라는 자료도) ------------------------> 트럼프 모계는 스코틀랜드. 그래선지 트럼프는 스코틀랜드에 골프장 보유 및 잦은 방문. 케네디 ------------------> 부모 모두 아일랜드계 출신 레이건-바이든 -------------------------------> 부계 아일랜드계 + 모계 잉글랜드계, 순수한 아일랜드계는 케네디 1명 밖에. 부계 잉글랜드계 아닌 최초의 미 대통령은 네덜란드계, 부계 네덜란드계 대통령은 3명으로 영국제도 밖에선 가장 많음. 네덜란드계 대통령 중에서 2명은 서로 친척이기도 한 +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에 포함되는 2명의 루즈벨트. 루즈벨트 -------------------------------> 영어로 옮기면 로즈-가든, 장미-정원농장 정도. 부계 독일계는 단 2명, 아이젠하워 + 트럼프. 아이젠하워 조상은 오래 전 독일에서 스위스로 이주, 다시 스위스에서 영국 북미 식민지 시절인 1700년대 펜실베니아로 이주. 트럼프 조상은 독일에서 직접 미국으로 1800년대 이주. -----------------------------------------> 독일계 이주민 수에 비한다면 대통령 배출에서 독일계는 존재감 미미한. -----------------------------------------> 북아일랜드 개신교인 얼스터 스콧의 본고장 북아일랜드 및 웨일즈 한 줌도 안되는 인구와 비교한다면. ---------------------------> 미국 건국 및 기반이 이미 다져진 이후, 아무리 대규모로 이주해도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된. ( 아프리카계 대통령이 이미 나왔기에, 조금 있으면 히스패닉계 대통령도 배출될 것. ) ( 이미 북서유럽계 백인의 과반은 깨졌고, 나날이 증가하는 히스패닉으로 미국 자체가 내부에서 히스패닉 영향에 놓이는. ) ( 미국이 북미에서 팽창할 때 사실상 강탈에 가까운 구 스페인령 획득으로 초래된 업보. ) 오바마는 말 그대로 세계 시민. 오바마 모계 조상은 스위스-독일-잉글랜드 ...포함한 8개국 혼혈 오바마 친할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버마 전선에 영국군 소속으로 참전한 케냐의 부족장?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 -------------------> 부계 잉글랜드 + 모계 프랑스 -----------------------------------------------------------> 프랑스계는 수는 적어 보이지만 초대 대통령의 모계, 영프의 북미 식민지 정착민 때문인듯. -----------------------------------------------------------> 워싱턴의 부계 조상은 1600년대 잉글랜드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사실상 최초 영국 이주민. 미국 인구 조사에서 1970년대 까지는 항상 잉글랜드계가 1위. 하지만 그 이후 조사에서 독일계가 1위로 바뀌었었는데 그 통계 항목엔 북아메리카 출신 백인 포함된. 즉 1800년대 대규모 유럽 이주민 오기 전, 미국 건국의 주체 세력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유럽이 아닌 북미 백인이라고 밝히는. 미국 건국 주도 세력 후손들은 자신들은 유럽에서 뒤늦게 건너온 백인들과 다르다는 자부심. ( 미국 인구 조사 설문에는 중요한 헛점도. 영국계 =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즈 + 북아일랜드, 4개를 개별적으로 분류 조사하지만 독일계-히스패닉은 그냥 뭉뚱그려 설문. 히스패닉은 맥시코계를 따로 독립적으로 조사해도 아마 미국 인구 순위에서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2차대전 후 거대한 지속적 유입. 자신의 조상을 북미 대륙이라고 밝힌 항목이 최근 세분되어 ( 모던 북미대륙 출신 ) 이 추가??? 자신의 조상이 북미 대륙 백인이라고 밝힌 이들은 최근 조사에서 약 2천만, 그 대부분은 유럽의 대규모 이주민 오기 전 영국의 초기 이주민 후손들. ) ( 아일랜드계는 현재 아일랜드 인구 500만을 압도하는 2000만 넘어 사실상 미국이 아일랜드계 최대 거주 국가. ) ( 최근 인구조사 순위는 독일계-아일랜드계-잉글랜드계 순서이고 조금만 있으면 히스패닉이 1위 될 것. ) ( 그러나 잉글랜드계가 정말 3위이고 곧 4위로 떨어진다고 통계 수치를 오해해선 안되는 겁니다. ) ( 미국 내에서 독일계-아일랜드계는 따로 출신 국가 기념 행사를 하지만, 미국의 건국 주체 잉글랜드계는 그런 것 없음. ) 펜실베니아 및 그 수도 필라델피아. 윌리엄 펜이 영국 국왕에게서 식민지 특허장 받고, 신대륙에 이상 사회 건설 추구. 펜의 아름다운 숲이라는 의미의 주 이름 펜실베니아 + 우애-사랑의 형제라는 의미의 수도 이름 필라델피아. 미국 독립 무렵 필라델피아, 런던 다음의 출판 도시. 미국 독립 무렵 영국 선박 건조량의 1/3은 영국 본토 아닌 북미 식민지에서. 영국 북미 식민지는 스페인-포르투칼-프랑스 식민지와 성격이 달랐습니다. 사실상 거의 완전한 자치 상태였고, 형식상의 본토 지배. 특히 펜실베니아는 설립자의 이상이 반영되어 북서유럽 개신도에 문호 개방. --------------------------------------> 펜실베니아의 개방성으로 인해, 네덜란드-독일-스칸디나비아 쪽 이주민들이 영국령 식민지에 유입. --------------------------------------> 아이젠하워의 부계 역시 1700년대에 스위스에서 펜실베니아로 이주. 쾨벡에서 프랑스 최종 패하기 직전 및 미국 독립 조금 전, 영국 북미 식민지 인구 약 250만 >>>>>>>>>>>>>>>>>>>프랑스 북미 식민지 인구 20만 이내. 프랑스는 모피 무역 등 유럽과의 상업을 위한 소규모 이주민, 하지만 영국은 제 2의 나라에 가까운 대규모 이주.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제도 전체 인구는 약 1천만, 미국 독립 직전 영 북미 식민지 인구는 영국 본토 인구의 약 1/4로 엄청났던.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는 유럽 최대 인구로 약 3000만. 인구 측면에서 프랑스, 북미에서 영국에게 승리 불가능. 쾨벡에서 프랑스 패배 프랑스의 영국 북미 식민지에 대한 군사적 위협 사라지자 + 이미 본토 인구의 1/4 규모의 거대한 북미 식민지들은 스스로 독립할 분위기에서 피할 수 없었던 미국 독립. 본토 : 식민지 인구비 4 :1 상태에서 + 돛단배 타던 시절 + 대서양 건너 6천km 밖 본토의 형식적 지배도 싫다고 거부할 경우 -----------------------> 독립 막는 것 불가능.
주적 개념과 + 주적을 구태여 명시할 필요성, 둘 모두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한반도 민족 내부 주적질과 완전 대비된 철천지 원수 이민족 연합체의 세계 패권 장악과 내부 패권 승계 무시할 수 없는. 내부 주적질 >>>> 남북의 극단적 좌우익 사생결단 투쟁관 -------------------------------------------------------> 아직 인류는 아와 비아의 투쟁 예외 없으며, -------------------------------------------------------> 모든 도전은 비아로부터 아를 향해 오며 +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을 아가 하는 것. -------------------------------------------------------> 아와 비아의 투쟁 및 도전과 응전, 단순히 인간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 아닌 바이러스와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내포. 내부 주적질에 대해 냉정할 필요, 대한민국 유신-두환 시절 초중고 학생들은 사실상 국가가 제시한 이념으로 가축과 같이 사육되었지만 그들이 가장 강력한 반독재 투쟁자로 번한. 통행금지 + 국민교육헌장 암기 + 국기하강식 + 고등학교 여학생도 교련 + 대학생 교련만이 아닌 전방 입소와 문무대 교육에, 북과 유사하게 뻑하면 학생들 동원해 궐기대회 규탄대회 + 해 마다 6.25 무렵이면 국민학생들이 학교 운동장 빙빙 돌며 행진하며 6.25노래 부르고. --------------------------------------------------------> 냉정하게 본다면 유치 찬란, 북이 아직도 하는 짓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깨닫길. 생각해보길. 한반도 남북의 6.25노래 가사 보면서 두려움에 떨 세계인들이 얼마나 될지. ------------------------------------------------------> 아마도 가사 확인한다면, 세계인들 다수는 재들 같은 민족끼리 왜 저래??? 생각해보길.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체 연합왕국의 룰브리타니아 가사 보면서, 세계인들이 연합왕국 우습게 여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길.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모국 영국이 반공을 국시로 하고 구소련과 현중국을 과연 주적으로 명시했는지. 주적 명시는 어리석은 겁니다. 명시하건 하지 않건 주적에 대한 대비만 철저하면 됩니다. 한국전 직전 주적에 대한 적개심 노출 및 개전 직후 전선 붕괴가 반례. ----------------------------------> 한국전 직전 일부 국군 장성들이, ----------------------------------> 주적 북괴에 대한 적개심과 자심감을 밝혔어도, 개전 직후 전선 붕괴. ----------------------------------> 그들은 이렇게 자신만만 했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 그러나 현실은 완전 달랐던.
아더왕 신화 : 앵글로색슨 용병을 불러들인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 신화로 거듭나다. 로마 철수 후 로마화 문명화한 켈트가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로마에 투쟁했던 켈트 막기 위해 앵글로색슨 용병 고용. 수 백년이 흐르며 결국 용병들이 고용주 켈트 지배층 내쫒고 잉글랜드 왕국 건설. 이후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증오와 투쟁. 영국 정확히는 연합왕국 UK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원수나 다름 없는 증오가 가득찬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연합체. 현재 한반도 남북의 적대감, 대한민국 내부 동서 지역분열 등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피의 복수혈전 반복되던. 하지만 연합왕국 성립 이후, 그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제국으로 팽창했고 미합중국 건국의 초석을 놓았죠.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평화적 합병으로 연합왕국, 이 후 내부 분열 극복하고 세계제국으로 팽창. 중미 식민지 개척에 국운을 걸고 전국민이 투자했다 파산한 스코틀랜드 의회는 잉글랜드와의 평화적 합병을 승인하고 연합왕국이 수립됩니다. 그 이전 까진 같은 국왕 다른 나라였던 동군이국이었는데 진정한 한 나라로. 여기선 그 내용은 생략하고, 로마제국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 시작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브리튼 제도에 오래 전 이주해 살던 켈트족. 줄리어스 시저의 잉글랜드 남부 상륙 시작으로 로마에 점령. 로마화 문명화한 다수 켈트인들이 로마제국 백성으로 번영을 누릴 때, 로마의 군사력에 산악 오지였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바다건너 아일랜드로 쫒긴 켈트인들 로마에 저항. (유명한 미 드라마 왕좌의 게임, 7왕국은 고대 앵글로색슨 7왕국, 스타크 가문이 지키는 북쪽의 얼음장벽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장벽.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웨스트로드 땅덩어리는 아일랜드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붙인 다음 남북을 뒤집은 형태. 즉 왕좌의 게임은 통채로 고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에 기반한 작품입니다. 켈트인들은 얼음장벽 너머의 종족들. 하지만 결국 나중엔 장벽 너머에서 나타난 공동의 적 상대로 함께 싸우게 되죠. 영국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켈트와 앵글로색슨의 원한 증오 시작해보죠. 제정로마 후기 로마가 위태로워지자, 로마 본토 수호를 위해 브리튼의 로마군이 철군하면서, 이미 로마화한 켈트인들은 로마에 저항했던 야만적 켈트인들은 두려워했고, 그들을 막기 위해 현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 지역의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 수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굴러들어온 용병 앵글로색슨이 박힌 돌 문명화한 켈트인들을 내쫒고 잉글랜드 수립. 같은 민족인데 단합하지 못한 켈트인들, 앵글로색슨에 패해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쫒겨났습니다. 그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후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태어난 것이 아더왕 신화입니다. 현실에선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해서 패배했지만, 신화 속에선 승리하죠. 아더왕의 적은 앵글로색슨 침략자. 그 앵글로색슨이 바이킹의 일족 노르만에 정복당해 오늘날의 영국 왕조 수립. 덴마크 스칸디나비아에 기원을 둔 바이킹들이 유럽 각지로 퍼저나가면서 일부 세력이 프랑스 노르망디 점령. 군사력이 너무 막강해 물리칠 수 없었던 프랑스 국왕은 노르만 공이라는 작위 내리고 땅을 영지로 하사하며 달램. 잉글랜드 왕족들과 친척인 노르만 공이, 잉글랜드 국왕 승계 문제로 전쟁.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앵글로색슨 왕조가 붕괴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노르만 왕조가 성립. 노르만디 지역엔 앵글로색슨에 추방된 수 많은 켈트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노르만과 함께 잉글랜드 정복군에 가담. 노르만 정복 이후 아더왕 신화가 영국과 유럽에 널리 퍼짐. 선주민 켈트, 켈트를 정복한 앵글로색슨, 그 앵글로색슨을 정복한 극소수 노르만 바이킹, 노르만 바이킹에 협력해 앵글로색슨에 복수한 노르망디의 켈트 유민들. 그들이 뒤섞여 현 영국. 분열해서 좋을 것 없습니다. 민족의 원수 주적이 같은 민족인 것은 어리석죠.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했던 로마화한 켈트인들의 주적은, 같은 민족인 켈트였습니다. 현명한 외세는 어리석게 내부 분열하는 틈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분열한 켈트인들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와 반성이 신화로 재창조된 것이 아더왕 전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더왕 신화는 켈트를 넘어 모든 브리튼 거주민 및 브리튼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모든 이의 신화. 용병으로 굴러들어왔던 앵글로색슨과 그 앵글로색슨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던 노르만 바이킹의 고대로부터의 관습들이 국왕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에 좀 더 저항하게 만들었고, 결국 잉글랜드 왕국 내부로부터, 느리지만 점진적인 왕권제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1215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으로 성과가 시작.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증오에 바탕한 투쟁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죠. 잉글랜드는 결코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의회 스스로 평화적 합병을 결정. 그 관련 내용은 여기선 생략합니다. 일단 연합왕국 구성 이후엔, 그들은 내부의 증오가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지는 것을 철저히 회피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한국전쟁과 같은 내부 역량을 갉아먹는 대규모 유혈 분쟁을 피하면서 대외 팽창.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약했던 민주주의 싹이 연합왕국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대서양 동서 양편에서 입헌군주정과 공화정으로. 미국 건국은 붕괴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의 약 2000년 후 부활입니다. 미국 건국에는 수 많은 켈트의 후손들이 가담했고, 앵글로색슨은 미 건국의 아버지 대다수였죠. 비록 켈트의 나라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앵글로색슨과 함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는 제2의 조국으로 미국을 건국하였고 많은 미국 대통령도 배출했죠. 사실 함께 섞여 산지 오래라 유전적 분류는 무의미하고, 스스로 누구의 후손이라 여기는지 문화적 차이가 더 중요. 2차대전 때 미 장군 패튼이 몽고메리에 감정적 대립을 보인 겉으로 말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그가 스코틀랜드 후예. 스코틀랜드는 작지만 정말 대단한 지역입니다. 현재 인구 고작 500만 정도인데, 영국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1/3, 영국군 막강한 부대들 배출. 영국은 독일 보다 과학분야 노벨상 수 더 많고, 단위 인구당 수상자 수로는 미국의 2배 이상인데 영국에서 압도적. 아담스미스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 연합왕국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죠. 영국이 만든 세계표준의 거의 다는 스코틀랜드의 결정적 역활 때문. 스코틀랜드 단독으로는 결코 그런 일들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원수나 다름 없는 이민족들이 뭉쳐서 내부 분열을 극복하고 세계로 뻗어나가, 함께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또한 영국에서 파생된 미합중국을 건국해서 세계패권을 승계하며 유지한 역사. 영국은 오늘날 지구촌 자체를 기본 포맷, 세계 표준 확립. 1. 의회 대의 민주주의 2.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산업혁명 3. 뉴턴 이후 자연과학 혁명 4. 명확한 룰 체계 갖춘 근현대 스포츠 5. 현 최강국 미국 건국 기초 물리학과 공학의 가장 밑바닥 핵심 단위명만 봐도 확인되는. 힘의 단위 뉴턴N + 일과 에너지 단위 쥴J + 일률 와트W + 절대온도 켈빈K, 가장 밑바닥은 영국인 이름 딴. 그 유명한 아인쉬타인도 아직 핵심 기본 단위명 채택이 없을 정도로, 미신과 암흑이 판치던 세상에서 가장 먼저 자연과학의 문 통과. 앞으로 수 백 년 자연과학의 새로운 성과가 누적되고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과학들이 개척되어야, 더 근본적인 새로운 단위들로 교체될 것. 내부 주적질 환장한 공동체들은 저런 시도를 해볼 여력 없기에 기본 자격도 안되는 겁니다. 민주주의 가볍게 보지 말기를. 그 어떤 효율적-유능-탁월한 개발독재도 선민주-후경제개발 세력과의 패권 경쟁에서 패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며 + 또한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지난 수 백 년 최고의 교양과 최강의 주먹은 가장 먼저 내부 민주화를 달성한 세력. 철천지 원수 연합체 켈트-앵글로색슨의 세계 패권 쟁취와 비교한다면 지극 한심한 지구촌 최고 순도 한반도 내부 자폭 주적질 겸허히 반성해야.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 공동체 연합왕국.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웨일즈 등 켈트와의 끝 없는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내렸던 결단 2가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왕권을 스코틀랜드에 넘기고 + 왕세자 이름,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 아닌 프린스 오브 웨일즈!!! 얼마 전 영국 여왕 사망. 사망 직전 여왕은 스코틀랜드 고성으로 이동해 거기서 사망. 왜??? -------------> 우연 아닐 겁니다. 입헌군주제에 대한 반감으로 공화정 여론 + 스코틀랜드 독립 의지 ---------------> 등을 고려해 연합왕국 유지를 위한 나름의 마지막 행보??? 현 영국 왕가는 부계 + 모계 전부 다 살피면, 앵글로색슨 왕조의 알프랫 대왕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부계만 따지면 외부 침략 + 영국내 정변 + 아들이 없이 공주가 왕이 되면서 데릴사위 성씨 ----------------------> 사유로 몇 번 바뀐. 부계 성씨 가장 큰 변화는 3번 정도. 노르만 정복 때 노르만 바이킹이 앵글로색슨 부계를 대체 + 엘리자벳1세 사망 후 스코틀랜드계로 부계 바뀜 + 공주가 왕이 되며 독일계 데릴사위 ( 명예혁명 때, 유럽 거주 영국 왕실 후손 여왕 + 여왕의 부군 하노버공 공동 국왕. 빅토리아 여왕 때 부군 앨버트 공 ---------------> 데릴 사위 성씨로 부계. ) (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국 왕실 부계가 독일계라고 독일이 잉글랜드 정복한 것 아닌 그냥 여왕의 부군 데릴 사위. ) ( 1차대전 때 데릴사위 독일계 성씨 문제로, 영국 왕가 성씨는 윈저로 바뀌고 영구 고정. 즉 앞으로는 공주가 왕이 되더라도 데릴사위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윈저 성씨를 영구히 사용. ) 노르만 정복은 이미 소개했으니 스코틀랜드 왕가로 잉글랜드 왕위가 넘어간 부분 소개하죠. 엘리자벳1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현명했습니다. 로마군 철군 후 반복된 켈트-앵글로색슨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잉글랜드의 최고 권력을 철천지 원수 스코틀랜드 쪽 친척에게 넘기는 결단 했던. 후계 없이 사망할 때 엘리자벳1세는 잉글랜드 내부 아닌 스코틀랜드 쪽 친척인 스코틀랜드 현직 국왕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승계시킨. ------------------------------------------> 1603년? ~1707년 연합왕국 출범까지, 약 100년간 같은 공동 국왕 + 서로 다른 두 나라 체제가 유지되다 ------------------------------------------>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의 평화적 합병 결의로 연합왕국 출범 + 파산한 스코틀랜드의 모든 부채를 잉글랜드가 인수 청산 ---------------------------------------------------------------------------------------------------------------------------->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군사적으로 패해 무력 합병된 것 아닙니다. 엘리자벳1세만 현명했던 것 아니랍니다. 영국 왕위 계승자 왕세자의 공식 명칭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 왜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 노르만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웨일즈도 정복. 웨일즈의 반란과 투쟁이 지속되자 잉글랜드 국왕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 웨일즈 대표들과 회동. ------------------------------------------------------------------>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주면 잉글랜드 국왕에게 충성하겠냐? ------------------------------------------------------------------> 웨일즈 귀족들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웨일즈에서 태어나 웨일즈어를 말하는 국왕이라면 충성하겠다! ---------------------------------------------------------------------------------------------------------------------> 즉 잉글랜드 니 넘들 꺼져!!!!!!!!!!!!!!!!!!!!!!!!!!!!!!!!!!!!!!!!!!!!!!!!!!!!!!!!!!!!!!!!!!!!!!!!!!!!!!!!!!!!!!!!!!! 잉글랜드 국왕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임신한 왕비를 웨일즈의 성에 머물게 했고, 운 좋게도 왕자가 태어난. 그 왕자를 프린스 오브 웨일즈로 봉하고 + 웨일즈인 보모에게서 웨일즈어를 배우며 자라도록 했고 + 훗날 왕위를 계승토록. -----------------------------------------------------------------------------------> 이 전통은 이미 1천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모든 영국 왕세자들은 웨일즈어를 어릴 때부터 배웁니다. -----------------------------------------------------------------------------------> 1천년 전부터 모든 영국 왕세자 책봉식은 웨일즈에서 행해집니다. ( 저 현명한 잉글랜드 국왕, 브레이브 하트에 폭군으로 묘사된.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폭군이었던 자가 저랬던. ) 최근 영국 여왕 사망 때 새 국왕 챨스3세의 사실상 첫 임무는, 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 방문해 연합왕국의 연대를 강조, 특히 웨일즈 의회에선 영어만이 아닌 웨일즈어로도 연설. 따라서 아마도 영국 여왕이 사망 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왕조 뿌리이기도 한 스코틀랜드에서 최후를 맞이해 연합왕국 유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여왕 장례식 시청했다면 바로 느낄 겁니다. 스코틀랜드-풍 의식이 연합왕국 공식 의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국왕 지위를 철천지 원수 쪽에 넘기는 통 큰 배포와 피의 투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 ---------------------------------------------------------------------------> 저랬으니 저 조그만 세력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 제국과 미합중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던 겁니다.
1. 100 Greatest Generals in History 역사상 승리 많은 장군 랭킹 : 전투 중요도 가중치 없이 횟수만, 나폴레옹 1위 ruclips.net/video/TmSQriq0zTc/видео.html 2. Have the British really invaded 90% of the countries in the world? 영국은 전세계 국가 90%를 실제로 침략했는가? ruclips.net/video/t86J_zZjjq4/видео.html : 유엔 회원국 193개 시점에서, 무려 171개국 군사적 침공 1. 승리 횟수로 본 장군 랭킹 정리 1위 나폴레옹 56회, 2위 웰링턴 39회, 3위 칼리드 이반 알 왈리드 28회, 4위 줄리어스 시저 23회, 5위 알렉산더 22회 전투 승리 횟수로 본 국가 랭킹과 달리 실제 체감과 차이가 훨씬 더 나는 편입니다. 단순한 전투 승리 횟수 보다 전투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국가 랭킹에서는 누적 전투 수가 1만회를 넘어가지만, 장군 지휘관들의 한 평생 전투 누적 기록은 아무리 많아도 100회를 넘기 어렵게 때문에 통계적 오류 발생 확률이 커서.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시켜도 랭킹 1위, 4위, 5위에는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가 포함됩니다. 문제는 한니발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 20위 근처인데 그런 부분은 결정적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전투 횟수 산정에 애매한 점이 있기 때문이죠.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에 진공한 다음 로마군과 거의 20년을 이태리 반도에서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러진 전투를 어떻게 구분하고 횟수 산정할지 지극히 애매하죠. 한니발은 횟수만이 아닌 질도 결정적이죠. 고국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섬멸전의 원조, 망치와 모루의 원조인 칸나 전투 하나만으로도 한니발은 1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한니발은 최종적으로 로마에 패했다는 약점이 있고, 알렉산더는 아예 패전을 경험한 적이 없이 젊은 나이에 병사. 승리 횟수로만 산정할 때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이 꽤나 순위에 들어가는 오류도 생깁니다. 그런 부분들은 고려하면서 영상 보면 될 겁니다. 충무공이 11승으로 나오는데, 23전 23승 아닌 무패로 본 모양. (충무공의 23전에는 매우 인접한 장소에서 몇 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각각 셈한 결과. 그런 전투들은 1개로 통합될 여지도.) (충무공의 23전 식으로 횟수 산정할 경우, 2차대전 대서양 해전은 어마어마한 횟수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송선단과 유보트 교전 횟수는 약 1,000회에 개별 항해 선박과 유보트 교전은 수천 회에 달하지만 모두 다 교전 횟수로 계산하지는 않았겠죠.) 근대 이후로는 단연 나폴레옹이 압도적입니다. 1차, 2차대전의 탁월했던 그 어떤 독일 장군도 감히 넘보지 못할 기록이며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중반부 이후 포병 장교로 등장해서 워털루에서 패배 까지 20년 동안 유럽을 석권. 1차 대전 독일 4년, 2차대전 독일 6년과 비교할 수 없고 나폴레옹은 모스코바를 점령 후 후퇴했지만 독일은 불가능했죠. 웰링턴의 승리 횟수 상당 수는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제 친척들은 유럽 각각의 국왕으로 임명하면서 스페인 국왕 역시 그렇게 되었죠. 그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반 프랑스 봉기가 일어났고, 영국은 10년 이상 이베리아 반도에서 장기적 전투를 수행. 스페인 전역에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패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 희미한데 프랑스가 스페인에서 손실한 병력이 10년 동안 누적해서 대략 30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랑비에 몸이 젖은 셈이죠. 만쉬타인, 구데리안, 롬멜, 패튼 몽고메리 등도 나옵니다. 롬멜, 패튼, 몽고메리는 제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고 해도 만쉬타인급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2차대전에서 그토록 유능했던 전쟁의 대가 만쉬타인 조차도 인류 전쟁사에선 앞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독일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 독일은 무수한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엔 패배. 영국은 수 많은 전투의 패배에도 결국 전쟁에선 승리. 그 원인은 전투의 중요도 결정성 때문. 1588년 무적함대 격파는 세계제국 팽창 시발점,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충무공의 승리는 조선의 강대국 부상과 아무 관련 없고. 영국 북미와 인도에서의 결정적 승리로 대륙 장악, 트라팔가와 워털루는 유럽의 향후 100년을 결정. 독일은 분명 압도적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결정적 승리가 아닌 지역적 일시적 승리에 지나지 않았고. 2. 영국은 과연 오늘날 존재하는 전세계 모든 국가 90%를 그 어떤 이유건 침공한 적이 있는가? 정리하면 상당 부분 근거는 있는 것 같군요. 침공 후 지배 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 개입, 주둔, 압박. 동영상에 소개된 책자 발행 시점 당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에서 무려 171개국이 영국의 군사적 침공을 경험. 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 관저 : 화이트 하우스, 불 탄 후 흰색 페인트로 가림.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시기 잠시 일어났던 미영 전쟁 중 수도 워싱턴이 점령당해 대통령 관저가 불타버렸죠. 막강한 군사강국 러시아 : 크림 전쟁 때 크림 반도만 점령당한 것이 아니고, 그 무렵 극동에서 캼차캬 반도 까지 일시적이지만 점령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알래스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에 매각했죠.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과 접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영국이나 미국에 먹힐 것이라고 판단해 손 턴 것. 러시아 혁명 당시 적백 내전이 벌어졌고, 영국이 주도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이 무르만스크, 흑해의 크림반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등에 상륙해서 상당기간 점령. 하지만 트로츠키가 지휘하는 적군의 승리로 백군 반혁명군이 패배하자 결국은 모두 철수. ( 적백 내전 당시 영국군이 상륙 점령한 곳은, 북극해 무르만스크 + 발트해 페테스부르크 + 흑해 크림반도 + 카스피해 일부 지역 + 극동 블라디보스톡 등. ---------------------------------> 프랑스 3군데, 미국은 2군데? 상륙, 일본은 블라디보스톡 1곳 상륙. 영국은 5곳 모두에 발 걸치고 공산혁명 진압 시도. ) 중국과 인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카리브해와 남미에도 영국령 섬들과 영령 가이아나. 심지어 조선말 우리도 거문도를 점령당했죠. 일본 역시 일부 지역 번들이 영국과 소규모지만 전쟁 했고.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전쟁터, 독일은 18세기초 말버러공이 이끄는 대륙 원정군의 전쟁터. 지중해는 영국의 연못. 중동 아프리카 생략. 정리하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대다수는 영국의 직간접 침공, 주둔, 압박등 경험한 적이 있다. 없는 곳을 구태여 찾자면, 바다로 부터 완전 격리된 몽골과 같은 정도. 그런데 다른 강대국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죠. 대영제국은 위대한 영웅에 의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 알렉산더, 징키즈칸, 시저, 나폴레옹 급의 탁월한 군사지도자 없이 고만 고만한 장군들과 그렇게 많지 않은 병력으로 세계 최초로 전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었죠.
이 배중에 저의 어머니와 할머니 이모 삼춘이 타고 나왔지요. 할아버지 는 북쪽 어느 곳에서 인민제판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있는 감사 함 이지요. 감사합니다. 멸공.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우리가 반드시 인수해서 역사를 기억하는 공원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릴 수 있었던 그 배를 구하지 못했던게 너무 안타깝네요...
2차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전설적인 무훈을 세운 엔터프라이츠 항모조차도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스크랩처리한 미국입니다.
@@Iiiiinyoooong 그 시절의 미국은 그랬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눈으로 그 당시를 평가하는 것은 좀......
뭐 그렇게 따지면 미군에 남겨둬야 할 함선들이 한두척이겠습니까?ㅋㅋ
메러디스 빅토리호, 버지니아 시티 빅토리호 외 여러 함선들 ㅜ ㅜ 그냥 함선이 아니라 위대한 철인이네요. 감사합니다.
제 고향이 거제입니다. 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적을 가까운 곳에 두고도 찾아가질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찾아가서 숭고한 작전의 뜻을 느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다림의 일주일! 우리가 너무 기다렸던 역전다방 133회~
흥남 철수 작전은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거 다 아는 내용 아니야?' 했는데 역시 역전다방의 날카로운 분석으로 보니까 몰랐던 부분들이 참 많았네요. 이래서 역전다방 봅니다. 늘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 드디어 릿지웨이 장군님이 등판하시네요. 6.25 초반 위기를 넘겨주시고 세상을 떠나신 워커 장군님께는 애도를 표합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일 수비의 신인 발터 모델 장군을 마지막으로 이기고 항복 권유를 편지로 보낸 리지웨이 장군😊 그 편지에서 무고한 독일 청년들을 전후 재건을 위해
희생시키지 말라는 내용이었죠..그리고 발터 장군은 독일 군인들에게 전역
명령을 내리고 본인은 권총으로 자살하죠..서부전선의 두 명장이야기
ㅍ
빅토리아호가 안타깝네요.
30억이면 충분히 구매할수 있었을텐데~
선장님이 수도사가 됐다는것도
처음 알고
저희 외조부께서 흥남철수 때 피란민으로 남한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피난지였던 부산 하숙집의 딸이었던 외조모님과 만나서셔 결혼하셨고, 육군 장교로 임관하셔서 포병장교로 베트남전 때 포대장으로 참전하셨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 말 갑작스레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외조부모님께서 세분의 부모님 세대를 낳으셨고, 저의 사촌 세대는 5명이 있습니다. 아마 저희도 열심히 자식을 만들겠지요??
저희 외할아버지를 무사히 자유세계로 이끌어주신 미군과 국군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도적인 철수작전의 나비효과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했네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초딩때나 미군 물러가라 했고
중딩때는 반미 감정도 꽤나 있었는데....미군은 정말 자국을 위한 파병, 참전이었지만 미군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국방군 선조님들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전교조의 영향이었군요!
전교조랑 지금 이재명 지지하는 70년대생들이 그랬죠
적어도 한국전쟁 당시 싸운 미군은 민간인을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기는 했습니다.
6.25 초반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실수를 많이 했어도
적어도 저 당시에는
필사적으로 북한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미 해병 1사단 장병들은
저 때 싸운 기억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국방군???????
여기 간첩 검거!!!!!
대한민국에서 국군을 국방군이라고 쓰는 사람이 어딨냐? 저거 전형적인 북한이나 중국에서 국군 부르는 용어인데
@@bennyspapa9510 별 ㅋㅋㅋㅋㅋㅋ국방군 국군 검색이나 좀 하고 싸질러.. 창피하다
매번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드라마 한편보는거 같습니다~~~시간 가는줄 모릅니다 잘때도 틀어놓고 자네요 ㅋ
저도 잘 때 틀어놓는데😂ㅋㅋ
그리고 밥 먹을 때도ㅋㅋ
오늘 내용이 너무 아름답네요. 감동적입니다. 그 당시 함께 싸웠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저희 가족 증언에 의하면 각자도생하다가 소식 듣고 뒤늦게 흥남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몰렸을때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은 원산쪽으로 갔다가 길이 막혀 돌아왔고 너무 늦게 와서 그 난리 모습을 멀리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마지막에 철수하는 해병대의 상륙선을 타고 오셨다고 합니다.
군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적대적인 적군으로부터 선량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흥남철수작전은 그런 군인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
미군의 유일한 작전이자
미국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전 중 하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중국이나 러시아조차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민을 구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긍지이자 명예 그 자체니까 말입니다.
와 진짜 감동이네요. 보는 내내 소름이 돋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저 대규모 철수 작전 때 그걸 정리한 행정과 폼 미쳤다...;; 대단허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주신 미군을 주축으로한 유엔군과 국군 선배님들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합니다.
정말 뭉클합니다 ㅜㅜ
오늘 영상은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네요😂
저희 외할아버지의 고향은 함흥이셨습니다. ㅜ 저 흥남철수작전 때 피난민들 대열에 합류하여 자유대한민국으로 무사히 남하하셨고 부산에 정착하셨습니다. 원래 부산에서 쭉 자라신 외할머니를 만나셔서 결혼하셨답니다 ㅜ
@@vfjoivjdfojw그만큼 공산당 치하가 X같았다는 거죠...
@@vfjoivjdfojw공산당 치하에 남으면 김일성 독재 아래 지옥도가 펼쳐질 텐데 당연히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싶죠 ㅋ
@@게딱지-x3i 근데 그당시만 해도 아직 자유주의진영이 확실히 공산주의보다 잘살게 된시기도 아니고, 그당시 피난민들 의식수준이 공산당이 더 안좋다라는걸 알았을까요
@@이준우-b5w 아마 인민재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태극기 휘난리며랑 다른 영화에 보면 인민재판으로 자산가등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민재판이 영향을 줬지 싶네요.다른이유도 있겠지만 일단 생각 나는게 이겄뿐이라
독소전쟁 언제하실건지 살짝 힌트 좀 주세요
와 진짜 눈물 나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제가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윤재균 감독 고증 무시하고 생각없이 영화 찍었네. 실제로 많이 혼란하고 불안한상태였는데 피난민들이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배에 탑승한 사실이 신기하네요. 그리고 작지만 우리 해군도 큰 역할을 했다는게 자랑스러워지네요.
우리나라 민간인배도 수백대 동원 되었다고함. 영화에서는 극적인 표현을 위해 그런게 다 생략되고 메러디스 호 만 부각시킨거죠... 11만명의 철수인원중 14500명이 한배에 탔지만, 나머지 88% 피난민은 다른 군함 또는 동원된 민간인 빼에 탔다고함. 민간인 배는 수십명 탈수 있는 어선에서 3000명까지 탈수 있는 배까지 동원 되었다고 함. 민간인배가 거의 절반 정도 담당한 것으로 보임.
사실 철수작전 급으로 따지면
덩케르크 탈출작전과 맞먹을 정도급의 철수작전이었습니다.
좋은 내용~~
알찬 방송에 감사드려요.
교과서보다 훌륭한 역전다방 최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
우리할머니도 흥남철수때 홀로내려오셔서 울진근처에서 내리고 부산으로 내려오심
정치적 수뇌부와 현장의 지휘관이 달라서 일어나는 중공군 3차공세가 시작되는군요. 독일제국의 통일전쟁도 수뇌부인 비스마르크와 그 장군들의 생각이 달랐응수도 있는데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역전다방에서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 부두에 ~~ 불러 보았다. 굳세어라 금순아
메러디스빅토리 이야기에 울컥 했습니다 ㅜㅜ
어떠한 갈등, 위기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이겨낼수있을 것이란것을
믿습니다.
흥남철수는 기적이 아닌
위대한 인류애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진짜 뭉클해지는 얘기 알고들어도 뭉클해지네
고맙습니다^^*
대충 알고 있던 흥남철수작전....이렇게 자세히 알고보니, 마음이 찡하네요...
철수할때 도와주신 모든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질서의 대한민국. 자랑스럽습니다.
라루 선장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도와주신 모둔분들 감사합니다. 저분들이 없었으면 저는 태어났을지도 모르겠죠. 태어나 생을 살아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 합니다.
아버님 20대초 총각이라 흥남에서 홀로 탈출. 형들은 결혼해서 가족이 있어서 남아있음
술로 향수 달램..그땐 왜이리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지....7년전 돌아가셨지만 지금은 이해감.
왔다 내 역전다방!!
미군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작전 중 하나가
바로 이 흥남철수작전입니다.
군인의 기본적인 임무인
악랄하고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적을 상대로
평범한 민간인을 지키면서
단 한명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철수하기 위해서 싸운 전투라는 것.........
진짜 덩케르크 철수작전 이상급으로
군사적으로
진짜 군대가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싸워서
결과적으로 많은 민간인을 살려서 안전지역으로 대피시킨 유일한 전투니까 말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에서 구한 민간인들보다
더 많은 선량한 시민을 구한 유일한 작전이니까 말입니다.......
덩케르크 철수와 흥남 철수, 군사적 측면에선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상 유럽 대륙 제공권 장악한 독일 공군 상대로 + 전격전 돌파중인 강력한 독일 지상군 상대로 했던 철수와
----------------------------------------------> 사실상 알보병만의 중공군 상대로 + 거의 거의 거의 100% 제공권과 제해권 상태에서 흥남 철수는 동일한 조건이 아닙니다.
덩케르크 철수 직후 브레스트 지역을 포함한 서부 프랑스에서도 대규모 철수 작전이 + 그것도 덩케르크와 달리 독일 지상군 정지 명령 없는 상태에서 감행되었습니다.
서부 프랑스 한 항구에서 병력을 태우고 출항 대기중인 여객선이? 독일 공군 폭격에 침몰 1척에서 구조된 인원 제외하고약 2500명 사망 사례도.
덩케르크 철수 + 서부 프랑스 에어리얼 철수 작전 합산해 군인과 민간이 합해 약 56만이 영국으로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 때 세워진 퀸 메리의 1척당 최대 병력 수송 기록은 아마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1. ruclips.net/video/MsoiKnnUskM/видео.html
The Grey Ghost - The Queen Mary LBUSD Education : 영국 거대 여객선 퀸메리
성격이 다르지만 영 거대 여객선 퀸메리 단 1척이 2차대전 기간 5대양 ( 주로 대서양 ) 누비며 병력 약 80만 수송.
영국 8만톤급 거대 여객선 단 2척 퀸메리-퀸엘리자벳, 왕복 인원 약 160만 병력 수송, 즉 귀환 아닌 파병만 따질 경우 약 80만 병력 수송.
병력 수송 대부분은 미군 병력 + 소수의 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군 = 즉 대서양 건넌 약 300만 미군 중 대략 그 1/4이 영 거대 여객선 2척으로 수송된.
-----------------------------------------------> 유보트에 격침될 위험 때문에, 탑승 병력을 1만명 조금 넘는 정도로 제한하고서 세운 기록.
-----------------------------------------------> 군인 1명을 넉넉하게 100kg 가정하고 1만명 태운다면 = 0.1톤 x 1만 = 고작 1천톤 불과한 무게. 사람 무게 보단 태울 공간이 더 중요.
퀸 메리 8만 1천톤 + 최고 속도 32.8 노트
퀸 엘리자벳 8만 3천톤 + 최고 속도 32.5 노트 -----------------------> 퀸 엘리자벳은 1939년 진수되어 퀸 메리 보다 몇 년 늦게 항해 시작. 그 때문에 퀸 메리가 병력 수송 기록 세운.
-----------------------------------------------------------------------------------------------> 퀸 엘리자벳은 2004년 퀸 메리2 등장 전까지 약 65년간 여객선 부분 세계 최대 배수량 기록.
-----------------------------------------------------------------------------------------------> 2차대전 병력 수송 당시 저 두 척과 함께 상시 고속 항해할 영국-미국 해군함이 없어서 사실상 대양을 단독 항해.
-----------------------------------------------------------------------------------------------> 독 유보트는 속도가 느려 저 거대 여객선 2척 추격할 수 없어 격침시키지 못한.
2.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철수 및 그 직후 실시된 에어리얼 철수, 민간인 포함 약 56만명 탈출 = 영국군 약 37만 포함
1940년 5월26일~6월4일 덩케르크 다이나모 + 1940년 6월14일~6월25일 브리타뉴 지역 에어리얼 철수 작전 합산.
From the end of Operation Dynamo at Dunkirk, Operation Cycle from Le Havre, elsewhere along the Channel coast and the termination of Operation Aerial, another 191,870 troops were rescued, bringing the total of military and civilian personnel returned to Britain during the Battle of France to 558,032, including 368,491 British troops.
덩케르크 이후에도 프랑스 서부의 여러 항구들에서 채널제도의 영국령 섬들을
거치는등 부지런히 탈출시켰습니다. 물론 최종적 으로는 채널 제도의 영국령 섬들은 독일에 점령.
덩케르크 종료 후 에어리얼 작전, 브리타뉴로 밀려난 영불군 셀부르와 브레스트 등에서 20만 추가 탈출 성공.
ruclips.net/video/tH4zintf6qg/видео.html : Troops In Louvain, Belgium - May 1940 (1940)
영국군 1940년 벨기에, 덩케르크 쪽으로 철수하는 모습. 유니버설 캐리어에 병력이나 견인포 메달고 후퇴 장면.
트럭이 아닌 다양한 경장갑 차량들도 보일 겁니다. 1940년 당시 기계화 보병 수준이었습니다. 이 영상 말고 다른
영상에는 차량 후퇴 대열 후미에서 영국군 최후방 보병들이 폭파물 설치하면서 후퇴하는 장면도 있음.
ruclips.net/video/0GsuaHTSgbA/видео.html : 에어리얼 철수 영상, 도로 건물들 멀쩡. 신속한 후퇴 의미.
당시 독일군은 정지 명령 없이 공격중이었지만, 항구 도로 건물들 멀쩡한 상태로 보아 후퇴 속도가 훨씬 빨랐던 것.
영상에 나오듯 상공에는 영국 공군기들이 철수 행렬 엄호, 화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때도 역시 철수 부대 후미에선 독일군과 치열한 교전 있었을 것.
한국전쟁 흥남 철수는 압도적 제공권+제해권 조건에서 장비 빈약한 중공군 상대의 철수였지만
----------------------------------------------> 1940년 프랑스에서의 철수는 강력한 독일 공군과 지상군 공세 속에서 벌어진 철수라는 성격 차이.
----------------------------------------------> 흥남 철수에선 미군 전함 항모 포함 수 많은 전투함들이 안전하게 해안 및 가까운 해역에서 철수 작전을 엄호할 수 있었지만,
----------------------------------------------> 1940년 프랑스에선 독일 공군 위협으로 영국 해군 주력 전투함들은 영불해협 근처에 접근도 하기 힘들었고 구축함급에서 큰 손실.
저희 아버지 고향 거제 연초 다공에도
피난민들이 헛간? 남는 지붕만 있으면 같이 살았다네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 나 몰라라 하실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도와주신 라루 선장님 정말 고맙읍니다.
흥남에서 탄 피난민 대려오신것
그분들이나 나라를위해서도 참으로다행입니다
딱 한놈만빼고
경상도 사람인가보네 어휴 더러워
그놈이 혹시 너님이세요?
@ 어휴 홍어냄새ㅋㅋ
그냥 미화물선들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만 고맙고 고맙다 ㅠㅠb
인간의 모든 행위가 모순적인 것처럼 전쟁만큼 상대에게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건 없는데 아이러니하게 그 전쟁과정에서 우리 안의 인류애는 더 커지는 듯.. 당시 미군이나 수송선 관계자들도 그랬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우리의 헐맹이며 우리나라가 앞으로 전진할수 있도록 길을 밝혀준 멘토였다
빅토리호 덕분에 부산밀면, 함흥냉면을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수 있었음.
퇴근하고봐야지 후후
ㅋㅋㅋ저랑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
위대하고 기적과 같은 작전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9:45 화면에서 좌측 하단에 코트 입고 계신 피난민 남자 분은 심중령님 아니신가요? ㅋㅋㅋ
채박사는 지식을 베풀 의무가 있다!!! 개인유튜브 개설하고 전쟁사 강의해라❤
참 이번 흥남철수작전을 보면서 울컥하네요 30대이지만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미군,국구장병들에 무한한 감사인사 전합니다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 배에서 대전 성심당을 차린 분들이 내려왔죠 덕분에 빵 잘 먹습니다.
알몬드가 지휘관으로는 무능했지만 흥남 철수는 대단한 결단이었지. 그리고 현봉학 박사님 고맙습니다
정말 눈물이 흐르네 ㅠ
보는데도 눈물이 나는데
저당시 피난민들은 어땠을까요.
라루선장, 다른분들 감사합니다.
아 가슴이 아파온다. 승리가 코앞이였는데 밀리고 밀려서 분단이 고착화되는게 보인다
샤를공 게르만 발언때문에 또 재업될것 같은데 불안하다 ...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피란민 20만, 배에 탄 피란민 9만8천... 나머지 10만의 피란민이 흥남부두 폭파때 같이 폭사 했다.....
한국전쟁 다시봐도 안타깝습니다. 중국군의 전술과 전략만 잘파악했다면 이겨내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을 하네요.
27:48 한국전쟁 초기 미군은 F-86A 세이버에 흰색과 백색의 스트라이프를 동체에 그려넣고 육안식별을 했습니다. 이후 사진과 같은 넓은 노란색 띠로 변경되었습니다.
30:28 공중에서의 피아식별장치는 2차대전 말기 때부터 나왔습니다. 근거리에서의 특정 라디오주파수를 이용한 후방접근 음성경보장치는 이미 P-51D 머스탱이나 P-47D 썬더볼트 후기형들에 탑재되고 있습니다. F-86에도 더 발전된 장비가 탑재됩니다.
흥남 철수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제 처절하게 밀고 당기는 전투들이 계속 이어지겠네요
역시 현실 고증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국제시장 감독
한번쯤 참전용사분들을 초청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건 어떨까요?
외국인들이 인천공항 도착했을 때부터 놀라는 짐 줄서기가 목슴건 그 옛날 함흥철수 때 영상에도 볼 수 있다니 진짜 우리 민족 대단하네^^
러일전쟁도 다뤄 주시길 바랍니다 ^^
이런 역사공부야 말로 초중고때 배워야된다 쓰잘데기 없는 고조선 백제 신라보다 훠얼씬 중요하다
용기 있게 내려 오신 분의 선택이 지금 보면 하늘의 선택이 었네
순간의 선택이 천국과 지옥을 갈라 놓아서 본인 뿐만 아니고
자손 대대로
진짜 진짜 울컥 한다 남의 나라에 대충대충 싸운것도 아닌 진짜 사력을 다해 싸운 미군 눈물나게 고맙다 특히
워커 장군 과 무어 장군 미 장군 아들들도 6.25 로 사상자가 많았다고 함 한국 은 고위급 장군 장관 등은 다 도망쳐 빠져 나가고 국군도 중공군만 보이면 총이고 대포고 다 버리고 도망가고 하도 도망을 가니 밴플리트가 이승만한태 엄청 화냈다고 함,,,그래서 후방에서 훈련 받고 미군들이 대신 싸웠다고함
특히 국군의 아버지 밴프리트 장군 아들도 전사 미국과 한국
진짜 혈맹 광하문 사거리에 세종대왕 이순신 그 다음 멕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 졌 어면 한다
10만명이 피난을 가는 거라면 주변에 대대적으로 전쟁 물자 징발 피해가 속출 했을 거고 특히 중공군은 급히 와서 약탈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퍼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당하고 해방이 된지 몇해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 중공군이 약탈에 화들짝 놀랐을 수도 있죠.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ㅜㅜㅜㅜ
진짜
기적적인
적재량으로
피난민들을
수송해 주신
매러디스 빅토리호
선장님
포함
선원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다음 전쟁으로 청일 아님 러일전쟁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4천톤급이라도 공간만 되면 1만명 이상의 사람을 충분히 태울수 있죠. 긴시간이면 불가능하겠지만 2-3일정도 운항이고 공간이 문제이긴 하죠. 중량은 널널합니다.
관리자님 국방티비 광고나와요
방치하면 귀찮은일 생기실듯해요
혹시 가능하다면......중국으로 팔린 메러디스 빅토리의 어떤 부분이라도 다시 거제 앞바다로 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부디...그 누군가가 그렇게 해 주기를요~
29:10 영감 와꾸 한번 살벌하네
서부전선 청천강하고 평양전투는 왜 안 다루나요?
영화는 픽션이 많이 들어갔죠 ㅎ
맞습니다. 현실이 더 영화보다 대단했으니까요 영화는 그거를 다 못담은것 같습니다. 건국전쟁처럼 다큐형식이 나오면 좋을듯 합니다!
재앙이는 놓고 오시지!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성심당의 빵이 있게 해준...
흥남철수작전
tnt1000톤은 1kt 입니다.
국민수준이 저때보다 역행하는듯
실제로 흥남철수 시에 피난민들은 함포사격이 오랜 시간 멈추면 불안해 했습니다. 함포사격이 재개되면 안심하구요.
항포사격이 미군의 철수작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임진 왜란 때도 왕이고 신하고 군인이고 다 도망가고 겨우 명나라 참전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명나라는 조선에 너무 많이 도와줬어 걍 망해 버리고 6.25도 대통령 장관 고위직도 전부 다 도망 가고 미군의 참전으로 겨우 국난을 극복하고 국난이 오면 일단 도망가는 국민성 눈물난다 남의 나라 등꼴 빼먹는 나라,국난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 하고 꼭 외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라 그래도 억세게 운이 좋아 지리적 이점 때문에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나라
괜찮음. 참 아쉽긴 한데, 그래도 괜찮음. 그 배가 도착한 거제는 지금 조선소가 두 개나 있고, 고작 만몇천톤짜리 화물선 한 척 댈 곳 없던 곳이 지금은 그 몇십 배 크기의 화물선을 찍어내는 곳이 돼있음. 그것만으로 지금 실물이 남아있지 않은 그 배의 기적은 여전히 거제에 살아있는 거나 마찬가지임. 메레디스 빅토리의 기적도 수천톤짜리 쇳덩어리가 아니라 그 쇳덩어리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이룬 기적이었으니,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때의 일이 기억과 기록에서 잊혀지지 않게 사람들이 잘 간직해 나간다면 그게 곧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가 아닐까 싶음.
전쟁 협상에서는 항상 자기 쪽에 현재보다 더 유리한 제안을 먼저 하는 것이 관례이자 상식이랍니다. 즉, 유엔군이 38도선 정전을 제안한 것은 당시 전황에 비해 38도선 휴전을 하는 것이 유엔측에게 더 유리했기 때문이죠. 저 1950년 12월 때는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엄청난 규모와 전략전술에 밀려 겁을 먹고 38도선 인근까지 물러났다가 여기도 사수하지 못하고 더 후퇴할 위기였답니다. 38도선보다 더 남쪽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전황에 비해 더 유리한 38도선 휴전을 제안한 겁니다 ㅜ 저 때는 다시 재북진하기는 커녕 전쟁 이전보다 더 남쪽으로 다시 밀려날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에 (실제로 1951년 1월에는 서울을 한번 더 적에게 내어주고 37도선까지 밀려났죠) 더 밀려나지 않고 전쟁 이전의 38도선으로 복귀하면 적어도 지지는 않게 되니까요
흥남,함흥지역에 교두보를 유지하고 나중에 유엔군 재북진까지 잘 버텼으면 좋았었겠지만 당시 정황과 지형적 특성 및 기타 여건들을 보았을 때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죠 ㅜ 그래도 저 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많은 병력들을 보존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많은 시민들을 대한민국에 합류시킬 수 있었답니다.
서부전선 얘기는 언제 해주시나요?
6.25방송 6개월째…
아직 내용은 50년 12월..ㅋ
실시간 방송인가요 ㅋㅋ
저당시 우리나라에 해군이란게 있었구나
근데 6.25발발당시 우리나라 전차보유량 0대로 알고있는데
LST는 왜저렇게 많은거야
허준님 살이 점점 빠지는듯...턱뼈가 보이네요
한국서 샀어야지 아오
철수는 상륙의 역순ㅋㅋ
다음회에 코 뀀...
피란민 20만, 배에 탄 피란민 9만8천... 나머지 10만의 피란민이 흥남부두 폭파때 같이 폭사 했다.....
815 해방후 분단만 되지 않았어도 6.25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흥남철수 피난민이 왜 피난을 했는지 왜 전쟁이 생겼는지, 그 전체주의 특히 공산주의가 왜 지옥의 불개인 악마인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피난민들이 다시 한번 일깨워 주네요.
독소전 안하나?
중공과 소련이 유엔측의 38도선 정전을 단칼에 거절한 것은 당시 전황이 공산측에 너무나 유리했고 이 기회를 이용해 38도선 이남으로 재남진해 서울을 다시 먹고 더 아래인 평택-충주-삼척선 (37도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매우 컸기 때문이죠. 이 기회를 차버리고 38도선 원상복귀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저들에겐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이었죠
625전쟁의 얘기를 시작하면서 뜬금없이 인천상륙작전 부터 시작한것이 의아했는데
이상한 괴뢰영화가 런승만 올려치기를 하고있는 요즘세태를 볼때에
차라리 아무언급도 하지 않고 넘어간게 다행이다 싶네요
(물론 팩트로 신랄하게 까지 않고 넘어간것은 아쉽지만, 국방tv라는 특성상..... )
저배타고온 누구는이 영상보면무슨생각을할까~?
고작 하루면 되는 거리를 + 게다가 남의 나라도 아닌 같은 나라의 다른 지역으로 + 더우기 대한민국을 선택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수 많은 이민자 또는 이민자 후손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계도 미국 대통령이 되는 판에.
정치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수 많은 이들이 미국에 정착해 미국을 이끌었습니다. 애플사 스티브 잡스의 부모는 모두 시리아 출신의 미국 유학생으로 잡스를 미국에서 입양시킨.
현 미국 부통령은 인도계 + 현 영국 수상 인도계 + 현 런던 시장은 이슬람 + 미국 첨단 기업 CEO들과 수 많은 엔지니어들은 인도에서 왔고.
흥남철수 피난민 출신의 대한민국 대통령 배출은 대한민국이 북 보다 훨씬 더 건전하다는 확고부동한 증거.
----------------------------------------------------> 흥남 피난민 출신이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 민족 내부 주적질 사생결단 적대적 투쟁은 언젠간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겁니다.
----------------------------------------------------> 미필이 이빨 전사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타는 적개심 승리에 대한 열망 보다 훨씬 더 바람직.
미국 대통령 가계 - 부모의 조상 출신지 분포, 아일랜드계-독일계 거대한 인구에 비해 제한, 부계 독일계 대통령 역시 인구에 비해 극단적 제한 단 2명.
ruclips.net/video/jMd0SdXGkFc/видео.html
잉글랜드38 >> 얼스터 스콧21(북아일랜드개신교) > 스코틀랜드17 > 웨일즈15> 독11-프9-네덜란드5-아일랜드4-스위스3-케냐1
얼스터 스콧은 북아일랜드 신교도, 친-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세력이 영국 정책에 의해 아일랜드 북부 이주 정착.
현재 스코틀랜드 인구는 약 550만에 불과하고, 북아일랜드 인구는 지극 소수에 불과하지만 미국 대통령 부모 배출은 엄청난.
미국 이주민 수 랭킹 3위 아일랜드계 수적으로 엄청 나지만,
카톨릭-개신교 대립 구도 속에서 아일랜드계 대통령과 대통령 부모 적음은 ------------------> 아일랜드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
미국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그레이트 브리튼 제도 출신,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즈 +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포함해 확장한 영국 제도는, 그레이트 브리튼 제도 출신에 ---------------> 케네디-레이건-바이든 추가됩니다.
부계로만 따질 때, 확장된 영국제도 아닌, 영불 해협 건너 유렵대륙 및 기타 지역 출신 대통령은 단 6명에 불과.
유럽 대륙 5명 = 네덜란드계 3명 + 독일계 2명. 아프리카계 1명.
------------------------> 저 6명 조차 모계 따질 경우 영국 제도와 무관한 경우는 1~2명에 불과.
------------------------> 첫 네덜란드계 대통령 부모 모두 네덜란드 출신 + 아이젠하워 모계 스위스?(잉글랜드 혈통 혼혈이라는 자료도)
------------------------> 트럼프 모계는 스코틀랜드. 그래선지 트럼프는 스코틀랜드에 골프장 보유 및 잦은 방문.
케네디 ------------------> 부모 모두 아일랜드계 출신
레이건-바이든 -------------------------------> 부계 아일랜드계 + 모계 잉글랜드계, 순수한 아일랜드계는 케네디 1명 밖에.
부계 잉글랜드계 아닌 최초의 미 대통령은 네덜란드계, 부계 네덜란드계 대통령은 3명으로 영국제도 밖에선 가장 많음.
네덜란드계 대통령 중에서 2명은 서로 친척이기도 한 +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에 포함되는 2명의 루즈벨트.
루즈벨트 -------------------------------> 영어로 옮기면 로즈-가든, 장미-정원농장 정도.
부계 독일계는 단 2명, 아이젠하워 + 트럼프.
아이젠하워 조상은 오래 전 독일에서 스위스로 이주, 다시 스위스에서 영국 북미 식민지 시절인 1700년대 펜실베니아로 이주.
트럼프 조상은 독일에서 직접 미국으로 1800년대 이주.
-----------------------------------------> 독일계 이주민 수에 비한다면 대통령 배출에서 독일계는 존재감 미미한.
-----------------------------------------> 북아일랜드 개신교인 얼스터 스콧의 본고장 북아일랜드 및 웨일즈 한 줌도 안되는 인구와 비교한다면.
---------------------------> 미국 건국 및 기반이 이미 다져진 이후, 아무리 대규모로 이주해도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된.
( 아프리카계 대통령이 이미 나왔기에, 조금 있으면 히스패닉계 대통령도 배출될 것. )
( 이미 북서유럽계 백인의 과반은 깨졌고, 나날이 증가하는 히스패닉으로 미국 자체가 내부에서 히스패닉 영향에 놓이는. )
( 미국이 북미에서 팽창할 때 사실상 강탈에 가까운 구 스페인령 획득으로 초래된 업보. )
오바마는 말 그대로 세계 시민.
오바마 모계 조상은 스위스-독일-잉글랜드 ...포함한 8개국 혼혈
오바마 친할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버마 전선에 영국군 소속으로 참전한 케냐의 부족장?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 -------------------> 부계 잉글랜드 + 모계 프랑스
-----------------------------------------------------------> 프랑스계는 수는 적어 보이지만 초대 대통령의 모계, 영프의 북미 식민지 정착민 때문인듯.
-----------------------------------------------------------> 워싱턴의 부계 조상은 1600년대 잉글랜드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사실상 최초 영국 이주민.
미국 인구 조사에서 1970년대 까지는 항상 잉글랜드계가 1위.
하지만 그 이후 조사에서 독일계가 1위로 바뀌었었는데 그 통계 항목엔 북아메리카 출신 백인 포함된.
즉 1800년대 대규모 유럽 이주민 오기 전, 미국 건국의 주체 세력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유럽이 아닌 북미 백인이라고 밝히는.
미국 건국 주도 세력 후손들은 자신들은 유럽에서 뒤늦게 건너온 백인들과 다르다는 자부심.
( 미국 인구 조사 설문에는 중요한 헛점도.
영국계 =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즈 + 북아일랜드, 4개를 개별적으로 분류 조사하지만 독일계-히스패닉은 그냥 뭉뚱그려 설문.
히스패닉은 맥시코계를 따로 독립적으로 조사해도 아마 미국 인구 순위에서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2차대전 후 거대한 지속적 유입.
자신의 조상을 북미 대륙이라고 밝힌 항목이 최근 세분되어 ( 모던 북미대륙 출신 ) 이 추가???
자신의 조상이 북미 대륙 백인이라고 밝힌 이들은 최근 조사에서 약 2천만, 그 대부분은 유럽의 대규모 이주민 오기 전 영국의 초기 이주민 후손들. )
( 아일랜드계는 현재 아일랜드 인구 500만을 압도하는 2000만 넘어 사실상 미국이 아일랜드계 최대 거주 국가. )
( 최근 인구조사 순위는 독일계-아일랜드계-잉글랜드계 순서이고 조금만 있으면 히스패닉이 1위 될 것. )
( 그러나 잉글랜드계가 정말 3위이고 곧 4위로 떨어진다고 통계 수치를 오해해선 안되는 겁니다. )
( 미국 내에서 독일계-아일랜드계는 따로 출신 국가 기념 행사를 하지만, 미국의 건국 주체 잉글랜드계는 그런 것 없음. )
펜실베니아 및 그 수도 필라델피아.
윌리엄 펜이 영국 국왕에게서 식민지 특허장 받고, 신대륙에 이상 사회 건설 추구.
펜의 아름다운 숲이라는 의미의 주 이름 펜실베니아 + 우애-사랑의 형제라는 의미의 수도 이름 필라델피아.
미국 독립 무렵 필라델피아, 런던 다음의 출판 도시.
미국 독립 무렵 영국 선박 건조량의 1/3은 영국 본토 아닌 북미 식민지에서.
영국 북미 식민지는 스페인-포르투칼-프랑스 식민지와 성격이 달랐습니다.
사실상 거의 완전한 자치 상태였고, 형식상의 본토 지배. 특히 펜실베니아는 설립자의 이상이 반영되어 북서유럽 개신도에 문호 개방.
--------------------------------------> 펜실베니아의 개방성으로 인해, 네덜란드-독일-스칸디나비아 쪽 이주민들이 영국령 식민지에 유입.
--------------------------------------> 아이젠하워의 부계 역시 1700년대에 스위스에서 펜실베니아로 이주.
쾨벡에서 프랑스 최종 패하기 직전 및 미국 독립 조금 전,
영국 북미 식민지 인구 약 250만 >>>>>>>>>>>>>>>>>>>프랑스 북미 식민지 인구 20만 이내.
프랑스는 모피 무역 등 유럽과의 상업을 위한 소규모 이주민, 하지만 영국은 제 2의 나라에 가까운 대규모 이주.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제도 전체 인구는 약 1천만, 미국 독립 직전 영 북미 식민지 인구는 영국 본토 인구의 약 1/4로 엄청났던.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는 유럽 최대 인구로 약 3000만.
인구 측면에서 프랑스, 북미에서 영국에게 승리 불가능.
쾨벡에서 프랑스 패배 프랑스의 영국 북미 식민지에 대한 군사적 위협 사라지자
+ 이미 본토 인구의 1/4 규모의 거대한 북미 식민지들은 스스로 독립할 분위기에서 피할 수 없었던 미국 독립.
본토 : 식민지 인구비 4 :1 상태에서 + 돛단배 타던 시절
+ 대서양 건너 6천km 밖 본토의 형식적 지배도 싫다고 거부할 경우 -----------------------> 독립 막는 것 불가능.
주적 개념과 + 주적을 구태여 명시할 필요성, 둘 모두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한반도 민족 내부 주적질과 완전 대비된 철천지 원수 이민족 연합체의 세계 패권 장악과 내부 패권 승계 무시할 수 없는.
내부 주적질 >>>> 남북의 극단적 좌우익 사생결단 투쟁관
-------------------------------------------------------> 아직 인류는 아와 비아의 투쟁 예외 없으며,
-------------------------------------------------------> 모든 도전은 비아로부터 아를 향해 오며 +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을 아가 하는 것.
-------------------------------------------------------> 아와 비아의 투쟁 및 도전과 응전, 단순히 인간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 아닌 바이러스와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내포.
내부 주적질에 대해 냉정할 필요, 대한민국 유신-두환 시절 초중고 학생들은
사실상 국가가 제시한 이념으로 가축과 같이 사육되었지만 그들이 가장 강력한 반독재 투쟁자로 번한.
통행금지 + 국민교육헌장 암기 + 국기하강식 + 고등학교 여학생도 교련 + 대학생 교련만이 아닌 전방 입소와 문무대 교육에,
북과 유사하게 뻑하면 학생들 동원해 궐기대회 규탄대회 + 해 마다 6.25 무렵이면 국민학생들이 학교 운동장 빙빙 돌며 행진하며 6.25노래 부르고.
--------------------------------------------------------> 냉정하게 본다면 유치 찬란, 북이 아직도 하는 짓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깨닫길.
생각해보길.
한반도 남북의 6.25노래 가사 보면서 두려움에 떨 세계인들이 얼마나 될지.
------------------------------------------------------> 아마도 가사 확인한다면, 세계인들 다수는 재들 같은 민족끼리 왜 저래???
생각해보길.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체 연합왕국의 룰브리타니아 가사 보면서, 세계인들이 연합왕국 우습게 여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길.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모국 영국이 반공을 국시로 하고 구소련과 현중국을 과연 주적으로 명시했는지.
주적 명시는 어리석은 겁니다. 명시하건 하지 않건 주적에 대한 대비만 철저하면 됩니다. 한국전 직전 주적에 대한 적개심 노출 및 개전 직후 전선 붕괴가 반례.
----------------------------------> 한국전 직전 일부 국군 장성들이,
----------------------------------> 주적 북괴에 대한 적개심과 자심감을 밝혔어도, 개전 직후 전선 붕괴.
----------------------------------> 그들은 이렇게 자신만만 했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 그러나 현실은 완전 달랐던.
아더왕 신화 : 앵글로색슨 용병을 불러들인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 신화로 거듭나다.
로마 철수 후 로마화 문명화한 켈트가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로마에 투쟁했던 켈트 막기 위해 앵글로색슨 용병 고용.
수 백년이 흐르며 결국 용병들이 고용주 켈트 지배층 내쫒고 잉글랜드 왕국 건설. 이후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증오와 투쟁.
영국 정확히는 연합왕국 UK는 단일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원수나 다름 없는 증오가 가득찬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연합체.
현재 한반도 남북의 적대감, 대한민국 내부 동서 지역분열 등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피의 복수혈전 반복되던.
하지만 연합왕국 성립 이후, 그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제국으로 팽창했고 미합중국 건국의 초석을 놓았죠.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평화적 합병으로 연합왕국, 이 후 내부 분열 극복하고 세계제국으로 팽창.
중미 식민지 개척에 국운을 걸고 전국민이 투자했다 파산한 스코틀랜드 의회는 잉글랜드와의 평화적 합병을
승인하고 연합왕국이 수립됩니다. 그 이전 까진 같은 국왕 다른 나라였던 동군이국이었는데 진정한 한 나라로.
여기선 그 내용은 생략하고, 로마제국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 시작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브리튼 제도에 오래 전 이주해 살던 켈트족.
줄리어스 시저의 잉글랜드 남부 상륙 시작으로 로마에 점령.
로마화 문명화한 다수 켈트인들이 로마제국 백성으로 번영을 누릴 때,
로마의 군사력에 산악 오지였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바다건너 아일랜드로 쫒긴 켈트인들 로마에 저항.
(유명한 미 드라마 왕좌의 게임,
7왕국은 고대 앵글로색슨 7왕국, 스타크 가문이 지키는 북쪽의 얼음장벽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장벽.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웨스트로드 땅덩어리는 아일랜드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붙인 다음 남북을 뒤집은 형태.
즉 왕좌의 게임은 통채로 고대 앵글로색슨과 켈트의 투쟁에 기반한 작품입니다. 켈트인들은 얼음장벽 너머의 종족들.
하지만 결국 나중엔 장벽 너머에서 나타난 공동의 적 상대로 함께 싸우게 되죠. 영국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켈트와 앵글로색슨의 원한 증오 시작해보죠.
제정로마 후기 로마가 위태로워지자,
로마 본토 수호를 위해 브리튼의 로마군이 철군하면서,
이미 로마화한 켈트인들은 로마에 저항했던 야만적 켈트인들은 두려워했고,
그들을 막기 위해 현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 지역의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
수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굴러들어온 용병 앵글로색슨이 박힌 돌 문명화한 켈트인들을 내쫒고 잉글랜드 수립.
같은 민족인데 단합하지 못한 켈트인들, 앵글로색슨에 패해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쫒겨났습니다.
그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후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태어난 것이 아더왕 신화입니다.
현실에선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해서 패배했지만, 신화 속에선 승리하죠. 아더왕의 적은 앵글로색슨 침략자.
그 앵글로색슨이 바이킹의 일족 노르만에 정복당해 오늘날의 영국 왕조 수립.
덴마크 스칸디나비아에 기원을 둔 바이킹들이 유럽 각지로 퍼저나가면서 일부 세력이 프랑스 노르망디 점령.
군사력이 너무 막강해 물리칠 수 없었던 프랑스 국왕은 노르만 공이라는 작위 내리고 땅을 영지로 하사하며 달램.
잉글랜드 왕족들과 친척인 노르만 공이, 잉글랜드 국왕 승계 문제로 전쟁.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앵글로색슨 왕조가 붕괴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노르만 왕조가 성립.
노르만디 지역엔 앵글로색슨에 추방된 수 많은 켈트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노르만과 함께 잉글랜드 정복군에 가담.
노르만 정복 이후 아더왕 신화가 영국과 유럽에 널리 퍼짐.
선주민 켈트, 켈트를 정복한 앵글로색슨, 그 앵글로색슨을 정복한 극소수 노르만 바이킹,
노르만 바이킹에 협력해 앵글로색슨에 복수한 노르망디의 켈트 유민들. 그들이 뒤섞여 현 영국.
분열해서 좋을 것 없습니다.
민족의 원수 주적이 같은 민족인 것은 어리석죠.
앵글로색슨을 용병으로 고용했던 로마화한 켈트인들의 주적은, 같은 민족인 켈트였습니다.
현명한 외세는 어리석게 내부 분열하는 틈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분열한 켈트인들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분열했던 켈트의 후회와 반성이 신화로 재창조된 것이 아더왕 전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더왕 신화는 켈트를 넘어 모든 브리튼 거주민 및 브리튼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모든 이의 신화.
용병으로 굴러들어왔던 앵글로색슨과
그 앵글로색슨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던 노르만 바이킹의 고대로부터의 관습들이
국왕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에 좀 더 저항하게 만들었고, 결국 잉글랜드 왕국 내부로부터,
느리지만 점진적인 왕권제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1215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으로 성과가 시작.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증오에 바탕한 투쟁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죠.
잉글랜드는 결코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의회 스스로 평화적 합병을 결정.
그 관련 내용은 여기선 생략합니다.
일단 연합왕국 구성 이후엔,
그들은 내부의 증오가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지는 것을 철저히 회피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한국전쟁과 같은 내부 역량을 갉아먹는 대규모 유혈 분쟁을 피하면서 대외 팽창.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약했던 민주주의 싹이 연합왕국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대서양 동서 양편에서 입헌군주정과 공화정으로.
미국 건국은 붕괴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의 약 2000년 후 부활입니다.
미국 건국에는 수 많은 켈트의 후손들이 가담했고, 앵글로색슨은 미 건국의 아버지 대다수였죠.
비록 켈트의 나라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앵글로색슨과 함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는 제2의 조국으로 미국을 건국하였고 많은 미국 대통령도 배출했죠.
사실 함께 섞여 산지 오래라 유전적 분류는 무의미하고, 스스로 누구의 후손이라 여기는지 문화적 차이가 더 중요.
2차대전 때 미 장군 패튼이 몽고메리에 감정적 대립을 보인 겉으로 말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그가 스코틀랜드 후예.
스코틀랜드는 작지만 정말 대단한 지역입니다.
현재 인구 고작 500만 정도인데, 영국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1/3, 영국군 막강한 부대들 배출.
영국은 독일 보다 과학분야 노벨상 수 더 많고, 단위 인구당 수상자 수로는 미국의 2배 이상인데 영국에서 압도적.
아담스미스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
연합왕국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죠.
영국이 만든 세계표준의 거의 다는 스코틀랜드의 결정적 역활 때문.
스코틀랜드 단독으로는 결코 그런 일들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원수나 다름 없는 이민족들이 뭉쳐서 내부 분열을 극복하고 세계로 뻗어나가,
함께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또한 영국에서 파생된 미합중국을 건국해서 세계패권을 승계하며 유지한 역사.
영국은 오늘날 지구촌 자체를 기본 포맷, 세계 표준 확립.
1. 의회 대의 민주주의
2. 자본주의 시장경제 및 산업혁명
3. 뉴턴 이후 자연과학 혁명
4. 명확한 룰 체계 갖춘 근현대 스포츠
5. 현 최강국 미국 건국 기초
물리학과 공학의 가장 밑바닥 핵심 단위명만 봐도 확인되는.
힘의 단위 뉴턴N + 일과 에너지 단위 쥴J + 일률 와트W + 절대온도 켈빈K, 가장 밑바닥은 영국인 이름 딴.
그 유명한 아인쉬타인도 아직 핵심 기본 단위명 채택이 없을 정도로, 미신과 암흑이 판치던 세상에서 가장 먼저 자연과학의 문 통과.
앞으로 수 백 년 자연과학의 새로운 성과가 누적되고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과학들이 개척되어야, 더 근본적인 새로운 단위들로 교체될 것.
내부 주적질 환장한 공동체들은 저런 시도를 해볼 여력 없기에 기본 자격도 안되는 겁니다.
민주주의 가볍게 보지 말기를.
그 어떤 효율적-유능-탁월한 개발독재도 선민주-후경제개발 세력과의 패권 경쟁에서 패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며 + 또한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지난 수 백 년 최고의 교양과 최강의 주먹은 가장 먼저 내부 민주화를 달성한 세력.
철천지 원수 연합체 켈트-앵글로색슨의 세계 패권 쟁취와 비교한다면 지극 한심한 지구촌 최고 순도 한반도 내부 자폭 주적질 겸허히 반성해야.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 공동체 연합왕국.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웨일즈 등 켈트와의 끝 없는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내렸던 결단 2가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왕권을 스코틀랜드에 넘기고 + 왕세자 이름,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 아닌 프린스 오브 웨일즈!!!
얼마 전 영국 여왕 사망. 사망 직전 여왕은 스코틀랜드 고성으로 이동해 거기서 사망. 왜??? -------------> 우연 아닐 겁니다.
입헌군주제에 대한 반감으로 공화정 여론 + 스코틀랜드 독립 의지 ---------------> 등을 고려해 연합왕국 유지를 위한 나름의 마지막 행보???
현 영국 왕가는 부계 + 모계 전부 다 살피면, 앵글로색슨 왕조의 알프랫 대왕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부계만 따지면 외부 침략 + 영국내 정변 + 아들이 없이 공주가 왕이 되면서 데릴사위 성씨 ----------------------> 사유로 몇 번 바뀐.
부계 성씨 가장 큰 변화는 3번 정도.
노르만 정복 때 노르만 바이킹이 앵글로색슨 부계를 대체 + 엘리자벳1세 사망 후 스코틀랜드계로 부계 바뀜 + 공주가 왕이 되며 독일계 데릴사위
( 명예혁명 때, 유럽 거주 영국 왕실 후손 여왕 + 여왕의 부군 하노버공 공동 국왕. 빅토리아 여왕 때 부군 앨버트 공 ---------------> 데릴 사위 성씨로 부계. )
(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국 왕실 부계가 독일계라고 독일이 잉글랜드 정복한 것 아닌 그냥 여왕의 부군 데릴 사위. )
( 1차대전 때 데릴사위 독일계 성씨 문제로, 영국 왕가 성씨는 윈저로 바뀌고 영구 고정.
즉 앞으로는 공주가 왕이 되더라도 데릴사위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윈저 성씨를 영구히 사용. )
노르만 정복은 이미 소개했으니 스코틀랜드 왕가로 잉글랜드 왕위가 넘어간 부분 소개하죠.
엘리자벳1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현명했습니다.
로마군 철군 후 반복된 켈트-앵글로색슨 피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잉글랜드의 최고 권력을 철천지 원수 스코틀랜드 쪽 친척에게 넘기는 결단 했던.
후계 없이 사망할 때 엘리자벳1세는 잉글랜드 내부 아닌 스코틀랜드 쪽 친척인 스코틀랜드 현직 국왕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승계시킨.
------------------------------------------> 1603년? ~1707년 연합왕국 출범까지, 약 100년간 같은 공동 국왕 + 서로 다른 두 나라 체제가 유지되다
------------------------------------------>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의 평화적 합병 결의로 연합왕국 출범 + 파산한 스코틀랜드의 모든 부채를 잉글랜드가 인수 청산
---------------------------------------------------------------------------------------------------------------------------->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군사적으로 패해 무력 합병된 것 아닙니다.
엘리자벳1세만 현명했던 것 아니랍니다.
영국 왕위 계승자 왕세자의 공식 명칭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 왜 프린스 오브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
노르만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웨일즈도 정복.
웨일즈의 반란과 투쟁이 지속되자 잉글랜드 국왕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 웨일즈 대표들과 회동.
------------------------------------------------------------------>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주면 잉글랜드 국왕에게 충성하겠냐?
------------------------------------------------------------------> 웨일즈 귀족들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웨일즈에서 태어나 웨일즈어를 말하는 국왕이라면 충성하겠다!
---------------------------------------------------------------------------------------------------------------------> 즉 잉글랜드 니 넘들 꺼져!!!!!!!!!!!!!!!!!!!!!!!!!!!!!!!!!!!!!!!!!!!!!!!!!!!!!!!!!!!!!!!!!!!!!!!!!!!!!!!!!!!!!!!!!!!
잉글랜드 국왕은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임신한 왕비를 웨일즈의 성에 머물게 했고, 운 좋게도 왕자가 태어난.
그 왕자를 프린스 오브 웨일즈로 봉하고 + 웨일즈인 보모에게서 웨일즈어를 배우며 자라도록 했고 + 훗날 왕위를 계승토록.
-----------------------------------------------------------------------------------> 이 전통은 이미 1천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며, 모든 영국 왕세자들은 웨일즈어를 어릴 때부터 배웁니다.
-----------------------------------------------------------------------------------> 1천년 전부터 모든 영국 왕세자 책봉식은 웨일즈에서 행해집니다.
( 저 현명한 잉글랜드 국왕, 브레이브 하트에 폭군으로 묘사된.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폭군이었던 자가 저랬던. )
최근 영국 여왕 사망 때 새 국왕 챨스3세의 사실상 첫 임무는,
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 방문해 연합왕국의 연대를 강조, 특히 웨일즈 의회에선 영어만이 아닌 웨일즈어로도 연설.
따라서 아마도 영국 여왕이 사망 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왕조 뿌리이기도 한 스코틀랜드에서 최후를 맞이해 연합왕국 유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여왕 장례식 시청했다면 바로 느낄 겁니다.
스코틀랜드-풍 의식이 연합왕국 공식 의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공화정 아닌 절대 왕정 시절, 국가 최고 권력인 국왕 지위를 철천지 원수 쪽에 넘기는 통 큰 배포와 피의 투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
---------------------------------------------------------------------------> 저랬으니 저 조그만 세력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세계 제국과 미합중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던 겁니다.
1. 100 Greatest Generals in History 역사상 승리 많은 장군 랭킹 : 전투 중요도 가중치 없이 횟수만, 나폴레옹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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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ave the British really invaded 90% of the countries in the world? 영국은 전세계 국가 90%를 실제로 침략했는가?
ruclips.net/video/t86J_zZjjq4/видео.html : 유엔 회원국 193개 시점에서, 무려 171개국 군사적 침공
1. 승리 횟수로 본 장군 랭킹 정리
1위 나폴레옹 56회, 2위 웰링턴 39회, 3위 칼리드 이반 알 왈리드 28회, 4위 줄리어스 시저 23회, 5위 알렉산더 22회
전투 승리 횟수로 본 국가 랭킹과 달리 실제 체감과 차이가 훨씬 더 나는 편입니다.
단순한 전투 승리 횟수 보다 전투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국가 랭킹에서는 누적 전투 수가 1만회를 넘어가지만,
장군 지휘관들의 한 평생 전투 누적 기록은 아무리 많아도 100회를 넘기 어렵게 때문에 통계적 오류 발생 확률이 커서.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시켜도 랭킹 1위, 4위, 5위에는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가 포함됩니다.
문제는 한니발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 20위 근처인데 그런 부분은 결정적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전투 횟수 산정에 애매한 점이 있기 때문이죠.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에 진공한 다음 로마군과 거의 20년을
이태리 반도에서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러진 전투를 어떻게 구분하고 횟수 산정할지 지극히 애매하죠.
한니발은 횟수만이 아닌 질도 결정적이죠. 고국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섬멸전의 원조, 망치와 모루의 원조인 칸나 전투 하나만으로도 한니발은 1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한니발은 최종적으로 로마에 패했다는 약점이 있고, 알렉산더는 아예 패전을 경험한 적이 없이 젊은 나이에 병사.
승리 횟수로만 산정할 때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이 꽤나 순위에 들어가는 오류도 생깁니다.
그런 부분들은 고려하면서 영상 보면 될 겁니다. 충무공이 11승으로 나오는데, 23전 23승 아닌 무패로 본 모양.
(충무공의 23전에는 매우 인접한 장소에서 몇 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각각 셈한 결과. 그런 전투들은 1개로 통합될 여지도.)
(충무공의 23전 식으로 횟수 산정할 경우, 2차대전 대서양 해전은 어마어마한 횟수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송선단과 유보트 교전
횟수는 약 1,000회에 개별 항해 선박과 유보트 교전은 수천 회에 달하지만 모두 다 교전 횟수로 계산하지는 않았겠죠.)
근대 이후로는 단연 나폴레옹이 압도적입니다.
1차, 2차대전의 탁월했던 그 어떤 독일 장군도 감히 넘보지 못할 기록이며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중반부 이후 포병 장교로 등장해서 워털루에서 패배 까지 20년 동안 유럽을 석권.
1차 대전 독일 4년, 2차대전 독일 6년과 비교할 수 없고 나폴레옹은 모스코바를 점령 후 후퇴했지만 독일은 불가능했죠.
웰링턴의 승리 횟수 상당 수는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제 친척들은 유럽 각각의 국왕으로 임명하면서 스페인 국왕 역시 그렇게 되었죠.
그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반 프랑스 봉기가 일어났고, 영국은 10년 이상 이베리아 반도에서 장기적 전투를 수행.
스페인 전역에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패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 희미한데 프랑스가 스페인에서 손실한 병력이
10년 동안 누적해서 대략 30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랑비에 몸이 젖은 셈이죠.
만쉬타인, 구데리안, 롬멜, 패튼 몽고메리 등도 나옵니다.
롬멜, 패튼, 몽고메리는 제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고 해도 만쉬타인급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2차대전에서 그토록 유능했던 전쟁의 대가 만쉬타인 조차도 인류 전쟁사에선 앞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독일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
독일은 무수한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엔 패배.
영국은 수 많은 전투의 패배에도 결국 전쟁에선 승리. 그 원인은 전투의 중요도 결정성 때문.
1588년 무적함대 격파는 세계제국 팽창 시발점,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충무공의 승리는 조선의 강대국 부상과 아무 관련 없고.
영국 북미와 인도에서의 결정적 승리로 대륙 장악, 트라팔가와 워털루는 유럽의 향후 100년을 결정.
독일은 분명 압도적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결정적 승리가 아닌 지역적 일시적 승리에 지나지 않았고.
2. 영국은 과연 오늘날 존재하는 전세계 모든 국가 90%를 그 어떤 이유건 침공한 적이 있는가?
정리하면 상당 부분 근거는 있는 것 같군요. 침공 후 지배 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 개입, 주둔, 압박.
동영상에 소개된 책자 발행 시점 당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에서 무려 171개국이 영국의 군사적 침공을 경험.
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 관저 : 화이트 하우스, 불 탄 후 흰색 페인트로 가림.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시기 잠시 일어났던 미영 전쟁 중 수도 워싱턴이 점령당해 대통령 관저가 불타버렸죠.
막강한 군사강국 러시아 :
크림 전쟁 때 크림 반도만 점령당한 것이 아니고,
그 무렵 극동에서 캼차캬 반도 까지 일시적이지만 점령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알래스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에 매각했죠.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과 접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영국이나 미국에 먹힐 것이라고 판단해 손 턴 것.
러시아 혁명 당시 적백 내전이 벌어졌고,
영국이 주도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이 무르만스크, 흑해의 크림반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등에 상륙해서 상당기간 점령.
하지만 트로츠키가 지휘하는 적군의 승리로 백군 반혁명군이 패배하자 결국은 모두 철수.
( 적백 내전 당시 영국군이 상륙 점령한 곳은,
북극해 무르만스크 + 발트해 페테스부르크 + 흑해 크림반도 + 카스피해 일부 지역 + 극동 블라디보스톡 등.
---------------------------------> 프랑스 3군데, 미국은 2군데? 상륙, 일본은 블라디보스톡 1곳 상륙. 영국은 5곳 모두에 발 걸치고 공산혁명 진압 시도. )
중국과 인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카리브해와 남미에도 영국령 섬들과 영령 가이아나.
심지어 조선말 우리도 거문도를 점령당했죠. 일본 역시 일부 지역 번들이 영국과 소규모지만 전쟁 했고.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전쟁터,
독일은 18세기초 말버러공이 이끄는 대륙 원정군의 전쟁터. 지중해는 영국의 연못. 중동 아프리카 생략.
정리하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대다수는 영국의 직간접 침공, 주둔, 압박등 경험한 적이 있다.
없는 곳을 구태여 찾자면, 바다로 부터 완전 격리된 몽골과 같은 정도.
그런데 다른 강대국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죠.
대영제국은 위대한 영웅에 의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
알렉산더, 징키즈칸, 시저, 나폴레옹 급의 탁월한 군사지도자 없이
고만 고만한 장군들과 그렇게 많지 않은 병력으로 세계 최초로 전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었죠.